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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플은 매우 익숙했다. 그리고 관리도 어느정도 되어있는 물품이었다. 닳아져가는 쇠 부분의 각인에서 스프링필드라는 각인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라이플에 달려있는 멜빵으로 라이플을 어깨 뒤쪽으로 넘겨 매고는 라이플을 들고있던 시체에게로 달려가 여분의 총탄과 옷을 뒤졌다. 라이플에는 총 다섯발이 장전될 수 있었고 아까 들은 라이플의 발포음으로는 약실과 탄창에 합쳐 세 발정도가 남았을 것이다. 나는 시체를 뒤져 탄창 하나와 깔깔이를 찾았다. 깔깔이는 지금 날씨에 매우 유용했다. 나는 낡은 자켓을 벗어 안에 깔깔이를 입고 다시 자켓을 걸쳤다. 훨씬 따뜻했다. 나는 다른 시체에 찾아 아직 까지않은 소세지를 발견했고 그것을 꺼냈다. 머리가 터진 두 시체는 그저 아무말 없이 누워있었다. 나는 소세지의 껍질을 까서 한입 물었다. 맛있군. 오랜만에 먹는 육고기는 매우 비렸다. 웃기는군, 방금전에 여자를 죽일땐 그렇게 떨렸더니 총으로 둘을 죽여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다니. 그리고 나서 일어선 뒤 지하실의 문을 열어두고 그 집을 빠져나왔다. 안의 가축, 이제 더 이상 가축이 아닌 그들에게 우연치 않게 구원을 주기로 결심했을 뿐이었다. 사실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했지만. 품속에 있는 리볼버에는 이제 세 발이 남아있었다. 둘을 쏘고, 자살을 할 수 있었다. 괜찮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둘이나 더 길동무로 데려갈 수 있다는게 어디야.
나는 저택을 벗어나서 해가 지기 전까지 쭉 걸었다. 예상외로 숲은 매우 컸고 해가 지기 전까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그것은 아니였다. 틀린 생각이였다. 식어가는 해가 능선에 걸치고 나서야 나는 이 숲을 날이 지기전에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저택으로 되돌아 가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나는 담요와 방수포를 꺼냈다. 방수포를 한 번 접어 바닥에 깔고 옆에 불을 피웠다. 가스는 아직 남아있었다. 주변에 낙엽이 많아서 다행이군. 잔돌을 주워 화덕을 만들고 가방과 라이플을 내려놓은 후 낙엽과 죽은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워올렸다. 약탈자들과 감염자들이 이 불을 보고 오지 않길 기원해야 했다. 건물들 안에서만 잔 탓에 오랜만에 느끼는 불의 온기가 매우 따스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저버린후, 나는 불이 제대로 타도록 죽은 나뭇가지를 좀 더 넣고 잠에 들었다.
살아있는 나무들, 아내의 향기. 아직 태엽장치로 움직이던 기계같던 도시. 아이의 시무룩해진 표정과 나를 부르던 목소리. 불타던 감정들과 그 모든 색을 갖추고 있던 비온 후의 무지개. 나는 아들과 함께 무지개에 대해 대화하던 때에 잠에서 일어났다. 무지개의 끝에는 뭐가 있어요, 아빠? 아무것도. 무지개는 끝이 없단다. 나는 아들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울리는 것을 생각하며 화덕을 무너뜨리고 아직 붉은 재를 죽은 땅의 흙으로 덮었다. 세상은 아직 잿빛이었다. 가방과 라이플을 맨 뒤 다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서너시간 정도 걷자 도로가 나타났다. 마치 도로는 양 숲의 경계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선 뒤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이 길이 어느길인지 확인해야 했다. 이 길을 따라서 간다면 마이애미에 닿았다. 그리고 나는 지도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이 끝나는 그 곳에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길에는 끝이 없으니까.
나는 도로를 따라 쭉 걷다 몸을 숨겼다. 앞에 약탈자들의 트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 셋이 있었고, 생존자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아마 가족이었겠지. 자녀는 삶아먹었던지, 그들이 먹었을테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매었던 라이플을 꺼낸 뒤 전부 닳은 영점 가늠자를 내리고 가늠쇠로만 조준했다. 거리는 한 80m가 되지 않았다. 난 사냥꾼이 아니였고, 저격수는 더더욱 아니였다. 영거리 사격 정도여야 맞겠지. 나는 그저 놈들이 다가올때를 대비해서 조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묶은걸 풀었는지 총을 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약탈자들과 생존자들이 뒤엉켰다. 남자 셋과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였지만 총이 발포되는게 실수로 약탈자중 하나를 맞췄다. 하지만 다음은 실수가 없었고 여자가 맞는게 눈에 보였다. 여자가 풀썩 쓰러졌다. 남자와 총을 든 약탈자가 이리저리 뒤엉켰다. 여자의 시체를 밀어낸 한 명은 아마 칼을 갖고 있었던 듯 했다. 남자가 총, 그니까 권총을 뺏는데 성공하자 마자 약탈자 하나가 남자의 등 뒤를 찔렀다. 하지만 남자는 뺏은 권총을 원래 권총의 주인이던 약탈자와 자신을 찌른 약탈자를 쐈다. 둔탁한 총성 두 발이 울렸고, 살아있던 셋이 죽었다. 나는 라이플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칼에 찔렸어도 아직 살아있을 것이었다. 곧 다가가자 시체에 깔린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는게 보였다. 그의 표정은 나를 보자마자 소스라쳤고, 쥔 권총을 내게 겨누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이미 나는 라이플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뒤에서 칼에 찔렸으니 말하는 것이 힘드는게 당연했다. 너도 이들과 한패야? 난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내 대답에 안도했는지 쥐었던 권총을 내려놓았다. 자동 권총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힘든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있어줄수 있습니까? 왜죠? 쓸쓸히 죽는건 싫어서요. 좋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에게 겨눈 라이플을 내려놓고 그의 옆에 앉아 트럭에 기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요? 남자는 힘겹게 대답했다. 여느때처럼 감염자들과 녀석들을 피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트럭에 탄 녀석들을 만나고 말았죠. 우린 열심히 도망쳤어요. 하지만 붙잡혔죠. 저는 산탄총을 갖고 있었고, 총 일곱이던 녀석들을 세 명으로 줄이는데 성공했죠. 나는 그의 솜씨에 감탄했다. 붙잡히기 직전의 상황에서 약탈자들을 넷이나 죽이고 붙잡히다니. 불행히도 하나를 죽이기 전에 산탄총의 탄약이 전부 떨어지고 말았지만요. 그는 아쉬운듯이, 그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정도면 잘한거요. 직업이 뭐였소? 무슨 직업이요? 멸망하기 전 직업. 경찰이였어요. 특수 기동대였죠. 그래서 산탄총으로 일곱중 넷을 죽였군. 네, 운이 좋았지만요. 여자는? 제 아내였어요. 이름은... 이름은...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다 입에서 피를 주륵 하고 흘렀다. 나는 소매로 그의 피를 닦아주고 시체를 치워준 후 말했다. 가만히 있는게 좋을거요. 하지만 그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 내 팔뚝을 약하게 부여잡고는 말했다. 제 아내와 저를 묻어주세요. 제발요. 그리고 그는 눈을 뜬 상태로 죽었다. 평범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내가 눈앞에서 본 몇 번째의 생존자의 죽음이었다. 나는 주춤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서 트럭을 살폈다. 트럭에는 기름이 조금 정도 남아있었다. 이걸 쓴다면 마이애미까지는 금방 가겠지. 하지만 좋지 않은 것들의 시선을 끌게 될 것이 뻔했다. 나는 트럭의 뒤편을 봤다. 시체들이 있었다. 아마 아까 남자가 죽인 약탈자들이였겠지. 다시 시체들로 돌아가, 나는 남자와 여자를 바로 옆의 숲속에 묻어줬다. 그저 주변의 흙을 모아 작디 작은 봉분을 만들어 준게 끝이였지만, 이 세상에서 최고의 장례 축에 속할 것이었다. 나는 그 봉분을 뒤로하고 트럭을 뒤졌다. .40 S&W 탄약 세 발, 7.62mm 탄약 열 발 정도. 30구경이나 .44구경 탄은 없었다. 나는 혀를 차고 트럭을 뒤로했다. 약탈자들의 식량은 인간이었다. 뒤져봤자 인육밖에 나오지 않을게 뻔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다시 길의 여정에 올랐다. 하지만 기분은 왠지 모르게 후련했다. 그들을 묻은게 잘한 일인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해가 다시 넘어갈 때쯔음 나는 다시 다른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마을은 허름했다. 나는 이제는 비어버린 생수통을 들었다. 생수를 구하든, 아님 숲의 물에 다시 채우든지 해야했다. 나는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묵을 장소가 없을까 찾던 도중 화살이 날라왔다. 날아온 화살은 깊게 허벅지에 박혔다. 이런 빌어먹을, 젠장할! 나는 곧장 근처에 있던 주황색 차의 뒤에 숨었다. 숨는 동안 차에 화살 하나가 더 박혔다. 나는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봤다. 내 한 팔 길이만한 화살이 박혀있었다. 씨발. 욕을 뱉어내고 매고 있던 라이플을 겨누고 앞에 있던 건물 2층에 대놓고 갈겼다. .30 구경의 경쾌한 발포음과 함께 라이플의 개머리판이 강하게 어깨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