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촤아–
“으야…"
작은 연못에서 용이 솟구쳤다. 비록 굵지는 않지만 그 기세가 사납고도 아름다운 용오름. 빠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더니, 그 머리가 저 달과 겹쳐졌을 때 마치 그 커다란 것을 물은 듯, 입을 쩍 벌리고는 그대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야?" 아린이 조금 겁먹은 얼굴로 지켜보는 앞에, 저 하늘에서 급강하를 하던 그것은 갑자기 펑, 아니 촤악 소리를 내면서 터져 버렸고,
“흐음,"
이미 처음 솟았을 때부터 자신을 지휘하던 기운 하에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물줄기들은 사뿐히 연못으로 돌아갔고, 주위에서 솟았다 내려갔다 하는 다른 물줄기의 향연에 섞여 빙글빙글 돌며 물을 위로, 그리고 옆으로 뿜어냈다.
“머, 멋지얘."
눈이 달걀만 해진 아린이 그 물줄기로 만든 용처럼 입이 벌어진 채 바라보자, 신령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인간계에서," 그녀가 말했다.
“일종의 유흥거리 중 '불꽃놀이'라는 게 있더구나. 카일과 엔시나의 기억만 봐도 인간들은 특별한 행사를 할 때마다 항상 여러 가지 불덩이를 이렇게 터뜨렸지. 나름 물을 가지고 따라 해본 건데, 기억에서 본 것처럼 화려하진 않구나."
“그래도 정말 멋있으이!"
아린이 거짓 없이 환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신령은 기운을 한 번 더 휘둘러 물줄기를 지휘했고, 그러자 이번엔 연못에서 동그란 방울이 몇 개 둥둥 떠오르더니 톡, 톡, 터지면서 실오라기 같은 물줄기를 여러 개 흩뿌렸다. “흐야," 아린이 말했다.
“역시 영이 강하면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야… 부러우얘. 저도 나중에 이런 거 해보고 싶으야."
하지만 이런 그녀를 보며 “글쎄," 미소가 깊어지는 신령. 그리고는 다시 물방울 몇 개를 띄웠다.
“너는 가끔, 아니, 너라면 항상 청소나 설거지 등을 영을 사용하면서 하지 않느냐?"
“야."
바로 끄덕이는 아린.
“맨날 그러얘. 그게 왜얘?"
“그래.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거라."
신령이 이번엔 기운을 조금 가볍게 하고는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연못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꽃 모양의 물덩이. 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아린에게 유가 말했다.
“영이란 건, 단순히 강하거나 풍부한 것의 문제가 아니다, 아린. 아무리 작은 기운이라도 그걸 얼마나 제대로 다루느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 아니, 그냥 이렇게 물어보면 더 쉽겠구나. 너는 네가 평소에 쓰는 영이 완전히 너의 손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
아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령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는 자기가 청소를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혹은 밖에서 놀다가 가끔 사령을 잡게 될 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아니얘." 대답은 금방 나왔고, 이에 신령이 긍정했다.
“그런 거다. 물론, 너는 그래도 어린 인간이니 나처럼 큰 기운을 다루진 않아. 그래서 굳이 세심한 조절 없이도 잘만 사용할 수 있지. 하지만 영이란 건 크면 클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다루기가 힘들어져, 지금 당장 네 어머니가 사용하는 정도만 해도 지금의 너에겐 조금 버겁게 느껴질지 모른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모두 젊은이들보다 영을 깊게 다루는 건 아니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굳이 계승자인 란을 제외하더라도 꼭 나이에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리니아가 덧붙이자 아린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시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못 위에서 피어오른 물꽃은 달빛을 그대로 표면에 띄우며 밝게 빛나더니, 유가 그것을 조금 아래로 가라앉혀서는 마치 진짜 연꽃인 것처럼 수면 위에 살짝 떠서 둥둥 떠다니게 했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와서 말이다, 아린,"
물 위의 물꽃을 바라보는 아린에게 다시 말을 거는 신령. 그리고는
“아니, 사실 처음부터 이 얘기를 하려고 너를 부른 거였다. 네가 심심해 보여서 그런 것도 정말 있긴 있지만, 어쨌든 미안하구나."
미리 사과를 하자 아린이 고개를 돌렸다. “야?" 무슨 말일까. 가만히 쳐다보는 아린에게 유가 말했다.
“그 아이… 분명 신령으로서 아주 큰 힘을 가졌는데, 그걸 전혀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더구나."
“그 얘? 소야 말얘?"
아린이 묻자 긍정하는 신령. 그리고는 작게 한탄하며 “너도,"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한 말을 들었지. 정확히는 그 애가 자기 힘을 어떻게 억누르려다가 실패했을 거야. 그러니까 저렇게 폭발이 일어난 거지. 그리고 앞으로도 오늘 같은 일이 계속 생길 것이야."
“으, 으야,"
아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를 다독여주는 유.
“네 잘못이 아니다."
“야아…"
하지만 한 번 굳어진 얼굴이 펴지지 않자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은지 곧 연못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신령. “어쨌든," 그녀가 말했다.
“한 번 벌어진 일,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겠지, 아린. 사실 내가 너무 섣불리 결정한 탓인 것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는 조금 숙인 아린의 고개를 드는 신령.
“그래서 말인데,"
아린이 조금 서운한 시선을 보는 앞에서 그녀가 물었다.
“같이 그 애를 찾으러 가지 않겠느냐? 우리 둘이서만 말이다."
“야?"
반쯤 가라앉던 아린의 눈이, 저 연못 위로 떠오르던 물방울보다 더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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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해가 뜨자 이진이 먼저 기어 나왔다.
“주무셨어요."
이어서 방을 나오는 아레인에게 인사하자 어머니는 잠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곧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린," 그리고 딸을 먼저 부르는 아레인.
“와서 아침 만들자."
하지만 그냥 습관처럼 하는 말일 뿐, 그 아린이 아침부터 엄마 식사 차리는 거 도와준다고 나올 리 없었다. 그렇게 오늘 아침밥도 아레인이, 그리고 잠시 뒤부터는 제이미가 거들어서 같이 차렸다. “잘 먹겠습니다." 엄마가 영 조용하자 자신도 별말 없이 밥을 먹는 이진. 제이미도 “잘 먹겠습니다." 조금 거칠어진 목으로 말하고는 살짝 기침을 한 뒤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린~ 밥 다 됐으니까 와서 먹어!"
아레인이 고개를 돌려 크게 불렀다. 어차피 밥에 환장하는 애를 그렇게 크게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하고 제이미가 콧방귀를 끼는데, 아니 정말 그녀의 말대로인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린. “어?" 아레인도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제 늦게까지 놀다 왔나… 밥 먹으라는데도 안 나오고."
대충 그렇겠거니 하고 밥부터 먹는 그녀였다. [제이미,] 한편 밥 먹는 중에 제이미를 부르는 엔시나.
[어제 그… 미안해. 어제 일은…]
“됐어."
밥이나 먹자. 그녀는 몸도 마음도 이 한 마디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제 일이 생각나게 되는 그녀. 결국 엔시나도 불이 붙어서 서로 소리를 질러대는 식으로 끝났던 것이다. 사실 제이미도 그렇게 화를 막 냈던 게 그리 편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 기분을 혼령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그녀의 느낌대로 숨기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통했는지 엔시나는 혼자 심란해하는 것 같았고.
[오늘은 야단치지 않으려나.]
한편 이진과 카일은 둘 다 별다른 반항 한 번 못하고 꾸짖음이란 꾸짖음은 다 들었는지라, 조금 붕 뜬 듯 멍한 기분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왠지 오늘 란이나 신령님이 와서 어제의 일을 꺼낼 것 같지만, 제발 그러지만은 않길 바라면서. 그랬다간 또 집안에서 고함소리가 오갈 것 같았기에. 그러니까 오늘은 누구든 가만히 입 다물고 넘기는–
“정말로 네가 스스로 가겠다고 한 거니?"
이런.
“네? 어, 그…"
아레인의 시선과 손은 여전히 밥을 먹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분명히 말을 꺼냈기에 이진은 “네에." 나지막하게나마 대답을 했다. 그러자 몇 숟갈 더 먹더니 곧 크게, 한숨을 내쉬는 아레인. 그리고 여전히 상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나온 말은
“그래."
예상 밖이어서 이진을 놀라게 했다.
“너도 어른이지. 카일이 바보인 것도 아니고… 정말 네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면, 그래. 가야지."
“어어…"
뭐라고 말을 못하는 이진. 그리고 이렇게 있는 중에 갑자기 “어무얘!" 아린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고개를 돌리는 아레인이었다.
“얼른 밥 먹어. 애가 얼마나 놀았길래 늦잠을… 어?"
아니, 방에서 들리는 게 아니었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자 웬걸, 아린이 저 마당에서, 그것도 신령님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애가 밖에서 혼자 심심해하길래 같이 놀아줬다."
유가 말했다.
“그랬더니 피곤하다고 자더구나. 밖에서 자고 싶다면서."
“아,"
이 말에 아레인과 제이미는 서로를 쳐다봤다. 지금 먹는 생선의 뼈가 걸린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바라봤다가, 곧 제이미가 끄덕임과 함께 아레인도 고개를 깊게 숙였다.
“네에. 어제 애한테 신경을 잘 못써줘서… 괜히 폐를 끼쳤네요. 죄송합니다."
“아니다."
미소 짓는 신령.
“막상 같이 노니까 나도 재밌었다. 앞으로 자주 놀러오거라, 아린. 그럴 거지?"
“야아, 야! 오늘도 꼭 가는 야!"
아린이 방긋 웃자 눈을 깜박이는 아린. 제이미와 이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리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물러나는 신령이었고, 곧 산 위로 돌아가자 아린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미안. 괜히 너까지 밖에서 자고… 별일 없었지?"
“야! 재밌었으이. 잘 먹겠으야!"
그리고는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하는 아린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곧 아레인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더니 이번엔 아들을 직접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짐 챙겨.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하고. 알았지?"
“네에."
이진은 여전히 시원하지만은 않은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아레인의 얼굴이 조금 나아져 있는 걸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밥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제이미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