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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얼레트리


투고 | V노블




                    



[0] 스크램블 에그 
[1] 주먹밥 
[2] 돼지고기 감자조림 
[3] 라면 
[4] 연어회 
[5] 꽁치구이 
[6] 캣 푸드 
[7] 선박용 비스킷 
[8] 미끼 
[9] 돈가스 덮밥 
[10] 별사탕 
[11] 무화과 타르트 
[후기] 




0. 스크램블 에그


실내를 가득 메운 후텁지근한 수증기. 

팬 위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기름의 향.

부엌에서 풍겨오는 향을 한가지의 색으로 비유한다면 아마도 매캐한 잿빛이 어울리리라. 완성된 요리가 자아내는 총천연색의 이채로운 향은 정작 부엌에 없다.


동이 트지 않은 시월의 싸늘한 새벽이었음에도, 소녀들은 소매를 걷어붙인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소녀들이 입은 검은 세일러복과 그 위에 걸친 하얀 에이프런 때문일까. 얼핏 한창 조리 실습중인 여고생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느긋한 분위기의 학교 조리 실습실과는 다르게 이 부엌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철썩… 삐이걱 …철썩…….

간간히 파도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바닥이 기울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도마 위에 올려놓은 날카로운 칼은 좌우로 흔들렸고, 펄펄 끓는 육수는 넘쳐흐르기 직전까지 찰랑거렸다. 그렇다. 이곳은 배 위, 선상 조리실이다. 그리고 소녀들이 입고 있는 세일러복은 단순히 여학생들의 가련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복이 아니라, 수병들에게 지급되는 군복이었다. 소녀들은 군함 ‘잿빛 10월’의 조리병들로 승조원들이 먹을 아침 식사를 만드는 중이었다.


배 위의 조리는 땅 위와는 다르게 온갖 변수가 넘쳐난다. 바닥은 계속 흔들리고, 조리실 안에 가득한 습기는 소금기를 머금고 있다. 요리에는 최악의 조건임에도 소녀들은 조리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임무고, 조리병으로서의 사명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칼을 놀리는 수병들 사이로 머리를 정갈하게 땋아 내린 또 다른 소녀가 지나간다.

그 소녀는 수병들과는 다르게 개리슨 모를 쓰고 셔츠와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이해인’이라고 적힌 가슴팍의 철제 이름표가 화덕의 불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해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조리를 돕지 않고 그저 다른 수병들의 요리 모습만 관찰하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수병들과는 달리, 그녀는 금욕적으로 소매와 옷깃을 단단히 조여매고 있었지만 덥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른 수병들과는 달리 홀로 겨울에 서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동선을 피해 트레이 사이로 천천히 걸어가던 해인의 시선이 문득 한 비엣계 수병의 머리에 머물렀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그 수병은 어쩐 일인지 탐스러운 흑발을 그냥 풀어 흘려놓고 있었다. 해인은 그 수병의 머리칼을 무심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투이 일등 수병. 당신이 무슨 샴푸를 쓰는지 제가 참견할 권한은 없습니다만.”

“히, 히익…….”

갑자기 해인이 머리칼을 매만지며 말을 걸어오자 투이라고 불린 그 수병은 숨을 삼키며 몸을 경직시켰다.

“다음번에도 당신이 로즈마리향이 나는 그 흑발을 풀어헤친 채, 요리를 하고 있다면, 돼지고기에 뿌릴 향신료 대신 실수로 당신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서 기름 솥에 풀어넣을지도 모르겠군요.”

지적하는 해인의 표정은 평소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었지만, 입에 담는 말의 내용만큼은 수병들의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로 싸늘했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투이 일등 수병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리춤에서 머릿수건을 찾아 꺼낸 다음,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었다. 투이 일등 수병이 머리를 정리하는 걸 보며 해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요리를 하기 전에 머리를 정리하는 일은 주방에서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조리병들은 주방의 규율을 알기는 커녕 재료를 손질하는 데도 서툴렀다.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의 본분은 조리사가 아닌 군인이기 때문이다.

​“​어​프​렌​티​스​(​A​p​p​r​e​n​t​i​c​e​ : 견습생) 과정조차 마치지 못한 ​‘​쿡​(​C​o​o​k​)​’​만​ 가득한 부엌이라니.”

해인은 못마땅한 투로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수병들의 칼을 뺏고 요리학교부터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매 끼니 조리를 하며 서서히 개선해나가는 수밖에. 해인은 심호흡을 하고 더욱 싸늘하게 수병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미라 이등 수병! 돼지고기는 횟감이 아닙니다. 그 ​슬​라​이​서​(​s​l​i​c​e​r​)​ 당장 집어넣어요! 뾰족하다고 다 똑같은 칼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라일라 견습 수병. 주방의 동선을 어지럽힐 생각이라면 그냥 경의부 침실로 내려가서 잠이나 더 자고 오시죠.”

“아닙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트리샤 일등 수병. 당신은 ​파​보​일​(​P​a​r​b​o​i​l​)​과​ ​블​런​치​(​B​l​a​n​c​h​)​의​ 차이도 모릅니까? 치커리가 숨이 죽을 때까지 뭘 하고 있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해인이 지적할 때마다 수병들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황급히 답했다. 해인의 지적은 전문 요리사에게야 합당할지도 모르지만, 변변한 요리수업도 받은 적 없는 수병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까다로웠다.


그때, 해인의 눈길이 한 수병의 요리 앞에서 멈추었다. 해인은 드물게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노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칸나 수병장?”

“네, 넵!”

“저는 분명 계란을 오버 이지로 조리하라고 했을 텐데요.”

하지만 칸나 수병장이 들고 있는 팬에 담긴 요리는 어떻게 보아도 계란 프라이가 아니었다.

“어째서 ​스​크​램​블​(​s​c​r​a​m​b​l​e​ : 휘저어 섞음) 한 겁니까.”

칸나 수병장은 감히 해인의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궁색한 변명을 했다.

“하지만…… 모든 승조원분의 프라이를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스크램블이든 프라이든 익는 시간은 같습니다. 게다가―”

해인은 젓가락의 끝으로 스크램블 에그를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이 쉬운 스크램블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군요. 칸나 수병장, 계란을 익히기 전에 소금을 쳤나요? 계란의 수분과 단백질이 제멋대로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팬을 들더니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통에 스크램블을 쏟아버렸다. 그 행동에 수병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추가 보급이 어려운 해상의 함선에서 계란처럼 상하기 쉬운 식료품은 아주 귀중한 식재였으니까. 그런데 해인은 자신의 지시와 다르게 조리했다고 이 귀중한 식재를 망설임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칸나 수병장의 자존심 또한 계란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으리라. 

“이래서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다시 만드세요.”

“하지만… 하지만……!”

칸나 수병장은 자신이 만든 요리가 버려진 게 어지간히 분했는지 한동안 입술을 꽥 깨물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해인에게 소리 높여 항의했다.

“이건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어차피 미식가를 상대로 조리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저 수병들이 먹을 요리라고요! 여간한 해군 수병이라면 이 정도 수준의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텐데―!”

“이 정도 수준?”

해인은 칸나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코웃음을 쳤다.

“칸나 수병장. 당신은 메뉴에도 차등을 둡니까?“

“예……?”

해인은 날계란 하나를 집어 들더니, 칸나 수병장의 미간 사이에 들이대며 물었다.

“계란 한 알도 제대로 조리하면 미슐랭의 별을 받을만한 진미가 됩니다. 그런데 스크램블 에그 조차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수준을 논합니까?”

해인의 차가운 일갈에 칸나 수병장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해인의 목소리 톤은 평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말의 마디마디 사이에는 진한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딴 소릴 한 번만 더 지껄인다면 다음번엔 당신의 혀로 소테를 해먹겠습니다.”

해인의 말이 어쩐지 단순한 으름장처럼 들리지 않은 탓에 칸나 수병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넵!”

해인은 칸나를 뒤로 한 채 바로 조리병 전체를 돌아보며 느릿느릿한 어투로 훈시했다. 

“명심하십시오. 훈련병이 먹든, 제독이 먹든. 한 사람이 먹든, 백 사람이 먹든― 식사는 언제나 제대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해인은 유독 ‘제대로’ 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주방 내에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미묘한 반감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다.



해인은 결국 혼잣말처럼 한 마디를 뒤에 덧붙였다.

“적어도 요리사라면 그래야 합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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