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11 - 후소를 찾아서
1
삑 삑 삑 삑
비상벨이 짧게 네번 울리는 소리에 나는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났다. 현재 시각은 기상 시각 20분 전인 오전 2시 40분. 아직 항공기들의 작전 가능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이른 아침식사와 브리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승조원들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후소 제국의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이곳, 그러니까 매치포인트 환초에 도달하는 예상 시각은 6월 초였지만, 정확하게 몇일인지는 모른다는게 함정이다. 암호 해독반도 거기까지는 해독을 못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함대 사령관 스푸르언스 제독은 매치포인트 제도와 제 1 항공모함 전단에 배치된 모든 정찰기 전력을 투입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후소 제국 함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망원경 작전(Operation Telescope)'라고 명명된 이 작전은 후소 제국의 함대를 제도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선제 발견한다는 작전 목표를 갖고 있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6기의 카탈리나 수상기, 25기의 B-17 폭격기, 돈틀리스 폭격기 - 항속거리가 길어서 기동부대에서는 정찰기 대용으로 사용한다. 제한적인 공중전 임무까지 맡을 수 있으니까 - 40여기, 그리고 전진 배치된 해군 정찰대대의 쌍발 고속 정찰기 6기, 다 합쳐서 80여기에 달하는 항공기들이 반경 1000km에 달하는 매치포인트 환초 주변 해역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거기다 제 21 잠수함대 '언더 워터' 소속 잠수함 8척이 원양에 배치되어 후소 제국의 함대를 찾아 초계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말이다. 항속거리가 짧은 우리 블랙캣 전투기들은 정찰 대신 함대 방공 및 근거리 초계에 들어갔지만, 틈이 나는 대로 드롭탱크 3개를 주렁주렁 장착한 다음 중거리 초계에도 나갔다.급강하 기사단들은 원양 초계를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대함 공격대의 숫적 주력을 차지하는, 그리고 에리카 대위 왈 ‘토피도 주스 만드는데만 쓸모 있는 거지 같은 어뢰’ 때문에 실질적인 대함 공격력이기도 한 급강하 기사단은 시대의 명기체 돈틀리스 덕분에 정말 혹사 아닌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초계 활동은 못해도 4시간은 계속되었고, 2시간 간격으로 초계 편대가 계속해서 발진해서 함대 앞쪽을 감시했다. 물론, 이들의 이륙과 착륙을 관제하는 LTO(착륙 관제 장교, Landing Traffic Officer)나 항속거리의 끝까지 다녀온 기체를 정비하는 정비병들도 심각하게 피로가 축적되고 있었지만, 4시간이 넘는 긴 비행동안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한채 조종석에 앉아 아무것도 없는 오스트해 수면을 살피는 급강하 기사단 항공기사들의 피로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였다.특히, 대다수의 인원들의 피로가 대부분 자신들이 맡은 임무의 막중함에 의한 압력에서 오는 것으로, 사실상 기동함대의 눈이나 다름없는 이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정신적 압박을 받으며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는 심각한 비전투 손실을 불러왔다. 처음 이틀, 그러니까 6월 1일과 6월 2일까지는 어느정도 괜찮았지만, 3일째 되던 날인 6월 3일에는 하룻동안 계속된 초계 활동에 5기가 넘는 돈틀리스를 비전투손실로 완전손실했고, 3명의 유능한 항공기사가 전사해버렸다.물론, 이들의 죽음이 빡빡한 초계 일정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계속되는 긴장감은 급강하 기사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러니까 일반적인 항공 기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계속된 나쁜 소식 – 적들이 4일이 넘게 보이지 않자 몇몇 기사들은 적 함대가 기동함대를 우회, 제국 서해안으로 직접 가고있다고 믿게 되었다 – 에 다들 무기력해진 것이다.
“기사단의 대부분의 단원들의 전투 의욕이 급감했습니다, 부단장님.”
일단 에리카 대위의 말에 따르면, 유나 중위나 미야 중위는 침대에 널브러져서 가만히 누워있다고 한다.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고.
“뭔가, 조치를 취하는게 나을까?”
“글쎄요.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그나마 이 기사단에서 믿을만한 사람은 에리카 대위인데, 어쩌란 말이냐? 응?
“…….죄송합니다.”
미안해할건 없는데 말이지.
“흐아아아아………… 심심해………”
전투 의욕 상실은 의외로 심각한 문제다.다른 기사들은 내가 잘 아는게 아니니 그럴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와 지금까지 같이 행동해온 나탈리 조차도 무기력함에 물들어버렸다. 평소와 같은 쾌활함을 유지하면서 지내던 나탈리가 조용히 내 옆에 앉아 멍 때리고 있다니, 이게 믿을만한 일이냐고?
“심심해……..”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건 심심하다고 중얼거리는 나탈리를 살짝 안아주는 것 뿐이었지만, 나탈리는 그걸로 충분한지 그냥 안긴채 눈을 감고 잠들었다.하아…….. 하지만 상태가 조금 심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냐 공주는?”
“그게………”
“안자지?”
“예………부단장님께서 뭐라 한마디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지난 코랄해 해전때도 그랬지만, 사냐 공주는 조금 특별한 불면증이 있다. 전투 전날에는 잠을 못자는거 말이다. 평소 같으면 하루 못자고 말텐데, 전투 대기 상태가 4일이 넘게 계속되다보니 사냐 공주는 4일째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잠을 잘 수가 없다나, 뭐라나? 에리카 대위와 플레이크 제독이 직접 와서 제발 잠을 자라고 간청을 했고, 아예 헌병대를 붙혀 사냐 공주를 방 안에 감금하다시피 했지만 사냐 공주는 누워도 잠을 자지 모샇고 5분만에 뛰쳐나와버렸다.그런데, 내가 간다고 해서 뭐가 해결될까?뭐, 에리카 대위에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겠지만.
“부단장님.”
“알았어. 한번 가볼게. 그런데 그전에, 수면제 있어?”
에리카 대위에게 멜라토닌이 많이 포함된 강력한 수면제를 받아든 나는 사냐 공주의 방으로 갔다.수면제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일단 지금은 그거라도 먹여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으니까. 72시간이나 깨어 있으면서 제대로 된 정신 상태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사냐 공주는 우리 편대의 에이스 중에 한사람이니, 절대 빠져서 안될 전력이기도 하고, 내가 개인적으로도 걱정되기 때문에 더더욱 먹일 수 밖에 없다.
사냐 공주의 방, 그러니까 귀빈실 앞에 멈춰선 나는 헌병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자리를 물린 다음 철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철컥, 빗장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두눈 아랫쪽에 커다란 다크서클이 생긴 채 퀭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냐 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살아 있는 해골이나 좀비 같은 모습이다. 안그래도 창백한 얼굴은 더더욱 창백해서 무슨 죽은지 1주일은 넘은 시체 같은 모습이고,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흐느적 거리는걸 보면 정말 안쓰러울 지경이다.
“창민경……? 무슨……일이에요……?”
“아직도 못잔거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잠을 자야 정신을 차리고 싸우기라도 하지. 빨리 자.”
“하지만……… 눕기만 하면………..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출격………”
“네가 자고 있을 때 출격 명령 떨어지면 내가 업어서라도 데려갈테니까 일단 자라, 응?”
“하지만………”
“잠을 자야 제대로 된 정신으로 싸울거 아니야? 응?이거라도 먹고 자.”
나는 사냐 공주에게 갈색 병의 수면제를 건넸지만, 사냐 공주는 입을 앙 다문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반항하려고?
“불면증이라며. 이거라도 먹고 빨리 자야지.”
“싫어요………..”
“왜?”
이유는 이야기 하지 않는 사냐 공주. 하지만 내가 먹이려고 하면 느리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피한다. 나참. 그렇다면 나도 강경책을 쓸 수 밖에.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가있는 사냐 공주의 입가로 수면제를 가져갔고, 그걸 피하기 위해 사냐 공주는 다시 한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지만………. 나는 재빨리 사냐 공주의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눌러서 돌아가는 고개를 붙잡았다. 내 행동에 놀란 사냐 공주가 격렬하게 고개를 움직이면서 반항하려고 했지만…….. 나는 더더욱 힘을 주면서 사냐 공주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좀 그만좀 움직여!”
“창민경!무례하게 이게 뭐하는거에요?”
미안.하지만 일단 무례한 행동이든 아니든, 나는 이걸 네게 먹여야겠다고! 사냐 공주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가 다시 앞으로 튀어나왔고, 정말 우연히도, 나는 내 입을 향해 날아오는 사냐 공주의 이마를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부딛혀버렸다. 아야야야…….. 입가에서 뭔가 비릿한 맛이 나는걸 보면 입 안쪽이 찢어진 것 같군………..
“차….차…..차……창……”
“아야야……….너 괜찮냐?”
나는 사냐 공주의 이마를 살폈다. 아까 내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약간 묻었는지 붉은빛 액체가 묻어 있었고, 나는 그곳을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사냐 공주의 얼굴이 아까와 같은 시체의 창백한 하얀색이 아닌, 잘 익은 능금처럼 붉게 물들어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왜 그러냐?솔직하게, 지금 왜 사냐 공주의 얼굴이 붉어졌는지 모르겠다.
“응?”
“창민…….차……”
일단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재빨리 수면제의 병을 따서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이마를 문지르며 가만히 앉아있는 사냐 공주의 등을 오른손으로 받치고, 마치 아이에게 우유을 먹이듯 수면제를 사냐 공주의 입 안에 흘려넣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사냐 공주는 수면제 한병을 그대로 비웠고, 나는 아직도 이마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굳어있는 사냐 공주를 침대에 뉘인 다음 이불을 덮어주었다.사냐 공주는 계속해서 내 이름을 몇번 부르더니 곧 잠들었고 말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거 설마 이마에 키스한걸로 생각되는건가?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분명………..
그 일로 사냐 공주는 잘 잠들었고, 나는 다른 기사단 단원들을 모아놓고 오후 시간 내내 비행 훈련과 전투 기동 훈련을 계속하면서 모두를 바쁘게 만들었다. 일부러 모두를 바쁘게 유지시킨거다. 사실 그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고, 진작에 실행했어야 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중요한 사실은 어제 하루종일 바쁘게 만든 덕분에 이제는 다들 전투 의지를 어느정도 회복 했고, 무력감과 지루함에서도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즉, 최소한 우리 기사단 만큼은 제대로된 전투 수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6월 3일을 보내고 6월 4일 아침을 맞았을 때, 드디어 모든게 시작했다.
2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오전 4시 49분.함대 초계가 주 임무인 우리 기사단의 기상시각인 5시 약간 전이다.
[대위님, 일어나셨습니까?]
당직병인가보다.
“방금 일어났는데?”
[지금 즉시 각 기사단의 지휘관들은 브리핑실로 집합하시라는 플레이크 제독 각하의 명령입니다.]
“금방 가지.”
대충 제복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대답한 나는 간단한 세수만 하고 대위용 군모를 눌러쓴 채 당번병을 따라 브리핑실로 들어갔다. 사냐 공주는……… 없군. 간단하게 목례로 기사단장들과 아침 인사를 나눈 다음 나는 사냐 공주를 찾아보기 위해 당번병을 부르려고 했지만, 플레이크 제독이 들어오는 바람에 미처 전달하지를 못했다.
“모두 왔나.”
주변을 한번 둘러본 플레이크 제독은 부관이 넘겨주는 해도를 짚으면서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사냐 공주가 오지 않았지만……… 뭐, 내가 듣고 전달 하면 되는 일인가?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니까, 상관은 없겠지.
“10분 전, 그러니까 4시 33분경, 매치포인트 제독에서 북서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서 아군 잠수함이 후소 함대를 발견했네. 현재 보고로는 전함 3척이 확인되었다고 하며, 항공모함과의 접촉 보고는 없네.하지만, 아군 감청 결과에는 분명 항공모함 함대가 존재했으므로, 이들은 그 전위 부대라고 예상하고 있네.새벽 4시 45분을 기점으로 매치포인트 섬에서 발진시킨 장거리 폭격기들과 카탈리나 비행정들이 폭탄과 어뢰를 장착하고 전투 초계에 들어갔네.”
북서쪽 500km 지점에서 전함 4척이라. 매치포인트 섬에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5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다. 전위부대가 5시간 거리라면, 우리가 준비하고 기습할 시간은 충분하겠지.
“뇌격 기사단과 급강하 폭격 기사단은 대함 공격대에 포함될 것이며,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우리 함대는 3개 기동 전단으로 분리, 우리는 아스토리아와 에온의 호위를 받으며 중앙에 위치할 엔터프라이즈의 16 기동부대와 30km의 거리를 유지하며 북쪽으로 항질할 것이네.”
플레이크 제독은 주요 경로 변경점, 그러니까 웨이포인트들을 찍어주면서 설명을 계속했고, 우리는 그것을 기사단장용 항법 지도에 적어넣으면서 마킹을 계속했다.이른바 포인트 옵션(Point Option)이라고 불리는 이거,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길을 잃고 중간에 돌아오게 될 경우, 예상된 침로를 알고 이동하는 것과 무작정 찾아 나서는건 정말 천지차이다. 일단, 귀환할 확률 자체가 커진다. 내가 어디로 이동해야 모함과 만날 수 있을지 대충 예상할 수 있고, 설사 귀환하지 못한다더라도 함대 근처로 접근하면구조할 확률이 올라간다.내가 우리 기사단 전용 지도에 포인트 옵션을 기입하는 사이, 플레이크 제독은 말을 계속했다.
“우리의 작전 목표는 이전에도 설명 했듯이, 적 항공모함 세력의 격멸이며, 전위로 발견된 적 전함군 주변을 우리 폭격기들과 수상기들이 샅샅이 뒤지고 있네. 각 기사단은 적 함대가 발견되는 대로 발진을 시작해야 하니 공격대를 맡은 기사단장들은 각 기체의 최종점검을 끝내고 대기 상태에 들어가도록.이상일세.”
플레이크 제독이 명령이 떨어진 직후, 나는 기사단 전원을 기상시킨 다음 기사단 전체의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기체 상태는 이미 정비병들이 손을 보았기 때문에 굳이 확인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확실히 하는 절차에서 무전기, 무장, 연료 상태, 기체 상태를 꼼꼼하게 검사시켰다. 물론 내 기체는 내가 직접 검사하고 말이다. 지난 코랄해 해전과는 달리, 이번 매치 포인트 환초에서 벌어지는 이 해전에서 우리 블랙캣 전투기들은 날개에 무거운 대함 공격용 철갑탄을 장착할 필요가 없어 보조 연료탱크를 동체 밑에 다는 것으로 항속거리를 더욱 늘릴 수 있었다. 원래 에르데 제국 항공대의 교리는 강력한 전투기 기사단 다수를 집중 운용한 제공권 장악을 통해 소수의 돈틀리스와 데바스테이터 공격기들이 대함공격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지난 코랄해 해전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는게 발혀졌다. 일단, 데바스테이터의 마크 13 항공 어뢰들은 목숨걸고 투하해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서 사실상 대함 공격 능력이 전무한데다, 돈틀리스 12기에 탑재된 225kg급의 폭탄 2발이나 450kg 폭탄 1발로는 폭장량이 부족해 제대로 된 대함 공격을 수행할 수 없었다. 급강하 폭격은 어뢰와는 달리 갑판을 타격하는 방식이라, 함의 척추나 다름없는 용골을 공격할 수 없으니까 더 강한 공격력이 필요한데, 고작 450kg 폭탄 몇발의 지근탄으로는 사실상 격침이 힘든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그래서 이번에는 급강하 기사단 3개, 뇌격 기사단 1개, 그리고 전투 항공 기사단 2개로 편제를 변경했다. 돈틀리스가 효과적인 방어진을 짜면 적기의 요격에도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전투기니까, 우리는 돈틀리스와 데바스테이터들을 요격하는 후소 제국의 제로 전투기들만 상대하면 된다. 무거운 폭탄을 날개에 달지 않고도 말이다.이 사실은 우리 기사단을 포함해 많은 항공 기사들을 들뜨게 했는데,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거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급강하 해서 적 함선을 공격하지 않아도 되고, 단순히 적기의 요격에만 전념하면 되니까 말이다. 안그래도 이 무식한 폭장 방식 덕분에 몇명의 에이스들이 공중전이 아닌 대함 공격 중 격추되어 사기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걸 그만 둔다는건 굉장히 반길만한 소식이다.
“이제는 좀 제대로 싸울 수 있겠군요, 부단장님.”
“그렇게, 에리카. 이제 창민경을 따라잡기 위해 경쟁하는거야!”
누가 경쟁을 한다는거냐………
플레이크 제독의 명령이 덜어진지 4시간 뒤, ESS 호넷의 6개 기사단 소속 기체 74기는 전부 최종 점검 및 무장 장착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대함 공격군, 그러니까 3개 돈틀리스 기사단과 우리 44 기사단, 그리고 1개 뇌격 기사단은 비행 갑판 위에서 브레이크를 걸어놓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최선두에는 마크 13 항공 어뢰를 장착한 뇌격 기사단이, 제 6 정찰 급강하 기사단 소속의 돈틀리스 12기가 짧은 활주를 위해 가벼운 225kg – 어디까지나 비교적 가볍다는거다!! – 철갑탄을 장착하고 엔진을 예열시키고 있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44 기사단이 대기하고 있었다.내 명령으로 천천히 예열을 시작한 우리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은 매치 포인트 전투기 편대의 무전 통신 주파수를 감청한 나탈리 덕분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받을 수 있었다.
[B-17 폭격기 편대가 출격했다는데? 카탈리나 14번기가 350km 서쪽에서 적 상륙 함대를 발견했다나봐.]
“뇌격이래? 고공 폭격기로?”
[수평 폭격일겁니다. 지난번에 제 오라버니 되는 인간의 말에 따르면 B-17은 어뢰 장착이 불가능하다더군요.]
에리카 대위……… 그 무전 전 편대에 공유된건데 그런 표현 쓰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쳇, 아일린 언니가 B-17에 타고 있네요. 맨날 전투에 나가기는 무섭다고 울고불고 하던 공주님께서 웬일이래?]
출격한 B-17 편대는 아일린 공주가 이끌고 있나보다. 사냐 공주는 굉장히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내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나온게 중요하니까 뭐라고 하지는 말고. 지금은 앞으로 있을 전투에나 집중하라고.”
[예………..]
3
그 다음 4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전투기에서 발진 대기하면서 무전으로 소식을 들었고 말이다. 조종석에 4시간 동안 계속 앉아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지루하다고 말할만한 시간이었다. 뭐, 다들 그 다음에 있을 대규모 전투에 긴장한 모양이지만 말이지.
뭐, 전황은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쪽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도모나가’라고 알려진 비행대장이 이끄는 항공대가 후소 제국군의 침공 함대를 떠나 매치포인트로 향했다.하지만 도데체 언제 따라붙었는지, 카탈리나 수상 정찰기 1기가 뒤에서 따라 붙어서 조용히 날아오다가, 매치포인트에서 스크램블을 위해 이륙한 요격기 부대가 공격 하기 직전 조명탄을 투하해버려 침투 고도, 속도, 규모, 대형 등이 전부 노출되어 버렸다.그리고 평소에 그 크기에 비해 두꺼운 장갑 강판을 덕지덕지 둘러 정비병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카탈리나 정찰기는 무려 6기의 제로에게 쫒기면서도 주익에 구멍이 좀 나는 정도의, 정말 말 그대로 ‘사소한’ 피해를 입고 도망쳐버리는데 성공했으며, 고도 3000피트에서 접근하던 후소 제국군들은 이 카탈리나 정찰기에 의하여 그대로 노출이 되어버려 4500피트에서 대기하다가 급강하해서 기습한 매치 포인트 요격기 편대에게 급강하 폭격기 1기와 제로기 1기가 격추되어버렸다. 물론, 우리의 행운은 딱 여기까지였지만.
[드,뒤에 붙었…..!]
[서…선회를 따라갈……]
우리가 감청하고 있던 매치 포인트 요격기 편대의 편대망은 5분되지 않아 기습 직후의 환호에서 절망으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애시당초, 개발된지 10년은 더 지난 구식 기체인 버펄로를 투입한게 분명했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제로기와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그리고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이 블랙캣 전투기도 6기나 있었으니까, 단순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조종사의 기량 문제였다. 특히,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막 비행학교를 졸업한 신참인지 제로기들에게 선회전을 걸어버리는 실수를 해버렸고, 결국 편대장인 핸더슨 소령을 비롯한 모든 기체가 격추되거나 불시착해버렸다고 한다.단 2기의 피해를 입은 후소 제국군의 공격대가 신나게 섬을 폭격했다는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거라고 생각한다. 하나 다행인건 매치 포인트 섬은 니미즈 제독의 엄청난 지원으로 어느정도 대공 방어체계가 갖춰진 덕분에 그 폭격 규모에 비해서는 사상자 100여명이라는 가벼운 피해로 끝났고, 오히려 우리 필그림의 88mm 대공포들과 기타 5인치 양용포, 20mm 대공포들의 신나는 사격으로 11기에 이르는 후소 제국의 D3A발(Val) 급강하 폭격기와 제로 전투기를 격추하고 그 외에도 다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거다.항공 장교로서, 요격기가 아닌 대공포화에 더욱 높은 대공 전과를 올렸다는게 조금 씁쓸하지만, 일단 지금의 전황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참을성 있게 조용히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이제 우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전 편대 발진 준비. 통상 출격으로 공격대를 형성한다. 매치포인트에서 죽어간 우리 동료들과 형제들과 가족들의 복수를 시작할 때다! 모두에게 무운을! 황제 폐하에게 영광을!]
플레이크 제독의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고, 그와 동시에 관제 장교들의 유도로 선두에 위치한 뇌격 기사단의 데바스테이터들이 출력을 높이며 활주를 시작했다. 정찰에 나선 아일린 공주의 폭격기 편대가 항공모함을 발견한 사실을 우리에게 통보한 것이었다. 발견 직후 고공 폭격에 들어간 아일린 공주의 B-17 폭격기 4기는 500파운드급, 그러니까 250kg급 고폭탄 32발을 투하했지만, 고도 3만 피트에서 떨어지는 폭탄들이 해수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30초나 기다려야 했고, 후소 제국 함선들은 여유 만만하게 모두 피했다. 지근탄 한발조차 명중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뭐, 원래 고공 폭격으로 함선을 맞춘다는게 낙타가 바늘구멍 사이로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라서 기대도 안했다만, 조금 맥빠지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출격하는 것이니까. 아일린 공주와 사냐 공주가 목이 터지도록 외쳐대는 복수의 시간이, 드디어 다가왔다. 어느새 앞에 있던 돈틀리스 36기와 뇌격기 12기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노란색 옷의 이륙 담당 장교의 수신호와 함께 나는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엔진 출력이 100%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그와 동시에 이륙 담당관의 흰색 장갑이 허공에서 크게 원을 그린 다음 함수 방향을 가리켰다. 브레이크가 풀리자마자 블랙캣은 천천히 목재 갑판에서 활주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익숙한 느낌과 함께 나는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오늘같이 맑은 푸른 하늘에서 나를 기다리는건 건투를 빈다는 의미로 날개를 흔드는 전투 초계기 4기 뿐이었다. 나는 항공모함 주위를 천천히 선회하며 우리 기사단이 집결하기를 기다린 다음, 최후미에서 이륙한 펠츠 소위의 전투기가 이륙함과 동시에 커다란 역 V자 대형을 짜서 남서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자, 지금 부터는 시간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