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오가사와라 집안의 파티로 걸음을 옮겼다. 온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자리에 맞지 않는 이단자가 되리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은 약간 망설이기도 했지만, 각오를 굳히고 거기에 맞선다.
스구루에게서도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 뒀으니까 어느 정도의 마음 준비도 되어 있다. 거기에, 스구루가 맡긴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
누나인 유미가 아닌데도,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평소와는 다른 마음이 가슴 속에서 솟아올라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란히 걷고 있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제자리서 품평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좋은 집안 아드님들 집단의 앞에 선다. 아까는 힘이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역시나 사람 수에 압도당할 것만 같다. 거기에 더해 그 모두가 자신이 넘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 어찌 보면 어딘가 스구루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거다.
곁에 있는 사치코는 물론 주눅이 드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로, 여유로운 태도로 유키에게 손을 뻗는다.
“소개할게요. 스구루 씨의 후배이자 현 하나데라 학원 학생회장인 후쿠자와 유키 군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후쿠자와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인다. 무난하게, 적을 만들지 않도록, 그럼에도 최대한 평정을 꾸미며.
“헤에, 스구루 군의 귀여운 후배란 소린가. 잘 부탁해.”
“오늘은 스구루 군의 대리란 거냐?”
“나도 하나데라의 OB인데.”
남자들이 번갈아 말을 걸며 손을 내밀어 온다. 그리고 악수를 하며 자기소개를 해 온다. 악수라니, 역시나 이세계의 주민들이구나 하며 엉뚱한 곳에서 감탄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20대 전반에서 후반 정도로 보인다. 그 모두가 쫙 빠진 차림을 하고, 자신과 긍지를 갑옷으로 삼아 몸에 두르고 있다. 잠시 관찰해 보면, 남자들도 각자가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사치코를 둘러싼 라이벌 사이라는 듯이. 스구루가 말한 게 사실이었다고 이해한다.
그들은 다들 유키에게 말을 걸어오면서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찰하는 것처럼 눈길을 움직인다. 노골적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키는 그들의 의사를 느꼈다. 수상스럽다는 눈, 의심의 눈길, 미심쩍은 사람이라도 보는 듯한 눈을 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된 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거였다. 사치코가 친한 듯 접해오기 때문이려나.
한차례 인사를 마치자, 남자들은 바로 유키에 대해선 잊어버린 것처럼 사치코에게 말을 건다.
그 이야기를 약간 귀에 담으며.
‘――아아, 유미의 기분도 알겠어.’
하고 유키는 절실히 느꼈다.
이번 여름, 사치코의 별장에 머무르는 중에 자그마한 일로 교류를 한 아가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외계인의 이야기라도 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기분. 자가용 크루저로 어쨌다거나, 자기 집에 오케스트라를 초대해서 음악회를 열었다는 등, 대체 어떤 높으신 분들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자신은 정말로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가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온다.
“――유키 군은 여름방학 같은 건 평소에 어떻게 보내냐?”
생각지도 못하게 이야기가 튀어왔다.
그들도 어른이다. 그렇게 계속 유키를 무시하는 철없는 일은 하지 않는 거겠지만, 여기까지 와서야 유키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부러 무시해줬으면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네요. 평소에는 야마나시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 갈 때가 많아요.”
허세를 떨어봐야 별 도리 없기에 솔직히 대답한다. 뭣보다 허세를 떨려고 해도 떨만한 재료가 어디에도 없지만.
“과연. 이야, 좋겠네. 한적한 시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에둘러 빈정대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니 반론은 하지 않는다. 야마나시가 모두 시골이라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곳은 야마나시 중에서도 시골인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원군이 나타났다.
“정말. 나도 함께 가 보고 싶어. 유키 군의 할머님의 집.”
“에…….”
사치코였다.
“유키 군의 할머님이라면, 틀림없이 멋진 분이겠지.”
말을 하면서 상냥한 표정으로 유키 쪽을 바라본다.
“아니,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할머니예요.”
“그래? 후후, 기회가 있으면 꼭 만나고 싶은걸.”
사치코의 모습을 보고 남자들의 태도가 바뀐다. 그때까지 자신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치코가 그런 표정을 보이는 일은 없었으니까.
“맞아, 사치코 양. 사실은 이번에 우리 집에…….”
화제를 바꾸려는 듯 옆에서 끼어들어 오는 안경쓴 청년.
그로부터 한동안 남자들이 이야기하면 사치코가 유키에게 이야기를 넘긴다고 하는 기묘한 대화가 이어진다.
‘에고고, 이래서야 사치코 씨도 지칠 수밖에.’
주위의 남성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틈도 보이지 않으며 대응하는 사치코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유키 자신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쉰다.
그래도.
때때로 이쪽을 향하는 사치코의 눈길을 보고, 힘을 내자고 생각했다.
오가사와라 집안의 파티에 참가해 사치코를 포함한 집단과 어울리게 되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30분에서 1시간 사이 정돌까. 가볍게 음식을 집어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하며 이야기는 아직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유키는 속으로 잘도 질리지 않고 계속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다른 남자는 사치코의 마음을 끌려고 필사적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곤란한데…….’
약간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권해서 입에 담은 술이 몸 안을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치코는 말리려고 했지만 ‘약간쯤은 이런 것도 괜찮잖아.’ 하는 남자의 말에 막혔다. 유키도 왠지 모르게 상대의 꿍꿍이를 알 수 있었지만, 거기서 간단하게 물러설 정도로 약한 성격은 아니어서 칵테일이 가득한 유리잔을 몇 잔인가 마셨다. 술이 좋은지 나쁜지 같은 건 모르지만, 그래도 입에 잘 맞고 굉장히 맛있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으―, ……뭐야 이거, 속 안좋아…….’
뭐가 잘못됐는지 술기운이 심하게 돈 모양이다. 지금까지 집에서 아버지가 권해와서 가볍게 술을 마신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는 약간 몸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상태가 나빠지거나 속이 안 좋아지거나 하진 않았다. 분위기를 타고 너무 마신 건가.
‘그래도, 여기서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하고 말을 꺼냈다간 정말로 뭘 하러 온 건지 모르겠고…….’
지금까지도 스구루가 말했던 것 같은 도움은 되지 못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참으려고 생각했지만.
“괜찮냐, 유키 군? 얼굴색이 나쁜 것 같은데.”
“정말이네. 잠시 어디서 쉬는 편이 괜찮지 않아?”
남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건지, 알면서 말하는 건지, 어느쪽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이 정도는…….”
하고 거절하려 했지만.
“정말, 유키 군, 얼굴이 새파래. 상태가 나쁜 거니? 무리하지 말고 쉬는게 좋아.”
사치코도 걱정스러운 듯 유키의 얼굴을 살펴온다.
“사치코 양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쉬는 편이 좋아. 거기에, 여기서 무리를 해봐야 그런 얼굴로 계속 있으면 사치코 양에게도 폐잖아.”
“……큭.”
정론인 만큼 돌려줄 말이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 버렸다간 스구루가 맡긴 역할을 마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있어봐야 걱정을 끼칠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눈앞에 있는 남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어딘가 방이라도 빌려서. 어이, 세바스찬―――.”
그렇게 남자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집사 한 명을 불렀을 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상쾌한 소리가 귀에 기분좋게 울린다.
모두가 일제히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다.
수많은 눈길을 받으면서,
“제가 유키 군을 옮길게요.”
사치코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산뜻하게 말했다.
“――에?”
소란이 피어난다.
남자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보고 있다.
“그, 그래도, 사치코 양 스스로가 그런…….”
“맞아요, 이런 건 사용인에게 맡겨 두면.”
어떻게든 단념시키려는 듯 반론하는 남자들에게, 언행은 부드럽지만 의연한 태도로 대답하는 사치코.
“유키 군은 스구루 씨의 대리로 와 준 소중한 손님인걸요. 그걸 사용인에게 맡기는 실례는 할 수 없어요. 여러분께는 굉장히 죄송하지만, 저는 이즈음에 자리를 비우겠어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든 사치코는 유키 쪽으로 고개를 향해 손을 내밀어 온다.
“자아, 유키 군. 이쪽으로.”
“에, 예.”
몸 상태가 나쁜 것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유키는 사치코에게 이끌려 오가사와라 저택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뒤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띄운 남자 여럿이 뜰에 남겨진 거였다.
오가사와라 저택의 손님용 방 침대 위에서 누워있는 유키.
야단스럽게도 오가사와라 집안의 전속 의사까지 등장해서 진찰받았지만, 그 결과는 당연히 ‘너무 마셔서 지나치게 취한 겁니다. 급성 알콜 중독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한동안 안정하면 곧 괜찮아 질 겁니다.’라는 이야기. 솔직히 유키는 꼴사납고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사치코는 그런 유키가 자는 침대의 바로 옆 의자에 앉아있다. 파티에 참가하고 있었을 때의 드레스 차림인 채로 의사가 진찰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옆에 붙어 있었던 거다.
“정말 죄송해요. 폐를 끼쳐서. 카시와기 선배의 부탁을 듣고 왔는데, 의미 없었네요, 저.”
천장을 올려다본다. 사치코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는데 사치코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와서 깜짝 놀란다. 사치코가 침대 위에 몸을 내밀어 유키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다.
파티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건지 새하얀 피부에 아련히 붉은빛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저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진저리치고 있어. 하지만 아버지의 소중한 벗이나 지인이니까 소홀히 대할 수도 없어서. 그래도 오늘은 유키 군이 있어 주어서 굉장히 마음이 편했어. 오늘도 조금 지쳤었는데, 이렇게 쉴 수도 있었고.”
약간 장난스러운 듯 웃는 얼굴은 어딘가 어린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신선했다.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자, 왠지 약간 마음이 기뻐진다.
“그럼 저도 약간은 도움이 된 걸까요.”
“물론이야. 오히려 나야말로 미안해. 저런 자리서 유키 군에게 불쾌한 추억을 남겨줘 버렸잖아?”
처음부터 그건 각오하고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유키는 속이 안 좋은 채로도 다부지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요. 들은 적 없는 이야기가 가득해서, 재밌어서 질리지 않았고요. 거기에.”
“거기에?”
“사치코 씨와 함께 있을 수 있었으니까 불쾌하게 될 리가 없잖아요.”
“――――에?!”
이건 물론 취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맨정신이었으면 불가능까진 아닐지 몰라도 여성에게 이런 말을 정면에서 말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한순간, 사치코의 표정이 굳었다.
평소보다 조금 크게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있는 유키를 흑진주 같은 눈에 비추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눈을 감고 있었던 유키에게 그때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에 가득했다.
“――차암, 유키 군, 취했니?”
한동안 지나 간신히 사치코는 입을 열었다.
꽉 시트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고, 흐르는 듯한 긴 머리카락을 좌우로 쓸어넘기며 사치코는 위를 보고 자고 있는 유키의 얼굴을 살펴본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머리카락 몇가닥이 유키의 뺨을 간질인다.
사치코는 상냥한 눈동자로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긋히, 쉬어줘.”
작으면서도 머릿속에 잘 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남기고, 사치코는 방을 떠났다.
그 뒤에는 감귤 같은 향기가 은은하게 남아, 잠의 세계에 떨어져 가는 유키의 콧속을 간질였다.
스구루에게서도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 뒀으니까 어느 정도의 마음 준비도 되어 있다. 거기에, 스구루가 맡긴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
누나인 유미가 아닌데도,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평소와는 다른 마음이 가슴 속에서 솟아올라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가씨는 걱정꾸러기?! 두 번째
나란히 걷고 있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제자리서 품평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좋은 집안 아드님들 집단의 앞에 선다. 아까는 힘이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역시나 사람 수에 압도당할 것만 같다. 거기에 더해 그 모두가 자신이 넘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 어찌 보면 어딘가 스구루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거다.
곁에 있는 사치코는 물론 주눅이 드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로, 여유로운 태도로 유키에게 손을 뻗는다.
“소개할게요. 스구루 씨의 후배이자 현 하나데라 학원 학생회장인 후쿠자와 유키 군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후쿠자와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인다. 무난하게, 적을 만들지 않도록, 그럼에도 최대한 평정을 꾸미며.
“헤에, 스구루 군의 귀여운 후배란 소린가. 잘 부탁해.”
“오늘은 스구루 군의 대리란 거냐?”
“나도 하나데라의 OB인데.”
남자들이 번갈아 말을 걸며 손을 내밀어 온다. 그리고 악수를 하며 자기소개를 해 온다. 악수라니, 역시나 이세계의 주민들이구나 하며 엉뚱한 곳에서 감탄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20대 전반에서 후반 정도로 보인다. 그 모두가 쫙 빠진 차림을 하고, 자신과 긍지를 갑옷으로 삼아 몸에 두르고 있다. 잠시 관찰해 보면, 남자들도 각자가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사치코를 둘러싼 라이벌 사이라는 듯이. 스구루가 말한 게 사실이었다고 이해한다.
그들은 다들 유키에게 말을 걸어오면서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찰하는 것처럼 눈길을 움직인다. 노골적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키는 그들의 의사를 느꼈다. 수상스럽다는 눈, 의심의 눈길, 미심쩍은 사람이라도 보는 듯한 눈을 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된 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거였다. 사치코가 친한 듯 접해오기 때문이려나.
한차례 인사를 마치자, 남자들은 바로 유키에 대해선 잊어버린 것처럼 사치코에게 말을 건다.
그 이야기를 약간 귀에 담으며.
‘――아아, 유미의 기분도 알겠어.’
하고 유키는 절실히 느꼈다.
이번 여름, 사치코의 별장에 머무르는 중에 자그마한 일로 교류를 한 아가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외계인의 이야기라도 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기분. 자가용 크루저로 어쨌다거나, 자기 집에 오케스트라를 초대해서 음악회를 열었다는 등, 대체 어떤 높으신 분들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자신은 정말로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가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온다.
“――유키 군은 여름방학 같은 건 평소에 어떻게 보내냐?”
생각지도 못하게 이야기가 튀어왔다.
그들도 어른이다. 그렇게 계속 유키를 무시하는 철없는 일은 하지 않는 거겠지만, 여기까지 와서야 유키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부러 무시해줬으면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네요. 평소에는 야마나시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 갈 때가 많아요.”
허세를 떨어봐야 별 도리 없기에 솔직히 대답한다. 뭣보다 허세를 떨려고 해도 떨만한 재료가 어디에도 없지만.
“과연. 이야, 좋겠네. 한적한 시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에둘러 빈정대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니 반론은 하지 않는다. 야마나시가 모두 시골이라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곳은 야마나시 중에서도 시골인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원군이 나타났다.
“정말. 나도 함께 가 보고 싶어. 유키 군의 할머님의 집.”
“에…….”
사치코였다.
“유키 군의 할머님이라면, 틀림없이 멋진 분이겠지.”
말을 하면서 상냥한 표정으로 유키 쪽을 바라본다.
“아니,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할머니예요.”
“그래? 후후, 기회가 있으면 꼭 만나고 싶은걸.”
사치코의 모습을 보고 남자들의 태도가 바뀐다. 그때까지 자신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치코가 그런 표정을 보이는 일은 없었으니까.
“맞아, 사치코 양. 사실은 이번에 우리 집에…….”
화제를 바꾸려는 듯 옆에서 끼어들어 오는 안경쓴 청년.
그로부터 한동안 남자들이 이야기하면 사치코가 유키에게 이야기를 넘긴다고 하는 기묘한 대화가 이어진다.
‘에고고, 이래서야 사치코 씨도 지칠 수밖에.’
주위의 남성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틈도 보이지 않으며 대응하는 사치코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유키 자신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쉰다.
그래도.
때때로 이쪽을 향하는 사치코의 눈길을 보고, 힘을 내자고 생각했다.
오가사와라 집안의 파티에 참가해 사치코를 포함한 집단과 어울리게 되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30분에서 1시간 사이 정돌까. 가볍게 음식을 집어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하며 이야기는 아직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유키는 속으로 잘도 질리지 않고 계속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다른 남자는 사치코의 마음을 끌려고 필사적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곤란한데…….’
약간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권해서 입에 담은 술이 몸 안을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치코는 말리려고 했지만 ‘약간쯤은 이런 것도 괜찮잖아.’ 하는 남자의 말에 막혔다. 유키도 왠지 모르게 상대의 꿍꿍이를 알 수 있었지만, 거기서 간단하게 물러설 정도로 약한 성격은 아니어서 칵테일이 가득한 유리잔을 몇 잔인가 마셨다. 술이 좋은지 나쁜지 같은 건 모르지만, 그래도 입에 잘 맞고 굉장히 맛있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으―, ……뭐야 이거, 속 안좋아…….’
뭐가 잘못됐는지 술기운이 심하게 돈 모양이다. 지금까지 집에서 아버지가 권해와서 가볍게 술을 마신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는 약간 몸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상태가 나빠지거나 속이 안 좋아지거나 하진 않았다. 분위기를 타고 너무 마신 건가.
‘그래도, 여기서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하고 말을 꺼냈다간 정말로 뭘 하러 온 건지 모르겠고…….’
지금까지도 스구루가 말했던 것 같은 도움은 되지 못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참으려고 생각했지만.
“괜찮냐, 유키 군? 얼굴색이 나쁜 것 같은데.”
“정말이네. 잠시 어디서 쉬는 편이 괜찮지 않아?”
남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건지, 알면서 말하는 건지, 어느쪽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이 정도는…….”
하고 거절하려 했지만.
“정말, 유키 군, 얼굴이 새파래. 상태가 나쁜 거니? 무리하지 말고 쉬는게 좋아.”
사치코도 걱정스러운 듯 유키의 얼굴을 살펴온다.
“사치코 양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쉬는 편이 좋아. 거기에, 여기서 무리를 해봐야 그런 얼굴로 계속 있으면 사치코 양에게도 폐잖아.”
“……큭.”
정론인 만큼 돌려줄 말이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 버렸다간 스구루가 맡긴 역할을 마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있어봐야 걱정을 끼칠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눈앞에 있는 남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어딘가 방이라도 빌려서. 어이, 세바스찬―――.”
그렇게 남자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집사 한 명을 불렀을 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상쾌한 소리가 귀에 기분좋게 울린다.
모두가 일제히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다.
수많은 눈길을 받으면서,
“제가 유키 군을 옮길게요.”
사치코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산뜻하게 말했다.
“――에?”
소란이 피어난다.
남자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보고 있다.
“그, 그래도, 사치코 양 스스로가 그런…….”
“맞아요, 이런 건 사용인에게 맡겨 두면.”
어떻게든 단념시키려는 듯 반론하는 남자들에게, 언행은 부드럽지만 의연한 태도로 대답하는 사치코.
“유키 군은 스구루 씨의 대리로 와 준 소중한 손님인걸요. 그걸 사용인에게 맡기는 실례는 할 수 없어요. 여러분께는 굉장히 죄송하지만, 저는 이즈음에 자리를 비우겠어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든 사치코는 유키 쪽으로 고개를 향해 손을 내밀어 온다.
“자아, 유키 군. 이쪽으로.”
“에, 예.”
몸 상태가 나쁜 것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유키는 사치코에게 이끌려 오가사와라 저택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뒤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띄운 남자 여럿이 뜰에 남겨진 거였다.
오가사와라 저택의 손님용 방 침대 위에서 누워있는 유키.
야단스럽게도 오가사와라 집안의 전속 의사까지 등장해서 진찰받았지만, 그 결과는 당연히 ‘너무 마셔서 지나치게 취한 겁니다. 급성 알콜 중독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한동안 안정하면 곧 괜찮아 질 겁니다.’라는 이야기. 솔직히 유키는 꼴사납고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사치코는 그런 유키가 자는 침대의 바로 옆 의자에 앉아있다. 파티에 참가하고 있었을 때의 드레스 차림인 채로 의사가 진찰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옆에 붙어 있었던 거다.
“정말 죄송해요. 폐를 끼쳐서. 카시와기 선배의 부탁을 듣고 왔는데, 의미 없었네요, 저.”
천장을 올려다본다. 사치코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는데 사치코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와서 깜짝 놀란다. 사치코가 침대 위에 몸을 내밀어 유키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다.
파티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건지 새하얀 피부에 아련히 붉은빛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저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진저리치고 있어. 하지만 아버지의 소중한 벗이나 지인이니까 소홀히 대할 수도 없어서. 그래도 오늘은 유키 군이 있어 주어서 굉장히 마음이 편했어. 오늘도 조금 지쳤었는데, 이렇게 쉴 수도 있었고.”
약간 장난스러운 듯 웃는 얼굴은 어딘가 어린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신선했다.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자, 왠지 약간 마음이 기뻐진다.
“그럼 저도 약간은 도움이 된 걸까요.”
“물론이야. 오히려 나야말로 미안해. 저런 자리서 유키 군에게 불쾌한 추억을 남겨줘 버렸잖아?”
처음부터 그건 각오하고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유키는 속이 안 좋은 채로도 다부지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요. 들은 적 없는 이야기가 가득해서, 재밌어서 질리지 않았고요. 거기에.”
“거기에?”
“사치코 씨와 함께 있을 수 있었으니까 불쾌하게 될 리가 없잖아요.”
“――――에?!”
이건 물론 취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맨정신이었으면 불가능까진 아닐지 몰라도 여성에게 이런 말을 정면에서 말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한순간, 사치코의 표정이 굳었다.
평소보다 조금 크게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있는 유키를 흑진주 같은 눈에 비추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눈을 감고 있었던 유키에게 그때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에 가득했다.
“――차암, 유키 군, 취했니?”
한동안 지나 간신히 사치코는 입을 열었다.
꽉 시트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고, 흐르는 듯한 긴 머리카락을 좌우로 쓸어넘기며 사치코는 위를 보고 자고 있는 유키의 얼굴을 살펴본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머리카락 몇가닥이 유키의 뺨을 간질인다.
사치코는 상냥한 눈동자로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긋히, 쉬어줘.”
작으면서도 머릿속에 잘 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남기고, 사치코는 방을 떠났다.
그 뒤에는 감귤 같은 향기가 은은하게 남아, 잠의 세계에 떨어져 가는 유키의 콧속을 간질였다.
세 번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