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12 - Operation Heater Sh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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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에서 출격할 때는 2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지연 출격과 통상 출격이다. 지연 출격(deferred departure)은 항속거리가 긴 돈틀리스를 운용하는 급강하 기사단이 먼저 출격하고, 그 뒤를 전투기들이, 마지막으로 항속거리가 가장 짧은 뇌격기 편대가 이륙해서 대함 공격군을 꾸려 출격하는 방식으로, 먼저 이륙한 급강하 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항속거리가 짧고 느린 뇌격기들과 함께 편대를 짜서 이동하는 것으로, 확실한 공중 엄호를 제공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항속거리가 짧아지고, 신속한 공격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미 코랄해 해전에서 레인저를 이렇게 잃어버린 플레이크 제독이 선택한건 지연 출격이 아닌 통상 출격이었다. 통상 출격은 속도가 느린 뇌격기가 먼저, 그다음 돈틀레스가, 마지막으로 가장 빠른 블랙캣 전투기들이 출격해서 적 함대를 날아가는 와중 속도차를 통해 자연스럽게 편대를 맞추는 것으로, 공격대의 신속 전개가 가능하 함대가 빨리 이탈할 수 있고, 기다리면서 연료를 낭비할 필요가 없이 항속거리를 최대한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망망 대해의 바다에서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운이 좋으면 한번에 만나겠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구름만이 듬성듬성 떠있는 거대한 오스트해의 바다에서 그렇게 운 좋은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륙한지 30분만에 나는 기사단을 4개 그룹으로 쪼개 부채꼴로 수색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는건 없었다. 젠장, 안보이는걸 어쩌라고?나는 내 뒤에서 따라오는 릴리엘 중위에게 날개를 까딱여서 신호를 보낸 다음 오른쪽으로 선회했고, 중위도 신호를 수신했는지 나를 따라왔다. 나탈리가 아니라서 놀랐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망망대해에서 정확한 항로를 찾지 못하면 길 잃는거야 정말 식은죽 먹기니까. 문제는 미야 중위였다. 펠츠 소위 같은 경우는 아직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정확한 항로 찾는건 미야 중위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문제는 미야 중위가 심각한 길치라는 것이었다. 지난번 코랄해 해전때도 확인된 사실이었지만, 미야 중위는 전투기 조종사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정말 못찾는 것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에리카 대위가 몇번 재교육을 실시한 모양이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고, 결국 나는 미야 중위를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길을 찾아내는 유나 중위와 조를 짜게 만들고, 항로 정도야 쉽게 찾는 나탈리와 펠츠 소위를 붙인 다음, 릴리엘 중위를 내가 데리고 오게 되었다. 물론 나탈리나 사냐 공주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 덕분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기사단원들과도 새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말이야. 릴리엘 중위는 지루했는지 비행내내 말을 걸었고, 주로 그녀가 말하고 내가 듣는 형식의 대화가 계속되었다.
[부단장님?]
“응?”
[잠깐 다른 생각 하셨나요?]
“아니, 그런건 아닌데.”
[그만 할까요?]
“아니야. 듣고 있어.”
[후훗. 알았어요. 어디까지 기억하세요?]
“중위가 훌륭한 기사가 되겠다고 하는데 까지.”
[헤에. 기억하고 계시네요, 부단장님.]
뭐, 방금 말한거니까. 거기다가 신기한 사실을 하나 알아내서 그렇기도 하고. 릴리엘 중위는 나에게,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호감이나 동경 비스무리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기사라도 나처럼 피도 안섞인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면서 동경한단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정말 100% 선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보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사실…….. 음…….. 웬지 부정하고 싶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치직….. 창민경?]
사냐 공주의 목소리가 릴리엘 중위의 말을 자르고 들려왔다. 나는 후두 마이크의 송신 버튼을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수신. 무슨 일이야?”
[아군 뇌격기 편대를 찾아냈어요. 우리 호넷의 기사단이 아니라 엔터프라이즈의 기사단이지만요.]
상관 있나? 호위 대상을 찾았으면 된거지. 마침 엔터프라이즈에서도 통상 출격을 실시했던지 뇌격 기사단의 호위는 없었고, 기사단장 갈리에르 중령도 우리 기사단에게 호위를 요청했으니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나는 사냐 공주에게 방위를 전달받은 다음 편대망으로 전달, 전 기체를 호출했다.사냐 공주의 위치로 방위를 변경한지 20분만에, 우리는 기사단 전 기체 10기를 다시 집결시킬 수 있었고, 역V자 대형을 이룬 채 뇌격 기사단 위에 자리잡았다.그리고 나는 전 편대에게 고도를 1500피트, 그러니까 450m로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창민경, 너무 낮게 날면 고도가 불리해지지 않아요?]
물론 상대와 공중전만 상정하면 그렇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공중전이 아니라 호위다. 어차피 뇌격기들은 어뢰의 투하를 위해 200피트라는 초고공으로 내려가야만 하고, 그걸 요격하는 제로 전투기들은 그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1000피트 이하로는 내려가야만 한다. 1500피트라는 고도는 그걸 상정하면 충분히 높은 고도다. 최소한 4000피트라는 고도 유지를 위해 연료를 더욱 많이 소모해야할 이유도 없어지고 말이다.
[경께서 그렇게 말한다면………]
[아군 뇌격기들이 적과 접촉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부단장님. 우리 호넷의 뇌격 기사단과 범블비의 뇌격 기사단들의 보고가 들립니다.]
“해당 방위로 수정하고 고도는 유지하자. 다들 순항 속도로 비행하면서 적 함대를 수색해.”
나의 말이 끝난 직후, 우리는 엔진 출력을 70% 정도로 줄이면서 뇌격 기사단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뇌격 기사단이 미끼로서 제로 전투기들을 불러들이면, 우리는 고도의 이점을 이용해서 적기를 재빠르게 치고 빠지면 되는거다.
[헤에, 창민아, 강하 할때 고도 잘못잡아서 퐁당하지나 마라.]
네 걱정이나 해 나탈리……..
2
20분을 더 비행한 다음, 우리 편대는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발견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매치 포인트 섬에 배치된 뇌격기들과 급강하 폭격기들, 그리고 수평 폭격기들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무려 5차례에 걸쳐 공습을 가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 공습 부대는 단 1척의 적함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 채 80%의 항공기를 손실하고 40여명이 넘는 인명손실을 내버렸다. 물론, 이들의 희생은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접근하는 동안 제로기들의 시선을 붙잡아 놓을 수 있었고, 이들의 공습 때마다 항공모함의 승조원들이 작업을 멈춰야만 했기 때문에 추가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하늘에서 떨어지는 1개의 검은 기둥은 B-17 폭격기가 격추당한 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들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서 호넷과 범블비의 뇌격기 편대가 돌압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후소 제국은 뇌격기들의 요격에 집중했고, B-17 폭격기는 재수 없이 맞아 격추되어버린 1기를 손실하는 것에 그쳤지만, 뇌격기들은 돌입한 24기 중 19기를 손실하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어버리게 되었다.
[12시 방향, 아군 뇌격기들이에요!]
미야 중위의 말대로 우리의 전방에서는 4기의 데바스테이터 요격기가 유압을 흘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심각하게 당했군.”
[심하네요.]
[…….웬지 미안해지는데.]
[미안해요……. 경들의 희생은 헛되이 하지 않겠어요.]
다들 그 참상에 미처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우리 보다 약간 높은, 2000피트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가는 4기의 데바스테이터가 우리 편대를 스쳐지나갔다. 4기 모두 최소한 수십발의 총탄을 얻어맞았는지 날개나 동체 장갑이 너덜너덜한건 기본이고, 1기는 러더가, 다른 1기는 왼쪽 플랩이 날아가버렸다. 다른 2기는 후방 기총사수가 좌석에서 푹 늘어진 채 파랗게 빛나는 알루미늄 판 위로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냥 살아서 빠져나온게 신기할 정도군.어쩌면, 우리 앞에서 날고있는 호넷의 뇌격 기사단도 그런 꼴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오자, 웬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경들……..정말 미안해요…….]
충격은 모두 받았지만, 사냐 공주는 그 모습에 다른 기사들 보다 더욱 충격을 먹었는지 아까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뇌까리고 있었고, 다른 에르데 항공 기사들도 동의하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원래 우리가 계획되로 호위를 했다면 분명 저들중 몇몇은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테니까.거기다 저 뇌격 기사단의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 보는 생면부지도 아니다. 지난 몇일간 한솥밥을 먹으면서 같이 웃고 울고 뱃멀미로 고생한 전우들이다. 그게 사냐 공주를 더욱 심하게 옥죄이는 것 같았다.뇌격 기사단의 선임이 되어버린 한 중위의 말이 아니었다면, 우리 기사단은 분명 전투에 돌입하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해버렸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적 항공모함을 격침한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피탄당했는지 숨을 몰아쉬면서 간신히 말한 그 중위의 말은 우리에게 일종의 비장함을 전달해주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서, 저 빌어먹을 후소놈들을 끝장내자, 이렇게 말이다. 그래. 전쟁에서 중요한건, 누가 많게 죽이냐가 아니라, 그 희생을 어떻게 허비하지 않는다는거다.
“사냐”
[………..]
“……..잘하자”
[절대로…….]
사냐 공주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 나온다.
[절대로…….저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지금까지 들어왔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아닌, 지적으로 완벽하게 성숙한 목소리였다.그리고 사냐 공주의 그 말은 에르데 제국의 항공기사들에게 충분한 힘이 되었나본지, 다들 죽음을 각오한 목소리로 답신을 보냈다.
[[예!]]
3
15분이라는 짧은 비행과 함께, 드디어 우리는 후소 제국의 함대에 도착했다. 4척의 항공모함이 30노트로 추정되는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수십기의 전투기들이 착륙을 기다리는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뇌격기들이 돌입할 저공에는, 수십기의 제로기와 구축함들의 대공포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갈리에르다. 지금부터 우리는 뇌격에 돌입하겠다.엄호를 부탁한다.]
“이창민입니다. 수신 완료, 엄호 하겠습니다.”
[중령, 사냐 입니다. 저놈들에게 꼭 한방 먹여주세요!]
[알겠습니다, 공주님. 엄호,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제 폐하께 영광을!]
기사단장 갈리에르 중령의 구호와 함께 12기의 뇌격기는 1자로 펴진채 고도를 낯추면서 가장 가까운 후소 제국의 항공모함으로 돌격했다. 후소 제국의 함대는 4척의 항공모함을 중앙에 둔 채, 전함과 순양함이 가까이서 감싸고 있고, 마지막으로 소형 구축함들이 함대의 최외곽에서 대공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뇌격기들의 목표는 함대 외곽의 구축함 같은 작은 목표가 아니라, 함대의 정중앙에 위치한 적 항공모함들이고, 덕분에 우리가 적기의 시선을 끌어야할 시간은 늘어나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도박이었다.
“자, 훈련한대로 하는거야. 적기가 나타나면 각자 페어로 흩어져서 타치 위브 하는거, 까먹지 말고!”
[경들! 우리의 전우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후소 제국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에요! 여러분의 실력을 마음껏 보여주는거에요!]
사냐 공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작은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검은 구름이 하늘에 피어올랐다. 적 항공모함과 구축함, 순양함에서 대공포화가 성대한 환영 해주는 동안, 우리는 적 함대의 대공포화를 우리쪽으로 최대한 유도하면서 뇌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저공으로 내려오는 제로기들을 공격하기 위해 기동을 시작했다. 원래 페어 대로 나탈리를 요기로 교체한 나는 적 함선의 대공포화를 피하면서, 제로기들을 향해 다가갔다.
[창민아, 8시 방향에 하나! 타치!]
나탈리의 비명과 함께 나는 고개를 돌려 나탈리의 위치를 확인했다. 좌측 후방에 나탈리의 전투기가 보이고, 뒤이어 나탈리가 오른쪽으로 선회하면서 흰색 도장의 제로 전투기가 보였다. 이런, 2기잖아!
[창민아! 타치!]
아참. 나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나탈리의 반대, 그러니까 왼쪽을 향해 선회를 시작했다. 우리의 뒤를 따라오던 제로기 2기는 갑자기 벌어지는 나와 나탈리의 기동에 당황했는지 잠깐 우왕좌왕 했지만, 금방 사태를 파악하고 나와 나탈리를 향해 각각 1기씩 떨어져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꼬리를 확실하게 물기 위해 우리의 기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2기의 적기 때문에 타치 위브가 아닌, 드래그 커버 상황이 되어버리자, 나는 나탈리에게 나탈리 뒤의 적기를 내 앞쪽으로 끌고 오게 만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당연하지!]
“네가 내 뒤에 붙은 놈 빨리 처리 못하면 격추당할지도 몰라.”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셔.]
나탈리와의 짧은 잡담도 잠시, 나탈리는 큰 반원을 그리면서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나도 나탈리를 향해 헤드온 상황을 만들면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응? 나탈리? 너무 작게 선회하는거 같은데…….?
[으아……. 실전 사용은 처음이라서 긴장했네. 헤헤.]
“헤헤가 아니잖아!”
너무 많이 선회해버린 나탈리 덕분에 원래 계획대로라면 적기의 꼬리가 들어와야 하는 내 조준간에 적기의 스피너가 들어와버렸다. 공중전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헤드온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은 그냥 피하는게 쉽지만, 문제는 이 후소 제국의 조종사는 나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7.7mm 기총과 20mm 기총이 공기를 가르면서 내 캐노피의 양쪽을 스쳐지나갔다. 조준실력이 형편없는건지 탄도가 개판인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나는 피탄당하지 않았고, 덕분에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조준간 한가운데 들어온 적기의 커다란 공랭식 엔진을 향해 4정의 13mm 기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투투퉁, 익숙한 진동음과 함께 예광탄 궤적이 일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서로 러더만 사용해서 조준을 보완하면서 서로를 향해 다가갔고, 원래 600m 남짓했던 서로의 거리는 순식간에 100m로 줄어들어버렸다. 만약 이대로 간다면 그대로 공중 충돌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100m…….90m…….80m…….. 지금 이탈해야 하나?더 기다려야 하나? 70m………. 60m………. 하지만 아무래도 행운은 내쪽에 있었나보다. 충돌하기 직전, 60m 전방에서 제로기는 충돌이라는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기수를 들어버렸고,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동체에 피탄당한 제로기는 아무런 반격을 하지 못한 채 불타면서 바다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나는 고작 1m도 안되게 아슬아슬하게 그 잔해 아래로 지나가면서 적기를 격추할 수 있었다. 으아……. 큰일날 뻔 했네…….가 아니군. 아직 내 꼬리에 붙어있던 다른 제로기는 수평비행하는 나를 향해 주익의 20mm 기관포를 발포하기 시작했고 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나탈리를 부르며 우측으로 조종간을 뉘운 다음 당겼다. 갑작스러운 급선회에 몸이 조종석에 강하게 압박되면서 시야의 주변이 캄캄해졌지만, 지금 선회를 포기하면 적기에게 그대로 격추당해버린다.
“나탈리!”
[왼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들려운 나탈리의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반대쪽으로 당겼다. 투투퉁, 익숙한 기총음이 귀에 들려오고 내 뒤에서 날아오던 20mm 기관포의 소리도 멎었다.
[격추 완료!]
실전에 처음 사용해본 타치 위브는 정말 성공적이였다.아군기 10기와 적기 11기가 격돌해서 우리는 릴리엘 중위와 유나 중위의 전투기 2기가 격추되었지만, 대신 나와 나탈리가 격추시킨 2기의 제로기를 포함 7기의 적기를 격추해냈다. 사냐 공주와 에리카는 환상적인 기동을 선보이면서 서로를 교차했고, 순식간에 3기의 적기를 격추해버렸다.선회전에 강한 제로 전투기라고 하지만, 유기적으로 협동해서 움직이는 전술은 숫적 우위 – 그래봤자 1기에 지나지 않지만 – 를 뒤집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우리 세계의 2차대전 때 독일군이 이런식으로 프랑스 공군을 섬멸했다지, 아마?
반면, 아래쪽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위쪽에서 우리가 전투 초계를 하며 대기하던 제로 전투기 11기를 잡아 놓은 덕분에 뇌격기를 요격하려던 제로 전투기는 고작해봐야 4기에 지나지 않았고,데바스테이터의 장갑이 그렇게 얇고 격추시키기 쉬운 상대도 아니었지만, 그놈의 마크 13 어뢰가 문제였다. 정말 연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이 가녀린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 우리 뇌격기들은 60피트 이하, 거의 15~18m라는 초저공에서 110노트, 시속 200km정도의 저속으로 일직선으로 비행해야 했다. 20mm 부터 시작해서 25mm 대공포들과 우리의 호위를 뚫고 내려온 4기의 제로기의 20mm 기관포가 예상된 경로로 느리게 이동하는 우리 뇌격기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겠지?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적 항공모함 아카기에 돌입하는 와중에 무려 4기나 되는 뇌격기들이 날개가 날아가고, 엔진에 불이 붙고, 동체가 뚫리는 끔찍한 모습으로, 아무도 탈출하지 못한 채 바다로 추락해버렸다. 간신히 살아남은 8기들도 점점 치열해지는 대공포화에 고작 3기만이 간신히 어뢰를 투하할 수 있었지만, 투하 직후 1발은 물기둥을 잃으키면서 자폭해버렸고, 다른 2기는 23노트라는 굼벵이 같은 속력으로 30노트의 고속 항진을 하고 있는 항공모함을 따라가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서 바다 속으로 그대로 꼬르륵……… 이것 참, 누가 만든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못만들었네. 목숨 걸고 쏴도 1발도 안맞으면 어쩌라는거야? 이게 지난 코랄 해전이라서, 우리의 주익에 철갑탄이나 로켓탄이라도 장착되어 있었으면 급강하 폭격으로 최소한 적함의 속도를 늦춰보기라도 하겠는데, 지금 우리 윙파일런에는 아무것도 없다. 남은건 고작해봐야 11초 분량의 기총탄 뿐이다. 이걸로는 소파는 커녕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 오히려 이 기총탄은 아껴야 한다. 그래야지 우리 뇌격 기사단이 물러날 때 엄호를 제공……..
[차…창민경…..]
사냐 공주의 떨리는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려왔고, 뒤이어 나탈리도 나에게 무전을 보냈다. 고공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적기들을 감시하느라 하늘만 보던 나는 송신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나탈리가 더 빨랐다.
[창민아……. 릴리엘 중위가!]
릴리엘 중위? 아까 격추되었을 텐데? 후소 놈들의 포로가 된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어쨌든 큰 부상은 없을텐데?
[그래! 저 놈들이 릴리엘 중위를!]
[중위!]
나탈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냐 공주의 분노에 찬 고함이 무전망을 타고 울려 퍼졌다.뒤이어 누군가가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뭐야? 도데체 무슨 일이야?
[저…..저…….]
“………”
사냐 공주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후소 제국군 수병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 항공 기사들의 반응, 그리고 후소 제국 순양함 항적 옆에서 올라오는 수십개의 공기 방울들을 보면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포로를……]
이놈들, 포로로 잡힌 릴리엘 중위에게 분풀이를 하려고 바다에 던져버린거다. 분명 발에 무언가 무거운거를 달았겠지. 절대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그게 물로 가득찬 무거운 드럼통이라는걸 안건 한참 나중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
할 말을 잃었다. 웬지 모르게 숨이 막혀오고 눈 앞이 붉게 변한다.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날, 그리고 사냐 공주를 만난 다음의 중순양함에서의 일도. 왜, 한번도 구하지 못하는걸까………. 손이 떨린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그 분노 때문에 주체할 수 없다. 이게 한번도 지켜내지 못했던 나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그렇게 상황을 만든 적에 대한 분노인지는 모르겠다. 그런건 상관 없다. 그냥, 화가 난다. 고도계가 1000피트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기수를 들어 500피트의 고도를 더 확보했다.그런 다음 조종간을 밀어 20도 정도의 각도로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조준간에 적 항공모함, 아카기를 놓은 채 말이다.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죄책감과 분노에 미쳐버릴거다.
[창민경? 무모해요!]
사냐 공주의 말도 무시한 채 나는 그대로 러더만을 사용해서 조준을 보정하면서 대공포화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적 항공모함과의 거리가 대략 500m정도로 가까워지고, 대공포화에 달라붙은 적 수병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대로 트리거를 당겼다. 전투기 조종사에게 7초는 긴 시간이다. 블랙캣에 장착된 4정의 M2 중기관총의 평균 발사속도가 분당 600발이니, 7초라는 시간은 13mm 기관총의 기총탄 4200여발이 발사되는 긴 시간이다.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나는 트리거를 누른 채, 적 항공모함을 조준간 중앙에 놓고 사격을 개시했다. 주변에서 대공포화가 터지던지 말던지 말이다. 포탄을 대공포 포미에 찔러 넣던 수병 몇이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지만 정작 함선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나도 아쉬웠다. 젠장, 뇌격 기사단은 뭐하는거야?
[뇌격 기사단의 선임 장교 율리아노 소위 입니다! 재돌입 실시합니다.]
때마침 살아남은 뇌격 기사단의 잔존 데바스테이터 5기가 다시 한번 돌입을 시도했다. 우리는 근처의 다른 항공모함에서 날아온 요격기들을 몸으로 막으면서 뇌격에 들어가는 뇌격 기사단의 데바스테이터들을 보호했지만, 이번에도 그놈의 어뢰가 문제였다. 정말, 내가 장담하건데, 나중에 제국으로 돌아가면 어뢰 개발국 인간들 내손으로 직접 처단할거다. 당신들이 일을 똑바로 못하니까 우리 용감한 기사들만 죽어가고 릴리엘 중위도 죽은거잖아! 젠장, 또 하나의 데바스테이터가 왼쪽 주익 절반이 날아간 채 공중에서 공중재비를 돌면서 추락해버렸다. 너무나도 저공이라 탈출할 시간도 없이, 3명 전원이 말이다. 대공포화를 뚫고 접근하던 살아남은 4기 중, 어뢰를 성공적으로 투하한 것은 그중 단 2기였고, 그 2기의 어뢰 조차도 30노트라는 고속으로 이동하는 항공모함의 회피기동에 의해 맥빠지게 빗나가 버렸다. 오히려 이탈하는 과정에서 함선의 대공포화에 우리 데바스테이터 2기가 더 격추되어 버렸고, 결국 나는 유압을 흘리면서 온 기체가 벌집이 되어버린 잔존 기체 2기에게 모함으로의 귀환을 명령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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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어뢰만 있었다면! 폭탄만 가져왔다면! 제대로 싸웠다면 분명 오늘 죽어간 30명의 기사들과 릴리엘 중위들 모두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젠장!
[창민아..........]
후퇴하는 뇌격 기사단을 노리고 달려드는 제로 전투기 한기가 불을 뿜으면서 땅으로 떨어졌지만, 내 분노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타오르는 느낌이다.
"젠장........."
[창민경........자책하지 마세요. 절대 창민경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다 쓸어버리고 싶은데 말이야."
[에?]
"할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놈들 전부를 죽이고 싶다고!"
말 그대로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 총탄은 고작 4초 분량. 운이 좋으면 적기 1기를 격추할 수 있는 분량이지만, 운이 나쁘면 허공에 낭비해버릴 수도 있는 양이다. 젠장, 아까 괜히 7초분이나 낭비했어. 분풀이는 5초여도 충분했을텐데. 1200발만 더 있었어도......... 젠장! 젠장!
[창민아....... 자책하지 마......]
몰라. 아무것도 안들려.
[부단장님, 지금은 평정을 찾으시고 어서 명령을........]
듣고 싶지 않아.
[부단장님 잘못이 아닌걸요. 제발 정신 차리세요.]
듣고 싶지 않다고.
[선배........]
[야, 이창민! 정신 차려!]
[부단장님, 고도를....!]
젠장! 듣고 싶지 않다고!
[창민경!]
사냐 공주의 목소리에 희미해져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해수면이 너무 가깝다는 것을 그제서야 인지한 나는 바로 조종간을 당겼고,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할 수 있었다. 간신히 고도를 회복한 내 전투기의 양 옆으로 나탈리와 사냐 공주의 전투기가 다가왔다. 나탈리는 내게 주먹을 들어보이면서 나중에 내리면 두고 보자고 협박하고 있고, 사냐 공주는........ 사냐 공주 역시, 그때, OS-207 해역에서 봤던 그 얼굴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도 뺀 채, 두 눈을 붉게 붉히면서 말이다. 근처에서 터진 대공포탄이 내 전투기를 뒤흔듬과 동시에, 사냐 공주가 입을 열었다.
[창민경]
".........."
[창민경!]
"..........."
말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대답하세요. 기사에게 내리는 주인의 명령입니다. 창민경]
하지만 이렇게 나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군.
"......왜."
[창민경, 저는 모르겠어요.]
뭐를.
[모르겠어요. 창민경의 잘못인지 아닌지.]
"왜 몰라?"
[모르겠어요. 창민경의 잘못인지 아닌지. 그때와 똑같으니까요. 그때고 그랬고, 그 전에도 그랬고. 하지만 그때는 창민경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사냐 공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계속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최소한 대꾸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왜? 어째서? 나 때문에 죽은거잖아."
[..........그렇지 않아요. 창민경은 죽이려고 한게 아니라 모두를 살리려고 한거니까요.]
그렇지만 결론적으로는 죽였지. 모두를. 지키고 싶었는데 지키지 못하고 말이야. 그때도, 그전도, 그리고 지금도. 이건 내 잘못이다.
[하지만요, 방금 그건 창민경의 잘못이에요.]
사냐 공주가 말했다. 내 잘못이라고. 그래. 맞아. 내 잘못이야. 나때문에 31명이라는 고귀한 목숨이 이 세상에서 살아진거라고.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다른 누구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어!
"맞아. 내 잘못이야. 모든게 내 탓이야. 하지만 내가 어쩌라는건데?"
[지금까지의 창민경은 항상 누구를 구하려고 했어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어요.]
".........."
[하지만 창민경은 지금 상황에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있어요.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뇌격 기사단원들의 장렬한 죽음을 헛되이 할건가요? 그들을 보호하다 저 야만인들에게 수장당한 릴리엘 중위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건가요?]
물론 그렇지 않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에르데 제국이라는 공동체를, 제국 신민들을 지키기 위해 저들을 격멸하는게,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는거, 창민경도 잘 알잖아요.]
거기까자 말한 사냐 공주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하늘 한가운데 떠오른 강렬한 태양빛 때문일까? 사냐 공주의 볼에서 무언가 반짝이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사냐 공주의 말이 맞다. 절대, 절대로 저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면 안된다. 아까 의식을 차단하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건 31명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드는 일이다. 기체가 한번더 흔들렸다. 대공포 파편 몇개가 동체를 때렸는지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아직 적 함대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이제는 어떻게 하지?
"인원 점검한다. 각자 무장하고 연료 상태 보고해."
나는 입을 열고 그렇게 말했다. 조금 무미건조하지만 확실하게 자신감이 있는 목소리로 말이다.
[사냐에요. 연료는 33% 남았고 기총은 5~6초 분량 남았어요.]
[나야. 연료는 27%에 무장은 3초 정도?]
[에리카입니다. 연료는 32%, 기총탄은 5초 분량 남았습니다.]
[미야 입니다. 연료는 28%, 무장은 좌측 주익에 2초 분량 남았습니다. 탄이 걸렸는지 발사가 안됩니다.]
[펠츠입니다. 나탈리 중위님과 동일합니다.]
[경화에요. 나탈리 선배와 비슷해요.]
[지경이에요. 연료는 28%, 무장은 3초 조금 안되게 남았어요.]
지금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젠장. 모두들 연료도 슬슬 떨어져 가고 있고, 남은 무장도 부족하다. 요격을 위해 올라오는 제로기 몇기 쯤이야 타치 위브로 끝낼 수는 있지만, 과연 모함으로 귀환하는데 충분한 연료가 있을거라고는 장담하기 힘들다. 물론, 오늘 우리 기사단은 적기를 15기나 격추하고, 2기를 손실했다. 충분히 좋은 교환비지만, 아까의 그 감정이 나를 전장에 더 머물게 하고 있었다. 뭔가 놈들에게 제대로 복수를 해야 한다는, 그런 의무감 같은게 말이다.
"귀환.........해야 하나?"
[아무래도 연료 상태를 봐서는.......]
[포인트 옵션을 받기는 했지만 모함까지 돌아갈 충분한 양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 귀환 해야지. 나는 편대를 2개의 핑거팁으로 변경시킨 다음 우리 모함이 있는 남쪽으로 선회를 시작했다. 후소 제국의 대공포 몇기가 우리를 배웅했지만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신경쓰고 있는건, 어떻게 하면 저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바로 이거다.
[창민경.]
잠깐 진지하게 생각조차 못하는건가, 나는?
"왜?"
[하.....하늘을.....]
"응?"
[어, 창민아........ 저기......... 북쪽을..........]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부신 태양 밖에 없는데? 아니, 잠깐. 뭔가 검은 반점들이 푸른 하늘 한가운데에서 일렁이고 있다. 뭐지?
"지금 다들, 12시 방향 고고도에 있는거, 보고 있는거지?"
[예....... 저거........ 설마........]
에이, 설마...........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정확하게? 함대 상공의 제로 전투기들은 우리 때문에 CAP도 못하고 있고, 견시들은 전부 뇌격기 편대 때문에 해수면만 보고 있는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 지금?
"설마........"
그리고 설마가 정말 사람을 잡았다. 설마하면서 하늘만 바라보며 날고 있던 우리의 편대망 사이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급강하 폭격 기사단장, 맥스 레슬리 중령이다. 뇌격기 편대의 장렬한 희생은 전해 들었다. 놈들의 복수는 우리에게 맡기도록!]
[그...급강하 기사단!]
하늘에서, 죽음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