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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02


“한번쯤 보는게 좋을 것이다.”
의무,
“이게 사람들이야? 정말 특이하네.”
접촉,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어. 그 사람들이 말야.”
“약속이야.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알았지?”
예정에 없던 이별,
“당신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야. 도대체 사는 목적이 뭐야?”
새로운 삶, 그리고 또 새로운 삶, 그리고 또 몇 번이고,
“걱정 마요, 선배. 비밀은 지키니까.”
끊임없이, 끊임없이, 계속 끊임없이…
……
…..
….

..
.
“흑–”
갑자기 많은 양의 공기가 몸속으로 들이닥치는 것에, 제이미는 약한 경련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뭐 때문에 깨어났을까? 원래 자면서 꿈을 꾸는 것에 잘 신경쓰지 않는 그녀였기에,
분명 자면서 뭘 보고 들었던 것 같았음에도 금방 연기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다만 어째서인지 깨어남과 동시에 무언가 아주 무거운 것이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아니,
머리를 짓누른다기보단, 마치 머릿'속'을 짓누르는 듯한 아주 무겁고도 이상한 느낌이 그녀의 머리를 휘어잡기 시작한 것이다.
“어으으,”
교사 일을 하면서도 생전 이 정도, 아니 이런 종류의 두통은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이건 무언가 심각했다.  만일 그녀의 머리가 농구공이 될 수 있다면, 경기를 한 차례 치르고 난 뒤에 이런 느낌일까.
아니, 머리가 농구공이니 뭐니 이런 상상을 왜 하는 걸까. 그녀는 자기가 잠이 덜 깼음을 알았지만,
사람이 어쩌겠는가. 자기가 아직 잠결인 것을 인지하느냐의 여부와 정신을 차릴 수 있느냐의 여부는 다르다.
무엇보다, 머리의 이 감각 때문인지 이제 자기가 깨어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음에도 그냥 다시 자고 싶었다.
“물.”
너무나 피곤하다. 그리고 이럴 때면 그녀가 어느새 습관적으로 찾는게 물 한 잔.
언제부터 그런 습관이 생긴 건지는 모른다. “물…” 정신이 조금 들 때까지 손도 이곳저곳 바쁘게 뒤적이는 건 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대 머리맡에 물 한 잔 두고 잔 적이 없지만, 나름 피곤하게 살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달까.
물론 이럴 때마다 손에 닿는 건 오직 푹신한 베개나 이불 혹은 침대의 머리부분 뿐이다. 매일 이렇게 몇 분을 헤매다가……
…잠깐, 침대?
“아?”
아직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제이미는 누군가가 물을 한 컵 주기라도 한 것처럼 허우적대던 짓을 멈췄다. 내가 어제 침대에서 잤던가?
그리고 눈을 뜬 제이미. 확실히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분명 그녀는 어제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서 TV나 보고 있다가, 그러다가,
“TV… 어어…”
어째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입으로도 중얼거리며, 지금도 여전히 이상하게 무거운 머릿속을 휘저어 보는 그녀였다.  분명 TV를 보다가, 아, 그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나 아빠도 아닌…
“어?”
엄마도 아니었고 아빠도 아니었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왔다.
”……”
집안에 모르는 사람이 침입했다.
“으, 으와아!?”
찬물을 마신 게 아니라 몸에 끼얹은 것처럼, 제이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통과 피곤함 따위 유리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고, 그녀는 얼른 주위를 둘러본 뒤 다음으로는 자신을 들러보았다.
멀쩡한 잠옷. 아니, 멀쩡할 리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적도 없었는데?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히 누군가가 집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그걸 기억하려고 애쓸 때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마침 근처에 있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등 긁을 때 쓰던 거였지만,
지금은 이거라도 들어야 누구를 패든 말든 하지. 그녀는 마치 놀란 고양이마냥 동그란 눈으로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방을 나갔다.
꾸욱,
막대기를 찌부러뜨릴 듯 꽉 잡은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누구라도 마주쳤다간 바로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일단 거실을 확인한 뒤 슬금슬금 욕실로 들어간 그녀는, 욕실 또한 비었음을 알고 다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흠,”
하지만 주방 역시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상황.
이제까지 아주 묵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도 조금은 기가 풀렸으나,
그럼에도 분명 누가 집에 들어왔었음은 확실하기에 아직은 영 꺼림칙해서 일단은 한번 더 집을 둘러보–
“잠깐,”
싱크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녀는 다시 거실로 향하려던 찰나, 식탁에 웬 미세한 자국 하나를 발견했다. 원래부터 좀 예민한 그녀이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저런게 보일 정도로 완전히 곤두선 상태이니까.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게 뭔 자국인 걸까? 제이미는 약간 눌러진 듯한 그 흔적을 조용히 뜯어보았다. 나름 비싼 돈 주고 산 건데, 이런 자국이 나면 꼭 누가 열받아서 내려친 것 같잖아.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혹은 누가 여기 부딪히기라도 했나 싶은 그녀였다. 뭔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나가다가 부딪힌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아!”
그녀는 비로소 생각이 나서 그만 서 있는 채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 이상한 빛! 도대체 뭐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일단 집 안을 둘러보자고 했나 싶었는데,
이제서야 어제 자기가 기절해서 그대로 바닥에 뻗었다는 게 생각나고 말았다. 소파 위에서 잔 것도 아니라.
하지만 대체 그 빛이란 건… 제이미는 멀뚱멀뚱 먼 거실만 쳐다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서야 기억이 났지만, 지금도 그게 무슨 빛이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밝으면서도 은은한 그런 빛.
다만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게 달려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녀의 눈에 보이는 순간 갑자기 그게 확…
“으,”
갑자기 머리가 다시 심하게 아파온다. 지금의 이 두통도 어제 그녀가 본 그 빛만큼이나 정말 이상한 거였다.
어제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일단 신고를 할까? 아니, 신고할 필요 없이 아빠에게 말하면 그만인가.
아니, 어제 집에 누가 멋대로 들어왔다면 자동으로 연락이 갈 텐데?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제이미는 얼른 거실로 가서 통화 기록을 봤지만, 누구도 집에 전화하지를 않았다. 그녀의 휴대폰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야…” 제이미는 어떻게든 두통을 멈춰보려고 머리를 꾹꾹 누르며, 일단 폰을 다시 꺼내 한 손으로 키를 다다닥 눌렀다.
[어제 와보니까 좀 이상해서 그러는데, 혹시 집에 뭔 일 없었어?]
어제 누가 오지 않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간 괜히 의심만 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즘들어 집에 오지도 않는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그녀… 아니, 집에 오지도 않는 부모라.
[그리고 왜 집에 오지를 않아? 요즘 뭐 때문에 바쁜지 말이라도 좀 하든가.]
전송을 꾹 누른 그녀는 이정도면 됐겠지 하고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소파에 엎어졌다.
애초에 경찰이 저런걸 믿을 리가 없다. 무슨 커다란 빛을 보고서 갑자기 쓰러졌다니.
요즘 저렇게 말 많은 그 가위저주 어쩌구 하는 것보다 더 뭐하잖아.
어째서인지 어제 일을 생각할수록 머리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 화제를 조금이라도 돌리는 제이미였다. 요즘 그거에 대해서 막 떠드는 반 애들도 저런 건 비웃을 게 뻔하기에, 일단은 누가 집에 침입했다고만…
…아, 애들?
“느,”
제이미는 얼른 다시 폰을 집어들어 시간을 봤다. “늦었다!” 그리고는 다시 벌떡 일어난 그녀.
삐이익– 삐익–
“병신아!!”
제이미가 울부짖었다. “거기가 유턴 하라고 만들었냐!? 이 지랄–” 다행히 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앞차가 슬슬 움직였다. 물론 창도 전부 닫았는지라 그녀가 뭐라고 발광을 하든 들리지 않겠지만, 지금 죽어라 엑셀을 밟는 그녀가 상관할 게 아니었다.
한편 라디오에서는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나 하지를 않나.
“마침내 오늘 경찰청에서 가위저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닥ㅊ…”
이제 목 밖으로 분출할 목소리도 아까운지 입을 꾹 닫으며 라디오를 꺼 버렸다.
“아오, 진짜!” 한 손으로는 화장은 못할망정 머리라도 어떻게 정리하려고 애를 쓰며,
곧 다시 연 입에서는 “애기야, 좀 빨리 달리라고. 제발 좀, 제발,” 쉴새없이 주문을 외워대는 제이미였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탓에 하다못해 자기 차에까지 애정을 부으며 살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이런 고철에 자비라고는 전혀 없으리.
“아악, 씨–” 그럼에도 차마 신호위반까진 못하겠어서 이를 악문 그녀는, 잠깐이라도 차가 선 사이에 얼른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도대체 뭔 난리야 아침부터…”
손거울 대신 백미러를 보며 퍽퍽, 성질 잔뜩 섞인 분칠을 하는 제이미. 그러면서 두 눈은 자꾸 계기판의 시계를 흘끗흘끗 쳐다봤고, 그녀는 흩날리는 가루 탓에 입은 못 열고서 이만 악물었다.
아침부터 뭐야, 대체. 그녀는 이제 얼굴을 마구 때리듯 하고 있었다. 아주 되는 거 하나 없네. 되는 거 하나 없어.
“그렇다고 이정도까지 난폭운전을 할 정도라니.”
“알 게 뭐야!”
잔뜩 부푼 풍선 바늘 끝에 터지듯, 그녀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이어서 켁켁,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가루를 토해내는데,
“아?”
내가 누구한테 소리를 지른 거야?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텅 빈 뒷좌석.
밖에서 들린 소리는 아닐 텐데 하고, 제이미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곧 뒤에서 들려오는 경적에 놀라 얼른 엑셀을 밟았다.
뭐였지?
아무 말 없이 눈만 계속 동그랗게 뜨고 있던 그녀는, 아까 놀란 나머지 손에 분첩을 든 채 핸들을 잡은걸 뒤늦게 알았다. “으으,” 다시 얼굴을 찡그린 그녀는 가루를 슥 닦아내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진짜로 늦게 생겼네. 다시 투덜거리며. 
딱,
“음…”
마침표를 콕 찍고서 잠시 멈춘 제이미. 오늘따라 뒤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딱, 딱, 딱,
“으음…”
도대체 이 느낌은 뭘까. 그녀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거 없었는데.
화장도 어떻게든 다 했고, 머리도 최대한 정리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그녀는 잠시 뒤를 돌아봤다.
“혹시 지금 누구 딴짓해?”
그러나 조용한 교실.
평소의 “다 봤다 이것들아!” 하는 얼굴이 아닌 조금 불확실한 표정이라서 그런 걸까, 애들은 대답이 영 없었다. 제이미는 그런 애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다시 분필을 꾹 눌렀다. 오늘 왜 이러지.
이상하게 아까부터 애들이 묘한 시선을 보내는 느낌인데, 그녀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수업을 하는 일에 익숙해지며, 애들이 하는 별별 짓들을 다 눈치채온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전 느껴본 적도 없는 이상한, 정말 생소한 무언가가 그녀를 등 뒤에서 두드린다고 할까.
아니다.
제이미는 입맛을 쩝 다시고는, 일단 수업에나 집중했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협상이 끝나고, 어어,
협상이 끝나고… 그렇게 다 갈라놓고… 그리고…
<그리고 국제 연합이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다만 중간에 3차 협약에 관한 논의도 조금은 있었–>
“우와아!?”
제이미는 뒷걸음질을 쳤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녀는 멍하니 칠판만 쳐다봤다.
생각하던 것이 갑자기 떠올라서였을까? 아니, 그게 아냐. 떠오른 게 아니었다.
애초에 3차 협약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다고. 그러면 대체 뭐였던 걸까? 그녀가 알지도 못했던 것을,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만 같았다. 알지도 못했던 게 강제로 밀려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전해지는 이상하리만큼 기괴한 위화감이 그녀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뭐였지? 제이미는 계속 멀거니 칠판만 바라보다가, 뒤에서 애들의 시선을 다시 느끼고 “아,”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연합이…”
정신차리자. 그녀는 애들 앞에서 고개를 마구 젓거나 할 수는 없었으나, 최소한 이라도 악물어 보는 그녀였다.
오늘 진짜 이상한 날이네. 어느새 그녀는 옷이 땀에 젖어오는 것까지 느끼고 있었다.
“흐음,”
제이미는 빵을 눈앞에 둔 채 나이프만 빙빙 돌렸다.
아까 전까지는 다시 수업에 열중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있을 수 있었지만,
“선생님,”
“응?”
“뭐하세요?”
“아,”
제이미는 그제서야 빵을 한 조각 잘라서 입에 넣으– 아니, 그녀는 무슨 정신인지 빵 대신 버터를 잘라 입에 넣을 뻔했다.
“하,” 그녀는 짤막한 숨을 토해내고는, 자신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애들을 보며 더이상 못 참았는지 입을 열었다.
“저기,”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하는 그녀. 애들 앞에서 이런거 물어도 되나?
“오늘 좀 다르지 않았어? 그러니까 어제… 음, 그냥 다른 날 같지 않았다는 거라든가.”
“네?”
같이 밥을 먹던 애들은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갑자기 왜 그런걸 묻냐고 하는게 하나같이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아뇨.” 이윽고 한 애가 말했다. “그건 왜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에 제이미는 그 애를 빤히 쳐다보다 곧 고개를 저었다.
“아냐.”
고개를 한 번 더 세게 젓는 그녀. “오늘 좀 피곤한가봐.” 이어서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제이미는 다시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다. 어제 누가 집에 들어오지를 않나, 갑자기 이상한 걸 보고서는 자빠졌는가 하면 정작 일어나 보니 멀쩡하고, 아니, 그 자국 보니까 분명 기절했던 게 맞는데, 내가 대체 뭘 본 거야? 게다가 오늘 있었던 그거…
으득. 제이미는 자기도 모르게 포크를 꽉 물었다. 아까의 그 위화감을 다시 떠올리자니 저절로 그랬다고 할까. 세상에 그런 위화감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분명 기분 탓이라든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런 거.
하지만 그럼 뭐란 말야? 그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프기에.
생각해 보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그 두통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있었다. 하긴 지금까지도 머리가 아프다면 무슨 문제가 있었겠지. 그리고 이 생각에 다시 얼굴을 펼 수 있는 그녀였다. 그래. 그녀는 우유를 단숨에 들이켰다. 별 거 아니겠지.
“아, 선생님.”
한편 이런 그녀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애들 중, 다른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반장이 그러던데, 선생님 아직도 그 얘기 하는거 싫어해요?”
“응?” 제이미의 짙은 파란색 눈이 한 번 깜박였다. “뭔 얘기?” 그녀의 평소 태도 또한 굉장히 기가 드센 느낌이었지만, 오늘은 이런저런 일들이 있는 탓인지 그게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저 눈만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
평소에도 남자들이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게 만드는 데 일조했던 눈이었는지라, 지금 그녀가 저 애의 말이 뭔 뜻인지 알고 곧바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순간 즉시 그 애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마치 눈에 얼음과 바다를 동시에 품은 고양이가, 한 순간 호랑이로 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 참,”
하지만 애들과는 이미 벽이 없는 사이였는지라, 곧 거부감을 다시 숨기는 그녀였다.
“너네 요즘 왜 그래? 그냥 전처럼 연예인 얘기나 하고, 아니면 뭐 축구 가지고 떠든다던가 그러는 건 관뒀어?”
“솔직히 그게 좀 평범한 일은 아니잖아요.”
한 명이 대답하자 나머지 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제이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게 한두번도 아니고, 무슨 미신마냥 쓸데없–”
…!
“읏!?”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에 제이미는 앉은 상태로 몸이 휘청였다. 손에서 나이프가 떨어지고 바닥에 뒹굴자,
애들은 안그래도 오늘 들어서 이상한 행동을 자주 하던 그녀를 이젠 조금 의아해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제이미는 곧 정신을 차렸지만, 갑자기 그녀의 머리를 찌른 듯한 무언가에 또다시 힘이 풀리고 말았다.
또 뭐야? 그녀는 입을 헤 벌린 체 자리에 얼어붙었다. 꼭 누가 나한테 화내는 것 같았… 잠깐,
지금 보니 오늘 아침의 그 두통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도대체 이걸 뭐라고 할지 몰랐지만,
그 감각의 원인이 같은 곳에서 왔다고 할 만한 그런 느낌. 물론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 그녀가 별로 신경쓸만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 정말로 누가 화낼 때의 그런 게 전해졌다는 건 너무나 확실했기에, 아무리 정신차리자고 말을 계속 하는 그녀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길 수가 없던 것이다.
“선생님?”
또 다른 한 명이 물었다. “괜찮아요?” ”……” 눈만 끔벅이는 제이미.
그리고 곧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였다. “병원…” 그녀가 말했다. “아니, 화장실.” 짤막하게 몇 단어만 내뱉고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어디로 향하는 그녀를 반 애들은 빤히 쳐다봤다.
탁.
“안되겠다.”
문을 세게 닫고서, 제이미는 세면대에 두 손을 짚은 채 지금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모습으로 거울을 보았다.
진짜로 안되겠어. 그녀는 짜증을 냈다. 그냥 오늘은 병원을 가야지, 이건 너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그녀였기에. 하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를 몰라서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았다. “오늘 왜이래?” 자기 자신에게 묻는 그녀.
“아까는 또 뭐가 문제였다고 머리가 막… 스트레스인가? 그런 쓸데없는 거에 너무 신경쓰–”
“계속 지켜봤지만,”
순간 제이미의 말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아무리 봐도 너는 별로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아.”
“어?”
갑자기 누가 말을 거는 것에 주위를 둘러보는 제이미.
그리고 지금 여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거울을 보려던 찰나, 이어지는 말이 또다시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게다가 그걸 미신 취급하다니 너무했어. 넌 그 표현이 얼마나 심한 모욕인지 잘 모르지, 안 그래?”
“뭐야?”
제이미는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누구 있어?” 하지만 역시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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