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18 - Hell Gate Opens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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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페이지다. 전기, 출격!]
“창민입니다. 수신 완료. 전기 출격하겠습니다.”
페이지 대령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스로틀을 앞으로 밀었다. 로켓탄과 드롭탱크를 매달아 무거워진 블랙캣 전투기의 엔진이 갸르릉 울면서 천천히 속도를 높혔다. 단단한 참나무 갑판 위를 활주하면서 이륙한 내 블랙캣을 선두로, 우리 기사단 소속 블랙캣 전투기 8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리의 임무는 눈에 보이는 모든 적대 세력을 두들기는 것, 그것 뿐이었다. 플로리다 섬과 과나카날 섬 사이의 이 해협의 이름은 바로 제임스 해협. 이곳을 최초로 다녀간 브리타니아 선장의 이름을 따서 붙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제임스 해협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서 나섰다.
“자, 대형은 리버스 V(Reverse V)! 사냐 공주를 중심으로 유나 중위의 소대가 오른쪽에, 내 소대가 왼쪽으로 붙는다. 에리카 대위는 왼쪽으로 붙어.”
내 소대라고 해봤자 나와 나탈리 뿐이지만, 유나 소위의 소대는 유나 소위와 경화, 그리고 지경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에리카 대위를 사냐 공주의 왼쪽, 그러니까 내 앞에 붙혔다.
……대위가 아니라 소령이라니까!
“아참, 미안해, 소령.”
[괜찮습니다. 저도 헷갈리니까요.]
아니, 본인이 햇갈리면 어떻게 하자는거야?
[자자, 창민경이랑 에리카도 잡담은 그만하고. 이제 섬에 거의 다 왔다고요? 고도를 내리는게 좋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의 고도는 3000피트. 날이 맑기도 하고, 거기다 깨진 조각 구름들이 5000피트 상공에서 넓게 깔려 있었다. 즉, 우리 아래쪽으로는 엄청나게 깨끗하게 잘 보인다는 말이지. 사냐 공주의 말은 대략 이렇다. 전투를 치루고 있는 에르데 제국 해병대에게 근접 지원을 해주자는 것이다. 남을 돕기 좋아하는 사냐 공주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별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생각만은 아니다. 날개에 달려있는 8발의 로켓탄을 사용하면 분명 몸이 가벼워지겠지만, 블랙캣 전투기가 한번 고도를 낮추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대략 20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에 적기가 고고도에서 공격해온다면, 우리는 불리한 속도와 고도를 안고 공중전을 치뤄야 한다는 말이다.
[그...그러면 공격하지 않는건가요?]
설마 그럴리가 있겠어? 편대를 반으로 나눠서 교대로 때리면 되는거지. 나는 사냐 공주에게 유나 중위의 1소대를 데리고 강하를 지시했다. 에리카 소령과 나탈리, 그리고 나는 눈에 불을 켜고 하늘을 훑으며 상공을 엄호하기로 했고. 에리카 소령은 사냐 공주를 혼자서 보낸 것에 대해 조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지만,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애도 아니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러니까 저도 내려보내 주십시오.]
[안돼요, 소령님. 소령님까지 내려가버리면 저희 둘로는 상공 엄호를 장담할 수 없다고요.]
[중위, 중위만 해도 우리 제국의 상위 32위의 기사고, 부기사단장님께서는 제국 10위의 기사인데 도데체 어디에서 내가 공중 장악을 걱정해야 한다는 거지?]
......아 글쎄 그런 숫자놀음 같은거 믿지 말라니까. 그런 에이스 순위 같은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우연. 공중전을 움직이는 3개의 축은 바로 고도, 속도, 그리고 운이라고. 실력이 좋으면 뭐해? 재수 없이 조종석이 기관포탄에 꿰뚫리면 그대로 황천행인데?
[겸손하게 말씀하셔도 듣는 사람은 저희밖에 없습니다, 부단장님. 그렇게 까지 안하셔도......]
"아 글쎄, 겸손 떠는게 아니라니까!"
[어쨌건, 저는 나탈리 중위와 부단장님이라면 분명 제공권 장악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어...어? 잠깐, 소령!"
늦었다. 에리카 소령은 이미 기체를 뒤집은 다음 고도를 낮추며 사냐 공주의 편대를 향해 강하하고 있었다. 해병대와 무전 협조를 받는지 넓은 고지에서 방어선을 전개하고 저항하는 후소 제국군을 향해 사냐 공주와 6기의 블랙캣 전투기들이 들이쳤고, 순식간에 방어선은 쑥밭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약해진 방어선을 향해 해병대원들이 돌격했고 말이다.
[호오. 꽤나 일이 잘풀리는데?]
"그러게."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하다. 여기서부터 배로 이틀 거리에 후소 제국 최강의 함대가 전개되어 있고, 여기서 6시간만 비행하면 바로 남오스트해의 후소 제국 항공 세력의 최대 거점인 해처리섬이 있었다. 후소 제국의 항공기들은 기형적으로 항속거리가 긴 것 같으니, 절대로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졸지 말고 경계나 잘해."
[설마 뭔 일 있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거, 너 모르지?"
확실히 별로 할일은 없다. 나와 나탈리는 무슨 훈련비행을 하듯 섬 주변을 빙빙 돌았다. 아래에서는 사냐 공주의 편대가 열심히 쑥을 재배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건 우리랑은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말이다."
나탈리랑 단 둘이 비행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여하튼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여유라는 것이 사라져버렸다. 군인으로서 각오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건 아쉬운거다. 근 한달이 넘도록, 아니, 사냐 공주를 만난 직후부터 내 삶에 여유라는 것은 사라졌다. 우리 기사단은 공주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최전선에서 휴식 없이 계속해서 투입되었으니까. 덕분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런 여유 자체가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전장의 한복판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푸른 하늘을 감상하며 비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어? 즐길 수 있을때 즐겨 두자고.
[......44 기사단 응답하라, 오버]
뭘 즐길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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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냐 공주 편대는 탄약을 다 사용할 때 까지 섬에서 해병대를 지원해. 함대로 향하는 녀석들은 나랑 나탈리가 처리할테니."
[알았어요. 몸 조심해요.]
너나 조심해라. 대지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헤헷. 알았어요.]
여하튼 사냐 공주는 참...... 이상한데서 귀엽다니까. 아니, 다시 집중해야지. 지금은 어쩌면 우리 함대가 맞은 위기 중 하나일지도 모르니까. 우리 기사단을 호출한 것은 바로 우리 모함, ESS 주디케이터의 함장이자 함대 작전과장인 페이지 대령이었다. 대공 경순양함 에온의 레이더가 북서쪽에서 접근하는 8기의 항공기를 발견했다. 아군기일 가능성은 제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의 함대는 플레쳐 제독 각하의 지휘 하에 지금 섬의 동쪽에서 작전하고 있으므로 저건 아군이 아니었다. 적기다.
"미끼 아니에요?"
그게 내가 페이지 대령에게 첫번째로 물은 질문이었다. 저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침공 함대의 규모 정도는 본국에 통보를 했겠지. 엔터프라이즈만 해도 70여기의 항공기를 일시에 투입할 수 있으니까. 아직 우리의 도착이 저쪽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쳐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엔터프라이즈의 항공대를 상대하려면 최소한 100여기의 항공기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 근처 해역에 전개된 후소 제국의 항공부대들과의 교전에 상당수의 전투기 세력이 묶여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지금 다가오고 있는 적의 규모는 고작 8기.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나처럼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한번쯤은 함정이나 양동이 아닐까라고 의심할 수 있고 말이다.
[그건 아니다.]
하지만 페이지 대령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에온의 SC 레이더 스크린에 잡히는 것은 그것들 뿐. 그 외에는 티끌 하나 없다.]
아니, 못잡아도 20여척이 넘어가는 함대를 고작 8기의 항공기로 공격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나도 정확한 상황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적기 8기가 엔터프라이즈와 상륙함대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보급품을 양륙중인 상륙함대와 항공 작전으로 빈집이나 다름없는 엔터프라이즈의 함대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주력 함대로부터 10km도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빨리 요격해라.]
너무나도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기수를 돌렸다. 뭐, 사실 페이지 대령이 한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니, 그런데 어떻게 함대 반경 10km에 들어왔을 때야 적의 공격을 눈치챈담?
[우리야 오늘 도착했지만 저쪽은 지난 이틀간 1급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피곤에 절은 몸인데 제대로 돌아갈리가 만무하지.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요격이나 하도록.]
예, 예. 알았어요, 알았어. 주력 함대가 있는 방향을 슬쩍 돌아본 나는 기수를 북서쪽으로 돌린 다음 눈에 불을 켜고 적기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어느 고도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잘 찾아서 높은 고도에서 기습을 해야만 한다. 적은 뇌격기나 폭격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2대 8. 우리가 숫적으로 확실히 밀린다. 그러므로 기습의 이점은 완벽하게 살려줘야만 한다.
[찾았다! 11시 방향. 구름층 조금 아래!]
나탈리의 무전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구름들 아래로 검은 점 몇개가 꾸물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 잘 찾았는데, 나탈리!
[헤헷]
"대충 패턴은 알잖아?"
[당연하지. 너랑 나랑 몇년지긴데. 위에서 강하한 다음 뒷치기, 아니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무슨 표현이 그렇게 과격해?
5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명확하게 적 기종을 분류할 수 있었다. 초록색 도장, 2개의 엔진, 꼬리날개, 새하얀 아랫배, 그리고 유리로 된 기수. 후소 제국 해군의 주력 폭격기인 G4M 베티가 분명했다. 처음 만나는 놈들도 아니라서 쉽게 쉽게 해치울 수 있겠지. 나탈리에게 날개를 흔들어 신호를 보낸 나는 그대로 기체를 뒤집은 다음 조종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머리가 띵 했지만 아직 멈출 수 없었다.
이놈들은 무슨 뇌격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한다고. 절대 함대 근처로 가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반원을 그리며 고도를 낮춘 나와 나탈리는 빠르게 베티들의 새하얀 아랫배를 노리고 움직였다. 우리의 접근을 알아챈 베티들이 조준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어총좌를 쏘아댔지만,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적기를 추격했다. 초구 속도가 느린건지 베티의 방어총좌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포탄을 쏟아내고 있었고, 그정도는 나나 나탈리에게 별로 위협이 되지도 않았다.
"조준?"
[완료!]
그럼 사격.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나탈리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주익에서 강렬한 진동이 전해지며 50구경 기관총탄들을 허공으로 흩뿌렸다. 베티의 하얀 아랫배를 노리고 날아간 기관총탄들은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깔금하게 금속 표피를 관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조준한 베티는 주익과 동체의 연결부분에 피탄당했는지 깨끗하게 주익이 잘려나간채로 바다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탈리가 조준했던 베티는 연료탱크에라도 맞았는지 대폭발을 일으키며 불덩이가 되어버렸고.
[격추! 격추!]
"아직 6기나 남아있어! 함대가 코앞이니까 빨리 처리해야지!"
조종간을 잡아당겨 고도와 속도를 교환한 나는 기체를 빙그르 뒤집어 다시 한번 강하를 준비했다. 6개로 숫자가 줄어든 후소 제국의 폭격기 편대는 대오를 좁히며 방어 기총들로 십자포화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곡사포로 유명한 후소 제국의 20mm 기관포들로 우리를 막을 수는 없겠지. 나탈리와 나의 합동 공격으로 또다시 2기의 적기가 불덩이가 된 채 바다로 추락했다. 하지만 우리의 행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재공격을 위해 이탈한 직후, 수송 함대의 상공을 통과한 적기들은 그대로 폭탄을 투하했다. 바다 위의 수송함들이 점으로 보이는 3만 피트의 상공에서 하나하나 올리브 색 폭탄이 땅으로 떨어졌다.
[제...젠장!]
나탈리와 나는 재빨리 재공격 코스로 진입했지만, 폭탄을 모두 투하해서 가벼워진 적기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우리의 추격을 뿌리쳐버렸다. 함대 상공을 방어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쉽게 추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말이다...... 쳇. 애시당초 자유 공격 임무만 맡다가 호위 임무를 맡으면 몸이 쑤신다고.
적기의 폭격을 막지 못한 우리는 착륙 직후 호된 야단을 맞았다. 다른 제독들이나 해병대 사령관 반데그라프 소장은 이쪽 수가 적었고, 적의 폭격기는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해 주었지만, 문제는 구 에온의 함장 현 주디케이터의 함장인 에이저 페이지 대령이었다. 아니, 폭격 받은 당사자들은 좋게 좋게 넘어가는데 왜 당신이 그렇게 난리냐고요?!
"시끄럽다, 임마!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오늘 사라질 뻔 한거냐?"
"아니, 고작 2기로 그 짧은 시간에 8기를 다 격추하라고 하는게 문제 아닌가요?"
"시끄러! 군인이 까라면 까야지!"
......뭐 이런게 다있어? 하나 다행이라면 페이지 대령의 구박은 사냐 공주가 우리와 합류하면서 끝났다. 이것 참, 이를 수도 없고. 쳇.
뭐, 주디케이터의 갑판에서 내가 꼬리날개에 2개의 핀을 그려넣는 동안, 우리 44 타격대는 해협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후소 제국이 폭격기와 수상기를 이용해서 지속적인 공습을 가해왔는지 합류하는 우리를 뜨겁게 맞아주었다. 지휘관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다음 공중 장악을 위해 우리는 6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소티나 출격을 해야 했고, 덕분에 그날 저녁, 우리 타격대의 대원들은 전부 녹초가 되었다.
"......힘들지 않아?"
비행 대기실에서 널브러져 있는 사냐 공주에게 말을 건넸다.
"힘든데요...... 내색은 못하겠네요."
"왜?"
"여기 계셨던 분들은 전부 이틀이나 이런 지옥을 겪었을테니까요."
......갑자기 그들이 존경스러워지는건 왜일까?
"그러게. 대단하네."
나탈리도 질렸는지 혀를 내두른다.
"어떻게 밥도 못먹고 이틀이나 버틸 수 있는거야?"
저기, 나탈리 프로필라이넨씨? 사람은 밥 안먹고도 1달도 버틸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제야 경계 태세가 2급으로 내려가서 다행이네요."
지난 이틀간에 격전 - 우리에게는 하루 반나절이었지만 - 동안 혹사당한 함대를 위해 곰리 제독은 전부대에 2급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혹사당한 우리가 함대 경계를 맡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타격대는 항공모함이라는 중요한 함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보섬 북부 해역에 배치된 중순양함 ESS 퀸시, ESS 아스토리아, ESS 빈센스의 북부 함대와와 남부 해역에 배치된 HMS 빅토리아, HMS 캔버라, 그리고 ESS 테터의 남부 함대 사이에 배치되었다. 중순양함만 양 부대를 합쳐 5척, 경순양함 1척에 구축함 4척. 거기다 외해에서 경계를 맡은 구축함 블루와 랄프 탤벗도 있다. 아마 전함만 오지 않는다면 에르데 제국 해군도 어느정도 승산이 있을거다.
......아마도 말이지.
"그런데, 전함이 오면 어떻하지?"
"그때는 우리가 가장 먼저 피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함 때문이겠죠. 해역에 남은 유일한 항공모함을 상실하면 안돼니까요."
"잠깐, 에리카. 그럼 다른 함정들은?"
"우리가 후퇴할 동안 시간을 벌겁니다."
"아니, 8인치로 전함에 흠즙은 낼 수 있기는 해?"
"아니요. 그러니까 우리가 빨리 후퇴할 수록 저쪽도 살아나는 확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뭐 그런 말도 안돼는 작전이 다있어?! 거기다, 다른 사람들을 고기 방패로 내세우고 우리만 도망치라고? 잘도 사냐 공주가 수긍하겠다! 응? 가만. 방금 에리카 소령이 뭔가 이상한 말을 한거 같은데?
"잠깐만. 지금 주디케이터가 이 해역에 남은 유일한 항공모함이라고 했어?"
"예. 무슨 문제라도?"
"엔터프라이즈가 있잖아?"
저 밖에! 아까 해 지기 전 마지막 소티 때 내가 분명이 봤다고? 저기 있는걸.
"엔터프라이즈라면, 오늘 오후 6시를 기점으로 해역을 떠났습니다."
"엥? 왜?"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아까 페이지 대령님이 꽤나 화를 내시더군요. 주력함대가 도망간다고."
......그 사람은 워낙 다혈질이니까 그렇다고 하고, 어째서?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에리카 소령도 모르는게 있구나. 아아, 뭐 어때? 어차피 우리의 임무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걸. 엔터프라이즈가 있던 없던, 우리의 임무는 제공권 장악, 그 뿐이다. 단지 소티 수가 좀 늘어나겠지만, 한두번 해보나, 이런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