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스크램블 에그
[1] 주먹밥
[2] 돼지고기 감자조림
[3] 라면
[4] 연어회
[5] 꽁치구이
[6] 캣 푸드
[7] 선박용 비스킷
[8] 미끼
[9] 돈가스 덮밥
[10] 별사탕
[11] 무화과 타르트
[후기]
2. 돼지고기 감자조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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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함정의 중앙에 있는 사관실(Ward room)은 옛부터 상급사관, 즉 장교들의 사교 공간이다. 이는 구 영국 해군에서 귀족 출신인 장교들이 예복을 걸어놓기 위해 쓰던 격실을 차와 다과를 즐기는 일종의 카페테리아로 개조한 데에서 유래하는데, 그 때문에 ‘천한 뱃놈 출신’인 수병이나 하급 사관들은 사관실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전통은 현대 해군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수병이나 하급 사관들은 특별한 신고가 없다면 사관실에 출입하지 않는 것이 함상 예절의 기본이다. 그런데…
“차 한 잔 더 하시겠어요?”
“아,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왜 그 수병 나부랭이에 불과한 내가 사관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거냐.
물에서 금세 건져진 부분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의무실에서 몇 시간동안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받은 후, 나는 무슨 영문인지 당직 완장을 찬 사관과 함께 사관실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차와 다과라는 분에 넘치는 대접이 내게 제공되었다. 몇 달 만에 마시는 차의 향기는 매혹적이었지만, 아까처럼 황송한 대우를 한 후에 바다에 던져버리지는 않을까 해서 빠르게 눈치를 살폈다.
“…….”
차는 입에 대지도 않은 채 사관들은 신기한 생물을 보는 양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노골적인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마시는 일도 고역이었다. 게다가 예상했던 대로 사관들 역시… 전원 여성이었다.
‘여러 여성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도 꽤나 고역이네….’
어쩐지 여고에 들어선 인기남의 기분을 실감할 수 있었다.
“XX 같은 새끼, 두 번이나 물에 빠지고도 좋다고 실실 쪼개네.”
정정. 인기남은커녕 여자 탈의실에서 잡힌 변태를 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대로 입수해서 죽어버렸으면 좋았으련만.”
“저기요…?”
“입은 다물어줄래? 오징어 냄새 나서 못 견디겠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른편에 앉아 있던 금발 머리 사관이 내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5피트가 될까 말까한 자그마한 체구와 조각처럼 수려한 용모, 그리고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매끄러운 금발까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소녀가 입이 험하기로 소문난 뱃사람들도 저리가랄 만큼 지독한 욕설을 쉴 새 없이 퍼붓고 있었다.
…음,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님을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 된답니다, 엘레나 소교.”
다행히 차를 나르던 흑발의 사관이 나를 감싸며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그 흑발의 사관은 엘레나라고 불린 금발 소녀와는 달리, 미소를 지을 때마다 가느다랗게 흘러내리는 눈매가 아름다운 전형적인 동양 미인이었다. 단지 약간의 흠이 있다면 윤기나는 흑발의 끝이 군도로 자른 양 비죽비죽 흐트러졌다는 점 정도일까. 하지만 그 덕분에 외견은 더 앳되어 보였다.
“하지만 샤오지에….”
“엘레나 소교.”
샤오지에라고 불린 사관이 엄하게 말을 맺으며 노려보자, 엘레나 소교는 불만스럽게 궁시렁거리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사실 물에 빠진 나를 재차 사조묘로 건져 내서 사관실로 데리고 온 사람도 이 샤오지에 사관이었다. 당최 한 쪽에서는 건져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바다로 던지는 이 배의 명령 체계가 어떻게 되먹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다행스럽게도 샤오지에라는 이 사관만큼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 간신히 시선을 바로잡고 샤오지에의 가슴팍을 흘겨보았다. 음흉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복에 찍혀있는 계급과 성명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군식의 약장에 세 개의 아치와 조그마한 별이 수놓아진 표식으로 보아 선임 병조장인 모양이었다. 연방 계급으로 치면 상사 정도 되려나?
“저어… 선임 병조장님?”
내가 머뭇거리며 계급을 부르자 샤오지에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키득거렸다.
“그렇게 딱딱하게 부를 필요는 없어요. 샤오지에라고 불러주세요. 이 배의 갑판장입니다.”
“갑판장?!”
나는 악수하다 말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갑판장이면 중요한 선임 부사관 중 하나 아닌가. 특히 함내의 군기를 책임져야 하는 엄격한 직책인데, 왜 여기서 차나 타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 의문을 알아챘는지 샤오지에 갑판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쓸데없는 투지를 보인다.
“매듭법은 미숙할지 몰라도 차 달이는 실력으로는 함내 최고라고 자부한답니다.”
…이상한 데서 자부심을 보이는 여자였다.
이런 미심쩍은 자기소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사관실을 둘러보았다. 분명 이곳은 일반적인 군함의 사관실과는 다르게 소란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만연해있었지만, 그렇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군에 문외한인 민간인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장난을 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사관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사관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조리장입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출입구를 쳐다보았다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당신은…!”
방금 들어온 소녀도 내 존재가 의외였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쌀쌀맞게 물었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존 도 이등병조.”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칼과 새치름한 눈매. 그리고 조각처럼 반듯한 용모까지…. 그 소녀는 아까 나를 끌어올렸다가 다시 바다에 던져버린 이해인 일등병조였다. 나는 아까 해인이 정색하면서 나를 바다에 던져버린 일이 떠올라 가시돋친 말투로 반박했다.
“저는 이원일 병장이지, 존 도 이등병조가 아닙니다.”
하지만 해인은 아무래도 좋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내 말을 무시했다.
“뭐, 썩고 부패하면 다 거기서 거기죠.”
“멀쩡히 산 사람을 시체 취급하다니, 뻔뻔함도 유분수지!”
“다 죽어가는 사람을 건져놓은 것도 저희입니다. 어차피 저희가 없었으면 그대로 죽을 운명이었는데 뭘 그리 분개 하십니까?”
“이 배가 포를 쏘지 않았으면 물에 빠질 일도 없었어!”
“아하. 당신에게는 그 새우잡이 어선이 꽤 ‘살만한’ 곳이었나 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몸 상태가 엉망인 것 같지만… 원한다면 다시 그 해적선에 당신을 인계해드리지요.”
해인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나를 그 배로 인계한다는 말이 허황된 공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갑자기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대꾸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자 체념했다고 여겼는지, 해인은 관심을 떼고 다른 사관들을 향해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보다 저를 부르신 분이 누구십니까? 저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굉장히 바빠서… 혹 식후에 드실 다과나 디저트를 요청하시려거든 당번을 통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 때 가장 안쪽에 있던 여성이 손을 들어 보였다.
“응, 해인아. 내가 불렀는데…. 그러고 보니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을까나?”
다른 사관들과는 달리 눈을 감고서 적포도주를 홀짝거리고 있었기에 주의를 주지는 않았지만, 들어온 순간부터 사관실의 정중앙에 앉아 묘한 존재감을 풍기고 있던 여자였다. 갈색 빛으로 그을린 피부나 풍성하게 흘러내린 곱슬머리로 보아 아마도 남방 아시아 계통의 여성인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그 여자의 계급이나 직책은 알 수 없었다. 깔끔하게 근무복을 입고 계급장을 패용한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그녀는 반쯤 풀어헤친 블라우스를 입고 정모를 비스듬히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을 계급이나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격 없이 부르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의 높은 사람일까 싶었다.
“아이스크림은 재고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장교 분들만 드실 거라면 저녁 식사 후에 따로 내드리지요.”
해인이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답했음에도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고마워. 역시 해인이 밖에 없구나아~. 아, 그러고 보니 그쪽은 원일 군이라고 했나? 원일 군도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 여자가 갑자기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당황해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빠르게 저었다. 하지만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그 여자는 한동안 뚱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 목소리도 나른하고 눈도 공허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시선에는 묘한 마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일까,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맹수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움찔거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곧 머리카락을 가볍게 매만지며 무심한 투로 말을 돌렸다.
“그럼 하는 수 없지. 해인, 아이스크림은 장교들 것만 따로 부탁할게.”
계속 화제가 디저트에서 머무르자 해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
“정말로 아이스크림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겁니까?”
해인의 날카로운 일갈이 이어지자 여인은 잠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허둥거리며 손을 저었다.
“아아, 맞다. 그건 아니야.”
그리고 그 여인은 나를 가리키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는 원일 군의 처우에 관한 문제인데….”
갑자기 내 이름이 언급되자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무언가 군인다운 이야기가 나오려나.
“일단 연방의 군인이었던 네가 그 노역선에 타게 된 경위를 설명해줄래?”
설명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누군지도 모를 여성에게 연방 해군의 치욕을 증언하는 일은 껄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짐짓 비딱한 말투를 택했다.
“그, 그보다 그쪽이 누군지 밝혀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국제 해양법에 의거하더라도….”
나는 더듬거리면서도 끝까지 최대한 의연한 척 해군 수병으로서의 자부심을 쥐어짜냈다.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엘레나 소교는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를 드러내 보였다. 순식간에 괜한 소리를 했나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예의 같은 부분은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는지, 여인는 곧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뭐, 아무래도 좋겠지. 난 이 배의 함장 카밀라 대교야.”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하… 함장이라고요?”
내 반문에 그 여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차 선언했다.
“응, 함장(The Captain of Warship). 여기서 Captain은 Lieutenant(대위)라는 뜻이 아니라 ‘Commander’라는 거 알지? 물론 내 계급은 Captain(대교)이 맞지만. 헤헤.”
카밀라 대교는 뭔가 절묘한 농담을 해냈다는 투로 수줍게 웃으며 혀를 깨물어 보였다. 아니, 그런 해군들만 알아들을 것 같은 고난이도의 농담을 던지셔도…….
나는 카밀라 대교가 했던 말과 옷차림을 다시 비교해 보았다. 이 배의 함장이라. 그럼 이 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며. 함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절대자가 바로 이 여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배의 총책임자라는 사람이 제복도 제대로 입지 않고 업무 중에 술을 홀짝거리는 태도가 말이나 되는가. 함장은 총원을 압도하는 위엄을 보여야 할뿐더러, 복장이나 행동거지 같은 평소의 모습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본래 함장이라고 하면 보통 빳빳하게 다려진 해군 정복을 입고 시가를 물은 초로의 사내 아닌가?
지금에 와서 여성 함장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파격적인데, 저렇게 얼빠진 누님이 함장이라니!
“역시 조금 이상하긴 하지? 이렇게 여자아이만 가득한 군함에 육감적인 미모의 누님이 함장이라는 것도…. 헤헤.”
내 눈치를 읽었는지 카밀라 대교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함장 앞에 붙은 수식어가 묘하게 거슬리긴 했지만, 이상한 함선이라는 것 자체는 틀린 소리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이 배의 함 행동 자체가 여성이 주로 하는 세심한 일에 맞춰져 있어서 말이야. 편제를 맞추다 보니 우연히 여자 밖에 남지 않았거든.”
“…그렇습니까.”
거친 일투성이인 뱃일 중에 도대체 어떤 게 세심하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함장의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가장(假裝)이나 종교적 이유를 목적으로 여자만 승함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결국 미심쩍은 기분으로 천천히 이 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담담한 어조로 근 두 달여간의 고초를 설명하는 동안 함장을 비롯한 사관들은 상투적인 탄식도 내뱉지 않았다. 여성들이 듣기에는 조금 잔혹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관들이 다른 세계의 모험담을 듣는 양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맥이 빠져버렸다.
손가락이 잘렸다는 대목에 이르자, 함장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내 손을 들어올렸다. 둘째 마디까지 사라진 검지를 마주하자 함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흐으, 꽤 아프게 잘렸는걸.”
과연 함장의 말처럼 절단면 끝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빌어먹을 털북숭이 사내가 이 빠진 칼로 세 번에 걸쳐 손가락을 잘라내는 바람에 절단 부위는 뭉개진 찰흙 덩어리처럼 울퉁불퉁했다. 하지만 함장은 고무 모형을 만지는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환부를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나는 낮은 신음 소리를 흘겼다. 제대로 치료받았으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엉망진창으로 뭉개진 절단 부위를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환부는 곪았다가 아물기를 반복했었다.
겉으로는 새살이 완전히 돋아났지만 아직도 안에는 염증이 다소 차 있는지, 함장이 절단 부위를 꾹꾹 누르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파?”
“당연히 아픕니다. 제대로 된 처치도 받지 못했는데….”
하지만 내 호소에도 불구하고 함장은 계속 장난처럼 손가락과 손가락 끝을 맞대며 눌러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하읍.”
“?!”
내 검지를 이 끝으로 가볍게 물어버렸다.
“이언 어해?(이건 어때?)”
카밀라 대교는 입술로 부드럽게 손끝을 꾹꾹 깨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디 끝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은 여전했지만… 어쩐지 여성이 아래쪽에서 나를 올려다본다는 사실이 에로틱하게 느껴졌다. 딱히 이상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함장의 눈도 묘하게 선정적이고.
“어, 어떻긴 뭐가 어떻습니까. 통증이야 여전하지요… 아야야, 정말 아프니까 그만 둬 주세요. 그보다 왜 갑자기 손가락을 입으로 무시는 건지… 우왓?”
“츄릅.”
통증으로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마디 끝에 말랑말랑하고 끈끈한 무언가가 닿았다. 무슨 뜻인고 하니, 함장이 혀끝으로 내 손을 핥고 있다…. 나는 어쩌지도 못하고 바들거리며 함장이 손가락을 핥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분명 그것은 통증이었다. 그러나 이내, 묘하게 배덕적인 기분이 들면서 엉뚱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짜릿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손가락의 말단부터 팔꿈치를 타고 흐르는 간지러운 느낌 때문에 나는 작게 전율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함장은 혀를 부드럽게 굴려가며 내 손가락을 부드럽게 탐하기 시작했다. 카밀라 대교가 방금 전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함장이 입을 뗐다가 다시 물때마다 포도주의 달달하고 알싸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게다가 손끝에 침이 붙었다가 떨어질 때 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음탕한 소리가 나는지라….
“함장님, 식사 후에 입이 심심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무언가를 물고 빠시려거든 그 사내의 손가락보다 영양가 있고 위생적인 것을 추천하겠습니다.”
해인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반 강제적으로 잡아 당겨 빼고는 몸을 움츠렸다.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었던 거람?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쪽은 함장이건만, 정작 달아오른 사람은 내 쪽이었다. 반면에 함장은 손가락으로 살짝 흘러내린 침을 닦으며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카밀라 함장은 킬킬거리며 입맛을 다시더니 나를 보면서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
“이것도 꽤 나쁘지 않다고? 음, 이것은 동정의 맛이구나!”
상쾌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여자였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엘레나 소교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고, 갑판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나와 함장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곧 이맛살을 찌푸리며 재차 독설을 날렸다.
“손가락을 빤 이유가 겨우 그런 걸 알려고 하셨던 거라면 시간 낭비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 사내는 딱 보아도 여자에게 인기가 없을 것처럼 생겼으니까요.”
“정말 이 여자들은 초면의 상대에게 아무 소리나 막 하는구만….”
나는 손가락을 뒤로 숨기며 궁시랑 거렸다. 확실히 동정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손가락만 빨렸는데, 소중한 무언가도 함께 빨려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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