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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16 - 불타는 매치 포인트


  1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함교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플레이크 제독에게 전문이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점을 이후로 스푸르언스 제독은 함대의 지휘권을 넘겨받았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아무런 작전 없이 휴식을 취했던 것은 바로 지휘권 이양 이후 다음 목표를 정하는 것 때문이었다. 아직 1척의 후소 제국의 항공모함이 남아있었고, 이놈을 공격한다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문제는 이녀석이 어디에 있는건지 모른다는 사실이지. 정찰 폭격 기사단 소속 돈틀리스들이 아까 우리가 후소군을 급습한 장소로 날아갔지만, 그곳에 남아있던건 불타고 남은 잔해들 뿐이었다. 우리가 항공모함 방공전을 치루는 그 짧은 시간에 어디로 꼭꼭 숨어버린거다. 해역 근처에는 구름도 많이 껴있어서 육안 관측이 쉬운 것도 ​아​니​고​.​.​.​.​.​.​.​ 결국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였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귀관들도 잘 알겠지만, 현재 우리에게 남은 전력은 거의 없다."
  호위기는 우리 44 기사단과 범블비의 기사단을 포함, 4개 기사단이 남아있었지만 각 기사단의 잔존 기체를 전부 합쳐볼 경우 실제로는 2개 기사단 규모를 약간 상회하는 28기 정도였다. 함대 방공을 위해 보통 1개 기사단 급의 블랙캣들이 잔류한다고 생각해볼 때, 이건 공격대에 호위를 붙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일단 호넷에 남아있는 11기의 블랙캣들 중 공격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한 놈들은 5기 정도가 되고, 지금 엔터프라이즈에 있는 블랙캣 중 작전 가능한 기체는 우리 기사단을 포함 7기 정도다.
  "아무리 후소 제국의 제로기 손실이 높다고 해도, 아무런 호위기 없이 급강하 폭격기들만 돌입하는건 자살행위라는거, 귀관들도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 필그림 조종사들이나 에르데 항공 기사들이나, 전과 보고를 부풀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보고한 숫자들도 전부 각 기사들의 '추정 격추수'의 절반 가까이를 잘라낸거다. 내 격추수도 마찬가지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아있는 제로기의 숫자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의 한참을 상회하는 규모일 수 있다는 거다. 아무리 뇌격기들 보다 급강하 폭격기들의 생존성이 높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단독으로 돌격했다가는 큰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본관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히자면, 공격 보다는 적의 역습에 대한 방어를 준비하는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대들의 의견도 말해보도록. 각 기사단장들은 자신의 기사단의 의견을 종합한 다음 직접 앞으로 나와서 보고하라."
  잠시동안 좌중이 술렁였다. 우리도 마찬가지. 살아남은 5명의 기사 - 나, 사냐 공주, 에리카 대위, 나탈리, 그리고 펠츠 소위 - 는 둥그렇게 서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할래?"
  처음으로 입을 연건 당연히 사냐 공주였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분명 적의 3차, 4차 공습이 들어닥칠거에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2대1이라는 숫적 우위를 살리고도 전투에서 패할 수 있게 됩니다.”
  "다들 피곤하지 않아? 성치도 않은 몸을 이끌고 비행에 나섰다가는 죽음이라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팔이 자꾸 욱신거리는군.
  "걱정하지 마셔. 누구처럼 저질 체력에 약골은 아니니까."
  누가 저질 체력에 약골이야?
  "공격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단장님."
  "그래요, 창민경. 공격해야 해요. 이런 좋은 기회가 언제 다시 오겠어요?"
  "나도 동감이야. 이번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놔야 한다고."
  슬적 스푸르언스 제독 쪽을 보니 몇몇 기사단장들은 이미 올라가 있었다. 뭐, 우리도 이제 대충 정해진 것 같군.
  "갔다와."
  "네."
 
  대다수의 기사들은 공격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스푸르언스 제독이야, 몇척 남지 않은 항공모함들의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하지만, 우리 같은 말단들은 그런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바로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사파이어만의, 호넷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저놈들을 수장시켜 버려야 합니다!”
  특히, 우리 호넷의 급강하 폭격 기사단에서 출격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아무래도 모함이 공격받은 것에 대해서 굉장히 화가 난 것 같다. 사실, 나도 내색은 안했지만 괜히 호넷 생각을 하면 화가 나고 이가 갈리는건 사실인데, 다른 기사들은 어떻겠어.
  회의는 정찰기의 보고 직후 30분간 계속 이어졌고, 결국 스푸르언스 제독은 오후 4시 31분, 공격 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목표는 적의 공격대가 출격하기 전에 공격, 놈들의 항공모함과 공격대를 같이 수장시키는 것이다. 호넷의 기사단이 선두에서 호넷의 복수를 실시한다. 항공모함이 무력화 되면 각 기체는 자유롭게 임의 목표를 공격해도 좋다.”
  제독의 명령과 함께 이미 갑판에서 엔진을 예열시키면서 대기하고 있던 돈틀리스들과 블랙캣들이 목재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떠올랐다. 살아남은 모든 돈틀리스의 숫자인 44기의 돈틀레스들이 먼저 500파운드급 폭탄을 장착하고 갑판을 떠났고, 뒤이어 증가 연료탱크를 장착한 우리 블랙캣 전투기 10대가 그 뒤를 따랐다. 함에 남은 블랙캣? 겨우 4기다. 우리가 적의 공격 부대가 발진하기 전에 적 함대를 찾아내 격멸하지 못하면, 엔터프라이즈와 범블비 모두 호넷처럼 격침당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일이 되면 안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할거지만.
  성공적인 공격을 위해, 우리는 임시 기사단을 만들었다. 블랙캣 전투기들은 전부 임시 기사단 사냐에 통합 배속되어 사냐 공주의 지휘를 받게 되었고, 40여기의 돈틀리스들은 20기씩 나뉘어 각각 임시 기사단 '레슬리'와 임시 기사단 '베타샤'에 소속되었다.
  [전기, 이륙 성공했습니다.]
  [사냐01에서 임시 항공 기사단 사냐에게. 각 페어는 진형을 역V로 전환하세요. 돈틀리스들을 따라갑니다.]
  사냐 공주의 명령과 함께 우리는 흩어져서 역V자 대형을 형성했다. 우리보다 조금 앞쪽에서 날아가는 돈틀리스 부대의 후미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고, 그 뒤를 쫒아 우리는 순항 속도로 날아갔다.
 
  2
 
  우리가 후소 제국 함대 상공에 도착했을 때는 대략 1시간 뒤, 그러니까 5시 48분이었다. 살아남은 함대 전력은 항공모함 히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하늘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방공 및 요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로 요격기들은 하늘에 몇대 없었다. 오히려 바다에 불시착한 제로기들이 더 많았을 정도니까. 뭐, 어떻게 되었든 이건 우리에게 좋은거다.
  [후소 함대 발견. 전기는 고도를 높히고 급강하 폭격을 준비해라. 임시 기사단 '레슬리'는 적 항공모함 히류를, 임시 기사단 '베타샤'는 적 순양전함을 공격하라.]
  레슬리 중령의 명령과 함께 두 그룹으로 나뉜 돈틀리스들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급강하 폭격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핵핵거리면서 저고도에서 올라오는 적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강하를 시작했다.
  [전기 강하! 우리가 급강하 폭격 기사단의 길을 열어주는거에요!]
  사실 길을 열어주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후소 제국의 상공에 떠있었던 제로기는 다 합쳐봐야 고작 11기였다. 반면 이쪽은 15기. 아무리 저쪽의 기량이 우수하다고 해도, 숫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가 우월한 고도에서 우월한 속도로 공격을 가한다면, 버틸 수가 없다. 사냐 공주의 강하 명령과 함께 우리는 기수를 내리고 후소 제국의 제로기들 사이로 파고들어 난전을 개시했다. 1기의 제로기에 우리 블랙캣 전투기 2~3기가 달라 붙었고, 히류를 노리고 날아가는 돈틀리스들을 막기 위해 제로기 몇기가 그쪽으로 기동하려고 했지만, 그 앞을 막아선 블랙캣들 때문에 고전해야만 했다. 제로기의 파일럿들은 숫적 우위를 상실한 상황에서도 모함을 보호하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다 해서 우리를 뚫으려고 했지만, 숫자가 너무 적었다. 첫 강하때 이미 나와 사냐 공주, 그리고 나탈리의 소사에 3기의 제로기가 격추되었고, 뒤이은 난전에서 제로기들은 특유의 기동성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했지만, 하나의 꼬리를 잡으면 다른 블랙캣이 그 제로의 꼬리를 잡아버려 결국 공격도 제대로 못하고 이탈해야 하는 등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11기의 제로 전투기는 결국 전투 개시 10분만에 전멸해버렸고, 우리측 피해는 블랙캣 4기가 격추된 것 뿐이었다. 이들이 워낙 사납게 공격했기에 기총탄에 맞은 기체들 중 상황이 좋지 않은 기체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그정도로 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난전 중 아군기의 오인 소사에 더 심한 피해를 본 기체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가 제로기들을 섬멸했을 때, 가까이 있던 히류에게 임시 기사단 '레슬리' 소속 돈틀리스 22기가 쇄도해들어갔다. 다이브 플랩을 활짝 펴고, 70도라는 엄청난 각도로 돈틀리스들은 급강하를 시작했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찢음과 동시에 폭격이 시작되었다. 30노트로 움직이는 히류의 주변에 새하얀 물기둥이 솟구쳤고, 폭발한 지근탄에 의해 함이 좌우로 흔들렸지만, 히류는 용캐도 단 한발의 폭탄도 맞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거지만.
  [히에이의 공격을 취소. 히류 공격하겠다.]
  임시 기사단 '베타샤'의 기사단장 베타샤 소령이 이끄는 돈틀리스 부대가 요리조리 피하는 히류의 모습을 보고 공격하려던 순양전함 히에이 대신, 히류를 공격하기로 목표를 바꿔버린 것이었다. 아까의 지근탄으로 키가 망가졌는지 한쪽 방향으로 계속 돌고있는 히류를 향해 또 다른 20여기의 돈틀리스들이 급강하 폭격에 들어갔고, 결국 히류는 6월 5일, 오후 5시 59분에 4발의 고폭탄을 맞은 채로 화염에 휩싸인채 격침당했다. 붉은 화염이 목재 갑판을 태우고 점점 윗 갑판으로 올라왔고, 폭탄에 명중당한지 몇분만에 히류는 대폭발을 일으키며 유폭, 차가운 오스트해의 바닷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살아남은 기동부대의 함정들이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대공포를 쏴댔지만, 우리는 그런 대공사격을 비웃듯이 유유히 후소 제국의 함대 상공을 빠져나와 엔터프라이즈와 범블비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손실은 공격 때 보다 귀환 때 더욱 많이 나와버렸다. 우리가 전투를 마친 시각은 오후 6시 4분. 이미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을 때였다. 그건 그렇고, 함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군. 원래대로라면 함대는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다. 즉,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정상적인거다. 야간 등화관제는 당연한 것으로, 함대의 방공을 책임질 요격기가 몇기 없는 기동부대가 불을 켜버리면 그건 저 멀리 떨어진 적의 수상함 세력에게 '나 여기 있소'하고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 될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함대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비행했지만, 이미 몇몇 블랙캣 전투기들은 연료 부족으로 바다에 불시착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도에 그들의 위치를 마킹하는 것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뭐 보여?"
  [아니, 전혀.]
  [이쪽도 아무것도 안보여요.]
  "여기가 확실해? 잘못온거 아니야?"
  [잘못 왔어도 이젠 늦었다, 대위. 우리도 연료가 이미 빙고 상태를 지났다.]
  끄응. 잘못하면 전부 바다에 불시착해버리겠군. 나는 후두 마이크의 송신 버튼을 누른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스푸르언스 제독 각하!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는 해역에서 방위 1-9-9로 향하고 있습니다. 도데체 어디에 있는겁니까?"
  아무런 대답도 없다.
  "각하!"
  [수신이 안되는거 아닐까요?]
  [너무 멀어서 그런거 아닐까? 잘못 온거 같은데]
  사냐 공주와 나탈리의 비관적이 대답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기적이 일어났다.
  [스푸르언스다.]
  대답이 온거다.
  [함대 상공을 밝히겠다. 전기는 무사히 귀환하도록. 명령이다.]
  "에?"
  [전함은 빛을 밝혀라!]
  스푸르언스 제독의 명령과 함께 수평선 한가운데가 환하게 밝아졌다. 20여척의 함들이 발해내는 빛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갈랐고, 우리는 그 빛을 따라 함대로 접근했다. 이거, 미친짓 아니야? 자살행위잖아. 전시에, 그것도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등화관제를 하지 ​않​으​면​.​.​.​.​.​.​.​.​.​.​ 잘못하다간 후소 제국의 함대를 끌어들일 수 있다. 그들의 장기가 바로 야간 뇌격 및 포격전이라는걸 ​생​각​하​면​.​.​.​.​.​.​.​ 이거, 위험하다!
  "전기는 최대한 빨리 착함하라! 잘못하면 함대가 위험하다!"
  엔터프라이즈와 범블비, 그리고 호위 함정들은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밝힌 채 우리를 맞이했지만, 대부분 착륙 도중 제동에 실패하거나 갑판에 터치 다운 자체를 실패, 결론적으로 착함에 실패해버렸다. 다행이 근처의 호위함들의 재빠른 구조로 많은 기사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기, 착륙 완료. 이창민경만 착륙하면 됩니다.]
  "여기 대위 이창민. 착륙 허가를 바란다."
  ​[​엔​터​프​라​이​즈​입​니​다​.​ 착륙, 허가합니다.]
  모두가 착함한 것을 확인한 나는 랜딩기어와 테일 후크를 내리고, 플랩을 최대로 전개한 다음 천천히 엔진 출력을 줄이면서 접근했다. 아무리 항공모함이 30노트라는 고속으로 직진 항주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야간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줄에 작은 갈고리를 거는건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블랙캣 전투기의 고도를 천천히 낮추었고, 갑판에서 고작 1피트 정도 떨어졌을 때 완전히 엔진을 꺼버리고 브레이크를 힘차게 밟았다. 자 이제 조금 있으면 묵직한 진동과 함께 후크가 나를 ​멈​춰​줄​.​.​.​.​.​.​.​.​.​.​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강렬한 타격이 온몸을 휘감았고,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라. 분명 내 기수는 함수를 향하고 있었는데 왜 지금 나는 함미를 보고 있는거지?
  [차..창민경?!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저 바보 녀석 이번에는 크래쉬 베리어에 걸렸어.]
  [.....웬일로 랜딩기어가 멀쩡하다 했더니 이번엔 크래쉬 ​베​리​어​입​니​까​.​.​.​.​.​.​.​ 도데체 얼마나 정상적인 착륙을 싫어하시는 겁니까, 부단장님?]
  저기, 보통 이러면 걱정해 주지 않아?
 
  3
  나를 마지막으로 착함이 완료된 직후, 스푸르언스 제독은 후소 제국 함대와의 야간전을 회피하기 위해 함대의 침로를 서쪽으로 변경했다. 아무래도 야간에는 항공모함 작전이 껄끄럽고, 야간 착함과 연료 부족이라는 이중고를 겪은 기사들은 상당수가 착함에 실패해 출격했던 기체의 절반이 약간 안되는 30여기의 기체를 착함 과정 도중에 상실해버렸다는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이 기사들은 대부분 구출 되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치게 혹사당한 기체들과 기사들을 휴식 시키고, 다시 항공모함 작전이 가능해지는 내일 아침까지 재정비를 마치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 항공 기사들은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푹 쉴 수 있었고 말이다.
 
  다음날, 매치포인트 제도에 배치된 카탈리나 수상기들을 필두로 정찰 기사단이 적 함대를 찾기 위해 정찰에 나섰지만, 정작 적 함대는 찾지 못하고 후미에서 따라가던 구축함 1척만 간신히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것도 격침시키지 못했다. 아, 참고로 우리 기사단은 열외로 작전에서 빠졌다. 가용 전력이 전투기 3기로 줄어들어 사실상 정상적인 작전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6월 6일 하루 종일 엔터프라이즈에서 뒹굴거리면서 지낼 수 있었고, 제대로 전투 상황을 알게된 건 그날 저녁에 있었던 브리핑 때였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
  스푸르언스 제독이 함내 방송으로 브리핑을 하면서 한 말이었다.
  "먼저 나쁜 소식은, 우리 에르데 제국 해군의 항공모함이자 적 항공모함 2척을 격침시킨 ESS 호넷이 격침되었다는 것이다."
  좌중에서 한숨과 한탄, 그리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사냐 공주와 에리카 대위도 굉장히 아쉬운 표정이었고, 몇몇 기사들은 아예 울고 있었다.
  "구축함 해먼의 호위 아래 인양 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적 잠수함이 호넷을 공격했으며, 결국 해먼과 호넷 둘다 격침되었다. 아쉽게도 호넷을 격침시킨 이 잠수함에게 복수를 하지는 못했다."
  그것 정말 실망스러운 이야기군요.
  "좋은 소식은,"
  약간의 뜸을 들인 스푸르언스 제독이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황제 폐하의 친필 축하문이 10분전 지급으로 도착했으며, 지난 몇일간 수고한 귀관들 모두 사파이어섬으로 복귀한다."
  주변에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모두들 기뻐하면서 서로를 향해 축하해주고, 또 악수하고 격려하기 시작했다. 하긴, 당연한 반응이지. 압도적으로 강력한 적들을 이겼으니까. 과연 그 전력차가 압도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승리의 즐거움이란걸 만끽하자. 이번 전투가, 후소 제국의 기동전단을 박살낸 것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사실상 다음 공세를 펼 수 있는 전력을 한번에 섬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이제, 오스트 해에서 후소 제국이 자랑하던 강력한 항공 우세 따위는 없어졌다. 이제부터는 에르데 제국의 반격이 시작되는거다. 그리고 그 공세의 중심에는 우리가 있겠지.
  "응?"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갑판에 나와 있었다. 시원한 저녁 바닷바람이 짠 내음을 풍기면서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갔다. 해는 이미 수평선에 걸려 있었고, 수병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승리의 즐거움과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창민경?"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사냐 공주가 다가와있었다. 요즘 나, 너무 주변 상황에 신경 안쓰는거 아닌가?
  "왜?"
  "괜찮으세요?"
  "뭐가?"
  "갑자기 밖으로 나갔잖아요. 저는 무슨일 있나 했다구요."
  이제는 내가 걱정도 받아 보는구나. 왠지 모르게 감개무량하다.
  "별로. ​단​지​.​.​.​.​.​.​.​"​
  "단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지금까지는 후소 제국이 찌르면 우리가 막아내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칼자루를 우리가 쥔 것이다.
  "이제부터는 공세를 우리가 펴게 될거니까."
  ​"​.​.​.​.​.​.​.​.​.​.​.​.​"​
  "과연 얼마나 많이 그 과정에서 죽을건가, 생각이 들어서."
  ​"​.​.​.​.​.​.​.​.​.​.​창​민​경​.​"​
  "또 다시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 꼴을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이번 전투에서 우리는 유나 중위가 실종되었다가 카탈리나 비행정에게 구출되었고, 릴리엘 중위가 후소 제국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전사했다. 그 다음은 누가 될까?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은게 내 소망이지만, 이건 전쟁, 그리고 우리는 군인이다. 그리고 군인은, 최전선에서 합법적으로 살해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응?"
  잠깐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사냐 공주가 입을 열었다.
  "다른 누구 만큼은 몰라도, 절대로 저만큼은 죽지 않을테니까요."
  ​"​.​.​.​.​.​.​.​.​.​.​.​.​.​"​
  "저는 창민경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은걸요. 그러니까 절대로 죽지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모두들 같은 생각일거니까."
  낯 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이 철딱서니 없는 공주의 머리에 살며시 손을 올린 채, 나는 다시 태양을 응시했다. 붉게 빛나는 태양은, 앞으로 흘려야 할 피를 보여주는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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