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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1 - 히스테리 Part 3


  3
  “어? 창민아! 다 끝난거야?”
  천막을 향해 다가오던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나탈리가 나에게 달려들으면서 물었지만, 나는 나에게 안겨오려는 나탈리의 머리를 눌러 접근을 저지하고는 천막 안에서 무슨 좀비들 처럼 주섬주섬 일어나는 우리 기사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으아, 오늘이 더운 날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까지 있다니., 그게 더 놀랍다.
  “아직 안끝났어.”
  거의 다 끝났기는 하지. 그러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근데 왜 온거야? 아! 우리랑 같이 놀려고?”
  그말에 좀비처럼 죽어있던 눈들에 생기가 도는건…….내 착각이겠지?
  “아니”
  “에..에에?”
  “선배~ 너무해요.”
  “부단장님. 지금까지 이 더운 땡볕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분들의 여심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으시는건 조금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흥!”
  ……내가 잘못한거냐?! 그리고 소령! 여기가 뭐가 땡볕이야, 저 밖이 땡볕이지!
  “자외선을 차단하지 못한다면 땡볕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늘 아래서 그런말 하지 마……. 아니,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그렇게 계속 놀고는 더 논단 말이야? 좀 일 해라, 일. 저 앞에서 우리 기지 만드느라고 고생하는 공병대원들이 안보여, 응?
  “하지만, 저들은 공병이잖아.”
  “근데?”
  “기지 만드는건 공병들이 하는거지, 왜 우리가 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탈리가 물어본다. 사실, 나탈리의 말이 맞기는 하다. 기지 만드는거야, 부대 시설이면 시설 공병이 하는거고, 참호 같은 전투 시설이면 전투 공병이 하는거고. 나탈리의 말대로, 진지 구축에서는 삽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리는 일개 보병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말이다. 항공기사라는 우리의 특성상,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탈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시설의 건축은 공병에게 100% 맡긴다고 치자. 그래, 그렇다고 하자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상황’에서나 적용되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가? 야간전에 후소 제국의 함대에게 기습을 당해 중순양함 4척을 잃고, 그 대가로 제해권과 제공권을 상실하고, 덕분에 보급선도 차단당해 전투기 1기 조차 날리지 못하고, 매일매일 떨어지는 폭탄과 포탄에 시달리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한다. 그뿐이야? 제대로 된 보급이 안되다보니 별것 아닌 감염이나 질병에서 고생하거나 병사하는 해병대원들이 속출하고 있고, 기름 부족으로 가동되지 못하는 장비들은 적의 폭격에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박살나버리거나, 하다못해 살아남았다고 해도 해체되어 동류전환 되어버리는 실정이다. 비는 오다 안오다 오다 안오다 오다 안오다 오다 안오다 하는, 무슨 엿장수 마음대로 심보라서 식수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고, 힘들게 식수를 구했다 하더라도 그 양은 턱없이 부족해서 반데그라프 소장 이하 전원이 목만 간신히 축이는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 목욕이나 샤워, 양치나 세수 같이 몸을 씻는 행위는 동료들과 교대로 망을 봐가면서, 강에서 악어나 다른 육식성 물고기에 물리지 않도록, 혹은 물 속의 기생충이 달라붙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씻어야 한다고. 이런걸 무서워하는 여군들은 아예 씻지 못해서 자기 몫의 생수를 아껴가며 씻고 있고.
  도데체 지금 이 어디가 정상적인 생황이라는 말이냐?
  지금, 내가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방법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이 생활를 박살낼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비행장을 완성해서 보급선을 재개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보급선을 재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 뿐이고, 그 주역이 에르데 제국의 해군 함대와 항공 기사단원들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관 없겠지?
  다시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이 활주로는 우리의 생명선이자 희망이요 목숨 그 자체라고. 그러니까 나탈리, 심통난 것 처럼 부풀린 볼 집어넣고 지금부터 할 일이나 좀 도와라.
  “칫. 뭔데?”
  어째 나탈리의 목소리가 조금 까칠해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쓴소리 하기 싫다고. 왜 나를 군기반장으로 만들어 놓고 나한테 따지는건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꾹꾹, 마음 속으로 눌러 담았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탈리다. 지금까지 내 목숨을 몇번이나 구해주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 죄책감을 어떻게든 덜어주려고 애쓰는 내 가족이다. 아니,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그정도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같은 동포들에게 배신자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나를 따라와준 고마운 친구이자 누나이자 여동생이다. 그냥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아직도 빵빵하게 부풀러오른 나탈리의 볼을 뿌우-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전투기, 전부 이쪽으로 옮기자.”
  “이쪽으로?”
  “응. 마침 시비즈 중대원들이 간이 쉘터까지 만들어준 덕분에 딱 숨기기 좋게 되었잖아?”
  “지금 숨겨놓은 것도 충분하지 않아?”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같은 곳에 숨겨두었다. 생각해보면 진작에 위치를 바꾸어놓았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있었던 활주로 공사와 후소 제국의 기습에 그걸 까먹고 있었고, 그 댓가는 오늘 아침 기습 폭격에 당한 블랙캣 1기였다. 어쩐지 정찰기들이 요즘 저공비행하면서 날아다닌다 했더니, 그새 숨긴 곳을 찾아낸 모양이다. 쳇. 대공포탄만 충분했다면 분명 쫒아낼 수 있었을테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5인치 대공포의 포탄 수도, 대공포 숫자 자체도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상륙했을 때처럼 공습에 격렬하게 저항할 수 없다. 이번에는 운좋게 1기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우리의 남은 전재산인 블랙캣 3기가 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전투기 지원을 받기 전까지 완벽하게 무력화되어버리게 될 것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항공모함 함대가 빨리 와서 기사단을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가 계속될거다. 비행기가 있다면 기름만 보급받으며 전투에 임해도 되지만, 비행기도 없다면 병사들이 겪을 상대적 상실감이 클테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동고동락해왔던 우리 기사단의 전투기들을 지상 파괴라는 형편없는 이유로 잃고 싶지는 않았다.
  “타당한 의견이긴 합니다만, 어떻게 옮겨오실 생각입니까?”
  나와 나탈리 사이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에리카 소령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좋은 질문이야.”
  이곳, 그러니까 제 2 활주로와 제 1활주로 사이의 거리는 대략 4km. 거기다 중간에 나있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해서 도저히 전투기를 견인하면서 올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뭐, 날개를 다 접으면 견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견인을 할 차량도 없고 말이다. 이걸 손으로 밀면서 옮기겠다고 덤비면 오늘 내로는 안 끝날껄?
  “이쪽 도로는 좁아서 못쓰고…….”
  “쓴다고 하더라도 견인할 차량도 없으니 오래 걸리겠죠.”
  “설마 정글 속으로 지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설마.
  “상륙 주정을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땡. 에리카 소령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다에서 여기까지 꽤 멀다고, 소령? 소령이 들고 옮길거 아니잖아?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뚫고 갈 수 없고, 우회할 수 없다면, 넘어가야지.”
  “어?”
  “잠깐만요, 설마….?”
  돌아가 보면 안다고.
 
  4
  본대로 돌아왔을 때는 아까 들었던 사실보다 더 좋은 사실들이 잔뜩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흙먼지와 파탄 파편과 피로와 피에 찌든채 고생했던 나날들이 한번에 씻겨가는 느낌이다. 음, 조금 쉽게 비유하지만 10년 묵은 변비가 내려간다는 기분이려나? 아니, 여하튼간에 말이야, 그동안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온 우리 기사단과 해병 1사단 장병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소식들이었다. 뭐냐고? 흐흠~ 이런, 기쁘니까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오는군. 좋은 소식이 여러개라 들뜬 마음도 증폭되는 기분이다.
  “우와! 드디어 완공된거야?”
  “이제 부터는 제대로 싸울 수 있는거네요!”
  “거기다 적기는 하지만 보급품들까지 들어왔습니다. 다시 해볼만 해진 것 같습니다만, 부단장님?”
  “우와~ 출격이다, 출격~”
  …….다들 신이 나서 어쩔줄을 모르는구나. 사실 나도 지금 기분 같아서는 방방 뛰면서 즐기고 싶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나도 사람인데. 나에게도 감정이란게 있다고. 그것도 그동안 후소 제국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 건설해온 핸더슨 비행장이 완공되었을 때의 성취감과 해냈다는 만족감, 거기에 부족하지만 들어온 탄약과 연료등의 보급품들이 들어왔을 때의 감격. 이정도 감정 정도는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거잖아, 그렇지? 나도 지금 신나고 즐기고 싶다니까? 단지, 내 옆에서 그저 고개만 돌린채 토라져 있는 사냐 공주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는거지.
  “…….흥!”
  ……..도데체 언제쯤 저 화가 풀릴지 모르겠네. 음, 하지만 지금은 다른걸 걱정해야만 한다. 사냐 공주가 화난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중요하니까.
  “유나 중위는 2명 차출해서 보급품 양륙하는 것들 좀 확인해줄래? 보급품 목록 받아서 나한테 제출하고 우리 필요 목록 작성해줘.”
  “알겠습니다.”
  “에리카 소령은 보급품 목록 받아서 확인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보급 목록 좀 작성해줘.”
  “예, 부단장님.”
  나를 보며 알았다고, 맡겨만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두사람이 믿음직스럽다. 내 옆에서 방방 뛰면서 드디어 날 수 있다면서 신이 난 나탈리나 토라진 채 고개만 돌리고 내 시선을 피하는 사냐 공주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워. 암, 그렇고 말고.
  “창민아, 난?”
  그리고 그런 나탈리가 내게 물어왔다.
  “너? 너 뭘?”
  “나는 뭐 안시켜줘?”
  ……아까 까지만 해도 일하기 그렇게 싫어하더니, 지금은 아예 눈에서 빛이 번쩍이는구나. 칫. 은근히 열받잖아.
  “나탈리. 너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길게.”
  나탈리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찬다. 동시에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 반응하는 사냐 공주의 모습도 보이고. 나를 의식해서인지 직접저긍로 물어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가 불러주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계속 나를 힐끔거리면서 내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두사람 다 미안. 나는 두사람의 기대감을 가볍게 배신했다. 이건 벌이라고. 치사하게 나만 일하게 만든 괘씸죄에 대한 벌!
  “나탈리 너는 나머지 애들 데리고 가서 보급품 양륙 해.”
  “에? “
  “보급품 나르라고.”
  “아, 알았어. 그렇게 할……응? 잠깐만, 그거 육체 노동 아니야?”
  빙고.
  ​“​하​하​하​하​하​…​.​나​는​ 그냥 들어가서 쉴까나……”
  그럴줄 알았어. 하여튼 ​게​을​러​가​지​고​는​…​…​…​
 
  결국 나탈리와 사냐 공주는 안으로 들어가서 쉬었고, 나머지 기사단원들이 보급품 양륙 작업에 투입되었다. 나를건 많은데 사람 수가 적으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사실 이번 보급은 제대로 된 보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 이곳에서 보급품을 양륙하고 있는 함정들은 수상기 모함 베스핀의 호위를 받아서 온 수송선 3척과 소형 유조선 1척이 전부고, 이 수송선들은 빨리 떠날 수 있기 위해 일반적인 수송정들이 아닌 상륙정들을 이용해 보급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LST들이 물자를 싫은 박스와 드럼통들을 싣고 해안가로 달려오면 우리, 그러니까 해병들과 해군 공병 대대원, 그리고 우리 기사단원들이 달려들어 박스를 나르고 드럼통을 나르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투입된 인원수에 비해서는 별로, 아니,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당장 해병 1사단 중에서 투입된 병력은 3개 중대가 채 되지 않고, 해군 공병대대와 수송중대 병력, 그리고 우리 기사단을 합쳐도 9개 중대 2000여명이 채 되지 않는다. 거기다 중장비 없이 무거운 포탄과 탄약, 연료를 인력으로 운반해야 하니 그 속도는 자연히 떨어지고, 더군다나 나른 다음 물자를 옮길 집적소를 만들 인원들도 필요하니 실제로 투입된 병력은 더욱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건 대부분의 연료는 카탈리나 수상기 편으로 활주로로 착륙해서 그나마 이동거리나 양륙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지만, 그래봤자 힘든건 마찬가지고, 우리에게 보급해줄 수 있었던 연료는 얼마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모든 연료가 우리에게 100% 배정되는 것도 아니니…… 으아, 총체적 난국이군.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라면 우리 기사단의 보유 전투기 전력이 4.5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4.5기.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전투기 3기에 비하면 비록 분해된 상태로 오기는 했지만 조립에는 4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블랙캣 전투기와 소모성 예비 부품을 합쳐 1.5대의 전투기가 합류했다는 말은 우리에게 꽤나 큰 의미를 지닌다. 50%나 전력이 증강되었으니까.
  “무장과 부품, 그리고 엔진의 부품들까지 전부 확인 완료했습니다.”
  역시나 꼼꼼한 에리카 소령. 시키지 않아도 잘 한다니까.
  “집적소는 아직…….이지?”
  “예. 아무래도 중장비가 부족하니까요.”
  음. 아무래도 하나밖에 없는 불도저가 저쪽 제 2활주로에 있는게 아쉽군. 당장 우리가 쓰기 위해 불렀던 것이지만 정작 여기에 필요하니 없네. 뭐, 그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보자면 우리 잘못이니까.
  “그건 그렇고, 명단…..은 뽑아 놨어?”
  “예.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말을 살짝 흐리면서 물었는데도 불구하고 에리카 소령은 바로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짚어냈다. 명단. 휴식과 재보급을 위해 빅토리아 대륙으로 후송될 우리 기사단원 4명의 명단이다.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조종사 보다 전투기 소모가 빠르니 제대로 된 운용도 불가피할테고, 안그래도 부족한 식량만 축내는 실정이니까. 내가 부기사단장으로서, 사살상의 모든 책임을 쓰고 욕을 먹는거면 상관이 없다. 우리 기사단원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는거 같고 뭐라하면 본말 전도지. 하지만 휴식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대부분의, 아니, 나를 포함한 모든 기사단원들이 전투 피로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거다. 간단하게 무기력증과 무작위로 발산되는 짜증과 분노로부터, 심하면 불면증까지. 아직 무장 탈영이라던가 사보타지 같은 심각한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기사단원들은 충분히 지쳐 있었다. 사실 지금 상태로 봤을때 우리 기사단은 당장에라도 전선에서 빠져 휴식 및 재보급을 통한 전투력 회복을 노려야 한다. 제대로된 보급 없이 일선에서 몇주 동안 지내왔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 기사단의 상징성이 너무나 크다. 우리 기사단 정원 8명 중 5명이 20기 이상을 격추한 에이스인데다가, 1명은 에르데 제국 최대의 해군기지인 사파이어만이 있는 사파이어 제도의 영주, 다른 하나는 에르데 제국의 제 6 황녀다. 이런 고위급 인물들이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다면, 그건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에르데 제국군 장병들에게 사기를 부여한다. 생각해봐라. 우리와 함께 싸우고 있는게 연약할 것 같은 공주라면? 휘하의 병력만으로도 제국 주 군사력 서열 5위 안에는 꼭 들어가는 사파이어 제도의 영주라면? 이런 귀족층들이 직접, 총대를 매고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싸운다면? 이러면 사기 진작이 안되는게 이상하지. 거기다 에르데 제국 특유의 Rich Man’s Burden (가진 자의 의무), 그러니까 우리 세계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해당하는 전통 때문에 황족이나 귀족 가문의 혈연중 누군가는 반드시 가문을 대표해서 전쟁에 참여해야 하고, 또 그런 임무에서 사냐 공주와 우리 44 기사단은 적격이다. 폭격 기사단에서 근무하는 아일린 공주가 있지만, 요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들은 소식도 없으니 논외로 치자.
  어쨌든, 그래서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의 허가를 받아 우리 기사단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4명의 기사단원을 돌아가는 카탈리나 수상기 편으로 되돌려보낼 생각이다. 물론, 에리카 소령이 뽑은 그 다섯사람 중에는 나탈리와 사냐 공주가 껴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있고.
  “두분은, 여기에 남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에리카 소령의 생각은 달랐다.
  “왜?”
  “비록 사용 가능한 전투기가 없다고 하나, 전력의 절반이 감소되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치열해질 전장에 투입될 부대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어차피 그렇게 될거라면 숙련된 에이스들을 남기는 것이 전력 보존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냐 공주가 걱정 되지도 않냐?
  “공주 전하가 걱정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당장은 부단장님께서 챙겨주는게 더 좋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저기, 나는 그냥 부관일 뿐이고, 기사단장은 사냐 공주거든? 거기다 계급도 저쪽이 더 높거든?”
  알면서 왜 그래?
  “쯧쯧쯧…….”
  어, 지금 혀 찬거야, 소령? 내 말에 에리카 소령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아니,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계급이나 직위를 떠나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만…… 하아, 부단장님께 여자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게 역시 ​무​리​였​나​요​…​…​.​.​”​
  소령….!!
  “뭐, 상관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벌써 몇달이 지나도록 성장을 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것에 대해 실망했을 뿐이니까요. 후송 명단은 그냥 제가 정한대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성장조차 안했다는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애시당초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모르겠다고!
  ……뭐, 됐나. 어차피 에리카 소령은 내가 말해봐야 들어줄 기미도 없고, 나 스스로도 지금 내 옆에서 웃고 떠들고 짜증내고 투정부리는 나탈리와 사냐 공주 두사람이 없으면 아마 버틸 수가 없을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에리카 소령은 틀렸다. 의지하는건 사냐 공주가 아니라, 나니까.
 
  “…..해서, 이번에 후송되는 인원은 유나 중위, 미야 중위, 펠츠 소위, 지경이, 그리고 경화로 정해졌다. 네사람은 각자 짐을 꾸려….. 뭐, 쌀 짐도 별로 없겠지만, 각자 알아서 꾸린 다음 10분 뒤  1800시까지 비행장 1번 활주로로 집합하는거야. 네사람, 그동안 고생하느라 수고 많았고, 본토에서 신형기가 도착하는대로 바로 재투입 될거니까, 훈련 게을리하지 말고 상급 부대 명령 들으면서 잘 지내고 있어. 알았지?”
  “걱정 마세요, 부기사단장님! 제가 군기 바짝 세워서 데려올테니까요!”
  없는 가슴 자랑스레 펴보이면서 호언장담하는 미야 중위였지만……. 하아……. 사실 미야 중위가 제일 걱정이다. 아니, 무슨 항공 장교가 그렇게 길치야? 일단 유나 중위가 같이 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펠츠 소위에게 필요한 지령은 다 내려 놓았으니 그나마 안심이다.
  “나머지 세사람은 오늘 빅토리아 시티로 돌아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할 겸, 오랜만에 비행도 해볼 겸 전투 출격할거니까, 다들 준비하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세사람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오랜만, 정말 오랜만에 다 같이 나가게 되는 전투 출격. 우와, 이 말이 그렇게 아름답게 울릴 줄은 몰랐다. 나야 어제 한번 비행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감이 많이 떨어졌을 수도 있겠군.
  “이얏호! 비행이다, 비행!”
  “오랜만의 비행이라……. 아, 좋지 아니한가!”
  ……..여하튼 다들 오랜만에 비행한다는 즐거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무표정에 무감정이 특기인 에리카 소령마저 대놓고 웃을 정도니, 그 기쁨을 대충 이해할 수 있겠군. 어째 평소에 안웃던 사람이 웃으니 섬뜩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잘못 말했다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테니. 음. 다들 좋아하는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탈리와 에리카 소령은 오랜만의 출격이라는 점에 기뻐하고 있고, 빅토리아 시티로 돌아가는 후송 사인방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집과 장소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좋아하고 있다. 그리고 사냐 공주는…….
  “……흥!”
  나를 힐끔힐끔 처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니까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나 정말 뭐 심한 잘못 한건가? 이따가 애들 보낸 다음에 잠깐 둘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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