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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세계


투고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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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아직도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세상이 얼어붙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꺼진 화덕 앞에서 숨으로 얼은 손을 녹이고 비볐다.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운이 억세게 좋군. 아이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니? 엄마가요. 좋은 교육자였군. 나는 아이의 어머니에 작은 존경을 보냈다. 아이가 잠에서 덜깬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을 동안 혼자 작은 나뭇가지와 낙엽들을 줏어모아 다시 불을 피웠다. 여느때보다 추운 아침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방에서 참치 통조림을 꺼내 전과 같은 방식으로 데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운건지 이제 스스로 담요를 개어 가방에 포개넣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피워놓은 불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아 라이터의 남은 가스량을 확인했다. 1/3 남았군. 1/3 남았단 말이지. 이제 통조림도 없고. 어떻게든 다음 식량을 구해야만 해. 아이는 내 결심을 모르는듯 달궈저가는 참치 통조림한 하염없이 보고있었다. 무장을 확인했다. 리볼버와 라이플. 그리고 활과 화살통. 나는 보우를 파기해야 될 지 고민했다. 확실히 활은 매우 매력적인 무기였지만, 컴파운드 보우라 릴리즈가 없으면 제 성능을 못냈고 또한 화살도 회수 못할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통 사냥꾼이 아니였기 때문에, 활도 제대로 깎는 방법도 몰랐고 나이프도 없었다. 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30구경 윈체스터 탄과 44구경 매그넘탄은 운이 좋다면 구할 수 있지만, 화살은 그보다 더 희귀할테니까. 나는 마침 전부 데워져 보이는 참치 캔을 까주고 아이에게 건낸 후에 활을 묻기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하나 더 쓰러졌다. 나는 어깨에 들쳐매었던 활과 화살통을 땅에 얕게 묻었다. 이 숲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선물이 될 수 있길. 약탈자 말고, 되도록 생존자면 좋겠군. 나는 작은 소원도 함께 묻었다. 그리고 돌아오자 아이는 참치 통조림을 반 정도 남겨놓고 내가 돌아올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시는 거예요? 아이는 내게 물었다. 활과 화살통을 묻으러. 나는 답하고 식은 참치 통조림을 단번에 해치우고 가방을 들쳐맸다. 통조림이 사라진 가방은 매우 가벼워졌다. 나는 이 가벼움 대신 가슴 속의 무거움이 가중되는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세상이로군. 무거움을 달래듯 한숨을 뱉어냈다. 아이는 내 표정에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꾹 눌렀다. 아이는 핀잔 어린 표정으로 날 봤지만 곧 웃었고, 나 역시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화덕을 엎고 다시 아스팔트 길 위로 마이애미를 향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도를 꺼내서 숲을 거쳐서 갈지 아님 길을 쭉 따라서 갈지 고민했다. 자칫하면 마이애미가 아닌 루이지애나로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했다. 아이는 내 고민에 간단히 대답했다. 숲을 통해서 가요. 정말이니? 네. 아이는 정말 순수하게 대답했고, 나는 지도를 집어넣으며 오랜만의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숲으로 가자꾸나. 우린 길 위에서 숲으로 돌아섰다. 이 길을 따라서 가면 서배나와 대로를 따라서 가겠지만, 숲을 통과해서 가면 더 빠를 수도 있었다. 숲속 길은 걷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장애물들이 많았다. 오래된 덫이라던가, 특히 쓰러지는 나무들. 가끔 보이는 시체들도 말이다. 시체들은 과거 야생동물이었던 것도 있었고 인간이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시체들은 대부분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바로 백골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걸 보면서 신기해했다. 아저씨, 사람이랑 동물들은 모두 뼈가 있어요? 그럼. 너도 나도, 그리고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모두 다 뼈가 있단다. 그렇네요, 그럼 저희도 죽어서 저렇게 되는거예요? 응. 나는 상식적인 질문에 상식적인 대답을 하며 우린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두막촌을 하나 발견했다.
 나는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오한에 가깝다. 며칠 전에 본, 오두막촌에서의 악몽. 자동스럽게 어깨 멜빵에 있던 라이플을 꺼내들어서 꽉 붙잡았다. 아이는 내 긴장과 오한을 깨달았다. 왜그래요, 아저씨? 조용히 있거라. 내 뒤에 꼭 붙으렴. 아이는 조용히 내 뒤에 붙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앞으로 전진했다. 운이 나쁠지도 모르겠군, 저 빌어먹을 오두막촌에서 뭐가 나올진 몰라. 하지만 확실한건, 저 안에서 생존자는 나오지 않을거라는 거야.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고, 오두막촌에 가까워졌다. 오두막은 총 세개였고, 통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나는 제일 가까운 오두막으로 다가가 숨죽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이 멎을것 같았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리고 손도 떨렸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강했다. 라이플을 앞으로 겨누고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끼익거리며 문이 열렸고 안은 어두웠다. 불이 켜질 수 있나? 바로 옆에 스위치가 있기에 올려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연하겠지, 이런 세상에서 그리고 오두막 같은 곳에서 불이 들어올리가 없다. 손전등이라도 있었음 좋겠는데. 오두막은 어두웠고 오로지 광원이라고는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옅은 빛과 문에서 들어오는 빛밖에 없었다. 무언가 나오길 빌었지만 아무것도 오두막 안에서는 나오는게 없었다. 오두막은 버려진지 꽤 오래 된 것 같아 보였다. 먼지 내음이 꽤 심했다. 가구들은 옮기기에 효율적이지 못한 난로와 책상, 침대 뿐이었다. 나가자. 나는 아이를 다독여서 다음 오두막으로 향했다. 심장이 진정되기 시작했고, 호흡이 진정됐다. 떨리던 손은 떨림을 멎었고 나는 다음 오두막의 문을 망설임 없이 열고 라이플을 안으로 겨눴다. 안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무슨 소동이 있었는지, 가구들은 박살나 있었다. 하지만 먼지내음이 적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기려던 순간 마지막 오두막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둘은 반사적으로 벽에 몸을 바싹 붙히고 바깎을 봤다. 오두막의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한 남자가 던져졌다. 그들이 고함치는게 들렸다. 이제는 못참아, 조니! 넌 우리에게 총알을 주기로 했어. 알아? 총알을 주기로 했단 말이야! 그래서 넌 통조림 세 개를 받아갔지. 그래서 너는 우리에게 뭘 줬을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두 남자가 던져진 남자를 뒤따라서 오두막을 나왔다. 그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었고, 한 남자는 손에는 자동 권총을 쥐고 있었다. 아이는 무서워했다. 아저씨, 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알고 있다. 나는 정의감이 두텁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이런 세상에서의 정의는 곧 먼저 총을 쏴서 맞추는 사람이 정의였으니까. 나는 엎드려서 라이플을 앞으로 겨누었다. 나는 왼쪽의 남자부터 겨누었다. 왼쪽의 남자는 흑인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두 남자는 다른 남자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차분하게, 약탈자들을 쏘듯 감정을 배제했다. 쓰레기 자식, 넌 오늘 뒈졌어. 왼쪽 남자가 권총의 슬라이드를 직접 당겼다 놓으며 장전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더 줘. 얻어맞았던 남자가 피에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는게 여기까지 들렸다. 아니, 기회는 없어. 이 개자식아. 나는 그가 권총을 쏘기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가늠자 사이로 보이던 머리통이 깨졌다. 익숙해진 장전을 서둘렀다. 노리쇠를 열어 당겨 약실을 열어 탄피를 빼내고 밀어 닫아서 약실을 닫았다. 다른 남자는 동료의 머리가 터지는걸 확인하고는 주춤거리다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남자까지 정확하게 맞췄고, 등에 총을 맞은 남자는 곧 쓰러졌다. 이제 한 발 남았군. 딱 한 발. 나는 약실을 열어 탄피를 빼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심히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일어서서 얻어맞은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는 듯 했다. 앉아서 남자의 어깨에 손을 댔다. 남자는 흠칫하며 굴렀지만 내가 말했다. 괜찮소. 우린 약탈자가 아니니. 남자는 엉망인 얼굴을 들며 말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괜찮습니까? 아이는 내가 남자를 쏘지 않은 것에 다행으로 여겼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예. 남자를 부축하며 우리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오두막 안은 추웠지만 있을 것은 모두 있었다. 식량, 난로, 침대. 오두막의 주인은 아까 둘이었나?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 오두막의 주인이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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