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편 제 1탄
새침데기새침데기새침새―침♪
태양이 꼭대기에 올라서 눈부시기만 하는 직사광선이 피부를 지글지글 태워대는, 그야말로 한여름.
어제부터 간신히 골방지기 생활에서 졸업한 나는, 집을 나선 환상향 1학년 신참마법사로서 머릿속으로 쾌활히 노래를 하며 하쿠레이 신사의 경내로 이어지는 돌계단 위를 날고 있어.
괜찮네, 이 자작 마을 노래.
환상향의 주민들은 새침데기가 많은 것 같으니 이 노래를 환상향의 향가로 남들에게 전수할 수 없을까.
원래 바깥 세계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하쿠레이 신사는, 바깥 세계――즉 환상향의 밖을 향해서 세워져 있지 않으면 이상해.
하지만 실제론 이렇게 환상향의 안으로 돌계단이 뻗어있어, 아마도 신사 뒷문이 아닌 정면이 맞이해 주는 게 현실이야.
마법사로서 주위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나는 이곳 일대의 공간이 지독하게도 비틀려서 왜곡되어 있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어.
아마도 바깥 하쿠레이 신사와 환상향의 하쿠레이 신사를 서로 등을 맞대고 존재하게 만들어서, 결계의 쐐기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눌러서 여는 타입의 문이 정면으로 마주보고 겹쳐있는 상태를 상상하면 조금은 알기 쉬울지도 몰라.
어느쪽의 문을 열려고 해도 반대쪽 문이 성가신 벽으로 동작해서, 보통 수단으론 열 수가 없어.
바깥 세계의 하쿠레이 신사에서 환상향에 들어가려 해도 하쿠레이 신사라는 표리 일체의 요점을 통해 공간이 루프해, 입구에서 입구로 돌려보내.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고.
답은 알 수 없으니 단순한 추측이지만, 이 공간의 왜곡을 보면 큰 오답은 아닐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느긋하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쿠레이 신사를 향하고 있는 건 환상향의 요괴측 관리자, 야쿠모 유카리에게서 초대장을 받아서야.
어제까지의 난 방구석폐인 증상이 말기에 달해서 “이제 싫어, 밖 무서워”식의, 바깥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의심을 키우던 상태였어.
갑자기 틈새를 써서 앗템트의 BGM이 머릿속에 흐르기 시작한 내 앞으로 당당히 나타난 유카리.
나는 너무나 급작스런 그녀의 등장 장면에 놀라서 의자에 앉은 상태로 홍차가 든 찻잔을 손에 든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어.
그게, 등장한 그녀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요기를 느낀 순간, 싸움조차 되지 않으리란 걸 파악했어.
아, 야, 답음따.
자신의 감각으로 간단히 잰 것만으로도 그녀와 내 차이가 드래곤볼의 프리더(제 1형태, 53만)과 기뉴(12만)정도 벌어져 있다는 걸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어.
게다가, 분명히 그녀는 경계는 하더라도 전력은 아닐 상태일텐데 말야(제 2, 제 3의 변신을 남기고 있을 가능성이 약간 존재).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 상황에서 이 확연한 실력차와 유카리가 내뿜는 농밀한 살기에 착란하지 않았던 걸로, 내 감정이 억제되고 있다는 걸 간신히 깨달은 건 단순한 여담이야.
이 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인물이 그녀기도 하다 보니, 나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자그만지를 뼈저리게 느꼈어
하지만 거꾸로 매달려서 참수를 기다리기만 하는 양계장의 닭같은 심경에 이른 내 앞에서, 유카리는 입가에 부채를 펼치고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하면서 한 장의 종이를 책상 위에 얹곤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채로 틈새로 돌아갔어.
혼자 남겨진 나는 그저 얼이 나가 있었어.
에에……그럼, 무슨 일인거야.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다 거의 1시간정도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책상에 놓인 닥나무 종이같은 걸 쥐곤 붓으로 쓰인 내용을 읽어봤어.
거기엔 이런 느낌으로 요약될만한 내용이 쓰여 있었어.
네놈, 멋대로 우리 환상향에 집따윌 만든데다 관리인인 우리에게 반년 가까이나 인사가 없다니, 배짱도 좋구나.
내일, 여기에 그려둔 인간 대표가 사는 하쿠레이 신사의 경내까지 오라고.
내가 정말로 그 자리서 두 무릎을 꿇은 건 말할것도 없어.
하지만 그 뒤로 잘 생각해 봤더니, 유카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죽이지 않았다는 건 교섭할 여지쯤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봐봐, 그녀는 환상향의 현자라고 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말로 쓰려는 습성이 있고구마.
거기에 추가로, 이 종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앨리스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적혀있어.
내가 “앨리스”로서 각성한 날, 그건 유카리네가 환상향에서 내 집을 발견한 날과 같다는 거야.
유카리는 환상향 전체를 살펴봐. 요는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느닷없이 환상향에 집과 함께 출현했다는 이야기가 돼.
결국 어떤 일인지야 모르겠지만, 사태파악에 전진이 있었다는 건 분명해.
이런 상황이라 자신에 대한 고찰 같은 것도 하면서, 편지에 지정된 대로 다음날엔 유카리님의 구두를 핥아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안고 나는 돌계단 위를 날고 있어.
지금 태연한 것도 이미 어떻게든 돼라~ 식의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여서 그래.
사형수의 13계단 치고는 유달리 긴 돌계단을 넘어, 나는 드디어 경내에 도착했어.
어라? 신사 거꾸론데.
에, 설마 지금 올라온 거 뒷참배로야?
무진장 넓고 멋지고, 응?
원작에선 어땠더라?
반회전만 한 줄 알았는데 왠지 삼회전 반비틀기 정도가 더해진 것 같아.
음―……애매하네!
머릿속으로 모 오카마의 포즈를 취하곤 생각하는 걸 포기한 내 눈에, 도사복 차림의 유카리와 5살쯤 되는 흑발 소녀가 들어왔어.
돌계단 위에서 유카리는 소녀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어.
“이 부적을――그래, 앞에 내밀고 영력을 담아. 그러면 요괴를 퇴치할 수 있어.”
평범한 무녀옷을 입은 소녀 앞에, 한 손으로 인을 짜며 손가락 사이에 끼운 지폐를 앞으로 내미는 유카리.
하지만 술자로서 최고봉의 교육자일 그녀의 지도는, 멍하니 먼 곳을 보는 소녀의 귀엔 잘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야.
“정말―, 그럼 안 되잖아. 이야기 듣고 있니? 레이무.”
소녀는 유카리에게서 레이무라 불렸어――즉, 그 자그만 여자애가 내가 아는 환상향의 멋진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거야.
“……요괴.”
“흐야아아아아아?!”
놀라서 움직임을 멈춰버린 나에겐 깨닫지 못한 채로 레이무는 가지고 있던 부적을 주저없이 유카리를 향해 날렸고, 부적에서 나온 영파를 직격당한 유카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젖혔어.
“잠깐, 아니잖니 레이무! 부적은 나쁜 요괴한테 쓰는 거야!”
“……나쁜……요괴.”
“기, 기다리렴 레이무! 그쪽 부적은 호신용으로 준 강력한 녀――히기이이이이익!”
자전이 춤추고, 유카리의 비명이 메아리쳐.
뭐라고 할까, 김빠질 정도의 콩트였어.
자그만 어린애인 레이무를 상대로, 요괴의 현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네.
“괜찮아? 그보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자, 촌극을 벌이던 둘이 나를 돌아봐.
“……요괴?”
“아.”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갸웃거리는 귀여운 레이무와, 보이고싶지 않은 장면을 보여버려선지 옷과 머리카락이 가볍게 탄 상태로 약간 부끄러워하는 듯한 유카리.
“으, 으. 란! 란―!”
“――어전에.”
바로 정신을 가다듬은 유카리가 양손을 두 번 두드리곤 크게 이름을 부르자, 상공에 열린 틈새에서 그녀의 종자가 내려왔어.
꼬리 아옵 있는 여우라는 최강의 요수이자, 청의 생명의 십상시. 현자와 같은 야쿠모의 성을 가진 유일한 식신, 야쿠모 란.
그녀가 입고 있는 푸른 도사복의 꼬리뼈 근처에 나 있는 아홉 꼬리가 너무 푹신거려서, 뒤에서 만져보려는 기세인 지금의 내겐, 이미 거의 그녀의 꼬리밖에 안 보여.
“레이무의 놀이 상대를 해 주렴.”
“존명.”
불러낸 용건이 애돌보기라는, 하녀 취급이나 다름없는 난폭한 취급에도 란은 한 마디 불만도 없이 담담히 대답하곤 레이무에게 다가갔어.
“미안해, 레이무. 주인님은 앞으로 손님과의 이야기가 있어서, 앞으론 내가 네 상대를 맡을게.”
“……별로,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지 마. 자, 우물에서 식혀둔 물양갱도 있다고.”
“……달아?”
“아아. 정말 달콤하고, 시원해.”
“저기, 란.”
“안심해. 유카리 님이랑 청의 몫은, 집의 우물에 제대로 남겨 뒀어.”
“그럼 좋아.”
좋은 거냐.
터무니없이 가정적인 느낌을 과시해준 야쿠모 일가 + 레이무에게, 내 태클도 날이 완전히 무뎌졌어.
“그럼――때끼, 레이무. 꼬리에 들어와서 편해지려고 하지 마.”
“……푹신푹신.”
“선택지는 두개야. 내 꼬리를 계속 만지고 싶으면 그대로 있어. 하지만 물양갱을 먹고 싶으면 자기 다리로 걸어.”
“……과자를 먹은 다음 만질래.”
“좋아, 그래야지.”
유카리보다 란 쪽이 레이무를 잘 다루는 모양이야.
란의 꼬리에서 나와서 그녀와 손을 잡고 떠나가는 레이무를 지켜보고, 나는 다시금 유카리랑 대치했어.
이미 꽤나 누그러졌지만, 앞으로가 주제야.
“잘 와 줬어. 새삼스럽지만 자기소개를 할게.”
손에 든 부채를 접고 허리띠에 꽂은 뒤, 유카리는 우아하게 옷의 양 끝을 짓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내 이름은 야쿠모 유카리. 이 환상향의 관리자를 맡고 있어.”
아, 아름다워……앗!
동작 하나하나가 세련된 숙녀의 움직임에 나는 내심 감동하며, 비슷한 동작을 흉내내며 인사를 돌려줬어.
“나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야. 종족은 마법사.”
이미 대부분이 알려져 있겠지만, 스스로 패를 내보일 생각은 없어. 전투용 인형인 상해와 봉래를 안 가져온 이유가 이거야.
전송마법을 쓰면 바로 부를 수 있어서, 나는 지금 상태로도 바로 임전태세로 들어갈 수 있어.
“귀하가 정말로 올 확률은, 1할 8푼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귀하의 초대법 문제였다고 생각해.”
다시금 부채를 펼치곤 입가를 숨기며 멈춰선 유카리를 향해, 나는 지극히 정당한 의견을 꺼냈어.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편지만 건네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초대야. 그래서야 당연히 따르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
“혹시나, 지금의 아이가?”
“그래, 제 13대 하쿠레이의 무녀――하쿠레이 레이무.”
유카리가 한 말의 의미. 그건 그녀가 이미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역할을 선대 무녀에게서 이어받았다는 것.
5살 아이로밖에 안 보이는 그런 자그만 소녀를, 생명의 위험조차 따르는 이변 해결에 내세우려 해. 혹은, 이미 내세운 적 있는 걸까.
“레이무는 아직 수행중이야. 대규모 이변이나 강력한 인외와의 전투는 아직 경험하지 않았어.”
유카리는 내 마음을 정확히 읽은 듯,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답을 이야기했어.
“레이무의 재능이라면 앞으로 3년――아니, 2년만 있으면 무녀로서 충분한 능력을 익힐 수 있겠지.”
잠깐, 레이무 얼마나 치트인 건데?!
아니 기다려, 콩트 탓에 맥이 풀려서 깨닫지 못했었는데, 레이무는 유카리한테 뭘 했었지?
환상향의 현자에게 겨우 일격으로 비명을 지를 만큼의 대미지를 주지 않았었나.
대요괴인 유카리에게 어중간한 공격이 통할리가 없어. 부적의 힘이 대단했던 것 뿐이라고 해도, 그걸 그 나이에 가볍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레이무의 재능이 규격외라는 걸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귀하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신참인 귀하가 환상향의 현상을 알아줬으면 해서야.”
“확실히, 위태롭네.”
당대 무녀가 수행중이라는 소리는 인간이 요괴에게 습격당했을 때 퇴치할 인간이 없다는 소리야. 레이무 외에도 요괴 퇴치사는 있겠지만, 능력은 현격히 낮을 거고.
사람을 덮쳐, 먹어치우기에 요괴야.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압도적인 사냥꾼이 휴업중인 걸 알면, 마음을 크게 먹고 날뛰는 녀석들도 늘어나겠지.
“그렇지도 않아. 이유가 있어서 은퇴했다곤 해도, 선대는 지금도 마을에 건재해. 거기에 요괴의 산에 있는 천구들이나 몇 명의 지기에게 부탁해서, 마을 주변의 경계와 경비도 맡겼어.”
에, 그럼 평화로운 거잖아. 왜 일부러 그리 위험한 것 같은 느낌으로 나한테 말하는 거야.
“……역시, 알고 있는 거네.”
“뭘――.”
――위험해.
그래. 내가 환상향에 와서 밖에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야. 이변이라거나 환상향의 구조같은 걸, 뭘 이해하는 듯 끄덕이고 있는 거야 나는.
레이무같은 어린애까지 써서 내 틈을 만들다니, 이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의 눈으로도 꿰뚫어 볼 수 없었어.
눈치챘을 땐, 유카리는 부채를 접은 상태로 이쪽을 재어 보려는 듯 바라보고 있어.
레이무와의 따끈따끈한 전개를 보고 완전 방심했어. 그녀의 한 마디로, 이미 달아날 곳이 없어.
이 유카링, 상상 외로 연극을 잘 하는데다 속이 검은 암여우야.
“――아아, 알고 있어.”
유카리와 머리싸움으로 승산이 있을 리도 없으니, 나는 선선히 백기를 들었어.
지금 기분은 완전 벌러덩 자빠진 오체투지. 동물 식으로 말하면, 복종 포즈 상태야.
앞으로 나는 에로 동인지 같이 지독한 꼴을 당하고 자신에 대한 것들을 깡그리 토해낸 뒤, 능력같은 걸 봉인당한 채로 마을 뒷질에 버려져서으아아아――
“……그래.”
머릿속으로 마을의 밤가게에 팔려 가게의 최고봉을 노리는 성공 스토리까지 이야기가 나아갔을 즈음, 유카리가 한 마디를 내뱉었어.
에? 그걸로 끝이야?
에로 동인적인 전개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였지. 앨리스로 괜찮을까?”
“아아.”
“귀하가 만든 인형의 옷 같은, 레이무가 입을 양복을 한 벌 만들어줬으면 해. 분명 어울릴테니까. 그걸로 이번 건은 잊어 줄게.”
잊어 주겠다, 로 온건가.
즉, 별안간 집째로 나타나 몰라야 할 환상향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어떻게 생각해도 수상쩍은 부분밖에 없는 나에 대한 탐색은 더이상 필요 없다는 이야기.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유카리에게 가치가 낮은 존재라 판단된 거겠지.
나, 용서받았어!
좋아, 레이무에게 무진장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서, 유카링의 간을 떨어지게 해 주겠어!
죽음을 각오할만한 상황에서 훌륭히 생환을 마친 반동으로 돌연 한 마음이 든 내 귀에, 따박따박 경쾌한 게다 소리가 내가 온 길――즉 돌계단 너머서 들려왔어.
“은퇴한 몸인데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는데……노파심이라도 난 걸까.”
부채로 입가를 숨기곤 가시를 담은 말투로 말하며, 유카리는 약간 눈쌀을 찌푸리며 돌계단쪽을 바라보고 있어.
“무슨 의미야?”
“만나면 알아. 지금 오고 있는건, 이 신사에 옛날에 살았던 선대 하쿠레이의 무녀.”
JIN·JJA·RO?!
원작에선 설정밖에 없는 미지의 캐릭터와의 만남에, 내 기분이 튀어올랐어.
시, 싫다 차암. 머리모양도 복장도 평소대론데, 안 꾸며도 괜찮을까?
저기 유카리, 내 모습 안 이상하지?
머릿속이 소녀모드가 되어가고, 내 속에서 기대와 불안과 기쁨이 교차하는 중에 이윽고 발소리가 다가오고 모습을 드러낸 선대 무녀.
사전 지식은 전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만남. 가슴의 고동이 멈추지 않아.
그런 내가 그녀에게 안은 첫 감상은――
◇
그건 급작스런 사건이었다.
2월도 끝나가던 시기, 매년과 마찬가지로 겨울잠을 자고 있던 유카리는 문득 눈을 떴다.
그녀의 경우, 겨울잠이라곤 해도 봄까지 절대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때때로 이렇게 선잠에서 깨어나, 차를 한 잔 마시거나 적당히 산보를 하거나 한 뒤 다시 잠들 때도 있다.
이번에도 그런 몸의 변덕인가 싶어서, 틈새를 펼쳐 환상향의 구석구석을 엿보며 시간을 떼우고 있던 유카리는 그러다 말도 안 되는 걸 발견했다.
집이다. 마법의 숲 입구 근처에, 집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안에, 본 적도 없는 금발의 인형같은 소녀가 살고 있었던 거다.
환상향은 좁고도 넓다. 하지만 밖에서 침입할 때는 반드시 하쿠레이 대결계를 지날 필요가 있고, 누군가가 지나면 설령 겨울잠을 자고 있어도 느낄 수 있도록 유카리는 술식을 구축하고 있었다.
밖에서의 방문자는 아니다. 하지만 안쪽 사람 중에선 기억이 없다.
금발 소녀의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은 규격외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대요괴라고 불릴 정도론 강대했다. 그런 자를 유카리가 기억하고 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바로 란을 불러 확인해 봤지만 대결계에는 바늘만한 구멍도 뚫린 흔적이 없었고, 전날 순찰때도 이런 건 없었다고 자랑스런 식신은 씁쓸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결계를 지나서 온 걸 자신이 지각하지 못했나?
아니다. 설령 구멍을 뚫지 않더라도, “지나갔다”는 정보는 계속 남는다.
그것조차 없이 전이하는 건 결계를 짠 자신조차도 불가능하다.
환상향의 안쪽 요괴가 갑자기 변이로 강해졌나?
아니다. 안과 밖, 이중으로 전개된 하쿠레이 대결계는, 환상향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파악하고 있다.
개미 한마리조차 놓치지 않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의 과거에는, 그녀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다. 그녀는 만일의 일이 일어났을 때를 위해, 자신의 대체품으로서 오랜 세월을 들여 연마하고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최고 걸작.
죽으라고 명하면 바로 목숨을 끊을 충성심을 가진 종자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마치 깨닫고 보니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꼴로, 그녀와 집은 갑자기 마법의 숲에 나타나 있었다.
다시금 졸음이 시작된 자신의 몸을 분하게 느끼며, 유카리는 란에게 최대급의 경계와 감시를 명하곤 이부자리에 들어가 깊은 잠에 들었다.
춘고정(春告精)이 날아다니고 환상향의 계절이 바뀐 뒤에도 푹 잠들다, 이미 완전히 “봄”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즈음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뜬 유카리.
일어났을 때 기다리고 있던 종자의 눈이 굉장히 날카로워 찔릴 정도로 아팠지만, 평소대로 무시하고 보고를 재촉한다.
결과는 결백. 감시를 하던 식신 여럿의 보고론 사역마나 원견의 술은 확인할 수 없었고, 본인도 지금까진 집에서 한 걸음도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집 안에서 뭘 하고 있냐고 물으니, 온종일 책을 읽거나 인형을 만들거나 가사를 하고――식사나 수면이 필요 없는 마법사일 텐데 아침 점심 저녁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곤, 밤이 되면 평범하게 목욕을 한 뒤 잔다는 모양이다.
소녀의 집은 지면에서 위에 있는 부분의 다섯배를 넘는 규모인 듯한 지하실이 있어, 식사나 인형 재료같은 건 거기서 확보하고 있기에 그녀의 생활은 집 안에서 만으로 완결되고 있다.
영문을 알 수 없다.
의미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흥미롭다.
유카리는 란에게 감시를 늦추라는 지시를 내고, 금발 소녀를 자신의 눈으로 관찰한다.
“마치 반편이 인간이네.”
유카리의 감시가 시작되고 한달쯤이 지나, 틈새로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현자는 소녀를 그리 평했다.
인간이라는 건,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자신을 형성하는 생물이다. 자신과 비교할 뭔가가 없으면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무너져 버릴정도로 연약하다.
그리고 요괴는 자신이야말로 유일무이하다고 하는, 강고한 오만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신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소녀는, 틀림없이 요괴쪽의 감성이겠지.
그런데도 그 생활은 인형이 인간을 흉내내고 있는 것처럼 기계적이고, 그러면서도 마법의 연습이나 인형 조작에 착착 성과를 올리고 있는 상황인, 극히 자연스럽고도 부자연스런 생활을 보내고 있는 거다.
소녀가 환상향에 오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반년이 지나간다.
그녀는 여전히 함께 나타난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로 두면 그녀는 영원히 집에 붙박혀 있을 것만 같은 불변함.
유카리는 다음 한 수로, 접촉을 시험하기로 했다.
상대가 할만한 모든 대답을 감안해 두고, 틈새를 열어 소녀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요기를 전력으로 내뿜어서 양쪽의 절대적인 위치를 명확히 드러내며 유카리는 그녀의 반응을 기다린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에게, 소녀는 잠깐 움직임을 멈춘 뒤엔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유카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서 이만한 살기를 맞고 있는데도 공격해 오지 않는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왜 아무 질문도 하지 않나.
완전 예상 밖. 유카리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간 상황에서 자기 입으로 정보를 주는 건 하책이라 판단하고, 사전에 준비해둔 초대장을 책상에 두고 물러났다.
겉보기엔 무난하게 써 두긴 했지만, 함정 냄새를 확연히 내풍기는 내용이었다.
모르는 토지. 게다가, 소녀에게는 적지나 마찬가지인 곳으로의 초대다. 무시할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이걸로 그녀는 집 밖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응하든 응하지 않든, 주위에 대한 경계를 시작하지 않을 순 없겠지.
거기서부터 그녀의 전력과 특성을 읽어내면 된다.
자, 그럼 어떻게 움직일래?
오지 않으리라 속단하고 있던 차에, 말을 안 듣는 레이무를 대하는 모습을 보여버린 탓에 유카리는 내심 얕잡아 보였으리라 싶어 신음소리를 냈다.
무사히 자기소개도 끝나, 앨리스는 란과 레이무가 떠나간 쪽을 바라본다.
“혹시나, 지금의 아이가?”
“그래, 제 13대 하쿠레이의 무녀――하쿠레이 레이무.”
재능은 있지만, 아직 어린 레이무가 이미 역할을 이은데는 이유가 있다.
선대 하쿠레이 무녀. 그녀의 수명이다.
아직 30조차 되지 않는 몸이긴 하지만, 그녀의 몸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마을의 의사가 여러번 말했다는 모양이다.
지금도 겉보기엔 건강하고 어떻게 하든 죽을 것 같지 않은데――인간이라는 건 역시 연약한 존재다.
“레이무의 재능이라면 앞으로 3년――아니, 2년만 있으면 무녀로서 충분한 능력을 익힐 수 있겠지.”
그러니까, 적어도 그녀가 죽기 전까지 새로운 무녀를 최대한 단련해 둘 필요가 있었다.
분명, 무녀가 없어도 환상향은 돌아간다. 대체가능한 부품 하나가 빠진 정도로 흔들릴 만큼 이 땅은 취약하지 않다.
하지만 빠진 부품은 다른 곳에도 부조화를 쌓아 나간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사태라는데 변함은 없다.
“귀하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신참인 귀하가 환상향의 현상을 알아줬으면 해서야.”
“확실히, 위태롭네.”
요소를 생략한 간략한 설명. 어느 정도의 질문을 상정하고 있던 유카리에게, 밖을 모를 터인 그녀는 마치 모든걸 이해하고 있는 듯한 반응을 되돌려 줬다.
“그렇지도 않아. 이유가 있어서 은퇴했다곤 해도, 선대는 지금도 건재해. 요괴의 산에 있는 천구들이나 몇 명의 지기에게 부탁해서, 마을 주변의 경계와 경비도 맡겼어.”
떠볼 의도로 환상향의 정보를 가볍게 전해 보자, 역시 그녀는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역시, 알고 있는 거네.”
“뭘――.”
책사의 앞에서 간신히 드러난, 첫 부조화.
무에서 솟아오른 그녀가 대체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여기서부터는 신중하게, 하지만 최대한의 정보를 끌어낸다.
“――아아, 알고 있어.”
거짓말, 얼버무림, 무언.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자 주의를 기울여 앨리스를 관찰하던 유카리는, 정색한 듯한 대답에 놀라 버렸다.
이쪽이 물으면 아무것도 숨길 생각은 없다고 그녀는 말한 거다.
이쪽에 적대할 생각도 없고, 경계도 없고, 살피지도 않고. 마치 단순히 무기질적이고 기계적인 인형같은 무미건조한 표정 뿐.
영문을 알 수 없다.
의미를 알 수 없다.
과연. 하지만, 나쁘진 않다.
“……그래.”
유카리는 그 한마디로 그녀에 대한 추궁을 거뒀다.
물으면 대답하겠지만, 그래선 주인으로서의 도량이 너무 좁은 거겠지.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였지. 앨리스로 괜찮을까?”
“아아.”
“귀하가 만든 인형의 옷 같은, 레이무가 입을 양복을 한 벌 만들어줬으면 해. 분명 어울릴테니까. 그걸로 이번 건은 잊어 줄게.”
괜찮겠지. 내가, 이 요괴의 현자가, 귀하를 환상향의 주민으로 인정하지.
이 자리에서 란과 함께 그녀를 멸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런 단락적인 방식밖에 쓸 수 없다면, 책사로선 2류 이하다.
적대자, 혹은 그와 비슷한 자와 대치하게 되었을 때, 가장 높은 성과는 그 상대를 동료로 끌어들이는 거다.
규칙으로 묶고, 정으로 묶고, 타성으로 묶고, 가치관으로 묶는다. 환상향이 그녀에게 소중한 곳이 되면, 그것만으로도 미지를 가진 그녀를 동료로 끌어들일 수 있다.
쓸 수 있는 손패는 많을수록 좋다.
그 뒤, 선대와 만난 앨리스는 실로 레이무의 치수를 잰 뒤, 마법을 써서 전송해온 작은 바구니를 레이무에게 건네고 시원스레 귀갓길에 올랐다.
바구니의 안에는 카르보나라라는 면을 쓴 외양의 요리가.
앨리스는 진지하게 이사국수 대신이라고 말했다. 더더욱 이상한 마법사다.
유카리도 집으로 돌아가, 걸터앉은 틈새와 같은 꼴로 일그러진 입가를 부채로 숨긴다.
자――앞으로는 즐겁고도 즐거운 흉계의 시간.
서로의 영역에 규칙대로 선을 긋고 정해진 규칙에 유유낙낙히 따르기만 하는 나약한 사람밖에 없는 곳을, 대체 누가 “환상향”라고 부를까.
경계라는 건 항상 애매하고 혼돈스러운 쪽이 바람직하다.
일상과 자극, 평온과 살벌. 맵고 씁쓸한 걸 먹은 뒤일수록 단 건 몇배나 더 맛있게 혀를 적신다.
앨리스라는 미지는 대체 어떤 파문을 환상향에 던져 줄까.
적이 되면 토벌하고, 아군이 되면 이용한다. 말 정도로 끝난다면, 혹사한 뒤 끝이다.
단순하고 실로 쉬운 해답.
“그 애는 과연, 적일까 아군일까 아니면 말일까――우후훗.”
환상향에 장난감이 늘어난다.
사랑스런 정원의, 현자의 장난감이.
유카리는 웃는다. 초승달을 뒤로 하고, 찢어지는 것만 같은 입가로 요사스런 비웃음을.
자, 이 뒤엔 대금을 받은 배우가 모여, 막을 올린 뒤의 즐거움――
4. 때때론 옛날 이약☆일하자 (기)
새침데기새침데기새침새―침♪
태양이 꼭대기에 올라서 눈부시기만 하는 직사광선이 피부를 지글지글 태워대는, 그야말로 한여름.
어제부터 간신히 골방지기 생활에서 졸업한 나는, 집을 나선 환상향 1학년 신참마법사로서 머릿속으로 쾌활히 노래를 하며 하쿠레이 신사의 경내로 이어지는 돌계단 위를 날고 있어.
괜찮네, 이 자작 마을 노래.
환상향의 주민들은 새침데기가 많은 것 같으니 이 노래를 환상향의 향가로 남들에게 전수할 수 없을까.
원래 바깥 세계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하쿠레이 신사는, 바깥 세계――즉 환상향의 밖을 향해서 세워져 있지 않으면 이상해.
하지만 실제론 이렇게 환상향의 안으로 돌계단이 뻗어있어, 아마도 신사 뒷문이 아닌 정면이 맞이해 주는 게 현실이야.
마법사로서 주위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나는 이곳 일대의 공간이 지독하게도 비틀려서 왜곡되어 있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어.
아마도 바깥 하쿠레이 신사와 환상향의 하쿠레이 신사를 서로 등을 맞대고 존재하게 만들어서, 결계의 쐐기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눌러서 여는 타입의 문이 정면으로 마주보고 겹쳐있는 상태를 상상하면 조금은 알기 쉬울지도 몰라.
어느쪽의 문을 열려고 해도 반대쪽 문이 성가신 벽으로 동작해서, 보통 수단으론 열 수가 없어.
바깥 세계의 하쿠레이 신사에서 환상향에 들어가려 해도 하쿠레이 신사라는 표리 일체의 요점을 통해 공간이 루프해, 입구에서 입구로 돌려보내.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고.
답은 알 수 없으니 단순한 추측이지만, 이 공간의 왜곡을 보면 큰 오답은 아닐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느긋하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쿠레이 신사를 향하고 있는 건 환상향의 요괴측 관리자, 야쿠모 유카리에게서 초대장을 받아서야.
어제까지의 난 방구석폐인 증상이 말기에 달해서 “이제 싫어, 밖 무서워”식의, 바깥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의심을 키우던 상태였어.
갑자기 틈새를 써서 앗템트의 BGM이 머릿속에 흐르기 시작한 내 앞으로 당당히 나타난 유카리.
나는 너무나 급작스런 그녀의 등장 장면에 놀라서 의자에 앉은 상태로 홍차가 든 찻잔을 손에 든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어.
그게, 등장한 그녀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요기를 느낀 순간, 싸움조차 되지 않으리란 걸 파악했어.
아, 야, 답음따.
자신의 감각으로 간단히 잰 것만으로도 그녀와 내 차이가 드래곤볼의 프리더(제 1형태, 53만)과 기뉴(12만)정도 벌어져 있다는 걸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어.
게다가, 분명히 그녀는 경계는 하더라도 전력은 아닐 상태일텐데 말야(제 2, 제 3의 변신을 남기고 있을 가능성이 약간 존재).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 상황에서 이 확연한 실력차와 유카리가 내뿜는 농밀한 살기에 착란하지 않았던 걸로, 내 감정이 억제되고 있다는 걸 간신히 깨달은 건 단순한 여담이야.
이 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인물이 그녀기도 하다 보니, 나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자그만지를 뼈저리게 느꼈어
하지만 거꾸로 매달려서 참수를 기다리기만 하는 양계장의 닭같은 심경에 이른 내 앞에서, 유카리는 입가에 부채를 펼치고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하면서 한 장의 종이를 책상 위에 얹곤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채로 틈새로 돌아갔어.
혼자 남겨진 나는 그저 얼이 나가 있었어.
에에……그럼, 무슨 일인거야.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다 거의 1시간정도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책상에 놓인 닥나무 종이같은 걸 쥐곤 붓으로 쓰인 내용을 읽어봤어.
거기엔 이런 느낌으로 요약될만한 내용이 쓰여 있었어.
네놈, 멋대로 우리 환상향에 집따윌 만든데다 관리인인 우리에게 반년 가까이나 인사가 없다니, 배짱도 좋구나.
내일, 여기에 그려둔 인간 대표가 사는 하쿠레이 신사의 경내까지 오라고.
내가 정말로 그 자리서 두 무릎을 꿇은 건 말할것도 없어.
하지만 그 뒤로 잘 생각해 봤더니, 유카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죽이지 않았다는 건 교섭할 여지쯤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봐봐, 그녀는 환상향의 현자라고 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말로 쓰려는 습성이 있고구마.
거기에 추가로, 이 종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앨리스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적혀있어.
내가 “앨리스”로서 각성한 날, 그건 유카리네가 환상향에서 내 집을 발견한 날과 같다는 거야.
유카리는 환상향 전체를 살펴봐. 요는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느닷없이 환상향에 집과 함께 출현했다는 이야기가 돼.
결국 어떤 일인지야 모르겠지만, 사태파악에 전진이 있었다는 건 분명해.
이런 상황이라 자신에 대한 고찰 같은 것도 하면서, 편지에 지정된 대로 다음날엔 유카리님의 구두를 핥아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안고 나는 돌계단 위를 날고 있어.
지금 태연한 것도 이미 어떻게든 돼라~ 식의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여서 그래.
사형수의 13계단 치고는 유달리 긴 돌계단을 넘어, 나는 드디어 경내에 도착했어.
어라? 신사 거꾸론데.
에, 설마 지금 올라온 거 뒷참배로야?
무진장 넓고 멋지고, 응?
원작에선 어땠더라?
반회전만 한 줄 알았는데 왠지 삼회전 반비틀기 정도가 더해진 것 같아.
음―……애매하네!
머릿속으로 모 오카마의 포즈를 취하곤 생각하는 걸 포기한 내 눈에, 도사복 차림의 유카리와 5살쯤 되는 흑발 소녀가 들어왔어.
돌계단 위에서 유카리는 소녀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어.
“이 부적을――그래, 앞에 내밀고 영력을 담아. 그러면 요괴를 퇴치할 수 있어.”
평범한 무녀옷을 입은 소녀 앞에, 한 손으로 인을 짜며 손가락 사이에 끼운 지폐를 앞으로 내미는 유카리.
하지만 술자로서 최고봉의 교육자일 그녀의 지도는, 멍하니 먼 곳을 보는 소녀의 귀엔 잘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야.
“정말―, 그럼 안 되잖아. 이야기 듣고 있니? 레이무.”
소녀는 유카리에게서 레이무라 불렸어――즉, 그 자그만 여자애가 내가 아는 환상향의 멋진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거야.
“……요괴.”
“흐야아아아아아?!”
놀라서 움직임을 멈춰버린 나에겐 깨닫지 못한 채로 레이무는 가지고 있던 부적을 주저없이 유카리를 향해 날렸고, 부적에서 나온 영파를 직격당한 유카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젖혔어.
“잠깐, 아니잖니 레이무! 부적은 나쁜 요괴한테 쓰는 거야!”
“……나쁜……요괴.”
“기, 기다리렴 레이무! 그쪽 부적은 호신용으로 준 강력한 녀――히기이이이이익!”
자전이 춤추고, 유카리의 비명이 메아리쳐.
뭐라고 할까, 김빠질 정도의 콩트였어.
자그만 어린애인 레이무를 상대로, 요괴의 현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네.
“괜찮아? 그보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자, 촌극을 벌이던 둘이 나를 돌아봐.
“……요괴?”
“아.”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갸웃거리는 귀여운 레이무와, 보이고싶지 않은 장면을 보여버려선지 옷과 머리카락이 가볍게 탄 상태로 약간 부끄러워하는 듯한 유카리.
“으, 으. 란! 란―!”
“――어전에.”
바로 정신을 가다듬은 유카리가 양손을 두 번 두드리곤 크게 이름을 부르자, 상공에 열린 틈새에서 그녀의 종자가 내려왔어.
꼬리 아옵 있는 여우라는 최강의 요수이자, 청의 생명의 십상시. 현자와 같은 야쿠모의 성을 가진 유일한 식신, 야쿠모 란.
그녀가 입고 있는 푸른 도사복의 꼬리뼈 근처에 나 있는 아홉 꼬리가 너무 푹신거려서, 뒤에서 만져보려는 기세인 지금의 내겐, 이미 거의 그녀의 꼬리밖에 안 보여.
“레이무의 놀이 상대를 해 주렴.”
“존명.”
불러낸 용건이 애돌보기라는, 하녀 취급이나 다름없는 난폭한 취급에도 란은 한 마디 불만도 없이 담담히 대답하곤 레이무에게 다가갔어.
“미안해, 레이무. 주인님은 앞으로 손님과의 이야기가 있어서, 앞으론 내가 네 상대를 맡을게.”
“……별로,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지 마. 자, 우물에서 식혀둔 물양갱도 있다고.”
“……달아?”
“아아. 정말 달콤하고, 시원해.”
“저기, 란.”
“안심해. 유카리 님이랑 청의 몫은, 집의 우물에 제대로 남겨 뒀어.”
“그럼 좋아.”
좋은 거냐.
터무니없이 가정적인 느낌을 과시해준 야쿠모 일가 + 레이무에게, 내 태클도 날이 완전히 무뎌졌어.
“그럼――때끼, 레이무. 꼬리에 들어와서 편해지려고 하지 마.”
“……푹신푹신.”
“선택지는 두개야. 내 꼬리를 계속 만지고 싶으면 그대로 있어. 하지만 물양갱을 먹고 싶으면 자기 다리로 걸어.”
“……과자를 먹은 다음 만질래.”
“좋아, 그래야지.”
유카리보다 란 쪽이 레이무를 잘 다루는 모양이야.
란의 꼬리에서 나와서 그녀와 손을 잡고 떠나가는 레이무를 지켜보고, 나는 다시금 유카리랑 대치했어.
이미 꽤나 누그러졌지만, 앞으로가 주제야.
“잘 와 줬어. 새삼스럽지만 자기소개를 할게.”
손에 든 부채를 접고 허리띠에 꽂은 뒤, 유카리는 우아하게 옷의 양 끝을 짓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내 이름은 야쿠모 유카리. 이 환상향의 관리자를 맡고 있어.”
아, 아름다워……앗!
동작 하나하나가 세련된 숙녀의 움직임에 나는 내심 감동하며, 비슷한 동작을 흉내내며 인사를 돌려줬어.
“나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야. 종족은 마법사.”
이미 대부분이 알려져 있겠지만, 스스로 패를 내보일 생각은 없어. 전투용 인형인 상해와 봉래를 안 가져온 이유가 이거야.
전송마법을 쓰면 바로 부를 수 있어서, 나는 지금 상태로도 바로 임전태세로 들어갈 수 있어.
“귀하가 정말로 올 확률은, 1할 8푼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귀하의 초대법 문제였다고 생각해.”
다시금 부채를 펼치곤 입가를 숨기며 멈춰선 유카리를 향해, 나는 지극히 정당한 의견을 꺼냈어.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편지만 건네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초대야. 그래서야 당연히 따르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
“혹시나, 지금의 아이가?”
“그래, 제 13대 하쿠레이의 무녀――하쿠레이 레이무.”
유카리가 한 말의 의미. 그건 그녀가 이미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역할을 선대 무녀에게서 이어받았다는 것.
5살 아이로밖에 안 보이는 그런 자그만 소녀를, 생명의 위험조차 따르는 이변 해결에 내세우려 해. 혹은, 이미 내세운 적 있는 걸까.
“레이무는 아직 수행중이야. 대규모 이변이나 강력한 인외와의 전투는 아직 경험하지 않았어.”
유카리는 내 마음을 정확히 읽은 듯,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답을 이야기했어.
“레이무의 재능이라면 앞으로 3년――아니, 2년만 있으면 무녀로서 충분한 능력을 익힐 수 있겠지.”
잠깐, 레이무 얼마나 치트인 건데?!
아니 기다려, 콩트 탓에 맥이 풀려서 깨닫지 못했었는데, 레이무는 유카리한테 뭘 했었지?
환상향의 현자에게 겨우 일격으로 비명을 지를 만큼의 대미지를 주지 않았었나.
대요괴인 유카리에게 어중간한 공격이 통할리가 없어. 부적의 힘이 대단했던 것 뿐이라고 해도, 그걸 그 나이에 가볍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레이무의 재능이 규격외라는 걸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귀하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신참인 귀하가 환상향의 현상을 알아줬으면 해서야.”
“확실히, 위태롭네.”
당대 무녀가 수행중이라는 소리는 인간이 요괴에게 습격당했을 때 퇴치할 인간이 없다는 소리야. 레이무 외에도 요괴 퇴치사는 있겠지만, 능력은 현격히 낮을 거고.
사람을 덮쳐, 먹어치우기에 요괴야.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압도적인 사냥꾼이 휴업중인 걸 알면, 마음을 크게 먹고 날뛰는 녀석들도 늘어나겠지.
“그렇지도 않아. 이유가 있어서 은퇴했다곤 해도, 선대는 지금도 마을에 건재해. 거기에 요괴의 산에 있는 천구들이나 몇 명의 지기에게 부탁해서, 마을 주변의 경계와 경비도 맡겼어.”
에, 그럼 평화로운 거잖아. 왜 일부러 그리 위험한 것 같은 느낌으로 나한테 말하는 거야.
“……역시, 알고 있는 거네.”
“뭘――.”
――위험해.
그래. 내가 환상향에 와서 밖에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야. 이변이라거나 환상향의 구조같은 걸, 뭘 이해하는 듯 끄덕이고 있는 거야 나는.
레이무같은 어린애까지 써서 내 틈을 만들다니, 이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의 눈으로도 꿰뚫어 볼 수 없었어.
눈치챘을 땐, 유카리는 부채를 접은 상태로 이쪽을 재어 보려는 듯 바라보고 있어.
레이무와의 따끈따끈한 전개를 보고 완전 방심했어. 그녀의 한 마디로, 이미 달아날 곳이 없어.
이 유카링, 상상 외로 연극을 잘 하는데다 속이 검은 암여우야.
“――아아, 알고 있어.”
유카리와 머리싸움으로 승산이 있을 리도 없으니, 나는 선선히 백기를 들었어.
지금 기분은 완전 벌러덩 자빠진 오체투지. 동물 식으로 말하면, 복종 포즈 상태야.
앞으로 나는 에로 동인지 같이 지독한 꼴을 당하고 자신에 대한 것들을 깡그리 토해낸 뒤, 능력같은 걸 봉인당한 채로 마을 뒷질에 버려져서으아아아――
“……그래.”
머릿속으로 마을의 밤가게에 팔려 가게의 최고봉을 노리는 성공 스토리까지 이야기가 나아갔을 즈음, 유카리가 한 마디를 내뱉었어.
에? 그걸로 끝이야?
에로 동인적인 전개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였지. 앨리스로 괜찮을까?”
“아아.”
“귀하가 만든 인형의 옷 같은, 레이무가 입을 양복을 한 벌 만들어줬으면 해. 분명 어울릴테니까. 그걸로 이번 건은 잊어 줄게.”
잊어 주겠다, 로 온건가.
즉, 별안간 집째로 나타나 몰라야 할 환상향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어떻게 생각해도 수상쩍은 부분밖에 없는 나에 대한 탐색은 더이상 필요 없다는 이야기.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유카리에게 가치가 낮은 존재라 판단된 거겠지.
나, 용서받았어!
좋아, 레이무에게 무진장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서, 유카링의 간을 떨어지게 해 주겠어!
죽음을 각오할만한 상황에서 훌륭히 생환을 마친 반동으로 돌연 한 마음이 든 내 귀에, 따박따박 경쾌한 게다 소리가 내가 온 길――즉 돌계단 너머서 들려왔어.
“은퇴한 몸인데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는데……노파심이라도 난 걸까.”
부채로 입가를 숨기곤 가시를 담은 말투로 말하며, 유카리는 약간 눈쌀을 찌푸리며 돌계단쪽을 바라보고 있어.
“무슨 의미야?”
“만나면 알아. 지금 오고 있는건, 이 신사에 옛날에 살았던 선대 하쿠레이의 무녀.”
JIN·JJA·RO?!
원작에선 설정밖에 없는 미지의 캐릭터와의 만남에, 내 기분이 튀어올랐어.
시, 싫다 차암. 머리모양도 복장도 평소대론데, 안 꾸며도 괜찮을까?
저기 유카리, 내 모습 안 이상하지?
머릿속이 소녀모드가 되어가고, 내 속에서 기대와 불안과 기쁨이 교차하는 중에 이윽고 발소리가 다가오고 모습을 드러낸 선대 무녀.
사전 지식은 전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만남. 가슴의 고동이 멈추지 않아.
그런 내가 그녀에게 안은 첫 감상은――
◇
그건 급작스런 사건이었다.
2월도 끝나가던 시기, 매년과 마찬가지로 겨울잠을 자고 있던 유카리는 문득 눈을 떴다.
그녀의 경우, 겨울잠이라곤 해도 봄까지 절대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때때로 이렇게 선잠에서 깨어나, 차를 한 잔 마시거나 적당히 산보를 하거나 한 뒤 다시 잠들 때도 있다.
이번에도 그런 몸의 변덕인가 싶어서, 틈새를 펼쳐 환상향의 구석구석을 엿보며 시간을 떼우고 있던 유카리는 그러다 말도 안 되는 걸 발견했다.
집이다. 마법의 숲 입구 근처에, 집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안에, 본 적도 없는 금발의 인형같은 소녀가 살고 있었던 거다.
환상향은 좁고도 넓다. 하지만 밖에서 침입할 때는 반드시 하쿠레이 대결계를 지날 필요가 있고, 누군가가 지나면 설령 겨울잠을 자고 있어도 느낄 수 있도록 유카리는 술식을 구축하고 있었다.
밖에서의 방문자는 아니다. 하지만 안쪽 사람 중에선 기억이 없다.
금발 소녀의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은 규격외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대요괴라고 불릴 정도론 강대했다. 그런 자를 유카리가 기억하고 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바로 란을 불러 확인해 봤지만 대결계에는 바늘만한 구멍도 뚫린 흔적이 없었고, 전날 순찰때도 이런 건 없었다고 자랑스런 식신은 씁쓸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결계를 지나서 온 걸 자신이 지각하지 못했나?
아니다. 설령 구멍을 뚫지 않더라도, “지나갔다”는 정보는 계속 남는다.
그것조차 없이 전이하는 건 결계를 짠 자신조차도 불가능하다.
환상향의 안쪽 요괴가 갑자기 변이로 강해졌나?
아니다. 안과 밖, 이중으로 전개된 하쿠레이 대결계는, 환상향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파악하고 있다.
개미 한마리조차 놓치지 않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의 과거에는, 그녀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다. 그녀는 만일의 일이 일어났을 때를 위해, 자신의 대체품으로서 오랜 세월을 들여 연마하고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최고 걸작.
죽으라고 명하면 바로 목숨을 끊을 충성심을 가진 종자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마치 깨닫고 보니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꼴로, 그녀와 집은 갑자기 마법의 숲에 나타나 있었다.
다시금 졸음이 시작된 자신의 몸을 분하게 느끼며, 유카리는 란에게 최대급의 경계와 감시를 명하곤 이부자리에 들어가 깊은 잠에 들었다.
춘고정(春告精)이 날아다니고 환상향의 계절이 바뀐 뒤에도 푹 잠들다, 이미 완전히 “봄”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즈음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뜬 유카리.
일어났을 때 기다리고 있던 종자의 눈이 굉장히 날카로워 찔릴 정도로 아팠지만, 평소대로 무시하고 보고를 재촉한다.
결과는 결백. 감시를 하던 식신 여럿의 보고론 사역마나 원견의 술은 확인할 수 없었고, 본인도 지금까진 집에서 한 걸음도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집 안에서 뭘 하고 있냐고 물으니, 온종일 책을 읽거나 인형을 만들거나 가사를 하고――식사나 수면이 필요 없는 마법사일 텐데 아침 점심 저녁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곤, 밤이 되면 평범하게 목욕을 한 뒤 잔다는 모양이다.
소녀의 집은 지면에서 위에 있는 부분의 다섯배를 넘는 규모인 듯한 지하실이 있어, 식사나 인형 재료같은 건 거기서 확보하고 있기에 그녀의 생활은 집 안에서 만으로 완결되고 있다.
영문을 알 수 없다.
의미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흥미롭다.
유카리는 란에게 감시를 늦추라는 지시를 내고, 금발 소녀를 자신의 눈으로 관찰한다.
“마치 반편이 인간이네.”
유카리의 감시가 시작되고 한달쯤이 지나, 틈새로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현자는 소녀를 그리 평했다.
인간이라는 건,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자신을 형성하는 생물이다. 자신과 비교할 뭔가가 없으면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무너져 버릴정도로 연약하다.
그리고 요괴는 자신이야말로 유일무이하다고 하는, 강고한 오만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신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소녀는, 틀림없이 요괴쪽의 감성이겠지.
그런데도 그 생활은 인형이 인간을 흉내내고 있는 것처럼 기계적이고, 그러면서도 마법의 연습이나 인형 조작에 착착 성과를 올리고 있는 상황인, 극히 자연스럽고도 부자연스런 생활을 보내고 있는 거다.
소녀가 환상향에 오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반년이 지나간다.
그녀는 여전히 함께 나타난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로 두면 그녀는 영원히 집에 붙박혀 있을 것만 같은 불변함.
유카리는 다음 한 수로, 접촉을 시험하기로 했다.
상대가 할만한 모든 대답을 감안해 두고, 틈새를 열어 소녀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요기를 전력으로 내뿜어서 양쪽의 절대적인 위치를 명확히 드러내며 유카리는 그녀의 반응을 기다린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에게, 소녀는 잠깐 움직임을 멈춘 뒤엔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유카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서 이만한 살기를 맞고 있는데도 공격해 오지 않는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왜 아무 질문도 하지 않나.
완전 예상 밖. 유카리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간 상황에서 자기 입으로 정보를 주는 건 하책이라 판단하고, 사전에 준비해둔 초대장을 책상에 두고 물러났다.
겉보기엔 무난하게 써 두긴 했지만, 함정 냄새를 확연히 내풍기는 내용이었다.
모르는 토지. 게다가, 소녀에게는 적지나 마찬가지인 곳으로의 초대다. 무시할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이걸로 그녀는 집 밖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응하든 응하지 않든, 주위에 대한 경계를 시작하지 않을 순 없겠지.
거기서부터 그녀의 전력과 특성을 읽어내면 된다.
자, 그럼 어떻게 움직일래?
오지 않으리라 속단하고 있던 차에, 말을 안 듣는 레이무를 대하는 모습을 보여버린 탓에 유카리는 내심 얕잡아 보였으리라 싶어 신음소리를 냈다.
무사히 자기소개도 끝나, 앨리스는 란과 레이무가 떠나간 쪽을 바라본다.
“혹시나, 지금의 아이가?”
“그래, 제 13대 하쿠레이의 무녀――하쿠레이 레이무.”
재능은 있지만, 아직 어린 레이무가 이미 역할을 이은데는 이유가 있다.
선대 하쿠레이 무녀. 그녀의 수명이다.
아직 30조차 되지 않는 몸이긴 하지만, 그녀의 몸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마을의 의사가 여러번 말했다는 모양이다.
지금도 겉보기엔 건강하고 어떻게 하든 죽을 것 같지 않은데――인간이라는 건 역시 연약한 존재다.
“레이무의 재능이라면 앞으로 3년――아니, 2년만 있으면 무녀로서 충분한 능력을 익힐 수 있겠지.”
그러니까, 적어도 그녀가 죽기 전까지 새로운 무녀를 최대한 단련해 둘 필요가 있었다.
분명, 무녀가 없어도 환상향은 돌아간다. 대체가능한 부품 하나가 빠진 정도로 흔들릴 만큼 이 땅은 취약하지 않다.
하지만 빠진 부품은 다른 곳에도 부조화를 쌓아 나간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사태라는데 변함은 없다.
“귀하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신참인 귀하가 환상향의 현상을 알아줬으면 해서야.”
“확실히, 위태롭네.”
요소를 생략한 간략한 설명. 어느 정도의 질문을 상정하고 있던 유카리에게, 밖을 모를 터인 그녀는 마치 모든걸 이해하고 있는 듯한 반응을 되돌려 줬다.
“그렇지도 않아. 이유가 있어서 은퇴했다곤 해도, 선대는 지금도 건재해. 요괴의 산에 있는 천구들이나 몇 명의 지기에게 부탁해서, 마을 주변의 경계와 경비도 맡겼어.”
떠볼 의도로 환상향의 정보를 가볍게 전해 보자, 역시 그녀는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역시, 알고 있는 거네.”
“뭘――.”
책사의 앞에서 간신히 드러난, 첫 부조화.
무에서 솟아오른 그녀가 대체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여기서부터는 신중하게, 하지만 최대한의 정보를 끌어낸다.
“――아아, 알고 있어.”
거짓말, 얼버무림, 무언.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자 주의를 기울여 앨리스를 관찰하던 유카리는, 정색한 듯한 대답에 놀라 버렸다.
이쪽이 물으면 아무것도 숨길 생각은 없다고 그녀는 말한 거다.
이쪽에 적대할 생각도 없고, 경계도 없고, 살피지도 않고. 마치 단순히 무기질적이고 기계적인 인형같은 무미건조한 표정 뿐.
영문을 알 수 없다.
의미를 알 수 없다.
과연. 하지만, 나쁘진 않다.
“……그래.”
유카리는 그 한마디로 그녀에 대한 추궁을 거뒀다.
물으면 대답하겠지만, 그래선 주인으로서의 도량이 너무 좁은 거겠지.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였지. 앨리스로 괜찮을까?”
“아아.”
“귀하가 만든 인형의 옷 같은, 레이무가 입을 양복을 한 벌 만들어줬으면 해. 분명 어울릴테니까. 그걸로 이번 건은 잊어 줄게.”
괜찮겠지. 내가, 이 요괴의 현자가, 귀하를 환상향의 주민으로 인정하지.
이 자리에서 란과 함께 그녀를 멸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런 단락적인 방식밖에 쓸 수 없다면, 책사로선 2류 이하다.
적대자, 혹은 그와 비슷한 자와 대치하게 되었을 때, 가장 높은 성과는 그 상대를 동료로 끌어들이는 거다.
규칙으로 묶고, 정으로 묶고, 타성으로 묶고, 가치관으로 묶는다. 환상향이 그녀에게 소중한 곳이 되면, 그것만으로도 미지를 가진 그녀를 동료로 끌어들일 수 있다.
쓸 수 있는 손패는 많을수록 좋다.
그 뒤, 선대와 만난 앨리스는 실로 레이무의 치수를 잰 뒤, 마법을 써서 전송해온 작은 바구니를 레이무에게 건네고 시원스레 귀갓길에 올랐다.
바구니의 안에는 카르보나라라는 면을 쓴 외양의 요리가.
앨리스는 진지하게 이사국수 대신이라고 말했다. 더더욱 이상한 마법사다.
유카리도 집으로 돌아가, 걸터앉은 틈새와 같은 꼴로 일그러진 입가를 부채로 숨긴다.
자――앞으로는 즐겁고도 즐거운 흉계의 시간.
서로의 영역에 규칙대로 선을 긋고 정해진 규칙에 유유낙낙히 따르기만 하는 나약한 사람밖에 없는 곳을, 대체 누가 “환상향”라고 부를까.
경계라는 건 항상 애매하고 혼돈스러운 쪽이 바람직하다.
일상과 자극, 평온과 살벌. 맵고 씁쓸한 걸 먹은 뒤일수록 단 건 몇배나 더 맛있게 혀를 적신다.
앨리스라는 미지는 대체 어떤 파문을 환상향에 던져 줄까.
적이 되면 토벌하고, 아군이 되면 이용한다. 말 정도로 끝난다면, 혹사한 뒤 끝이다.
단순하고 실로 쉬운 해답.
“그 애는 과연, 적일까 아군일까 아니면 말일까――우후훗.”
환상향에 장난감이 늘어난다.
사랑스런 정원의, 현자의 장난감이.
유카리는 웃는다. 초승달을 뒤로 하고, 찢어지는 것만 같은 입가로 요사스런 비웃음을.
자, 이 뒤엔 대금을 받은 배우가 모여, 막을 올린 뒤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