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06 - 복수의 서곡 Part 1
1
헌병들이 나를 거칠게 끌고간 곳은, 다름 아닌 빅토리아 시티 내에 있는 제 5 항공전대 사령부였다. 빅토리아 대륙에 전개된 3개 에르데 항공 기사단을 통합 지휘하는 5 항공전대는 원래 황실 직속인 우리 44 항공 기사단에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를 더더욱 의아하게 했다. 아무리 명목상으로는 우리가 5 항공전대에 배속되었지만, 지금까지 독립되어 작전하고 있던 나를 부른 이유란 무엇일까? 또 쓸데없는 사실 갖고 따지려는 걸까? 그런거라면 오히려 내가 직접 맞서 싸워야 한다.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들은 위험한 최전선에서 전투를 무리한 전투를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안전한 지하 방공호에서 숫자놀음이나 하고 있다니. 나는 헌병이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따질 생각을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다.
“사령관님, 모셔왔습니다.”
“아, 이창민 대위. 오랜만이야. 그때 졸업식 이후로는 처음인가?”
“…….?”
누구지? 이사람, 분명이 나를 아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고 있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도데체 누구야? 어께에 달린 견장은 이 남자가 분명 중장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중장치고는 조금 젊다고 해야하나? 거기다, 어디에선가 많이 봤던, 조금 낯이 익은 얼굴이다. 거기다 졸업식날 왔었다고?
“그날의 비행은 정말 놀라웠네. 거기다가 내가 일부러 계획한 시험까지 통과하다니, 역시 필그림들이 내세우는 1위의 조종사라는 타이틀은 거짓이 아니었군.”
“중장 각하….? 죄송합…..”
“아, 미안하네. 자네는 내 이름을 아직 모를 수도 있겠군.”
살짝 웃은 젊은 중장은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나는 공군 총사령관 아들러 갈란드일세. 자네 부대의 에리카 사파이어 대위의 친오빠지.”
아…….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그런데 어째서 다른 성을?!
“갈란드는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성일세. 그래서 현재 사파이어만의 영주는 그 아이고, 나는 황제 폐하의 직속 귀족이지.”
그렇군. 간단하게 에르데 제국의 귀족 계급을 설명한 갈란드 중장은 내게 의자를 권했다. 뭔가, 내가 예상했던것과는 굉장히 다른 전개다. 갈란드 중장은 굉장히 급했는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입을 열었다.
“별로 시간이 많지도 않으니 본론부터 예기하지.”
“예…….”
“사파이어 만의 기습 이후, 우리 에르데 제국군의 사기는 바닥을 곤두박질 치고 있네. 오죽했으면 전쟁보다는 후소 제국과의 화평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어. 거기다 후소 제국에게 점령당한 우리 식민지들에서의 패배 소식은 더욱 그런 기세를 부채질하고 있고.”
과거, 우리 세계에서의 진주만 공습이 이런 이유로 계획되었던 것이었다. 적의 주력과 기선을 제압하면, 일본군은 미국이 자신들과 평화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 수 있을거라 믿었지. 결론적으로는 틀린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래서 우리는 복수를 해야하네.”
복수를 입에 담는 갈란트 중장의 눈이 잠깐 반짝 빛이 났다.
“복수요?”
“그래. 우리가 당한 것과 똑같이. 단 한번의 승리만 있다면 우리 군은 반격을 해낼 수 있네.”
“……..”
“하지만 문제가 있네. 방법이 없어. 군의 상층부에서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저히 괜찮은 방법이 나오지 않았네.”
그런데 왜 나를?
“자네라면 뭔가 생각이 있을거 같아서 말이야. 좋은 생각이 없나?”
갈란트 중장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의 두 눈이 복수로 불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가지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 두리틀 중령과 16기의 폭격기, 이른바 두리틀 특공대. 항공모함에서 이륙해서 일본 본토를 폭격한 다음, 중국으로 탈출해서 진주만의 복수를 해낸 특공대원들. 이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너무 무모한거 아닌가?”
“저희들도 해냈습니다, 각하.”
갈란트 중장은 내 얘기를 듣고는 조금 망설였다. 아무래도 군인으로서, 이런 자살 임무에 부하들을 동원하는게 별로 꺼림칙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할건가? 수상기로는 도저히 닿지가 않는다. 에르데 제국 해군은 해군용 쌍발 폭격기를 운용하지 않는다. 육군용 장거리 폭격기들도 중간에 엄호해줄 전진기지들이 함락당하는 바람에 운용이 불가하다. 그렇다면 남는 답은 단 하나, 해군 항공모함에서, 육군 폭격기를 발진시켜 후소 제국의 수도를 폭격하는 수 밖에.
“………. 알겠네.”
“……….”
“귀관의 생각은 알겠으니, 일단은 원대 복귀하고 대기하도록.”
“예?”
갈란트 중장의 마지막 말이었던, “원대 복귀 하고 대기하도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한밤중, 본토에 긴급 전문이라는 이유로 사령부로 불려간 나는 바로 극비 임무에 차출되엇다는 명목으로 바로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애쓰던 빅토리아 항에서 구축함을 타고 사파이어 섬으로 복귀했다. 사냐 공주나 나탈리는 커녕, 에리카 대위나 유나 중위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한 급한 출발이었다. 그만큼, 복수의 필요성이 크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장거리 쌍발 폭격기가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려면, 짧은 갑판에서 이륙할 수 있고, 안전하게 불시착할 수 있는 베테랑 조종사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희생 시키면서까지, 이번 작전의 의의가 있는 것일까? 거기다, 함대의 구성은 어떻게 된거지? 사용하는 폭격기는? 거기다가, 왜 나는 이번에 차출된거지?
모든 궁금증은 사파이어 섬에 도착하고 나서 풀렸다.
2
대위 주제에 총사령관의 차를 타고 사파이어 항에서 사령부로 들어온 나는 곧바로 헌병들의 인솔과 함께 브리핑실로 들어갔다. 80여명의 승무원들로 바글바글한 브리핑실은 내와 갈란드 중장이 함께 들어가는 순간 조용해졌고, 내가 '이창민 대위'라고 씌어진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다른 누가 아닌 갈란드 중장이 직접.
브리핑의 내용은 대충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질문을 깔끔하게 대답해주었다. 현재, 지난번 폭격의 피해가 아직 가시지 않은 사파이어만에는 이제 3척밖에 남지 않은 정규 항공모함 CV-8 ‘호넷’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8척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벤젠스(Vengence)라고 명명된 작은 함대가 정박해있었다. 정치적인 목적, 그러니까 에르데 제국은 하나의 마음으로 싸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함대의 작전 참모로 대위로 진급한 팔랑크스 대위와 한수경 중위가 들어왔단다. 벤젠스 함대는 오늘, 그러니까 3월 14일 오후 6시에 바로 후소 제국을 향해 출항하고, 그와 동시에 '마이너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순전히 복수 및 선전, 프로파간다를 위한 이 작전의 목표는 단 한가지, '후소 제국의 수도에 폭탄을 박아 넣는다'였다. 내가 갈란트 중장에게 말했던, 두리틀 특공대의 특공과 전혀 다를바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어이 없고 어처구니 없게도, 폭격대에는 내가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전투기 조종사라고? 도데체 전투기 조종사를 폭격기에 태워서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나는 이걸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80여명의 승무원들은 아무말 없이, 눈에 불꽃을 띄운채 경청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물어봐야할 사람이 안면은 알던 사람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다음은 편대장 제임스 마이네 중령이 폭격 경로 및 자세한 작전 개요를 설명하겠다. 중령?"
"반갑다, 제군들. 편대장으로 임명된 제임스 마이너다."
제임스 마이너 중령은 훤칠한 키에 반반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키가 나보다 조금 작은 갈란트 중장보다도 머리 하나 차이가 나니까, 대충 2m가 조금 안되려나? 어쨌든, 마이너 중령은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바로 투영기로 투시한 지도를 지휘봉으로 짚어가며 상세한 작전 계획을 말해주었다.
"중장 각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이번 작전의 목표는 물리적 타격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복수, 그 자체다. 사파이어만에서 개죽음을 당한 우리 동료들의 복수를 위한게 이번 작전이다."
군데군데에서 함성이 터져나왔지만, 마이너 중령은 그걸 손을 들어 제지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작전도 아니다. 개전 초기 후소 제국의 기습 덕분에 우리는 수십개의 전진 기지들과 요충지들을 상실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호위기 없이 단독으로 바다에서 출격, 목표를 향해 날아가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 또 말을 끊었지만, 마이너 중령은 다시 한번 제지하고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대다수의 기사들도 알다시피, 제군들은 폭격기 기사다. 해군은 폭격기를 운용하지 않고, 우리 육군 항공 기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중간 기착지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우리는 항공모함에서 발진, 빌어먹을 후소 놈들에게 복수를 하고, 루스 제국 국경으로 날아가 루스 제국을 통해 탈출한다. 원래라면 치나 제국의 협조를 받는게 더 안전하지만, 자국 국민들이 학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부득이 하게도 루스 제국으로 가야만 한다."
좌중이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그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말도 안돼'라는 표현이다. 당연하지. 이들은 기사다. 나는 아닐지 몰라도, 이들은 진짜 기사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사실상 목표에 육탄 돌격만 안했다 뿐이지, 자살 공격이나 다름 없다. 명예롭게 죽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 기사들에게, 이런 자살 특공은 조금 황당하고 어이없는 작전이겠지.
"이번 작전은 에르데 제국의 최고의 폭격 기사단인 우리 제 8 전략 폭격 기사단이 맡게 되었으며, 차출된 제군들은 그 중에서도 최정예다. 따라서 본관은 귀관들이 이번 작전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작전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은, 지금 당장 저 문을 나가라."
조금 클리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연히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기 시작했다.
"좋아! 역시, 내가 뽑은 최정예다! 자, 아직 브리핑 안끝났으니까, 중요한 부분을 마저 듣도록."
마이너 중령은 신이 났는지 조금 즐거운 목소리로 슬라이드를 넘겼다.
"우리가 불시착할 장소는 루스 제국 국경에서 대략 30km, 전방 초소에서 46km 떨어진 곳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불시착 이후 후소 제국 놈들과 전투가 벌어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에도를 폭격한 직후, 최대한 뭉쳐서 탈출해야 한다. 비상시를 대비해 각 기사들은 개인별로 권총과 기병도, 기관단총과 탄창, 그리고 비상 식량을 소지하게 된다. 우리가 작전 개시일 까지 몇주간을 습기가 많은 바다에서 보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사의 상징인 세이버의 날에 녹이 스며있으면 안된다. 알았나? 응? 뭐냐, 대위?"
마이너 중령이 손을 들고 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엉거주춤하게 손을 들고 있던 나는 덕분에 방에 앉아있던 80여명의 리히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젠장, 최대한 눈에 안띄게 행동할 작정이었는데......... 젠장, 어차피 사냐 공주의 제 1기사라고 온갖 중상모략도 당해봤잖아. 뭐, 상관 없나.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조금 짜증나는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내가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중령님, 그런데 기병도가 꼭 필요합니까?"
그렇다. 내 질문은 이거다. 조금 어이없고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들이 '기사'라는 명목 때문에 패용하고 다니는 기병도는 의장용이 아니라 실전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이 무거운 의장용 기병도 - 이게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의장 행사가 아니면 패용하지 않을 뿐 - 보다야 가볍지만, 그래도 큰 문제가 하나 있다. 너무 크다. 도검보다 더욱 강력한 대인 저지력을 발휘하는 권총의 경우, 허리에 차는 작은 홀스터 정도의 크기면 충분한데, 기병도들은 아무리 실전용이라고 해도 날의 길이가 60cm는 족히 넘어간다. 급기동을 하다 보면 권총이 좌석에 걸려 기본 호위 무장도 버리고 탈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권총보다 약하고, 무겁고,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기병도를 들고 타라고? 그냥 권총을 지급해주는게 훨씬 낫다. 지금까지는 사냐 공주의 암묵적인 허락 하에 나나 나탈리는 기병도를 패용하지 않고 전투기에 탑승했지만, 여기서는 사냐 공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게도, 내 이 질문은 좌중을 썰렁하게 얼어 붙게 만들었다.
"지금......뭐라고 했나, 대위?"
"기병도를 꼭 패용해야 하냐고 여쭤봤습니다, 중령님."
"저녀석 기사 맡냐?"
"하여튼 필그림 천민들 주제에 기사가 되니까......."
"신기하네요! 왜 그런 생각을 해요? 소녀, 그런 질문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이너 중령은 마치 원시인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천정을 한번 바라보고는 길게 한숨을 후~ 불었다. 내 뒤에 있던 몇몇 기사들은 나더러 기사가 맡냐고 수군대고 있었고, 몇몇은 아예 삿대질까지 하고 있었다. 거기다 뒤에 있던 여군들 중 한 소녀는 아예 신기해하면서 나에게 막 왜 그런 질문을 했냐고 물어본다. 웬지 낯이 조금 익기는 하지만 이녀석은 쓸데없이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봐서 굉장히 짜증난다. 무시하자. 마이너 중령도 주변이 시끌시끌해지자 대충 분위기를 수습하고 브리핑을 마저 진행했다. 물론 나에게 '천민을 멸시하는 눈빛'을 거둔건 아니지만. 젠장, 어째 더 판을 크게 벌린 것 같군. 그냥 말을 말자.
"자자, 그만. 필그림 천민들에게 기사도를 기대하진 말고, 마저 끝내자. 자, 다들 주목."
어째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들리는데.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은 공습 그 자체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선도기와 2번기는 영상 카메라를 달고 폭격 영상을 촬영하게 된다. 1번기와 2번기의 항법사들이 카메라 필름을 담당하게 된다."
역시, 타격보다는 선전에 중심을 둔 작전이라는 것이 여실히 들어나는 순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용할 B-25 미카엘 쌍발 중(中)폭격기에 탑재할 수 있는 6발의 500파운드급 폭탄으로는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가 비교적 정확도가 높은 급강하 폭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사기 고취라는 이번 작전의 목표를 생각해봤을 때, 카메라의 장착은 당연하다. 가서 폭탄 몇발 떨어뜨리고 사진 찍고 돌아온다. 참 쉽죠? 단지 이번 작전에서 내 임시 보직이 항법사라는걸 빼면 말이다. 대충 보면 항법사가 아니라 사진사가 될 것 같은 기분이지만. 마이너 중령은 기체에 대한 개조 상황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승선을 지시하는 것으로 브리핑을 마쳤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덕분에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폭격기들은 전부 전면부의 기관총 2정을 제외하고는 전부 탈거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 뺄 수 있는게 그거 밖에 없는걸. 폭탄을 뺄 수도 없고, 연료를 적게 넣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원형 공산 오차가 10000피트 상공에서 45m밖에 안되는 최첨단 고성능 폭격 조준기인 노스 폭격 조준기를 탈거하고, 공산오차가 500m가 넘어가는 싸구려 간이 조준기를 설치했다. 뭐, 그런건 내가 아닌 폭격수들의 불만사항이지만 말이다.
“애시당초 이번 작전 자체가 미친 짓이니까 그렇다.”
이건 한참 있다가, 브리핑이 끝난 다음 나에게 다가온 팔랑크스 대위의 말이었다. 에르데 해군 대위 정장을 입고 있던 팔랑크스 대위는 나에게 작전 개요를 대충 듣고 나서 간단하게 말했다. 뭐, 나도 별로 다른 생각은 아니니까. 폭격기 16기와 정예 조종사 80명을 그대로 갈아 넣으면서 수행하는, 장비 손실률 100%인 작전이 미친 짓은 맞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전쟁은, 이미 시작했으니까.
브리핑은 끝났지만, 마이너 중령은 아직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이너 중령의 손짓과 함께, 내가 앉아있던 좌석 뒤에서 아까 그 질문이 많은 짜증나는 소녀를 앞으로 불러냈다. 치렁치렁,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머리. 진주 같이 하얀 피부와 맑은 초록색 눈동자. 폭격기 기사들의 제복 위에 달린 황실 전용 기장. 자, 이쯤되면 누구인지 대충 알 수 있겠지? 자그마치 황실에서 온 손님이다. 즉, 공주다.
"황실에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들인 귀관들의 사기를 직접 확인하고, 그대들과 함께 날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귀한 손님께서 와주셨다. 아일린 공주님이삳. 귀관들 모두 아일린 공주 앞에서, 자신들이 최고의 항공 기사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마이너 중령의 말과 함께, 아일린 공주는 가볍게 경례하면서 방긋 웃었다. 그리고는 자그마치 윙크를 날리면서(!!) 모두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이 공주 뭐야? 사냐 공주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잖아. 사냐 공주가 조금 무겁고 어둡다면, 이 아일린 공주는 조금 발랄하고 가볍다는 느낌일까? 분명, 같은 형제자매일텐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거지?
"반갑습니다, 경들. 소녀는 아일린 드 새틴이라고 합니다. 에르데 제국 황실을 대표해서 경들과 함께 이번 작전에 참가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