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Soulmate


004


“익,” 
예상 밖으로 몸이 꽉 끼면서 숨이 턱 막히자, 그녀는 한 손을 바닥에 짚은 채 이쪽 좀 보라고 다른 손을 흔들었다. “나 끼었어.” 끙끙거리는 그녀를 보며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그녀에게 다가왔다. “뭐야,” 남자가 말했다. 
“어쩐지 요즘들어 기름진걸 많이 먹더니, 겨우 그거에 몸이 끼였어?” 
“됐고 어서 당기기나 해.” 
그리고는 “중간계는 쓸데없이 불안정해가지고…” 바둥바둥하는 그녀에게 둘은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한 뒤, 곧 그녀의 양 팔을 잡고서는 천천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꽉 끼인 몸이 슬슬 빠져나가면서 “아야야…” 아파서 낑낑대며 이를 익문 그녀였고, 
이어서 몸이 거의 빠져나간 상태에서 둘이 “하나, 둘,” 하고는 확 당기는 것에 그만 철퍼덕, 
완전히 빠져나오는 즉시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야!” 그녀가 둘을 노려봤다. 
“너네 일부러 그랬지!” 
하지만 그녀가 성질을 낼 즈음 이미 한 명은 저쪽으로 간 뒤였고, 그나마 다른 한 명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 미안.”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손을 내민 친구를 보며, 그녀는 “아니,” 화내던 것도 눈 녹듯이 풀렸다. 
“그렇다고 너가 미안할 것까진…” 
손을 잡고 일어난 그녀는 먼지를 툭툭 털어주기까지 하는 친구에게 멋쩍어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편 다른 한 명은 저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흠,” 잠시 뒤 그녀까지 함께 먼지를 다 털었을 때 입을 여는 그.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특이한 곳이군 그래.” 
“응?”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오기도 전에 몸이 끼어버린 그녀도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으응?” 뭐야 이거.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광경에 그녀도 그녀의 친구도 눈이 동그래졌다. 
“저것들,”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자마자 엔시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부 다 금속인 거야? 색깔을 참 이상하게도 입혀놨네.” 
“그러게.” 
입을 다문 채 대답한 그녀는 그 수많은 금속들 중 하나에 다가갔다. “그래,” 이번에는 입을 열고서 말하는 그녀. 
“원래는 그냥 금속인 것에 일부러 노란색, 아니 누런색을 입혔어. 녹이 슬어가는 걸 가리려고 한 건가?” 
“글쎄.” 
엔시나는 계속해서 그 금속을 유심히 들여다 보기만 했고, 그걸 느낀 그녀는 자신도 잠시 그것을 좀 더 살펴보았다. 
노랗게, 혹은 누렇게 칠한 여러 금속 막대를 어떻게 이어붙인 것도 같고,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모양새로 만든 건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의자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검은색 의자였다. 별로 안전해 보이진 않는 형태의… 
이어서 그녀가 아래쪽을 살펴보자 웬 커다란 바퀴가 몇 개 달려 있었고, 의자처럼 검은색에 가운데는 회색의 금속. 금속은 그렇다 치는데, 저 검은 테두리 부분은 뭘로 만든 거지? 그녀는 허리를 숙여 냄새를 맡아봤다가, 그만 
“우윽–”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고개를 뒤로 뺐다. “뭐야, 이게!” 한편 엔시나도 그 냄새에 싫은 기색을 보였다. 
낡은 금속과 썩은 기름이 뒤섞인 듯한 냄새에 그녀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물러났고, 다른 둘이 무엇을 하는지 봤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시선을 돌렸을 때, 어느새 남자는 이쪽으로 와 있었다. “여기가 건물 안이지, 분명?” 이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 
“야, 저기 냄새 좀 맡아봐. 진짜 이상해.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 
“그걸 알아내려고 우리가 여기 온 거잖아.” 
이어서 그는 “키리,” 저쪽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만 이쪽으로 와.” 이에 그녀의 친구는 “어, 으응!” 후다닥 달려왔고, 그렇게 두 사람의 옆에 섰음에도 그녀는 쉬지 않고 계속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저게 그렇게도 신기할까. 그녀는 피식 웃었다. 
반면 “일단은,” 주위의 것들은 한 번 슥 보고 만 채, 혼자 뭘 그리 생각하는지 가만히 땅만 내려다보던 그는 잠시 뒤 입을 열었다. 
“나가는 문이 저기 있으니까 이만 나가보자고. 이 안은 더 볼 거 없어.” 
“으응?” 
키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난 아직,” 그리고는 한 번 더 건물 안을 둘러보는 그녀. 
그리고는 약간 시무룩한 목소리로 “좀 더 보면 안돼?” 하고는 애원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응? 슨우, 조금만 더 여기 있다 가자. 여기 있는 것들 정말 신기해.” 
이렇게 말하는 키리의 맑은 녹차같은 눈망울이 반은 애원하는 빛으로, 반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묘하게 반짝였다. 하지만 슨우는 지금까지 같은 부류에서 자란 그녀도 익숙해지지 않을 정도로 속을 모르는 남정네라고 해야 할까, 자기는 볼 거 다 봤다는 눈치이면서도, “키리,”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뭐랄까, 
“밖에는 더 신기한 것들 많이 있어. 여긴 나중에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까 일단 나가자.” 
“으,” 
마치 어린애 달래듯, 최대한 상처받지 않게 말하는 태도에 결국 키리도 수긍했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모습을 보다가, 방금 전 슨우가 문이 있다고 한 쪽을 쳐다보던 그녀는, 곧 그가 자신에게도 말을 거는 것에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가 말했다. 
“아까 다친 데는 없지? 나르사. 그만 나가자고.” 
말을 마치고 먼저 문 쪽으로 걸어나가며 “여기 공기, 별로 좋지는 않아.” 덧붙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살며시 미소지었다. 
…… 
….. 
…. 
… 
.. 

“나,” 
아직 알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르, 사,” 그런데 이미 깬 사람처럼, 무어라고 계속 중얼거리던 제이미는 잠시 뒤, 
삐이익–!! 
“아!” 
평소에 피곤하게 지내는 그녀를 위해 방 안에 매섭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정말로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 으,”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잠이 덜 깬 사람이나 느낄 법한 두통과 함께. “물,” 그녀는 습관적으로 물부터 찾았고, 곧 주방으로 느릿느릿 발을 움직여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후아,” 목구멍을 넘어 뱃속에 비바람이 치는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이런 느낌에 절반은 잠기운이 사라진 그녀는 곧 가느다란 손으로 뺨을 툭툭 치며 남은 피로를 잠시나마 몰아냈다. 
이어서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은 그녀는 해가 내리쬐는 방향을 보며 팔 한쪽씩을 반대 방향으로 쭉 잡아당겼다. “으읏–챠,” 그렇게 기지개를 켜고서 어깨를 쭉 편 그녀는 크게 뜬 눈으로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바다가 해를 마주하듯 짙은 푸른빛의 눈동자가 아침의 빛을 맞이한 순간에서야 그녀는 이제 좀 살 것 같네 하고– 
“일어났구나.” 
“엇,” 
제이미는 몸을 쭉 편 자세 그대로 동작 정지했다. 내가 뭔 소리를 들었나? 
아냐. 기분 탓이겠지. 그러나 다음 순간 고개를 흔들며,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속에서 한숨을 푹 내쉰 그녀에게, 
“제이미, 다시 말하지만 나는 환청 같은 게 아냐. 이제 좀 알았으면 그만–” 
“아냐.” 
리모컨이 손에서 뚝 떨어졌다. “아냐,” 다시 입을 열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고개를 마구 젓는 제이미. 
“아냐, 아냐,” 
잘못 들은 거야. 잘못 들은 거라고. 난 멀쩡해. 난 그냥 정상적이고 평범한 교사야. 
애들 가르치는 거 외엔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 것도! 내가 아무리 쓸쓸하게 살았을지언정, 
설마 환청이 들린다거나 할 이유는 없어. 난 정상이야. 난 정상이야. 제이미는 무슨 세뇌라도 하듯 자기암시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러면서도 제이미는 저 무언가–이름이 뭐였더라? 그녀는 또 잊어먹고 말았다–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것도 아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아니, 잠깐, 제이미는 순간 어제 수업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애들은 가만히 있는데 왠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그런 시선. 혹시 그게? 
“아니, 그건 내가 아니었어.” 
그녀의 생각에 아직 묻지도 않은 대답이 들려옴과 함께, 누군가 손을 젓는 것처럼, 마치 그런 느낌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응?”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 집에 누가 또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 느낌은 대체? 
왠지 어제도 비슷한 걸 느낀 것 같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 눈앞에서 손을 흔든 것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게… “아니,” 그녀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지금 내가 그런거 신경 쓸 때야? 애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라느니 하는 거부터 그녀에게는 한낱 쓸데없는 낭비에 불과했다. 
지금은 도대체 그녀가 왜 아직도 환청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해야만 했다. 대체 뭐가 문제길래? 
“제이미 앨리슨,” 
한편 그 환청은 제이미의 생각을 또 봤는지, 슬슬 화가 나려는 것을 참는 듯, 인내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목소리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저게 지금 그런 기분이라는 게 그녀에게 전해졌… 아니, 
그게 아니라 대체 왜 그런 거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제이미는 환청 따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아,” 
이런 그녀를 보며 그것이 한숨을 쉬는 게 전해져 왔다. 그러나 저게 그러든 말든 알 게 뭔가. 
또다시 정신차리자 정신차리자 하는, 세뇌에 가까운 자기암시와 함께 다시 부엌에 가서 물 한 잔을 더 마시는 그녀였고, 이런 그녀의 모습에 잠시동안 환청이 간섭하는 일은 없었다. 정확히는 제이미의 무시하면 될 거라는 태도 때문이었지만. 
드륵, 
잠시 뒤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고, 제이미는 물줄기를 향해 무턱대고 손을 내밀려다 딱 멈춰섰다.
그건 그렇고, 뭔 꿈이었지? 제이미는 투명한 물줄기를 가만히 노려보다, 곧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봤다. 어제 본 이상한 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우윳빛 피부와 길다란 금발, 파란 눈의 아가씨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저 갸름한 얼굴이 아니라, 그녀가 꿈에서 봤던 한 여자의 조금은… 아니, 사실 얼굴 모양만 따지면 제이미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기에 조금 겹쳐 보이기도 했지만. 다만 좀 더 둥글넓적할 뿐이었다. 
그것보다 대체 어쩌다가 꿈에서 나온 여자 같은 거에 신경쓰고 있는 걸까. 
제이미는 어느새 물이 절반쯤 받아져 있는 것을 보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하지만 비누와 함께 손을 한 번 담갔다가 꺼내자, 그녀의 눈에는 다시 그 여자의 상이 맺혀 있었다. 이름이 뭐랬더라? '나르사' 라고 했지? 진짜 이상한 이름이네. 어제 저 환청이 자기 이름이랍시고 내민 건 더 이상하긴 했지만, 아니, 애초에 그거 때문인가. 
그런 이상한 소리들을 막 들어서 어제 꿈도 그모양이었나 하고서, 제이미는 마지막으로 그 나르사라는 여자의 얼굴을 기억해봤다.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그 여자, 꽤나 그럴 만하게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꿈 속에서 자기보다 더 이뻐 보이는 여자를 본 건, 아무리 그게 개꿈이었다고 해도 그냥 넘길 만한 일은 아니고. 
검푸른 머리색에 하나로 묶어서 뒤로 늘어뜨린… 제이미만큼이나 꽤 길어 보였다. 
그리고 눈은 갈색, 둥글면서도 약간 날이 선 느낌이 있는 제이미와는 달리 그냥 둥근 모양에서 끝났지만, 그 갈색이 그냥 갈색이 아니라 뭐랄까, 자기 자신을 굉장히 내세우는 듯한 자신감과 강인함으로 빛나는 게 뒤섞인 갈색이었다. 
코는 제이미의 작으면서도 역시 눈처럼 날이 선 코에 비하면 그나마 조금은 부드러워 보이는 편이었고, 
입술은 조금 짙은… 아무래도 그 여자,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것 같다. 
얼굴 크기에 딱 맞을 만한 입술임에도 일부러 더 작게 보이려고 하는 제이미와는 달리, 그냥 맨얼굴인데 작은 체리빛 입술이라. 
“칫.” 
안그래도 어제 별별 일이 다 많았는데, 꿈속에서까지 자기보다 더 이쁜 여자를 보다니. 재수없게. 
어느새 양치를 하고 있는 제이미는 자기도 모르게 팔 힘이 들어가, 입 안에서 칫솔을 난폭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저 여자의 얼굴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는 꿈에서 그 여자를 본 게 아니라, 자기가 바로 그 여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자기가 그 여자가 되었다기보단 그렇게 된 걸 기억하는 듯한, 그런 생생하면서도 미묘하게 흐릿한 느낌. 
아니, 제이미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뭘 어떻게 느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분명 꿈 속에서 자기가 그 여자였고 딱히 거울을 봤다거나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얼굴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이 한 마디가 제이미의 생각을 뚝 끊는 순간, 그녀는 이번엔 얼굴을 찡그리기보단 의아함이 섞인 얼굴로 눈이 동그래졌다. “우어?” 칫솔을 입에 문 채 목소리를 내는 그녀에게, 이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있던 그것은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르사는 내가 옛날에 함께했던 사람이었어. 너가 방금 그 애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던 건, 바로 내가 그걸 기억하기 때문이야. 굳이 내가 보여주지 않더라도 너 스스로 나와 기억을 공유한 거지. 너가 꿈에서 본 것도 그렇고 말야, 제이미.” 
“내가 꿈에서 본 게 뭔데?” 
“그 애의 기억. 정확히는 그 애와 나의 기억이야.” 
처음으로 자신에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렇게 설명해주면서 조금은 편하게 느끼는 것이 제이미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제이미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원인이 되었고, 그녀는 즉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양치를 계속했다. 일부러 성질적으로 하지도 않으려고 거의 기계같은 동작으로 칫솔을 움직이며, 그녀는 어제의 꿈 같은 것도 같이 잊어 버렸다. 
삑– 
버튼을 누르자 차 문이 절로 열리는 것에, 제이미는 안으로 들어서서 핸들을 잡으며 말했다. 
“가자, 애기야.” 
차에 시동을 건 그녀는 곧 도로에서 열심히 달리는 자신의 '애기' 안에서 여느 때처럼 라디오를 틀었다. 
<전봇대 하나가 쓰러지면서 옆 주택의 울타리가 같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위에 전기 공급이 끊기는 일은 없었으나, 해당 집 주인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이라 하고서는 갑자기 뚝 끊기는 라디오. “응?” 아침 기사가 어떻든 자기 혼자 흥얼거리던 제이미는, 
그러다가도 옆에서 나던 소리가 뚝 끊기자 그건 또 바로 눈치채고서 고개를 돌렸다. “뭐야?” 계기판을 툭툭 쳐 보는 그녀. 하지만 라디오가 버벅거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뚝 끊겨 버린 거라 툭툭 치는 걸로 어떻게 될 리 없었다. 이에 그녀는 마침 노란불이겠다, 차를 미리 세우고서 이것저것 건드려보기 위해 몸을 기울이는데, 
<그러니까 왜 이걸 지금… 아, 소, ​속​보​입​니​다​.>​ 
“응?” 
아침부터 웬 속보? 계기판에 대려던 손을 도로 떼고 핸들을 잡은 제이미는 라디오를 빤히 쳐다봤다. 
<어제 저녁, 미샤 주의 그린라임 시 시청 근처에서 LV를 목격했다는 제보에 대한 확인 결과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 다음 소식이 있을 때까지 해당 지역의 보안이 강화될 계획임을 시청에서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흐응,” 
제이미의 눈썹이 올라갔다. 바로 지금 여기가 미샤 주, 그린라임이기 때문. 
곧 다시 엑셀을 밟으면서 그녀는 호두 하나를 씹었다. 여기서는 또 뭐 하는 짓이래?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편 이제 나름 평정심을 되찾아서 그런지, 아니면 아침의 일 때문에 포기한 건지 지금의 그녀에겐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애초에 신경 끄기로 작정했는데. 오늘은 금요일이라 수업이 다섯 시간이나 되었다. 
그러니 오늘 빡세게 돌고, 내일은 토요일이니 그때 병원에 가면 될 일이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지. 
마음을 편히 잡은 제이미는, 병원에 갈 생각을 할 때 누군가 그녀에게 한숨짓는 듯한 느낌이 든 것 따위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한편 그렇게 제이미가 여느 때처럼 학교로 향한지 몇 시간, 이제서야 해가 밝아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저편으로부터 불어오는 실바람에 옷깃이 기분좋게 살랑거리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녀는 방긋 웃었다. 
“역시 바람은 아침 바람이 가장 시원하얘.” 
까맣지만 약간 푸른 빛을 머금은 듯한 길다란 머리카락. 정수리 옆에 가볍게 꽃은 흰 살빛의 꽃 한 송이.
크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역시 동그란 눈은 호기심에 찬 고양이와도 같아, 짙은 풀빛을 머금은 그것은 한 쌍의 보석이라 할 만했다. 
어린아이같이 보드라운 코와 입술, 하지만 사실은 내년이면 그녀도 스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작은 분홍빛이 입에 감돌았다. 
“아린!” 
한편 이런 그녀를 저쪽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아린은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으로 날쌔게 움직여, 돌바닥 위에서 내려왔다. 
“야?” 
누가 보면 '복스럽다' 라고 할 만한,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아침에도 빛나는 별과 같은 웃음으로 입을 열자, 곧 다음 말이 들려왔다. 
“내일 약초 캐러 간다고 했지?” 
멀리서 부르는 탓에 꽤나 크게 내는 목소리에, 그녀도 두 손을 입 근처로 모아 “야–아!” 하고 온 산에 울려퍼지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올라서 있던 돌바닥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이어서 아까보다 좀 더 떠오른 해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고, 곧 나풀거리는 옷깃과 함께, 사뿐사뿐 풀 위를 밟으며, 아니 어느새 방방 뛰듯이 하며 비탈을 내려갔다. 
“그러니 오늘은 실컷 놀아야겠지야!” 
이쪽에서 저쪽으로 휙휙 뛰어내리는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처럼 웃음이 가득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