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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67


도대체 언제쯤 잠들었던 걸까, 아린은 리니아가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눈을 떴다. “으얘?" 밝은 빛으로 빛나는 돌멩이들이 보였다. 뭐지? 여기는 집이 아니었다. 마을도 아니었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공기가 좀 더 맑고 차가웠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는 갑자기 불이 켜지듯 자신이 잔 게 아니라 기절했었음을 알았다. “소야?" 그녀는 얼른 몸을 일으켜 돌바닥 위를 보았고, 그렇게 시선을 올린 순간


“으, 으야?"


[저, 저건 무슨…]


아린과 리니아가 동시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앞에, 솔이 아주 어색한 동작으로 영을 휘두르며 사령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아린과 리니아는 봤다. 그가 손을 휘두르거나 뻗을 때마다, 아주 강한 기운이 사방으로 일면서 사령들을 몰아내거나 덮쳐 죽였다. 것도 한 번에 수십 마리씩이나. 아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저런데도 계속해서 끝없이 몰려오는 사령들도 그렇지만, 대체 저 소년이 어떻게 저런 힘을 다루는 걸까.


[강해.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해, 저건. 지금 우리가 깬 것도 저걸 느끼고서 그런 것 같아.]


리니아가 멍하니 중얼거렸고 아린도 끄덕였다. 그러면서 계속 지켜보자 솔은 이번엔 두 손을 모아 힘껏 바닥을 향해 내리쳤고, 그러자 갑자기 영으로 뭉쳐진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 이번엔 아린이 있는 곳까지 오자 “으야!" 얼른 몸을 숙여야 했다. 곧 파도가 지나가고, 다시 고개를 들어 보자 소년은 자신의 몇몇 손가락에서 물줄기처럼 뻗어 나오는 영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뭐, 뭐야?" 그는 눈이 동그래져서 그걸 뿌리치기 위해 탁탁 털었고, 그러자 물줄기 형태로 나온 영은 허공에 흩뿌려지며 사령 몇 마리를 그대로 베어 버렸다. 솔은 그렇게 무심코 한 행동에도 사령들이 죽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면서 동시에 굉장히 무서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칫,"


한편, 이런 그를 지켜보던 아린과 리니아는 어디선가 누군가가 말하는 것에 고개를 돌렸다. “응?" 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아닌가 싶어 다시 솔이 있는 쪽을 보는데, 순간 다시 한 번,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인간인 줄 알았는데, 정말 심각한 방해물이군 그래. 별수 없지."


“누구얘?"


아린이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쪽에서 무언가가 산을 타고 어딘가로 멀리 가는 걸 발견했다. [뭐지?] 리니아가 나서려 했으나 아린이 그녀를 멈추고는, 다시 솔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사령들을 처리 중이었고, 이런 소년을 보며 아린은 눈을 깜박였다.


“사람이 아니얘. 애초에 사람이 영을 쓸 리 없으이… 그래도 정말 사람이 아니었으얘."


[흐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계속 소년을 지켜보며, 그러다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 것 같으면 얼른 피했다가 다시 지켜보기를 반복했다.



==



[시히델?]


어느새 프리아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시히델.]


“으, 응?"


어느샌가 정신을 잃었었다. 그녀는 프리아가 부르는 걸 여러 번 듣고 나서야 이걸 알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조금 정신이 들자 유적 방과 구슬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곧 벽 너머로 호리에르가 사령들을 상대로 점점 밀리고 있는 게 보이자 그제서야 상황을 기억한 시히델. 곧바로 “아!" 눈이 커지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어떻게 됐어? 지금 내가 잠깐 기절했던 것 같은데–"


“시히델?"


혼령들 중 하나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말투가 꼭… 시히델 같잖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응?"


그 혼령을 마주 보는 시히델. “뭐가?" 그녀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내 말투를 쓰지 그럼 뭐겠어? 아니, 너희들 왜 갑자기 다들 그런 태도로 날 봐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살짝 찡그린 순간, 시히델은 지금 자신에게 얼굴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그걸 만져 보았다. 아니, 만지려다가 자신이 혼령의 몸 대신 인간의 손을 들어 올렸음을 알고 또 놀라서 흠칫했다. “뭐야!?"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손, 인간의 팔, 인간의 가슴과 배, 다리, 발… 하나도 틀림없이 완전한 인간의 몸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런 일에 고개를 마구 저으며 뒷걸음질치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인간의 머리도 달려 있음을 알았다. 이제 보니 옆으로 머리카락도 보였다. 약간 자줏빛이 섞인 검은 머리.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머리색이 아닌가 싶은 순간, 프리아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시히델.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제 몸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 시히델이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목소리가 들린 게 아니었다. 전해졌다. 프리아가 그렇게 말하려고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게 그녀에게 전해져 왔다. “프리아?" 시히델은 마침내 자신이 프리아 대신 그녀가 되어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에!?" 그리고 이런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전해졌는지 화들짝 놀라는 프리아.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시히델이 제가 됐다니, 그게 가능해요?]


“나도… 나도 몰라…"


그녀가 중얼거리자 주위의 혼령들도 인간들도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 프리아가 말하는 게 이들에게는 들릴 리가 없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다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녀는 프리아의 몸을, 인간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빠르게 설명하기 위해 “저기," 마르한에게 묻는 그녀.


“지금 어떻게 된 거였어? 내가 어떻게 된 거야?"


“그,"


마르한은 프리아가 자신에게 반말을 써가면서, 것도 시히델의 말투로 물어보자 굉장히 어색해했다. 왠지 그게 느껴졌다.


“시히델이… 갑자기 사라졌어. 당신을 잡고 있더니, 갑자기 사라졌어요. 마치 당신한테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게 정말이야?"


“응."


조그맣게 긍정한 마르한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계속 기운만 살랑이다 갑자기 눈치를 챘는지 “저어," 그녀에게 물었다.


“너, 혹시 시히델이야?"


그리고 이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시히델. “뭐!?" 곧 둘을 제외한 모두가 놀라서 제각기 뭐라고 말을 했다.


“네가 시히델이라고? 무슨 소리야, 프리아?"


“시히델이 프리아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 지금 프리아가 시히델이라고?"


“저 얼굴 표정은 딱 시히델이 생각나는 그거이긴 해. 프리아가 저런 얼굴을 할 리 없다고."


“말투도 그렇고… 모르겠어, 난."


제각기 확신 없는 말만 하며 있는 도중, 갑자기 누군가의 비명이 퍼졌다. 호리에르였다. “으흑!" 그는 땅에 마치 인간이 무릎을 꿇듯 반쯤 주저앉았고, 그 주위로 혼령들과 인간들은 어떻게든 사령들을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시히델은 이걸 보고서 다른 생각은 관두고 그 구슬에서 전해받은 말들을 떠올렸다. 어쨌든 이게–비록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깝게–이어진 거라면, 지금 그녀에겐… 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에게 인간의 손이 있다는 걸 신기하게 여기던 순간 그녀는 곧 느꼈다. 지금까지 멀게 느껴오기만 했던 그 힘이 지금 그녀에게 있었다. 손에 힘을 살짝 쥐어보자 순간 펴진 손안에 무언가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모였다. 그러다가 힘을 뺀 순간 그것이 갑자기 튀어 나가 그녀의 이마를 쳤고,


“으읏!"


[아얏,]


시히델과 프리아는 동시에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프리아의 그것을 전해받은 시히델은 이젠 감각까지 이어졌음을 알고, 자신과 프리아가 단순히 이어진 게 아니라, 어쩌면 한 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추측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재빨리 방을 나가 영 덩어리 하나를 붙잡았고, 그것은 시히델을 저 아래에 내려다 주었다. “호리에르!" 그녀가 소리치면서 뛰어 나가, 이미 많이 다친 늙은 혼령에게 뛰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차던 칼을 뽑아 들었다. 시히델은 그러면서 조금 놀랐다. 내가 왜 이걸 잡았지? 그녀는 인간의 발로 뛰어가면서 자신이 든 칼의 번득이는 날을 멍하니 쳐다보았으나, 그것에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인지 그 금속으로부터, 아니 금속에 자신의 힘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와아,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모르겠어."


아까 힘을 주다 보니 저절로 이렇게 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그녀는 이 칼에도 영이 어떻게든 있음을 알고, 한 번 그걸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호리에르가 바로 눈앞에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그녀는 쓰러진 늙은 혼령 앞에서 두 다리로 펄쩍 뛰어, 곧 땅에 떨어지면서 그를 향해 달려드는 사령들을 향해 칼을 아래로 휘둘렀다.


촤악!


마치 쏟아지는 물에다 대고 휘두르는 것 같았다. 검은 괴물의 살이 몸체가 물처럼 사방으로 튀면서, 사령들이 뿔뿔이 흩어짐과 함께 몇 마리는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됐어!" 정말로 사령들이 눈앞에서 죽자 시히델도, 프리아도 놀람과 함께 자신들이 해냈다는 기쁨에 자신감이 생겼다.


[옆이요!]


한편 프리아는 그녀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하지만 시야 안에 분명히 있는 사령 하나를 지적했다. 시히델은 조금 어색했다.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 건 그녀인데, 프리아가 같이 있으면서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걸 같이 보고 따로 생각하며 말한다니. 어쨌든 시히델은 다시 칼에 힘을 주고 그것을 베어 버린 뒤, 이젠 그것을 한 손으로만 잡고서 다른 손으로는 시험 삼아 힘을 세게 쥐어 보았다. 과연 영이 그녀의 손안에서 모여 덩어리졌고, 그녀는 이렇게 모인 그것을 사령들에게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그녀 아니 프리아의 주먹만 한 덩어리는 사령들 중 두 마리에 꽂히면서 그것들의 몸에 구멍을 냈다. “와아," 당장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다치지도 않을 것 같던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호리에르가 열심히 싸운 덕에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한 시히델이었고, 이런 그녀를 보며 호리에르가 말하는 게 전해졌다.


“해낸 건가. 그런데 시히델은 어디 있나? 그 애도 여기 온 것 같은데."


“그,"


칼을 크게 휘둘러 사령 하나를 더 잡은 그녀는 상처를 딛고 천천히 일어나는 그를 보며, 인간의 입으로 약간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시히델이예요."


“으응?"


호리에르의 기운이 옆으로 꺾였다.


“무슨 말인가? 자네가 시히델이라니…"


“일단 나중에 말할게요."


어쨌든 남은 사령들도 충분히 위협적이었기에, 그녀는 이전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가벼운 인간의 몸으로 다시 뛰어, 공중에서 영 덩어리를 던짐과 함께 칼로 사령 하나를 내려찍었다. 어느새 호리에르도 다시 일어나서 사령들을 처리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됐군. 어서 마저 끝내지."


“네!"


그렇게 둘은 남은 사령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



달빛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별빛 또한 아주 또렷했다.

하지만 그 밑으로는 성난 파도와 물줄기가 몇 번이고 이곳을 휩쓸은 건지, 더이상 사령이 보이지 않자 아린이 다시 돌바닥 위로 기어 올라왔을 땐, 이 전당은 전처럼 영이 풍부하게 흐르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냥 산속에 있는 어떤 곳일 뿐이지. 그리고 소녀가 돌바닥에 서서 조용히, 더이상 한 마리의 사령도 남지 않은 곳에 선 소년에게 다가가자, 아무 말도 움직임도 없던 소년은 갑자기 그녀가 거의 가까이 오자


“오지 마, 아린!"


등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야?" 아린이 멈춰 서서 입을 열었다.


“사령들 다 죽었으얘. 이제 끝났으야."


“그래."


이 말에 고개를 푹 숙이는 솔. “끝났지." 그가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끝난 거야… 정말로 끝났어, 난."


“으야?"


뭔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는 아린이었다.


“그건 또 뭔 말얘? 네가 끝났다니?"


[아린,]


[왜, 리냐?]


[그… 신령님께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셨지? 여기 다시 오면 돌아오지 말라고.]


[야. 그게 왜얘?]


아린이 묻자 리니아는 대답 대신 그녀가 이미 봤으나 그 사이에 까먹은 것들을 떠올려 주었다. 이미 몇 번이고 사령들뿐만 아니라 아린에게까지 피해가 오게 한 솔, 그리고 그가 무언가를 할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소년의 힘과, 반대로 점점 더 줄어드는 전당의 영. 누가 봐도 저 소년이 영을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이제 그는 자신이 제대로 조절하지도 못하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이나 혼령보다도 훨씬 더 강한 힘을. “으, 으야," 이 사실이 모두 머릿속을 스치자 표정이 죽은 아린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저기," 하지만 아직도 궁금한 건 남아 있었다.


“여기 이제 영이 많지 않으이. 다 너한테 간 거 맞야?"


이에 뒤돌아선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솔.


“야아… 그렇구야. 그런데 왜? 왜 그게 다 너한테 간 거얘?"


“원래 내 거였으니까."


소년이 대답했고, 아린은 그가 자신의 손을 꽉 쥔 채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음을 알았다. “야?" 고개를 갸웃하는 아린.


“원래부터 네 거얘? 그 많은 게? 소야, 너 대체 뭐 하는 애얘?"


“난,"


솔은 입을 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젠 자신도 받아들여야 했다. 이미 사령들과 싸우면서 스스로도 직접 깨달았으니까.


“전 사람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 솔은 끝까지 따지고 들었다. 유의 태도는 이미 부정적이었으나, 그럼에도 알 건 알아야 하기에 끝까지 묻는 소년.


“이렇게 딱 봐도 사람인데, 아니면 뭐라는 거예요? 그리고 왜 제가 영을 조절하지도 못한다는 건데요?"


이런 그의 기세와 함께 갑자기 저 뒤에 있던 촛불이 바람이라도 분 듯 흔들리자, 유는 이에 흠칫했다. 얼른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소년을 보며 크게 한숨을 쉬는 그녀. 그리고 천천히 유는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줄어들었고, 그렇게 모습이 다 바뀌자 조용히 말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어. 영에 익숙해지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을 써야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지."


“우리?"


그때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조금 어이가 없었던 소년이었으나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이미 직접 이 자리에서 증명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며 솔은 천천히 뒤돌아서서, 자신을 보는 아린에게 대답해 주었다.


“난 신령이야, 아린… 이제 깨달았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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