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2)
<2장.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령을 만난다.>
미카도는 골든 위크 때, 별장에 놀러 갔다가 거기에서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한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그 헤실거리는 잘생긴 얼굴과 나에게 했던 ‘부탁이 있다’라던 말이었다. 나는 미카도와 초면에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정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부탁’이라는 말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미카도와 친분 따위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마치면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내가 한 번 장례식장에 와본 것이다.
나는 장례식장 명부에 이름을 쓰고 분향을 하러 들어갔다. 이 많은 여자들이 훌쩍거리는 광경을 보니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다. 사실은 처음 여기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여기 온 것을 맹렬히 후회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때 나에게 불행의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갑자기 나에게 ‘너 따위랑 이야기를 해서 부정 타서 그분이 그렇게 된 거야!’라면서 시비를 걸 수도 있다.
보통 장례식장에서 그런 깽판을 부리지는 않겠지만, 우리 학교의 여학생들 중 상당수는 뭔가, 심하게 말하면 ‘미쳐 있다’. 미카도 히카루라는 인물에게 보내는 호의가 너무나 심해 그 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할 필요 따윈 느끼지 못하는 여자들이 많다. 뭐야, 세상에 얀데레가 가득해! 무서운걸....... 어찌 됐든, 그런 여자들이 많이 있는 곳이니 상식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게, 그래도 속도를 최대한 높여서 향을 들고 미카도의 영정에 다가섰다. 그리고 바로 분향을 했다. 미카도, 너와 친분은 없지만 명복은 빌어주마.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여자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거짓말쟁이!”
이런, 진짜로 깽판을 부리는 여자가 있잖아. 나는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울분에 전율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담한 체구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생머리에 얼굴도 귀여운 여자애가 미카도의 영정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바보 같아! 물에 빠져 죽다니! 바람만 피우고 다니니까 천벌을 받은 거야! 분명 여자한테 찔려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익사라니......바보 같아!”
뭐라 말할까. 욕설의 수준 자체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건 그녀가 욕설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적어도 그 표정에서 보이는 분노는 장난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 심정만으로 친다면 삐- 소리로 가려야 할 정도의 욕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인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된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미카도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차분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가 달래고 있었다.
“아오이, 진정해.”
“바보 같아! 꼴사나워!”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미카도를 향한 분노를 드러냈다. 뭐야, 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저러는 거냐고.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있는 감정이 오로지 분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꼴사납다, 바보 같다고 해도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 애증(愛憎)이라는 말이 바로 그녀가 드러내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닐까.
계속 보고 있기에는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어서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피했다. 그러자 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기모노를 입은 여자였는데 엄청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만 내 눈에 띈 것은 아니다. 저 정도 미인이면 어디에서나 눈에 띄겠지만 여기에는 다른 미인들도 꽤 많다. 마치 연예인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걸로 바람둥이 황태자 미카도의 능력을 잘 알 수 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런데도 그녀가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 이목구비가 미카도와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미카도가 여자였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미카도의 누나인가?
그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소동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가만히 앉아 미카도의 영정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는 손을 들어올려 기모노 자락으로 살짝 가리고 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미인도를 보는 것 같았다. 순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어? 뭔가 이상하다. 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기모노 자락으로 가려져 있던 입가가 방금 아주 잠시 내 눈에 보였는데 그때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뭐지? 장례식장에서 웃어?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쓸데없는 관심은 접고 빨리 집에 돌아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나는 장례식장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가자. 뭔가 안 좋은 것을 봐버렸다고 할까? 아니, 애초에 장례식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봐선 안 될 것을 본 것만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히키타니?
발걸음을 서두르는 내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응? 히키타니는 누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히키타니가 나라는 가능성을 제외할 수 없어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잘못 들었나?”
쓸데 없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환청까지 들린 모양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다.
집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습관적인 인사를 한다. 그때 내 여동생 코마치가 현관으로 달려왔다. 어? 웬 일로 나를 이렇게 반겨주지?
양 손에 무언가를 가득 쥔 코마치는 나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오빠! 스톱!”
“어?”
뭔 일인가 싶어 멈칫한 나에게 코마치는 손에 든 것을 투척했다. 얼굴에 맞았다. 아파! 젠장, 입에도 들어갔어! 퉤퉤, 뭐야, 이거 소금? 내가 노려보자 코마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례식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액막이를 해야지! 안 그럼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말이야. 아, 이 말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그렇다고 사람한테 다짜고짜 소금을 던지냐?”
내가 불만을 표했지만 코마치는 내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오빠, 이제 뒤로 돌아봐. 뒤에도 뿌려야지!”
“아, 어, 그래.”
코마치의 기세에 밀려 나는 얼떨결에 뒤로 돌았고, 그쪽에도 소금 세례를 당했다. 코마치는 소금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이곳저곳에 소금을 뿌려댔다. 야, 이건 굵은 소금이잖아. 이렇게 가까이서 목 같은데 맞으면 조금 아프다고.
그렇게 나에게 소금을 던져대던 코마치가 손 안에 소금이 다 떨어지자 말했다.
“그럼 오빠, 정리 부탁해!”
그리고 재빨리 들어가버린다.
현관에는 소금이 잔뜩 떨어져 있다.
“저 자식.”
두고 보자. 나는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참고로 내가 코마치에게 골탕 먹은 뒤 복수에 성공한 확률은 10%가 채 안 된다. 그것은 내가 자비심이 넘치는 오빠이기 때문이다. 결코 옛날에 코마치에게 장난치다 아버지한테 박살났기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돌아오자마자 현관 청소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우와, 여동생 진짜 귀엽다!
또 뭔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당연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뭐지, 이 소리는? 설마 내 마음의 소리인가? 나의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마침내 콩깍지가 되어 이런 일을 당하고도 ‘코마치 귀여워!’ 같은 소리를 하게 된 것일까? 어찌 됐든 그 목소리에는 대체로 동감한다.
내 여동생은 귀엽다. 엄청 귀엽다. 그래서 난 단 한 번도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지. 가끔 안 귀여운 짓을 할 때에만 ‘내 여동생이 이렇게 안 귀여울 리가 없어’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뇐다. 그럼 금방 다시 귀여워지거든.
-저기저기, 여동생 이름이 코마치야? 엄청 귀엽다! 데이지처럼 명랑하고 순수해.
뭐지? 또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다. 환청이 이 정도면 엄청 심한 거 아닌가? 내가 많이 피곤한 건가?
“몸이 허해졌나? 빨리 자야겠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서둘러 현관을 정리했다. 그런데 또 목소리가 들린다.
-히키타니, 혹시 내 목소리가 들려?
뭐지? 왜 아무도 없는 데서 계속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내가 외톨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 분열이라도 생겼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했다. 나는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 한 번 그 목소리에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디야?”
그러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위쪽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내 위쪽을 쳐다봤다.
“......미카도?”
거기에는 미카도 히카루가 익숙한 교복을 입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공중에 붕 뜬 채로.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나는 순간 말을 잊었다. 미카도(?)가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어쩐지, 유령이 되어버린 것 같아.”
사람에게는 개성이라는 게 있고 각자가 다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문제, 만약 평범한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죽은 사람의 모습을 목격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고민할 것도 없이 답은 정해져 있다.
“우아아악!”
......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