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호리에르는 꽤 불안해 보였다. 물론 불안한 건 거의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모두 무사히 와야 할 텐데 말이지…"
일단 혼령과 인간들을 각자 보내서 저쪽에 남아있는 모두를 이곳으로 불러오도록 하긴 했으나, 과연 그들이 사령들보다 더 빨리 도착해, 그들을 잘 피해서 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모두를 보낸 지 나흘이나 지났기에, 그동안 유적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던 시히델 또한 점점 냉정을 잃고 있었다.
“분명 길을 제대로 보고 간 게 맞겠지."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늦어도 사흘은 걸려야 한다고.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어쩌면 가다가 사령들과 마주쳤을지도 몰라. 피해서 가느라 그런 걸지도."
마르한이 옆에서 대답하자 한탄을 쏟아내는 시히델.
“역시 우리 모두 가서 데려올 걸 그랬나."
앉아서 중얼거리는 노일.
“애초에 열 몇 명씩 보내는 건 너무 아니었어. 호리에르,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리에르는 작은 한탄과 함께 기운을 가라앉혔다. “흐음," 하지만 옆에서 부정하는 마르한.
“지금 가도 먼저 간 분들을 만날지도 모르고, 우리가 없는 사이에 유적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혹시나 사령들이 여기로 돌아오기라도 하면 무덤을 파게 되니까…"
이에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노일도 납득했다. 시히델은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 살아 있는 느낌의 유적은 여느 때처럼 빛을 발하며 이곳에 서 있었다. 조금 더 돌아본 결과 꼭대기의 전망대 말고도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방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듯 안의 모습이 각자 달랐다. 어찌 되었든 전망대는 한 번 사용하면 한동안 쓰지 못하는 듯, 사령들이 퍼지는 걸 본 날 계속 그걸로 혼령들과 인간들이 잘 가는지 봤더니 다음날 사용이 금지되었고–그 빛 덩어리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또 어제 썼더니 다시 오늘 사용을 못하게 된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 어떻게든 저 꼭대기에 다시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시히델이 이에 대해 한마디 하자 호리에르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덩어리들 말인데, 어떻게 서로 소통이 가능한 것 같더군."
“얘기가 통한다고요?"
“그래."
호리에르가 긍정했다.
“사실 전부터 그 '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말야, 단순히 저 유적을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더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조각에 담겨 있던 건 일종의 비유적 표현이었어. 혼과 살, 그리고 영이라고 한 부분 말이네."
“네?"
시히델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저 유적이 영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면 대체 뭘 말하는 걸까? 그리고 호리에르는 그녀의 생각에 대답하듯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곧 주위의 혼령들을 둘러보며 얘기를 꺼냈다.
“내가 예전에 자네들에게 했던 말 기억하나?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걸 자네들에게 직접 전하는 것 같은 그런 거 말이네."
"…아아!"
순간 시히델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온몸의 기운이 쭈뼛 섰다. 그리고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는 프리아에게 뭐라고 말해주려 하는데, 순간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어떤 기운이 전해져 왔다. “앗," 프리아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왔어요! 저기,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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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니까!"
슬슬 저쪽에서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게 보이자, 솔은 거의 화를 낼 정도로 다급해졌다. 이렇게 그가 화를 내기까지 하자 리니아는 약간 의아해했지만, 아린은 그런 거 알 게 뭐냐는 듯 그를 끝까지 잡아당겼다.
“안돼, 아린, 제발… 난 저기 가면 안 된다고!"
“안되는 게 어딨으야!"
소녀는 전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고, 소년 또한 여기까지 오자 순순히 끌려갈 기세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린이 잠깐 멈춰 서서
“그럼 말하얘! 그렇게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 왜 안 되는 건지 말을 안 하는 야? 내가 얼마나 답답한지 알긴 아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솔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바로 저쪽에 보이는 그곳을 이젠 거의 겁에 질린 눈길로 보고 있었다. [으응?] 리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쟤 분명 저기서 깨어나고, 저기 있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었나? 저기 있으면 편해졌기에 계속 있다가 내려왔다고. 저기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을 정도로 오래 있다가 왔다는데, 그 정도로 저곳을 좋아하고 편하다던 애가 갑자기 왜 저러나 하는 그녀의 생각. 이 생각은 곧바로 아린에게 전해졌고, 이에 아린도 멈칫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봤다.
“제발 부탁이야. 다시는 저기 가면 안 된다고 했어. 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그리고 이렇게 멈춘 아린에게 드디어 한 가지를 말해주는 소년. “왜?" 이젠 아린이 아닌 리니아가 그에게 추궁하듯 묻고 있었다. “그," 솔은 입을 열긴 했으나 뭐라고 나오는 말이 없었고, 이에 리니아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손을 잡아 주었다.
“말해봐, 솔. 우리라면 믿을 수 있는 거 알잖아. 신령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몰라도, 우린 끝까지 네 편이야."
"……"
소년은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입술만 살짝 벌어져, 그 이상 열지도 닫지도 못한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에 아린이 치고 나와서 “소야," 이제 화는 조금 풀렸긴 하지만–그의 겁먹은 얼굴이 거짓일 리 없었다–도대체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말해보이. 무슨 일얘? 난 소야 그렇게 기죽은 것도 싫고, 소야가 뭐 이상한 애라고 해서 쫓아내지도 않으이. 너도 아는 야."
“으응. 나도 알아."
고개를 끄덕인 솔. 하지만 여전히 입은 뭔가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린은 이렇게까지 오자 너무나 답답하고, 하지만 이런 소년에게 또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팔짱을 낀 채 애꿎은 흙바닥만 발로 탁탁 치는데, 그렇게 둘이 있는 곳을 향해 어떤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하면서 들려왔다.
“야?"
저 전당 근처는 꽤 고요하기에 갑자기 소리가 나자 놀라서 몸서리치는 소년과,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이는 아린. 그리고 이렇게 저쪽을 본 순간, 누가 따라왔나 했던 예상이 맞지만 동시에 틀리면서, 그녀 또한 갑자기 겁에 질린 마냥 얼굴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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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봐요, 호리에르."
이곳에 온 새 손님들 중 혼령들은 여기 상황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그에게 따지고 들었다.
“왜 우리가 인간들과 있는 거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설마 우리한테 거짓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노일."
한편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쪽에서 프리아가 입술을 깨물고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인간들 사이에도 실랑이가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게 보이고 들려왔다. 시히델은 이런 중에 왠지 난감해져서 가만히 있는… 아니? 내가 왜 난감해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자기가 지금 무슨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건지, 기운을 살랑이며 부정했다. 내가 왜 저들이 싸우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 싸우면 그냥 싸우는 건데 말야.
하지만 어찌 되었든 최소한 혼령들끼리 저렇게 다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때문에 시히델이 앞으로 나서서 새로 온 손님들에게 “잠깐," 말을 걸었다.
“지금 내 말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기 인간이 있네 없네 하면서 따질 때가 아냐."
“시히델?"
혼령들이 놀라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인간들이 있는 중에 그녀가 멀쩡히 살아있는 건 둘째치고, 그 시히델이 저런 말을 하다니 하는 태도가 아주 뚜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저런 모습들이 살짝 거슬렸지만 상관치 않고, 조용히 그들에게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인간들이 있지.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인간들과 싸워 봐야 전혀 얻을 게 없어. 잃으면 잃었지."
“흐음,"
하지만 그 시히델이 이렇게 말할 정도이니 정말인가 하면서, 그렇게 따지려는 태도를 서서히 버리고 냉정해지는 혼령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시히델 스스로 그래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혼령들이 그녀에게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순간 그들의 뒤로, 저 뒤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이자 저절로 시선을 돌렸고, 다음 순간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나 “저, 저거!!" 모두에게 전해질 정도로 크게 말했다. 그리고 이에 혼령들도 인간들도 그쪽을 봤다.
“젠장! 왜 저것들도 따라온 거야!"
사령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 최소한 수십 마리는 되는 것들이 구덩이 벽을 타고 내려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인간들은 재빨리 칼을 들었고, 한편 그 중 몇몇은 혼령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을 여기까지 끌고 오다니 대체–"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너희 인간들 때문에 여기로 온 거 아니냐!"
“다들 좀 닥쳐!!"
시히델이 오랜만에 고함을 질렀다.
“일단 저것들을 어떻게 몰아낼 생각부터 하라고!"
“그 말이 맞아. 우리 모두가 저 괴물들을 불렀어. 어떻게든… 처리하도록 하지."
이어서 노일도 한마디 하자 인간들도 혼령들도 상황을 조금은 파악했는지, 곧바로 서로에게 신경을 끄고–다만 싸움을 멈춘다기보다는 거의 서로를 없는 것처럼 무시하듯–저마다 맞설 준비를 하면서 이쪽으로 몰려오는 사령들을 응시했다.
한편 호리에르는 이렇게 상황이 커졌다가 조금 진정되는 중에도 전혀 말이 없었다. 시히델은 지금까지 그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또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조금 보이기도 했다. 아까부터 그 영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 걸까. 단순한 짐작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마치 전에 유적 앞에서 프리아의 생각과 느낌이 모두 전해졌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가 이걸 떠올렸을 때, 갑자기 호리에르가 천천히 자신의 기운을 거두더니 한마디 했다.
“이제 알겠군."
모두가 싸울 준비를 하며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시히델은 그가 천천히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봤다.
“이제야 알겠어."
“호리에르! 위험하니까 뒤로 와요!"
하지만 호리에르는 혼령들의 말을 부정하고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펴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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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은 재빨리 손을 휘둘러, “으얏!" 한 마리를 곧바로 없앴다.
“빨리 오얘!"
그러면서 솔을 부르자 소년은 그녀 쪽으로 오면서도, 마치 양쪽에 적이 있는 사람처럼 굉장히 불안해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된 이상 저곳으로 가야 했다. 아린도 리니아도 이미 그렇게 결정한 뒤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사령들이 느닷없이 몰려오는 이상 저렇게 영이 흐르는 곳이라면, 저렇게 영이 풍부하게 넘치는 곳이라면 지금처럼 거의 백 마리가 몰려온다 해도 어떻게 버틸 수는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어차피 못 싸우면 죽으니까.
“소야!"
아린은 점점 전당 쪽으로 뒷걸음질치며, 동시에 앞에서 오는 사령들을 어떻게든 밀어내면서 그를 불렀다. 솔은 그녀를 따라오긴 따라왔으나, 그러면서 새하얀 은빛 돌바닥이 가까워지자 벌벌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태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아린은 먼저 계단 위로 폴짝 뛰어오른 뒤, 오늘도 넘쳐나는 기운을 십분 활용하여 더 강한 힘으로 사령들을 두세 마리씩 쳐내고 때려잡았다. “으야앗!" 마치 누가 뒤에서 그녀를 든든히 받쳐주는 것 같았다. 가망이 있음을 느낀 아린은 더 활발하게 손을 휘두르고, 몸을 돌려 발로 차는 등 제자리에서 날뛰듯 하며 사령들에게 맞섰다.
한편 이런 그녀를 따라오며 솔은 마침내 계단의 바로 앞에 섰다. 온몸이 떨렸다. 지금 이 위에 올라갔다가는 돌이킬 수 없다. 솔은 바로 이틀 전에 신령에게서 들었던 말들이 하나둘씩 생각을 스치며, 천천히 눈을 감은 채 한숨을 쉬었다. “소야!" 아린이 어서 올라오라며 그를 부르고 있었다. 솔은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괴물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어쩌면 둘 다 여기서 죽을지도 몰랐다. 소년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냥 느낌이지만, 확실했다. 그리고 이 확신이 솔을 점점 발부터 다리, 그리고 손에 이어 온몸을 아까 아린이 잡아당기던 것보다 더 세게 그를 밀어붙였고, 결국 솔은 눈을 뜨자마자 “난," 천천히 한 발을 덜덜 떨면서 마침내 돌계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젠, 정말 모르겠어. 이젠 정말…"
소년은 아린의 옆에 서서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는,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싸울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