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꽃무더기와 수수께끼 (가제) (3)
용건을 전한 미네트는 두 층 아래로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사람을 마주쳤다. 그녀는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 앙투안. 오랜만이구나."
"마담 미네트. 인사 올립니다."
멘 공작 앙투안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자비관엔 어쩐 일이니?"
자비관의 여주인인 황후는 세시안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앙투안을 증오했다. 그리고 미네트는 황후가 앙투안의 여동생을 독살하는 걸 방임한 사람이었다.
그 어렸던 아이가 이토록 장성한 청년으로 자라 나타나자 기분이 묘했다.
"신병으로 인해 마담 라 세르께 인사 올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늦었지만 인사드리려 합니다."
"그래? 예복이 잘 어울리는구나."
그는 금박으로 장식한 연청색 재킷에 풍성한 레이스 스카프를 매고, 상아색 조끼를 걸치고 있었는데, 짧게 자른 머리만 가발로 가리면 지금 당장 연회에 참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차림이었다.
"앙리에트 전하. 송구하오나 해가 지기 전에 하례를 끝내고 싶습니다. 먼저 물러가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아니. 허락 못 해주겠는데?"
앙투안의 눈이 흔들렸다. 어린 아이를 괴롭히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미네트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놀라지 말렴. 방금 마담 라 세르를 뵙고 오는 길이지만, 올케 언니는 리젤로트를 만나고 계신단다."
"그렇습니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젤로트는 앙투안을 정말 싫어했다. 세시안이 붙잡고 몇 번이고 남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며 타일렀지만 듣지 않았다.
"그나저나 결혼식을 못 봤다니 안타깝구나. 너도 신부를 모셔오는 길에 따라갔다고 알고 있는데."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 봐라? 미네트는 언뜻 떠본 바늘에 물고기가 낚여 올라오자 눈을 빛냈다.
"그래. 덕분에 마담 라 세르께서 무사히 로렌에 오셨지. 소문에 의하면, 커다란 용이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용으로부터 숙녀를 지켰으니 칭찬받을 만하지. 실로 미남왕 앙리에 준하는 공적이 아닐까. 폐하께도 치하해달라고 청하려무나."
앙투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마담 미네트. 송구합니다만, 그건 아직 기밀사항입니다."
"어머, 뭐가? 용이 나타났다는 것? 아니면 네가 치하를 받을 예정이라는 게 기밀인가?"
"전하!"
"우리의, 아니 내 외가가 오를레앙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닐 테지. 이모부께 편지 두어 장만 써도 금방 알 수 있단다."
"어중이떠중이가 돌아다니는 복도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어머, 그럼 나도 어중이떠중이라는 거니? 나도 이곳에 서 있잖아?"
"그런 말씀이 아니잖습니까!"
"소리 지르지 말렴. 천박하게 출신을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
"마담 미네트."
간만에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 같은 만족감을 느낀 미네트는 만족스레 웃었다.
"내가 차라도 한 잔 마시자고 하면 마실 거니?"
앙투안의 파란 눈은 금세 이글거렸다. 어쩜 이렇게 쉬운 아이가 다 있을까.
"내 방으로 가자꾸나. 갑자기 흥미가 돋아서 듣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걸."
세시안은 샤를루아 공작이 내민 금액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겨본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샤를루아 공작. 이게 말이 되는 금액이라고 생각합니까?"
"안 될 것은 무엇입니까?"
세시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는 이미 보르디의 후계자가 아니라 보르디 대공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샤를루아 공작 필리프는 편안히 등을 등받이에 기대고는 여유 있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세르. 늦어습니다만 어여쁜 신부를 맞으신 걸 다시 한 번 경하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공작께서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랄 게 있겠습니까. 마담 라 세르께서는 제 사촌 여동생이시고, 또 이 세상에서 몇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귀하신 분 아닙니까."
마담 라 세르라는 용어가 이블린에서 사용된 건 삼 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어린 아내를 떠올렸다. 그녀의 다소 차가운 얼굴은 눈앞의 사내와 닮은 면이 있었다.
"제게 과분할 만큼 어리고 어여쁜 분이지요."
"제 어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하셔서는 마담 리젤로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군요. 야무지고 사랑스러운 아가씨라고 말입니다. 약혼한 분만 아니었다면 나이 찬 제 장남과 맺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했지요."
"리무쟁 공작과의 약혼은 오래된 일이니까요."
"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 아들딸 중 아직 짝을 찾지 못 한 아이가 셋이나 됩니다. 리무쟁 공작은 훌륭한 젊은이이니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 그러려니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만, 아시잖습니까. 사람의 마음이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황실의 혼사를 주관하는 건 황후였다. 때문에 황후는 보르디에서 들어오는 청혼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르디는 총 세 번 거절당했다. 확실히 과한 처사였다.
"혼사라는 것이 어그러지는가 하면 금세 붙기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여동생 중 둘도 아직 미혼이지만 두 분 가장 신실하신 폐하께서는 느긋하게 마음을 드시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로서는 걱정이 될 밖에요. 후사는 중요한 일. 그렇잖습니까."
세시안은 굳이 이야기가 빙빙 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제 어머니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보르디의 술 창고에 있는 와인을 아낌없이 마담 리젤로트에게 내주었지요."
"질 좋은 발포주였습니다. 간만에 입이 호사를 하더군요."
"보르디의 술 창고에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발포주였습니다만 마담 라 세르의 결혼식을 위해서라면 무에 아깝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삼 년 전의 일로 보르디에는 술을 빚을 여력이 남아있지 않은 터라."
"보르디의 포도주 분수가 말라붙었다는 말을 저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만."
"세르께서는 부족한 저를 과대평가 하시는 듯합니다. 병환 중에 있는 제 아버지라면 모를까, 우둔한 저로서는 식민지를 통하지 않고 일전과 같은 가격으로 밀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도저히 찾지 못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