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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08 - 피의 꽃 Part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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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오질 않는다. 뭔가가 이상하다. 아니, 불길하다고 해야 하나. 눈을 딱 떴다. 온 세상이 핏빛으로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날 그때의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것 같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을 것 같은, 뭔가 불길하고도 소름끼치는 느낌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람막이용 외투만 가볍게 걸치고는 방을 나섰다. 나탈리는 다행이도 편히 자는지 조용하게 숨소리만 내쉬고 있었다. 최소한 나탈리는 잘 자고 있으니까, 다행이다.
 
  그대로 나는 비행 갑판으로 나갔다. 등화관제 때문에 주변은 깜깜했지만, 간간히 구름 속에서 고개만 빼곰 내미는 반달의 달빛이 은은하게 바다를 비춰주었다. 과거 우리 세계 처럼 끔찍한 매연과 스모그가 없어서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기분 좋다. 고개만 들면 수억개의 별이 보이니까. 나는 별을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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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래도 현실 도피를 못하는 것 같다. 최대한 그 끔찍한 감정을 잊기 위해 다른 생각을 떠올려 보지만, 그걸 잊을 수 없다. 마치 악마가, 지옥이 내 옆에서 살아 숨쉬는 것 처럼 말이다.
 
  "어라? 창민경, 여기서 뭐해요?"
  고개를 돌리니 내 뒤에 사냐 공주가 있었다.
  "너야 말로 뭐하냐? 지금 밤 몇신데?"
  "헤헤. 잠이 안와서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첫 출격도 아닌데 뭐하는거냐?
  “항상, 저는 작전 전날에는 잠을 못자거든요. 평소에는 없던 불면증이 생기니까요.”
  일종의 습관이란 말이네.
  “그런데 창민경, 뭐 고민 있어요?”
  “응?”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얼굴이 좋지 않아요.”
  “아니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사냐 공주는 일단 나보다도 연상이고 - 60몇이니까 – 평소 행동은 어린 꼬마애지만 그 마음 만큼은 어른보다 깊고 넓다. 하지만, 나도 남자다. 알리고 싶은게 있고 조용히 지키고 싶은게 있는거다. 특히 이런 기분………… 그러니까……… 두려움말이다.
  “긴장되나요?”
  “음…….”
  “창민경의 표정, 마치 제 첫 출격때 지었던 표정 같아요.”
  “………..”
  “저 그때 굉장히 무서웠어요. 만약 잘못 되면 어떻게 하지 부터 시작해서, 내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같은거 말이에요.”
  “…………..”
  “이게 맞는 걸까, 잘못된건 아닐까. 내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마구 들더라구요.”
  ………….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것 보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봐 걱정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에?”
  “소중한 사람은 이정도 일로 없어지지 않아요. 절대 잃지 않을거라는 믿음을 갖고 행동하면, 창민경 같은 유능한 기사하면 충분히 지킬 수 있을거에요.”
  ………….할 수 있을까? 나는 유능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할까?
  “어차피 저는 이제 자기는 글렀으니까, 창민경이라도 충분히 주무세요.”
  “……. 그래, 잘자.”
 
  5
  [파파가이 00, 여기는 호넷. 이륙 준비, 완료다. 무운을.]
  “파파가이 01에서 호넷에게. 이륙 시작하겠다.”
  오전 6시 43분, 정찰을 나간 우리 정찰기가 후소 제국의 기동함대를 발견했다. 플레이크 제독의 예상대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후소 제국의 기동함대는 어제의 사진에서 보이던 두척의 소형 항공모함 중 1척이 없었지만, 그 외의 규모는 동일했다. 그리고 우리의 정찰기가 적 함대를 찾아낸 것과 동시에, 후소 제국의 수상기도 우리 함대를 발견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시간 싸움, 누가 먼저 전투기와 뇌격기, 폭격기들을 발진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이미 우리 상공에는 1개 전투 항공 기사단이 적기의 요격을 위해 초계를 하고 있었고, 급강하 폭격 기사단이 진형을 짜면서 적 함대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정규 항공모함 ESS 레인저는 3개 전투 항공 기사단을 발진시킨 뒤, 급강하 폭격 기사단을 발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급강하 폭격 기사단의 호위를 맡은 우리가 3번째로 출격하게 되었다. 빨리 자리를 비워야, 우리의 뒤를 이어 나머지 2개 전투 항공 기사단과 뇌격 기사단이 이륙한다.
  “다들 준비 됐지?”
  [준비 완료.]
  [이상, 무]
  이어지는 보고소리가 7번째에서 끊겼을 때, 나는 발진 명령과 함께 그대로 브레이크를 놓았다. 나무 갑판을 달린 블랙캣 전투기는 북서풍을 맞으면서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뒤를 이어 44 기사단의 마킹을 단 6대의 전투기가 차례로 이륙했다.
  “어제와 똑같이, 2개의 핑거포로 대형 전환. 하나는 급강하 기사단 앞에, 다른 하나는 후상방으로 이동해.”
  [[라져.]]
  내 전투기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도를 높혔고, 뒤이어 나탈리와 에리카 대위, 그리고 사냐 공주의 전투기가 따랐다. 지난번에 얘기 했지만, 호넷과 레인저에는 전투기를 운용하는 전투 항공 기사단만 8개가 있다. 하지만 정작 적함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급강하 폭격 기사단이나 뇌격 기사단은 다 합쳐서 4개 밖에 없다. 즉, 에르데 제국의 항공모함 전투단들은 함대 상공의 제공권 장악에는 매우 유리한 편제를 택하고 있지만 - 당장 가용 가능한 전투 초계기가 48기나 되니 - 대신 전용 공격기가 부족한게 실정이다. 사실 이건 에르데 제국의 전술 교리인 다목적 전투기 때문에 그런거지만. 에르데 제국 해군의 주력 전투기인 블랙캣 전투기는 동체 하부 파일런에 300 리터급 드롭 탱크를 달고도, 주익에 대함 공격용 30mm 기관포 - 기관포라기 보다는 거의 유탄포에 가까운 ​거​지​만​.​.​.​.​.​.​.​.​.​ - 나 75kg짜리 항공 철갑탄 2발을 장착할 수 있다. 내 주익에 달린건 바로 도합 110발이 장전된 30mm 기관포들이다. 일단 내가 급강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30mm 기관포는 급하면 대전투기용으로도 발포할 수 있으니까. 탄도가 직선이 아니라 거의 곡사포 수준이라서 조준을 잘해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에르데 제국의 다목적 전투기 교리 때문에 플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우리 제 38 항공모함 기동 전투단은 24기의 뇌격기, 92기의 전폭기, 그리고 24기의 급강하 폭격기를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동원 가능한 항공기 140기가 전부 대함 공격력으로 투사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과연 블랙캣 전폭기의 30mm 기관포와 75kg 철갑탄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또한, 모든 블랙캣이 공격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호넷과 레인저는 각각 1개의 항공 기사단을 남겨 전투 초계를 맡길 예정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정비 불량과 같은 비전투 손실분과 전투 초계를 위해 남겨지는 전투기들을 합하면 실제 투입하는 전력은 한 4분의 3 수준인 108기 뿐이다. 8기나 되는 블랙캣 전투기가 엔진 불량이나 주익 균열 같은 정비 불량으로 인해 투입되지 못했다. 그나마 엔진 불량인 전투기들은 함대 방공에라도 투입할 수 있지만, 어쩌다 보니 생겨버린 주익 균열은 창정비를 받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3기를 완전히 투입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날아오른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알아서 잘 하겠지. 캐노피 위쪽에 달린 백미러에 방금 이함한 호넷이 들어왔고, 캐노피 오른편에는 호넷과 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ESS 레인저가 들어왔다. 데바스테이터 뇌격기로 보이는 항공기들이 마지막으로 이함했는지 갑판은 깔끔했고, 그들의 뒤를 이어 함대 방공을 책임질 블랙캣 전투기들이 앨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108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함재기가 4기씩 핑거포 진형을 이룬 채, 그리고 그 작은 핑거포 진형들이 또 다른 V 대형을 이룬 채 북쪽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면 장관이겠지만, 정작 그  V자 대형 안쪽에 있는 나는 별 감흥이 없다. 안보이니까. 지금 내 머리를 채우고 있는건 어제 밤에도 풀리지 않은 불안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도 불안하고 무섭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오늘 생길거 같다. 기분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육감이란게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전장이다. 단순한 전장이 아니라, 남하하는 후소 제국의 기동 전단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는, 중요한 전장이다. 여기가 넘어가면 기니아 제도가 넘어가고, 그려면 빅토리아 대륙과 에르데 제국, 그리고 브리타니아 제국과의 연결로가 차단된다. 사실상 거대한 오스트 대양에서의 전진기지를 완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고? 내 고민은 완전한 사치였다.
  [선임 기사단장 로미르 중령이다. 각 기사단은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해역에 대한 수색을 시작한다.]
  [블랙베리, 라져]
  [파이어 윈드, 라져]
  [아이스 폭스, 라져]
  [앙그리프, 라져]
  [바우트 원, 라져]
  [웨버, 라져]
  “파파가이, 라져”
  [골든 애로우, 라져]
  기니아 제도 북방의 해역은 엄청난 넓이를 자랑한다. 전력의 집중 투사를 위해서는 한군데에 뭉쳐있는게 좋지만, 최대한 빠른 수색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떨어져야 한다. 덕분에 각 전투기에는 자신의 무장과 연료를 만재한 것 뿐만 아니라 적 함대의 방위를 표시할 신호탄도 탑재하고 있다……… 아마 쏘게 되면 방풍창을 열고 신호탄용 권총을 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공격대의 무전망에서 우리 기사단의 편대망으로 변환한 다음에 후두부에 장착된 후두 마이크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다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지? 4개 조로 나눈 다음에 해상 수색을 실시한다. 발견되면 무전으로 보고하고 신호탄 발사하는거 잊지 말고.”
  [알았어요, 창민경. 나랑 에리카 대위는 이동합니다.]
  [미야 중위입니다. 명령 수신했습니다, 부단장님]
  [유나 입니다. 이동하겠습니다, 부단장님.]
  “나탈리, 잘 따라와.”
  [응! 걱정하지 말라고!]
  주력 편대의 비행 방위인 013에서 떨어져 나온 우리는 방위계가 335도가 될 때까지 선회를 한다음, 6천피트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산개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가장 지루한, 해상 수색이 시작되었다.
 
  10분이 지났다.
  아무런 무전 보고도 없다.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다.
 
  1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소식이 없다.
  [창민아.]
  “응?”
  [적, 혹시 후퇴한거 아닐까?]
  “글쎄………….”
  수색에 투입한 6개 기사단 72기가 방사형으로 펴진채 1시간이 넘게 수색을 했지만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 이정도 되면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지. 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1시간이 넘게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연료만 버리고 가면 억울하잖아!
  “조금만 더 찾아보자.”
  [알았어.]
  그렇게 말한 나는 한번 더 캐노피 밖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없는건…….
  [창민아, 2시방향에!]
  나탈리의 작은 탄성과 함께 나는 고개를 2시 방향으로 돌렸다. 제 31 기사단, 콜사인 웨버 기사단의 색깔인 녹색 연막탄이 하늘에서 부터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발​견​했​다​…​…​.​.​ 위 355도, 거리 50km……..]
  “오케이, 파파가이 01, 수신 완료. 파파가이 01에서 파파가이 00에게! 연막탄 방향으로 재집결해서 편대를 형성한다.”
  [알았어요, 창민경! 금방 가요.]
  [유나입니다, 명령, 수신했습니다.]
  ………..응? 그런데 미야 중위는?
 
  재집결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106기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함재기들이 모여들었다. 유일한 실종기는 요하네스 미야 중위와 에간 펠츠 소위 페어로, 분명 무전을 듣지 못했거나 아니면 너무 멀리 가서 길을 잃어버린게 분명했다. 아니면 연료가 떨어졌거나. 지금 우리도 연료가 간당간당하다. 아직 55% 정도가 남아있지만, 무리한 공중전으로 하다보면 55% 정도는 금방이다. 잘못하면 해수면에 착수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어쨌건, 106기의 공격기들이 녹색 연막 근처로 재집결했을 때, 이미 후소 제국의 항공모함에서는 전투 초계기들을 발진시키고 있었고, 거리도 30km나 가까워졌었다. 레인저의 전투부대가 우익에, 우리 호넷의 전투부대가 좌익을 이룬채 날아가던 V자 대형은 좌우로 갈라졌다. 항속거리가 짧고 고도가 낮은 뇌격 기사단이 먼저 공격에 돌입했고, 그 뒤를 따라 가장 먼저 적함대를 발견한 제 31 기사단의 전투기들이 따라붙어 엄호를 시작했다. 후소 제국 함대를 향해 고도를 낮춘 이들은 정말 죽음을 무릅쓰고, 고도 50m라는 초저공에서 시속 150km의 저속으로 일직선으로 비행해갔다. 물론, 이건 호위기 없이는 자살행위다. 데바스테이터 12기가 뇌격을 위해 돌입하자, 항공모함과 호위함 세력에서 대공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고, 일직선으로 달려들어오던 데바스테이터 두기가 순식간에 격추되었다. 항공에 떠있던 후소 제국의 전투 초계기들도 고도를 내려 뇌격기들에 기총소사를 가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31 기사단은 이 기총탄들을 몸으로 막으면서까지 보호했고, 총 12기의 데바스테이터 중 7기가 어뢰를 투하하는데 성공했다. 아, 맞췄다는게 아니라 성공했다는거다. 에르데 제국 항공대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혀온 정말 말도 안되는 성능의 거지같은 항공 어뢰 – 이거 내 표현이 아니라 에리카 대위 표현이다 – 가 제대로 작동할지 문제라고. 봐. 벌써 하나는 착수의 충격으로 탄두가 격발되었잖아. 그 위를 날아가던 재수없는 데바스테이터 한기가 거대한 물기둥 사이로 사라졌고, 승무원들은 탈출 시도조차 하지 못한채 사라져버렸다. 살아남아 작동하는 6발의 어뢰들이 하얀 실 같은 항적을 만들어내며 가장 앞에 있는 적 항공모함 – 아마 쇼카쿠인가 그럴 것이다 – 을 향해 달렸다. 물론, 속도도 느리고 사정거리도 짧고, 신관도 불량인 에르데 제국의 어뢰들은 기민한 항공모함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채 자폭해버렸고, 지근탄도 아닌, 한 100m쯤 떨어진 거리에서 6개의 물기둥이 잠시 뒤에 일어났다.
  [젠장, 역시 저런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들은 해군의 밀주 만드는데 밖에 쓸데가 없어!]
  [에…에리카? 진정해!]
  에리카 대위가 화가 많이 났나보다. 그러고보니 에리카 대위는 뇌격기를 몰아본것도 아닌데, 어떻게 어뢰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을 수 있는거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뭐, 어떻게 되었든, 레인저의 뇌격기들이 한번더 뇌격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적의 반격에 7기가 격추되는 참사를 겪었고, 살아남은 11기의 뇌격기들은 대열을 이탈한 채 남쪽으로 날아갔다. 말이 살아남은거지, 정말, 떠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상처입은 데바스테이터도 3기나 되었고,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그 사이로 윤활류와 연료가 줄줄 새는 데바스테이터도 무려 4기나 되었다. 24기의 뇌격 기사단 기체 중에서 겨우 4기만이 ‘그나마’ 멀쩡하게 살아난 것이다.
  [급강하 기사단의 공격 차례다! 전 전투 기사단은 적 전투 초계기를 상대하여 우리 뇌격 기사단을 보호하라!]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뇌격기 이전에 급강하 폭격기 부터 투입하지. 하지만 그것도 무리가 있다. 무거운 항공어뢰를 달고 날아온 데바스테이터들은 연료량이 돌아가기 약간 모자란 양만큼 남아 있었고, 그래서 공격 기회를 최대한으로 늘리고, 데바스테이터들도 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뇌격 기사단이 먼저 돌입할 수 밖에 없었다. 적들의 전투 초계기? 맨 처음 뇌격 기사단을 습격해 2기의 데바스테이터 뇌격기를 격추시킨 후소 제국 제로 전투기 3기를 제외하고는 다들 다른 전투 항공 기사단의 블랙캣 전투기들과 싸우기 바쁘다. 흰 구름을 끌면서 수십기의 전투기의 얽히고 섥히는데 언제 뇌격기를 격추 시키고 앉아있을까? 뇌격 기사단의 대다수의 피해는 함정, 특히 항공모함의 대공포에서 나왔다. 나중에 신형 뇌격기를 만들게 되면, 좀 항속거리 긴걸로 해달라고 해야겠다. 뭐 어쨌든, 나도 중계를 그만하고 슬슬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 나는 에일러론을 까딱거려 강하 신호를 보낸 다음, 뇌격기 요격을 위해 2000피트 정도의 저공에 내려갔다가 이제야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도의 잇점을 살려 하강했다. 위치 에너지가 그대로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어 우리의 속도계에 표시되었고, 별다른 힘 없이 시속 300km까지 가속한 우리는 엉켜있는 전장에 그대로 뛰어들었다. 2기씩 3개 조로 나뉜 우리는 제로 전투기들을 쫒아 기동을 시작했다. 3기의 제로기가 41 기사단의 전투기 2기를 쫒아갔다. 41 기사단 전투기 둘은 필사적으로 회피기동을 하면서 꼬리에 붙은 세기의 제로 전투기들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제로 전투기의 파일럿들은 능숙하게 선회하면서 붙잡은 꼬리를 놔주지 않았다. 41 기사단 전투기 하나가 계속된 회피기동에 지쳤는지 잠깐 선회를 주춤한 사이, 제로기 3기의 기수와 주익에서 불이 뿜어져나왔고, 불쌍한 블랙캣 전투기는 금속 파편을 사방으로 뿌리면서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나탈리.”
  [오케이]
  나는 나탈리가 답신을 보내자마자 바로 반전한 다음 기수를 당겨 180도 선회했다. 바다가 위, 하늘이 아래인 수평선이 스쳐지나감과 동시에 유압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블랙캣 전투기와, 상처입은 블랙캣을 쫓는 3기의 제로기가 조준간에 들어왔다. 나탈리의 전투기와 익단이 마주칠 정도로 가까이 날도록 편대를 변경한 나는 제로기의 뒤를 노리고 빠르게 날아갔다. 신중하게 러더 페달을 차서 조준간 한가운데에 제로기의 꼬리가 들어왔을 때, 나와 나탈리는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짧은 진동과 함께 수십발의 기총탄이 흰색 꼬리를 끌면서 날아갔지만, 그 순간, 하필이면 블랙캣 전투기가 왼쪽으로 급선회를 했고, 우리가 발사한 총탄은 그냥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제로기 3기는 우리의 공격을 알아차려버렸다. 상처입은 블랙캣 대신 싱싱한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한 후소 제국의 전투기 3기는 우리를 향해 급선회를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나와 나탈리도 왼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젠장! 하필 이녀석은 우리 세계의 제로 전투기와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 후소 제국의 제로 전투기들도, 선회 반경이 작은 것이다! 서로 다른 기종의 전투기 2개 편대가 만들어낸 작은 원 사이로 파고든 제로 전투기의 기총이 불을 뿜었다. 다행히 기골이 약한지 기총의 탄도가 곧지 않아 치명타는 피했지만, 덕분에 나는 회피 기동을 하느라 연료를 5%나 소비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은 연료로는…….. 간당간당하네. 남은 연료량은 고작 5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잘못하면 진짜로 해상 착수하는 불행한 날이 될지도 모르겠군. 나탈리와 나는 선회하고 급강하 하는 등 급기동을 하면서 제로기를 떨처버리려고 했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안돼겠어. 내가 미끼가 되어서 나탈리에게 격추시킬 기회를 줘야지 벗어날 수 있겠군. 나는 미끼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탈리에게 무전을 보냈다.
  “나탈리!”
  대답이 없다. 설마, 격추당한건가? 나탈리가? 농담이지? 나는 고개를 돌려 내 6시 방향을 체크했다. 다행이다. 나탈리는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주익에 기총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지만, 기총 상태는 양호한 것 같았다. 하지만 왜 반응이 없는거지? 무전기에 맞았나?
  “나탈리!”
  […….왜?]
  힘들어하는 목소리다. 마치, 간신히 쥐어 짜내는 듯한 목소리. 지금 급기동 하는게 아니라 단순 상승과 하강의 반복인데, 왜 힘들어하는거지?
  “내가 미끼가 될테니까, 반전해서 빠져나간 다음 놈들좀 처리해줘.
  [………]
  “알았어?”
  또 답이 없다. 이제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걱정되기 시작한다. 설마 기총에 맞은건가?
  “나탈리, 너 설마…….”
  [알았어. 창민이 너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위로 빠질게.]
  나탈리가 내 말을 끊고 답신을 보냈다. 뭔가 숨기는게 있나? 궁금하다. 단짝인 나에게도 숨길 정도의 사실이란게. 아니, 오히려 친하니까 숨기려고 드는건가? 모르겠다. 일단은 여기서 빠져나갈 생각만 하자. 여기서 살지 못하면 그 의문도 풀지 못할테니까. 프로펠러의 피치 각도와 엔진 출력을 줄인 나는 나탈리의 블랙캣이 나를 지나치게 놔둔 다음, 오른쪽으로 선회하면서 제로에게 선회전을 걸었다. 7.7mm 기총탄 몇발이 캐노피를 스치면서 지나가고, 왼쪽 주익 뿌리부분에 둔탁한 진동이 느껴졌다. 다행이 한발도 장갑을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놀래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제로기들을 확인하면서, 나는 선회를 시작했고, 상처입은 것 처럼 보이는 나를 향해 3기의 제로기가 달려들었다. 나보다 작은 선회 반경을 그리면서 내 꼬리를 잡은 3기의 제로기가 차례로 7.7mm 기총과 20mm 기관포를 발사했지만, 나는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하면서 총탄을 피했다. 수십발의 하얀색 궤적이 캐노피와 내 블랙캣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마주보고 있는 두개의 절벽 위에 걸린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내 생가는 1초전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훈련과 내 직감과 나탈리를 믿는 수 밖에 없다. 오른쪽으로 선회하던 나는 다시 왼쪽으로 기수를 틀었다. 큰 S자를 그리면서 선회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나탈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방에 날아다니는 수십기의 블랙캣과 제로기들이 뒤엉켜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젠장, 나탈리! 언제 오는거야!
  퍼퍼퍽
  강한 진동과 함께 무언가가가 좌석 뒤 방탄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맞은건가? 뒤를 돌아봐도 내 동체를 볼 수가 없다. 맞은건가, 안맞은건가, 맞았다면 얼마나 심한 건가, 그걸 알 수가 없다. 심해서 전투가 안되는건가? 이걸 알 수가 없다. 나탈리…… 도데체 언제 도와줄거야? 응?
  [창민아! 바로 이탈해! 지금!]
  무전기 너머의 나탈리가 고함쳤다. 그와 함께 나는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당겨 급상승을 시도했지만…… 엘레베이터와 연결된 와이어가 끊겼는지 기수가 쳐들리다가 오른쪽으로 주저 앉았다. 헐. 지금 장난하는거지?
  [창민아! 이탈하라니까!]
  “못해! 오른쪽 엘레베이터가 끊긴거 같아!”
  [얼마나 버틸 수 있어?]
  모른다. 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절대 모른다. 오히려 그쪽은 나탈리가 더 잘 알거다. 하지만 내가 지금 짐작할 수 있는건 한가지 밖에 없다. 지금 내가 회피기동을 해버리면, 나탈리가 조준이 힘들어진다.
  “걱정하지 말고 쏴!”
  나탈리는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사격을 시작했다. 물론, 나는 볼 수 없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내 앞으로 지나가는 총탄의 수가 적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최소한의 회피기동만을 하면서 앞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격추! 격추! 2기 격추하고 다른 하나는 도망갔어! 창민아!]
  나탈리가 해치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이상 뒤쪽에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탈리, 내 상태좀 체크해줘.”
  [알았어, 잠시만.]
  나탈리의 기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탈리는 손을 한번 흔들고는 고개를 돌려 내 기체를 훑기 시작했다. 오른쪽, 그리고 롤로 반전해서 왼쪽.
  “어때?”
  [심각한데.]
  “좀더 자세하게.”
  [오른쪽 엘레베이터가 너덜너덜하고, 동체 왼쪽에 20mm 탄흔이 있어. 거기서 기름 계속 나오고 있고.]
  “유압일꺼야. 아직 연료는 30% 조금 넘게 남아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돌아갈 수 있겠어?]
  고도계 바늘은 대략 500에서 멈춰있었다. 겨우 500피트의 고도, 150m. 불안불안 하지만 어떻게든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응. 괜찮을 것 같아.”
  대답과 동시에 이곳 저곳에서 물기둥과 불기둥이 일어났다. 급강하 폭격 기사단의 공격이 시작된거다. 2척의 구축함과 경순양함 1척에서 불이 일었고, 뒤이어 항공모함 2척의 비행갑판에서 화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심해보이지는 않지만. 하지만 그건 지금 내가 신경쓸만한 일이 아니다. 내 연료 잔여량은 돌아갈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그것도 간당간당하다. 중간에 연료가 새버려서 해상에 불시착 해야 할지도 모른다. 랜딩기어가 나갔을 수도 있다. 내 전투기의 상태는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파파가이 01이 파파가이 00에게! 전투기 상태가 좋지 않아 항공모함으로 돌아간다. 현재 이후로 파파가이 편대의 지휘권은 파파가이 02, 사냐 공주에게 위임한다. 오바.”
  [파파가이 04다. 파파가이 01을 호위하겠다.]
  [알았어요, 창민경. 지휘권 인계 받고 전투 지휘할게요. 조심히 돌아가요.]
  나탈리의 전투기가 나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 붙었다. 익단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나탈리는 천으로 입가를 가린채 나를 따라 비행했다.
  “나탈리.”
  [응?]
  “위험해지면 그냥 도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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