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14 - 계속되는 공방전 Part 1
1
나탈리가 알려준 함대의 위치로 도착했을 때는 대략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함대 상공의 전투 초계기들이 다가와서 나를 호넷까지 유도해준 덕분에 일일이 함종을 확인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그래도 내 상황은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아까부터 계속된 출혈에 머리는 띵하면서 아프고, 춥고, 졸리다. 뭐랄까, 지금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면 참 좋을거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다음에는 모르핀이라도 하나 갖고 오든지 해야지, 원.
호넷의 비행 갑판에서는 착륙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료가 별로 없는 우리 기사단의 블랙캣 전투기들은 이미 착함이 끝났는지 전방 엘레베이터를 통해 격납 갑판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급강하 기사단의 기체들이 착륙하고 있었다. 몇몇은 적함의 대공포에 의해 기기 오작동이라도 났는지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크래쉬 배리어에 걸리거나 근처 수면에 처박혀버렸다. 뇌격 기사단의 잔존 기체들은……… 보이지 않는군. 어쩌면 전부 폐기 처분 했는지도 모른다. 다들 상태가 영 아니었으니까. 이런 이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주저리 주저리 생각하다보니 이제는 별 생각을 다 하는군.
“파파가이 01에서 호넷에게. 착륙 허가를 요청한다.”
[파파가이 01. 착륙을 허가한다. 착함 코스에 우선적으로 진입하라. 랜서 04기는 잠시 대기하도록.]
[라져.]
항공 통제관의 명령과 함께 내 양 옆에서 나를 에스코트해주던 2기의 블랙캣 전투기가 떨어져 나가고, 나는 천천히 항공모함의 좌현으로 접근했다. 함수에서 함미 방향과 평행하게, 그러니까 호넷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반바퀴 회전한 나는 함미에서 700m 떨어진 구축함 캘리 위에서 다시 호넷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는 일반적인 착함 과정 처럼, 천천히 기수를 3~4도로 맞춘 채 갑판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번에는 랜딩기어가 제대로 펴져야 할텐데, 라고 속으로 빌면서 나는 랜딩기어 전개 버튼을 눌렀고, 뒤이어 전기 모터 소리가 조종석에서 울렸다. 제대로 펴진건가?
[파파가이 01, 전방 랜딩기어가 안내려왔다. 속도 줄여, 속도!]
항공 통제관의 고함과 함께 나는 둔탁한 충격이 동체 하부에서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착함용 후크가 어레스팅 와이어 하나에 걸렸는지, 30m 정도를 질주하던 내 블랙캣은 크래쉬 배리어에 걸리지 않고 멈추었지만, 덕분에 갑판이 엉망이 되었다고 나중에 항공 통제관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일부러 그런겄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주지?
2
“아, 창민경! 다녀오셨…..!!!”
“야! 너 어깨가 왜 그래?”
“…………오른쪽 어깨에 붕대 좀 감았다고 호들갑 떨건 없지 않냐?”
내가 작전실에 들어갔을 때는 기사단장들이 모여 다음 공격 작전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 급강하 기사단이 공격을 감행한 직후, 매치 포인트 제도에 배치된 카탈리나 비행정 2기가 후소 제국 기동전단에 대한 전과 확인 정찰을 감행했고, 적 항공모함 4척 중 2척이 비행갑판의 화재로 인한 작전 불능 사태에 빠졌고, 1척은 내부의 원인 불명의 유폭으로 격침되었다고 한다. 적의 기동전단에 남은 함정은 정규 항공모함 1척, 순양 전함 1척, 중순양함 2척, 구축함 6척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적 항공모함 4척 중 3척의 대파는 상당히 큰 전과였지만, 아직 1척이 남아있었고, 지금 우리의 회의 주제는 이녀석의 격침이었다. 그런 중요한 회의 중간에 내가 어깨에 붕대를 좀 감았다고 호들갑 떨면 어떻합니까, 이 천방지축 공주님아!
“하지만 창민경이 다쳤는걸요! 저한테 소중한 사람인 창민경이 다쳤는데, 이런 회의가 무슨 소용인가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건 고마운데, 그래도 회의 중이잖아……
“크흠”
거기다 지금은 플레이크 제독 앞이라고!
“네……… 주의 할게요.”
“그러면 회의를 마저 하도록 하지.”
언짢은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기사단장들의 눈이 다시 작전실 한가운데의 해도로 돌아갔다. 우리 38 기동부대와 16 기동부대, 17 기동부대를 표시한 3개의 푸른 원이 매치 포인트 환초에서 북서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에 있었고, 후소 제국의 기동전단은 우리의 바로 남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 우리는 적의 정규항공모함 4척 중 3척을 대파 및 작전 불능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쾌거를 일구어냈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은 1척의 항공모함, 히류다.”
다만 문제라면, 하필이면 살아남은 1척의 항공모함이 바로 히류라는 녀석이다. 자매함인 소류는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기사단의 공격으로 묵사발이 되었지만, 이녀석은 운이 좋게도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았고, 덕분에 탑재된 50여기의 항공기 전력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맞다. 물론 우리 기동전단의 항공기 전력 일부가 격추당하거나 손실을 입었다고 해도, 에르데 제국의 정규 항공모함 3척의 함재기를 전부 합치면 이 60여대 쯤은 상대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에르데 제국의 기동부대는 서로 50km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다른 전단에서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각 함의 대공포와 전투 초계기 열댓기로 적의 호위 제로기의 방해를 뚫고 적 급강하 폭격기들과 뇌격기들을 공격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투기 전력이 함대 초계를 맡고 있던 37 기사단 소속의 블랙캣 12기와, 우리 기사단의 잔존 기체 5기 –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의 전투기는 상태가 심해 결국 폐기처분 해버렸다 – 가 전부다. 이걸로 50기를 상대하라고? 절대 무리다. 적 함대의 타격력 분산을 위해 분산시킨 함대가 이렇게 작용할줄은 아마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거다, 분명. 하나 다행인건 분해시켜 놓았던 예비 기체들 몇기 덕분에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 그리고 펠츠 소위도 함대 방공 임무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건 조립이 끝나는 오후 4시 10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시각이 오후 2시 49분. 즉, 앞으로 최소 1시간 20분 동안은 호넷의 방공망을 책임지는건 고작 전투기 17대가 전부라는 소리다. 갑자기 함대 방공 애기가 나와서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다. 오스트해에 남은 에르데 제국 항공모함은 지금 여기있는 호넷, 엔터프라이즈, 범블비가 끝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사막 원정군을 지원하기 위해 제국의 서쪽인 아틀란티아 해로 나갔다가 급하게 돌아오고 있는 와스프, 그리고 개수 및 정비를 위해 제국 서부 해안에 처박혀있는 새러토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전장에 도착하려면 몇주는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 항공모함들을 보호하는건 아주 당연하고 정상적이고 꼭 취해야할 조치다. 물론, 후소 제국도 바보가 아니니까 당연히 우리를 공격하려고 들거고 말이다. 그래서 함대 방공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하게 함대 방공이 중요하다고 해서 전투기 호위를 공격대에 붙이지 않으면......... 대충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 아까 뇌격 기사단이 직접 겪었으니까,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히류를 공격하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에 붙일 전투기 전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함장인 맥베스터 대위가 플레이크 제독의 말을 받으면서 말을 이었다.
"히류의 비행단이 일반적인 후소 제국의 비행단 구성을 따르고, 히류의 모든 공격기들이 한척의 항공모함에게 집중된다고 가정을 할 경우, 급강하 폭격기 18기, 뇌격기 18기, 그리고 호위 전투기 18기, 도합 54기 정도의 적기의 공습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제로기는 함대 방공 때문에 18기 전부 투입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글쎄. 내가 봤을 때는 다 투입할 것 같다. 함대 방공이라고 해봤자 살아남은 주력 함정은 순양 전함 히에이나 모함인 히류 수준인데, 겨우 2척의 주력함을 지키려고 일부를 뒤에 남길까? 나 같으면 전부 공격대에 편성해서 확실한 격침을 노릴 것 같다. 뭐,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고, 높으신 분들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들과 맞서야할 우리의 가용 항공기는 급강하 기사단의 돈틀리스 25기, 블랙캣 17기가 전부입니다."
결국 뇌격 기사단의 데바스테이터들은 전멸당한거군.
"돈틀리스는 정확하게 18기지. 지금 7기가 다시 후소 함대를 찾기 위해 정찰 중에 있지 않나."
그렇다면 가용 항공 전력은 더더욱 떨어진다. 젠장, 정말 답이 안나오는군.
3
결국 30분에 걸친 회의는 조금 불확실하게 결말이 났다. 결정이 불확실하다는 말이 아니라, 조금 꺼림칙하다는 느낌이랄까? 먼저, 급강하 기사단 소속의 돈틀리스들이 전부 이함, 히류를 공격하기 위해 수색하기로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원래 정찰기가 발견하고, 그다음 공격대를 발진시키는 것이지만, 아마 그렇게 하자면 너무 오래걸릴 것 같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결국 다들 비교적 가벼운 500파운드 폭탄과 증가 연료 탱크만을 장착하고 히류를 찾기위해 이함하게 되었다. 투입 가능한 2개 급강하 기사단은 4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히류를 찾기 위해 흩어졌고, 각각 3기의 블랙캣 전투기가 호위로 따라 붙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났을 때, 나는 우리 기사단의 낙오자가 된 사냐 공주와 미야 중위를 데리고 블랙캣의 재조립을 도우면서 바쁘게 1시간을 보냈다. 뭔가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블랙캣 3기의 재조립을 마치기 전에 적 전투기가 들이닥치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랬다면 고작 5기의 블랙캣이 적기 50여기를 상대하는 꼴이 되었을테니까. 그렇게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빠르게 흘렀고, 할일을 생각보다 10분이나 빨리 끝낸 덕분에 나와 사냐 공주는 히류를 찾지 못한 돈틀리스 12기와 나탈리, 에리카 대위, 그리고 펠츠 소위가 함대 상공에 도착하는걸 갑판에 걸터앉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정말 오랜만이군. 사냐 공주와 단둘이 있는거 말이다.
"예?"
"같은 부대지만, 이렇게 단둘이 있는거,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아무래도 그동안, 창민경 많이 바빴으니까요."
내가 좀 정신 없이 싸우기는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사냐 공주에게 약간 소홀히 한 것 같아 미안한 느낌이 든다. 특히 지난번 나탈리와의 일도 있고 해서, 요즘은 다들 개별적으로 신경을 써주려고 하지만....... 세상 일이 언제 내 뜻대로 되는거, 봤어?
"창민경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우리 제국을 위해 이렇게 싸워주는 창민경께 제가 감사를 드려야죠."
감사라. 별로 한건 없는거 같은데 말이야......... 아야. 사냐 공주가 나를 꼬집었다. 끄아~ 멍든거 같잖아! 더럽게 아프네.
"아프잖아!"
"창민경은 가끔씩 이상한 소리를 해요."
내가 뭘?
"그런식으로 말하면 정말 무신경하고 무관심한거에요. 창민경이 우리 제국, 우리 국민들, 그리고 저에게 해주신게 얼마나 많은데 말이에요."
아, 그러니까 내가 한게 적기 격추한거 말고 더있냐고?
"으읏! 창민경, 정말 너무해요!"
사냐 공주는 그렇게 말한 채 토라졌는지 저쪽으로 가버린다. 귀찮아서 별로 잡으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경험상 그러지 않았다가는 분명 피의 대가를 치루게 되겠지. 결국 나는 일어서서 사냐 공주를 붙잡았고, 내가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냐 공주는 나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 주로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특히 자기 자신에게 갖는 의미가 크다면서 한참을 설명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그정도의 인간인거 같지는 않다. 물론 사냐 공주에게 그 말을 했다가는 설교 시간이 길어질게 분명하기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서 맞장구만 쳤지만.
"알았어요?"
"응? 응.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슬슬 착함하려고들 하잖아.
"헤헤. 갑판에서 비켜줘야겠죠?"
"들어가자. 우리도 곧 출격할거니까 준비 해야지."
착함은 돈틀리스들이 먼저 하게 되었다. 무거운 500파운드 폭탄을 장착하고 최대 항속거리까지 갔다온 덕에 헉헉거리는 돈틀리스들은 천천히 착함을 시작했고, 나탈리와 에리카 대위, 그리고 펠츠 소위의 블랙캣 3기가 호넷의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착함에 대비했다. 그리고 나와 사냐 공주는 브리핑실로 들어갔다. 언제 작전에 당할지 모르니까. 내 예상은 적중했다. 우리가 브리핑실에 들어가기 직전, 함내 비상벨이 울리면서 항공 통제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상, 비상. 미확인 항공기 30여기가 남남동에서 급속 접근 중. 출격 가능한 전 항공 기사들은 즉시 출격하라.]
히류의 공격대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