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3 - 한밤중의 불청객 Part 1
1
“후소 놈들은 잠도 없나?”
“그러게…… 벌써 지금이 몇번째인지……”
“매일 밤 날아와서 폭탄 한두개 던지고, 우리가 반격하기도 전에 도망가버리면 어떻게하라는거야…… 비겁한 놈들.”
어젯밤에 떨어진 폭탄들의 잔해를 치우는 해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일로 후소 함대가 나타나지 않나, 싶었더니만 수상기 하나가 앵앵거리면서 날아와 폭탄 4발을 떨구고 도망가버렸다. 눈이 먼채 떨어진 폭탄들은 대부분 엉뚱한 곳에서 폭발해 그다지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마지막 폭탄이 식량 저장고를 직격한 덕분에 그대로 삼일치 식량이 불타버렸다. 미리미리 분산시켜 두어서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아,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보급이 재개되었다.
남오스트해 사령부에서 보내준 수십척의 LST들이 상륙 램프를 내리고 싣고 온 보급품들과 지원 병력들을 내려놓았다. 빠른 양륙을 위해 아예 보급품을 트럭 채로 싣고 온 덕분에 거의 1시간이면 LST 1척 분의 보급품을 양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안선에 몰려든 것은 한두척이 아닌 30여척이 넘어가는 LST들이었고, 한척의 양륙이 끝났다고 해서 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식량, 소화기 탄약, 구급용 의약품 부터 시작해서 전차 엔진, 수리 부품, 전투기 부품, 연료 등등. 오랜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잔뜩 들어온 덕분에 만들어두었던 물자 집적소들은 순식간에 꽉 차버렸고, 덕분에 그 안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우리 블랙캣 전투기들도 쫒겨나버렸다. 이제부터는 아늑한 격납고 신세 대신에 노천에서 나뒹굴게 되었지만, 우리들 중 그 누구도 푸념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새 전투기 부품들과 엔진, 새 무장, 그리고 못보던 사람들이 돌아왔으니까.
“중위 유나 이하 4명, 전원 44 기사단 복귀 신고 합니다!”
“왜 왔어? 그냥 좀 더 쉬지…..”
유나 중위, 미야 중위, 펠츠 소위, 경화, 그리고 지경이 네사람이 다시 우리 기사단과 합류했다. 일부러 조금 쉬라고 보냈건만, 며칠만에 돌아올건 없잖아...... 정말, 왜 온거냐고? 그냥 거기서 좀더 쉬면 내가 부대 재편성 및 합류를 핑계로 우리 기사단을 전선에서 좀 빼내려고 했더니만.
“공주 전하와 부단장님께서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저희가 제대로 놀 수 있겠어요?”
“그런거 치고 얼굴이 좀 탓다, 미야 중위?”
“헤헤헤헤…….”
뭐, 즐겁게 놀았으면 그걸로 된건가?
간단한 이산가족 상봉이 끝나고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당장 보유한 기사단원은 8명으로 늘어났지만 출격할 수 있는 전투기는 고작 4기가 끝이다. 기억하지? 우리 총 보유량이 6기였지만 그 중 2기는 부품 부족 및 상태 이상으로 창고 안에 처박혀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거의 폐품 상태나 다름없는 전투기들을 새 부품으로 교체하고, 아예 블랙캣 2기는 완전 신품으로 재조립해야 하니까. 우리가 우리 전투기를 직접 조립한다라는 말은 땀과 기름으로 점철된 육체 노동 파티의 시작 한다는 말이지만, 우리들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다. 음, 우선 37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이 우리의 전의를 불태우는데 도와줬다고 해야 하나? 이녀석들이 우리의 작업 모습을 보고 지나가면서 수근덕 댄 것을 우리가 들은 것이 하나의 원인이었다.
“나참, 정비대 없는 기사단이라니. 저래가지고 제대로 된 작전이나 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이 인간들아, 그런 말을 할거면 좀 멀리 떨어져서 하던가, 왜 하필이면 우리 앞에서 대놓고, 그것도 큰 소리로 말하냐는거지. 뭐, 대신에 열받은 우리 기사단원들은 더더욱 힘을 내서 작업에 매진했고, 고작 1시간 30분만에 블랙캣 2기의 부품 교체를 완료했다.
하지만 우리의 불타오르는 노력은 순전히 저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우리의 블랙캣은 F4F-3가 아니니까.
그래, 업그레이드 작업이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블랙캣의 업그레이드 작업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걸 타고 싸웠다고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저성능의 기체인게 이 F4F-3 블랙캣이다. 무겁지, 둔중하지, 롤 성능도 그저 그렇지, 엔진도 힘없지, 힘도 없는게 쓸데없이 몸무게는 많아가지고 상승도 제대로 못하지, 그렇다고 급강하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 거기다 펀치력도 고작 13mm 4정이라서 너무 약하다. 후소 제국기들의 급소만 노렸기에 제대로 격추가 가능했지, 아니었다면 우리가 우수수 떨어졌을거라고. 그래서 나와 에리카 소령의 오빠 되는 갈란트 중장의 계속된 건의로, 우리는 블랙캣의 업그레이드형인 F4F-4를 수령할 수 있었다. 분해된 덕분에 우리가 직접 조립해야 하지만, 그게 어디야? 일단 스펙상으로만 봐도 우리가 원래 사용하던 블랙캣 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단 말이지. 엔진도 1200마력에서 1350마력으로 소소하지만 증가했고, 기관총 1정당 장탄량이 450발에서 240발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 아쉽지만 대신 기총이 6정으로 늘어났다는 것도 좋은 소식이다. 우리 기사단의 전술은 확실하게 근접해서 공격하는 것이었으니까, 다수의 총탄을 단시간에 쏟아부을 수 있는 전투기가 훨씬 적합하다. 최소한 내 전술은 그렇다. 다만 아무래도 날개 접기 기능이 있는걸 보면 우리처럼 비행장에서 사용하는 것 보다는 항공모함 운용에 좀더 중점을 둔 것 같지만. 아, 뭐, 어때! 상관 없다고! 이제 새 기체란 말이다!
“흐흥~ 흐흥~”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그동안 이녀석 몰고 싸우느라 힘들었다고!”
블랙캣의 주익을 교체하며 나탈리가 대답했다. 진흙, 먼지, 그리고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있고 페인트 까지 군데군데 벗겨져버린 육중한 알루미늄과 티타늄 주익이 쿵,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뽀얀 흙먼지가 일어났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그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소령? 준비 끝난거야?”
“예. 안에 배선 점검까지 끝냈습니다.”
“기총은?”
“명령하신대로 따로 빼두었습니다.”
오케이. 역시나 에리카 소령. 내가 말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아 들어서 좋단 말이야. 에리카 소령과 펠츠 소위 두사람이 새 주익을 얹은 수레를 우리쪽으로 밀고 왔고, 우리는 그대로 간이 크레인에 장착한 다음 블랙캣의 높이 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바로 조립하고. 의외의 팀워크 덕분에 뭐 부품 교체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완료!”
“공주 전하께 가지고 가겠습니다.”
“응. 가서 기총 테스트랑 엔진 테스트만 해달라고 하고.”
분업. 철저한 분업이 바로 우리의 팀워크의 열쇠다. 경화와 지경이가 부품을 날라오면 나와 나탈리가 그 부품들을 헌 부품들과 바꾼다. 그동안 이번 블랙캣 업그레이드의 주요점 중 하나인 주익을 에리카 소령과 펠츠 소위가 조립하고, 그 다음 우리는 옛 주익 대신 새 주익을 장착한다. 마지막으로 사냐 공주와 미야 중위가 그 새로운 주익에 무장과 연료를 넣고 테스트를 해보는거다. 어때, 간단하지? PROFIT!!
말은 간단해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전투기 정비라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다 같이 했으니까.
우리 기사단이 다 같이, 말이야.
2
으음…….
등과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에 눈을 뜬다. 밖이 밝은 것을 보니 벌써 해가 뜬 것 같다. 뭐, 여기는 열대 지방이라 해도 일찍 뜨니까 실제로는 아침일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였…….는데 안 일어나지네. 양 팔에는 무언가 묵직한 것들이 달려 있어 내가 움직이는 것을 완전히 방해하고 있었다. 어쩐지 팔이 조금씩 저려온다고 했어. 뭔가 좀 무겁더라니만. 왼쪽에는 나탈리, 오른쪽에는 사냐 공주. 둘이서 아주 내 팔을 배개로 사용한답시고 팔배게를 한채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이게 보통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다. 전혀 편하지 않다고? 엄청 무겁다고? 불편하다고? 아무리 여자라도 기본적으로 이렇게 팔을 머리로 짓누르고 있으면 아프단 말이야!
뭐, 그렇다고 딱히 팔을 뺄 생각은 없지만.
아직 반응이 있는 손을 움직여 나탈리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깨우려고.
“우웅…….”
그런데 일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내쪽으로 돌아 눕는건….. 어째서? 나탈리부터라도 깨우려고 그녀의 머리를 계속 만졌지만 오히려 나탈리는 기분이 좋은지 그저 베시시 미소만 지으면서 계속 잠만 잘 뿐이었다.
“헤…헤헤헤….헤헤헤헤헤……”
……무슨 꿈을 꾸는거냐…..너?
“휴……”
포기. 나탈리라면 먼저 깨나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사냐 공주를 깨우는 것을 시도했다. 시도는 했다, 정말로. 중간 부터는 쓰다듬는 머리카락이 너무 부드럽고 향이 좋아서 계속 쓰다듬었다는걸 부정하지 않겠지만.
“부단장님, 일어나셨습……”
……에리카 소령.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제가 어젯밤에 깜빡 졸아버린 사이에 무슨 짓을 하신겁니까…..?”
“나…나는 별짓 안했어? 그냥 일어나보니 이렇게 되어있던거라고!”
“……그렇게 믿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만……마지막 선은 조금 자제해주셨으면합니다.”
“그러니까 나도 일어나니 이런 모습이었다니까!”
“우웅…….”
“음…….”
아야야, 애들 깨겠다.
“일단 얘네들 부터 좀 깨워주라.”
우리 기사단은 어제부로 완전히 보급 및 기체 정비를 마쳤다. 저녁 8시가 되서야 끝나버린 작업은 우리 전부를 녹초로 만들었고, 밥을 먹기는 커녕 너무 지쳐서 씻지도 못한 채, 우리 모두 기름과 녹으로 범벅이 된채 전투기들 옆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덕분에 우리의 상태는 완전히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우리 기사단의 제일 말단인 경화와 지경이, 그리고 펠츠 소위 뿐만 아니라 도도한 에리카 소령과 사냐 공주까지도 말이야. 물론 나라고 그게 예외라는 법은 없었고. 아주 그냥 메스꺼운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배고파하는 우리 기사단원들에게 먼저 밥부터 먹으라고 명령해놓고 반데그라프 소장에게 보고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식사 메뉴는 비슷비슷할테니까 지금 먼저 일을 좀 끝내놓으면 이따 다 같이 쉴 수 있겠지. 그리고 막 아침 식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기사단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듯한 밥을 먹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메뉴야 뭐, 엄청 단순하겠지만. 길게 늘어선 줄을 돌아보며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의 지휘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소장님?”
“아, 이창민 소령. 잘 왔네. 어제 44 기사단의 작업은 끝난건가?”
“예. 작전 가능한 상태의 전투기 9기와 예비 기체 1기를 확보했고, 다시 합류한 조종사 다섯까지 합쳐 총 9기의 블랙캣이 작전 가능합니다.”
다시 전력의 100%를 충원하게 된 우리 기사단. 블랙캣 전투기가 함재기인 덕분에 높은 가동률을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예비 기체까지 1기를 더 확보해놓았다.
“음, 좋아, 좋아. 증강된 전력이니 어제와 같이 폭격을 맞는 것은 더이상 기대하지 않아도 좋은건가?”
하하하하하……. 아픈데 찌르지 마시고 그냥 끝난 일인데 그만 하면 안될까요, 소장님? 어차피 제 잘못도 아니잖아요…… 아니, 내 잘못일지도.
“오늘 오전 초계는, 37 기사단인가?”
“예, 그렇습니다. 저희 기사단은 오후 초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 오후 초계는 4시 부터 시작이니까 그때까지는 조금 쉬어 두게나. 후방으로 교체도 못되는 실정인데 최대한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어야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