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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花輪)


원작 |

투고 | 淸風

- 그 시절의 나는 잊고 있었다.
  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지기 직전과 직후라는 것을.

낙화(落花 : 꽃이 지다)


“나는 내 윗대의 산백합회가 정말 싫었어.”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거리고 있는 차가 놓여져 있었다. 고작 말 한마디를 꺼내고는 목이 탄다는 듯이 찻잔을 들어 입에 댄 츠바키의 눈썹이 조금 휘어졌다.

  “어라, 이 로열 밀크티. 누가 탔어? 맛있네.”
  “스미레코양이.”
  “호오?”
  “네가 반년 간 결석 한 사이에, 학년이 낮은 스미레코양이 산백합회의 차를 거의 탔으니까. 실력이 좋은 게 당연하지.”

  스미레코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으쓱해서 고개를 숙였다. 츠바키는 그 모습에 웃어 보이고는 말을 계속 했다.

  “그래서 2학년 말에, 차기 부학생회장으로 지명 받았어도 기쁘지도 않았지. 이런 모임에 3학년이 되어서도 있어야 한다는게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히나타와 아키하와 함께 있을 수 있었기에 남았어.
  그런데 2학년 말이 되어, 실질적으로 우리가 학생회를 꾸려 나가는 입장이 되었고···. 3학년이 되어서는 신입생 환영회도 준비했지. 당시에는 아무래도 마음의 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삶 자체를 좀 시큰둥하게 살아 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즐거웠어.”

  다시 차를 한 모금 음미한다.

  “응, 즐거웠어. 평범한 학창생활도 탐 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 보통의 학생들은 경험할 수 없는. 그리고 보통의 학생들이 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 파고 들어가는 생활. 게다가- 이런 나라도 동경하며 호기심에 찬 눈동자를 받는 생활. 분명히 보통 사람이라면 바라마지 않는 생활이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틀림없이 최고의 날들.”

  보통이라면 여기서 아키하님이 ‘왜이리 간지럽게 말해’라면서 끼어 들었을 테지만, 모두는 조용했다. 일주일 전의, 어두운 침묵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벽의 성당에 들렀을 때 느낄 수 있던 공기에 가까웠다.

  “그때 생각했어. 이 시간을. 이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을. 이 사랑하는 자들을, 이 사랑스러운 시간을. 영원히 할 수는 없을까.
  ···무리였어.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지. 신도 아닌데.
  그렇게 조소하며 방황했지만, 이곳에서 생각에 잠겨 지내고 있을 때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어.”
  “뭔데?”

  잠시 머뭇거리자 히나타님이 조금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죽을건데 부끄러워도 말 해봐.”
  “와아. 심하다.”

  츠바키는 질렸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럼, 소원대로 엄청나게 부끄러운 소리가 갑니다-.”

  장난기 어린 말투와는 달리,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시간을 나는 영원히 이을 수 없지만. 이 시간을 선물할 수는 있다, 라고.”
  “······.”

  모두는 눈을 감고, 그 말의 의미를 알아내려 했다.
  시간은 짧고도 많았다. 이제 겨우 하루가 남았지만, 아직도 하루 내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방금 말했지만, 난 권위에 가득 찬 선배들과. 허영과 욕심으로 뭉친 산백합회가 정말 싫었어. 아무리 귀족들의 영양이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뭉쳐서는, 고귀하게 사귀고 있지만, 애초에 그 고귀함이란게 도대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 정이 갈 리가 없었지.
  헌법이 생긴 지금도 아버지가 무슨 귀족이었다느니, 재산이 얼마냐느니. 하는 기준으로 신입생을 데려와.
  그래서 산백합회란 이름을, 박살내 버리는 걸로 고교 생활을 끝낼까도 생각 했지만-.”

  츠바키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내 학년의 구성은 내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했어. 거기에, 내 아래 학년으로 이 아이들이라면 괜찮겠다고 점찍어 두었던 세 사람을 당연하다는 듯이 히나타와 아키하는 선택했어.”

  모두의 시선이 사이코와 스즈란을 보았다. 그리고 이곳에 없는 유미코를 떠 올렸다.

  “그 다섯 명 과의 시간은, 너무나 좋았어.
  그리고 해가 바뀌어, 신입생이 오자- 꼬맹이양을 만났어. 히나타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 아이를 내게 내밀었지.”

  스미레코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내 이야기까지 나오다니.

  “그때 어렴풋이 느꼈었어. 그리고 여기 와서 확신했어. 릴리안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나는 계속 살아 갈 수 있다고.”
  “서론이 너무 길어요.”

  스즈란이 야유했다. 하지만 나른하게 느껴지는 야유란,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했다. 그 말에 포근히 담긴 감정에 살짝 미소지을뿐.

  “이런 거야. 난, 이 사람들을 믿기로 했다.”

  츠바키는 한명씩 모두를 흝어 보았다.

  “춤을 추었었지. 그거야. 화륜의 춤-. 한 사람의 꽃에, 한 사람의 나비.
  나비는 꽃을 따라가. 꽃에 반했으니까. 꽃은 나비에게 꿀을 줘.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정말로 산백합회, 마리아님의 마음이라 불리는 그 이름에 걸맞는 모임으로 계속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무서운 의지가 깃들였다. 죽음의 공포란 망치로 철저히 연마된, 그렇기에 강인한 의지.

  “비슷한 사람이 있을지언정, 똑같은 사람이 있을리 없어. 비슷한 사람을 선택한다고 영원히 계속되리란 법도 없어. 우리는 고작 십대의 여자아이고, 가장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차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함께 있는 한 충돌하고 의심하고 싸우지 않을 리가 없어.
  그러니까, 단 한 사람.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더없이 강한 믿음을, 절대적인 애정의 신뢰를, 싸우더라도 틀림없이 다시 서로를 돌아보게 할 운명을 서로의 가슴속에 연결해 둔다면.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은 다시 새로운 사람을 한 사람을 선택해 나간다면.”

  어느새 츠바키는 일어서 있었다.

  “이 사슬은 계속 이어져 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소녀의 망상이네.”
  “츠바키도 여자였구나.”

  두 사람의 3학년이 츠바키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 눈에, 살짝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유를 스미레코는 가슴 시리도록 알 수 있었다-.
  ···츠바키님의 말은, 히나타님과 아키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저 두사람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내가 선택한 사람 만큼이나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세 사람이라면, 그 세 사람이 다시 선택하는 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서로를 계속 사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맞아. 꿈이야. 지극히 소녀다운, 공상.”

  츠바키는 그렇게 말하며 털썩 주저 앉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계를 정복하겠다느니, 수상이 되겠다느니, 100억엔을 모으겠다느니 하는 것보다 더 터무니 없는 말일지도 몰라.
  하지만··· 해보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 이 작은 사람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계속 전해 주고 싶다고.
  그리고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이것 역시 소녀의 망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아이들이라면 가능할거라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단순히 실천하기에 어려운 말은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을 선택해 아끼고. 그 사람에게 다시 한 사람을 아껴 달라는 말을 전한다. 아주 쉬운 일이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사람쯤은 좋아하게 되는 거니까.

  -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절대적 사랑의 맹세라면, 결혼 맹세가 떠오르네.”

  먼저 운을 뗀 것은 히나타님이었다. 부드러운 눈초리 속에 엄격한 빛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은 이혼을 하지.”

  아키하님의 조금 쓸쓸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맞아. 영원한 사랑이 영원히 이어져 탄생한다는, 꿈같은 소리를 바라지는 않아.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인생에 단 3년이라도. 정말 사랑만으로 가득찬, 그런 시간을 선물할 수는 없을까.”
  “릴리안 고등부 학생회, 산백합회에.”
  “그건 아닐거야. 지금은 전대의 간부들이 지명한 후보가 거의 당선이 되지만, 앞으로 시대가 흘러 귀족 제도가 완전히 없어지고 나면 보통의 학교처럼 투표가 되겠지. 내 후배들이 영원히 학생회로 남기를 바라거나 하진 않아. 그저, 산백합회란 모임. 귀족이나 아가씨들의 모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고리로 이루어진 모임이라면 계속 될 수 있지 않을까.”

  츠바키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상이야. 반년간 산장에 틀어박혀서,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어.”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받아 들이겠다’, ‘힘쓰겠다’고 말하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츠바키의 부탁이 어이가 없거나, 거부하려고가 아닌. 정말로 어떻게든 현실로 만들어 주고 싶은, 들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보여 주듯이 사람들은 살짝 미소를 짓고 침묵하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히나타였다.

  “사이코양.”
  “예. 감사합니다.”

  아키하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나는 스즈란양이야?”
  “어머, 저는 아키하님이네요?”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그리고- 츠바키는 한 사람의 시선을 느꼈다.

  “꼬맹이양.”
  “안됩니다.”

  손이, 떨린다. 기쁘지만, 울고 싶어 버릴 정도로 기쁘지만. 이건 안 돼. 이건- 배신이야.

  “이 자리엔 없지만, 츠바키님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지켜봐 준 분이 계시 잖아요. 츠바키님이 이 곳에서 떨어진 곳으로 약속을 잡고 나가신다면, 유미코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다고 제가 선택 될 수는-.”
  “난 그렇게 생각없이 널 선택하지 않았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유미코는, 안 돼.”
  “어째서요? 츠바키님이 사라진후, 그 분이 얼마나 힘들어 하셨는데-,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무너졌겠지.”

  말이 막혔다.
  츠바키는 씁쓸한 미소를 물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나를 좋아했지만, 유미코는 특별해.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하고, 동시에 의지해 버려. 꼬맹이양은 분명히 내가 없어진 후, 앞장서서 움직였겠지. 하지만 유미코는 무너져 버려. 나와는 비슷하지만··· 달라. 그래서 안 돼.”

  똑바로 눈을 마주쳐 온다.

  - 도망갈 수 없어.

  “유미코에겐 너무 힘든 일이 될 거야. 원망을 들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번 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 없어. 비유가 아닌, 일생의 부탁이니까.”
  “제가···.”

  할 수 있을까.
  사이코님과 히나타님, 스즈란님과 아키하님.
  어느 쪽도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준비된 후계자라고, 수긍하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과연 츠바키님의 대리가 될 수 있을까?

  ​“​·​·​·​스​미​레​코​양​.​ 잠깐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사이코가 조심스럽게 끼어 들었다.

  “전, 지금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히나타님처럼 행동 할 수 있을까, 히나타님처럼 모두를 이끌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히나타님은 분명히, 제가 히나타님을 가장 잘 흉내낼 수 있기에 선택한게 아닐 겁니다.”
  “물론이에요.”

  히나타님이 웃으며, 사이코양의 어깨를 살짝 짚었다.

  “사이코양이 지금 그대로, 스스로를 잃지 않고 커 나간다면. 분명 저보다 빛날 것이란 걸 알기에 나는 당신을 선택한 거에요.”

  스미레코는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기대가 느껴진다. 가장 무거운 부담이 어깨를 짓누른다.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느껴진 손길을 처음엔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꼬맹이양. 내가 부탁하고 싶은건 단 하나뿐이야.”
  ​“​·​·​·​무​엇​인​가​요​?​”​
  “릴리안에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 그리고 내년, 어쩌면 내후년-. 분명히 한명쯤은, 나 같이 바보같은 놈이 들어올거야.”

  갑자기, 온몸에 부드러운 충격이 느껴졌다. 자신을 꼭 껴안은 츠바키님의 조금 뜨거운 체온, 귓가에서 울리는 살짝 젖은 목소리.

  “나를 좋아했다면, 그 아이를 좋아해줘. 단지 그것만이라도, 해줄 수 없을까?”

  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원래대로라면, ‘내가 너를 사랑했듯이 그 아이를 사랑해줘.’ 라고 해야 하는데, 내겐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이런 염치없는 부탁이 되어 버렸어. 난 이제 보답할 수도 없는데, 미안해.”

  자신 따위는 없었다.
  그저, 마음이 움직였다.
  스미레코의 팔이 츠바키를 마주 껴안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지만···. 사랑해 보겠습니다.”
  ​“​·​·​·​·​·​·​고​마​워​.​”​

  잠시후 츠바키는 스미레코의 품에서 일어나 식탁 옆의 서랍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적거리더니, 몇 가지의 물건을 꺼내 왔다.
  세 개의 바구니 안에는, 말린 꽃잎이 들어 있었다. 빨강, 노랑, 하양의 세가지 색깔.
  그리고, 세 개의 말린 꽃으로 엮은 화관이 있었다.

  “-원래는, 릴리안에서 대대로 물려 주기에 좋은 성경이나 로자리오를 주려 했는데 이런 산간 벽지에서는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간 신앙에 충실하지도 않았던 내게는 조금 위화감이 느껴졌어. 그래서.”

  세 개의 화관중 하얀 꽃으로 이루어진 것을 집어 들었다.

  “우연히 책에서 읽은게 있어. 로자리오가 무엇인지 알아?”
  “성모송을 외우며 하는 기도, 또는 그 기도를 할때 세는 십자가가 달린 묵주.”
  “정답. 그 어원은-.”

  화관을 들고 츠바키는 스미레코에게 다가왔다.

  ​“​r​o​s​a​r​i​u​m​.​ 장미로 만들어진 화관을 말해. 이걸 알았을때, 어쩐지 운명같았어. 장미를 꽃고 춤을 추며 떠올랐던 생각의 증표로, 장미의 화관. 이 이상 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어.”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두렵도록 기뻤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츠바키님의 눈이 틀린 것은 아닐까.

  - 하지만, 이 마음을 다해 보답하고 싶다.

  “나의 단 하나뿐인 소중한 동생이 되어 주겠어?”
  “-예. 기쁘게.”

  아키하님과 히나타님도 일어나, 각각 노란색과 붉은색 꽃을 엮어 만든 화관을 들어 스즈란님과 사이코님에게 씌웠다.
  가시를 제거했지만 마른 나뭇잎과 꽃잎이 조금 이마를 쓸어 아팠다. 하지만 그 고통이 더없이 감미로울 정도로, 가슴은 기쁨에 넘치고 있다.

  “-그럼, 춤을 춥시다.”
  “에?”
  “내일이면 가잖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꼭 하고 싶은게 있었는데 말야.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너희와 한 일은 거의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이건 혼자서는 못 하거든.”

  츠바키님이 뒷걸음쳐, 커다란 응접실로 향한다.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그러니, 이 인생 최고의 날을 떠올리게 해 준 춤을-. 화륜을, 추자.”

  여섯명의 소녀는 서로를 돌아 보고는 웃었다.
  다투어 일어나, 마루에 둥글게 선다.
  반주도, 관객도 없었지만.

  - 이 쓸쓸한 곳에서 지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손으로 뿌리는 꽃잎도 향기로운 생화가 아닌, 말라 바스러지는 말린 꽃잎이었지만.
  - 이 꽃잎을, 봄에 따 말렸을 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꽃의 하나가, 자꾸 휘청이고 늦어지고 있었지만.
  - 그 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축하고 도와주는, 다른 두 꽃과 두 나비를 생각하며.

  최고의 춤을, 끝까지 추었다.




  “깜짝 선물-.”

  모두가 춤의 여파로 늘어져 있을때, 아키하님이 웃으며 지금까지 절대로 열지 않았던 상자를 가져왔다. 안에서 나온 것은.

  “와, 사진기?”
  “그것도, 칼라!”
  “과연 무역상의 따님이네요.”

  모두 웃으며 부산스럽게 옷차림을 정리했다.
  찰칵.
  모두 환히 웃으며, 함께 웃는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를 세상에 남겼다.






  마침내 일주일이 끝나고, 다섯명은 도쿄로 돌아왔다. 츠바키님은 담담히 웃으며, ‘다음 방학때나 찾아와라’ 라고 말했지만 스미레코로서는 매 주말마다 오고 싶을 뿐이었다.

  도쿄에 도착해서는 곧 사이코는 유미코에게 전화를 했다. 츠바키와 미리 약속을 잡아, 요양원 아래의 마을에서 만나기로 어느 날자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유미코는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엄청나게 화를 냈었지만, 그 보다는 만날 수 있다는 기쁨 쪽이 컸던 듯 고맙다는 말로 말을 맺었다.

  마지막 관문이었던, 전화를 마지막으로 다섯명은 헤어 졌다. 릴리안은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이었지만 전부는 아니니까, 가족과의 시간이라던가 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만나기는 힘들 것이었다.

  방학이 끝나면 곧 학원제. 틀림없이 바빠질 것이니 각오해두라는 히나타님의 장난어린 경고를 끝으로, 스미레코의 여름 방학은 끝나갔다.

  “스미레코양, 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 노조미양.”

  정다운 교실, 친해진 클래스 메이트들.
  돌아왔다, 고 느끼는 것이 자신이 벌써 이 릴리안이란 곳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해주었다. 그다지 흥미가 없던 수업들도 즐겁다.
  전에는 그토록 힘들던 웃는 얼굴이, 자연스럽게 지어 졌다.

  “스미레코양, 얼굴이 너무 좋아졌네요.”
  “예?”

  노조미의 지적에 스미레코는 깜짝 놀랐다.

  “방학동안에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전에는 조금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예뻐요. 꼭 마리아님 같아.”
  “무슨···.”

  부끄러워서 노조미를 팡팡 거리며 장난스럽게 때리고 있자니, 갑자기 누군가가 불러 멈췄다. 돌아보자, 교실의 뒤쪽에 조금 굳은 얼굴을 한 스즈란이 서 있었다.

  “평안하세요, 스즈란님. 무슨 일이신가요?”
  “유미코에 대해 뭔가 들은 것이 없나요?”
  “-아니요. 저는 방학때 유미코님께 전화를 한 이후로는 한번도 연락이···.”
  ​“​·​·​·​그​렇​군​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스미레코의 추궁에 스즈란은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닐거에요. 유미코가 오늘 결석을 했습니다.”

  충분히 별일이 아닌가. 심지어 츠바키님이 실종에 가깝게 사라진 이후에도 학교만은 꼬박꼬박 나왔던 유미코님이었다.

  “기숙사에는요?”
  “지금 사이코가 알아 보러 ​갔​습​니​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방과 후에 학생회 실에서 모여 하죠. 라고만 하고는 스즈란은 사라졌다. 무슨 일일까. 유쾌하기만 했던 2학기의 시작에, 한조각 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는 듯 했다.




  방과 후에도 별다른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사이코가 알아본 바로는, 유미코는 기숙사는 등록했으나 정작 돌아오지는 않았다. 비단 결석 뿐만이 아니라 무단 외박이기도 한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 진다.

  “···무슨 일일까요.”
  “뭔가 사고라도 난 걸까.”

  머리를 모아 말해도,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기껏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다시 모두의 마음속에 그림자가 조금 드리워진다. 산백합회는 2학기가 되면서 이미 스미레코를 포함해 6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도 좋았다. 츠바키는 이제 돌아올 수 없고, 다른 2학년 들은 츠바키의 실종때부터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외부인이라고 봐도 좋았다.
  아직 다른 1학년을 뽑지는 않았다. 게다가 츠바키의 부탁 때문에, 뽑는다면 아마도 사이코와 스즈란이 각각 한사람을 뽑는 방식이 되겠지.
  조금 답답해진 가슴을 안고 모두는 헤어졌다.




  유미코는 몇일간 돌아오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곧바로 시작되는 학원제의 준비 때문에, 모두는 눈코뜰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친구의 실종이 신경쓰이지 않을리 없었다. 학교 측에서도 집에서 모종의 연락을 받았는지 당장 문제화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지만 슬슬 위험해 지고 있었다.

  “유미코의 일, 더 이상은 무리에요.”

  사이코와 스미레코는 둘이서 방과 후 클럽을 돌며 몇가지 용무를 보기 위해, 한숨을 쉬며 가고 있었다. 문득 사이코가 꺼낸 푸념에 스미레코도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간다. 이제 집에서 몇일 늦는다고 말한 정도로는 넘길 수 없을 정도의 문제가 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저희도 내일부터라도 집에 전화를 해서 알아 볼까요?”
  “정말 ​그​렇​게​라​도​·​·​·​.​”​

  방과 후라지만, 아직 충분히 더운 햇살이 두 사람을 괴롭혔다. 그때 시야에 양산이 하나 보였다. 학원 내에서 학생이 양산을 쓰고 다닐리는 없으니, 외부인인 걸까. 하지만- 그 양산 아래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유미코!”
  “예?”

  놀라서 자세히 보자, 과연 양산 아래의 그늘에 서 있는 것은 유미코였다. 두 사람은 놀라 뛰다시피 그쪽으로 다가갔다. 유미코 측에서도 두 사람을 눈치 챘는지, 천천히 몸을 돌려 섰다.

  “유미코!!”

  역시 걱정이 되었던 거겠지. 사이코로서는 드물게 큰 소리를 치며 달려 가서는, 유미코 앞에서 멈춰섰다.

  “···안녕.”

  - 평안하세요, 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옷도 사복차림. 품에는 작은 상자를 안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몇일이나 결석을 한거야?”
  “···.”

  유미코님의 눈은 고요했다. 조용히 사이코를 바라 보다가, 시선을 돌려 스미레코를 바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순간- 츠바키님과 함께 물장구 쳤던 시냇가의 찬물에 그대로 빠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셨​군​요​.​”​
  “···뭐?”
  “츠바키님, 돌아 가셨군요-?”

  사이코가 소스라치게 놀라, 무슨 소리냐는 듯이 두 사람을 돌아 보았다. 유미코는 살짝 미소지었다.

  “잘 아네.”
  “정말이야?! 그럼 유미코, 너···.”
  “지금까지 그 분의 간호와 장례식을 치르고 왔어.”

  한발자국, 스미레코가 앞으로 나섰다.

  “아직 2년이 남았다고 했어요. ···어째서, 어째서?!”
  “사고. 장마로 절벽이 무너져서 중상을 입은 것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내가 보기엔 자살하셨어.”
  ​“​그​·​·​·​런​·​·​·​.​”​

  유품이야. 라고 말하며 상자를 열더니 안에서 한개의 반짝이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은빛 사슬과 그끝에 매달린 구슬과 십자가-.

  ​“​·​·​·​로​자​리​오​·​·​·​.​”​
  “‘매해 장미화관을 만들려면 번잡할테니까.’ 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

  받아드는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은 금속의 것일까, 아니면 어느새 볼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눈물 때문일까.

  “왜, 돌아가셨나요?”
  “유서에는, ‘나는 살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죽어가는 것 밖에는 남지 않은 듯하다.’ 고 써져 있었어. 내가 아는건 그것 뿐이야. 스미레코양.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유미코님이 살짝 웃었다. 여전히 평온하다-. 평온? 무슨 말도 안되는. 감정이, 없다. 죽어 버렸다.

  하얀 양산에 있는 물방울 무늬가, 물방을 그림자를 그녀의 뺨에 드리우고 있다. 이미 죽어버린 영혼이 흘리는 눈물 같아.

  “···어떻게?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돌아가실 정도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거야···?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지가 없어 자살을 한 사람이, 그렇게 웃으며 죽을 수 있는 거야···? 너희와 보낸 일주일은 그분의 그 짧은 인생에서 도대체 얼마나 빛났던 거야? 왜, 너인거야? 왜, 나는 안되는 거야···?”
  “유미코.”
  “조용히 해줘, 사이코.”

  사이코가 얼어 붙었다. 유미코의 눈 속 깊은 곳에서, 한줄기 솟아오르는 검은 빛을 본 것이다.

  “나를 배려해 준 것은 알고 있어. 그래서 미워할 수도 없어. 하지만··· 난 널 용서할 수도 없으니까.”
  “유미코.”
  “죽어도, 좋았어. 결핵 따위 열 번이라도 걸려 주겠어. 어째서, 부르지 않은 거야! 내가 선택 받지 못한다고 해도 좋아. 왜 그분과, 함께 할 시간마저 뺏은 거야?! 그 분이 직접, 자신이 못다한 삶을 이어갈 사람을 선택 하는 순간을 보지 못한 거야!! 나는, 이제 평생 이해는 하되 납득은 하지 못하고 이 감정을 껴안고 살아 가야 하는 거야?! 이 추한 질투와, 비참한 감정, 인간을 믿을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유​미​코​·​·​·​.​”​
  ​“​·​·​·​유​미​코​님​.​”​

  두 사람의 부름을 뿌리치듯, 유미코는 상자를 스미레코에게 넘겨 주고 몸을 돌렸다.

  “츠바키님의 일부야. 릴리안은 자퇴하기로 했어. 그럼···, ​안​녕​(​さ​よ​な​ら​)​.​”​

  - 잡을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겐 자격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용기가 없었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움직일 수 없었다. 본의 아니게, 한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버린 충격. 두 사람은 그대로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 것처럼, 하얀 양산이 천천히 시야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사이코, 스미레코양!”

  갑자기 뒤에서 환청처럼 히나타님의, 숨에 차 헐떡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유미코를 만나 거야?! 어디에···.”

  하지만 두 사람의 굳어 버린 모습과, 흘러 내리는 눈물과, 스미레코의 품에 안긴 상자를 보고 모든 것- 최악의 상황이 왔었다는 것을 짐작해 버린 것일까. 히나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째서, 두 사람이 유미코를 만난 거야···.”
  “···히나타 언니···.”

  두 사람은 그 사이에 관계를 쌓은 것일까. 언니라는, 조금 생소한 호칭으로 칭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스미레코는 그제야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 아아, 나는 그 사람을 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러볼 수 없는 거구나.

  그렇구나. 언니, 조금 간지러운 호칭인데. 한번쯤 불러 봤었다면 재밌었을 텐데.
  이제, 못 부르는 구나.
  상자 안에 보이는 작은 항아리를 보며 스미레코는 눈물만을 떨어 뜨렸다.

  “사이코, 일단 움직이자.”
  “···자신이, 없어졌어요.”

  히나타님의 품에 얼굴을 묻은채, 사이코님은 울고 있었다. 히나타님의 교복을 움켜쥔 손이 떨리고 있다.

  “역시 저희는 기껏해야 계집애들일 뿐이에요. 누구를 사랑하는 일조차,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이런 결과를 가져와 버릴 수 있어요!! 단 1년이나, 이 마음을 이어 갈 수 있을까요? 츠바키님이 부탁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저희같은 어린 아이들이?”
  “없어.”

  히나타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미래의 모든 것을 예측하는 일 따위 가능할리 없어. 하지만 사이코, 츠바키는 그런 걸 부탁할 정도로 어리석은 아이가 아냐.”

  히나타는 스미레코를 돌아 보았다. 멍하니 보고 있던 스미레코는 그 부드러운 시선에, 흠칫 놀랐다. 지금 저 사람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츠바키님의 한 모습을 알려 주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사랑해 주는 거야. 온 마음을 다해. 그 결과가 비뚤어 질수도,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지도 몰라. 하지만- 난 단 한가지만은 말할 수 있어. 자신이 사랑받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
  “······.”
  “그걸 부탁한거야. 츠바키는.”

  자, 이제 돌아가자. 라면서 히나타는 사이코를 끌어 당기며 스미레코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벌써 소문이 퍼져 나가는지, 구경꾼들이 모여 드는 것이 하나 둘 보인다. 스미레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자를 잠시 히나타에게 들렸다. 그리고 손 안에서 땀에 조금 젖은 로자리오를 들어, 스스로의 목에 걸었다.

  ···무거울리 없거늘, 무겁다.

  하지만, 기쁜 무게.
  교복 위로 찰랑이는 십자가를 소중하게 감싸쥐며 속삭였다. 지켜봐 달라고.






  --피.

  가늘게 떨리는 피리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살짝 눈을 뜨자, 죽은 듯이 조용한 수백명의 사람이 눈앞에 펼쳐진다.

  -피이이···.

  애절한 피리 소리가, 가슴에 스며든다. 꼭 마른 바람소리 같은 피리 소리. 음악을 즐겨 듣지는 않지만 이 소리가 명인의 그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 탁.
  문득 옆에서 두개의 검은 형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뭐였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내가 왜 이곳에 서 있지.

  “정신 차려.”

  피리소리를 뚫고, 간신히 귓가에 목소리가 와 닿았다. 이건- 스즈란님이다.
  스즈란은 작게 속삭인 후, 경쾌한 스텝으로 서 있는 스미레코에게서 멀어진다.
  왜 멀어지는 건가요?
  대답은 춤으로 돌아왔다. 팔을 뻗어, 날개처럼 하얀 부채를 펼친다. 흔들리는 어깨. 그야말로 날개짓. 흐르는 발걸음.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모양. 그녀의 온몸을 휘감은 검은 기모노와, 가슴에 매달린 노란 장미의 봉오리.

  검은 학.

  “힘 내.”

  다른 목소리가 들려 온다. 아키하님. 검은 학이 한 마리 더 날아와, 함께 춤추기 시작한다. 암수의 다정함처럼, 내 주변을 날 듯이 춤추며 돌고 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내 가슴을 보았다. 검은 기모노를 입고 있다. 가슴에는- 흰 장미의 봉오리.

  나는 이곳에 서 있다.

  피리 소리에 더해,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피리와 피아노라니, 미스매치라 생각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명인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일까.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 나는 춤의 일부였다.


  천천히 아키하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사이코님의 피리는 바람. 히나타님의 피아노는 구름.
  스즈란님과 아키하님은 두 마리의 학.
  그리고 나는- 꽃.

  이것은 산백합회 주최로 학원제에서 하는 공연. 츠바키님의 추모 공연.

  아아. 그래. 그래서 모두 검은 기모노- 상복을 입고 있구나.

  몸이 춤추고 있다. 어느새 외워버린 리듬에 따라, 춤추고 있었다. 감탄의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잘 추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저, 마음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내려 잘 보이지 않지만, 스즈란님이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유미코님이 전달해준 츠바키님의 유품과 화장한 유골의 일부를 안고 돌아온 내게도 저런 얼굴을 보여 줬었지.

  “유골은 어디에 묻을까?”

  스즈란님이 질문했던 말에, 아키하님이 ‘새로 짓는 학생회 건물은 어떨까.’라고 의견을 내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결정하는 것은 나였다. 모두가 그렇게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 그분의 뼛가루가 든 항아리를 묻었더라.

  츠바키님을, 어디에 묻었더라.

  츠바키님은, 벚꽃. 흐린 하늘 아래의 벚꽃. 그랬다.
  나의 춤도, 부디 그 덧없고도 그립던 날의 벚꽃처럼 보이면 좋겠어.

  학이 내려 앉는다. 바람이 잦아 든다. 구름이 물러 간다.
  나는, 꽃은, 진다.

  격렬한 박수가, 열렬한 흐느낌이, 울려 퍼졌다.
  아아, 그래. 이건 릴리안이 그분께 보내는 인사구나.
  그 분이 사랑한 곳은, 그 분을 사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미레코는 웃었다.

  이곳에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허공에 살짝 속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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