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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21


차가 주택가를 완전히 벗어나 빈 도로를 달릴 때까지도, 제이미는 자리에 앉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신기해얘. 도대체 이쪽 세상에서 기계라는 것들은 참… 특이해얘. 말로는 못하겠으야.”


앞자리에서는 조용히 운전하는 다일과 옆에서 재잘거리는 아린이 아까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한 그녀를 말대로 가만 놔둔 채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었다. 제이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텅 빈 머리로 바닥만 내려다보며, 그러다 속도를 최대한 내면서 달리는 다일이 옆으로 틀거나 아린이 이따금씩 엉뚱한 소리(“혹시 그 기계라는 것중에 먹는 기계도 있으야?”)를 던지거나 할 때마다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거의 다 왔어.”


어찌나 빨리 달린 건지, 아니면 그녀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건지 제이미가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자 정말로 다 온 게 보였다. “제이미,” 엔시나가 부르자 제이미는 별 대답도 없이 눈만 감았고, 곧 자신의 몸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그녀는 여전히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음에도 최소한 또 다치고 싶어하진 않았다. 어쨌든 아픈 건 싫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이미 충분히– “그만.” 엔시나는 이렇게 자꾸 저 구렁텅이로 빠지려 드는 제이미를 몇 번이고 막아섰다. 그 일이 있었을 때부터 계속. “내리자.” 다일은 곧 철조망이 저 앞에 보이는 상태에서 차를 세우려다가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나.” 엔시나가 중얼거렸다.


“미안해. 내가 그때 감정대로 행동하지만 않았어도…”


철조망 너머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총기를 들고서 공장지대를 점령하고 있던 것이었다. “곤란해지겠네.” 다일이 말했다.


“저쪽에서도 우리를 봤을 거야.”


엔시나의 말에 다일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들 문 살짝 열고 잡아. 뛸 준비해.”


하고는 아린과 엔시나가 무슨 생각 있냐고 하려다가 곧 그렇게 하자, 그는 난데없이 액셀을 콱 밟았다. “잠깐–” 엔시나가 제정신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다일은 “아린, 지금 해.” 한 마디 했고, 아린은 “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곧 저쪽에서 총성이 들리자 놀라서 아까 집에서 그가 알려준 대로 했다. 두 손을 뻗으면서 힘을 주자 이쪽으로 퍼부어지는 총알 중 몇 발을 뺀 대부분이 저 옆으로 미끄러지듯 비켜나갔고, 다만 그대로 오는 총알들 중 몇몇이 차에 박히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내 애기…”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에서도 제이미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히, 힘드얘. 이거 힘드얘.”


아린이 얼굴을 찡그렸다. 다일은 여전히 액셀을 세게 밟은 상태에서 “조금만,” 하며 두 손으로 핸들을 만지작거렸고, 잠시 뒤 철조망이 거의 코앞일 즈음 “뛰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자신은 핸들을 옆으로 홱 돌렸다. 셋은 거의 동시에 차에서 뛰어내려 굴렀고, 한편 제이미의 차는 돌진하면서 빙그르르 돌더니 닫힌 철조망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그동안 제이미의 몸에 나름 익숙해진 혼령은 아주 침착하게, 소음기 달린 권총으로 저쪽에 있는 인간이란 인간은 모조리 쐈다. 퓩 퓩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둘씩 쓰리지면서 엔시나에게도 총알이 날아왔으나, 다행히 아린이 재빨리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어 아직까지 둘 중 한 명에게 닿는 총알은 없었다. 한편 다일은 아린에게 “3번!” 이라 소리쳤고, 이에 아린은 숫자가 적혀있는 각종 수류탄 중 3이 적힌 최루탄을 있는 힘껏 던졌다. 동시에 다일도 연막탄 하나를 던지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눈앞을 거의 완전히 가렸고, 이 틈에 셋은 그 안으로 달려들었다.


다일은 역시 소음기가 달린 소총을 들고 엔시나처럼 하나하나 쏴맞추는 식으로, 다만 조금씩 눈치를 보면서 아린이 힘들어한다 싶으면 자신이 있는 힘껏 총알을 막아냈다. 비록 제이미가 꿈속에서 봤던 그것처럼 아예 반대로 튕겨나가게 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빗나가게는 하면서 셋은 그럭저럭 무사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연기 속으로 들어가며 엔시나는 고글을 씀과 함께 아린에게 숨을 참으라 했고, 아린 역시 생전 처음 보는 것을 푹 눌러쓰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셋에게 있어선 다행히도, 아곳에 적들이 그렇게 많이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저쪽 '별장'에 멀쩡하게 남은 대원들이 이곳으로 총집합했을 것이리라 여기며 엔시나는 그 남은 이들마저도 하나하나 쏴죽이며 전속력으로 뛰는데, 순간 다일이 “엎드려!” 소리를 질렀다.


“으얏–”


아직 연기가 다 가시지 않은 중에 인간만을 감각으로 보고 있었던 엔시나는, 어느새 저쪽에서 발사된 무언가가 쉬익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바, 방금 그거,” 엔시나의 감각이 전해진 제이미는 순간 놀라서 중얼거렸다. “바주카였어?” 한편 다일의 감각 내에서는 저쪽에서 또 발사하려는 것이 느껴졌고, 이에 그는 다시 일어선 셋이 연기 속에서 달려나옴과 동시에 그것을 어깨에 맨 병사를 재빨리 쐈다. 그러자 마침 발사하려던 것이 옆으로 쓰러지며 오발되었고, 이에 저쪽에 있던 몇몇 이들이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바주카까지 쐈다는 건, 대놓고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의미였다. 이 사실을 인식한 엔시나였고, 그렇게 인식된 사실은 제이미에게도 전해져 그녀를 다시 한 번 참담하게 만들었다. ”……” 하지만 눈앞에서 총알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차린 제이미는 일단 자기가 도울 일이라도 없는지, 어느새 엔시나의 시야 속에서 자신이 그녀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라든가, 혹은 도대체 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에게도 확실히 전달되는 그 '감각'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나름대로 노력했다. 엔시나는 이런 제이미에게 잠깐이지만 고맙다는 뜻을 내비쳤다.


“7번!”


다일이 입을 열자 아린은 주섬주섬 섬광탄 하나를 꺼내 던졌고, 진을 치고 늘어선 대원들 사이에 떨어져, 비록 그들이 다들 고글을 쓰고 있었기에 별다른 피해는 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몇 초 동안은 그들이 잠깐 흐트러진 것 같아, 이를 놓치지 않고 다일이 파편탄 두 개를 동시에 던졌다.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적들이 대다수 죽어나가자, 그렇게 생긴 틈으로 엔시나와 아린이 먼저 달려갔다. “1번이랑 8번.” 엔시나가 말하자 아린은 재빨리 그 두개를 따고 던졌다. 연막탄 두 개가 저 앞에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그녀가 던지는 틈에 날아온 총알들 중 하나가 엔시나의 권총을 쳐냈다. “아!” “뛰어!” 다일이 재촉했다.


“내가 맡을 테니까…”


다일은 계속해서 총을 쏘는 이들, 열댓명 남은 그들 중 다섯을 더 쏘면서 총알도 흘려보내다가, 슬슬 막는 데 한계를 느낌과 동시에 그의 발치에 총알 몇 개가 튀기자 결국 총을 버린 그였다. “할 줄 알지?” 이진에게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얼른 다일과 자리를 바꿨고, 짧은 순간이 지나가자마자 이진은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다일보다 더 능숙하게 총알을 옆뒤로 보내며 대원들을 향해 달렸다. 뭐야, 이제보니 화살보다 훨씬 가볍다는 것을 안 이진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까는 수가 많았으니까 그렇지!” 이런 그를 다일이 다그쳤고, 이에 이진은 입을 다문 채 알겠다는 신호와 함께 펄쩍 뛰었다.


드드득–


“억–”


이진은 다일처럼 무언가를 던지거나 쏘는 건 잘 하지 못했고, 사실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그런 기술에 별로 흥미도 없었다. 하지만 뛰어오르자마자 대원 하나의 머리를 잡고서는 공중에서 몸을 틀어, 그와 함께 상대의 목도 확 꺾어버릴 만큼 상대를 몸으로 제압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다. 이쯤 되자 더이상 그에게 총알은 소용없음을 알았는지 나머지 이들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이진은 먼저 날아오는 발을 자신의 발에 힘을 주며 위로 차내, 그대로 다리를 찢어 버렸다. “아아윽!” 단순히 근육의 힘이 아닌 다른 것을 부여한 이진의 앞에 그 대원은 곧바로 쓰러졌다.








“전부 죽었다고?”


“네! 지금 당장 지원이–”


하지만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명부터 지르는 게 무전을 통해 들려오자, 마크윈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쯤 되면,” 한편 이렇게 착잡한 그에게 다른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그만 저희에게 맡겨 주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미 충분히 많이 죽었습니다.”


마크윈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별 의미도 없이.” 이런 그를 조롱하듯이 말하는 목소리, 아니 목소리들은 기계를 통해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그의 방 안에 묘하게 울렸다. “그냥 이대로 죽일 셈인가?” 얼굴을 살짝 찡그린 마크윈이 아니꼽다는 듯이 물어보자 무전 너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어차피 사살 명령도 내려졌지 않습니까? 보니까 바주카도 쏘고 그러던데.”


“그건 내 명령이 아니라–”


화가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마크윈은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관뒀다. ”…생포해.” “노력해 보죠.” 짤막한 명령에 이어지는 짧은 대답. 그리고는 통신이 끊기자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느새 이진의 주위에는 두 명만이 남아 있었다. 한쪽 다리에 약간의 상처가 났지만 이진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한 명에게 달려들어, 그쪽에서 먼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재빨리 손목부터 친 뒤 팔꿈치를 얼굴 한복판에 쑤셔박듯, 코를 부러뜨리는 데 이어 발을 높이 뻗어 턱을 차냈다. 처음에 당한 한 명처럼 목이 꺾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 대원은 뒤로 넘어갔고, 이진은 그 틈에 자신을 재빨리 찌르려는 다른 손도 막아냈다. 하지만 다른 쪽 손이 어느새 그의 머리를 향해 있었고,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해 당황한 순간,


퓩–


저쪽에서 짤막한 소리에 이어 그를 찌르려던 마지막 대원이 쓰러졌다. 이진이 뒤를 돌아보자 엔시나가 눈썹을 치켜올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해.” “네에.” 이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으야.” 한편 어느새 수류탄을 다 쓴 아린이 빈손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이거 너무 잔인야.” 주위에 피를 흘리며 널부러진 사람들을 보며 몸서리를 치는 그녀를 보며 이진은 씁쓸한 듯 혀를 찼다.


“B-3 이었나요?”


엔시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움직였다. “가자.” 셋은 조금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아무 의견도 나누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갔다. 그래도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으니까. “왼쪽으로.” 중간에 엔시나가 한 마디 하자 셋은 20번대의 창고를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이제 새벽이던가. 3시가 넘어간 걸 확인한 엔시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하품을 하는 아린과 멀정히 움직이는 이진. 그리고 그 뒤에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이는 이에게 엔시나는 무심히 눈만 깜박이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이라고?


무언가에 맞은 듯 두 눈에서 경련을 일으킨 엔시나. 그녀는 다짜고짜 뒤돌아서서 총을 한 번 쐈다. “야!?” 아린이 놀라면서 뒤를 돌아봤는데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헛것을 봤나? 혼령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뒤에 무엇인가가 있었는데, 지금 알게 모르게 불안해서 그런 걸까. 엔시나는 다시 앞을 보고 가려고 했다. 고개를 다시 돌리던 그녀가 저 철조망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기 전까진. “음!?”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는 순간 그것은 마치 원래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온데간데없었다.


아니! 헛것이 아니었다. 헛것을 본 것처럼 느끼도록 그들이 손을 썼음이 틀림없었다. 엔시나는 머리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가볍게 닦아내며 다시 앞을 보는 그녀. “뭐야,” 이진이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엔시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예요?” “그들이야.” 엔시나는 하필 상황이 상황인지라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몽마들. 여기 있어. 은폐하면서… 어쩌면, 아까부터 우리를 지켜본 거였나?”


“몽마라뇨?”


“일종의 요원들이야.”


엔시나가 말했다. “조심해.” 총을 꼭 쥐면서, 아니 그 총을 곧 버리면서 중얼거리듯 말하는 그녀. 이런 금속 따위는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제부터 눈을 믿지 마. 침착하게, 다들 조심해서 가.”


“으야야,”


엔시나의 긴장한 모습을 처음 본 아린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어쩌야?” “내가 할게.” 리니아가 말하자 아린은 곧 그녀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셋은 그렇게 앞을 보면서, 하지만 이미 온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채로 조용히 걸어갔다. 잠시 뒤 곧 무슨 일인가가 벌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을 각자 느끼면서.
요즘 바이러스에 눈병에 감기에 말이 많군요. 다들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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