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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03


“누구 있어?”
제이미는 이번엔 둘러보기만 하는 대신 직접 움직여서, 화장실 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기야, 제이미 앨리슨.” 다시 한 번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어디?”
눈살을 찌푸리는 제이미였다. 안그래도 오늘 여러모로 지랄인데, 누가 또 거기다 부채질을 하는 거야?
아무래도 다른 선생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애인지는 몰라도 잡히면 그냥–
“아니, 제이미. 나는 이 학교 학생도 아니고, 너한테 장난을 치는 것도 아냐.”
“어!?”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으면서, 제이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삣 선 채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난 아무 말도 안했는데!? “물론 안했지.” 이런 그녀에게 계속해서 말이 전해져 왔다.
“다만 생각했어. 그리고 그게 나한테 보이는 거고.”
“뭐,” 제이미가 입을 열었다. “뭔 개소리야?” 그녀는 다시 한 번, 화장실 안을 뒤져보았다.
이번에는 화장실 밖에도 한 번 보았으나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이에 멍하니 서 있는 제이미에게 다시 누군가가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내가 있는 곳은– 아니, 난 방송실에 있는 게 아냐, 제이미. 일단 내 말을 좀 들어.”
“무슨 말?”
교직원실에 전화를 하려다가 멈춘 제이미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너 같으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말을 들어 주겠냐?”
말하지도 않은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이가 없어가지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그녀였다. 지금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대체 누구란 말인 걸까. 게다가 생각을 본다니…
“하,”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치는 대신 코웃음을 치는 그녀였다. 그런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야 저 사람은?
“가능해. 다만 네가 생각하는 대로, 그런걸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인간이 없어서 그렇지.”
“뭐?”
뭐야, 자기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 누군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아아, 그러셔? 그럼 넌 뭐야?”
“난 엔시나야.”
“응?”
아니 그 누군가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뭔 이름이 그래?” 반쯤 웃으며.
“아냐아냐, 니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너 대체 뭐냐고?”
이건 대체 뭔 장난질이란 말야? 이름은 지금까지 들어본 중에 가장 괴상하고, 지는 무슨 인간이 아니라 그러질 않나.
아, 혹시 모른다. 요즘 사람들 참 별별 연구를 다 하니까. 어쩌면 누가 그녀에게 장난치려고–
“제이미, 나는 동물이 아냐.”
또다시 생각을 읽기라도–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딴 거 없지만–한 건지, 그것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좀 더 넓은 범부에서 보자면 세상 모든 게 동물이니까 맞겠지. 하지만 난 앵무새도 아니고 원숭이도 무엇도 아냐.”
하지만 저게 뭐라고 하든, 제이미는 어느새 또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그녀에게 조곤조곤 타이르듯, 혹은 훈계하듯 말하는 것에 제이미는 슬슬 짜증이 치솟았던 참이라, 다시 발을 움직인 그녀는 이번엔–
“화장실은 그만 뒤져. 나는 거기 없다니까.”
“아, 좀!”
그녀는 정말로 참지 못하게 되기 전에 먼저 언성을 높였다. “그럼 어디 있다는 건데!?” 안그래도 오늘 정말 가지가지 있었겠다, 이제는 웬 보이지도 않는 게 말을 걸어오면서 무슨 인간이 아니네 지 이름은 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뭐라 그러니,
아침에 잠이 덜 깼을 때는 정말 놀라는 정도로 끝났지만, 이제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당장 멱살부터 잡고 볼 기세였다.
“으음,”
정말로 화를 내는 모습에 주춤했는지, 잠시 말하기를 주저하는 그… 이상한 이름의 그것.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괴상함 때문인지, 안그래도 잔뜩 성이 난 제이미의 머릿속에서 잠깐 스치고 끝나 버리는 정도였다.
“내 이름은 엔시나야.”
한편 이것까지도 금방 읽었는지, 친절하게(?) 다시 이름을 말해주는 그것.
“그리고 내가 어디 있는지는… 어,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너를 봐서는 내가 말로 해줘도 별로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인데,”
“흐응?”
'지금까지의 나를 봐서는' 이라니, 그럼 지금까지 그녀를 스토킹했다는 의미가 된다.
제이미는 완전히 뭐 씹은 얼굴을 하고서 “이런 씨…” 자동적으로 욕부터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저런 변태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도 충분히 뭐라 지껄이면서 사람 협박하고 그런다지?
아, 진짜 더럽네. 이렇게 그녀가 속으로 그리고 입 밖으로 욕지거리를 하는 사이, 그 '변태'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디 있는지는 너가 직접 파악해 봐야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
“옘ㅂ… 어?”
욕을 멈추고서 고개를 살짝 드는 그녀였다. “내가 직접 파악하라니?” 무슨 탐정놀이라도 시키는 걸까.
아니, 지금 누가 누구한테 뭘 시키는 거야? 제이미의 얼굴은 매섭게 일그러졌다. “그러지 말고,” 그러자 다시 들려오는 한 마디.
“일단 진정해, 제이미. 이미 말했지만 그건 좋은 성격, 그러니까 태도가 아냐.”
“어디서 잔소리야!”
다시 소리를 버럭 지르는 제이미. “너가 뭐든 간에,” 어떤 스토커인지는 몰라도 진짜 더럽기 짝이 없다고 여기며,
“진짜 나한테 잡히기만 하면 아주 죽을 때까지 그냥–”
“거기 제이미 선생인가요?”
“윽,”
순간, 교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제이미는 입을 꾹 다물고는, “아, 네, 네에!” 애써 평소의 그 밝은 목소리를 냈다. 잔뜩 일그러졌던 얼굴도 누가 그랬냐는 듯 곧바로 펴며, 곧 화장실로 들어오는 교감을 시원하게 맞이했다.
“응?”
교감이 말했다.
“아무도 없네? 혼자 뭐 하고 계셨어요?”
“아, 어,”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녀였다. “그,” 하지만 곧 손에 아직 폰을 쥐고 있음을 알고 얼른 말했다.
“그게, 아, 아는 친구랑 얘기하는 중이었거든요. 좀 잔말이 많은 애라… 하하하.”
“호호, 역시 젊어서 좋네요.”
다행히 교감은 별 의심하는 기미는 없어 보였다.
하긴, 뭔 핑계를 대든 지금 여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그렇게 전화하면서 성질도 내고 그럴 수 있는 때가 좋은 거예요.”
교감은 정말로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혹시 선생, 남친은 있나요?” “네?” 제이미는 눈이 동그래졌으나, 곧
“아뇨, 없어요.”
솔직히 대학 때 연애질이나 하고 다녔다면 벌써부터 교사 일을 하고 있었을 리 없다.
물론 워낙에 그녀가 쌀쌀맞게–뭐, 적어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 말로는–대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거의 있지도 않았다고 해야 하나. 결국 어쩌다 보니 그녀도 연애에는 관심이 없게 되었다.
“아유,”
그리고 이런 그녀에게 안쓰럽다는 눈빛을 보내는 교감.
“지금 많이 해두는게 좋아요, 연애는. 이제 몇년 뒤면 결혼할 나이도 될 텐데.”
“아아,” 제이미는 뭐라고 말을 할지 몰라 그냥 웃었다. “네, 네에…”
“다시 말하지만 젊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럼 나중에 봐요.”
“아, 네. 수고하세요.”
얼른 인사를 하는 제이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교감은 먼저 나갔다. “후우,” 문이 닫히자 조그맣게 한숨을 쉬는 제이미. 곧 발소리도 점점 멀어지자, 그녀는 어쨌든 억지로나마 웃은 덕분인지 기분이 조금 풀려서, 자신도 곧 문을 열고 나갔다.
“가면서 들어.”
“힉–”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다시 복도를 걷는 순간 그 스토커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치려고 하는 제이미를 진정시키며, 그 기분나쁜 것은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제이미, 어느정도 진정이 됐으니 이쯤이면 알았을 거야. 애초에 내가 하는 말은 네 귀에 들리는 게 아니라는 걸.”
“어엉?”
저건 또 뭔 소리야. 다시 얼굴이 일그러지려 하는 제이미에게 그것은 “말 그대로야.”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굳이 목소리를 꺼내서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생각만 하면 알 수 있다고. 이전에 말했지만.”
”……”
아무 말 없이, 구겨진 얼굴만 다시 펴고서 계속 걷는 제이미. “그래.” 그러자 다시 말했다. “조금 낫네.”
그러나 제이미는 이제 저게 한 마디라도 더 지껄일수록 짜증만 치솟는 느낌이라,
아니, 애초에 무슨 지가 내 생각을 읽는다면서, 지금 이렇게 기분 잡치는 건 안 보이는 건가?
“물론 알지.”
순간, 제이미는 또다시 느껴지는 전혀 생소한 느낌에 딱 멈춰섰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 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응?”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보았으나, 역시 아무도 없자 다시 발을 움직였다. 이상하다. 지금 누가 어깨를 툭툭 친 것 같았는데?
“내가 했어.”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에 제이미는 “뭐?” 다시 입 밖으로 말을 하자, 그 스토커는
“너한테는 그저 느낌으로만 전해지는 거겠지만 말야. 어쨌든 이제 곧 애들도 많을 테니까 입 밖으로는 말하지 마.”
제기랄, 제이미는 어이가 없어서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냥 지가 닥치고 있으면 될 것을 뭘 이래라 저래라야? 하여간 도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 손에 잡히기만 하면 그냥…
“아, 선생님!”
그러다가 문이 스르르 열림과 함께 자신을 발견한 학생이 입을 열자,
어느새 다시 얼굴이 돌처럼 굳어있던 그녀도 “아! 응?” 교감을 만났을 때처럼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억지가 덜했다고 할까. 어느 때든 애들은 항상 그녀와 친하게 지냈으니까.
“걱정 마, 제이미.”
그리고 곧 다시 수업 시작이라는 걸 시계를 보고 알았을 때, 그녀에게 또 한 마디가 전해져 왔다.
“수업 중에는 아무 말 안할 테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난 너한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냐. 절대로.”
하, 그러시겠지. 제이미는 속으로 한마디 툭 흘리고는 책을 가지러 교무실로 향했다.
“좋아.”
그런데 정말로 나머지 수업 중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덕분에 시간도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갔다.
오늘의 마지막 마침표를 칠판에 콕 찍은 제이미는, “여기까지. 숙제 잘 해오고.” 마침인사와 함께 곧 교실을 나갔다.
꼭 이렇게 아무 탈 없이 수업을 해보는 게 아주 오랜만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서 그렇겠지만.
“저기,”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보건실로 향한 제이미는 문이 열림과 함께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진정제 있나요? 아니면 간단하게 수면제라도…”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묻는 말에 제이미는 다 닳아서 죽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늘 좀 정신이 없어서요.”
“헤, 정말요? 선생이 지치기도 하는구나.”
곧 약을 몇 알 건네받으며 “항상 쌩쌩하시더니.” 한 마디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다시 나온 제이미는,
정수기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서는 찬물 한 모금을 입에 문 채, 받은 네 알 중 두 알씩이나 한 번에 쓸어삼켰다. “하아,” 이어서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계속해서 지친 발걸음으로 자리를 정리하러 갔다.
[저기 오늘 내가 좀 피곤해서 그러는데, 상담은 내일 해줄게. 미안… 오늘 좀 평소같지가 않네 :(]
이모티콘까지 섞으며 문자를 보내 놓고, 그녀는 어느새 두통은 사라진 머리를 살살 누르며 발을 질질 끌었다.
오늘 잔뜩 예민하게 굴고 성질도 막 냈기 때문일까,
제이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제처럼 쇼파로 몸을 던지는 대신 느릿느릿 걸어가서 그 위에 픽 쓰러졌다. “으어어으!” 오늘 먹은 것들을 다 토해내듯 신음하면서. 그리고 TV를 켜는 대신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 보는 그녀였다.
“내일이…”
“금요일이야. 수업은 다섯 시간.”
“으, 으아!?”
벌떡 일어난 제이미. 그리고 이런 그녀에게 마치 누가 쯧쯧 혀를 차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뭐야,” 제이미는 핸드백 속에서 가져온 진정제를 찾았다. 분명 두 알이나 먹었는데? 벌써 효력이 다했나?
“어느새 나를 스토커에서 무슨 환청 취급하는 걸로 바꿔서 그러는데,”
한편 그녀가 이러는 와중에도 그 이상한 건 계속 말했다.
“나도 살아있는 한 존재라, 나름 인내심에 한계가 있어. 아무리 너한테는 지금 내가 말을 거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
“이상하다고?”
제이미는 이젠 소리를 지를 기력도 없어, 도로 쇼파에 풀썩 드러누운 채 끙끙거렸다.
“지금 이게 이상한 걸로 끝날 일이야? 이건 완전히 미친년이 된 거라고, 내가.”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너가 뭐를 어떻게 생각하든 결국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야.”
받아들이는 거 좋아하시네. 제이미는 힘없이 코웃음만 쳤다.
세상 어떤 호구년이 스토커나 환청을 받아들일까? 정말 그런 건 TV에도 나올 만한 게 아니었다.
“아, 몰라.”
이제 눈도 감은 채, 뭐라고 반박할 기력도 없어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그러나 여전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너가 뭐라고? 이름부터 진짜 이상했던데, 뭐였–”
“엔시나.”
그러면서 동시에 제이미는 저것이 벌써 세 번이나 이름을 말했다고 하는 게 묘하게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뭐가 전해지든 느껴지든 더이상 뭐라고 할 힘도 없어, 잠자코 듣기만 하는 그녀에게 엔시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이들을 주로 '혼령'이라고 불러.”
“뭐어?”
너무나 괴상한 말에 잠시 눈을 뜬 제이미. “아니,” 하지만 괜히 또 힘을 낭비하기는 싫은 그녀였다.
“그래, 뭐 혼령인지 뭔지 그렇다 치자. 계속해봐.”
“으음,”
자포자기 상태의 제이미에게 말을 계속 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 제이미는 다시 눈을 떴다. 저게, 그러니까 누구든 간에 지금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지? 지금 그녀는 저게 뭐라 하든 그냥 너는 지껄여라 난 누워 있는다 하는 식이었기에,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봤지?”
그리고 다시 놀라서 눈이 동그래져 있는 그녀에게 엔시나가 다시 말했다.
“지금은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 할 거야.”
”……”
어쨌든, 스토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진정제를 한번 더 먹어야 하나. 하지만 일어날 기력이 없어 가만히 누운 제이미는 “계속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말했지만, 나는 너한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냐.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고.”
이어서 잠시 말을 멈추다가 덧붙이는 엔시나.
“무엇보다, 나중에 가면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너가 스스로 눈치채게 될 거니까.”
뭔 말을 하는 걸까. 제이미는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긁었다. 나도 쟤 생각을 읽게 된다고? 뭔 그런 지랄이 다 있어?
“너가 대체 뭐하는 애길래 그래?”
제이미는 입을 열었다가 곧 말을 고쳤다. “아니,” 이건 아까도 물어본 것 같지만.
“그것보다 너 지금 어디서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그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어, 제이미 앨리슨.”
엔시나가 말했다.
“아무래도 네 태도를 봐서는, 너가 직접 깨닫기 전엔 믿지도 않을 거라고. 지금 내가 이렇게 하는 말도 그냥 흘리고 있잖아?”
“그거야…”
하긴,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
설령 그녀가 저… 엔시나인지 뭔지 하는 애 말대로 그걸 스스로 알아낸다고 해도–물론 그럴 리가 없지만–결국 똑같을 것이다.
지금 제이미 자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녀는 피로가 쌓여서인지 뭔지 웬 환청에 시달리는 꼴이니까.
그것도 아주 이상한, 정말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상한 그런 환청 따위에.
“후우,”
지금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생각한 순간 곧바로 한숨이 나온 제이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그녀가 말했다.
“난 씻고 잔다. 어디 그때까지 지껄일 거 있으면 실컷 지껄이고 보든가, 맘대로 해.”
적어도 스토커가 아닌 건 확실한 것 같으니, 지금 씻어도 문제가 될 건 없겠지.
하지만 자기를 엔시나인지 혼령인지 별 이상한 것으로 칭하는 그것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만일 저게 정말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지금 이 모든게 싹 씻고 한숨 푹 자면 나아질 거라 여기는 걸 알았겠지.
그런데 이런 제이미에게 오늘은 더이상 할 말이 없는지–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또 느껴졌다–엔시나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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