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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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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히키가야 하치만은 장례식장에 서 있다.>

  조금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상적인 장례식’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그런 것이겠지. 죽은 이를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례식이야말로 이상적인 장례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은 이상적인 장례식장이라 할 수 있었다.

  “히카루 님......”

  ​“​어​떻​게​.​.​.​.​.​.​이​런​.​.​.​.​.​.​”​

  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그것은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이었는지를 나타내준다. 고인에 대해 별 감정이 없는 나조차도 숙연해질 분위기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이 장례식은 한 가지 점에서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적인 장례식은 이상적인 죽음과 함께해야 성립되는 것이다. 즉,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유언을 남기고 사고가 아닌 노환으로 숨을 거두는 경우에만 이상적인 장례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인은 이와 같은 부분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인의 사인의 사고사이고, 나이는 고작 15세, 나와 동갑이었기 때문이다.

  고인의 이름은 미카도 히카루라고 한다. 나와 같은 치바 사립 헤이안 학원 고등부 1학년 학생이었다. 과연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정도로 외톨이 인생 일직선인 나와는 달리, 미카도는 무척 유명했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그는 이상적인 남성상 중 하나로, ‘황태자’라는 오글거리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고 한다.

  용모는 단정, 집안은 재벌, 학력도 우수한, 말 그대로 남자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카도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그는 항상 여자들과 같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같이 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아서, 그와 함께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는 그의 연인이야’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녀석이 아주 예전부터 그러고 놀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어딘가의 이토 씨처럼 칼침 맞지 않은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 미카도의 명성에 걸맞게, 지금 여기서 울고 있는 사람의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장례식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분명 이 중에는 미카도의 ‘연인’들도 있겠지. 원래대로라면 마주치면 전쟁이 일어날 연적들이 여기 다 모여 있는 것이다. 왠지 슈라바라스럽다. 그래도 다행히 미카도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 때문에 여기 여자들은 다른 여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나 보다.

  저쪽에서는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여자애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여자애 세 명이 다 같이 울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서 있는 남자가 하나 있다. 예, 저입니다. 나는 미카도 히카루가 죽었다는 사실에 놀라긴 했어도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뭐, 나와 같은 나이의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했으나 그것뿐이다.

  ‘슬퍼하는’ ‘여자’가 대부분인 이곳에서, ‘슬퍼하지 않는’ ‘남자’가 있는 것은 무척 이질적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왔나. 미카도 히카루에 대해 이름 정도는 알지만,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장례식에 올 필요는 없는 셈이다. 그래도 나는 왠지 모르게 이곳에 왔다. 그건 아마 단 한 번, 미카도 히카루와 나누었던 말의 주고받음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잠시 그때를 회상했다.

**

  나는 친구가 없다. ‘적다’가 아니다.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항상 외톨이 일직선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 때, 거기에 끼어들지 못해 소외되고 그것 때문에 놀림감이 되는 그런 시절을 보내왔다. 물론 나 자신은 그런 포지션을 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외톨이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내가 노력의 방향성을 잘못 잡은 것도 있고, 운이 없었던 것도 있고 해서 나는 결국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10년이 넘도록 외톨이 포지션을 지켜왔다.

  이쯤 되자, 나는 어떻게든 고등학교 생활만은 첫 단추를 잘 끼워서 무난하게 시작해서 적어도 친구 한두 명쯤은 사귀겠다고 의욕에 불탔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내가 다니던 중학교 학생들과 다른 학교에 가서 내 안 좋은 이미지를 리셋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사립 헤이안 학원에 편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합격을 확인한 날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이제 명문교 학생으로서 post-외톨이 라이프가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입학식 날, 한껏 들떠서 한 시간이나 일찍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것이 실수였다. 어쩌다 보니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리뼈가 골절되어 한 달 가까이 입원해야 했다. 그때, 나의 고등학교 생활에 품었던 희망은 끝났다. 고등학교 1학년의 처음 한 달 간, 정말 중요한 시기다. 그것을 통째로 날려버린 나는 이미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퇴원을 하고 아직 다 낫지 않은 다리를 목발로 지지하며 우울한 마음으로 첫 등교를 했다. 목발을 쓰고 있으니 눈에 띌 만도 하건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다들 한번 흘깃 보기는 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뭐야, 결국 중학교 시절과 다를 바 없잖아, 하고 자신의 위치를 새삼 실감하며 목발을 끌며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고 있을 때,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쩌다 다친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에 움찔하며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 1학년 히키타니 하치만, 맞지?”

  순간 여자애인 줄 알았지만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중성적인 생김새의 소년이었다. 선이 가늘다-라는 말을 알고는 있지만 남자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소년이 거기에 딱 맞는 예일 것 같았다. 소년은 생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는 이는 분명 ‘천사’라느니 ‘요정’이라느니 하며 칭송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허나, 남자다앗! 위, 위험했다. 남자한테 한눈에 반해버릴 뻔했잖아. 새로운 문을 열 뻔했다고. 뭐야, 저건. 반칙이잖아. 이렇게 속으로 동요하는 바람에 나는 얼떨결에 대답해버렸다.

  “어, 뭐. 먖는데.”

  긴장한 나머지 혀를 깨물고 말았습니다!

  어? 아니, 잠시만! 뭔가 이상하잖아! 왜 ‘히키타니가 아냐, 히키가야다’ 하고 대답을 못하는 거냐고, 나! 이대로면 나는 히키타니 하치만이 돼버린다고!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외쳤지만 나는 당황한 나머지 내 잘못 알려진 이름을 수정하지 못하였다.

  내가 잠시 자괴감에 시달리는 사이, 소년이 말했다.

  “나는 미카도 히카루라고 해.”

  “.......”

  잠시간 침묵이 지나갔다. 가족 이외의 누군가가 나에게 사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나를 향한 말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일단 반응을 보이기로 했다.

  “아, 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카도는 무엇이 즐거운지 살짝 주먹을 쥔 손을 입가에 대고 쿡쿡 웃었다. 잘생긴 놈은 뭘 해도 그림이 되는구나.

  미카도가 다시 나를 보고 말했다.

  “히키타니, 내가 오늘 고전 교과서를 안 가져왔는데, 혹시 빌려줄 수 있어?”

  나는 잠시 오늘의 시간표를 떠올렸다. 고전은 없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미카도에게 전했다.

  “아니, 우리 반도 오늘 고전 안 들어서 나도 없다만.”

  그러자 미카도는 살짝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 녀석은 남자다’ 하는 주문을 외어야 했다. 그런 나를 향해 미카도는 말했다.

  “그럼, 다음에 빌리러 갈게. 그때 히키타니한테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어? 뭔 소리야?”

  상대방의 태연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대응을 취하게 되었다. 미카도가 말했다.

  “그때가 오면 말해줄게.”

  그러고 미카도는 혼자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목발을 움직이는 데 집중해서 어찌어찌 미리 위치를 조사해 둔 교무실을 찾아갔다.

  그날, 나는 총 네 통의 불행의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대체로 ‘너처럼 비천한 놈과 이야기를 나누면 황태자님이 더러워진다. 꺼져라 쓰레기.’ 정도였다. 황태자라는 건 아무래도 미카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얘기를 나눈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 확실하다. ......왠지 눈에서 땀이 나는데?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학원은 뭔가 이상하다. 구성원들이 정신이 나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는 대놓고 드러나는 차별 의식이 이 학교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스쿨 카스트라는 게 여기에는 확실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여기 사람들은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다. 가령 상위층에 있는 사람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하위층인 사람을 괴롭히면, 학생들은 당연시하고, 교사라는 작자들은 그것을 묵인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나쁘다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정학, 퇴학시킨 사례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짓을 하고도 학원의 명성이 드높은 이유는 그 상위층이라는 사람들이 장난 아닌 재벌가의 아들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카스트를 적용하면 ​수​드​라​(​최​하​층​)​였​다​.​ 따라서 내가 그들의 눈에 안 좋은 의미로 띄게 된다면 내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인생 자체를 말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수험의 성과가 지뢰밭을 향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한동안 몸을 사리기로 했다. 외톨이 탈출을 포기하고 오히려 공기계 외톨이가 되기 위해, 이삼일 동안 외톨이 라이프를 실현하다 보니 점차로 내 존재감이 희미해져 갔다. 마침 곧 골든 위크였기도 해서 별 문제 없이 다시 외톨이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어 마음을 놓게 된 그때, 나는 ‘미카도 히카루가 죽었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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