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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65


“그럼, 그 애가 정말…"


이진이 말하자 란이 끄덕였다. “사실," 한마디 덧붙이는 그.


“나는 아직 모르겠어. 신령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리는 없지만, 난 그 애한테서 별 큰 건 못 느꼈는데 말야. 애가 착하기도 하고."


“그러게요. 조금밖에 못 봤지만 완전히 아린 못지않게 어린애던데."


이진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다시 끄덕이는 란. 하지만 곧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실이라면 사실이겠지. 오죽하면 내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신령님께서 조금 겁먹으신 것 같은… 마르한도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는데."


“힘들게 됐네요. 특히 아린한테는."


동생이 어떤 기분일지 걱정하는 오라부이에게 란은 그래도 조금 미소 지으며–사실 신관이 되기 전부터 친했다지만 이진도 그가 웃는 모습은 꽤 오랜만에 봤다–상황을 정리하듯 말했다.


“걱정 마. 어쨌든 그 전당에만 다시 가지 않으면 된다는 거 아냐. 여기서만 지내면 별문제 없–"


“네!?"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이진. 란이 그를 뚫어지듯 보자 그는 입이 점점 더 벌어지더니 한마디 했다.


“그럼 진작 말했어야죠! 안 그래도 아린이 오늘 거기 꼭 데려간다고 그러던데!"


“뭐?"


갑자기 한 대 맞은 듯 멍한 얼굴의 란.


“너야말로 왜 이제서야…"


둘은 그렇게 서로를 보면서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다가, 더이상 뭘 생각하거나 말할 것도 없이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빨리!" 란이 앞서서 산 쪽으로 달리자 이진이 빠르게 따라갔다.



==



아린은 곧 한 발짝 더 물러나서, 자신의 머리 쪽으로 뛰어오르는 사령 하나를 주먹으로 팼다. 곧 그것이 죽어 사라지고, 그녀는 옆에서도 한 마리가 달려오자 그것을 발로 차내며, 그러면서 손에 빠르게 영을 모아 앞의 사령들에게 작은 구슬처럼 나누어 흩뿌렸다. 작지만 빠르게 날아오는 영 구슬에 맞은 사령들은 비록 죽지는 않았으나 저마다 몸에 구멍이 나면서 비틀거렸고, 이들을 놔둔 채 다른 사령들이 앞으로 나섰다.


“흐야앗!"


돌계단에 올라서면서부터 바로 전해져 오는 기운을 두 손에 모아, 아린은 뒤로 펄쩍 뛰면서 다시 한 번, 이번엔 양손으로 덩어리를 구슬로 쪼개 흩뿌렸다. 이에 사령 여럿이 맞아서 죽거나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며 제자리에 엎어졌고, 다시 몇 마리가 앞에서 뛰어 아린을 향해 달려오자 그녀는 둘을 할퀴고, 그러면서 옆의 하나를 발로 차낸 뒤 다시 한 번 뒤로 물러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싸울 순 없을 거야.]


리니아가 경고하자 아린은 “으야." 거의 속으로만 동의하며,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사령들에 맞서 다시 영을 끌어모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몰려온 걸까? 아린이 그렇게 싸우는 동안 리니아는 잠시 생각해봤으나, 그러기도 전에 두 마리 정도 아린의 공격을 피해 그녀의 팔을 쳐냈다. “얏!?" 영을 쏘려던 손이 뒤로 빠지면서 기껏 모은 덩어리가 저 하늘로 날아갔고, 아린은 얼굴을 찡그리며 다른 그것을 처리했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이번엔 그녀의 다리를 치려고 달려들었고, 아린은 이에 그것을 차려–


펑!


“우, 우와아…"


아린이 어떻게 하기도 전에 그것이 저 멀리 나가떨어지며 사라지자, 그녀는 옆을 쳐다봤다. 솔이 한 손으로는 팔을 움켜쥔 채, 놀란 눈으로 아린을 공격하던 사령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소년은 아린에게 이끌리며, 그리고 사령으로부터 도망치며 결국 다시 한 번 전당에 올라서고 말았다. 그리고 금기를 어긴 순간 사람에게 밀어닥치는 묘한 쾌감처럼, 그는 갑자기 온몸이 요동치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가 자신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생기. 생명이 그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이곳에서 처음 지내고 있을 때엔 전혀 느끼지 못한, 자신이 진정 살아있는 생명임을 느낄 만한 무언가에 흠뻑 취해가고 있었다. 신령의 말 같은 건 이미 그의 생각 속에서 증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왜 이제 와서 느껴지는 걸까? 처음에 지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곳에서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를 느꼈다. 처음과는 다르게 산 공기가 더 시원하게 그의 몸속에 들어왔다 나갔고, 그다음으로 왔을 때에는 훨씬 더… 그는 아린과 서아가 대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처음으로 그 기이한 힘을 썼던 걸 떠올렸다. 그래, 소년은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갔다 올 때마다 그는 이상하게도 힘이 생기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봐, 저번보다 더 강한 기운이 손에서 퍼져 나왔잖아?


[역시 저 애, 영을 쓸 수 있어. 그런데 어째 전보다 더 기운이 세진 것 같은데?]


리니아가 이걸 느끼고 중얼거리자 아린이 사령 하나를 할퀴면서 대답했다.


[여기가 영이 많아서 그러얘. 리냐도 계속 생각만 하지 말고 좀 도와주이.]


하지만 그녀의 말은 틀렸음을 리니아도, 그렇게 말한 아린 스스로도 느꼈다. 같은 장소인데도 저번에 처음 영을 썼을 때보다 더 강하고 활발한 기운이었음을, 둘은 그렇게 은연중에 인식하면서도 일단 사령들을 몰아붙이는 데 힘썼다.


한편 이렇게 솔의 눈이 점점 맑아지면서 평소의 모습으로, 아니 평소보다 왠지 더 활발함이 감도는 그가 되었다. 이번엔 저쪽에 몰려있는 사령들을 쳐다본 순간, 갑자기 아까 영을 쏘았던 그의 손이 갑자기 안에서부터 비틀렸다. “아읏!" 갑작스럽게 손에 쥐가 난 그는 당황한 얼굴로 끙끙거리다가 곧 다른 손으로 손가락이며 손바닥을 주물러보고, 살짝 꺾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이에 그는 표정만 더 일그러지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 버둥거렸다.


“아, 아린?"


그가 중얼거리듯 소녀를 불렀으나, 아린은 어느새 리니아까지 생각을 멈추고 합세할 정도로 사령들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소년은 어느새 사령들 몇 마리가 자신을 인식하고는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그는 언제 자신감이 생겼냐는 듯 곧바로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슬슬 치더니, 그것들이 자리에서 뛰어올라 그를 바닥에 찍어 누르려 하자 “저리 가!" 소리를 지르며 아직도 쥐가 난 손을 반사적으로 뻗었다.


퍼펑!


순간 그의 손 앞에서 마치 커다란 유리가 깨지거나 혹은 커다란 풍선이 터지듯, 눈에 보일 정도로 요란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솔에게 달려들던 사령들은 일순간 증발이고 뭐고 아예 사라져 버렸고, 이를 아린이 보고는 멈칫했다. “소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야얏!?"


잠시 집중을 잃은 아린은 사령 세 마리에게 다리와 팔, 그리고 배를 동시에 맞고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린!" 솔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번엔 폭발이 아닌 바람, 마치 바늘 혹은 칼날이 함께 휘날리는 듯 매섭기 짝이 없는 바람이 몰아쳤다. 사령들은 즉시 죽어 없어졌으나, 하필이면 아린 또한 이에 말려들어 “으야야!" 소리를 지르며 돌바닥에서 마구 뒹굴었다.


“아프야! 아프야!"


[아흑… 너무 아프잖아…]


“앗,"


솔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자기 때문에 다친 아린을 본 순간, 어느새 거의 잊을 뻔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긴말은 않겠다. 그리고 이유 또한 너한테 설명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이틀 전, 신령은 말했다.


“앞으로 그 산에는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네가 처음 있었다는 그곳 말야."


“허나,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 그곳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이후로 절대 이 마을에 내려오지 말거라. 지금 내가 할 말은 이게 전부다."


갑자기 그곳에 다시는 가지 말라고, 만일 갔다가는 돌아오지도 말라고 말하던 신령. 소년은 갑작스런 명령에 놀라서, 게다가 그곳에 가지도 말라니, 거기가 자신에게 어떤 곳인지를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그가 말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그곳에 가지 말라니, 도대체,"


“너는,"


신령은 엄한 태도는 아니었다. 소년의 기분이 상할 것을 고려했는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는 그녀였으나, 어쨌든 그녀가 하는 말에는 딱히 친절하다는 느낌 또한 없었다. 왠지 조금 절제되었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감정조차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영을 썼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은 해 보았느냐?"


“아뇨."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러자 신령이 그의 옆에서 영 덩어리와 기억을 공유 중인 제이미, 엔시나를 흘끗 보더니, 둘이 이 상황을 모르고 있음을 확인하고서 소년에게 말했다.


“내가 맞춰볼까. 네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쓰게 된 거지?"


“아, 네에! 맞아요."


솔의 눈이 동그래지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는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자신도 살짝 끄덕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넌 그 힘을 쓸 수 있지만, 그걸 조절할 능력은 없어. 게다가 넌 앞으로 그 전당에 드나들 때마다 영이 점점 더 강해질 거야. 아마 그곳에 흐르는 걸 네가 빨아들이는 식으로겠지."


“네?"


소년은 영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정말요?" 이에 유는 긍정해 보였고, 잠시 혼자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어쨌든 다시 말한다. 그곳에 다시는 가지 마. 이미 넌 그 힘을 잘 조절하지도 못하면서 쓸 수 있게 됐어. 앞으로 네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작은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그곳에 갔다 올수록, 더 큰 피해가 있을 것이야."


"……"


신령의 냉정한 말들을 떠올리며, 솔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잠시 정신이 팔린 순간, 갑자기 웅웅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리더니 이에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어느새 사령들이 하나로 뭉쳐서 거대한 맹수처럼 그에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흐허억!!"


하나로 뭉친 사령들은 그의 몸을 통째로 날려 버렸고, 숨을 토해내며 저 멀리 나가떨어진 솔은 새하얀 돌바닥 위에 미끄러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소야!" 아린이 벌떡 일어나서는 사령들에게 커다란 영 덩어리 하나를 날렸고, 그러자 검은 괴물들은 풍선 터지듯 흩어지면서 몇 마리가 죽어 나갔다. “괜찮야?" 아린이 얼른 그에게 가서 걱정스런 얼굴을 하자, 솔은 힘들어하면서도 아린에게 말했다.


“미안해, 아린. 난 도와주고 싶었는데… 이제 무엇도 하면 안 돼, 난…“



==



시히델은 재빨리 뛰어 나가서 호리에르의 옆에 섰다. “안돼." 하지만 그가 이런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


“뒤로 물러나 있게. 나도 이게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지금 저것들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난 알고 있네."


호리에르가 확신에 찬 태도로 말했다. “물러나." 그가 재차 말하자 시히델은 기운을 빠르게 휘두르면서도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그가 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만일을 대비해 바로 달려들 준비를 하며 그의 뒤에 섰다.


늙은 혼령은 조용히 사령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운을 최대한 구부리면서 자기 자신을 최대한 눌렀고, 그러다가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거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그렇게 구부렸던 자신의 기운을 펴며, 몸 일부를 천천히 뒤로 뻗었다. 그리고 시히델은 갑자기 그의 주위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더 뒤로 물러났다. 이건 마치, 그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모두에게 퍼뜨릴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호리에르," 시히델이 중얼거렸다.


“대체 뭘 하는…"


그러면서 시히델은 지금 그의 몸 주위로 모이면서 물이나 공기처럼 흐르는 그것이, 저 유적에 감도는 무언가와 비슷함을 깨달았다. 그래, 유적이 그녀와 프리아를 연결해준 게 아니었다. 그 커다란 건물에 흐르는 힘, 지금 호리에르가 다루는 듯한 그것이었다. 또한 저 안의 이상한 빛 덩어리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힘과 아주 비슷한 것이 뭉쳐있음을 깨달은 그녀. 그리고 이 모든 걸 지금 이 순간 깨달은 순간, 호리에르는 자신의 앞에 들이닥친 흐름을 몸을 휘둘러 내던졌다.

시히델은 보았다. 그가 밀어낸 흐름은 마치 커다란 바람 혹은 파도처럼 사령들을 향해 뻗어 나갔고, 이에 휩쓸린 사령들, 그녀가 칼로 찌르고도 멀쩡히 빠져나간 그것들은 순간 자리에서 멈추더니, 저마다 경련을 일으키고는 몇몇이 빠져나가는가 하면 남은 것들은 그대로 말려들었다. 그리고 강한 기운에 덮쳐진 괴물들은 그대로 검은 몸체가 서서히 물처럼 증발해 가더니, 곧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죽였어!"


사령에 대해서 알고 있는 혼령들과 인간들이 저마다 중얼거렸다. 한편 다른 사령들은 동족들이 갑자기 죽은 것에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걸 멈췄다. 그리고는 한 곳으로 모여들며 웅웅거리는 사령들. 시히델은 그것들을 멍하니 보다가, “호리에르?" 저것들을 처음으로 죽인, 그리고 방금의 그 힘을 처음으로 다룬 그를 불러 보았다. 자신도 조금 놀란 듯했지만, 어쨌든 그는 멀쩡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있는 사령들을 바라본 뒤, 돌아서서 모두를 보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영'이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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