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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15 - 호넷, 호넷 Part 2


  3
  사냐 공주의 말과 함께 갈라진 우리는 후소 제국의 공격기들보다 100피트 정도 낮은 4900피트에서 수평비행을 유지했다. 죽음의 방위, 데드 식스다. 기본적으로 항공기는 앞으로 밖에 갈 수 없고, 거기다 6시는 아무런 반격이 불가능한 방위이므로 공격자의 이점에서는 아무런 위협 없이 적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물론, 속도가 느리고 기동성도 둔중한 폭격기들이나 뇌격기들은 후방 총좌라는걸 달아서 이 사각을 최대한 없애려고 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어차피 작은 급강하 폭격기나 뇌격기들의 특성상 하방 총좌의 설치는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토실토실한 하얀 배를 그대로 드러낸 채 직선비행 하고 있는 후소 제국의 공격기들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갔다.
  “위치 도착, 공격 대기중.”
  [저도 준비 됐어요. 시작 할까요?]
  무엇 하나 나에게 허락받으려고 하는거야?
  “시작 할께요, 라고 해야지. 기사단장은 너잖아.”
  지금까지는 내가 지휘권을 행사했지만.
  [알았어요. 시작 할께요. 사격!]
  사냐 공주의 짧은 고함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옴과 동시에, 나는 방아쇠를 짧게 두번 당겼다. 주익에 장착된 12.5mm 기관총탄이 전방을 향해 흩뿌려졌고, 주익과 동체에 골고루 피탄된 후소 제국의 뇌격기는 불길에 휩싸인채 빙글빙글 돌면서 바다를 향해 내려갔다………. 응? 뇌격기? 뇌격기들이 왜 이 고도에 있어?
  [저도 이제야 알았어요. 급강하 폭격기들은 어디갔죠?]
  우리 뒤에 있나? 아니면 앞에? 우리가 놓친건가?
  “……..일단은 이녀석들 부터 처리하고 보자.”
  뇌격기 편대들은 우리의 공격 사실을 눈치채고 재빨리 회피기동에 들어갔지만, 애시당초 둔중하고 느려빠진 뇌격기들과 날렵하고 재빠른 전투기들의 전투다. 상대가 될리 없잖아. 이녀석들이 회피기동을 하려고 편대를 푼 사이, 우리는 재빠르게 안으로 치고 들어가 3기의 적기를 더 격추했고, 대장기를 잃었는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또 3기를 더 격추했다. 14기의 후소 뇌격기들 중에서 무려 8기가 고작 5분이라는 시간만에 불타면서 바다로 떨어져버린거다. 편대에서 분리되어 흩어져버린 뇌격기들은 그대로 둔 채, 우리는 우리가 급강하 하면서 놓쳐버린, 5500피트에서 비행하던 후소 제국의 급강하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고도를 높혔다. 뇌격기들이 수면 근처로 내려가는게 보이지만, 남은 6기 쯤은 함대의 대공포화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거다.
  [뇌격기는 이쪽에서 맡겠으니, 아직 9기가 남아있는 적 급강하 폭격기들을 저지하라!]
  그리고 이런 플레이크 제독의 명령도 내려왔고 말이다. 사실 고고도에서 비행하는 급강하 폭격기 보다는 저고도에서 저속으로 비행하는 뇌격기들을 요격하기 더 쉬운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모두 요격에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함대의 대공포 사정거리로 들어간다.”
  [알고 있어요. 창민경도 오사에 주의하세요.]
  후소 제국 공격대가 함의 대공포 사정거리에 들아감과 동시에 사방에서 검은 구름이 생겼다. 구축함들의 5인치 양용포부터 시작해서, 순양함의 대공용 2연장 5인치 양용표, 그리고 1.1인치 대공포들이 포탄이 사방에서 작렬했다. 후소 제국의 급강하 폭격기 2기가 대공포가 전달하는 심리적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편대에서 이탈했지만, 이탈한 순간 1기는 사냐 공주가, 다른 한기는 대공포탄에 직격당해 불에 휩싸인 채 바다로 떨어져버렸다. 어딜 도망가려고?
  [사격!]
  방아쇠를 당겼다. 대공포 때문에 항공기간 간격이 정도 떨어져 있어서 원샷 투킬 같은 럭키샷은 나오지 않았지만, 폭격기들은 우리 때문에 충분히 밀집해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까와 똑같이, 이들의 후방기총의 7.7밀리 탄은 무시하고 접근한 우리는 하나씩, 하지만 확실하게 적기를 공격했다.
  까가강
  [차…창민경! 피격되었나요?]
  너무 접근했나? 후소 제국의 7.7밀리 기총탄이 기체를 강타했지만, 다행이 구멍 뚫린데는 보이지 않는다. 캐노피를 맞춘것도 아니라서 내 상태도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괜찮아. 튕겨냈다.”
  ​[​깜​짝​이​야​…​…​.​.​이​자​식​들​,​ 감히 창민경을!]
  내가 괜찮다고 말함과 동시에 사냐 공주는 ‘감히 나에게 손을 댄’ 벌을 후소 제국군에게 내리기 시작했고, 오히려 아까보다 훨씬 맹렬한 기세로 후소 제국 편대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이봐, 위험하다고.”
  물론 나도 가만히 좌시하고 있지는 않고 사냥에 동참했지만 말이야. 아까 뇌격기들과 달리 우리는 이 급강하 폭격기들을 철저하게 사냥했다. 뇌격기들은 함대의 대공망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도 했거니와, 고고도에서 고속으로 내리찍는 급강하 폭격기의 폭탄을 피하는건 꽤나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후소 제국 기동전단 같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래서 아까 뇌격기대와 같은 행운은 이들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고작 4기만을 제외하고 전부 회피 기동을 하다가 대공포망에 걸려들어 금속 조각으로 산화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기관총탄에 걸려 걸레짝이 된 채 바다로 기나긴 다이빙을 강제로 하게 되었다. 살아남은 4기는 급강하 폭격에 들어갔지만, 1대는 대공포화에 피격되어 이탈해버리고, 나머지 3발의 폭탄은 그 숫자가 워낙 적어서 호넷에 아무런 피해를 남기지 못한채 허무하게 폭발해버렸다. 하지만, 오히려 급강하 폭격기에 집중해버린 대공포화가 호넷의 운명을 마무리했다.
  [피격, 피격! 호넷 피격! 현 시간부로 함대의 지휘권은 아스토리아로 이전한다.]
  호넷이 피격된거다. 호넷의 우현에서 2개의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쳤고 함은 순식간에 속도가 줄어들면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젠장, 저러면 우리가 착함도 못하잖아!
  ​[​호​…​호​넷​이​…​…​.​]​
  공격을 감행한 뇌격기는 고작 3기, 3기였다! 그것 중 2발이 명중했으니………. 나중에 플레이크 제독이 해준 이야기로는, 호넷이 기동할 침로를 미리 예상하고, 어뢰를 회피하여 이동하는 지점에서 어뢰에 명중하도록 ‘미리 계산을 하고’ 뇌격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게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우연인지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게 정말 계획적인거라면 그건 존경해야할 일이다. 그런 고난이도의 임무를 호위기의 엄호도 없이, 함대의 대공포화를 뚫고 함대 중심의 항공모함을 공격했으니까. 물론, 뇌격 직후 이탈한 3기 모두 급하게 달려온 우리에게 격추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호넷의 피격이 무효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호넷은 이시간부로 퇴함한다. 함대는 구축함 2척과 에온을 제외하고 아스토리아를 중심으로 원형진을 다시 짠 다음 매치포인트까지 이동하도록.]
  침수가 다시 시작된 호넷은 위태위태하게 떠있었고, 플레이크 제독은 함에 남아 부상자 구조 및 배수 작업을 지시하면서 우리에게도 그만 엔터프라이즈로 귀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아직 연료도 30분 정도 더 비행할 수 있어서 남아있으려고 했지만
  [여기는 에온. 우리가 호넷의 대공 엄호를 책임지겠다. 귀관들은 우리의 소식을 엔터프라이즈와 스푸르언스 제독에게 전하고 호넷의 복수를 하도록. 이상.]
 
  4
  "그리하여, 플레이크 제독의 명령으로, 임시 기사단 사냐 소속 생존 기체 5기, 전부 복귀 완료 했습니다."
  사냐 공주의 마지막 말로 우리의 보고는 마무리되었다. 아니, 우리라기 보다는 사냐 공주와 스푸르언스 제독의 단독 대면이었지만. 보고 내내 내가 한 일은 그저 옆에 서있으면서 전과 확인만 돕는 것 뿐이었다. 애시당초 참모의 존재 이유가 그거니까.
  "그럼 현재 호넷은?"
  "보고드린 바와 같이, 전투 불능 상태 입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목격했을 때는, 우현으로 최소 20도 가까이 기울었고, 속도도 4노트나 그 이하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 피격당한 그 위치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예. 각하."
  공주의 입에서 각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꽤나 신기한 일이지만, 워낙 사회 지도층의 군 복무를 강조하는 에르데 제국인 만큼 서로 놀라지도 않았다.
  "알았네. 그럼 들어가서 일단 휴식을 취하도록. 차후 계획은 논의되는 대로 호출하겠다."
 
  "수고 하셨어요."
  사냐 공주가 나를 올려다 보면서 싱긋 웃었다. 이번 요격전에서 적기 5기를 격추한 사냐 공주는 자신의 전투기에 총 25개의 핀을 그릴 수 있었다. 나? 나는 오늘 격추한거 합해서 전부 40개 정도 되려나?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수고는 무슨. 요격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사실 지금 후회도 조금 든다. 차라리 아까 명령 불복종까지 하면서 뇌격기 요격에 좀더 집중할껄. 하지만, 뇌격기들이 급강하 폭격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타겟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플레이크 제독의 판단이 그렇게 틀린것도 아니라 원망 조차도 할 수 없다.
  "창민경이 아니었으면, 호넷은 작전 불능이 아니라 격침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자책하지 말아요."
  말이야 쉽지.
  "지금은 일단 다음 일만 생각해요, 창민경. 괜히 마음을 쓰다가 다음 작전까지 그르치면 안되잖아요."
  ​.​.​.​.​.​.​.​.​.​맞​는​ 말이라서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없구나.
  "응?"
  사냐 공주의 차가운 손이 손바닥에서 느껴진다. 내가 혼자서 땅을 파고 있던게 안쓰러웠던지 사냐 공주는 내 손을 꼬옥 잡고서는 내게 방긋 웃어보였다. 젠장, 이러면 자책 조차도 마음대로 못하잖아. 도데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뭐냐? 응?
  "이런 이런. 그림 좋네."
  "부단장님께서는 그러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평가가 바뀔 때가 온거 같군요."
  아아..... 역시 우리 파일럿들에게 생각이란 ​사​치​야​.​.​.​.​.​.​.​.​.​.​
 
  나탈리와 에리카 대위의 오해를 그럭저럭 풀고 넘어간 다음, 우리는 잔존 기사단원들을 소집해서 작전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물론, 남은 기사단원들이라고 해봤자 나와 사냐 공주, 에리카 대위와 나탈리, 그리고 펠츠 소위 밖에 없지만 말이다. 릴리엘 중위는 전사, 유나 중위는 전투 중 실종, 그리고 미야 중위는 부상으로 지금 의무대에 누워있다.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지​만​.​.​.​.​.​.​ 일단 지금은 언제 당할지 모르는 작전에 대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휴식을 취할 수가 없는데."
  "저도 그래요. 아무래도 우리에게 휴식 같은건 사치인가요?"
  사냐와 나탈리, 그리고 펠츠 소위 셋은 좀이 쑤시는 건지, 아니면 계속 긴장하고 있는건지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나에게 불평해왔다. 뭐,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만, 혼자서 쉬지 못하겠으면 그냥 안쉬고 가서 전투기나 점검할 것이지, 굳이 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뭐냐? 응?
  "물론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혼자서 가만히 앉아있는거 보다 창민경이랑 얘기하는게 더 재미있으니까요."
  "둘이 이야기 하면 되잖아."
  "어머. 얘랑(저희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요)?"
  ​"​.​.​.​.​.​.​.​.​"​
  도데체 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로를 향해 불꽃은 튀기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수행중인 군인이야. 그냥 팅자탱자 히히덕 히히덕 대면서 놀아도 되는 신분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창민경이랑 대화하려고 하는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랑 대화하려고 하는거잖아."
  으아...... 미치겠군. 나는 지금 앉아서라도 좋으니까 그냥 한숨 잤으면 좋겠단 말이다, 이 도움 안되는 ​인​간​들​아​.​.​.​.​.​.​.​ 조종사 브리핑 실의 쇼파 쿠션이 그렇게 편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이 스스륵 감기는걸 보면 정말 나도 피곤하기는 피곤한가 보다. 하긴, 피곤 할만도 했지. 오늘 하루종일 도데체 몇시간이나 비행한거냐, 나?
  "창민경~ 심심하다니까요~"
  아 글쎄 나 좀 피곤하다니까! 다행이도 내 외침 덕분에 이 난감한 상황은 종료 되었다. 두사람이 화해하고 나를 드디어 가만히 내버려 두었냐고? 어허, 왜들 그러시나, 그런일 없다는거 알면서.
  [스푸르언스다. 전 항공 기사단원들은 지금 즉시 격납 갑판으로 집결하도록. 이상.]
  스푸르언스 제독의 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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