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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린

俺、りん


Translator | 김성래

투고 | V노블






1. 프롤로그
2. 린
3. 만남
4. 마법의 포니테일
5. Baseball Queen
작가 후기
역자 후기



3. 린 (2)


학교를 뛰쳐나오긴 했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곳은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통학로……. 다른 학생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물론 가즈히로가 다니는 죠난 고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은 한 사람도 없다. 무언가 악몽을 꾸는 거라면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다…… 는 생각도 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꿈은 아닌 듯했다.

어디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른 채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낯익은 편의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즈히로의 집 근처에도 있는 전국 체인 편의점의 간판이었다. 그 앞을 지나가던 가즈히로는 편의점 유리벽에 소녀의 전신이 비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

황급히 유리벽 앞으로 달려가서 몸 이곳저곳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본래 자신의 몸이 아니라는 정도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역시 충격의 정도가 다르다.

유리벽을 들여다보며 뺨을 만져 본다. 이 보드라운 살갗은 분명 자신의 피부에서 본래 느껴지던 감촉이 아니다. 유리벽에 비치는 소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뺨을 만지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가즈히로와 조금도 닮지 않은 여자아이의 얼굴. 게다가 객관적으로 봐도 부정할 수 없는 미인.

예쁘게 쌍꺼풀진 또렷한 눈매. 오뚝한 콧날. 분홍빛이 살짝 감도는 도톰한 입술. 그리고 부드러워 보이는 하얀 살결.

입을 움직이자 저편의 얼굴도 흉내를 내겠다는 듯이 표정을 바꾼다. 자신의 얼굴이 아닌 낯선 이목구비가 거울 속에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감각은 가즈히로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유난히 하얗고, 묘하게 조그맣고, 이상하리만큼 날씬한 팔다리. 귀여운 노랑 스카프가 가슴께에 매여 있는 연지색 세일러복. 그리고 그 아래에서 옷자락을 밀어 올리고 있는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 가즈히로는 알 것 같았다. ‘그것’이 ‘남자’인 자신의 가슴에 있을 리가 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가즈히로는 그 답을 확인하기 위해 흠칫흠칫 ‘그것’에 손을 얹어 보았다.

‘진짜…… 잖아!’

살짝 손을 댔을 뿐인데도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전해진다.

이쯤 되면 가즈히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신체가 여자아이의 몸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마도…… 지금 이곳에는 ‘세노에 가즈히로의 정신’만이 있는 상태라는 사실도.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즈히로는 알지 못한다.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몸에 빙의한 상태이건만 그렇게 된 원인조차 아직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웅크리고 앉아서 머리의 격통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 머리에 뭔가 딱딱한 걸 맞지 않았나……?’

정확히 러닝을 하려고 달려나가던 때였다. 하지만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확실치 않다.

그렇게 근심에 휩싸여 있는데 편의점 바깥으로 나이 지긋한 여성 손님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편의점 안쪽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가슴을 주물럭대는 수상쩍은 여고생으로 비친 걸까. 아주머니는 조금 눈살을 찡그리면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즈히로는 가슴에 가져다 댔던 손을 허둥지둥 떼어 냈다. 옷맵시를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조금 전 아주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한 차례 한숨을 내쉰 가즈히로는 이제부터 어쩌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때 한 가지 ‘이상함’을 느꼈다.



가즈히로의 머릿속에 있는 ‘가즈히로의 것이 아닌’ 기억――.



조금 전의 고등학교는 ‘호메이 고교’. 그리고 이 소녀의 이름은 ‘가야사카 린’.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요령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소녀의 집으로 가는 길 따위가 이미 알던 사실을 되새기듯 머릿속에 떠오른다. 마치 ‘가즈히로의 기억’에 더해서 이 소녀가 본래 지니고 있던 기억―― ‘린의 기억’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서 어떤 궁금증이 있을 때는 머릿속의 ‘린의 기억’을 더듬어서 답을 찾으면 되는 모양이다.

다만 기억을 더듬는 동안에는 머리 일부분이 몹시 아프다. 정확히는 아까 공에 맞은 부분이. 기억을 더듬는 행위를 멈추면 아픔이 가신다. 마치 ‘린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대가 같았다. 여하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은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을 무렵이었다.

닥친 문제가 그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 지금의 안도감을 계기로 ‘린의 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오, 오줌…….’

이제까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욱신거리는 요의를 알아차린 순간에는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어, 어쩌지. 큰일 났다, 도대체, 어떡하면…….’

초조하게 중얼거리면서 안짱걸음으로 꾸물꾸물 어쩔 줄을 몰라 할 만큼 낭패스러운 기분. 고등학생씩이나 돼서 옷에다 실례할 수도 없는 일이고…… 갈수록 태산이잖아.

다행히도 이 상황의 해결책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렇지!”

그 순간 가즈히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다행히 여기는 편의점 앞. 편의점 간판 아래에는 파랗고 빨간 사람 형태로 화장실을 나타내는 기호와 함께 “자유롭게 사용하세요”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가즈히로는 눈 한 번 돌리지 않고 편의점 안에 있는 남녀 겸용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다, 다행이야……!’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 용무를 보면서 가즈히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편의점 안으로 너무나도 기세 좋게 뛰어든 탓에 계산대에 있던 점원을 깜짝 놀라게 해 버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나오는 곳이 달라서 그런지 진짜 희한한 느낌이네…….’

흔히 말하는 남녀 신체 구조상의 차이가 이런 건가? 게다가 왜 그렇게 오줌을 참기가 어려웠던 거지? 남자였을 때도 그랬나?

하지만 그런 감상이야 어쨌든, 뒤따라오는 개운함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 후련한 기분으로 커다랗게 숨을 내쉰 가즈히로는 물을 내리면서 새삼스럽게 지금의 몸을 내려다봤다.

연지색 스커트 아래로 뻗어 내려가는 하얀 다리. 항상 입고 다녔던 바지와 달리 훤히 비어 있는 가랑이.

‘으으, 되게 어색하네…….’

비유하자면 욕실에서 막 나와 허리에 타월 하나만 두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할까. 더구나 안쪽에는 속옷 한 장뿐. 이보다 더 거북할 수가 없다.

학교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생각했었지만, 다시금 절감했다. 세상 여자들은 잘도 이런 스커트를 입고 밖으로 나돌아다니는구나.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이미 남 일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몸에 들이닥친 고난이다.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이러한 이상 사태에서는 ‘교복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그러면…….’

화장실 문을 눈앞에 둔 채 가즈히로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제부터 어쩐다……?’

아무리 무사태평한 사람이라도 지금 상황이 사면초가라는 정도는 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원인조차 모르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니, 잠깐만……!?’

가즈히로는 ‘린의 기억’을 살펴봄으로써 알게 된 사실이 있음을 떠올렸다. 바로 지금 있는 이 지역과 가즈히로가 사는 현이 이웃해 있다는 사실. 전철을 갈아타야 하지만,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 내 몸, ‘세노에 가즈히로의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소녀, ‘가야사카 린’의 신체에는 가즈히로의 정신이 빙의한 상태. 그렇다면 반대로 ‘세노에 가즈히로’의 몸에는 가야사카 린의 정신이 빙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고민은 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그래서 가즈히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뭐, 전화부터 해보자!’

‘가야사카 린’이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면 바로 전화를 걸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무엇하나 없는 모양이고, 그렇다면 대안은 하나뿐.

가즈히로는 성큼성큼 화장실 바깥으로 나가서 그대로 편의점 바깥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향해 달렸다.

‘가야사카 린’의 가방 안에서 교과서나 공책 따위를 밀어젖히고 지갑을 꺼내 10엔 동전을 하나 집어넣는다.

단추를 모두 누르고 나서 수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들려온 음성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 전화번호는 현재 사용되지 않습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신 다음에~.』

기계적인 안내 멘트가 같은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서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은 가즈히로는 무심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어째서…….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직접 가 보면 돼……!’

그리한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겠지.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 반환된 10엔짜리 동전을 다시 지갑에 넣는다. 여고생이 쓴다고 하기엔 다소 밋밋한 모양의 갈색 반지갑. 제일 중요한 지폐는 겨우 천 엔 한 장뿐. 호주머니 사정이 상당히 안 좋은가 보다.

가즈히로가 사는 곳으로 가려면 편도 2천 엔 가까운 교통비가 필요한 데다가 가는 데만 두 시간은 걸린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부족.

‘별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수단……!’

‘가야사카 린’의 수입원은 어머니에게 받는 ‘용돈’이다. 그렇다면 ‘용돈’을 받으러 가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즈히로가 취할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

집에는 ‘가야사카 린’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겠지. 만약 행동에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면 설령 ‘린의 기억’이 있다 해도 단번에 정체가 들통 나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즈히로는 천연덕스럽게 중얼거렸다.

“뭐, 어때. 어떻게든 되겠지.”

매사에 그다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 가즈히로의 특징 중 하나. 대개의 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한마디로 넘겨 버릴 수 있는 특수 스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자칫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결단력은 가즈히로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으리라.

각오를 다지고 시원스러운 표정으로 편의점을 나선다.

[계속]




<온라인 구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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