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실수였다. 설마 그런 모습을 들킬 줄이야.
“이야~, 요코가 설마 그럴 줄이야.”
세이가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 어깨에 허물없이 팔을 두르고 있지만, 그걸 떨쳐낼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요코도 사랑스러운 곳이 있었잖아. 좋은 걸 봐 버렸네.”
팔짱을 끼고 진기한 걸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에리코.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분명 지금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겠지. 아니, 얼굴만이 아니라 아마 온몸이 삶아진 듯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지 않을까.
“자, 그럼 어딘가서 느긋하게, 이야기를 깡그리 들어 볼까.”
친구 두 사람에게 끼이는 듯한 모습으로 끌려나간다.
그리고 나는 수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그 발단의 날부터 오늘이 될 때까지의 나날을 머릿속으로 재생하였다.
“미즈노 양, 미안한데 민법 공책 빌려주지 않을래?”
학우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여름답게 날이 더워져 온 7월의 초입. 전기 시험을 맞이하려 할 무렵이었다.
나, 미즈노 요코는 모 대학 법학부에 다니는 1학년. 대학에 들어오고 첫 시험을 맞이하기 전에 그런 걸 부탁받았다. 뒤를 돌아보자 같은 반이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학우의 모습이 보였다.
“민법? 어째서?”
“어째서냐니……그건 곧 시험이니까.”
“그래도, 민법은 필수였던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상대가 당황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솔직히 믿지 못하겠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대학생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다들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스스로 학교와 학부를 결정해서 들어온게 아닌가. 그런데도 1학년 첫 시험에서 갑자기 그런 상태가 되다니.
릴리안에 다니고 있을 무렵에는 이런 일은 없었다. 그거야, 몸 상태가 나빠져서 결석했다거나 할 때 공책을 빌려주거나 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거랑 이건 전혀 다른 상황이다.
대학에 놀기 위해 들어오는 것도, 대학에 들어와서 노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다면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지.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 주지 않을래?”
“……알았어.”
그녀는 확실히 언짢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물러갔다. 그 사이 뭔가 불만을 내뱉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어째서 저렇게 까다로운 걸까.” 같은 소리를 한 거겠지.
어쩔 수 없다. 이런 성격이니까.
“미즈노 양, 대단하네. 나는 싫다고 생각해도 저런 걸 거절하기 힘들어서.”
옆에 있었던 히노 양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다. 히노(氷野) 세리카 양. 농담 같지만, 처음에 ‘미즈노(水野)’와 ‘히노(氷野)’여서 서로 자리를 착각하고 상대의 자리에 앉았던 걸 계기로 친해졌다.
히노 양은 머리카락을 갈색 소바쥬에, 언제나 약간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는 화려한 느낌의 여성이다. 성격은 제법 호쾌. 하지만 화려한 외견임에도 수업은 언제나 진심으로 받고 있어서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미즈노 양, 카와세 군에게 고백받았다는 거 정말이니?”
“에? 아아, 응.”
“그래서, 또 거절한 거구나.”
“응.”
“하아, 미즈노 양은 눈이 높은 거야?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입학하고 이걸로 몇 명 째니?”
“세고 있진 않은데…….”
아마 6명 째다.
딱히 눈이 높다거나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고백해 온 남자애들이 아무래도 맞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딱히 남자와 사귀고 싶다는 기분도 없었으니까.
이런저런 일로, 아무래도 나는 일부에서 ‘얼음 여왕’이라고 불리고 있어, 누가 처음으로 나를 함락시킬 수 있을지를 가지고 내기거리로 삼고 있다던가 없다던가. 그런 상태에서 고백을 받아봐야, 설령 진심으로 하는 거라고 해도 무심코 망설여 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공부에만 전념한다는 느낌이네.”
“그럴 셈은 아닌데…….”
남자와 사귀고 있는 자신을 떠올릴 수 없는 것도 확실하다. 초등학교 때는 공학이었지만, 그런 건 정말로 어릴 무렵이라 사랑의 ‘ㅅ’자도 몰랐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릴리안이라는 아가씨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럼, 여름방학은 어떡할 예정이니?”
“아르바이트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고등학교 때는 금지였고.”
“흐응ー. 미즈노 양이라면 가정교사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네. 가르치는 것도 능숙하고, 시급도 좋고.”
“아니. 할 수 있다면 접객업 같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게 주목적이니까.”
“우왓, 뭔가 이유도 굉장해.”
“그래? 그래도 어디가 좋은지는 잘 몰라서.”
“아, 그러면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아르바이트 모집하고 있어. 접객업이고, 딱 맞잖아.”
“에에, 히노 양이 일하고 있는 곳이?”
“평범한 레스토랑이야. 24시간 영업하는 패밀리 레스토랑만큼 싸지는 않으니까, 태도가 나쁜 손님도 안 오고, 제복도 귀여워. 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미즈노 양이 입으면 정말 귀여울 거야! 우와, 보고 싶네. 저기, 괜찮지? 그렇게 하자.”
어머머. 히노 양은 이런 사람이었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온몸을 핥듯이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뒤에 반쯤 억지로 히노 양과 같은 가게에서 일하게 되어 버렸다. 덧붙여서, 면접은 간단히 통과했다.
“우와앗, 귀여워, 귀여워 미즈노 양!!”
눈앞에서 히노 양이 손뼉을 칠 듯이 기뻐하고 있다.
한편 내 쪽은, 이 모습으로 사람 앞에 나갈 걸 생각하면 조금 망설여버린다. 확실히 제복은 귀엽지만.
점퍼스커트 위쪽은 검은 기조로 티롤리언 테이프로 장식하고, 붉고 주름이 가득한 무릎 위로 올라오는 플레어스커트. 점퍼스커트의 위에서는 살롱 에이프런을 달고 있다. 하얀 브라우스의 가슴팍에는 역시나 검고 심플한 리본.
발밑에는 검은 하이삭스에, 검은 러퍼.
머리에는 삼각건. 이건 여러 색상 중 마음대로 고를 수 있지만, 일단 나는 스커트와 맞춰서 빨강으로 했다. 거기에 역시, 빨간색에는 아무래도 특별한 추억이 있으니까.
덧붙여서, 히노 양도 당연히 같은 제복을 입고 있을 텐데 어딘가 물장사하는 사람처럼 보여 버리는 건 가슴 속으로만 간직해 두도록 하자.
전기시험도 끝나 여름방학에 들어가, 내 첫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럼, 미즈노 양을 지도해 줄 선배를 소개할게.”
“에? 히노 양이 아니야?”
“아하하, 미안. 나도 아직 그리 경험이 길지 않으니까. 여하튼 1달쯤 전에 시작한 참이고.”
뭐야. 그럼 나한테 일을 소개했을 때는 정말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나.
일단, 히노 양에게 끌려간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치고는 굉장히 잘난 듯하다. 보통 이런 건 점장이라거나 치프같이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일 것 같은데.
“실례합니다ー. 이 사람이 오늘부터 들어오게 된 신입이에요.”
쓸데없는 걸 생각하고 있는 동안, 지도해 줄 선배라는 녀석이 있는 곳까지 도착해 버린 모양이다. 나는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미즈노 요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자
놀랍게도, 눈앞에는 아무리 봐도 나보다 연하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귀여운 남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애는 약간 수줍어하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 부, 부디. 후쿠자와 유키입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게 첫 만남이었다.
첫날의 일은 일단 무난하게 끝났다. 첫 일이었으니 물론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손님이 주문한 메뉴를 기억하거나 하는 건 그리 문제없었지만, 상대는 인간.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적 없는 듯한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상대로 접객하는 걸로 정신적으로 제법 피로가 쌓였다.
시간은 오후 3시. 앞쪽 근무자들은 아침부터 근무하기에, 끝나는 시간이 빠르다.
“수고하셨습니다, 미즈노 씨.”
“아, 수고하셨습니다.”
가게 안에서 말을 걸어준 건 내 지도계인 후쿠자와 유키 씨. 보통, 여자 신입에는 여자 선배가 붙을 것 같지만, 인력 문제 등으로 우연히 내 지도계가 되어 버렸다는 거다. 그리고 선배라고 해도 나보다 연하인 고등학교 2학년. 이 가게에는 올 봄방학부터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모양이다.
“저기……미즈노 씨는 그”
“예?”
그 후쿠자와 군이 나에게 뭔가 말하기 힘든 듯 입을 어물거리고 있다. 뭘까. 오늘 뭔가 실수라도 했던 걸까. 혹시나 실수를 했는데 내 쪽이 연상이니까, 말하기 힘들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저기, 내 쪽이 연상일지도 모르지만, 이쪽에서는 신입이니까요.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게 있었다면 뭐라도 이야기해 주세요.”
“아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미즈노 씨는, 에에, 홍장미님……이지요?”
“엣, 어째서 그런걸.”
깜짝 놀랐다. 설마 이런 곳에서 그런 이름이 나올지는 예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저, 하나데라 학원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미즈노 씨는 작년 하나데라 학원 축제 때 게스트로써 와 주셨잖아요.”
“아아…….”
그런가, 하나데라 학생이었나.
어라, 잠깐만 기다려봐.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내가 일방적으로 보인 게 아니라, 나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곤란해. 상대가 이쪽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쪽이 상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굉장히 실례다. 이래 봬도 사람을 기억하는 건 특기기에 조금 초조하다.
그러자 그런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깨달은 건지
“아니,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작년 이 무렵에는 없었으니까요. 기억하지 못하셔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도움을 받아 버렸다.
“그래도 ‘홍장미님’이라니, 왠지 그리운 느낌이네.”
“그래서, 실은 제 누나가 지금 ‘홍장미 봉오리’예요.”
지금의 홍장미님이라고 하면 당연히 사치코. 그렇다는 건 홍장미 봉오리는, 말할 것도 없이 유미 쨩. 그렇다는 소리는.
“앗, 후쿠자와라는 건 그럼?”
“예. 후쿠자와 유미는 친누나예요.”
“우와, 이만한 우연도 있구나.”
릴리안은 졸업했지만, 귀중한 시간을 보내온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곳. 아직 멀어지고서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으로,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래설까, 무의식중에 이런 소리를 꺼내고 있었다.
“저기, 괜찮다면 이 뒤에 잠깐 이야기라도 해 보지 않을래? 유미 쨩의 일이라거나, 이것저것 들어 보고 싶어.”
다음 날.
어제에 이어 아르바이트다. 탈의실에 들어가 제복을 갈아입고 있자, 히노 양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눈빛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미ー즈ー노ー양. 너, 의외로 할 때는 하잖아!”
“으응?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지 마. 유키 군 이야기야. 어제 너희들, 함께 돌아갔잖아.”
“엣…….”
“나, 미즈노 양과 함께 돌아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즈노 양은 유키 군과 사이좋은 듯 떠들면서 가 버려서. 쓸쓸했어ー”
“그건…….”
“미즈노 양, 연하 취향? 유키 군은 귀여우니까ー, 이해해 이해해. 실은 아르바이트하는 애들 사이에서도 유키 군은 제법 인기 있어. 그래도 지금까지 아무도 함락할 수 없었는데, 첫날에 함락시키다니, 역시나 미즈노 양이야ー”
“자, 잠깐 기다려.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당황해서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뭐야, 그런 거였나. 재미없네.”
“기대에 응하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삼각건을 쓰면서 미소 짓는다. 하지만 히노 양은 특별히 유감스런 모습도 보이지 않고, 히죽거리고 있다.
“뭐어, 이제부터 뒷날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런 재밌는 일 같은 건, 안 일어난다니까.”
드라마랑은 다른 거다. 잽싸게 옷 갈아입기를 마치고, 탈의실을 나선다. 히노 양도 급히 내 뒤를 쫓아온다. 홀을 향하는 중에 유키 씨랑 우연히 마주쳤다. 그도 오늘은 점심 담당이었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하고 뻔한 인사를 한 뒤, 오늘의 일로 향하려 하자.
“저기 저기 유키 군. 미즈노 양의 제복 모습,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내 어깨를 움켜쥐면서 히노 양이 그런 걸 유키 씨에게 물어왔다.
“잠깐, 히노 양.”
“괜잖잖아. 저기, 어때? 나, 절대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꼬셨는데, 역시나 정답이었다고 생각해. 저기, 저기, 감상 부탁해.”
눈앞의 유키 씨는 약간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귀엽고.”
아.
“봐, 유키 군도 그렇게 말하잖아.”
“차암,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간 유키 씨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 어머. 어머머. 미즈노 양, 약간 수줍어하고 있어? 약간 빨개졌는데?”
“안 빨개졌어. 자, 빨리 일하러 가지 않으면 혼날 거야?”
“예ー. 그럼, 난 저쪽으로 갈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히노 양은 자신의 담당 구역으로 물러갔다. 내 친구 중에는 어째서 이렇게, 내가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사람이 많은 걸까.
“미안해.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자, 오늘도 일 잘 부탁할게.”
“예. 아, 저, 아까 전은 죄송합니다. 제 쪽이 연하인데.”
“응?”
“아니, 그러니까 제복 일이라거나.”
아, 귀엽다고 말한 건가. 그걸 다시금 꺼내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모처럼 확 흘려버렸는데 다시 떠올라 버렸잖아.
그보다 나는, 뭘 이상하게 의식하고 있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걸 표정에 나오지 않도록 하면서, 가볍게 웃는다.
“딱히 그런 걸 신경쓸 필요는 없는데. 나, 칭찬받은 거고.”
귀여운 연하의 남자애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사소한 일로 왠지 나는 약간 두근거리고 있었다.
제 2화에 계속
“이야~, 요코가 설마 그럴 줄이야.”
세이가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 어깨에 허물없이 팔을 두르고 있지만, 그걸 떨쳐낼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요코도 사랑스러운 곳이 있었잖아. 좋은 걸 봐 버렸네.”
팔짱을 끼고 진기한 걸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에리코.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분명 지금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겠지. 아니, 얼굴만이 아니라 아마 온몸이 삶아진 듯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지 않을까.
“자, 그럼 어딘가서 느긋하게, 이야기를 깡그리 들어 볼까.”
친구 두 사람에게 끼이는 듯한 모습으로 끌려나간다.
그리고 나는 수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그 발단의 날부터 오늘이 될 때까지의 나날을 머릿속으로 재생하였다.
마음이 미스테리 제 1화
“미즈노 양, 미안한데 민법 공책 빌려주지 않을래?”
학우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여름답게 날이 더워져 온 7월의 초입. 전기 시험을 맞이하려 할 무렵이었다.
나, 미즈노 요코는 모 대학 법학부에 다니는 1학년. 대학에 들어오고 첫 시험을 맞이하기 전에 그런 걸 부탁받았다. 뒤를 돌아보자 같은 반이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학우의 모습이 보였다.
“민법? 어째서?”
“어째서냐니……그건 곧 시험이니까.”
“그래도, 민법은 필수였던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상대가 당황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솔직히 믿지 못하겠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대학생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다들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스스로 학교와 학부를 결정해서 들어온게 아닌가. 그런데도 1학년 첫 시험에서 갑자기 그런 상태가 되다니.
릴리안에 다니고 있을 무렵에는 이런 일은 없었다. 그거야, 몸 상태가 나빠져서 결석했다거나 할 때 공책을 빌려주거나 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거랑 이건 전혀 다른 상황이다.
대학에 놀기 위해 들어오는 것도, 대학에 들어와서 노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다면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지.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 주지 않을래?”
“……알았어.”
그녀는 확실히 언짢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물러갔다. 그 사이 뭔가 불만을 내뱉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어째서 저렇게 까다로운 걸까.” 같은 소리를 한 거겠지.
어쩔 수 없다. 이런 성격이니까.
“미즈노 양, 대단하네. 나는 싫다고 생각해도 저런 걸 거절하기 힘들어서.”
옆에 있었던 히노 양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다. 히노(氷野) 세리카 양. 농담 같지만, 처음에 ‘미즈노(水野)’와 ‘히노(氷野)’여서 서로 자리를 착각하고 상대의 자리에 앉았던 걸 계기로 친해졌다.
히노 양은 머리카락을 갈색 소바쥬에, 언제나 약간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는 화려한 느낌의 여성이다. 성격은 제법 호쾌. 하지만 화려한 외견임에도 수업은 언제나 진심으로 받고 있어서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미즈노 양, 카와세 군에게 고백받았다는 거 정말이니?”
“에? 아아, 응.”
“그래서, 또 거절한 거구나.”
“응.”
“하아, 미즈노 양은 눈이 높은 거야?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입학하고 이걸로 몇 명 째니?”
“세고 있진 않은데…….”
아마 6명 째다.
딱히 눈이 높다거나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고백해 온 남자애들이 아무래도 맞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딱히 남자와 사귀고 싶다는 기분도 없었으니까.
이런저런 일로, 아무래도 나는 일부에서 ‘얼음 여왕’이라고 불리고 있어, 누가 처음으로 나를 함락시킬 수 있을지를 가지고 내기거리로 삼고 있다던가 없다던가. 그런 상태에서 고백을 받아봐야, 설령 진심으로 하는 거라고 해도 무심코 망설여 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공부에만 전념한다는 느낌이네.”
“그럴 셈은 아닌데…….”
남자와 사귀고 있는 자신을 떠올릴 수 없는 것도 확실하다. 초등학교 때는 공학이었지만, 그런 건 정말로 어릴 무렵이라 사랑의 ‘ㅅ’자도 몰랐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릴리안이라는 아가씨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럼, 여름방학은 어떡할 예정이니?”
“아르바이트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고등학교 때는 금지였고.”
“흐응ー. 미즈노 양이라면 가정교사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네. 가르치는 것도 능숙하고, 시급도 좋고.”
“아니. 할 수 있다면 접객업 같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게 주목적이니까.”
“우왓, 뭔가 이유도 굉장해.”
“그래? 그래도 어디가 좋은지는 잘 몰라서.”
“아, 그러면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아르바이트 모집하고 있어. 접객업이고, 딱 맞잖아.”
“에에, 히노 양이 일하고 있는 곳이?”
“평범한 레스토랑이야. 24시간 영업하는 패밀리 레스토랑만큼 싸지는 않으니까, 태도가 나쁜 손님도 안 오고, 제복도 귀여워. 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미즈노 양이 입으면 정말 귀여울 거야! 우와, 보고 싶네. 저기, 괜찮지? 그렇게 하자.”
어머머. 히노 양은 이런 사람이었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온몸을 핥듯이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뒤에 반쯤 억지로 히노 양과 같은 가게에서 일하게 되어 버렸다. 덧붙여서, 면접은 간단히 통과했다.
“우와앗, 귀여워, 귀여워 미즈노 양!!”
눈앞에서 히노 양이 손뼉을 칠 듯이 기뻐하고 있다.
한편 내 쪽은, 이 모습으로 사람 앞에 나갈 걸 생각하면 조금 망설여버린다. 확실히 제복은 귀엽지만.
점퍼스커트 위쪽은 검은 기조로 티롤리언 테이프로 장식하고, 붉고 주름이 가득한 무릎 위로 올라오는 플레어스커트. 점퍼스커트의 위에서는 살롱 에이프런을 달고 있다. 하얀 브라우스의 가슴팍에는 역시나 검고 심플한 리본.
발밑에는 검은 하이삭스에, 검은 러퍼.
머리에는 삼각건. 이건 여러 색상 중 마음대로 고를 수 있지만, 일단 나는 스커트와 맞춰서 빨강으로 했다. 거기에 역시, 빨간색에는 아무래도 특별한 추억이 있으니까.
덧붙여서, 히노 양도 당연히 같은 제복을 입고 있을 텐데 어딘가 물장사하는 사람처럼 보여 버리는 건 가슴 속으로만 간직해 두도록 하자.
전기시험도 끝나 여름방학에 들어가, 내 첫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럼, 미즈노 양을 지도해 줄 선배를 소개할게.”
“에? 히노 양이 아니야?”
“아하하, 미안. 나도 아직 그리 경험이 길지 않으니까. 여하튼 1달쯤 전에 시작한 참이고.”
뭐야. 그럼 나한테 일을 소개했을 때는 정말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나.
일단, 히노 양에게 끌려간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치고는 굉장히 잘난 듯하다. 보통 이런 건 점장이라거나 치프같이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일 것 같은데.
“실례합니다ー. 이 사람이 오늘부터 들어오게 된 신입이에요.”
쓸데없는 걸 생각하고 있는 동안, 지도해 줄 선배라는 녀석이 있는 곳까지 도착해 버린 모양이다. 나는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미즈노 요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자
놀랍게도, 눈앞에는 아무리 봐도 나보다 연하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귀여운 남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애는 약간 수줍어하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 부, 부디. 후쿠자와 유키입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게 첫 만남이었다.
첫날의 일은 일단 무난하게 끝났다. 첫 일이었으니 물론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손님이 주문한 메뉴를 기억하거나 하는 건 그리 문제없었지만, 상대는 인간.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적 없는 듯한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상대로 접객하는 걸로 정신적으로 제법 피로가 쌓였다.
시간은 오후 3시. 앞쪽 근무자들은 아침부터 근무하기에, 끝나는 시간이 빠르다.
“수고하셨습니다, 미즈노 씨.”
“아, 수고하셨습니다.”
가게 안에서 말을 걸어준 건 내 지도계인 후쿠자와 유키 씨. 보통, 여자 신입에는 여자 선배가 붙을 것 같지만, 인력 문제 등으로 우연히 내 지도계가 되어 버렸다는 거다. 그리고 선배라고 해도 나보다 연하인 고등학교 2학년. 이 가게에는 올 봄방학부터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모양이다.
“저기……미즈노 씨는 그”
“예?”
그 후쿠자와 군이 나에게 뭔가 말하기 힘든 듯 입을 어물거리고 있다. 뭘까. 오늘 뭔가 실수라도 했던 걸까. 혹시나 실수를 했는데 내 쪽이 연상이니까, 말하기 힘들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저기, 내 쪽이 연상일지도 모르지만, 이쪽에서는 신입이니까요.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게 있었다면 뭐라도 이야기해 주세요.”
“아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미즈노 씨는, 에에, 홍장미님……이지요?”
“엣, 어째서 그런걸.”
깜짝 놀랐다. 설마 이런 곳에서 그런 이름이 나올지는 예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저, 하나데라 학원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미즈노 씨는 작년 하나데라 학원 축제 때 게스트로써 와 주셨잖아요.”
“아아…….”
그런가, 하나데라 학생이었나.
어라, 잠깐만 기다려봐.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내가 일방적으로 보인 게 아니라, 나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곤란해. 상대가 이쪽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쪽이 상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굉장히 실례다. 이래 봬도 사람을 기억하는 건 특기기에 조금 초조하다.
그러자 그런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깨달은 건지
“아니,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작년 이 무렵에는 없었으니까요. 기억하지 못하셔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도움을 받아 버렸다.
“그래도 ‘홍장미님’이라니, 왠지 그리운 느낌이네.”
“그래서, 실은 제 누나가 지금 ‘홍장미 봉오리’예요.”
지금의 홍장미님이라고 하면 당연히 사치코. 그렇다는 건 홍장미 봉오리는, 말할 것도 없이 유미 쨩. 그렇다는 소리는.
“앗, 후쿠자와라는 건 그럼?”
“예. 후쿠자와 유미는 친누나예요.”
“우와, 이만한 우연도 있구나.”
릴리안은 졸업했지만, 귀중한 시간을 보내온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곳. 아직 멀어지고서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으로,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래설까, 무의식중에 이런 소리를 꺼내고 있었다.
“저기, 괜찮다면 이 뒤에 잠깐 이야기라도 해 보지 않을래? 유미 쨩의 일이라거나, 이것저것 들어 보고 싶어.”
다음 날.
어제에 이어 아르바이트다. 탈의실에 들어가 제복을 갈아입고 있자, 히노 양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눈빛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미ー즈ー노ー양. 너, 의외로 할 때는 하잖아!”
“으응?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지 마. 유키 군 이야기야. 어제 너희들, 함께 돌아갔잖아.”
“엣…….”
“나, 미즈노 양과 함께 돌아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즈노 양은 유키 군과 사이좋은 듯 떠들면서 가 버려서. 쓸쓸했어ー”
“그건…….”
“미즈노 양, 연하 취향? 유키 군은 귀여우니까ー, 이해해 이해해. 실은 아르바이트하는 애들 사이에서도 유키 군은 제법 인기 있어. 그래도 지금까지 아무도 함락할 수 없었는데, 첫날에 함락시키다니, 역시나 미즈노 양이야ー”
“자, 잠깐 기다려.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당황해서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뭐야, 그런 거였나. 재미없네.”
“기대에 응하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삼각건을 쓰면서 미소 짓는다. 하지만 히노 양은 특별히 유감스런 모습도 보이지 않고, 히죽거리고 있다.
“뭐어, 이제부터 뒷날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런 재밌는 일 같은 건, 안 일어난다니까.”
드라마랑은 다른 거다. 잽싸게 옷 갈아입기를 마치고, 탈의실을 나선다. 히노 양도 급히 내 뒤를 쫓아온다. 홀을 향하는 중에 유키 씨랑 우연히 마주쳤다. 그도 오늘은 점심 담당이었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하고 뻔한 인사를 한 뒤, 오늘의 일로 향하려 하자.
“저기 저기 유키 군. 미즈노 양의 제복 모습,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내 어깨를 움켜쥐면서 히노 양이 그런 걸 유키 씨에게 물어왔다.
“잠깐, 히노 양.”
“괜잖잖아. 저기, 어때? 나, 절대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꼬셨는데, 역시나 정답이었다고 생각해. 저기, 저기, 감상 부탁해.”
눈앞의 유키 씨는 약간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귀엽고.”
아.
“봐, 유키 군도 그렇게 말하잖아.”
“차암,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간 유키 씨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 어머. 어머머. 미즈노 양, 약간 수줍어하고 있어? 약간 빨개졌는데?”
“안 빨개졌어. 자, 빨리 일하러 가지 않으면 혼날 거야?”
“예ー. 그럼, 난 저쪽으로 갈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히노 양은 자신의 담당 구역으로 물러갔다. 내 친구 중에는 어째서 이렇게, 내가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사람이 많은 걸까.
“미안해.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자, 오늘도 일 잘 부탁할게.”
“예. 아, 저, 아까 전은 죄송합니다. 제 쪽이 연하인데.”
“응?”
“아니, 그러니까 제복 일이라거나.”
아, 귀엽다고 말한 건가. 그걸 다시금 꺼내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모처럼 확 흘려버렸는데 다시 떠올라 버렸잖아.
그보다 나는, 뭘 이상하게 의식하고 있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걸 표정에 나오지 않도록 하면서, 가볍게 웃는다.
“딱히 그런 걸 신경쓸 필요는 없는데. 나, 칭찬받은 거고.”
귀여운 연하의 남자애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사소한 일로 왠지 나는 약간 두근거리고 있었다.
제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