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미스테리 제 3화
그 회식 날에서 사흘 뒤. 나는 탈의실에서 제복으로 갈아입으며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사흘 동안 대체 몇 번이나 떠올리고 있는 걸까.
고백받는 데는 익숙하다, 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4달 사이에 6번 고백받았다. 그리고 그 어느 때도 이렇게나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유키 군이 외치는 소리가 가슴 속에 울린다.
분명 그건 취한 탓. 그래서 그런 소리를 한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반면, 취하고 있기에 더더욱 숨기고 있던 본심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하거나 하는 자신이 있어서. 그리고 그 어느 쪽이었으면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제복을 몸에 걸치고 정면의 전신 거울로 체크한다.
‘제복차림이, 엄청나게, 귀여워서.’
그런 말이 되풀이된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삼각건의 각도를 고친다. 리본은 구부러지지 않았을까. 스커트 옷자락을 들고 가볍게 들여 올려보거나 하고.
그런 걸 하는 자신을 거울로 보면서 혼자서 얼굴을 붉히거나 한다.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 뒤에는 일이다. 일단 쓸데없는 걸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가볍게 뺨을 두드려서 기합을 새로 넣는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좋아, 괜찮아, 평소랑 똑같아.
“하아이, 요코 쨔―앙.”
“힉, 히노 양?!”
“저기, 저기, 어땠어? 유키 군이 한 충격의 고백을 받고, 그 뒤에.”
“어, 어땠냐니, 어떻지도 않았어.”
“그래? 그런 것치고는 거울 앞에서 제복차림을 공들여 체크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보였었다.
“앞으로 일이니까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도 당연하잖아.”
“흐응―.”
의심스런 눈길을 던지는 히노 양에게 등을 돌리고, 나는 마음을 바꿔 넣고 담당 구역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나가자
“아, 미즈노 씨. 안녕하세요.”
돌연 유키 씨를 만났다.
그리고 갑자기 그 밤에 유키 씨가 한 말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되살아나, 머리에 피가 오른다. 몸이 뜨거워진다.
“아, 아, 안녕하, 세욧.”
우와, 씹었다. 안돼, 나. 제대로 냉정을 되찾아야.
하지만 유키 씨와는 그 회식 날 이래 처음 보는 게 된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래도 의식하게 되어 버리는 거다.
게다가 내가 그런 상태인데 유키 씨는 평소와 전혀 변함없는 모습으로 담담히 일을 해나가고 있다.
“………….”
유키 씨니까 금방 표정이나 태도에 드러날 거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좀 의외였다. 그렇다고 할까, 내가 자의식 과잉인 걸까.
아니, 그런 걸 했으니, 유키 씨라면 우선 틀림없이 내 앞에서 냉정한척 할 수 있을 리 없는데. 혹시나 취하고 있어서 기억이 없다거나? 아니면 정말로 취해서 단순히 헛소리한 거든가.
나는 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것만 애타게 생각하고 있었던 탓인지, 일에 거의 집중하지 못한 채로 그날의 근무시간도 끝에 가까워졌다.
솔직히 약간 머리에 열이 올랐다. 어째서 나만 이런 마음으로 보내야 하는 걸까. 원래 대로라면 유키 씨가 발단인데. 이대로 계속 가면 내일 이후에도 지장이 나오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거기서 나는 뭔가를 떠올렸다. 오늘 돌아갈 때라도, 이 뒤에 식사라도 같이 하면 어떨지 이야기해 보자. 혹시나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면 꼬셨을 때, 혹은 식사 장소에서라도 뭔가를 잡을 수 있겠지. 괜찮아, 제대로 생각하고 진정하고 있으면 내가 허둥지둥할 일은 없다. 유키 씨 쪽이 훨씬 더 알아보기 쉬운 성격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약간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남은 업무 시간을 약간 여유를 가지고 지낼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일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유키 군이 나오는 걸 기다렸다.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일터에서 함께 나오는 것 같은 건 못 하겠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어떡하면 유키 군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같은 걸 생각하니 자연스레 웃음이 떠올라 오거나 해서. 그래, 역시나 그만한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자, 슬슬 이야기를 꺼낼까 하고 타이밍을 재고 있자.
“저기, 미즈노 씨.”
“아, 예? 무슨 일인가요?”
“저, 저기. 괘, 괜찮으시다면 다음 쉬는 날에 영화라도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아버지 일 관련으로 초대권을 받아서, 저기, 그, 두, 둘이서.”
“………….”
“아, 물론 취향에 맞을까라거나, 있을거라곤 생각하지만, 저기.”
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잠깐 기다려. 영화라도 같이 보러 가지 않겠느냐니, 이건, 혹시나 데이트 신청?!
에에, 어찌 된 거지. 갑자기 이런 소리를 들어도.
“……저기, 미즈노 씨? 듣고 있나요?”
“에, 응. 듣고 있어.”
“그래서, 그……괜찮다면, 어떠신가요?”
“고마워, 그럼 모처럼이니까 신청을 따라 볼까?”
“저, 정말인가요?!”
“응, 그럼 즐겁게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다음에 봐.”
“아, 에, 옛. 수고하셨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유키 군을 뒤로하고 나는 귀갓길에 올랐다.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로 별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골목을 돌아 유키 군 쪽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게 확실해졌을 즈음에
“……에, 엣, 차암, 어쩌지?!”
나는 얼굴을 누르며 말 그대로 허둥지둥거렸다.
정말로 예상외였다. 원래는 이쪽에서 초대해서 유키 군이 당황하는 모습을 볼 생각이었는데, 설마 상대쪽에 초대받게 되다니, 게다가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식 ‘데이트’ 신청.
“어어어어어, 어쩌지?!”
동요한 나는 마치 유미 쨩처럼 발성연습을 해 버리고 말았다.
미즈노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유키는 승리 포즈를 취하고선 힘이 빠져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럴 정도로 가진 용기를 죄다 짜낸 거였다. 여자애한테 데이트 신청을 한다니, 여하튼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니까. 내가 한 건데도 잔뜩 긴장한데다 말을 더듬으며 한 초대는 한심했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걸 칭찬해 줬으면 할 정도다.
어쨌든 상대는 연상에다 매우 아름다운 여성.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자신이 데이트를 신청한 직후 미즈노 씨의 표정은 ‘이 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같은 느낌으로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애초에, 얼굴색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랬던 만큼 승낙을 받았을 때는 호들갑스러울진 몰라도 하늘에라도 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덧붙여서 영화의 초대권을 받았다는 건 물론 거짓말이고, 스스로 사서 준비해 둔 거다. 그 외에도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첫 데이트에는 영화가 제일 무난하다고 데이트 정보지에도 쓰여 있었고. 다행히 여름방학이니까 여름방학 영화가 갖가지 개봉되었고.
여하튼 간에 신청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걸로 들떠있을 순 없다. 영화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그 뒤에 어떻게 할지 제대로 생각해 두지 않으면. 여하튼, 상대는 연상에다 어른스런 미즈노 씨. 어떻게 하면 미즈노 씨가 질리지 않고 계속 즐기게 할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하면 그날이 즐거움과 함께 무서워져 온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일터를 나서려 했을 때, 아직 근무 시간 중인 유키 군과 문득 눈이 마주쳤다. 내가 가볍게 눈만으로 인사를 하자, 유키 군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역시 눈길만으로 인사를 돌려줬다.
모레가 데이트 날로, 그 전에 일터에서 보게 되는 건 오늘이 마지막. 그래서 서로 약간 의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은 시프트가 어긋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잽싸게 그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누가 말을 걸어왔다.
“수―상―한―데―.”
“꺅? 히, 히노 양, 뭐, 뭐가?”
정신이 들자 히노 씨가 눈을 묘하게 좁히며 나를 평가라도 하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유키 군과 둘이서 눈으로 이야기 했었지?”
“무슨 소리야? 기분 탓 아닐까?”
“아―냐, 이번은 틀림없어. 눈과 눈으로 통하고 있었어.”
“차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히노 양, 아직 일 중이잖아? 열심히 해, 그럼 다음에 봐.”
제복차림의 히노 양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허둥지둥 일터를 떠났다. 그래, 오늘은 너무 우물쭈물할 참은 없다. 이것저것 돌아가면서 사고 싶은 게 있으니까.
다음 날.
결전의 날(?)인 내일을 맞아 나는 여러 가지 작전을 가다듬고 있었다. 내 쪽이 연상이라고는 해도, 상대는 남자니 역시나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는 쪽이 괜찮을까. 리드는 유키 군에게 맡기면서 때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충해주는 느낌으로. 여하튼 상대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중간에 생각대로 안 되는 일도 있겠지. 그럴 때 연상의 여유를 가지고 잘 보충해주면 된다.
그래도 내가 앞에 나서는 게 아니라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유키 군에게 있다고 그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 식으로 내일 일을 생각하고 있자,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코, 있어?”
“응, 어머니, 왜?”
하고 문을 열고 복도에 얼굴을 내밀자
“거실에 놓고 간 거야.”
엄마가 책 한 권을 들고 서 있었다.
“!!”
낚아채듯이 그 책을 엄마 손에서 뺏는다. 엄마는 약간 놀란 모양이었지만, 그리 표정이 바뀌진 않았다.
“누구랑 데이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매뉴얼대로 되지는 않으니까.”
“보, 본거지?!”
책에는 커버가 씌워져 있으니까 펴서 안을 보지 않는 한 어떤 책일지는 몰랐을 텐데.
“거실에 놓고 잊어버린 요코가 나빠. 어머머, 양복을 그렇게 잔뜩 펼치고선, 정말로 패션쇼를 하는 애가 있을지는 몰랐어. 그게 내 딸이라니.”
“자, 잠깐, 멋대로 방 안 보지 말아줘.”
몸을 방패로 삼아 방 안을 숨긴다.
“요코, 수수한 옷뿐인걸. 괜찮아? 나도 골라 줄까?”
“차암, 괜찮으니까 나가줘.”
“예이예이, 미안해~.”
엄마의 등을 밀 듯이 복도로 돌려보낸다. 정말, 방심할 틈도 없다니까.
나는 문을 닫고 방 안을 둘러봤다.
그야, 확실히 좀 옷을 펼쳐놓긴 했지만, 패션쇼는 좀 과장이잖아. 꺼낸 옷은 5, 6벌이다. 내일은 외출할 거니까 뭘 입을지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겠지.
덧붙여서, 그중에 두 벌은 어제 막 산 참이다. 분하게도 엄마가 말하는 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은 수수하달지 심플하달지 한 것 뿐인 거다.
“역시나 약간 사랑스러운 쪽이 좋을까.”
가게의 제복차림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던 모양이고. 그래도 역시나 그 차림으로 나갈 수야 없다.
엄마에게서 되찾은 책을 편다.
“……피부의 노출이 많은 옷은 호의가 있다, 그럴 마음이 있다고 상대를 착각시킬 위험이 있다, 인가. 역시나 내일은 이쪽 옷은 관둘까. 에에, 그리고, 색은…….”
하면 안 되는 언동, 상대의 행동이나 말이 의미하는 것.
예습해서 대비한다.
빨리 자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날 결국 밤 늦게까지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당일.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에 향했다. 괜찮아, 진정되어 있다. 데이트는 이전에도 한 적은 있지만, 릴리안에서 말하는 데이트라는 건 대개 언니와 여동생이 하는 걸 가리킨다. 그러니까 남자애와 하는 건 처음이지만, 날아오르거나 하진 않는다. 언니와 한 첫 데이트 때도 긴장했었다.
그래서 결국 내 오늘 코디네이트는.
위는 약간 대담한 커팅으로 레이스 업을 한, 등 쪽이 적당히 파인 풀오버. 색은 결국 검은색으로 되어 버렸지만, 프릴이 잔뜩 달려있어서 사랑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아래는 밝은 바이올렛이나 핑크, 화이트를 바탕으로 플라워 프린트된 이레귤러 스커트. 흔들리는 웨스트 리본이 원 포인트.
발은 메시 샌들. 유키 군은 그렇게 키가 큰 편은 아니니까, 힐은 낮은 걸로 했다.
너무 어른스럽지 않고 너무 사랑스럽지도 않은 채로 괜찮은 편이 아닐까. 등이 보이는 게 약간 부끄럽지만, 뒤로 돌지 않는 한 보일 일은 없으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 얼마 뒤면 약속장소인 어느 빌딩 앞. 만에 하나 아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없도록 약속 장소로 흔히 잡히는 곳을 피한 결과 이런 곳이 되었다. 손목시계를 보자 약속시각 20분 전.
대체로 나는 약속시각 10분 전에는 도착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지 10분 빨리 집을 나서도 전철을 갈아타다 늦어지거나, 연착하는 것 등을 고려해서 거기에 10분 더 여유 있게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전철이 늦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난 약속시각 20분 전에는 도착하는 셈이 된다.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빌딩 앞을 보자 놀랍게도 이미 유키 군의 모습이 보였다. 에리코는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대개 시간에 딱 맞추고 세이는 지각 상습범이어서, 자신보다 먼저 와서 기다린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버렸다.
다가가자 상대도 내 모습을 눈치챈 건지, 손을 흔들어왔다. 순수한 미소와 꾸밈없는 그 행동에 절로 미소가 나와서 나도 따라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자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어제 예습한 걸 머릿속에서 되새긴다. 괜찮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안녕하세요, 유키 씨.”
여유를 가지고 인사를.
“아, 안녕하세요.”
거기에 대해 유키 군은 굉장히 긴장한 모습이다.
“오늘도 덥네요.”
“정말. 유키 씨, 땀 대단하네요. 혹시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요? 편의점 같은데라도 들어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빌딩 1층에는 편의점이 있다. 그 안이라면 당연히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했을 텐데.
“아니, 그래도 그 편의점 안에서는 밖이 잘 안 보여서요. 그래서 못 보거나 하면 실례잖아요. 빨리 온 건 자기 탓이고.”
유키 씨의 고지식함이 드러나는 듯해서 약간 기쁘다. 거기에, 그런 건 어딘가 내 생각 방식과 닮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왓, 그렇다 치더라도 곤란한데…….”
“에, 뭐가요?”
살며시 중얼거리는 듯한 유키 씨의 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유키 씨는 어색한 느낌으로 나를 보고 있다.
에, 뭔가 실패했나?
“아니, 제 모습, 왠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 해서…….”
그렇게 말하는 유키 씨의 모습은, 여름답게 상쾌한 느낌을 주는 물색 스트라이프 셔츠와, 데님 바지에 스니커. 별로 이상해 보이는 곳은 어디에도 안 보인다.
그렇게 내가 말하자
“그래도, 오늘도 너무 귀여우니까……요, 요코 씨.”
“엣.”
서슴없이 그런 식의 말을 하는 걸 들으면, 역시나 부끄럽다. 그, 그리고 지금, 나, 이름으로 불렸지?
“아, 죄, 죄송해요, 저, 역시 ‘요코 씨’같이 부르는 거, 뻔뻔스럽지요.”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우왓…… 차암, 왠지 체온이 오르는 것 같다. 목소리도 약간 상기됐고.
누구야, ‘릴리안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 익숙해’ 같은 걸 말한 건. 이래선 전혀 설득력 없잖아.
한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 둘이서 마주 보고 서로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그, 그럼, 갈까요……유키, 군.”
가까스로 나는 그 말만을 꺼냈다.
아직 데이트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 순간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어제 예습한 내용이 완전히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실제 데이트에서 매뉴얼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엄마의 말은 옳았고, 그뿐만 아니라 내용마저 완전히 어딘가 날려버린 나는 이미 논외라는 느낌이긴 하지만.
여름방학에 개봉된 인기 영화를 보고.
찻집에 들어가서 오렌지 페코와 젠틸레 쇼콜라 케이크 세트를 먹으면서, 영화나 일터의 이야기를 즐기고.
근처의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괜찮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시저 샐러드와 해산물 리조트, 홍합 향초 버터구이를 먹고 디저트로 아이스 푸딩을 부탁하고.
말로 표현하면 그것 뿐이었지만, 그 사이에도 정말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에어컨이 고장난 영화관 안에서, 제일 감동적인 씬을 보며 유키 군이 상영관 안에 가득 울릴 정도의 큰 재채기를 해 버린다거나.
찻집에서는 유키 군이 부탁한 레몬과 벌꿀의 타르트가 굉장히 먹음직스러워서 부탁한 뒤 내 케이크와 조금 교환했었고.
백화점에서는 점원에게 남매로 착각 당해, 부정했더니 이번에는 사귀는 사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더더욱 부끄러워져서. 무심코 들어가버린 수영복 코너에서는 내게 어떤 수영복이 어울릴지를 점원이 물어와서 두 사람 다 얼굴을 붉히고.
결국, 산 건 책을 이것저것 하나씩 정도라는 게, 정말 나답다고 할까.
마지막에 들린 레스토랑도 원래 유키 군은 다른 가게에 갈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그 가게가 파티로 대절된 탓에, 어떡해야 할지 곤란해하고 있던 유키 군과 둘이서 어디에 들어갈지를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하며 정한 가게. 물론 지금 꺼낸 것 외에도 세세한 일들은 이것저것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어제 쑤셔넣은 데이트 대비 정보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그날 공원에서 한 고백의 진의를 물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중간부터 어쨌건 상관없어졌다고 할까, 홀딱 잊어버려서.
그런데도 역 앞에서 헤어질 때 나는 극히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즐거웠어. 괜찮다면 다음에 다시 어딘가 가자.”
하고.
그리고 나는 통행인이 적은 집으로 향하는 주택가 길을 걸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끄덕여준 유키 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 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