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프린세스·나이트 네 번째
오후가 되자, 인파가 더더욱 늘어난 것 같았다. 여전히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기후적으론 딱 좋을지도 모른다.
나와 유키 군은 주로 내 페이스에 맞춰 놀이기구를 타는 페이스를 낮췄지만, 그래도 나는 정말 즐거웠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아이도, 우리와 동년배 정도의 애들도, 어른도, 약간 연세 드신 분도, 남성도 여성도, 그 모두가 즐거운 듯이 얼굴을 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즐거운 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도 즐거운 기분이 든다.
돌이켜 보면 옛날부터 그랬었다.
나는 적극성이 없다고 할까, 얌전한 아이였으니까 동년대의 애들이 떠들며 노는 고리 속에 스스로 뛰어드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즐겁게 놀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는 건 즐거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건 내 착각.
아니, 나는 몰랐었던 거다. 자신이 겁이 많은 탓에 사람과 엮이는 걸 최대한 피해, 떨어진 위치에 서 있었다.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어딘가 남들과 같다고 하는 기분도 있었으니까, 사람의 고리에 끼지 않아도 즐거움을, 마음을 동조 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백합회에 들어와, 언니, 유미 양과 요시노 양, 노리코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나는 자신의 어리석은 착각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보고 있는 것과 참가 하는 건 하늘과 땅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한.
“다음은 뭘 탈까요?”
놀이동산에 들어왔을 때 건네받은 지도를 보고 즐거운 듯이 물어보는 유키 군. 나 또한 지도를 보며 가슴이 설레고 있다.
요즘 절규계 머신은 내게 자극이 너무 강하다. 먼 옛날에는 최신이었을, 옛날 그대로의 제트 코스터 정도가 내게는 딱 좋다.
도깨비집은, 나는 그리 무서운 쪽에 약한 건 아니지만 이럴 때는 약간 무서운 체하는 편이 남자는 기쁜 걸지도 모른다. 아, 하지만, 도깨비 자체는 무섭지 않아도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래키거나 하는 거에는 약할지도 모른다.
그리 속도가 빠르지 않은 놀이기구 탈것들은, 눈이 즐겁다. 정교한 인형과 기계장치가 빽빽하게 들어서 즐거운 듯이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 나라 같다. 입체 홀로그램이나 영상에 의한 각종 장치들이 나를 다른 세계로 초대해 준다.
아직 실제로 놀이기구에 탄간 것도 아닌데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즐거운 마음이 든다. 그건 물론 유키 군과 둘이 함께, 여러모로 생각하니까 즐거운 거다. 아니, 설령 혼자라도 어젯밤 처럼 오늘에 대해 떠올려, 뭐에 탈지 상상하는 건 정말 즐거웠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토도 양에겐, 이건 힘들지 않아요?”
“아, 너무해요. 저도 이 정도라면 괜찮아요.”
이 정도의 농담도 긴장 없이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걸로 할까요?”
“예.”
수긍하고 벤치에서 일어난 타이밍에, 바짓자락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이상하게 생각해 눈을 아래로 향해 보자.
“………….”
자그만 여자애가 순진무구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에에…….”
내가 당황하고 있자, 그 여자애는 자그마한 입을 열었다.
“……엄마는?”
“―――에?”
그 여자애는 ‘히토미 쨩’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하면 부모님과 떨어져 버린 미아인 거지만, 미아보호소에 데려가려고 하자 완강히 저항했다.
어째선지 이유를 물어보자.
“그치만, 모처럼 왔는데 놀이기구 탈 시간 줄어드는걸.”
라는 모양이다.
머리카락을 좌우 양쪽으로 묶은 모습은 마치 유미 양이 작아진 것 같아서 귀여웠지만, 성격은 굉장히 드센 모양이다.
나와 유키 군은 곤란한 듯이 얼굴을 마주봤다.
히토미 쨩은 이대로 억지로 미아보호소에 데려가려고 하면 큰 소리로 울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놓아 둘수도 없다.
나는 어떻게든 히토미 쨩을 달래려고 했지만, 하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릴리안에서는 유치원 애들과의 교류 같은 것도 있어서, 어린 애들과 접하는 데는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간단히는 되지 않을 모양이었다.
어떡할지 목을 기울이고 있자.
유키 군이 웅크려 앉고, 히토미 쨩과 시선을 맞춰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히토미 쨩의 마음은 알지만, 히토미 쨩을 못 찾으면 아버지랑 어머니가 걱정할텐데?”
“그래도, 싫은걸.”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미아보호소에서 부모님이 오는 걸 기다린 뒤에 다시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 쪽이 효율이 높을 거다.
하지만 어린 애에게 그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히토미 쨩은 삐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바로라도 잔뜩 놀고 싶다는 기분이 엿보인다.
“응, 알아. 그러니까, 이렇게 할래?”
빙긋 미소짓는다.
히토미 쨩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히토미 쨩은 다음에 뭘 타고 싶어?”
“으음―, 저거!”
히토미 쨩이 몸을 반회전 시킨 뒤 가리킨 건, 이곳에서도 한결 돋보이는 거대 관람차.
“오케. 그럼, 지금부터 우리랑 같이 타러 가자.”
“정말?!”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히토미 쨩.
“저기, 유키 군. 그래도, 그건.”
부모님은 분명 걱정하고 있을 거다. 아무리 히토미 쨩이 기뻐하고 있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과 놀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내 생각을 알아본 건지, 유키 군은 가볍게 눈짓을 한다.
“……그래도 그러면 히토미 쨩의 부모님이 걱정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미아보호소에 가자.”
“엣―, 약속하고 달라.”
히토미 쨩이 화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유키 군은.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그렇게 말하며 한 눈을 감았다.
거대 관람차는 여유로이 움직여, 우리들이 탄 칸을 천천히 위쪽으로 들어 올린다. 공원 안의 경치가 아래 보이며, 조금씩 작아져 간다. 그와 함께 지면에 서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옥외형 제트 코스터가 물보라를 흩날리고 있는 커다란 연못. 자그마한 자동차가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는 고카트의 코스. 빙글빙글 도는 회전찻잔.
사람의 모습도, 마스코트 캐릭터도, 서서히 콩알처럼 작아져 간다.
“우와―, 높아, 높아!”
“어이, 안에서 너무 움직이면 안돼.”
히토미 쨩과 유키 군은 이제 완전히 사이가 좋아졌다.
유키 군이 취한 수단은 이런 거였다.
일단 미아보호소에 신고는 한다. 그리고 그 뒤에 관람차에 타러 가서, 내리면 또 미아보호소에 돌아간다는 거다. 타고 있는 동안에 부모님이 맞으러 오면 그 자리서 기다리게 해 달라 부탁했다.
물론 그런 게 쉽게 인정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키 군은, 히토미 쨩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히토미 쨩이 가지고 있던 파우치와 유키 군 자신의 지갑과 학생증을 맡기고 가는 걸 조건으로 해서, 히토미 쨩을 놀이기구로 데려간다는 걸 미아보호소 사람들에게 승락받았다.
히토미 쨩이 유키 군을 따르고, 놀러 보내주지 않으면 울부짖겠다고 말했던 것도 컸었을지 모른다.
“자, 언니야도 보자!”
“아, 응.”
그 말을 듣고 나도 두 사람 쪽으로 몸을 움직이자, 균형이 무너진 관람차가 흔들렸다. 히토미 쨩은 꺅꺅거리며 기뻐하고 있다.
이러쿵저러쿵하는 동안, 관람차는 제일 높은 부분에 다가가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보자,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높은 곳에 약해서 너무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언니야, 혹시나 높은 거 무서워?”
“으, 응. 조금.”
“그럼, 오빠야한테 달라붙으면?”
“엣?!”
히토미 쨩의 말에 나도 유키 군도 놀란 소리를 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있으니까 못 들러붙는 거구나. 미안해, 오빠야.”
꾸벅 고개를 속이는 히토미 쨩.
유키 군은 당황하고 있다.
“아, 아, 아니야. 아니니까, 토도 양!”
“예, 예에.”
나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는 채로 수긍한다.
“그래도, 오빠야랑 언니야, 애인인 거잖아?”
순진무구한 질문이었지만, 우리들은 대답이 막힌다.
그보다, 나도 유키 군도 미묘하게 얼굴을 붉히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 왠지 모르게 어색해서 동시에 눈길을 피해 버린다.
“자, 사양 안해도 되니까.”
히토미 쨩이 내 손을 잡는다.
무리하게 떨쳐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하는 대로 둘 수도 없다. 어중간한 저항을 했던 게 나빴던 걸까.
끌어당겨진 나는 몸의 균형을 무너뜨려, 유키 군 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꺅……!”
“왓!”
유키 군은 받아들여 주었지만.
놀랍게도 나는, 유키 군의 무릎 위에서 옆을 보고 앉는 꼴이 되어 버렸다. 어깨를 안겨서, 위를 올려다보자 나를 내려다보는 유키 군의 눈동자.
정신을 차려 보자 어느샌가 관람차의 가장 높은 곳까지 도착해서, 낮동안은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해님이 간신히 얼굴을 보여, 흐릿하게 내리쬐는 빛을 퍼붓고 있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오직 유키 군의 팔 안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을 뿐. 유키 군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단지, 밀착한 가슴에서 그의 심장 고동만이 전해져 온다.
“꺅―! 러브러브―!”
히토미 쨩의 환성에 정신을 차린다.
“앗! 미미, 미안해요!”
“이, 저야말로 죄송해요!”
나는 허둥지둥 유키 군의 무릎 위에서 일어나서, 옆자리로 몸을 옮긴다. 아까 전에 느꼈던 유키 군의 고동에 지지 않을 정도로 내 심장도 두근거리고 있다. 갑자기 일어난 해프닝에 처음에는 그냥 놀란 것뿐이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 껴안는 자세가 되어 있었던 거다.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에 뺨이 뜨거워진다. 문득 옆으로 눈을 향해 보면, 아무래도 그건 유키 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떡할지 곤란해하고 있자.
“아…….”
무의식중에 움직이고 있던 손가락이 유키 군의 손가락에 닿았다.
살짝 닿은 손끝에 눈을 향하고, 이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자. 역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유키 군과 눈이 마주쳤다. 그 얼굴은 구름 틈새로 얼굴을 내보인 태양의 빛 탓인지, 아스라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눈을 빼앗겨 버렸다.
어떻게 된 걸까. 상황 탓일지도 모른다. 유키 군의 모습이, 어딘가 한 장의 그림처럼 보여 버렸다. 숭엄한 그림 같은 느낌이라는 건 아니다. 거장의 명작 같은 느낌이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생멱력이 흘러넘치는 상냥한 그림이었다.
“저기, 토도 양.”
“예, 예.”
뭘까. 유키 군은 뭘 말하려 하고 있는 걸까.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온기는 내게 뭘 전하려 하고 있는 걸까.
“……두근두근. 쪽 할거야?”
“―――엣?”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옆을 바라보자.
히토미 쨩이 눈에 기대를 가득 담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자 토도 양, 봐봐. 하늘이, 대단해.”
“에, 아, 정말이네요.”
굉장히 티나게 이야기를 돌렸지만.
확실히, 어두운 구름의 틈새에서 아슬아슬하게 새어나오는 빛이 환상적이어서, 결코 좋은 날씨라곤 할 수 없을텐데도 창 밖에 펼쳐진 경치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관람차에서 내려서 미아보호소에 돌아가자, 히토미 쨩의 부모님이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기다리고 있었다.
히토미 쨩도 빛나는 표정으로 부모님 쪽으로 달려간다. 센 척은 했지만, 역시나 부모님 쪽이 좋은 거겠지. 나와 유키 군은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가볍게 웃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상냥한 분이어서, 히토미 쨩을 데려갔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책망받지 않았다. 오히려 제멋대로인 딸이 하는 말을 따라 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받아 버렸을 정도다.
“딸이 제멋대로여서, 큰일이었겠지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저희도 히토미 쨩과 함께 놀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오빠야, 아까웠네. 얼마 안 남았었는데.”
“이, 이봐! 히토미 쨩!”
놀리는 말투의 히토미 쨩을 유키 군이 잡으려 했지만, 히토미 쨩은 자신을 향해온 손을 스르르 빠져나가 부모님의 뒤로 잽싸게 숨어 버렸다.
“죄송해요, 왈가닥이어서.”
“아뇨, 전혀요. 귀여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기뻐요. 그런데, 이렇게 쉽게 히토미가 따르다니, 대단하네요. 이래 봬도, 친척을 상대로도 잘 따르지 않거나 해요.”
“분명, 같은 나잇대의 애들처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쓴웃음을 띄우며 아버지의 발에 매달려 있는 히토미 쨩을 본다. 히토미 쨩은 ‘히죽’이라는 부사가 어울리는 미소를 띄웠다. 그 머리를 아버지의 손이 상냥하게 쓰다듬난다.
“하핫, 그래도, 장래의 일을 생각하면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나요?”
“에?”
눈을 크게 뜨는 유키 군.
히토미 쨩의 아버지는 슬쩍 내게 눈길을 향했다.
…………엣, 나?!
“히토미 아버지, 그런 소리를 하니까 아저씨란 소리를 듣는 거예요.”
“맞아맞아, 아저씨, 아저씨.”
“이거, 곤란하네.”
부모자식 셋이서 화목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의미하는걸 이해하고.
나와 유키 군은 막상막하일 정도로 얼굴을 붉힌 거였다.
활기찼던 히토미 쨩 가족과 헤어졌을 때는 이미 굉장히 늦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밤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폐문 시간도 있고, 저녁을 먹고 전철로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앞으로 놀이기구 하나를 탈 수 있을지 어떨지 아슬아슬한 정도다.
관람차에 탔을 때 슬쩍 얼굴을 내밀었던 해님도 지금은 숨어서,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머리 위를 뒤덮고 있다. 대신에 공원 안에 조명이 비치고 있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 인공적인 찬란한 빛이 꿈나라를 다시금 신비한 세계로 바꿔 간다.
“오래 기다릴 시간도 없나……어떡할까요?”
시계를 보면서 유키 군이 말한다.
이 시간이 되어도, 아직 인기 놀이기구의 긴 줄은 끊이지 않는다. 그것들에 늘어설 정도의 시간 여유는 없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유키 군에게 부탁했다.
“저기, 유키 군. 마지막에 타고싶은 게 있는데요.”
우리는 그 날, 마지막 놀이기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섯 번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