한여름의 미라주 전편
따분하다.
매일 입시학원에 다닌다. 한여름의 살인적인 햇살 아래서 무엇이 애통해서 입시학원에까지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가끔씩 입시학원이 비는 때에도 도서관에 와서 공부.
단 한 번밖에 없는 17살 귀중한 청춘의 나날을 그런 걸로 낭비해 버려도 되는건가. 아니, 좋을 턱 없다.
“저기, 미나코 씨.”
“응?”
“수험생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에요?”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애가 굉장히 냉정한 목소리로 태클을 건다. 으, 후련하단 표정 짓고선. 그런 건 어딘가 마미를 닮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사실이니까요.”
미나코는 샤프를 뱅글뱅글 돌리며 공책 위에 생각 없이 선을 그었다. 이미 텐션이 바닥나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 라인을 넘어서 오늘은 이미 올라갈 기색조차 없다. 공부에 대해서는.
“그러면, 오늘은 그만하면 어떤가요? 무리해서 계속해도 효과는 없을테니까요.”
“으읏.”
“끙끙거려도 안돼요.”
미나코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처럼 공책에 뭔가를 슥슥 써내려간다. 자신이 공부할 마음이 안 들 때는 다른 사람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어째선지 공연히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는 법이다.
장난기가 든 미나코는 그 공책에 약간 낙서 같은 걸 멋대로 끼적이거나 했지만, 그것도 한 마디 없이 시원스레 무시당해 버려 더더욱 복장이 뒤집어진다. 그래서 다음에는 샤프로 그 손가락을 쿡쿡 찔러보거나 했더니, 매몰차게 손으로 샤프를 쳐냈다.
“차암, 그런 반응 안 해도 괜찮잖아!”
“미나코 씨가 제 방해만 하니까 그렇잖아요?!”
두 사람은 무심코 목청을 올려 큰 소리를 냈다.
““…………아.””
때는 이미 늦었고.
주위의 차가운 눈길이 무수히 두 사람을 찔렀다.
“아아, 좀! 도서관에서 쫓겨나 버렸잖아요.”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유키는 푸념을 터뜨렸다.
여름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서 자료가 풍부하고 조용한데다 시원한 도서관에 온 건 괜찮았지만, 설마 여기서 미나코 씨랑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미나코 씨와는 얼마 전 기회가 있어 단 한 번 만난 적밖에 없는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유키 군이 큰 소리를 내니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참말,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전에 만났을 때도 온종일 휘둘렸는데, 이번에도 또 만나자마자 이렇다.
“뭐어, 괜찮잖아. 가끔씩은.”
“……저기 말이죠.”
유키는 숨을 들이쉰 뒤 발걸음을 멈추고 미나코를 바라봤다.
“여름방학 도서관의 자습 장소는 격전 지역이에요. 간신히 확보할 수 있었는데 쫓겨나서, 숙제도 못 하게 되었고. 거기에 저보다, 미나코 씨, 수험생이지요? 수험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온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별것 아닌 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 버리는 건 아깝지 않나요? 정말로 수험 칠 생각이라면 좀 더 진지하게 몰입하는 게 낫지 않아요?”
한 순간에 내뱉었다.
그러자 미나코 씨는 약간 토라진 표정으로 양손 검지 끝을 서로 꾹꾹 마주 누르며 주눅든 듯한 자세로
“……그치만, 공부만 하느라 숨이 막힐 것 같았는걸.”
“수험생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여기서 힘내지 않으면, 나중에 눈물을 흘리는 건 미나코 씨에요.”
“읏, 정론.”
“하아~.”
이 사람은 정말로 자신보다 연상인 걸까. 좀 의심하고 싶어진다.
거기다, 이쪽 입장도 되어줬으면 한다. 모처럼 온 도서관에서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쫓겨나고, 게다가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확실히 ‘여자 데리고 자습 코너에 오는 거 아냐’, ‘염장질하려면 도서관 같은데 오지 마’ 같은 눈초리로 유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럴 린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자리에 하나데라 학생이라도 있었다간 큰일이 되겠지.
“저기 저기, 앞으로 어떡할 거니?”
“에? 어쩔 수 없게 됐으니 돌아가서 이어 할거에요.”
“엣―. 저기, 오늘은 이제 그만하고 어딘가 놀러 가지 않을래?”
“저기 말이죠, 미나코 씨는 수험생이지요?”
“수험생도 가끔은 숨 돌릴 필요가 있어.”
“그거라면 저번에 수영장에 갔었잖아요.”
“그 일의 효과는 이미 끝났어. 뭐야, 그렇게 싫니?”
미나코 씨는 조금 뺨을 부풀리며 유키 쪽을 보고 있다.
“싫다거나 보다, 애초에 저랑 미나코 씨는 아직 오늘로 두 번째 만난 거잖아요. 꼬실 마음이 들어요?”
“어머, 그랬었나? 왠지 좀 더 자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어.”
확실히 유키도 그런 기분은 들지만, 틀림없이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다. 분명 만났던 날의 임펙트가 너무 강해서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말을 맞추거나 해서 약한 부분을 보여주면 안 된다. 무조건 그 틈을 파고들게 확실하니까.
유키는 짐짓 무시하는 듯 걸음을 재촉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미나코 씨는 당황한 듯 달려서 따라오고
“앙, 유키 군, 기다려~”
라고 말하고, 뒤쪽에서 유키의 팔에 달라붙어 왔다.
“우와왓, 그, 그만두세요. 더워요!!”
급히 그 손을 떨쳐낸다.
“우왓, 너무해, 이거. 약간 쇼크.”
그런 소리를 하고 있지만, 무시다 무시. 덥다고 말한 건 사실이었지만 오히려 변명 쪽이고, 여름에 이런 얇은 옷을 입은 채로 이렇게 달라붙으면 이런저런 의미로 참을 수 없으니까. 유키도 남자앤거다. 그런 걸 좀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도서관에서도 미나코 씨가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로 유키 쪽으로 몸을 뻗어올 때마다, 탱크톱이 느슨해져 가슴께에서 엿보이는 도원향 같은 광경에 눈을 빼앗길뻔하고, 지금도 골반바지 탓에 흘낏흘낏 보이는 매끈한 배꼽이 신경 쓰이는 걸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미나코 씨는 위험하다. 자기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유키가 신사니 다행이지, 다른 남자에게 이런 행동을 했다간 어떻게 될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방비하다. 좀 더 자신의 매력이라는 걸 인식해 줬으면 싶다.
하지만 당사자인 미나코 씨는 어떤가 하면, 남의 기분도 모른 채로 태평한 표정으로 곁에서 걷고 있다.
“여자애한테 ‘덥다’는 너무하지 않아?”
“사실이니까요.”
“으―, 너무해너무해너무해너무해.”
“그보다 미나코 씨. 어째서 제 뒤를 따라오는 건가요?”
자리에 서서 미나코 씨의 얼굴을 본다.
그러자 미나코 씨는 오른손 검지를 콧등에 올린 채로 좀 생각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유키 군의 곁에 있으면, 뭔가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기자로써의 직감이란 거려나?”
“기자로써의, 군요.”
그러고 보면 신문부에 재적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능력 있는 편집장이었다고 자칭했다. 수험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그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줬다고 말했는데, 유키가 보는 한 수험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키 군은 어디를 향하고 있어?”
“집에요.”
“엣―, 벌써 돌아가는 거니?!”
“어쩔 수 없잖아요, 도서관에서 쫓겨나 버렸으니까.”
“그런 거 따분해. 저기, 뭔가 재밌는 기삿거리라도 찾으러 거리로 가 보지 않을래?”
“저는 딱히 기자같은게 아니니까요.”
팔을 잡아서 어떻게든 유키를 멈춰보려 하는 미나코 씨.
아아, 차암, 이 사람은 정말로 좀 더 생각하고 행동을 해 줄 순 없는 걸까. 봐, 지금도 주변의 사람들이 ‘이 한여름에서 잘도 저러네, 뜨거워 뜨거워.’ 같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잖아! 완전 닭살커플 취급이다. 아는 사람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될지 같은 건 생각도 안 하는 걸까.
“맞아, 저번의 답례로 이번에는 내가 사줄 테니까.”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달라붙지 말아 주세요.”
“정말? 아자! 자, 가자, 가자.”
유키가 반쯤 포기한 듯이 승낙하자. 미나코 씨는 꾸밈없이 들떠서 떠드는 게 마치 연하 여자애 같아서. 그 미소를 보니, 유키는 아무 소리도 못 하게 되어 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