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무렵부터 나, 토리이 에리코는 뭐든지 할 수 있었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야. 물론, 어렸을 무렵에는 그걸 특별히 의식한 적은 없었어. 단지 공부든 스포츠든 ‘왜 이런 걸 다른 애들은 못하는 걸까.’같은 생각은 들었지만. (뭐,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꽤 아니꼽게 들릴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러다 보니, 유치원 때부터 초등부 때까지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존재였던 거야. 성적은 톱, 운동도 운동부 애들한테 안 밀리고,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날 의지하고. 그럭저럭 즐거웠었고 알찬 생활이었던 것 같지만, 중등부에 진학하기 좀 전부터 사고방식이 차가워져 갔어.
‘아아, 또 변함없는 하루하루가 3년간 이어지는 건가.’
――식으로.
동시에, 나는 자기 자신의 한계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 우선 그걸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게 스포츠나, 미술이나 음악 같은 분야들이었어. 확실히 나는 뭘 하든 평균보다는 잘 할 수 있었어.
농구, 체조, 그림, 리코더, 서도.
하지만, 뭘 하든 ‘자신 이상의 존재’가 나오기 시작했어.
물론 나도 노력은 했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일정선을 넘을 수가 없었어. 일정선까지 도달하는 건 누구보다도 빨랐는데, 그 선을 넘어갈 수 있는 건 나중에 쫓아온 다른 애들이었어.
이게 안된다면 저거. 저게 안된다면 그거. 그래도, 어디까지 가든 마찬가지 일이 되풀이 됐어. 뭘 하든, 나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지점이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거야. 그리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로서 나를 향해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충격을 받았어.
중등부에 올라간 다음엔, 공부에서마저 같은 일이 일어났어.
수석―――미즈노 요코의 손으로.
학년 톱의 자리를 뺏긴 건 꽤 충격이었어. 하지만 바깥에서 수험을 쳐서 들어온 학생들의 점수와, 안에서 엘리베이터 식으로 진급이 정해졌던 내 점수를 숫자 그대로 비교할 순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1학년 첫 중간고사·기말고사에선 태어나서 처음인 수준으로 진지하게 시험 공부를 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결과는―――물론 참패.
아니, 졌다곤 해도 요코가 톱이고 내가 2위. 점수차도 10점도 안 되는 수준이었어. 주위에서 보기엔 ‘아까웠네’ 한 마디로 끝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철저하게 박살났다는 느낌밖에 안 들었어.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제대로 시험공부같은 건 한 적 없었던 내가 시험 전에 공부를 꽤 열심히 했는데도 시원스레 그 위로 올라가 버린 거니까. 나는 깊디깊은 충격을 받았고―――그와 동시에,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안도하는 마음이 있는 걸 깨달았어.
‘우등생’이라는 상표에 나 스스로도 지쳐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이걸 기회로 들러붙어있던 ‘우등생’ 상표를 요코에게 넘겨주는 걸로 했―――긴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는 건 한참 뒤의 일이야.
그도 그럴게, 만장일치로 학급위원으로 선출된 요코가 다른 한 자리에 나를 추천했었으니까.
1학년 때는 외부수험으로 들어온 요코가 아직 릴리안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2학년 때는 어쩌다 보니. 그 2년간, 나는 미즈노 요코에겐 여러 의미로 당할 수 없다고 느꼈어.
성적 톱, 미목수려, 이것만으로도 동성에게 미움받을 요소는 가득할텐데, 밉살스런 부분이 한 군데도 없어. 남들을 잘 배려해주고, 어떤 상대든 좋은 부분을 찾아내서 상대의 체면을 세워줘. 더군다나 그게 어찌 듣든간에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걸로밖에 안 느껴지는데다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없고.
솔직히, 이렇게 완벽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보는 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처음이었어. 물론, 아직 중학생이니까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 생각은 안 바뀌었어. 게다가 요코는 노력하는 사람이었어. 노력하는 재능이라느니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그 말을 실현하는 사람하고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었어. 요코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리고 그 결과를 착실히 쌓아 올려나갈 수 있는 드문 사람이었어. 내가 노력을 해도 부수지 못했던 벽을 요코는 부수는게 아니라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한 끝에 뛰어넘어 가는 거야. 그래서 나는 요코를 당할 재간이 없다고 솔직히 인정한 거야.
나중에 특별한 존재가 될 요코와의 만남이, 짓궂게도 내가 포기하게 되는 계기가 된 거지.
이렇게 나는, 재밌다고도 지루하다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중학생활을 보내게 됐어. 특히 요코와, 그리고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이와도 같은 반이 된 3학년 때는 제일 괴로운 1년간이었을지도 몰라.
우등생 상표를 아직 떼어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노력할 만큼 기력이 솟아 오른 것도 아냐. 그 때는 빨리 고등부에 올라가고 싶다고 간절히 빌었었다니까.
그리고 진급해온 고등부.
당연한 일이지만, 고등부에 올라간다고 해서 따분해지지 않을 린 없었어. 주위는 거의 중등부에서 같이 올라간 동급생들. 환경이 바뀌고, 선생님이 바뀌고, 교복이 바뀌고, 수업내용이 바뀌고, 그런데도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아서.
좀 신기하게 느꼈던 건 거의 처음때 뿐이었어. 얼마 안 가서 따분한 일상이 돌아와, 이런 나날이 아직 3년이나 이어지리라는 걸 생각한 것 만으로도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을 무렵,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어.
“안녕, 토리이 에리코 양.”
“…………하?”
내가 생각해도 얼빠졌다곤 생각하지만, 잠시 반응을 할 수 없었어. 그건 릴리안에서 익숙한 ‘평안하세요’라는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소리가 마리아상의 뒤에서 들려왔기 때문인지.
내가 당황하고 있으니, 마리아상의 뒤에서 여성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어. 딱히 마리아상이 말을 했다거나 한 건 아냐. 당연하지. 그래도, 의표를 찔린 건 확실했어.
“…………아아, 안녕하세요.”
나도 당황하고 있었던 거겠지. 평소엔 학교 안에서 입에 담을 일 없는 인사로 돌려줘 버렸어.
“아하핫, 미안 미안, 놀라게 했니?”
그 여성은 내 모습이 꽤나 우스웠던 건지, 낄낄 웃곤, 배를 누르며 천천히 다가왔어.
“이야―, 그래도 좋은 타이밍이었어.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부끄러워서 이런 짓은 못했을 거고.”
“……저는, 괜찮은 건가요?”
“물론. 그도 그럴게,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인 걸.”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상급생이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엮인 적 있는 상대일까. 혹시나, 중등부때 동아리의 선배같은 거려나. 전혀 기억이 안 났어.
눈은 약간 치켜 올라간 느낌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미인에 속할만한 모습이었어. 몸은 잘 빠졌고, 어깨에서 등까지 내려올 정도로 머리도 길고. 그런데도 역시나, 낯설었어.
“그리 잘 안 통했던 걸까?”
“아뇨, 통하고 안 통하고 이전에, 단순히 놀랐던 것 뿐이에요.”
“어머, 따분한 나날에 질려서 자극에 굶주려 있다……고 소문으론 들었었는데.”
“그건 뭐, 그렇긴 한데요…….”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마리아상 뒤에서 마리아님인 척을 하고(?) 슬그머니 말을 걸어오는 건 뭐하는 걸까.
내가 당혹해하는건 신경쓰지도 않는 것 처럼, 그녀는 입을 열었어.
“토리이 에리코 양. 성적은 항상 학년 톱 클래스. 운동도 뭐든 할 수 있어서 각 동아리에서 권유의 손길이 가득하지만, 아직껏 아무런 동아리에도 속해있지 않고. 역시나 당연하게도 자매 신청도 잔뜩 들어오지만, 누구와도 자매의 연을 나누지 않고 현재에 이름.”
술술 말하는 그 내용을 듣고 느낌이 왔다. 지금까지 얼마든지 있었던, 여동생이 되지 않겠냐는 권유겠지.
나는 그리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상급생들에게 나름대로 알려져 있는 모양인지 동아리에도 위원회에도 속해있지 않은데도 자매의 연을 맺자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았어. 하지만, 지금까지 건네온 로자리오를 받은 적은 없어.
연을 맺고자 한 사람들은, 육상부의 에이스거나 취주악부의 부장 등, 듣기론 다들 하급생으로부터 동경받는 사람들이었다고 해. 그래도 실례긴 하겠지만, 로자리오를 받고 싶다고 느끼게 만든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지금까지 연을 맺고자 한 그 누구와도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바로 결단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나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아아, 그렇게 고민하지 말아 줘. 딱히 로자리오를 건네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아, 그러신가요.”
“그도 그렇잖니. 아무리 당신이 멋지다고 해도,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 취향일지 어떨지도 모르고, 내 이상적인 여동생의 모습에 맞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지금 단계에서 건넬리 없잖니. 그래도 당신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서, 정말 건네고 싶다고 느끼게 되면 당신이 싫다고 해도 받게 만들겠지만.”
뭐 이리도 강제적인 사람인지. 그래도, 결코 나쁜 기분은 안 들었어.
“그렇네요. 저도, 당신을 언니로 삼고 싶다고 느끼면, 당신에게 거절당하더라도 어떻게든 로자리오를 받아낼 테니까요.”
“어머, 그 시점에 이미 내게 여동생이 있다면?”
“그러면 포기할래요. 연이 없었다는 걸로. 아수라장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담백하네―. 뭐, 됐나. 오늘은 얼굴을 익힌 걸로 하고, 여기서 헤어지자.”
마지막에 “평안하세요”라며 우아한 인사를 하곤 그 사람은 물러갔어. 누구였던 걸까 하는 의문이 풀린 건 그 다음 날이었어. 그럴 수 밖에 없었던게, 그녀가 교실에 온 순간 “황장미 봉오리야!”하는 새된 환성이 교실 안에 크게 울려퍼졌으니까.
그래, 나한테 말을 건 여성은, 황장미 봉오리였던 거야――――
옐로 로즈는 잠들지 않아 (1)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야. 물론, 어렸을 무렵에는 그걸 특별히 의식한 적은 없었어. 단지 공부든 스포츠든 ‘왜 이런 걸 다른 애들은 못하는 걸까.’같은 생각은 들었지만. (뭐,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꽤 아니꼽게 들릴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러다 보니, 유치원 때부터 초등부 때까지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존재였던 거야. 성적은 톱, 운동도 운동부 애들한테 안 밀리고,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날 의지하고. 그럭저럭 즐거웠었고 알찬 생활이었던 것 같지만, 중등부에 진학하기 좀 전부터 사고방식이 차가워져 갔어.
‘아아, 또 변함없는 하루하루가 3년간 이어지는 건가.’
――식으로.
동시에, 나는 자기 자신의 한계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 우선 그걸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게 스포츠나, 미술이나 음악 같은 분야들이었어. 확실히 나는 뭘 하든 평균보다는 잘 할 수 있었어.
농구, 체조, 그림, 리코더, 서도.
하지만, 뭘 하든 ‘자신 이상의 존재’가 나오기 시작했어.
물론 나도 노력은 했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일정선을 넘을 수가 없었어. 일정선까지 도달하는 건 누구보다도 빨랐는데, 그 선을 넘어갈 수 있는 건 나중에 쫓아온 다른 애들이었어.
이게 안된다면 저거. 저게 안된다면 그거. 그래도, 어디까지 가든 마찬가지 일이 되풀이 됐어. 뭘 하든, 나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지점이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거야. 그리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로서 나를 향해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충격을 받았어.
중등부에 올라간 다음엔, 공부에서마저 같은 일이 일어났어.
수석―――미즈노 요코의 손으로.
학년 톱의 자리를 뺏긴 건 꽤 충격이었어. 하지만 바깥에서 수험을 쳐서 들어온 학생들의 점수와, 안에서 엘리베이터 식으로 진급이 정해졌던 내 점수를 숫자 그대로 비교할 순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1학년 첫 중간고사·기말고사에선 태어나서 처음인 수준으로 진지하게 시험 공부를 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결과는―――물론 참패.
아니, 졌다곤 해도 요코가 톱이고 내가 2위. 점수차도 10점도 안 되는 수준이었어. 주위에서 보기엔 ‘아까웠네’ 한 마디로 끝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철저하게 박살났다는 느낌밖에 안 들었어.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제대로 시험공부같은 건 한 적 없었던 내가 시험 전에 공부를 꽤 열심히 했는데도 시원스레 그 위로 올라가 버린 거니까. 나는 깊디깊은 충격을 받았고―――그와 동시에,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안도하는 마음이 있는 걸 깨달았어.
‘우등생’이라는 상표에 나 스스로도 지쳐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이걸 기회로 들러붙어있던 ‘우등생’ 상표를 요코에게 넘겨주는 걸로 했―――긴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는 건 한참 뒤의 일이야.
그도 그럴게, 만장일치로 학급위원으로 선출된 요코가 다른 한 자리에 나를 추천했었으니까.
1학년 때는 외부수험으로 들어온 요코가 아직 릴리안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2학년 때는 어쩌다 보니. 그 2년간, 나는 미즈노 요코에겐 여러 의미로 당할 수 없다고 느꼈어.
성적 톱, 미목수려, 이것만으로도 동성에게 미움받을 요소는 가득할텐데, 밉살스런 부분이 한 군데도 없어. 남들을 잘 배려해주고, 어떤 상대든 좋은 부분을 찾아내서 상대의 체면을 세워줘. 더군다나 그게 어찌 듣든간에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걸로밖에 안 느껴지는데다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없고.
솔직히, 이렇게 완벽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보는 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처음이었어. 물론, 아직 중학생이니까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 생각은 안 바뀌었어. 게다가 요코는 노력하는 사람이었어. 노력하는 재능이라느니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그 말을 실현하는 사람하고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었어. 요코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리고 그 결과를 착실히 쌓아 올려나갈 수 있는 드문 사람이었어. 내가 노력을 해도 부수지 못했던 벽을 요코는 부수는게 아니라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한 끝에 뛰어넘어 가는 거야. 그래서 나는 요코를 당할 재간이 없다고 솔직히 인정한 거야.
나중에 특별한 존재가 될 요코와의 만남이, 짓궂게도 내가 포기하게 되는 계기가 된 거지.
이렇게 나는, 재밌다고도 지루하다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중학생활을 보내게 됐어. 특히 요코와, 그리고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이와도 같은 반이 된 3학년 때는 제일 괴로운 1년간이었을지도 몰라.
우등생 상표를 아직 떼어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노력할 만큼 기력이 솟아 오른 것도 아냐. 그 때는 빨리 고등부에 올라가고 싶다고 간절히 빌었었다니까.
그리고 진급해온 고등부.
당연한 일이지만, 고등부에 올라간다고 해서 따분해지지 않을 린 없었어. 주위는 거의 중등부에서 같이 올라간 동급생들. 환경이 바뀌고, 선생님이 바뀌고, 교복이 바뀌고, 수업내용이 바뀌고, 그런데도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아서.
좀 신기하게 느꼈던 건 거의 처음때 뿐이었어. 얼마 안 가서 따분한 일상이 돌아와, 이런 나날이 아직 3년이나 이어지리라는 걸 생각한 것 만으로도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을 무렵,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어.
“안녕, 토리이 에리코 양.”
“…………하?”
내가 생각해도 얼빠졌다곤 생각하지만, 잠시 반응을 할 수 없었어. 그건 릴리안에서 익숙한 ‘평안하세요’라는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소리가 마리아상의 뒤에서 들려왔기 때문인지.
내가 당황하고 있으니, 마리아상의 뒤에서 여성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어. 딱히 마리아상이 말을 했다거나 한 건 아냐. 당연하지. 그래도, 의표를 찔린 건 확실했어.
“…………아아, 안녕하세요.”
나도 당황하고 있었던 거겠지. 평소엔 학교 안에서 입에 담을 일 없는 인사로 돌려줘 버렸어.
“아하핫, 미안 미안, 놀라게 했니?”
그 여성은 내 모습이 꽤나 우스웠던 건지, 낄낄 웃곤, 배를 누르며 천천히 다가왔어.
“이야―, 그래도 좋은 타이밍이었어.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부끄러워서 이런 짓은 못했을 거고.”
“……저는, 괜찮은 건가요?”
“물론. 그도 그럴게,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인 걸.”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상급생이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엮인 적 있는 상대일까. 혹시나, 중등부때 동아리의 선배같은 거려나. 전혀 기억이 안 났어.
눈은 약간 치켜 올라간 느낌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미인에 속할만한 모습이었어. 몸은 잘 빠졌고, 어깨에서 등까지 내려올 정도로 머리도 길고. 그런데도 역시나, 낯설었어.
“그리 잘 안 통했던 걸까?”
“아뇨, 통하고 안 통하고 이전에, 단순히 놀랐던 것 뿐이에요.”
“어머, 따분한 나날에 질려서 자극에 굶주려 있다……고 소문으론 들었었는데.”
“그건 뭐, 그렇긴 한데요…….”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마리아상 뒤에서 마리아님인 척을 하고(?) 슬그머니 말을 걸어오는 건 뭐하는 걸까.
내가 당혹해하는건 신경쓰지도 않는 것 처럼, 그녀는 입을 열었어.
“토리이 에리코 양. 성적은 항상 학년 톱 클래스. 운동도 뭐든 할 수 있어서 각 동아리에서 권유의 손길이 가득하지만, 아직껏 아무런 동아리에도 속해있지 않고. 역시나 당연하게도 자매 신청도 잔뜩 들어오지만, 누구와도 자매의 연을 나누지 않고 현재에 이름.”
술술 말하는 그 내용을 듣고 느낌이 왔다. 지금까지 얼마든지 있었던, 여동생이 되지 않겠냐는 권유겠지.
나는 그리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상급생들에게 나름대로 알려져 있는 모양인지 동아리에도 위원회에도 속해있지 않은데도 자매의 연을 맺자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았어. 하지만, 지금까지 건네온 로자리오를 받은 적은 없어.
연을 맺고자 한 사람들은, 육상부의 에이스거나 취주악부의 부장 등, 듣기론 다들 하급생으로부터 동경받는 사람들이었다고 해. 그래도 실례긴 하겠지만, 로자리오를 받고 싶다고 느끼게 만든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지금까지 연을 맺고자 한 그 누구와도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바로 결단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나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아아, 그렇게 고민하지 말아 줘. 딱히 로자리오를 건네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아, 그러신가요.”
“그도 그렇잖니. 아무리 당신이 멋지다고 해도,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 취향일지 어떨지도 모르고, 내 이상적인 여동생의 모습에 맞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지금 단계에서 건넬리 없잖니. 그래도 당신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서, 정말 건네고 싶다고 느끼게 되면 당신이 싫다고 해도 받게 만들겠지만.”
뭐 이리도 강제적인 사람인지. 그래도, 결코 나쁜 기분은 안 들었어.
“그렇네요. 저도, 당신을 언니로 삼고 싶다고 느끼면, 당신에게 거절당하더라도 어떻게든 로자리오를 받아낼 테니까요.”
“어머, 그 시점에 이미 내게 여동생이 있다면?”
“그러면 포기할래요. 연이 없었다는 걸로. 아수라장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담백하네―. 뭐, 됐나. 오늘은 얼굴을 익힌 걸로 하고, 여기서 헤어지자.”
마지막에 “평안하세요”라며 우아한 인사를 하곤 그 사람은 물러갔어. 누구였던 걸까 하는 의문이 풀린 건 그 다음 날이었어. 그럴 수 밖에 없었던게, 그녀가 교실에 온 순간 “황장미 봉오리야!”하는 새된 환성이 교실 안에 크게 울려퍼졌으니까.
그래, 나한테 말을 건 여성은, 황장미 봉오리였던 거야――――
두 번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