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라마지 않는 (31)
해안순시선 증강에 이어 릴레벨트 해에 코시카 군함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릴레벨트 해는 반쯤 코시카의 영해나 다름없었고, 항상 군함이 순찰을 다녔으나 지금처럼 무지막지한 병력이 오가지는 않았다.
군함들이 바다를 수색했지만 용은커녕 그 비늘 한 점 찾을 수 없었다. 용이 나타났다고 보고한 다섯 척 군함의 선장들은 점차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소리 높여 강변했다. 다른 배의 선장들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이 릴레벨트 해를 봉쇄하기 위한 여제의 정치적 술수라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전쟁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다. 해군 장교들은 전운이 드리운 것을 느꼈다. 군함에게 호위 받는 상선들이 지나갈 때마다, 무력 충돌이 일어날 지 예민하게 가늠했다. 각국의 상선들은 모두 작은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단체로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주 민감한 시기였다. 시비라도 붙었다가는 그대로 전쟁으로 번질 기미가 엿보였다.
코시카의 해군 장성들은 하나같은 목소리로 여제에게 봉쇄를 풀 것을 간언했다. 겨울은 전쟁을 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특히 북부의 겨울은 혹독하다. 황도인 옛 노브고르드 땅 주변은 항구도시로 내륙에 비해서는 기온이 온난한 편이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비교할 때의 이야기였다.
날씨가 추우면 금속으로 된 총열이 냉각되고, 방아쇠를 당겼을 때 안에서 총열이 폭발한다. 총 뿐만 아니라 대포도 위험했다. 겨울에는 전쟁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여제는 묵살했다. 겨울에 전쟁을 할 수 없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면 되지 않느냐는 암묵적인 의사 표시였다. 해군성 장관이 여제의 뜻을 전했다. 해군 장교들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한두 달이 흐르고, 로렌으로 가고 있던 코시카 대사의 배가 습격당했다. 릴레벨트 해를 나가는 길목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으나 여제는 해군의 무능을 철저하게 질책했다. 장성 한 명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했다.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졌다.
해군의 우울한 분위기와 달리 황도는 들떴다. 코시카 황궁에 화려한 연회가 몇 날 며칠 동안 벌어졌다. 귀족들이 모였다. 해군 육군 할 것 없이 불만이 어마어마하게 누적되고 있는 군부와 달리, 작위를 계승한 귀족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제에게 호의적인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반 3세와 파블 1세, 쫓겨난 옐레나 여대공까지 키옌 황실의 피를 이은 푸른 피의 고귀한 황족들은 귀족들을 공평하게 하찮게 생각했다. 그들의 고상한 혈통에 비해 비통치가문의 귀족들은 비천할 뿐이었으니.
그러나 로렌의 보르디 출신인 옐레나 여제는 귀족들을 아주 나긋나긋하게 대했다. 세금을 적극적으로 깎아주는 등 아주 후하게 굴었고, 살살 구슬리기도 했다. 특히 여제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에 도가 텄다. 모든 정치가 감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옐레나 여제는 그 딸인 옐레나 여대공처럼 정치나 국제정세 파악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사람에게 호감과 신뢰를 사는 방법을 알았고, 사람을 고르는 눈도 적당히 뛰어났다.
적지 않은 세습 귀족들이 자신들을 대우해주는 여제에게 차츰차츰 호감을 품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대부분의 귀족들은 여전히 여제를 못마땅해 했으나, 그들은 미하일 대공이 장성하면 황위를 물려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므로 대체로 침묵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교회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직자는 원래 가장 친황제적인 자리이다. 정교회의 수장은 교황이 아닌 코시카 황제이며, 성직자 자리도 황제가 정하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코시카 귀족은 크게 양분되었다. 군대에 입대한 차남 이하 귀족들과 웨데나, 피아스트와 통혼한 귀족들, 그 근처에 영지나 이익관계가 얽혀있는 자들, 여제가 로렌에 넘긴 이권에 피해본 자들은 여제를 증오하고 적대시했다. 그리고 막 작위를 계승해 물정을 모르는 젊은 귀족들과 삼남 이하의 성직자들은 여제를 지지했다.
여제를 적대시하는 계층은 여제를 지지하는 계층을 ‘무얼 모르는 애들’, 정도로 정의하여 깔아뭉갰고, 반대로 지지계층은 적대층을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이’라고 칭하며 조롱했다.
많은 귀족들이 중립을 지키는 듯이 보였으나, 양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 날의 연회에서, 여제는 어린 미하일 대공을 안고 나와 시선을 끌었다. 가장 무도회였다. 여제는 파란 옷을 입은 성모로,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은 붉은 옷의 아기 구원자로 꾸몄다. 미모가 뛰어난 모자는 연회장에서 단번에 시선을 잡아끌었다. 둘은 차라리 할머니와 손자만큼의 나이 차이가 났으나 외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사랑하는 아들.”
여제는 황홀하다는 듯이 웃으며 어린 대공의 뺨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여제를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이 소리 높여 어린 대공의 건강을 축원했다. 미하일 파블로비치는 아주 잘생긴 어린 아이였다. 눈은 크고 코는 오뚝했다. 벌써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손발이 커서 다들 키가 커지리라고 이야기했다.
마침 여제 등극에 큰 공을 세운 스미르노프 공작이 미하일 대공을 안아보는 영광을 누리고 있던 참이었다.
“폐하.”
연회장을 호위하고 있는 것은 코시카 근위대였다. 비록 제3 연대가 학살당했으나, 제1 연대와 제2 연대는 아직 남아있었다. 근무를 서고 있는 근위대 장교가 여제에게 와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인가?”
자못 상냥한 목소리였다.
“대원수께서 오셨습니다.”
옐레나 여제는 아직 대원수를 임명하지 않았으나, 군이 말하는 ‘대원수’란 단 한 명뿐이었다. 은퇴했지만. 여제는 장교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웃었다. 입가의 주름살마저 우아했다. 꽃대궁처럼 가늘고 꼿꼿한 목을 장식한 베일이 사그락거렸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무늬마다 다이아몬드를 박아 아주 사치스러운 베일이었다.
“어머나. 칩거하고 있다던 공이 웬일일까.”
“감히 초대를 몇 번이나 거절하였으니 이제 올 때도 되지 않았소.”
“그래봐야 군인인 것을요. 어찌 폐하의 명에 거절하겠어요. 신하로서 군주의 명에 충성해야 마땅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초대를 받지 않으셨는데. 이런 자리에 납시는 것도 불경 아닌가요?”
“하긴, 검술 스승이 아니셨던가요. 여대공 전하의.”
검술을 가르친 대상은 옐레나 여대공, 이반 3세가 지목한 전 체사레브나, 그리고 옐레나 여제의 하나 뿐인 딸이었다. 여제는 딸을 대가로 여제의 위에 올랐다.
여제를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근위대 장교의 콧수염이 꿈틀거렸다.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대원수는 그야말로 코시카 군의 전설이자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마음이 충분히 불편해질 때를 기다려, 여제가 손짓했다.
“들라고 이르게.”
여제의 뒤를 지키고 있던 로렌 중앙 기사단 푸른 장미 연대 장교 두 명이 검 손잡이에 손을 댔다. 그들은 물론 로렌 장교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코시카 육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으나 녹빛 눈, 상대적으로 작은 키, 어딘지 느낌이 다른 이목구비는 명확히 다른 인종임을 나타냈다. 장교의 눈에 환멸이 일었다.
“예, 폐하.”
“신, 기다리기 힘들어 먼저 왔나이다.”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산 같은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예가체프는 코시카의 것이고, 코시카는 키옌의 것입니다.”
가문의 주인이 황실에 신의를 재확인하는 맹세였다. 여제는 웃으며 ‘일어나라, 짐의 신의는 예가체프의 것이니’라는 상투적인 말을 읊으려 했다. 그러나 예가체프 공이 빨랐다. 대원수는 몸을 반쯤 일으켜 여제가 아니라 어린 미하일 대공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여제는 ‘키예나’가 아니라 로렌의 ‘보르디’다. 예가체프 공은 그 점을 명확히 찌른 것이다. 장군은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예가체프의 드미트리가 폐하를 알현합니다.”
남쪽 로렌 출신임을 드러내는 여제의 진한 녹색 눈이 이채를 띠었다. 여제는 불쾌감을 전혀 표출하지 않고 완전히 갈무리했다.
“어서 와요, 공.”
남쪽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공대였다. 황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으나, 이에 만족감을 채운 귀족들이 많았다. 키옌 가문의 일원들은 아무리 ‘전하’로 불릴 수 있는 통치가문의 일원이라 한들 가신에게 공대를 써주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고상하고 고귀한 피였으니.
“연회를 즐기러 온 것이겠지요? 그런데 어쩌지요? 복장이 자리에 맞지 않군요.”
단정하고 예의바른 말투와 달리 내용은 축객령이었다.
“그러니 즐기고 싶다면 옷을 갈아입고 오지 않겠어요? 연회는 기니 얼마든지 기다려드릴 수 있답니다.”
예가체프는 얼굴을 붉혀 흥분하거나 물러나는 대신 여제의 주변에 있는 귀족들을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그는 예가체프 공가의 주인으로, 황가와도 통혼할 수 있는 통치 가문의 수장이었다. 전하(HSH)라고 불릴 수 있는 그의 시선에 대부분의 귀족들이 눈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숙였다.
“이 신성한 홀이 요정의 숲이 된 줄은 미처 몰랐나이다. 폐하께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이를 관대하게 보아 넘기소서.”
사슴뿔을 머리에 달고 정령 행세를 하고 있던 처녀 하나가 노골적인 조롱에 얼굴을 찌푸렸다. 여제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오십 대라고는 믿을 수 없이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베일 아래로 꿀 같은 금발이 반짝였다. 그녀는 동명의 딸과 달리 자신의 미모를 대단히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알았다.
관에 은줄로 매달아 이마에 늘어뜨린 붉은 산호가 선명했다. 같은 색의 연지를 바른 입술이 우아하게 벌어지며 웃음을 흘렸다.
“공, 예가체프, 친애하는 ‘짐의’ 가신.”
분명 불쾌할 텐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회를 망칠 셈인가요?”
“다만 신은 폐하께 간언할 말씀이 있을 뿐이오며, 그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씀을 올리고 나면 이 정령들의 숲에서 물러나 몸을 숙이겠나이다.”
“좋아요.”
옐레나 여제는 화사하게 웃으며 주변을 일별(一瞥)하고는, 베일을 정리하여 뒤돌아섰다. 로렌 중앙 기사단 장교들이 여제와 예가체프를 따랐다.
홀의 휴게실에 들어선 여제는 예가체프에게 앉으라 손짓했다. 그는 앉지 않았다. 대신 무심한 눈으로 여제의 뒤에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호위를 물려주십시오.”
“나가요.”
로렌 장교가 뭐라고 항의를 하려고 하는 순간 여제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나가요. 문은 조금 열어두고요.”
부드러운 위엄에, 장교는 그대로 따랐다.
“그래요, 공. 지금 반드시 해야 할 말이 무엇일까요?”
“폐하. 신의 충정을 기억하신다는 전제하에 아뢰겠습니다.”
“빨리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러지 않는다면 짐이 공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이 퍼질지도 모르니까요. 공의 정숙한 아내는 매우 그 소문을 불쾌해하겠지요?”
자못 다정한 목소리였으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일부러 이렇게 적대적으로 구는 것이다. 예가체프가 흥분하여 무례하게 군다면 기쁘게 웃으며 군을 자근자근 밟아놓을 작정이었다. 예가체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허면 본론만 아뢰겠습니다. 폐주의 자매들을 사살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렇다면요?”
여제는 부정하지 않았다. 둘 모두 충분히 제반 사항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여제가 웨데나의 선전포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군부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웨데나와의 전쟁에서 여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도 명명백백했다.
“재고(再考)해주십시오.”
“짐이 왜 그래야 하는지 설득해보세요, 예가체프 공.”
“그 분들은 키예나십니다.”
“맞아요. 그리고 짐은 보르디지요.”
보르디의 엘리엔 소피 아델라이드, 툴루즈의 아가씨. 혹은 옐레나 키릴로브나 보르디.
통치가문의 딸들은 결혼해도 성씨가 바뀌지 않는다. 여제의 몸에는 키예나의 푸른 피가 흐르지 않는다. 그가 가르치던 어린 여대공과는 달리.
-짐이 믿을 자는 너 뿐이다.
모시던 주군의 유언이 은둔하려 하던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옐레나 여대공과 미하일 대공은 여제가 데리고 있는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이반 3세에게 충성하는 그는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칩거하는 길을 선택했다.
공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감히 표트르 대제의 혈통을 신하의 손으로 끊을 수 없으니,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이 여제는 표트르 대제의 후손인 남편, 파블 1세를 죽인 여자였다.
“공, 잊어버리고 있나본데, 짐은 비록 보르디지만 짐의 아들은 키옌이랍니다. 이 일은 키옌의 푸른 피를 한층 더 짙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한 일이에요.”
예가체프는 여제를 바라보았다. 성숙한 미소가 감돌았다.
“짐의 아들이 장성했을 때, 감히 즉위를 위협할지도 모를 불경한 세력은 마땅히 이 어미가 치워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모두 핑계라고 일갈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반 대공이 죽고, 알렉산드르 대공이 도망치고, 옐레나 여대공이 계승권을 포기한 지금,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은 이반 3세의 유일한 친손주였다.
여제는 아주 훌륭한 명분을 예가체프의 목에 들이댔다.
“공. 공의 충성을 어찌 모르겠어요. 다만 짐은 아들을 걱정하는 어미로서 행동하는 것뿐이랍니다. 공에게도 자식이 있으니 이 심정을 이해하시겠지요?”
-소뿔을 어떻게 꺾어야 염증이 나질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샤마노프, 대공 전하께서는 아직 어리시네.
흰 손이 예가체프의 손을 잡았다.
“아시겠지요?”
도와줘요.
도와줄 수 없다면 가만히 있어요.
가을 낙엽이 채 다 떨어지기도 전에 웨데나가 코시카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코시카는 승리했다. 비록 예비비와 군량, 화약을 상당부분 소모하는 승리였으나 어쨌거나 승리였다. 황도는 축제로 달아올랐다. 승리의 영광은 모두 미하일 대공을 안은 여제의 발밑에 바쳐졌다.
여제는 탑에 갇힌 폐주의 자매들 중 한 명을 은밀히 사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 명만 죽이라 했는데 둘 다 죽었다. 여제는 그녀들을 화려하게 장례 치러 주었다. 그리고 웨데나로 그녀들의 시신을 보냈다.
웨데나의 아스트리드 공주가 낳은 폐주의 누나들은 코시카에서 태어나 자라 웨데나 땅은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아무도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늙은 황제의 유언을 받은 장군은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채로 황도에서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봄.
어린 미하일 대공이 아장아장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여름.
군부 세력이 반란의 모의를 뒤집어쓰거나, 정말 반란을 하여 조각조각 파탄 나는 것을 보았다. 피아스트를 완전히 짓밟은 뒤 마르카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보았다.
가을.
추수를 했다. 국고가 제법 찼다. 하지만 여제는 새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사라질 돈이었다.
그리고 다시 봄.
피아스트에서 오랜 친우의 부고가 들려왔다. 점령지를 시찰하다 폭도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했다. 담배를 피워 추모했다.
봄이 가고, 초여름의 햇살이 찾아왔다. 햇살을 피하려 들어선 나무 그늘의 얼룩 같은 그림자를 얼굴에 묻힌 채, 코시카의 전 대원수는 더 이상 선택을 미루고 침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이 로렌으로 떠난 지 두 해가 지난 여름,
미하일 파블로비치 키옌 대공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