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10 - 타치 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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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수천명의 인파의 환송식을 받으면서 출항식이 거행되었다. 오스트해 함대 사령관 체스트 니미즈 제독의 격려 축사와 함께 뱃고동을 울리면서 출항한 3척의 항공모함들 주위로 3척의 중순양함과 6척의 경순양함, 그리고 12척의 구축함들이 둘러쌌고, 뒤이어 급유선들과 물자 수송함 수척이 따라 붙었다. 우리의 모함인 ESS 호넷은 먼저 출항한 범블비와 엔터프라이즈를 따라 출항했는데, 워낙 상태가 심각했던 호넷을 작전이 가능할 정도로 수리해놓은 기술진들에게 정말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본토에 갔다와서 몰랐지만, 몇일동안 기술진들이 달라붙어 호넷을 수리했고, 단 5일이라는 기간만에 함을 작전 가능 상태까지 돌려 놓았다고 한다. 뭐 제대로 된 복구 청사진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효율을 위해 철판을 자르고, 구부려진 격벽을 두드려 펴고, 용접을 위해 일시적인 정전까지 하는 등……… 듣고보면 무서운 이야기들이다. 니미즈 제독의 축사는 새로운 전투에 나서는 장병들의 사기 진작과, 5일동안 고생한 잠도 못잔 기술자들을 위한 내용이었다. 라디오로 들려오기는 하지만, 사실 별로 들을 내용도 없지만. 우리는 지금 뭐하냐고? 우리는 지금 항구를 천천히 나가면서 속력을 내고 있는 호넷에 착함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3개 급강하 기사단과 1개 뇌격 기사단, 그리고 제 37 전투 항공 기사단은 이미 함내에 탑재된 상태지만, 우리는 출항 직후 3시간 동안 주변의 항공 초계를 맡았기 때문에 이렇게 하기로 결정되었다. 우리의 항해 목표는 바로 AF라고 알려진, 오스트해 중앙의 매치포인트 제도였다.
메치 포인트 제도는 산호 환초 위에 모래가 퇴적되어 생긴 제도로, 크게 2개의 섬과 수십개의 작은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3.5제곱 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큰 섬은 샌드섬으로, 육군 항공대의 기지가 있으며, 활주로도 넓어 B-17 중폭격기나 B-25 중형 폭격기도 이륙할 수 있는 거리였다. 1.5제곱 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이스터 섬에는 해군 항공대의 전투기 기지가 있으며, 섬의 반대쪽에는 수상기 기지도 있다. 원래라면 매치 포인트 제도의 항공 세력은 B-17 슈퍼포트리스 폭격기 17기, 블랙캣 전투기 6기, 구형 버펄로 전투기 20기에 기지 방어 인원 600명, 5인치 해안포 4문, 150mm 중포 2문, 1.1인치 대공포 8문이 전부겠지만, 니미즈 제독은 AF가 매치 포인트 제도라는 것을 감지하고는 바로 대대적은 전력 증강을 벌여 지금은 100여기의 항공기가 드글거리고 있는 거대한 항공기지로 변했다. 물론, 운용 가능한 활주로는 몇개 없어서 한번에 대량의 전투기를 발진시킬 수는 없지만, 중폭격기만 30기, 전투기 30여기, 급강하 폭격기 20여기에 아직 해군 항공모함 기사단도 받지 못한 신형 어벤저 뇌격기도 6기나 받을 수 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실전에는 참가해본 적이 없는 신참 비행사라는 점이지만, 숫적으로 어느정도 밀리지는 않으니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기지에 대한 방어 증강도 이루어져서, 기존의 대공포 말고 우리 필그림제 88mm 대공포도 4문이나 배치되었다. 사거리 4km라는 이 괴물 대공포는 분명 적의 구축함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을테니,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닐거다. 에르데 제국이 지금 당장 보유하고 있는 88mm 대공포가 100여문이 채 안된다는걸 생각하면,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오스트 함대의 전진기지 사파이어섬에도 88mm 대공포가 10문 정도밖에 배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니미즈 제독으로서는 사실상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니미즈 제독의 노력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지만.
제 38 기동부대, 제 16 기동부대, 제 7 기동부대, 그렇게 3개 기동부대 소속의 30여척의 함선은 좁은 사파이어만의 입구를 나간 즉시 각 기동부대별로 나뉘어 급속 서진을 시작했다. 앞으로 무려 일주일이나 계속될 항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지만 뭐 별 수 있나? 군인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지금은 초계에 집중하자.
“다들 피곤하냐?”
[이쪽은 문제 없는데요. 창민경, 피곤한가요?]
[창민아, 너 어제 10시에 잤는데 벌써 졸려?]
“아니. 다들 웬일로 무전망이 조용하길래 궁금해서 그런건데.”
[잠깐 작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단장님.]
[사실은 저도……. 아무래도 좀 이상하잖아요?]
사냐 공주와 나탈리는 여전히 매일이 즐거운 모양이지만, 에리카 대위나 유나 중위는 다행히도 조금 건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기사단 뿐만 아니라 우리 제 1 항공모함 전단 내에서도 후소 제국군의 공격 장소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어제 밤에 진행된 기사단장급 회의에 참석했을 때, 수많은 기사단장들이 육군 정보국의 자료를 바탕으로 제국 본토의 해안선을 공격한다고 믿고 있었다. 육군 항공대도 마찬가지 이유로 300기가 넘어가는 중폭격기들을 손에 틀어쥔 채 놓아주지 않고 있었고 말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 빌어먹을 AF라는 장소가 어디냐는 말이었다. 니미즈 제독과 해군 수뇌부는 매치 포인트 제도라고 믿고 있었지만, 육군 수뇌부와 황제, 그리고 제국 의회의 의원들은 대다수가 이 AF가 제국 서해안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후소 제국의 기술로는 그 먼거리에 병력을 보낼만한 여유가 전혀 없지만, 사파이어만 폭격에서도 눈뜨고 당한 그때의 그 강박 관념이 이들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그것도 너무 심하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대다수의 기사단장들도 그런 강박 관념에 시달리는 것 같고 말이다. 플레이크 제독과 스푸르언스 제독은 니미즈 제독의 정보라고 일축했지만, 그래도 기사단장들의 의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긴급 전문으로 배달된 전문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뭐야, 두사람 다 니미즈 제독의 말을 믿지 않는거야?”
[믿지 않는다기 보다…….. 조금 신중하다는게 좋다는 뜻입니다, 부단장님]
[맞아요. 지난번 사파이어 섬에서도 호되게 당했는데, 저놈들이 무슨짓을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예측을 할 수 있겠어요?]
“예측을 했다면?”
[[에?]]
“증거가 있다면, 믿을거야?”
[그건…..그렇지만……]
사실, 나도 반신반의 했던 내용이지만, 오늘 아침의 그 전문은 내 불안을 확실하게 날려버렸다. 니미즈 제독은 이러한 의구심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기발한 상상을 해냈다. 뭐, 사실은 암호 해독반의 공이지만. 암호 해독반은 해저에 부설된 유선 통신망을 통해, 섬의 담수화장치가 부족해 식수가 부족하다는 전문을 ‘평문 무전’으로 보내도록 시켰다고 한다. 만약 AF가 정말 매치포인트 제도라면, 후소 제국군은 이 전문에 반응할 터였다. 그리고, 이게 속임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후소 제국군은 그대로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다른 곳도 아닌, 육군 정보 사령부에서 해독해낸 내용에, ‘AF에 식수가 부족. 추후 담수화 장치가 필요함’이라는 전문이 잡힌 것이다! 아, 이 전문 읽고 얼마나 웃었는지. 어쨌든, AF가 매치포인트라는 것은 이제 확실해진 것이다.
[저….정말인가요?]
“나중에 착함하면 내가 전문 보여줄게, 중위.”
통신망은 순식간에 웃음으로 가득찼다. 멍청하게 넘어간 후소 제국군에 대한 비웃음과, 재치 있게 적을 속여넘긴 니미즈 제독에 대한 존경심이 담긴 웃음, 그리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길 수 있다는, 지피지기 백전불패라는 말처럼 이미 알고 임하는 싸움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담긴 웃음이었다.
2
일주일이라는 항해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지나갔다. 이번에는 초계에 임하는 내내 훈련을 해서 그런가? 경화와 지경이가 이쪽으로 넘어올 때, 둘은 PK 75의 기술 교범 뿐만 아니라 필그림의 훈련용 교과 책자도 갖고 왔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동 전술을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타치 위브요?"
맞다. 바로 타치 위브다. 과거, 우리 세계의 2차대전 때, 일본 제국의 제로 전투기에 맞서 미국 항공대의 와일드캣 편대가 펼친 기동 전술, ‘타치 위브’였다.
"타치라면........ 제국 고전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단장님?"
뱀? 아닌데........
"신화 얘기가 아니니까, 한번만 설명할거니까 잘 들어."
타치 위브, 개발자인 타치 소령 스스로는 '빔 방어 기동'이라고 부른 이 전투 기동은 기본적으로 간단하다. 2기의 전투기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서로를 향해 수평기동을 하면서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음........ 그러니까 꽈배기 모양으로 지나가면서......... 아니아니, 다시 처음부터. 자. 먼저 적기가 2기 편대 중 하나에 붙으면, 그래 이거야. 두 기체는 서로 꽈배기 모양으로 배배 꼬으면서 기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배배 꼬으면서, 적기를 끌고다니는 핫 윙맨(Hot Wingman)의 뒤쪽으로 사격을 가할 콜드 윙맨(Cold Wingman)이 접근, 적기를 격추시키는 것이다. 이건 방어기동이지만, 공격용으로도 전환 가능하다. 적기가 앞에서 가고 있을 때, 위브 기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기는 어느쪽으로 갈지 선택하면, 서로 교차하면서 기동하던 전투기중 하나는 적기의 꼬리를 물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적기가 기동성으로 아군기를 따돌린다면, 다른쪽에서 기동하던 또 다른 아군기에게 공격받게 되고, 이게 격추할때 까지 무한반복되는 거다. 별거 아닌, 굉장히 간단한 전술이지만, 2차대전 당시, 우리 세계의 제로센들을 향해 그 흉악한 성능을 드러낸 이 타치 위브를 내가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미군의 와일드캣과 이름부터 비슷한 우리 블랙캣 전투기와, 후소 제국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기와 일본 제국의 제로기의 성능이나 특징이 매우 비슷한 덕분이다. 지난 교전에서 1대 1.5의 교전비를 보여줬지만, 그정도로는 부족하다는게 내 생각이었고, 이번에 시험삼아 도입해보기로 결정했다. 사냐 공주는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OK라면서 바로 허가해줬고 말이다. 역시, 내 말을 들은 항공 기사들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오.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상황과 그때 부단장님의 세계에서의 상황이 놀랄 정도로 똑같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지. 기체 특성도, 전투 방식과 교리조차도 거의 동일하니까, 아마 이 타치 위브라는 것도 잘 먹힐거야."
"그렇다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이걸 사용해 보실 생각인가요?"
"훈련 해야지."
그리고 그 일주일동안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혹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 편대원들을 훈련시켰다. 물론, 플레이크 제독의 특별 허가를 받고 말이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설명하니 별다른 재고 없이 바로 결제해줘서 그 문제는 수월하게 풀렸고말이다. 어쨌뜬, 예상하지 못한 특훈 덕분에 다들 '타치'라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위브 기동을 시작할 정도가 되었다.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에 나탈리까지 나에게 와서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렸을 정도였지만, 나탈리, 이게 나중에 네 목숨을 구하게 될지, 누가 알아?
"하지만........"
삐빅 삐빅 삐빅
"시간 됐다. 나탈리, 훈련 시간인데?"
"에에에에? 조금만 쉬면 안돼?"
함에서 기사단원 10명과 함께 이함한 나는 팀을 2개로 나누었다. 오늘은 공격팀에 유나 중위와 미야 중위, 경화와 지경이, 펠츠 소위와 나탈리를 넣었고, 방어팀에는 나와 릴리엘 중위,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를 지정했다. 일부러 페어는 고정시키지 않고 마구 섞었다. 복잡한 전투 중에 훈련때와 똑같은 페어로 전투를 지속한다는 행운이 계속 따라오는건 아니니까.
"공격팀, 우리 보이나?"
[잘보여, 창민아. 간다.]
[명령만 내리시면 격추시켜드리겠습니다, 부단장님.]
"좋아, 그자세야, 유나 중위. 얼마든지 오라고!"
나는 유나중위의 패기 섞인 무전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사실 난 지금 저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먼저 적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다가오고 있는지를 찾아내야 기동에 들어갈 수 있다.
[다...단장님?]
"왜, 릴리엘 중위?"
[저.....적기를 찾은 거 같은데요......]
릴리엘 중위는 나에게 말을 거는게 쑥스러운지 말끝을 흐리면서 말을 했다. 이해는 가지만....... 이거 실전이면 어떻게 하려고?!
"어디야?"
[그....그게.....하윽......]
"중위! 자신감을 갖고 침착하게 얘기해!"
[아니......그게......]
[7시 방향, 거리 1km 남짓인 것 같습니다, 부단장님.]
[저도 확인 했어요. 너무 릴리엘을 다그치지 마세요, 창민경.]
다그친건 아니지만 이런 태도로는 실제 전투에서 위험한데 말이지. 뭐, 일단은 지금 훈련에 집중하고 천천히 고쳐나가야겠다. 아직 저쪽에 도착하려면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자, 다들 준비 됐지?"
[준비 완료!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요?]
[저도 준비 됐습니다, 부단장님. 릴리엘 중위는 제쪽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저도.....흑......]
넌 왜 우냐?
"좋아, 에리카 대위가 릴리엘 중위 데리고 가고. 사냐 공주는 나한테 붙고."
[오케이!]
"자 준비 됐지? 하나, 둘, 셋, 타치!"
릴리엘 중위의 전투기와 에리카 중위의 전투기가 방향을 틀어 멀어져감과 동시에 나는 바로 '타치'를 외쳤다. 그리고 나는 근 몇일간 했던 훈련의 반사 행동 덕분에 바로 왼쪽으로 기체를 꺾었다. 위쪽을 올려다보니 사냐 공주도 나를 향해 꺾는게 보이는군.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교차하면서 기동하는 나와 사냐 공주를 향해 3기의 공격팀 전투기가 달려들었다. 유나하고 경화......그리고 나탈리냐!
[창민이는 아무도 건드리지마! 내가 직접 격추시킬거야!]
나탈리는 아예 불을 켜고 나에게 달려든다. 아무래도 내가 핫 윙맨이 된 것 같군. 나는 엔진 속도를 높혀 사냐 공주의 전투기보다 조금 속도를 올린 다음, 내 뒤에 따라 붙은 3기의 전투기를 그대로 꼬리에 매단 채 질질 끌고 갔다. 쉭쉭,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훈련용 페인트탄 수십발이 캐노피 너머로 지나갔지만, 다행이 맞지는 않았다.
[이창민! 거기 똑바로 안있어?! 감히 나를 두고 사냐 공주를 선택해!]
"나탈리! 이거 훈련이거든! 제발 정신 좀 차려!"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나를 격추하지 못해 안달이났냐, 나탈리?! 나탈리 양 옆으로 후소 제국군의 기본 편대 대형인 '쇼타이' 대형을 짠 유나 중위와 이지경의 전투기가 따라 붙으면서 내 회피 기동을 차단했다. 오른쪽으로 롤을 하면 유나 중위의 주황색 페인트탄이 캐노피 위쪽으로 날아가고, 왼쪽으로 롤을 하면 이지경 녀석의 붉은색 페인트탄이 날아가는 상황이니......... 사냐 공주는 어디에 있는거야? 나는 타치 위브 기동을 하면서 세사람을 피해 큰 곡선을 그리면서 호를 그렸고, 반원의 중간쯤, 그러니까 원호의 한 1분의 4 지점에 왔을 때 다시 기체를 뒤집어 선회를 시도했다. 이쯤 왔으면 슬슬 사냐 공주가...........
[창민경! 뒤에 잡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으아....... 드디어 잡았나보다. 사냐 공주의 노란색 페인트탄 몇발이 뒤에서 앞으로 쉭쉭 지나가고, 세 사람은 뒤에 붙은 사냐 공주를 떨쳐내기 위해 편대를 분리하고 3방향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나도 하나의 꼬리를 잡기 위해 선회를 하려고 했지만........
파파팍
어....어라?
"헤헤. 미안해요, 창민경. 설마 나탈리 중위나 유나 중위가 그렇게 빨리 산개할 줄은 몰랐거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팀킬을 하면 어떻해!"
훈련이 끝나고 나에게 변명을 하려던 사냐 공주는 내 고함에 순간 움찔 했다. 조금 놀란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고.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나를 쏘면 어떻해? 응?
"쳇, 창민이는 내가 격추시키려고 했는데."
"헤헤. 나탈리경, 다음에는 양보할게요."
잠깐만, 그건 양보할 만한 사항이 아니잖아, 응?
3
5월 31일, 에르데 제국 해군 제 1 항공모함 전단, 그러니까 우리는 매치포인트 섬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수역에 도착했다. 하늘에는 매치포인트 섬에서 출격한 육군 항공 기사단과 해군 항공 기사단 기체들이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환영했고, 우리도 대응 편대를 출격시켜 답례를 해줬다.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6척이라는 대부대이자, 에르데 제국 해군에게 남은 몇 안되는, 아니, 마지막으로 남은 전 재산이 바로 이 12척의 주력함으로 이루어진 함대였다. 이거, 니미즈 제독이 황제한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캐리어, 아니 전선이 남아 있으니......' 뭐 이런 장계를 쓴건 아니겠.....지? 후소 제국군이 어디쯤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최소한 먼저 도착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우리가 유리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매치포인트 주변 해역에는 에르데 제국의 잠수함대가 전개되어 있으니, 우리가 할 일은 항공 정찰로 적 함대를 발견하는 것 뿐이었다. 언제 전투가 시작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44 기사단장의 부기사단장으로서 우리 기사단원들에게 사기를 진작시켜줄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가오는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기체 최종 점검 때 모두를 모아 놓고 일장 훈시를 했다.
"제 44 항공 기사단 소속 기사단원 8명, 전부 집결 완료했습니다."
물론, 나는 사냐 공주에게 귀띔을 해서 기사단장이자 공주로서 몇마디 하라고 언질을 주었다. 아무리 밖에서는 내가 기사단장의 대접을 받는다지만, 일단 사냐 공주가 기사단장이니까. 사실, 사냐 공주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 말이다.
"저는 할 말이 없어요. 여러분을 믿으니까, 다들 잘 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아무런 선전 포고도 없이 우리를 기습한 비열한 후소 제국을 응징하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고, 잊을 수도 없는 치욕의 날에 죽어간 우리 동포들의 복수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하는거에요. 알았나요?"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서 절대 에르데 제국의 기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안되요.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모두 알고 있죠?"
""예!""
"창민경? 부기사단장으로서, 할말 있어요?"
할말은 많지. 하지만 짧게 줄여야지. 사냐 공주가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절반은 한 것 같으니까.
"내가 할 말은 이미 사냐 공주가 한 것 같으니까, 짧게 끝낼게."
이 말, 나 전에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 해볼 수 있었다.
"나에게 10명의 죽은 영웅보다 한사람의 살아 돌아온 초보 조종사가 더 중요하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라. 이번에 전사하면 내가 변명 안듣고 지옥까지 쫒아가서 죽일테니까."
기사단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다행이다. 사실 나는 지금 긴장된다. 우리의 상대는 무려 4개의 항공모함에서 이함하는 적 항공기 200여대다. 어쩌면 숫적으로, 그리고 실력으로도 밀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과 긴장은 기사단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일거다. 이렇게 하면서, 두려움과 긴장 대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이나마 생길 수 있을테니까.
"내일 아침부터 후소 제국 기동 함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전부 비상 대기 체제니까, 오늘 저녁은 배불리 먹고 일찍 자두도록. 이상"
4
그날 오후 저녁은 평화롭게 지나갔다. 선내 식당에서는 그날 웬일로 일반 전투 식량이 아닌 빠따따 파스텔과 마펠 시럽을 내주었고, 덕분에 모두들 즐기면서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웬지 모르게 나에게는 산채로 먹는 반합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정말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다. 다음날 아침에 작전 수역에 도착하게 되기 때문에 플레이크 제독은 모두에게 일찍 취침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우리 제 38 기동부대는 필수 운용 인원들을 제외하고 전원 9시에 취침에 들어갔다. 군인이, 평시도 아닌 작전 중에, 9시에 말이다! 물론, 나는 쉽게 잘 수 없었지만. 나탈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한번 더 작전 계획서와 감청된 후소 제국의 이동 계획, 그리고 작전 해역의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한번 더 지형을 공부했다. 지형지물을 대조할 수 없는 이런 넓은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믿을 수 있는건 다른 무엇도 아닌 나침반과 지도 뿐이니까, 한번더 경로 변경점과 항로를 확실하게 암기해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깡깡
아니, 아무래도 글른 것 같군.
문을 열어보니 사냐 공주가 있었다. 나참, 일찍들 자라니까.....가 아니라, 사냐 공주는 불면증이 있었지. 그것도 이렇게 전투에 참여하기 직전에만.
"잠이 안와?"
"헤헤헤헤. 좀 실례할게요."
"들어와."
사냐 공주는 멋쩍은듯이 웃으면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제가 뭘 방해 했나요?"
"아니. 어차피 금방 자려던 참이었으니까 상관은 없는데."
사냐 공주의 말을 가볍게 넘기면서 침대를 대충 정리한 나는 책상 앞에서 서있던 사냐 공주에게 다가갔다. 잠깐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지 그저 골똘히 지도만 들여다보고 있던 사냐 공주의 어깨에 손을 감고, 다리에도 팔을 감은 다음 번쩍, 들어올렸다. 이른바 1인 도수 운반법이다. 그냥 전에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던거고, 흑심이나 딴생각 같은거 한적 없다. 맹세코 말이다.
"으쌰"
"차차차차차창민경?"
"빨리 자야지. 너도."
사냐 공주는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아니, 부끄러울만도 하군. 다 큰 처자가 남자에게 안겨 있으니 말이야. 뭐, 나도 안부끄러운건 아니지만, 지금 깨있는 사람은 나와 사냐 공주밖에 없으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사냐 공주를 침대 안쪽으로 눕힌 나는 불을 끄고 그 옆에 누웠다. 음....... 기분 묘하네.
"기분이 묘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저는 창민경하고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게 아닌가보네요."
아니, 이런건 친해도 어색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하지만........."
나는 그만 말하고 잠자라는 의미에서 사냐 공주에게 팔배게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 의도대로 사냐 공주는 내가 팔배게를 해준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지 헤벌쭉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아...... 드디어 잘 수 있으려.......
"창민.........."
아니, 글럿군. 분노의 화신이 된 나탈리가 어떻게 깼는지 무시무시한 검은 오오라를 사방으로 날리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하아...... 하는 수 없나? 나는 내 오른쪽의 이불을 살짝 걷어 내면서 침대를 팡팡, 두번 두들겼고, 그제서야 나탈리는 오오라를 잠재우며 내 옆으로 기어들어왔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베시시 웃으면서 말이다.
"헤헤."
".........자라."
아무래도 나탈리는 코랄해 해전 이후로 예전처럼 대하기 힘들어진 것 같지만....... 뭐 지금은 상관 없나. 일단은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