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가을의 초입, 아니 여름의 막바지였던가.
어쨌든, 은행잎이 물들어 은행이 떨어지기에는 아직 미묘하게 이른 계절. 학원 축제의 준비를 협의하기 위한 사무적인 회합 중에 그 사람과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쳤다. 직접 말을 나눈 건 아니다. 바로 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웃 학원의 학생회장이고, 친구의 연년생 동생.
아무 일도 없었다면 겨우 그 정도의 관계로 끝났을 거였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지인이자 스쳐가는 사람 중 하나. 원래 사교적이지 않은 자신에게 있어 그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지금의 산백합회에서의 활동이나 생활 쪽이 지금까지의 삶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정말로 예측도 할 수 있을 리 없었고, 뒷일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내게 일어난 학원 축제 며칠 전의 일이었다―――.
오늘은 하나데라의 임원들도 초대해 연극 연습을 하는 날이다. 전원이 모일 기회는 한정되어 있기에, 이 기회에 여러 부분들을 끝마치자고 열의도 생긴다. 모든 장면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으니, 중요한 장면이나 어려운 장면을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연극부에 소속해 있는 토코 쨩도 까다로운 눈초리와 말투로 조언하고, 2학년도 3학년도 1학년인 토코 쨩이 말하는 걸 순순히 귀에 담는다. 역시 초보자가 말을 꺼내는 것과 경험자가 조언하는 건 정말 다르다.
하나데라 분들과의 관계는 양호했다. 사치코 님이 있었기에 약간 불안은 있었지만 사치코 님도 노력하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데라의 분들이 신경을 써 주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남성과 접하는데 익숙한 건 아니지만, 하나데라 분들은 친해지기 쉽고 대화하기 쉬웠다.
“토도 양, 잠시 괜찮을까요?”
“예, 무슨 일이신가요?”
돌아보자 그쪽에는 유키 군의 모습이 있었다.
유키 군은 올해 하나데라 학원 학생회장이지만, 위엄이라는 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유키 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쳐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미 양도 그렇지만, 친해지기 쉬운 성격 속에 남이 끌리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기의 등장 신 말인데요.”
“예.”
펼쳐진 대본에 눈을 향한다.
바로 근처에서 느껴지는 유키 군의 기색.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의식을 하는 일도 없다. 지금은 단순히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동료니까.
하지만.
릴리안에 들어와서 얻은, 유미 양이라 하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와 닮은 냄새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기는 충분했다.
“……아, 그런가. 과연―.”
꾸밈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토도 양.”
“아니요. 저는 그다지.”
“아, 그럼 저, 잠시 아리스에게 그거 말하고 올 테니까.”
조급히 빠른 걸음으로 물러간다.
정말로 활동적이고, 모두를 배려해서 언제나 계속 움직인다. 하나데라의 학생이 그를 학생회장으로 천거한 이유도 어쩐지 모르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마……언니.”
“노리코. 무슨 일이니?”
“……으, 으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피곤하지 않아요?”
“괜찮아, 고마워.”
기분 탓인 걸까. 노리코의 표정이 괜히 굳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리코는 중학교 때 까지 공학이었으니까, 동년대의 남성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런 건 사소한 일. 노리코의 모습도 그 뒤에는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어서 연극의 연습과 섞여 기억의 구석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극 연습도 끝나, 하나데라 학원의 사람도 노리코에게 배웅받아 돌아갔다. 지금 우리들은 장미관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다.
방이라는 건 신기하다.
각각의 방에 독특한 풍취가 있다. 장미 관에도, 학교의 교실이나 음악실, 화학실과는 다른 풍취가 있다. 나는 지금 장미관이 자아내는 풍취가 좋다. 분명히 이 풍취는 언니나 언니의 언니분, 그런 장미님 분들이 대대로 쌓아 올려온 결과 만들어진 거겠지. 그리고 지금은 하나데라의 사람들이 아까 전까지 있었기에, 또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 이거 누구 거니?”
소리를 낸 건 레이 님이었다.
그쪽을 보면, 손에 들고 있는 건 검은 필통. 사치코 님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유키 양, 요시노 양은 1층을 정리하고 있기에 지금 이 2층에는 없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떠오른 걸 입에 담았다.
“확실히 코바야시 씨가 쓰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시마코, 정말이니?”
“아마도요. 저, 따라가서 건네주고 올게요.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을지도 몰라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나이가 어리니까, 그게 자연스럽겠지. 레이 님, 사치코 님이 뭔가를 말하기 전에 나는 필통을 손에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장미관을 뒤로, 약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뛰면 안 된다고 배우긴 했지만, 너무 느긋하게 걸었다간 따라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져 간다.
연극 연습을 하느라 어중간한 시간이 되어버린 탓인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에서는 운동부 애들이 기운차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지금 이곳은 매우 고요했다. 운동장의 목소리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서두를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유미 양에게 부탁하면 유미 양이 유키 군에게 전해서 문제없이 주인에게로 돌아갔겠지. 분명 사치코 님, 레이 님과 좀 더 이야기하고 있었으면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행동해 버렸다. 평소에는 나 스스로도 그리 능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버린 걸지도 모른다.
중간에 노리코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인데, 배웅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아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거나 한 거겠지. 멀리서 반대쪽을 향하고 있으니 나를 눈치채는 기색도 없다. 나는 그대로 그곳을 지나쳐, 정문을 향한다.
문에 다가감에 따라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 뛰는 정도에 가까워져 있었다. 체육 수업 외에는 교내를 달린 기억같은 건 없었다.
연극 연습을 하느라 어중간한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 단순한 우연인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유겠지. 서두르지 않으면 쫓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정문 직전에서 나는 완전히 달리는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딱 정문을 나서려 한 그 순간.
“꺅?!”
몸에 충격을 받았다.
부딪쳤다고 생각할 틈도 없다. 달려온 기세가 있었기에 나는 눈앞에 있었던 ‘뭔가’에 튕겨나가 균형을 잃었다.
운동신경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대로 나는 땅바닥에 등쪽으로 쓰러져 갔다.
―――고 생각한 그 때.
“위험해!”
그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반쯤 억지로 회전했다……아니, 회전 당했다.
직후에 덮쳐온 충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정도였다. 딱딱한 아스팔트의 감촉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야야야……그런데, 괜찮아요?”
바로 곁에서 소리가 나서 생각지도 못하게 깜짝 놀란다.
마음을 가다듬고 몸의 상태를 확인해 보자, 아무래도 다른 누군가의 몸 위에 쓰러져 있는 모양이었다. 허리와 후두부를 감싼 손의 감촉. 귀에 전해져 오는 건 심장의 고동일까. 두근, 두근, 하고 약간 빠른 리듬으로 들리는 소리는 그 사람이 확실히 거기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어, 어라, 안 움직여? 잠깐, 괜찮아요? 정신을 잃은 거려나.”
어딘지 당황하는 듯한 말투가 되었다.
간신히 거기서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굳어있던 몸을 약간 움직였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고개를 들자.
겁날 정도로 눈 바로 앞에 그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호흡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고, 눈동자의 빛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곁에, 발그레 물든 뺨의 열을 느껴질 정도의 거리다.
“상처 입거나 하지 않았어요? 아픈 곳이라거나.”
“아, 예, 괜찮아요.”
아무래도 나를 그 사람이 감싸준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어디도 아픈 곳도 없고, 상처도 입지 않은 모양이다. 단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의식과 몸이 굳어있는 것 뿐이었다.
“괘, 괜찮다면 슬슬 떨어지는게.”
“에―――.”
거기서 나는 간신히 자신이 위를 보고 쓰러진 그의 몸 위에 엎드린 꼴로 덮여있는 자세인걸 깨달았다.
“―――꺅?!! 미, 미안해요!!”
약간 패닉에 빠진 채로 나는 당황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어찌 이리 상스러울 수가.
눈앞의 사람―――유키 군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니, 괜찮아……아얏.”
팔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려고 했을 때,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는 유키 군.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부딪친 게 유키 군이었고, 뒤쪽으로 쓰러진 내 몸을 억지로 감싸 쿠션이 되어 준 거겠지. 그리고 그때 등인지 뒤통순지를 부딪쳐 버린 거겠지.
“괘, 괜찮나요? 어디 아프나요?”
“아―, 아니, 괜찮아 괜찮아.”
“그, 그래도.”
얼마나 강하게 부딪쳤는지는 모른다. 혹시 머리를 부딪쳤다거나 한 거라면, 지금은 괜찮아도 계속 괜찮으리라 할 수는 없다.
“그, 그보다 토도 양, 빨리 물러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그리 품위있는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고.”
엣, 하고 생각했다.
모습? 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을 살펴보자.
“아―――.”
지금 나는 위로 쓰러져 있는 유키 군의 몸 위에 문자 그대로 올라타 있었다. 물론 치마가 흐트러져 있기는 해도 안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터무니없는 상태임은 틀림없다.
“미미, 미안해요!”
나는 뺨에 순식간에 열이 모이는 걸 느끼면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흐트러진 치맛자락과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자, “읏쌰” 하고 말하며 유키 군도 일어나는게 보였다.
“아…….”
이 무슨 실태.
나는 자신의 몸가짐을 정돈하기만 하고 나를 감싸서 도와준 탓에 다쳐버린 유키 군이 일어나는데 손을 빌려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뻗으려 한 손은 들려 했을 때 무의미하게 허공을 가른다. 이런 둔하다고 할까, 우물쭈물 거리는게 나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죄, 죄송해요. 저, 저만 신경 써서.”
“에? 뭐가?”
눈을 둥그레 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키 군. 특별히 뭘 신경 쓰는 듯한 느낌도 없다.
“아, 토도 양, 치마 더러워졌어요.”
“에?”
“아―, 뒤쪽요.”
“이쪽인가요?”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유키 군은 엉거주춤한 채였던 손을 들고,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굳어――헛기침을 하며 허리를 폈다.
“저기, 지금 건 오해니까요? 그, 수상쩍은 마음으로 한 소리가 아니니까요.”
“예, 저기, 무슨 소린가요?”
이번은 내가 눈을 둥그레 뜰 차례였다.
유키 군은 단순히 내 치마가 더러워진 부분을 털어주려 한 것뿐이지 않았나.
“아……그, 그러고 보면, 굉장히 서두르고 있었던 모양인데 무슨 일인가요?”
“예……아, 맞아요. 저기, 잃어버린 물건을 전하려고.”
“아아, 혹시나 제 필통인가요?”
“예, 아, 유키 군 거였나요.”
“에에……, 그래서.”
“예……어머?”
오른손을 봤지만 들고 왔을 터인 필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눈길을 옮겨 왼손을 봐도 역시나 거기도 텅 비었다. 분명 부딪쳤을 때 떨어뜨려 버린거라 생각해 땅바닥에 눈을 향해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 이거.”
“에―――.”
유키 군의 눈길이 향한 곳을 쫓으면, 놀랍게도 그 필통은 길의 옆도랑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더러운 건 아니지만, 길에 떨어진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당황하며 들어 올렸지만, 진흙과 물로 더러워져 있었다.
“죄, 죄송해요!”
급히 고개를 숙인다.
전해주려 왔을 텐데 더럽혀 버리다니 어이가 없다.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으로 사과하면서 조심조심 유키 군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 괜찮아요, 괜찮다니까요. 원래 까맣고, 그렇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웃으며 그런 소리를 말한다.
본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나에게 마음을 써서 말해 준 거겠지. 겸연쩍음과 면목없음으로 나는 솔직히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랬었지만.
“그래도 조금 기쁘네요.”
“에?”
눈앞의 유키 군을 보자, 왠지 정말로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부딪친데다가 몸을 다치고 필통을 더럽혀 버렸는데 대체 뭐가 기쁜 걸까 생각하고 있자.
“아니, 토도 씨도 제법 둔한 부분이 있구나 해서.”
“협의할 때도 연습할 때도 차분하고 침착한데, 그래도 존재감이 없는 건 아니어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중량감이 있어서. 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었으니까 그런 일면을 보게 된게 왠지 기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저 같은 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고개를 젓는다.
차분하다거나 침착하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자주 듣지만, 그건 단순히 내 템포가 그런 것 뿐인 거다. 요시노 양한테 말하라고 하면, “약간 멍~한 부분 있지.” 라는 느낌이다.
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전 홍장미님으로 계셨던 미즈노 요코 님 같은 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저, 뭔가 답례나 사과를…….”
“에,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럴 수는 없어요. 도와주셨는데 실례를 저질러 버려서, 유키 군이 괜찮다고 말해도 제가 괜찮지 않아요.”
여기는 물어날 수 없었다.
때때로 나는 무서울 정도로 고집쟁이가 된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지만, 이런 부분이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음―, 곤란한데.”
“저도 곤란해요. 저, 저를 위해서라도 뭔가.”
“그렇게 말해도…….”
곤혹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유키 군.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고, 그리고.
“그럼…….”
하고 입을 연다.
“예.”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럼, 좀 고민해 볼테니 결정되면 부탁을 하는 걸로 할게요.”
“그래도…….”
“거기에다 지금은 학원 축제를 향해 전력을 다해야죠. 부탁은 그게 끝난 다음으로 하는 건 어떤가요?”
그것도 역시 정론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계없는 일로 학원 축제나 무대에 지장을 입혀버려서야 본전도 못 찾는다.
그래서 나는 수긍했다.
“알았어요. 그럼 학원 축제가 끝난 뒤에.”
“예. 그럼, 저 이제 갈게요……토도 양은 정말로 아픈 곳 없나요?”
“예, 저는 아무데도.”
“다행이다. 그럼 실례할게요.”
“예―――아, 저!!”
발뒤축을 돌린 유키 군을 나는 당황하며 불러 멈췄다.
여러 가지 있었던 탓으로 깜빡하고 있었지만, 나는 중요한 걸 하나 잊고 있었다. 정말로 오늘은 어떻게 된 걸까.
“저, 아직 무슨 일이?”
“예……아까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깊게 감사의 뜻을 담아 허리를 숙인다.
유키 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나는 자칫했다간 큰 상처를 입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건 정말로 유키 군이 그 몸 전체로 감싸주었기 때문인 거다.
“아니, 천만에요. 그럼, 다음에 봐요.”
어딘가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유키 군은 돌아갔다.
그리고.
“예―――다음에.”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쪽을 향해 나는 닿을 일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어쨌든, 은행잎이 물들어 은행이 떨어지기에는 아직 미묘하게 이른 계절. 학원 축제의 준비를 협의하기 위한 사무적인 회합 중에 그 사람과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쳤다. 직접 말을 나눈 건 아니다. 바로 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웃 학원의 학생회장이고, 친구의 연년생 동생.
아무 일도 없었다면 겨우 그 정도의 관계로 끝났을 거였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지인이자 스쳐가는 사람 중 하나. 원래 사교적이지 않은 자신에게 있어 그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지금의 산백합회에서의 활동이나 생활 쪽이 지금까지의 삶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정말로 예측도 할 수 있을 리 없었고, 뒷일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내게 일어난 학원 축제 며칠 전의 일이었다―――.
화이트 프린세스·나이트 첫 번째
오늘은 하나데라의 임원들도 초대해 연극 연습을 하는 날이다. 전원이 모일 기회는 한정되어 있기에, 이 기회에 여러 부분들을 끝마치자고 열의도 생긴다. 모든 장면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으니, 중요한 장면이나 어려운 장면을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연극부에 소속해 있는 토코 쨩도 까다로운 눈초리와 말투로 조언하고, 2학년도 3학년도 1학년인 토코 쨩이 말하는 걸 순순히 귀에 담는다. 역시 초보자가 말을 꺼내는 것과 경험자가 조언하는 건 정말 다르다.
하나데라 분들과의 관계는 양호했다. 사치코 님이 있었기에 약간 불안은 있었지만 사치코 님도 노력하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데라의 분들이 신경을 써 주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남성과 접하는데 익숙한 건 아니지만, 하나데라 분들은 친해지기 쉽고 대화하기 쉬웠다.
“토도 양, 잠시 괜찮을까요?”
“예, 무슨 일이신가요?”
돌아보자 그쪽에는 유키 군의 모습이 있었다.
유키 군은 올해 하나데라 학원 학생회장이지만, 위엄이라는 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유키 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쳐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미 양도 그렇지만, 친해지기 쉬운 성격 속에 남이 끌리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기의 등장 신 말인데요.”
“예.”
펼쳐진 대본에 눈을 향한다.
바로 근처에서 느껴지는 유키 군의 기색.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의식을 하는 일도 없다. 지금은 단순히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동료니까.
하지만.
릴리안에 들어와서 얻은, 유미 양이라 하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와 닮은 냄새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기는 충분했다.
“……아, 그런가. 과연―.”
꾸밈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토도 양.”
“아니요. 저는 그다지.”
“아, 그럼 저, 잠시 아리스에게 그거 말하고 올 테니까.”
조급히 빠른 걸음으로 물러간다.
정말로 활동적이고, 모두를 배려해서 언제나 계속 움직인다. 하나데라의 학생이 그를 학생회장으로 천거한 이유도 어쩐지 모르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마……언니.”
“노리코. 무슨 일이니?”
“……으, 으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피곤하지 않아요?”
“괜찮아, 고마워.”
기분 탓인 걸까. 노리코의 표정이 괜히 굳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리코는 중학교 때 까지 공학이었으니까, 동년대의 남성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런 건 사소한 일. 노리코의 모습도 그 뒤에는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어서 연극의 연습과 섞여 기억의 구석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극 연습도 끝나, 하나데라 학원의 사람도 노리코에게 배웅받아 돌아갔다. 지금 우리들은 장미관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다.
방이라는 건 신기하다.
각각의 방에 독특한 풍취가 있다. 장미 관에도, 학교의 교실이나 음악실, 화학실과는 다른 풍취가 있다. 나는 지금 장미관이 자아내는 풍취가 좋다. 분명히 이 풍취는 언니나 언니의 언니분, 그런 장미님 분들이 대대로 쌓아 올려온 결과 만들어진 거겠지. 그리고 지금은 하나데라의 사람들이 아까 전까지 있었기에, 또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 이거 누구 거니?”
소리를 낸 건 레이 님이었다.
그쪽을 보면, 손에 들고 있는 건 검은 필통. 사치코 님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유키 양, 요시노 양은 1층을 정리하고 있기에 지금 이 2층에는 없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떠오른 걸 입에 담았다.
“확실히 코바야시 씨가 쓰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시마코, 정말이니?”
“아마도요. 저, 따라가서 건네주고 올게요.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을지도 몰라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나이가 어리니까, 그게 자연스럽겠지. 레이 님, 사치코 님이 뭔가를 말하기 전에 나는 필통을 손에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장미관을 뒤로, 약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뛰면 안 된다고 배우긴 했지만, 너무 느긋하게 걸었다간 따라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져 간다.
연극 연습을 하느라 어중간한 시간이 되어버린 탓인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에서는 운동부 애들이 기운차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지금 이곳은 매우 고요했다. 운동장의 목소리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서두를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유미 양에게 부탁하면 유미 양이 유키 군에게 전해서 문제없이 주인에게로 돌아갔겠지. 분명 사치코 님, 레이 님과 좀 더 이야기하고 있었으면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행동해 버렸다. 평소에는 나 스스로도 그리 능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버린 걸지도 모른다.
중간에 노리코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인데, 배웅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아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거나 한 거겠지. 멀리서 반대쪽을 향하고 있으니 나를 눈치채는 기색도 없다. 나는 그대로 그곳을 지나쳐, 정문을 향한다.
문에 다가감에 따라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 뛰는 정도에 가까워져 있었다. 체육 수업 외에는 교내를 달린 기억같은 건 없었다.
연극 연습을 하느라 어중간한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 단순한 우연인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유겠지. 서두르지 않으면 쫓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정문 직전에서 나는 완전히 달리는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딱 정문을 나서려 한 그 순간.
“꺅?!”
몸에 충격을 받았다.
부딪쳤다고 생각할 틈도 없다. 달려온 기세가 있었기에 나는 눈앞에 있었던 ‘뭔가’에 튕겨나가 균형을 잃었다.
운동신경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대로 나는 땅바닥에 등쪽으로 쓰러져 갔다.
―――고 생각한 그 때.
“위험해!”
그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반쯤 억지로 회전했다……아니, 회전 당했다.
직후에 덮쳐온 충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정도였다. 딱딱한 아스팔트의 감촉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야야야……그런데, 괜찮아요?”
바로 곁에서 소리가 나서 생각지도 못하게 깜짝 놀란다.
마음을 가다듬고 몸의 상태를 확인해 보자, 아무래도 다른 누군가의 몸 위에 쓰러져 있는 모양이었다. 허리와 후두부를 감싼 손의 감촉. 귀에 전해져 오는 건 심장의 고동일까. 두근, 두근, 하고 약간 빠른 리듬으로 들리는 소리는 그 사람이 확실히 거기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어, 어라, 안 움직여? 잠깐, 괜찮아요? 정신을 잃은 거려나.”
어딘지 당황하는 듯한 말투가 되었다.
간신히 거기서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굳어있던 몸을 약간 움직였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고개를 들자.
겁날 정도로 눈 바로 앞에 그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호흡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고, 눈동자의 빛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곁에, 발그레 물든 뺨의 열을 느껴질 정도의 거리다.
“상처 입거나 하지 않았어요? 아픈 곳이라거나.”
“아, 예, 괜찮아요.”
아무래도 나를 그 사람이 감싸준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어디도 아픈 곳도 없고, 상처도 입지 않은 모양이다. 단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의식과 몸이 굳어있는 것 뿐이었다.
“괘, 괜찮다면 슬슬 떨어지는게.”
“에―――.”
거기서 나는 간신히 자신이 위를 보고 쓰러진 그의 몸 위에 엎드린 꼴로 덮여있는 자세인걸 깨달았다.
“―――꺅?!! 미, 미안해요!!”
약간 패닉에 빠진 채로 나는 당황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어찌 이리 상스러울 수가.
눈앞의 사람―――유키 군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니, 괜찮아……아얏.”
팔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려고 했을 때,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는 유키 군.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부딪친 게 유키 군이었고, 뒤쪽으로 쓰러진 내 몸을 억지로 감싸 쿠션이 되어 준 거겠지. 그리고 그때 등인지 뒤통순지를 부딪쳐 버린 거겠지.
“괘, 괜찮나요? 어디 아프나요?”
“아―, 아니, 괜찮아 괜찮아.”
“그, 그래도.”
얼마나 강하게 부딪쳤는지는 모른다. 혹시 머리를 부딪쳤다거나 한 거라면, 지금은 괜찮아도 계속 괜찮으리라 할 수는 없다.
“그, 그보다 토도 양, 빨리 물러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그리 품위있는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고.”
엣, 하고 생각했다.
모습? 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을 살펴보자.
“아―――.”
지금 나는 위로 쓰러져 있는 유키 군의 몸 위에 문자 그대로 올라타 있었다. 물론 치마가 흐트러져 있기는 해도 안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터무니없는 상태임은 틀림없다.
“미미, 미안해요!”
나는 뺨에 순식간에 열이 모이는 걸 느끼면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흐트러진 치맛자락과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자, “읏쌰” 하고 말하며 유키 군도 일어나는게 보였다.
“아…….”
이 무슨 실태.
나는 자신의 몸가짐을 정돈하기만 하고 나를 감싸서 도와준 탓에 다쳐버린 유키 군이 일어나는데 손을 빌려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뻗으려 한 손은 들려 했을 때 무의미하게 허공을 가른다. 이런 둔하다고 할까, 우물쭈물 거리는게 나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죄, 죄송해요. 저, 저만 신경 써서.”
“에? 뭐가?”
눈을 둥그레 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키 군. 특별히 뭘 신경 쓰는 듯한 느낌도 없다.
“아, 토도 양, 치마 더러워졌어요.”
“에?”
“아―, 뒤쪽요.”
“이쪽인가요?”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유키 군은 엉거주춤한 채였던 손을 들고,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굳어――헛기침을 하며 허리를 폈다.
“저기, 지금 건 오해니까요? 그, 수상쩍은 마음으로 한 소리가 아니니까요.”
“예, 저기, 무슨 소린가요?”
이번은 내가 눈을 둥그레 뜰 차례였다.
유키 군은 단순히 내 치마가 더러워진 부분을 털어주려 한 것뿐이지 않았나.
“아……그, 그러고 보면, 굉장히 서두르고 있었던 모양인데 무슨 일인가요?”
“예……아, 맞아요. 저기, 잃어버린 물건을 전하려고.”
“아아, 혹시나 제 필통인가요?”
“예, 아, 유키 군 거였나요.”
“에에……, 그래서.”
“예……어머?”
오른손을 봤지만 들고 왔을 터인 필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눈길을 옮겨 왼손을 봐도 역시나 거기도 텅 비었다. 분명 부딪쳤을 때 떨어뜨려 버린거라 생각해 땅바닥에 눈을 향해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 이거.”
“에―――.”
유키 군의 눈길이 향한 곳을 쫓으면, 놀랍게도 그 필통은 길의 옆도랑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더러운 건 아니지만, 길에 떨어진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당황하며 들어 올렸지만, 진흙과 물로 더러워져 있었다.
“죄, 죄송해요!”
급히 고개를 숙인다.
전해주려 왔을 텐데 더럽혀 버리다니 어이가 없다.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으로 사과하면서 조심조심 유키 군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 괜찮아요, 괜찮다니까요. 원래 까맣고, 그렇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웃으며 그런 소리를 말한다.
본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나에게 마음을 써서 말해 준 거겠지. 겸연쩍음과 면목없음으로 나는 솔직히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랬었지만.
“그래도 조금 기쁘네요.”
“에?”
눈앞의 유키 군을 보자, 왠지 정말로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부딪친데다가 몸을 다치고 필통을 더럽혀 버렸는데 대체 뭐가 기쁜 걸까 생각하고 있자.
“아니, 토도 씨도 제법 둔한 부분이 있구나 해서.”
“협의할 때도 연습할 때도 차분하고 침착한데, 그래도 존재감이 없는 건 아니어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중량감이 있어서. 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었으니까 그런 일면을 보게 된게 왠지 기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저 같은 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고개를 젓는다.
차분하다거나 침착하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자주 듣지만, 그건 단순히 내 템포가 그런 것 뿐인 거다. 요시노 양한테 말하라고 하면, “약간 멍~한 부분 있지.” 라는 느낌이다.
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전 홍장미님으로 계셨던 미즈노 요코 님 같은 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저, 뭔가 답례나 사과를…….”
“에,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럴 수는 없어요. 도와주셨는데 실례를 저질러 버려서, 유키 군이 괜찮다고 말해도 제가 괜찮지 않아요.”
여기는 물어날 수 없었다.
때때로 나는 무서울 정도로 고집쟁이가 된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지만, 이런 부분이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음―, 곤란한데.”
“저도 곤란해요. 저, 저를 위해서라도 뭔가.”
“그렇게 말해도…….”
곤혹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유키 군.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고, 그리고.
“그럼…….”
하고 입을 연다.
“예.”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럼, 좀 고민해 볼테니 결정되면 부탁을 하는 걸로 할게요.”
“그래도…….”
“거기에다 지금은 학원 축제를 향해 전력을 다해야죠. 부탁은 그게 끝난 다음으로 하는 건 어떤가요?”
그것도 역시 정론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계없는 일로 학원 축제나 무대에 지장을 입혀버려서야 본전도 못 찾는다.
그래서 나는 수긍했다.
“알았어요. 그럼 학원 축제가 끝난 뒤에.”
“예. 그럼, 저 이제 갈게요……토도 양은 정말로 아픈 곳 없나요?”
“예, 저는 아무데도.”
“다행이다. 그럼 실례할게요.”
“예―――아, 저!!”
발뒤축을 돌린 유키 군을 나는 당황하며 불러 멈췄다.
여러 가지 있었던 탓으로 깜빡하고 있었지만, 나는 중요한 걸 하나 잊고 있었다. 정말로 오늘은 어떻게 된 걸까.
“저, 아직 무슨 일이?”
“예……아까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깊게 감사의 뜻을 담아 허리를 숙인다.
유키 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나는 자칫했다간 큰 상처를 입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건 정말로 유키 군이 그 몸 전체로 감싸주었기 때문인 거다.
“아니, 천만에요. 그럼, 다음에 봐요.”
어딘가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유키 군은 돌아갔다.
그리고.
“예―――다음에.”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쪽을 향해 나는 닿을 일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두 번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