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부스럭,
조그마한 소리와 함께 국화 몇 송이가 놓였다. “니키,” 마크윈 앨리슨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 죽었다면 내가 더 빨리 죽었지, 나보다 그래도 덜 위험하게 사는 당신이…”
그 옆에서 아무 말이 없는 제이미는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잠시 뒤 아버지가 먹먹한 말을 모두 늘어놓고 물러서자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이런 식이야?” 그녀는 꽃을 놓기 전에 입부터 먼저 열었다.
“맨날 집에도 잘 안 오고, 그렇게 밖에서만 돌아다니다 간 거야?”
마크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고 제이미도 그걸 느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됐어 그럼.” 다만 말을 더 길게 잇지는 않은 채.
“됐으니까, 편히 쉬어. 이제라도 좀 편하게 있으라고. 고생 없이.”
“니콜을 위하여.”
제이미의 표정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전환을 위해 한 마디 하자, 모두들 “위하여.” 짧은 합창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는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해산했고, 오직 마크윈과 제이미,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어떤 여자와 그 레브라는 청년만이 남아있다가 곧 마크윈이 뒤를 돌아봤다. “배 안고프니?” 그가 묻자 제이미는 고개를 숙인 채 무겁게 저었다.
“저 좀 잘게요.”
그렇게 한참을 서있다가 지친 목소리와 함께 뒤로 가는 제이미. 마크윈은 딸아이가 존댓말까지 하는 모습에 정말로 지쳤다는 걸 눈치챘는지 아무 말이 없었고, 제이미는 그렇게 혼자 돌아가는 자신을 다른 둘이 쳐다보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제이미,” 한편 엔시나가 이때 말을 걸어왔다. 지쳐서 뭐라 할 틈이 없을때 얼른 할 말 다 하겠다는 건지 뭔지 하고 그녀가 생각하자 혼령은 손을 저었고, 그에 이어서 제이미는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푹 자. 아무 꿈도 꾸지 말고. 하지만 그전에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제이미는 아무 말이나 생각이 없었다. 절망과 함께 몰려오는 피곤함이란 사람의 머릿속을 텅 비우는 지우개라고 할까.
“내가 어떻게 니콜이 죽은걸 알고 있냐고 했지. 사실은 네 어머니가 바로 내 이전 '동반자'야. 그러니까 혼령과 함께하는 인간 말야. 그래, 제이미. 너에게 오기 전에는 니콜에게 있었어.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오랫동안.”
여전히 조용한 제이미. 그리고 엔시나는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지만 심각할 정도로 조용한 제이미의 눈치를 슬슬 보다가
“나를 너에게 보낸 것도 니콜이었어. 정확히는 유언이었지. 죽기 직전에.”
탁.
묵묵히 갈 길을 가던 발이 멈췄다. 제이미는 게슴츠레한 눈이 조금 떠지며 입을 열었으나,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채 그런 모습으로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하지만 텅 비어가던 머릿속에서는 엄마가 저런 골칫덩이를 보냈다니 이번엔 또 뭔 미친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깜박였다. “정말이야.” 적어도 혼령의 태도를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물론 지금은 못 믿겠지만, 난 너가 태어나기 전부터 니콜과 함께 있었어. 그만큼 너도 많이 지켜봤고. 무엇보다 혼령은 한 번 동반자를 선택하면 그 인간이 죽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어.”
그 말은 저 혼령이란 년이 제이미가 죽을 때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제이미는 벌어진 입에서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눈이 풀어지며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다가 곧 마크윈이 마련해준 방에 다다랐을 즈음 다시 입을 열었다. “만일,” 그녀는 먼저 한 가지를 가정했다.
“만일, 정말로 너가 혼령이란 거고, 지금까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말로 그게 다 사실이라면,”
“제이미,”
“정말로 사실이라면… 우리 엄마, 엄마 죽은 것도 봤다는 거지? 그때 있었다는 거지?”
순간 엔시나가 경련을 일으켰다. 감전이라도 된 듯 크게 경련을 일으키는 혼령이 눈앞에 서있기라도 한 듯 제이미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 익사했어. 호수에 빠졌고, 묶여있었고. 병이나 자살따위가 아니–”
“살해됐어.”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면서 제이미가 더 지쳐가는 것을 엔시나가 얼른 막았다. “당연히 살인이지.” 혼령은 한 마디 덧붙이고는 그 자신 또한 잠시 괴로워하다가 곧 그녀에게, 이전 동반자의 자식이자 현 동반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알 때가 아냐. 지금 알아봤자… 어쨌든 나중에는 알려줄게. 어차피 너도 봐야 할 일이니까. 약속할게, 제이미. 언젠가는 다 알게 될거라고.”
“뭐 때문에–”
“푹 쉬어, 제이미. 푹 자.”
엔시나는 얼른 말을 끝마치고는 먼저 조용해졌다. 먼저 잠든 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 말도 해주지 않겠다는 건지 모르지만, 제이미에게 있어서 항상 그렇지만 저 작자는 조용히 있는게 도움이 되었다. 제이미는 방으로 들어가 아직 가구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중에 있는 침대를 찾아냈고, 이불도 베개도 없는 위에 천천히 누웠다. 그렇게 곧바로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똑, 똑,
누군가가 정말 또렷하고도 정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깍듯하게 문을 두드렸다. “네,” 이미 힘이 빠진 목소리를 최대한 크게 내자 문이 열리고서 그 청년이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그의 손에는 이불과 베개가 들려 있었다.
“그 방을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하루빨리 끝내도록 하죠.”
“괜찮아요.”
제이미는 이불과 베게를 받았다. 레브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안녕히 주무십시오.” 바로 나가려 했으나 “잠깐,” 제이미가 불러세웠다. 청년은 눈을 깜박였다. “아빠는 지금 뭐해요?” 제이미가 묻자 그는 “어,” 말을 살짝 흐리면서 가만히 있다가 곧 대답했다.
“아시겠지만 아버님께서도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지금 약주를 좀…”
“아,” 제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수고하세요.” 레브는 한 번 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곧 방문이 닫히자 제이미는 등을 돌려 벽을 멍하니 쳐다보며 눈을 감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불 한쪽을 꼭 끌어안으며.
“그래,”
집을 다 둘러본 다일이 말했다.
“엔시나가 이런 구석에서 몇십년을 살았다고?”
“야.”
아린이 대답하자 다일은 다시 한 번 제자리에서 집을 빙 둘러봤고, “하여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르사도 그랬지만 도저히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그는 일단 아린이 있던 방으로 들어가서는 컴퓨터를 내려다봤다. “조잡하군.” 그는 혀를 차더니 다짜고짜 본체를 꺼내서 여러 잡다한(?) 선들을 한두개씩 잡아 뽑았다. “야?” 아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 그래도 괜찮으얘?”
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한 열 개쯤 선을 뽑았을까, 그는 본체를 다시 집어넣은 뒤 컴퓨터를 켰고, 아직 실행화면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눌렀다. “으야.” 두 손가락으로 틱틱 누른 자신과는 다르게, 아니 제이미나 엔시나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치면서 마우스도 동시에 다루는 모습을 보며 아린은 동그란 눈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니콜 킹 루이즈… 앨리슨입니다. 네, 결혼했–”
아린이 열었던 그 창을 띄운 다일은 음성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키보드 위에서 손을 놀렸고 이에 “내 얘기좀 들어주면 안돼요?” 라고, 원래 주인이 퉁명스럽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일은 코웃음을 치면서 아린이 실행했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실행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정리하면,”
계속 새로운 창을 띄워가며, 그러다가 몇 번의 타자로 열려있던 창을 순식간에 닫기를 반복하며 다일이 물었다.
“이 니콜 루이즈라는 인간에게 있다가, 이제는 그 딸한테 갔다고?”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 “별일이군.” 다일은 계속 무어라고 치다가 곧 ENTER라 써진 키를 하나 눌렀고 손을 뗐다. 이에 창들이 자동으로 무언가를 나타내다가 하나씩 정리되어 닫혔고, 다일은 그러는걸 가만히 지켜보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핏줄이란 거에 대해서 꽤나 무심하게 여기는 애였는데. 나처럼 여기 살면서 많이 배워서 그런 건가.”
처음에 아린과 얘기를 할 때 쓰던 그 작은 장치의 한쪽 덮개를 열고는, 불룩 튀어나온 무언가를 컴퓨터 본체에 꽂은 그. 그러자 화면에 있던 마지막 창에 '전송중' 이라는 말이 떴고, “이제 됐어.” 다일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었다. “기다리면 돼.” 그리고는 그가 잠시 눈을 감더니, 다시 떴을 때는 표정이 살짝 바뀌어, “아린,” 일단 동생부터 부르는 목소리가 많이 차분해졌다. “오라부이얘?” 아린이 고개를 들며 방긋 웃자 그녀의 볼을 꼬집는 이진.
“이제 말하지만 너 정말 사고나 치고, 그나마 이렇게 됐으니 다행이지 다른 일 생겼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으야야…”
볼을 꼬집힌 아린이 끙끙거렸다. 이진은 곧 동생을 놔주고는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여기 있어야 한다고 다일이 그러네. 뭐 먹을 건 없어?”
“저어기 있으얘.”
아린이 저쪽을 가리키자 이진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방을 나가려다 “아, 잠깐,” 하고는 가만히 다일이 뭐라고 하는걸 듣더니 곧 화면에 새로운 창을 하나 띄워 다일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로 뭐라고 쳤다. “이러면 정말 연락이 가나?” 혼자 중얼거린 그는 곧 엔터를 눌렀고, 작업이 끝나자 방에서 나가려는 그를 졸졸 따라가다 아린이 “야아?” 하고 멈칫했다.
“왜 그래?”
이진이 뒤를 돌아보자 아린은 무언가가 생각난 얼굴로
“사령들, 그 사령들 어케 했으얘? 꽤 많았는데 다 잡았으야?”
눈을 깜박이는 이진. “사령?” 그가 물었다. “못 봤는데.” 이에 아린은 “어,” 낮은 소리를 내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얘.” 얼른 주방으로 먼저 들어가는 동생. “빨리 밥, 밥.” 자기가 사령들에게 쫓겨왔다는 것까지 말했다간 오라부이가 더 걱정할 것 같았다.
제이미는 눈을 떴다. 머리가 아주 조금, 정말로 조금은 가벼워진 상태에서, 그러나 여전히 그 속이 무슨 불량처리된 수박마냥 뭔가 허전한 중에 그녀는 미처 잠을 다 못 잔 사람처럼(원래 그녀는 낮잠 체질이 아니었지만) 멍하니 누워있다가, 곧 자기가 저절로 깬 게 아니라 어떤 소리가 들려서 깼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과연,
“그래서 당신이 한 게 뭔데요?”
누군가가 버럭 화를 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제이미.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제이미는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아, 다시 보니 정말로 그 청년이 그녀가 자는 사이 방을 싹 정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라,
“그러니까 뭐냐고요 결국. 그놈의 잘난 일 때문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했다는 게…”
“그, 그게 난…”
“진정하시죠, 퀸.”
이번에는 세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는 처음에 들린 그 여자의 날카로운 고성, 다음으로는 마크윈의 기 죽은 목소리와 마지막으로는 그 여자를 말리는 듯한 레브의 말소리였다. 제이미는 목소리만 들어도 왠지 저 판에 난입해선 안되겠다 싶어 문을 살짝 열어 그 틈으로 보기만 했고, 곧 그 성질 내는 목소리의 주인이 아까 자신과 아버지, 레브와 함께 끝까지 죽은 니콜의 앞에 서있던 그 여자임을 알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조용하길래 원래 얌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잘 하셨어요 정말! 내가 일만 아니었으면 당신 목이라도 졸랐을 거예요. 어떻게 언니를 그따위로 취급할 수 있냐고요, 네? 그렇게 무책임해서야 되겠냐 이거예요. 제이미가 이걸 알면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에 대해 용서라는 것을 어디 상상이나 하겠냐고요, 그 애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언젠간 그 애도 알 거라 이거지! 안 그래, 레브? 우리가, 아니, 당신들이 하는 일을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을 거 아닌가요? 내가 지금 당장은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움직이지만…”
“너무 취하셨습니다, 퀸. 그만하시고 들어가 쉬세요.”
레브가 그 여자의 팔을 잡았다. 물론 그 자신도 당황한 얼굴을 하고서. 하지만 마크윈이 고개를 저었다.
“냅둬, 레브. 난 욕을 먹어야 돼.”
“하!”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이제서 양심있는 척 하긴…”
“뭔 일이야?”
계속 열어놓은 문틈 앞에서 중얼거리는 제이미.
“뭐길래 내 얘기까지 나오는 거지?”
“문 닫아, 제이미.”
갑자기 끼어드는 엔시나였다. “이런거 들을 필요 없어.” 꽤나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태도 속에서 제이미는 그녀가 지금 실은 개인적으로 저런걸 듣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때문만이 아냐.” 이런 제이미의 생각을 읽은 엔시나는 더 단호해졌다.
“나중에 내가 알려줄 테니까 그만 문 닫고 더 자.”
“잠은 충분히 잤어. 게다가 너가 뭘 안다고…”
“저들보다 훨씬 더 잘 알아. 자기 전에 말했지만–”
“그리고 내가 왜 니 말을 믿어?”
제이미는 억지를 부리며, 엔시나가 역시 그녀의 팔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것을 어떻게든 뿌리치려 애를 썼다. “문 닫아, 제이미.” 엔시나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저 앞에서 그 여자가 더 성질을 낼 수록(그녀는 이제 마크윈과 니콜이 연애하던 시절의 일까지 들먹이고 있었다)혼령은 점점 다급해지고 있었다.
“문 닫아… 제발, 제이미 앨리슨! 문 닫아!”
“이, 망할,”
자신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려는 방해꾼과 싸우며 제이미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날, 좀,” 그녀는 당장이라도 저 여자처럼 성질을 내고 싶은 것을 꾹꾹 누르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더이상 참지 못해 “냅… 둬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온 힘을 다했고, 이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까지 움직여 그만 문까지 벌컥 열리고 말았다. “아!” 놀란 엔시나는 얼른 제이미에게서 손을 뗐고, 그 반동으로 힘을 주체 못한 그녀는 열린 문 앞으로 쿵 엎어지고 말았다. “응?” 레브가 먼저 이쪽을 쳐다보자 다른 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제, 제이미…”
마크윈이 입을 열었으나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그에게 불을 뿜어내던 여자도 놀라서 얼굴이 굳은 모양새였다. “으음,” 오직 레브만이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서있다가 곧 그녀에게 후다닥 달려와서는 “괜찮습니까?”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제이미는 얼떨떨한 상태에서 “네, 네에.” 간신히 대답했다.
“저, 그 그러니까 전, 어, 음…”
제이미는 뭐라고 말을 할지 몰라 생전 처음으로 도와달라는 생각을 혼령에게 보내기까지 했으나, 엔시나 또한 많이 당황해서 뭐라고 하지를 못했다. 결국 상황에 혼자 놓인 제이미는 계속 말을 더듬다가 얼른 얼버무렸다.
“밖에서, 좀, 그, 돌아다니려고요. 너무 답답해서.”
“어,” 레브는 다른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
“아뇨, 됐어요.”
제이미가 얼른 끊었다. “괜찮아요.” 누가 잡기라도 할까봐 얼른 자리를 떠난 제이미였고, 이런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셋은 역시 레브의 발빠른 행동으로 침묵을 풀었다. “그럼 정리하겠습니다.” 그는 조문객들이 실컷 먹고 난 자리를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에 여자는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하여간 정신없어.” 더이상 화는 내지 않았지만, 아니, 이제는 완전히 질렸다는 목소리로.
“맥주 더 있어? 난 오늘 맨정신으로는 여기서 못 나간다, 정말.”
“이미 충분히 많이 마시–”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마크윈은 그 여자가 자신을 노려보자 거의 자동으로 입을 다물었다. “갖다드려, 레브.” “네.” 레브는 청소를 멈추고 저쪽으로 향했다. 마크윈은 조용히 국화가 한 무더기 놓인 앞에 주저앉듯 몸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