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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송이


외전. 주종 (3)


 “카나예바입니다, 여대공 전하.”

“일어나라, 제냐.”

‘여대공 전하’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눈이 게슴츠레했다. 앉아있다가 그대로 잠들었는지 낮에 알현한 대로 여대공의 정복을 입었는데, 붉은 어깨띠와 훈장까지 그대로였다.

“지금 몇 시지?”

“열 시입니다.”

십 년 가까운 세월을 황도에서 보내면서, 둘의 태도는 완연히 달라졌다. 아롈은 명령에 익숙해졌고 예브게니아는 공손해지는 데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누가 봐도 주인과 시녀였다.

“그래…….”

아롈은 미간을 문지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잠이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 주무시겠습니까? 치장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잘 잠을 다 자고 언제 일을 하겠느냐.”

그 말은 황제 폐하, 이반 3세의 말이었다. 제냐는 아롈을 수행하면서 그녀가 조부에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들을 전부 목격해왔다.

“알겠습니다. 식사라도 하세요.”

예브게니아는 아롈의 앞에 들고 온 쟁반을 내려놓았다. 진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를 맡은 아롈은 역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치워.”

“전하,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드셨는데요.”

“그건 내가 더 잘 알아. 치워.”

“그러다 쓰러지시면 제가 대공비 전하께 매를 맞습니다.”

분명히 엄살이었다. 이제는 알았다. 옐레나 대공비는 딸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냉대했다. 어릴 적 예브게니아가 벌을 받은 것은 우연찮게 그녀의 앞에서 건방지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예브게니아는 거의 항상 아롈과 붙어 다녔다. 아롈은 알렉산드르가 도망친 이후 대공비의 방 주변을 얼쩡거렸다. 대공비는 단 한 번도 아롈을 만나주지 않았다.

아롈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양이처럼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으로 예브게니아를 잠시 노려보더니, 결국 포크를 들었다.

이런 면 때문에 예브게니아는 시녀들에게 자주 부탁을 받았다. 시녀들은 예브게니아가 아롈에게 편애를 받는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 내 탓이야.

편애의 기반은 죄책감이었다.

아롈은 힘겹게 음식을 씹었다. 그녀는 아닌 척하면서도 편식이 심했고 입도 짧았다. 남들이 보고 있는 정찬 때에는 얕보이기 싫다며 아무 것이나 다 먹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음식을 가렸고, 그나마도 많이 먹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롈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구역질을 했다.

“욱.”

예브게니아는 달려가 요강을 가져다주고는 뒤돌아섰다. 방 안에 시큼한 악취가 퍼졌다. 예브게니아는 방 한 구석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사모바르에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가 찬 물을 섞어 온도를 맞추고, 수건을 준비하여 주인에게 대령했다.

아롈은 손을 닦고는 물을 마셨다. 눈물이 맺혀있었다.

“대체 저녁에 송어를 내는 건 무슨 생각인지.”

“생선을 좋아하시잖아요.”

황도는 항구 도시였으므로 식탁에 생선이 자주 올라왔다. 아롈은 편식이 심했고 식사를 자주 건너뛰었지만 대체로 생선 요리는 남기지 않고 비우는 편이었다.

“송어 껍질이 덜 익어서 바삭하지가 않아.”

“오믈렛이라도 가져오라고 시킬까요?”

“됐으니 손이나 주물러라.”

예브게니아는 아롈의 손을 잡았다. 얼음에 묻어둔 듯 차가웠다. 바닥에 무릎을 꿇자 아랫배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무시했다. 손가락 사이를 주무르고 있는데 아롈의 눈이 사르륵 감겼다. 천천히 손을 팔걸이에 걸쳐놓았다. 용케도 깨지 않았다.

예브게니아는 주인의 잠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섯 살의 기억은 토막토막 단편적이고 흐릿하기 마련이었다. 예브게니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잘 기억하지 못했다. 끌어안아주던 품과 다정한 입맞춤은 기억해도 얼굴만큼은 누가 붓칠이라도 해놓은 듯 뿌옇기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끊기고 부서지고 금간 과거 중에도 예브게니아가 생생한 꿈처럼 기억하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다 내 탓이야.

검게 탄 어머니와, 얻어맞아 부어오르던 뺨과, 마차에서 조용히 읊조리듯 울리던 음성.

그녀는 이제 열네 살이었다. 어느 정도 사리판단은 할 나이였으며, 황궁에서 ‘여대공’의 지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아롈이 예브게니아에게 ‘베푼’ 관용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도 알았다.

아롈은 황제의 손녀인 동시에 대공의 딸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물건처럼 키예프에 보내질 때에도 계승 서열이 무려 4위였으며, 지금은 두 번째였다.

예브게니아는 그녀의 어머니가 아롈을 몰래 학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몹시 건방졌었다는 사실만큼은 잿더미 속의 은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아롈의 몸에 폭행을 가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죽을 죄였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교수형을 당해 마땅했다. 밧줄이 목에 걸리는 기분이 들어, 그녀는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짧은 문장으로 된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롈이 눈을 떴다. 꼭 잠든 적 없는 것처럼 정돈된 얼굴이었다. 자폐아처럼 양달에 앉아있는 것밖에 모르던 소녀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예브게니아는 가슴께에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에 펜던트 대신 매달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 분 지났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아롈은 언제부터인가 시간에 안달복달하기 시작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가져다 밤을 새며 시작하던 그 날부터였다. 잠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검술이나 승마 같은 교양 수업 역시 줄이거나 그만 두었다.

남는 시간을 전부 황제가 시키는 행정 일에 쏟았다. 도서관을 오가고, 페란토 수업을 듣고, 문서의 더미에 쌓여 지냈다.

“그래, 그럼 이만 나가 보거라.”

“차라도 타서 드릴까요?”

“나쁘지 않겠지.”

예브게니아는 종을 울려 하녀를 불렀다. 아롈은 단 것을 좋아했다. 키예프에서는 구할 수도 없었던 귀한 설탕을 듬뿍 친 잼과 파이를 가져오라고 시키고, 사모바르에서 물을 따라 진하게 졸인 차를 희석했다.

아롈은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예브게니아의 움직임만을 바라보았다. 예브게니아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일처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부러 동작을 느리게 했다. 머리라도 조금 쉴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것도 잠시, 하녀가 간식을 가져왔다. 예브게니아는 무릎을 꿇어 인사 올리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설탕 조각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이반 3세가 승하하고 파블 대공이 파블 1세로서 즉위했다. 그리고 아롈은 선황제의 유언에 따라 ​체​사​레​브​나​(​코​시​카​의​ 여성인 제1계승권자, 혹은 제1계승권자의 비)가 되었다.

시녀들은 뛸 듯이 좋아했다. 시녀들의 지위는 대체로 주인의 지위를 따르므로 그녀들의 지위도 함께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예브게니아만은 덤덤했다. 그래봐야 백작녀다. 같은 시녀인 모스크바 공녀처럼 통치가문의 딸이 아닌 이상 시녀로서 경력을 쌓아도 시집갈 수 있는 가문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체사레브나가 되면서 아롈의 일정은 한층 가혹해졌다. 이제 과제나 숙제는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대부분의 일을 직접 결정해야 했다. 그 외에 후계자로서 참석해야하는 어마어마한 일정들이 잡혔다. 아롈은 점차 바늘 끝처럼 날이 섰다.

예브게니아는 예민한 주인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취침을 하지 않으면 협박을 섞어 잔소리를 하고, 매 철마다 침구를 최대한 좋은 것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의 전부였다.

공기 같은 당연한 편안함을 제공하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떤 당위을 가지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속죄?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 상실을 겪은 동질감? 그것도 아니면 동정?

곧 시집갈 나이의 열다섯 소녀는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는 대신 이리저리 뭉쳐서 합리화하는 길을 택했다.

주인을 모시는 건 시녀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중은 아롈이 체사레브나 자리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때에도 한결 같았다. 예브게니아와 달리 아롈은 어마어마하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낮에는 공식 일정을 수행하고, 밤에는 서류 처리를 하는 일정에 사람을 만나서 뭔가를 의논하는 절차가 추가되었다. 아롈은 거의 음식을 먹지 못했고 잠을 더 줄였고, 간혹 코피를 쏟았다.

“체사레브나. 지금 주무시지 않으면 쓰러지실 거예요.”

실핏줄이 터져 흰자가 붉었다. 아롈은 예브게니아를 흘끗 노려보더니 다시 보던 종이로 눈을 돌렸다.

“나가, 제냐.”

“전하께서 쓰러지시면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 얼마나 심려하시겠어요.”

핏기 없는 입술에 진한 비웃음이 어렸다.

“좋아하시겠지.”

무심결에 튀어나온 진심이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흘렀다. 후계자가 황제와 황후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잠시 후 아롈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숨을 골랐다.

“나가.”

“체사레브나.”

아롈은 목소리를 높여 소리 지르려다가, 대상이 예브게니아인 것을 자각한 듯 어깨를 떨었다.

“나가라. 더 건방지게 구는 건 용서치 않겠다.”

예브게니아는 정치에 대해서는 몰랐다. 애초에 그녀는 특출하게 어리석지도 않았지만 명석하지도 않은 평범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그리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밝히지 않아요?

파란 하늘에 희게 수놓아지던 글씨가 꿈이었을까?

-다시는 쓰지 않을 거야.

그 목소리가 예브게니아의 꿈이었을까? 사실 키예프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성이 불에 타고 어머니가 죽는 바람에 자신이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예브게니아는 아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예브게니아를 살리고 옆에 두는지. 그렇게 건방졌던 자신을 수도 없이 용서했는지. 키예프에서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다시는 하늘에 글씨를 쓰지 않는지.

“전하.”

“제냐.”

병에 성대를 집어넣고 피로로 절인 듯한 목소리였다. 예브게니아는 움찔했다.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만 해.”

어깨에 힘이 빠진 말투였다. 위압감이라곤 없었다. 그저 지쳐서 어쩔 줄 모르는 또래 여자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예브게니아는 문득 삼개월 어린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신 무릎을 꿇었다.

“요기할 거리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전하.”

가져오지 말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부엌으로 내려가 계란 요리를 가져왔다. 방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아롈은 결국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예브게니아는 차마 소리가 날까 두려워 접시를 내려놓지 못하고 요리를 든 채 서 있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질문도, 관계도.

그러나 언제나 대부분의 어린 소녀들이 그렇듯, 예브게니아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의 양을 과대평가했다. 아니, 자신에게 언젠가 끝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그저 주인의 시중을 들며 세월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외조모가 찾아왔다. 카나예바 가문의 전 백작 부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어머니인 페드로바 백작 부인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외할머니?”

“혼담이 들어왔단다, 내 사랑하는 손녀.”

“혼담이요?”

할머니는 다정스레 웃었다.

“너도 벌써 열다섯 살이잖니. 괜찮은 혼처가 들어왔단다.”

코시카는 조혼 풍습이 있었다. 황실에서 꾸준히 노력한 끝에 귀족 가에서는 열 살이나 열두 살에 결혼하는 일은 사라졌으나 열여섯에서 열여덟 살이야말로 여성의 혼인 적령기였다.

아직 약혼자조차 없는 예브게니아나 아롈은 늦은 편이었다. 같이 일하는 스미르노프 백작가의 조그마한 막내, 리디야조차 약혼자가 있는 판이니.

할머니는 공작 가문-비록 통치가문은 아니지만-에서 들어온 혼처를 들이밀었다. 남자가 열 살이나 많은 것만 제외한다면 괜찮은 자리였다. 아니, 그 조건을 감안해도 좋은 자리였다. 선대의 인연으로 들어온 혼처라고 했다.

“이제 고된 일은 그만 두어도 괜찮잖니?”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할머니.”

예브게니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체화된 변명 몇 가지를 덧붙였다.

“정말 괜찮아요. 체사레브나께서도 잘해주시고요.”

“잘해주시는 것 같긴 하다만…….”

페드로바 부인은 예브게니아가 입은 고급스러운 옷가지며 보석들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예브게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를 닮은 곱슬머리가 흔들렸다.

“전 당분간 일을 더 하고 싶어요. 그리고 공작 가문 장자의 부인 자리는 제게 과해요.”

“뭐가 과하다고! 우리 손녀면 그쪽에서도 고개 숙여 환영할 거야. 그 쪽도 전하 소리 듣는 가문은 아니란다.”

“그런 가문이면 감히 제게 혼담이 들어오지도 않았을 걸요.”

그녀는 간신히 ‘정부 자리라면 몰라도요’라는 빈정거림을 삼켰다.

“체사레브나께서 나중에 제 지참금 정도는 넉넉하게 마련해주실 거라고 약속하셨어요. 이번 자리가 좋은 혼처의 끝은 아닐 거예요.”

“사랑스러운 제냐, 혹여 네가 집안 사정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아니에요.”

“얼마든지 외가에서 도울 수 있단다. 알잖니? 요즘 카나예프 가문이 그리 넉넉잖다는 소리는 들었단다. 그래. 죽은 형의 딸 챙기는 마음이 그렇게 흔흔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우리 하나 뿐인 손녀딸 지참금 정도는 이 할미가 기쁘게…….”

“아니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페드로바 부인의 권유는 굉장히 끈질기고도 길게 이어졌다. 예브게니아는 완강히 거절하면서도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그냥 시녀일을 그만 두면 되는데. 이렇게 버텨봐야 곧 시집가야 할 것이다. 여자는 마땅히 결혼을 해야 한다. 길면 이 년, 아주 길면 사 년. 스무 살을 넘기기 전에 결혼할 테지.

그럼 지금 들어온 자리가 좋은 게 맞는데 왜 자신은 이렇게 거절하고 있는 걸까?

얼떨떨해진 채로 예브게니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거절해주세요.”

 

“체사레브나, 과자를 더 가져올까요?”

“네가 먹고 싶은 게 아니고?”

스미르노프 가문의 리디야가 지적에 멋쩍은 웃음을 머금었다.

“먹고 싶은 대로 가져다 먹으려무나. 누가 말리겠느냐.”

비딱한 말투였지만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아롈은 나이 어린 리디야에게는 관대한 편이었다.

간만에 아롈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 시녀는 데리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좋은 일인가보다 했다. 입맛이 도는지 간만에 좋아하는 생선 요리도 전부 비웠다.

그래서 몇 달 만에 시녀들의 다과회 비슷한 것이 열렸다. 아롈은 언제나 그렇듯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저 멀리 떨어져 책을 읽었고, 시녀들은 차를 홀짝이며 담소를 나누었다.

예브게니아와 같이 방을 쓰는 타티아나는 수틀과 바늘을 쥐고 있었고, 모스크바 공녀는 아롈을 따라 책을 들고 있었으나 거의 넘겨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시녀 넷은 모두 찻잔만을 들었다.

의미 없는 잡담들이 허공을 오갔다. 예브게니아는 또래 소녀 집단에서 다소 겉도는 면이 있었지만 분위기에 힘입어 이야기에 조금 끼어들 수 있었다.

그리운 분위기였다. 예브게니아는 타티아나의 농담에 웃다가, 문득 혼인을 핑계로 일을 그만두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살얼음을 걷는 듯 예민하고 피로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안온한 공기만이 남았다.

다 잘 될 거야.

정말로.

슬슬 자리를 파하려고 할 때 쯤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성격이 불 같은 코발리예프 가문의 율리야가 일어났다. 단단히 주의를 주겠다고 별렀다.

문을 열었다.

붉은 피를 뿜었다.

애매하지만 주종은 여기서 끝입니다. 제가 생각이 덜 된 상태에서 외전을 전개하는 바람에 후회가 많이 남은 외전이었네요. 이 말 너무 많이 했지만 나중에 고치겠습니다ㅠㅠ

원래 다음 화는 모녀를 쓸까 했는데 그냥 바로 연애 외전 쪽으로 넘어가야겠어요. 

제가 연말이라 모임이 많아서ㅜㅜ 늦었네요. 다음화는 주말 내로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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