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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세계


투고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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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와 나 사이에서 긴장감이 흘렀다. 남자의 옷은 어느 생존자들과 똑같았다. 이제 20대 정도 되보이는 모습이었다. 라이플의 방아쇠울에 힘을 주며 말했다. 어디로 갈 생각이지? 어디로요? 그래. 글쎄요, 남쪽으로는 향하고 있어요. 남쪽이라. 마이애미로 가는건가? 네, 플로리다죠.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씨팔. 전의 약탈자들도 분명 남쪽으로 가는 것이겠군.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도 않아도 될 정도로 단순명료했다. 나는 겨눈 라이플을 내렸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하고 있었겠지. 당연한 것이다. 총구가 눈 앞에 있는 상황에 그 누가 긴장을 하지 않겠는가.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무기는? 남자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대답을 재촉했다. 무기는 어딨냐고 물었는데. 없어요. 남자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개소리 하지마. 나는 다시 라이플을 겨눴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기 없이 올리는 없겠지. 없다고 해도 동료가 있거나. 네놈이 꺼림직하지 않다면 순순히 내게 무기를 보여줬겠지. 남자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내 옆으로 향했다. 나는그걸 보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남자의 안면을 박살냈다. 바로 노리쇠를 열어 젖혀 탄피를 빼내고 거칠게 밀어 닫았다. 그 다음 바로 계단쪽으로 몸을 날리기가 무섭게 총성이 울리면서 잔해 어딘가에 총알이 박혔다. 나는 난간쪽으로 몸을 바싹 붙혀 엄폐했다. 2층이군. 놈도 총을 갖고있어. 아이가 총성에 놀라 내려왔다. 나를 보자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손가락을 올려 입가에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녀석이 아이가 있는 것을 알면 어려워진다. 손짓으로 아이를 올라가라고 지시한 후 라이플을 내려놓고 리볼버의 권총을 꺼내들었다. 건물 안에선 길어 거추장스러운 라이플 보다는 짧은 리볼버가 훨씬 나았다. 나는 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목재 계단에 무게가 실리는 끼익하는 소리. 그리고 녀석이 말했다. 오 맙소사. 나는 그 소리에 바로 난간에 붙힌 몸을 일으켜세우며 권총을 앞으로 겨눴다. 히스패닉 계의 후드를 쓴 녀석이었다. 손에는 나와 비슷한 리볼버를 쥐고 있었다. 나는 다른 약탈자를 쏘는 것 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영거리의 사격이라서 탄에 의해 안면이 박살나며 총과 안면뼈, 그리고 무수한 피가 튀는게 눈 앞에서 생생히 보였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런 빌어먹을. 살인이 사냥처럼 느껴진지가 언제일까. 윤리, 도덕, 죄책감이라는 모든 감정이 이미 생존이라는 이름의 늪 아래로 잠겨들어간지 오래였다. 나는 무연 화약의 연기가 진하게 나는 리볼버를 든 채로 방금 쏜, 얼굴이 박살난 히스패닉 계에게 다가갔다. 손에 들린 리볼버를 쥐고는 탄 구경을 확인했다. .44구경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 리볼버를 내려놓은 후 죽은 자의 리볼버를 확인했다. 세 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빈 탄피가 실린더의 세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세 발을 꺼낸 후 내 리볼버의 실린더를 꺼냈다. 두 발 남아있었다. 나는 빈 탄피와 꽉 찬 탄을 같이 빼내고는 탄피를 모두 버린 후 실린더에 다섯 발의 탄을 다시 끼워넣고 약실을 닫았다. 운이 좋았을 지는 모르겠다. 다시 리볼버의 탄은 다섯이 남았고, 라이플의 탄은 네 발이 남아 있었다. 아이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계단 위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보지 말거라. 아이는 내 한마디에 다시 고개를 올렸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3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침울하게 앉아있었다. 전부 죽었어요? 아이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내게 물었다. 왜 죽였어요?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잖아요? 나는 아이의 희망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아직 순수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순수함을 깨트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깨트려야만 했다. 얘야, 세상에는 친구라는게 죽어버린지 오래란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지 고민해. 우정같은건 이미 죽어버린 세상이야. 미안하지만 아저씨는 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어. 저 사람들이 아저씨에게 뭘 숨기고 있었거든. 자칫하단 너와 나도 죽을 수 있었어. 아이는 납득한듯, 납득하지 못한듯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아무말 없이 아이의 비니를 꾹 누르듯 쓰다듬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아이가 먹은 통조림을 치우고 활과 화살통을 챙겨들었다. 라이플과 화살. 나는 두 장거리 무기에 대한 불신과 믿음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매우 괜찮은 상황이라는 걸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섯 발로 리셋된 리볼버를 다시 품속에 있는 홀스터에 집어넣고 담요를 챙겨 가방에 넣고 맨 후에 나왔다. 아이는 아직도 침울하게 무릎을 모아서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연약한 심장이 뛰고있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옷을 겹쳐 입음에도 가벼웠다. 나는 아이를 안은 채로 2층을 통과했다. 시체에서 피가 스며나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아이의 머리를 어깨에 닿도록 했다. 아이는 울먹이지 않았다. 그저 벌써부터 죽음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리라. 우리는 그렇게 하룻밤을 묵었던 저택에서 나와 다시 길에 올랐다. 소도시는 위험했다. 되도록이면 외곽으로 돌아서 가고 싶었으나 그건 무리였다. 지금은 그저 주의하면서 이 마을을 빠져나가야 했다. 아이를 내려놓고 손을 잡았다. 눈을 크게 뜨거라. 나는 아이에게 경고했다. 아이는 나를 보며 어리둥절 했다. 눈을 크게 뜨라니요? 시야를 넓게 가지라는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아이를 이끌었다. 잿빛의 하늘은 오늘도 깊게 내려앉는 듯 했다.
 마을이라는 소도시는 생각보다 매우 조용했다. 약탈자 무리가 있어보이는 건물은 6~5년전의 폭격인지는 몰라도 날아가 없었고, 생존자는 아침에 본 두 남자를 빼고는 없었다. 하지만 있을 것이었다. 지금에도 양 옆 건물에도 음습한 시선이 달라붙는게 느껴졌다. 아이가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불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을을 빠져나가기 까지는 좀 남아 있었다. 안심하거라. 나는 아이의 불안감을 밀어내듯 말했다. 그때였다. 어느 마트가 보였다. 대형 마트 정도는 아니였지만 꽤 컸다. 나는 저런 마트를 기피했지만, 오늘 저녁에 먹을 통조림을 합치면 이제 통조림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내야만 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마트로 향했다. 아이는 계속해서 불안해 했다. 나는 아이의 불안감을 지워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였으니까. 하지만 보호자는 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그저 감정만이 있을 뿐인 의무감이 들었다. 난 그게 매우 미친 짓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죽은 세상에서의 미친 짓이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단 한 번이라도, 계속해서 죽어버린 도덕의 '인간적'을 행할수 있다는게 미친 짓이긴 했지만. 오늘 아침에 날려버린 두 남자가 생각났다. 내가 그들을 죽인게 '도덕의 인간적'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는 이미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건 정당방위인 경우도 있었고 아닌 경우도 있었다. 내가 도덕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실이었긴 했지만,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한 감정은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마트는 비루했다. 이미 가판대와 모든 물건들은 털린지 오래였다. 나는 아이와 함께 열심히 마트 안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약탈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나온다면 모두 처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야 했다. 우리는 가판대와 마트 안에서 먹을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런 허무감에 익숙했지만 아이는 아닌 듯 했다. 아무것도 없네요. 그래,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아이의 말에 맞장구 치며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쪽의 입구였다. 조금 넓은 복도 공간에 짙게 먼지낀 자판기 두 대가 있었다. 자판기는 비스듬하게 열려있었다. 아이는 그 자판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예요? 자판기. 네? 예전엔 이거에 돈을 넣고 음료를 뽑아 마셨단다. 음료요? 그래, 코카 콜라 같은거. 코카 콜라요? 아이는 모르는 단어에 그저 아리송한 웃음만을 지었다. 나는 자판기에 다가가 비스듬하게 열린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아 힘껏 힘을 주어 열었다. 자판기 안도 역시 먼지가 스며들어와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나는 만약 남아있는 음료가 있다면 뒤 쪽에 있을거라 생각했다. 음료통이 들어있는 곳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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