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2)
슥슥–
대낮에 마당 한쪽에서 손 하나가 대놓고 귀찮아하며,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걸레를 잡고 왔다 갔다 움직였다. 하지만 잘 보면 이미 닦은 부분 위에서 계속 움직임을 반복할 뿐이었고, 결국 이 손의 주인은 닦는 데 목적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으, 야,”
아린은 커다란 독 위에 올라 그렇게 의미를 잃은 걸레질을 계속하며, 자신도 완전히 무념무상의 경지에 닿은 상태로 그 얼굴엔 표정 하나 없었다. 그러다가 이젠 이렇게 손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졌는지, 최대한 이것에 재미를 붙이려 나름 노력하려고 걸레를 슥 내밀 때마다 “으,” 하고는 다시 당기면서 “야,” 했다. 그렇게 계속, 그러나 역시 의미가 없는 일을 계속하며 혼자 음도 없는 가사만 반복하는 그녀.
“으, 야,”
마당에 있는 독은 한 개만이 아니었다. 물론 많아봐야 열 개는 되지 않지만, 애초에 그게 중요한가. 지금 그녀는 오늘 같은 날에–물론 어느 날이든 이런 짓이나 하고 있는 게 그녀에겐 시간 낭비였지만–이렇게 걸레질이나 하고 있다니.
“으, 야, 으, 야,”
짧은 소리와 함께 걸레가 슥, 슥, 독의 뚜껑 위를 움직이며, 어차피 닦든 말든 딱히 달라질 게 없는 것을 그나마 물기를 유지하는 정도로 차이를 보였다. 애초에 청소라는 건 무언가 환골탈태하는 느낌이 있어야 할 맛이 나지 않을까. 이런 짧은 생각으로 시작된 아린의 불평에는 곧 불이 붙어, 팔만 계속 움직이며 슬슬 그녀의 온갖 불만을 끌어냈다.
“왜 이딴일을 내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야. 어차피 비 오면 먼지네 뭐네 다 쓸려가는데 이게 뭐얘? 낭비얘, 낭비. 하여간 사람들 사는 것 중엔 참 이해도 안 되는 게 많으얘. 아침에 어무얘한테 혼나지만 않았어도 그냥 땡치고 나가 노는 야.”
[좀 조용히 하고 닦기나 해. 이것도 벌인 거 몰라?]
리니아가 핀잔을 주자 아린은 입을 다물고는, 그래도 마냥 조용히 있기만은 싫어서 입안에서 뭐라고 웅얼거렸다. 한편 이런 그녀에게 어디선가 영 덩어리 하나가 날아오자, 기분전환의 냄새를 맡은 소녀는 걸레를 탁, 뚜껑 위에 팽개치고 그것을 쳐다봤다. “무얘?” 아린의 눈이 뭐든 빨리 말하라고 요구하자 가볍게 웅웅거리며 빛을 발하는 영. 그리고 잠시 뒤,
“야? 그럼 산으로 간 그얘? 신관님이랑?”
[갔으면 간 거지, 왜 그걸 또 신경쓰는… 아니, 아린! 그냥 여기 있어!]
동반자의 생각을 얼른 읽어낸 리니아가 바로 꾸짖었으나 이걸 들을 아린이 아니었다. 그녀는 얼른 독 위에서 내려와 옷을 툭툭 털어내고는 다짜고짜 한 발짝 내미는데, 이런 대책없는 모습을 보다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혼령.
[정말!! 너 엄마한테 혼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래! 하여간 애가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건지 정말…]
“우야,”
눈이 가늘어진 아린. 그녀는 발로 땅을 툭 차며 또 뭐라고 웅얼거리더니, 뒤돌아서서 저 가증스런(?) 독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마당에 늘어선 그것들을 본 순간 곧 가늘었던 눈이 번쩍 떠지면서 반짝였고, 곧 한 손을 쭉 펴는 아린.
“생각났으이. 이제 보니 간단하야.”
“너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아니, 정말로, 정말로 괜찮냐고. 아무리 봐도 너 심하게 다쳤단 말야.”
“괜찮대도.”
시히델은 원래 살던 곳을 떠나기 전날 밤처럼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신이 아닌 몸이 혼란스러워서였고, 지금도 그녀의 상처에선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안에서 힘없이 기운이 살짝 새어나왔다. “으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신음하면서도, 마르한이 (지금까지 수백년을 그녀와 함께해온 만큼) 눈치를 채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혼자 그러게 놔둔 채, 자신은 최대한 멀쩡한 것처럼 조용히 앉아있었다. 대신 움직이지는 않고 가만히, 최대한 진정된 자세로. “아냐.” 하지만 마르한은 역시나, 이것 또한 눈치채고 그녀 옆에서 더 안달이었다.
“널 보라고! 이게 어딜 봐서 그냥 실수로 생긴 상처야? 도대체 어디서 이런 꼴로–”
“아, 정말! 괜찮다니까!”
결국 짜증을 내는 척 하며 그를 조용히 시킨 시히델. 하지만 그녀가 가짜라도 흥분하자 다시 한 번, 이빨에 깊게 파인 상처에서 스르르 기운이 새어나와 저 하늘로 날아갔고, 이에 시히델은 통증을 억누르며 다시 한 번 차분히, 차분히 자신을 진정시켰다. 오늘은 되도록이면 그냥 이렇게 있자고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결국 마르한도 추궁을 포기했는지 그저 상처를 최대한 감싸주며 그녀 옆에서 떨어지지 않을 뿐이었고, 이런 그의 옆에서 시히델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던, 불과 한나절 전의 일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고 힘 또한 다른 맹수에 비해 소름끼치게 강했던 그 늑대. 어지간한 인간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것을 간신히 죽였더니 그 입에서 새어나온 이상한, 정말 이상하고 불길한 검은 생물. 칼로 찔렀는데도 잘만 도망간 그것과 자기 몸 안에 있던 게 빠져나가자 정상적인 크기로 돌아온 늑대. 시히델은 분명 그것이 저 검은 생물들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아, 늑대인데도 그렇게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면서 혼자 돌아다니기까지 했음을 확실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실로 오랜만에 죽을 뻔한 일을 떠올린 그녀는 이어서 과연 그 검은 것들이 뭐였을까 하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보는 생물. 신령님들께서도 저런 게 있다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다. 대체 무엇일까, 그럼? 그것을 유일하게 목격한 그녀였기에 다른 혼령들, 심지어 마르한에게까지 얘기하지 않고 이렇게 혼자 생각만 하다가, 잠시 뒤 그녀는 어쩌면 호리에르가 저걸 알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곧 시선을 살짝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시히델. 각자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서 다른 이들과 뭐라고 얘기하는 혼령들을 하나씩 확인해보다가, 그녀는 잠시 뒤 이곳이 아닌 저쪽, 바로 유적이 있는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관찰하는 그를 발견했다.
마르한의 말이 맞았다. 여기 온 이후로 지금까지 저 유적에 찰싹 달라붙어서 저러고 있는 혼령은 오직 호리에르 뿐이었다.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져보는 동안, 다른 이들은 유적을 조사하기는커녕 아예 접근도 제대로 못한 채 그저 멀리서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따금씩 인간들이 유적에 접근하면 그걸 보면서 다소 불편해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시히델 또한 마르한이 굳이 말하기 전부터 이 사실을 어쨌든 직접 봤기에,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저절로 한탄하게 되는 그녀. 동족이지만 저런 혼령들이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전혀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혼령들을 생각하며 낮은 한탄을 흘려보낸 시히델.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는 마르한과 생각이 달랐다. 그녀가 먼저 나서야 한다느니 하는 건 결국 핑계가 아닐까? 애초에 그녀 이전에 저기 한 명이 잘만 있는데–물론 그녀도 저 한 명이 굉장히 특이하다고 인정하긴 했지만–무슨 누가 나서야 한다느니, 어차피 서로 해치지도 않기로 한 인간들인데, 그리고 실제로 어제 정말 싸우지도 않은 걸 보니 그게 사실인 것 같은데, 그런 저들이 신경쓰인다느니 뭐니 하면서 주저하는 건, 결국 어떤 조건이 주어지든 저들 스스로 유적에 접근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아니, 단순히 그녀의 의견일 뿐인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저 유적에 관심을 가지고 왔다면 지금 당장 저 앞에 뭐가 있든 신경쓰지 말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생각해도 그게 당연했다. 앞에 설령 어제의 그 커다란 늑대나 그것의 안에 있던 불길한 검은 생물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겨우 인간 때문에 어차피 이 구덩이 한가운데에 있는 유적에 가기를 주저한다니, 생각할수록 한탄만 계속 흘러나오는 그녀였다. 저기 보라고! 마침 인간 하나가 말을 거는 것에도 잘만 대답해주잖아? 저렇게 호리에르처럼–
“어, 잠깐?”
마르한이 벌떡 일어났다. 그 또한 어느새 유적 쪽을 쳐다보고 있던 모양. 그리고 시히델도, 잠시 기운을 모았다가 펴면서 자기가 헛것을 본 게 아닌가 다시 확인했다. 아니, 정말이었다. 웬 인간이 유적을 들여다보는 늙은 혼령에게 다가가,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꽤나 조심스러운 태도로 뭐라 말하고 있었다.
“인간?”
“호리에르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어느새 다른 혼령들도 그 상황을 발견하고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호리에르는 인간의 말을 천천히 듣더니, 갑자기 놀란 듯 기운이 살짝 요동쳤다. 시히델은 가만히 그 모습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그가 시선을 돌려 이쪽, 혼령들이 있는 곳을 둘러보더니 곧 시히델 쪽에서 멈추는 게 아닌가. 시히델은 설마 하는데, 이어서 그는 아예 한쪽 기운으로 가리키기까지 하면서 그 인간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 여기를 쳐다보더니, 곧장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시히델은, 아니 모든 혼령들은 그 인간을 빤히 쳐다보았다. 조금 더 가까워진 모습을 보니 젊은 여성인 듯한 그 인간은 정말로, 아니, 정말로 시히델을 향해 오는 중이었다. “시히델,” 마르한이 그녀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채로 중얼거렸다.
“지금 저 인간, 우리한테 오는 거야?”
”……”
멍한 태도로 대답이 없는 시히델. 지금 저 인간은 뭘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걸어오면서 방향 하나 틀지도 않은 그 인간 여자는 그녀의 앞에서 멈춰서서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에 마르한이 흠칫하고는 곧 자신도 몸을 살짝 숙였으나, 그 여자는 다름아닌 시히델을 내려다보며, 주저앉은 그녀의 모습에 맞춰 허리를 살짝 구부린 모습으로 목소리를 냈다.
“저기, 혹시 시히델 씨 맞으세요? 어제 저 구해주셨다는 분…“
“아린!”
아레인은 장롱이고 뭐고 죄다 뒤져보고는, 다시 마당으로 뛰쳐나와 딸내미를 불러봤다. “아린!!” 분노 반 걱정 반 섞인 그녀의 앞에는 중간 크기 정도 되는 독 하나가 반쯤 박살이 나 있었고, 다행히 빈 것이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서 아레인은 다시 한 번 크게 아린의 이름을 불렀다.
“얘가 어떻게 된 거야! 닦기 싫다고 이걸 깨먹을 애는 아닐 텐데… 그래도 착한 앤데…”
얼굴은 반쯤 험악하게 굳었고, 입에서는 딸의 이름을 담아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점점 목소리가 약해지는 그녀. 어느새 오늘 아침의 일까지 후회하는 그녀에게 어디선가 영 덩어리 하나가 헐레벌떡 날아왔다. “응?” 산에서 내려온 듯한 그것을 쳐다보는 아레인의 앞에서, 그것은 살짝 요동치더니 밝은 청색으로 빛나며 목소리를 냈다.
“어무얘! 아린야. 지금 저기 사령 하나… 저 야가 뭔 벌레에 들어가서 생난리를 쳤으야! 내 저놈 잡고 올 거이, 어무얘는 걱정 말고 거기 독 깨진 것 좀 어떻게 해주얘. 정말 죄송해얘!”
빠른 발소리와 함께 들려온 아린의 성난 목소리. 그리고 곧 녹음된 소리를 모두 전달한 덩어리는 반응을 기다리는 듯 아레인의 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애 엄마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산을 올려다보더니, 결국 한숨과 함께 이마를 감싸 쥘 뿐이었다.
“애가 진짜… 도대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어. 정말 하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