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프린세스·나이트 다섯 번째
밤의 장막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히 밤은 가까워져 오고 있다. 그건 즉, 종막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 꿈나라에서 보내던 꿈같은 시간의 종언.
하지만 슬퍼할 건 없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고, 끝에서 다시금 새롭게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나는 간신히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이기에 바라고 싶은 것도 있다.
아쉬워하는 듯이, 하루 내내 걸어 다닌 놀이공원 안을 천천히 나아간다. 아직 유키 군에게 목적지는 말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유키 군은 내가 향하는 곳을 이것저것 상상하며 물어보지만, 전부 다 꽝.
과연 유키 군은 내가 향하는 곳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유키 군이니까 기막혀 하는 것 같은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 흠칫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불안을 안으며 나아가, 이윽고 도착한 곳.
“여기……?”
“예.”
각양각색의 일루미네이션이 빛을 내고, 밝은 음악과 함께 우아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 기구는, 다른 화려한 놀이기구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수수하고 작은데다, 그다지 사람들이 몰려들 만한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꿈나라를 체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아래로 흔들리며 우아하게 달리는 백마. 뒤를 따르는 자그마한 마차. 그 주위를 달리는 갈색, 검은색, 각종 각색의 말들.
내가 찾아온 건 회전목마였다.
옛날부터 있었지만, 굉장히 인기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사람이 안 모이는 것도 아닌. 어린이들, 특히 여자애에게는 인기가 있는 놀이기구.
“여, 역시, 이상할까요.”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 마지막에 타고 싶은게 회전목마라니.
주뼛주뼛거리며 물어보자.
“그렇지 않아요. 그럼, 줄에 설까요?”
약간 늘어서 있는 줄을 향한다.
나도 옆에서 줄을 서고, 슬쩍 옆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저기, 혹시 싫다면, 기다려 주기만 해도 괜찮은데요. 저, 혼자서 타고 올 테니까.”
“응? 아니, 싫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요. 아니면 즐거움을 독점할 셈인가요?”
“그, 그런 건!”
나를 배려해서 말해주고 있는 걸까. 이토록 둔한 나라도, 이만한 나이의 남자애가 회전목마에 타는 건 틀림없이 부끄러운 일이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줄에 서 있는 건 어린애들과 그 부모님들 뿐이고.
“저기, 그래도.”
“아, 봐요, 줄 줄고 있어요. 가죠.”
이전 차례가 끝나고, 다음번으로 교대가 시작된다. 앞에서 줄을 서 있던 가족들에 뒤이어 안에 들어간다.
그리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어디에 탈지 자유라는 느낌이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백마 한 마리에 눈을 빼앗겼다. 눈이 상냥해 보이는, 훌륭한 갈기를 가진 하얀 말.
“괜찮나요?”
“아, 예.”
유키 군의 손을 빌려, 발판에 발을 대고 몸을 백마 위로 올린다. 말에 타자, 생각 이상으로 높아서 조금 놀랐다. 나는 옆으로 앉은 채로 봉을 붙잡았다.
“토도 양이 타면, 마치 공주님 같네요.”
“칭찬이 과해요. 그래도 그렇다면, 유키 군은?”
“아니, 저는 백마의 왕자님 같은 타입은 아니니까.”
백마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주변의 말들을 살펴보고 있자, 유키 군은 바로 옆에 나란히 있는 흑마의 등에 잽싸게 올라탔다.
“저는 평범한 말로.”
“왕자님이 아니라면……공주님을 지키는 기사님, 같은 건 어떨까요?”
“엣―, 그것도 안 어울리는데요.”
“후훗, 멋지잖아요.”
하며 미소 지은 순간.
버저가 울려, 천천히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꺄!”
“자, 꽉 붙잡아야죠.”
나는 당황하며 양손으로 봉에 매달린다.
그 모습을 보고 유키 군이 웃고 있다.
온화하지만 신나는 음악에 실려, 말과 마차는 즐거운 듯 달리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말에 타서 나는 주위에 눈을 향한다.
자그만 어린애들이 즐거운 듯한 소리를 내고, 부모님이나 밖에서 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여기에는 행복이 넘쳐 흐르고 있다.
나는 옆의 유키 군을 바라본다.
“우왓! 이녀석, 의외로 날뛰는데!”
그런 소리를 내며 장난치고 있다.
나는 웃는다.
나한테도 이렇게 가까이 행복이 있다.
꿈나라에서의, 꿈같은 시간은 끝난다.
그래도 끝나지 않는 건 확실히 있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원에 끝은 없다. 하지만 서서히 움직임은 느려져 가고, 음악도 함께 작아져 간다.
그리고 이윽고, 움직임은 완전히 멈춘다.
아이들이 말을 내려가는 걸 아쉬운 듯 바라보고 있자, 아래에서 손이 쑥 뻗어왔다.
“자, 공주님.”
거기에는 우아하다기보단 귀엽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멋진 기사님이 있었고.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백마의 등에서 내린 거였다.
저녁은 놀이공원 내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조명이 비치는 공원 안을 바라보며 먹는 식사는, 정말로 맛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게를 나가 출구를 향해 걷고 있자.
“아…….”
뺨에 닿는 차가운 물방울.
손바닥을 위로 향해 내밀어 보자, 비가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앗, 내리기 시작했어.”
똑, 똑, 떨어지는 느낌으로 내리던 것도 잠시뿐이었고, 바로 비의 기세는 강해져 갔다. 퍼붓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산 없이 걷기는 힘든 빗살. 경솔하게도 우리는 양쪽 다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떡할지 혼자 허둥거리고 있자.
“잠시 달릴까요?”
‘예’라고도 ‘아니오’라고도 대답하기 전에, 나는 손을 이끌려 달리게 되었다.
아직 겨울이 되기 전이라곤 해도, 역시나 밤의 비는 몸을 식힌다. 빨리 지붕이 있는 곳에 가지 않으면 감기가 걸릴지도 모른다. 주변에는 우리 외의 손님들도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루미네이션의 빛으로 빗방울이 각양각색으로 빛나, 신비한 커튼이 나부끼는 것만 같았다.
그런 비의 커튼 사이를 누비듯 달린다.
하지만.
“우왓?!”
빛이 있다고 해도, 한낮의 밝기완 비교할 게 안된다. 뭔가에 발이 걸린 건지, 아니면 비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웠던 탓인지, 유키 군이 균형을 무너뜨렸다. 분명 유키 군 혼자였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 손을 잡고 있었고, 게다가 덩달아 나까지도 자세를 무너뜨려 버렸다.
앗, 하고 생각할 순간도 없었다.
나와 유키 군은 사이 좋게 땅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그리 빨리 달린 건 아니었기에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빗물이 고인 곳에 힘껏 쓰러져 버렸으니까.
“으앗, 토, 토도 양, 괜찮아?!”
“에, 예, 그럭저럭 괜찮아요.”
“아니, 전혀 괜찮지 않잖아요! 아아, 옷도 머리도 더러워져서.”
확실히 말한 대로 모처럼 새로 산 옷도 바지도 흙탕물에 젖어 버렸다. 머리카락도 적셔 버렸고, 넘어진 순간에 물보라가 화려하게 얼굴도 두드렸으니, 분명 굉장한 상태가 되어 있겠지.
그건 유키 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키 군은 그런 자신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고, 계속 사과하면서 더러워진 부분을 닦아주려 해 주고 있었다.
“정말 미안. 뭐라고 하면 좋을까, 정말, 면목이 없어…….”
“푸우.”
열심히 닦아 주고 있는 상황에, 나는 웃어 버렸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유키 군.
“그치만 유키 군, 사과하기만 하고. 처음에 제가 계속 사과하고 있을 때, 충고해 줬었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거랑 이건.”
“아, 그러고 보면. 다음에 사과하면 페널티였죠?”
“에, 아니, 그.”
어째설까.
이렇게 비에 맞으며, 옷도 머리카락도 얼굴도 흙탕물에 젖어 더러워져 버렸는데 나는 웃어버렸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적에 이렇게 흙투성이가 되어서 놀거나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왠지 즐거운 듯한 기분이 들어 버린 거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상황인데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유키 군은 당황하고 있다.
“이, 일단.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죠.”
아직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내게, 손을 내밀어 준다.
그 손을 잡으며.
“……그럼, 페널티는.”
“에?”
손에 이끌려 일어난다.
앞머리에서 물이 떨어져 내렸지만, 그건 닦지도 않으면서 나는 유키 군을 바라보고.
“제 집까지 바래다주시겠어요?”
비로 무거워진 머리카락을 너풀거리며 물어본다.
한순간의 정적.
그리고 자아낸 말.
“……정말, 그건 페널티가 안 돼요. 밤이 되어 버려서 처음부터 그럴 셈이었으니까요.”
엷고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지나가는 비였던 모양이라, 어느샌가 빗방울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젖어 더러워진 몸을 일단 놀이공원 내의 선물 가게에서 산 타월로 닦고, 귀로에 올랐다. 역시나 도중에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다 그 이야기를 꺼냈다간, 유키 군이 죄책감을 느껴 버릴 거고, 걱정도 끼쳐 버린다.
몸이 추운 걸 잊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놀이기구가 재밌었는지, 뭐가 힘들었는지, 사실은 껄끄러웠던 거라거나.
말을 나누며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 쇼구지(小寓寺)까지 도착했다. 심야라고 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는 시간이지만, 이 주변은 이미 어둡고 조용하다.
페널티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좀 더 함께 있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신기한 감정이었고, 이 감정이 맺혀서 말로 부탁을 꺼낸 것도 의외였다.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몸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있었다면, 즐거웠던 하루도 어딘가 쓸쓸해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절의 문 앞에서 유키 군은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몸이 차가운 채로 돌려보낼 순 없다. 유키 군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지만, 나도 꺾일 수야 없었다. 이럴 때의 나는 굉장히 완고한 거다.
이윽고, 문에서의 소동을 알아챈 어머니가 나와서 가세해, 반쯤 억지로 유키 군을 집 안에 들였다.
안에 들어오면 들어온 대로, 어느쪽이 먼저 목욕을 할지로 다시 옥신각신.
나는 손님인 유키 군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유키 군은 여자인 내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며 물러나지 않는다.
둘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자.
“유키 군, 먼저 들어가 줘요. 봐요, 시마코는 이대로 머리카락이 길어서, 머리를 감는데 시간이 걸려요. 거기에 시마코의 성격을 생각하면, 유키 군이 기다리고 있으면 제대로 씻지도 않고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 먼저 후딱 다녀와 줘요.”
라는 어머니의 한마디.
그걸로 간신히, 유키 군이 먼저 욕탕에 들어가게 된 거였다.
유키군을 욕탕으로 안내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데리고 거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 사이에 더러워진 옷을 벗고, 움직이기 쉬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은 듯, 싱글벙글 웃으며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꽤 성실해 보이는 남자애잖냐. 그 애가 시마코의 애인이니?”
“저……저희는 아직,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흐음. ‘아직’이라는 건, 앞으론 될 예정이 있다는 걸까.”
“아, 아버지!”
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유키 군을 데려오면 이런 반응을 보이리란 건 예측할 수 있었을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에 생각이 전혀 미치지 않아, 마음의 준비도 돌려줄 말도 준비해 두지 않았었다.
차를 따르며 어머니도 표정을 풀었다.
“그렇구나, 시마코가 처음 집에 친구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더니, 그게 남자애였다니.”
“그렇기에 인생은 재밌다는 거야.”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왠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그래도 실제론 깜짝 놀랐어. 내 얼굴을 보고 처음 한 말이, 힘차게 고개를 숙이면서 ‘아가씨를 더럽혀 버려서 죄송합니다!’였다고. 딸을 가진 부모 입장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할까, 주먹이 나갈 뻔 했었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었지만.
어떤 의미로 생각했던 건지를 이해하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를 비난했다.
“유키 군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굉장히 신사적이에요.”
“알고 있어. 시마코가 집에 데려올 정도니까.”
결국은 이야기가 거기로 향해 버린다.
나는 부끄러워서, 조용히 차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목욕을 마친 유키 군은 바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목욕 후에 바로 그러면 몸이 식는다고 어머니가 만류해, 결국 내가 목욕을 마칠 때까지 집에 있었다. 내가 목욕하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께 잔뜩 놀림받았겠지. 유키 군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있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목욕을 마친 내 모습을 보곤 얼굴이 그 배로 새빨개져 버려서, 다시금 아버지가 웃고 있다.
(덧붙여서 나도 무심코 평소처럼 나와 버려서, 당황하며 자기 방으로 달아나 버렸지만.)
이러저러하다가 유키 군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타서, 가까운 역까지 보내주는 걸로 되었다. 역까지 가는 길에서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기를 빌 뿐이다.
한편 나는 어딘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어떤 걸까. 나는 유키 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홀로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자, 누군가가 뒤에서 상냥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어머니가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안달하지 않아도 돼. 시마코가 자신의 마음을 깨달을 날은 자연스럽게 올테니까.”
“그런……걸까요?”
“그런 법이야.”
어머니의 말에는 신비하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말없이 끄덕인다.
“그것보다.”
“?”
뒤에서 어머니가 우스운 듯 입가를 누르고 있다.
“……아무리 갈아입을 게 없었다곤 해도, 조금 불쌍했으려나.”
“아.”
그렇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나도 웃어 버렸다.
아버지의 옷을 입고, 정말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키 군을 떠올리고.
에필로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