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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린

俺、りん


역자 | 김성래

투고 | V노블






1. 프롤로그
2. 린
3. 만남
4. 마법의 포니테일
5. Baseball Queen
작가 후기
역자 후기



6. 린 (5)


짹짹…… 짹짹…….

다음 날. 가즈히로는 참새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오렌지색을 띤 얇은 커튼을 통과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방 안을 어렴풋이 비춘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볼 것도 없이, 오늘은 쾌청한 날이 이어지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상쾌한 아침이었다.

가즈히로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눈을 비볐다.

‘……침대?’

아직 흐리멍덩한 가즈히로의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떠오른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가즈히로는 언제나 다다미 위에다 이불을 깔고 잠들기 때문이다.

가즈히로는 평소와 다른 주변의 모습을 둘러봤다.

‘여기…… 어디지?’

어리둥절한 것도 잠깐뿐, 이곳이 ‘린의 방’임을 떠올린 가즈히로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역시 꿈이…… 아니었구나…….’

몹시 성가시게 느껴지는 긴 머리카락, 본래의 자신하고는 조금도 닮지 않은 하얗고 가느다란 팔. 모두 어젯밤 그대로다. 마치 꿈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자명종이 전자음을 울린다. 디지털 시계가 정확히 7시를 표시하고 있다. ‘가야사카 린’은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나는 모양이다.

침대에서 내려온 가즈히로는 커다랗게 한 번 기지개를 켰다. 그리 불편하진 않은 잠자리였다.

오늘 할 일은 이미 정해졌다. 세노에 가즈히로의 신체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 한다. 열차를 타고 먼 길을 나서는 거다. 가즈히로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으려고 혹시 바지가 있나 찾아보려다가 손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그러면 땡땡이치는 걸 코토미 씨한테 들키잖아.’

가즈히로에게는 도저히 학교에 갈 상황이 아니었지만 ‘가야사카 린’의 어머니인 코토미는 그런 사정을 모른다. 지금은 겉보기뿐이라도 ‘평소처럼 학교에 간다’는 식으로 보여 놓을 필요가 있다……. 가즈히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는 수 없이 세일러복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간다. 1층 거실에서는 이미 코토미가 한 손에 핸드백을 들고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코토미는 매일 아침 린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지​각​하​겠​어​~​~​~​~​~​”​라​고​ 소리치면서 출근길에 오른다. 출근 준비를 하느라 이쪽저쪽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코토미의 모습은 아침마다 ​가​야​사​카​가​(​家​)​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풍경이었다.

“어머, 린. 기다렸잖니. 빨리 아침…….”

먹자…… 라고 말하려 했던 코토미의 입이 멈춤과 동시에, 린을 바라보는 표정도 갑자기 얼어붙었다. 명백히 린에게서 ‘이변’을 감지한 어머니의 표정이다. 쏘아보는 듯한 코토미의 시선이 가즈히로에게 인정사정없이 꽂혀 들었다.

“잠깐, 너…….”

기초화장만 마친 코토미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가즈히로에게 다가온다. 조금 전까지 코토미에게서 느껴졌던 태평스러운 분위기는 이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설마…… 드, 들켰나!?’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의 흐름이 갑자기 멈춰 버린 듯 정적에 휩싸인 거실. 가즈히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코토미가 가즈히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다. 가즈히로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뱀과 눈을 마주친 개구리처럼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정면까지 다가와 멈춰 선 코토미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후려치려고……? 그렇게 생각하며 움찔 몸을 움츠린 가즈히로를 코토미의 오른손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지나쳐 간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얘가 정마알. 빗질도 안 하고…….”

‘어!?’

그 말만 남기고 코토미는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종종걸음을 치며 안쪽에 있는 세면실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겨진 가즈히로는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서 멍하니 서 있을 뿐. 코토미는 금방 거실로 돌아왔다. 오른손에는 헤어브러시와 머리빗을 쥐고 있었다.

“자, 뒤로 돌아보렴. 재앱싸게 해 줄게.”

코토미는 당황하는 가즈히로의 양 어깨를 붙잡고 재빨리 뒤쪽으로 돌려세운 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빗질을 시작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헤어브러시와 머리빗으로 정성 들여 빗는다.

“여전히 예쁜 머리카락이야, 린. 엄마 젊을 때랑 똑같아.”

코토미는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며 그리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린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러자 조그만 아이였을 무렵, ‘가야사카 린’의 머리카락을 기쁜 기색으로 빗겨 주는 코토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마도 어릴 적에는 줄곧 이런 식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져 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가즈히로에게도 그리운 감촉이었다.

기분 좋은 감촉에 이끌려 눈을 감는다. 눈꺼풀 안쪽에 떠오르는 광경은 ‘세노에 가즈히로’를 낳아 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엄마……?’

어릴 적, 밤톨 같은 가즈히로의 머리카락을 언제나 머리빗으로 빗겨주셨던 어머니. 무심코 뒤돌아보면 언제나 어머니의 상냥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그저 한결같이 천진난만했던 유치원 시절에도. 개구쟁이였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그날’까지는. 분명히 그곳에.

가즈히로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조차 잊어버리고 잠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인? 얘, 린! 리―인!?”

거실에 코토미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정신을 차린 가즈히로의 눈앞에 사랑하는 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코토미의 얼굴이 보였다.

“얘…… 괜찮니? 머엉하니 있질 않나. 감기 기운 있어?”

“아…… 아, 아냐. 괘, 괜찮아.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빗질도 깜빡하고 별일이다 싶었지, 뭐니.”

그렇게 말하고 코토미는 가즈히로의 양어깨를 가볍게 툭 두드렸다. 아무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도 빗지 않고 거실로 내려온 린이 보통 때와 다르게 보였던 모양이다. 어쩌다 잊어버렸다는 식으로 넘어가 주어서 다행이었다.

“자, 빨리 먹자. 정말로 시간 없어~.”

가야사카 가의 식사 장소는 거실과 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일체형 주방이다. 싱크대도 대면식으로 대단히 가정적인 구조였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가야사카 린’과 코토미가 아침 식사를 먹는다. 오늘도 식탁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평소와 다른 점은 ‘린의 정신’이 ‘세노에 가즈히로’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뿐이다.

두 사람 모두 재빨리 젓가락을 움직였지만 먼저 식사를 마친 쪽은 코토미였다. 가즈히로도 음식을 빨리 먹는 데는 그런대로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역시 ‘린의 몸’으로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조금 늦게 가즈히로가 식사를 마쳤을 때, 영업용 화장을 마친 코토미가 가즈히로의 곁으로 다가왔다. 벌써 핸드백까지 어깨에 메고 준비를 끝낸 모습이었다.

“그럼 엄마는 먼저 일하러 갔다 올게. 린도 빨리 학교 가야 한다?”

“네에.”

가즈히로의 대답을 끝까지 듣고 나서 코토미는 발소리를 울리며 현관을 나섰다. 이어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그 소리가 멀어진다. 떠들썩한 코토미가 떠나고 나니 갑자기 집 안이 무척 넓게 느껴질 만큼 조용해졌다.

“하아, 지치네……. 정신적으로.”

커다랗게 중얼거린 혼잣말 소리가 거실 가득히 울려 퍼진다. 집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으니 말투를 조심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 가즈히로는 의자 등받이에 한껏 몸을 기대며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한시라도 빨리 ‘세노에 가즈히로의 집’으로 가야만 했다.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서.

가즈히로는 집 밖으로 나와 학교가 아닌 역으로 가는 버스에 타기 위해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으으…… 역시 스커트 차림은 익숙해지질 않아…….”

길을 걷는 도중에도 바람이 곧장 불어 들어오는 다리 사이로 의식이 쏠려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연지색 플리츠 스커트가 바람에 날려 팔랑팔랑 춤춘다. 이보다 더 못 미더울 수가 없었다. 위쪽은 위쪽대로 노랑 스카프가 걷는 속도에 맞춰 예쁘게 흔들린다. 마치 여장을 한 기분이었다.

가즈히로는 ‘만약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기라도 한다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다.

‘무슨 벌칙 게임도 아니고.’

그런 심정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버스 정거장이 보였다. 게다가 정거장으로 이제 곧 버스가 진입하려는 참이다. 물론 가즈히로가 타려는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다.

“우왓! 벌써 왔잖아!”

가즈히로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새어 나오는 혼잣말이 유난히 커다랗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다행히도 버스 정거장에선 손님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이 승차하는 동안 달려가면 놓치지 않고 탑승할 수 있을까.

가즈히로는 커다랗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달려 나갔다. 윤기나는 칠흑빛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불안불안한 스커트를 바람에 펄럭이면서.

뒤바뀐 지 이틀째. 길고 긴 하루의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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