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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송이


9. 설익은 혹은 농익은 - (19)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미네트는 거울의 홀을 휘젓고 다녔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일곱 개의 불빛 아래에도 빛나지 않을 만큼, 그녀는 수수하게 차리고 있었다. 리젤로트의 흉내를 내는 멍청하게 생글생글한 표정은 지운 뒤였다.

미네트의 손목에는 대리석으로 된 모후의 옆얼굴 대신 코시카 여제의 옆얼굴이 매달려 있었다. 미네트의 손목을 끌어다 입 맞추는 남자 따위가 있을 리 없었으므로, 그 누구도 미네트의 손목에 매달린 것이 대리석이 아니라 마노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창가 출신이기 때문에 좀처럼 이블린에서 그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부황의 공식 정부를 지나쳐, 자비관 일 층을 전부 뒤졌는데도 목표물은 보이지 않았다. 미네트는 어둑어둑한 휴게실을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구두 신은 발이 욱신거렸다. 대체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미네트는 언제나 어머니의 뒤에 서있는 일에 익숙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제의 딸로서의 삶은 모두 리젤로트의 몫.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지루한 뒤치다꺼리야말로 미네트의 몫이었다.

올케의 시녀를 찾기 위해 이블린을 뒤지는 일이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찾아서 말을 전해 주어도 아무런 보람도 감사도 인정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이 마노 카메오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그걸 뻔히 아는데도 미네트의 구두는 자비관 계단을 차근차근 밟았다.

오라비인 세시안은 좀처럼 진심으로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부황은 딸자식들에게는 관대하기 이를 데 없어도 아들에게는 대단히 엄격했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성질머리를 보고 있자면 사내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부려먹으면서도 권력은 주지 않았다. 부자라고 해도 권력은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 그런 살얼음판 같은 자리에 오라비는 이십 년 넘게 앉아있었다. 심지어 요새는 제법 인정을 받기까지 했다. 그는 미네트가 태어나기 전부터 세르였다.

그는 온화한 성격, 신중함, 그리고 결단력으로 주변의 신망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좀처럼 화내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법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사람이 돌아섰을 때의 파장은 무서운 법이다. 미네트는 그 유한 성격의 오라비가 진심으로 어머니에게 화를 쏟아 붓는 것을 그리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똑. 똑. 똑.

미네트는 손수 마담 라 세르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다. 그렇다면 숙직하고 있는 시녀 하나쯤은 두었을 텐데. 아니다. 마담 라 세르가 잠들 때 아무도 옆에 두지 않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미네트는 비뚤어진 미소를 머금고 문을 몇 번 더 두드렸다. 여전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곁방의 문, 즉 시녀의 문을 두드렸다. 그 아가씨의 이름이, 앤 폰 레르헨펠트. 종달새처럼 가냘픈 처녀는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아름답게 치장한 옷을 벗어던지고 어딘가의 정원에서 사내와 몸이라도 섞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미네트는 슬슬 이쯤 했으면 면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는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 이쯤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녀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리젤로트인 척 멍청하게 눈물을 글썽이면서 카메오도 바꿔주었다. 모후를 두고 내려와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사람을 찾아 헤맸다. 게다가 자비관 4층까지 쫓아올라오지 않았는가. 대체 이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야?

기척이 났다. 돌아보자 이름이 기억 안 나는 하녀가 푹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뺨에는 벌건 손자국이 나 있었다. 미네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요?”

“황공하옵니다. 황후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벌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모후께서 머리채라도 잡으신 건지, 곱게 틀어 올렸을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다. 모후는 꿈을 꾼 후유증으로 며칠 째 잠들지 못해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미네트는 다시 한 번 ‘천박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틀림없이 사랑하는 어머니께서는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두셨을 테고, 들어가자마자 세상에 믿을 자식 하나 없다고 눈물을 흘리실 테지. 그리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세운 계획을 장황하게 늘어놓으실 테고.

이제 모른다.

하지만, 일이 잘못 되면 분명 다들 나에게 화를 낼 거야.

내 역할은 항상 그런 거잖아?

다음화는 끊기가 애매해서 짧게 잘라 올려요.
날짜를 착각해서 늦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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