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2 - 라이벌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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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아아앙~
[여기 에리카. 적기 포착했습니다. 1시 방향, 약간 아래쪽에!]
보인다. 푸른 수평선 너머에서 꾸물거리는 하얀 점들을 발견한 우리는 기수를 그쪽으로 돌리면서 조종간을 당겨 고도를 살짝 높혔다. 나를 중심으로 전개된 스트레이트 진형의 블랙캣 전투기들은 고도를 올리면서 과나카날 섬으로 다가오는 적기들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12O’Clock, High. 폭격기를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에리카 소령! 사령부에 연락해서 3파 중 1파, 찾았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전부 각자 목표 잡고 헤드온 코스로 진입한다. 명심해, 가장 약한 부위인 조종석을 때리는거야!”
[여기 사냐, 목표 잡았어요.]
[에리카 입니다. 사령부에 보고 마쳤고, 목표 잡았습니다. 벌써 37 기사단은 교전에 들어갔다는 보고입니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았다. 저 멀리 푸르른 하늘 한가운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새하얀 비행운이 얽히고 섥혀 있었다. 한창 하는 중이구나.
[자….우리도 37 기사단에는 질 수 없잖아요, 그렇지 사냐?]
[그럼, 나탈리! 절대로 질 수 없지. 37 기사단 따위에게 우리 44 기사단이 질리가 없잖아, 그렇지?]
아아…… 정말 그러지들 말라니까. 왜들 그렇게 37 기사단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우리의 목적은 적의 폭격기 요격이지 37 기사단이 아니라고. 거기다 너네 둘 언제부터 그렇게 말 놓기로 했냐? 응?
[헤헤, 상관 없잖아!]
[그래요, 창민경. 절대, 절~대로 어제 그 일 때문에 이러는게 아니니까요.]
어제 그 일이라고 해봤자 그냥 나 조금 다친 거에 격추 기록 양보한 것 뿐인데……. 별로 막 강하게 반응할 만한 일은 아니다. 사냐 공주는 또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37 기사단이나 잡으러 가자고요! 텔리 호!]
“아니, 잠깐, 37 기사단이 아니라 후소 제국이겠지?”
7월 2일, 후소 제국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다. 해역에서 작전하던 아군 잠수함 3척을 새벽에 격침시키는 것으로 시작으로, 빅토리아 시티, 뉴기니아 등 에르데 제국군과 브리타니아 제국군이 작전하고 있는 주요 거점에 폭격과 함께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건 우리 쪽도 예외가 아니라 해병들이 구축해놓은 비행장 방어선을 향해 후소 제국의 육군이 공격을 시작했다. 경전차와 야포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에 중장비라고는 경전차 5대가 전부인 에르데 제국 해병대는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일상적인 정찰을 나갔던 아군 카탈리나 비행정은 귀환 도중 적 폭격기 편대와 조우해버렸고, 격추되기 직전 남오스트해 작전 사령부에 핸더슨 비행장으로 향하는 대규모 편대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레이더 상에 나타난, 3파로 나뉜 적기 편대를 향해 나뉘어 접근하는 중이고. 우리의 목표는 하나, 적의 폭격을 저지하는 것 뿐이다. 적기의 격추보다는 최대한 많은 폭격기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탄약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나의 목표는 아무래도 달성하기 힘들 것 같다. 적당히 폭격기만 치고 빠지려면 자제심과 차가운 마음이 필수인데, 하필이면 37 기사단이 우리 기사단원들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으니까. 정확하게 말해서는 마울러 대위겠군.
“도둑고양이 기사단에게 우리가 밀릴 수는 없다! 다들 열심히 해보자고!”
……아니, 그러니까 왜 이런 식의 말을 해서 사냐 공주의 화를 돋우냐는 말이지? 안그래도 37 기사단은 반황제파의 거점이라고 볼 수 있는 칼레도니아 주 출신이라서 사냐 공주가 불편하게 생각하는데다가 지난번의 주스트 때의 일, 거기다 어제 37 기사단의 오인 사격 때문에 별로 사이도 좋지 않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기름을 들이 부어대었으니……. 사냐 공주가 이상한 적개심과 경쟁심에 불타오르게 되잖아…….. 뭐하는 짓이야, 그자식! 덕분에 나만 고생하게 되었잖아!
아니, 이제와서 화를 내봤자 늦어버리기는 했지만.
[사령부로 부터 긴급 전문 입니다.]
“뭔데, 소령?”
[슬롯을 통해 들어오던 적 폭격기 부대는 37 기사단이 막아냈다고 합니다. 적 폭격기 3기를 격추하고 4기를 반파시켰으며, 이쪽은 2기를 상실했다고 합니다.]
“호위기 숫자는?”
[6기 정도 된다고 합니다.]
[공중전에서 별 도움도 안되는 폭격기 요격하러 8기가 출동했는데 호위기 제압도 못해서 2기가 격추된거야?]
나탈리가 비웃듯이 말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별로 비웃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해처리 섬에 주둔하고 있는 후소 제국의 공정병단은 정예 중의 정예. 지난 코랄해 해전으로 지켜낸 뉴기니아의 비행장에서 발진하는 에르데 제국 폭격기들이 매일같이 두드리는데도 불구하고 사기 저하나 전력 격감은 커녕, 오히려 더더욱 활기차게 반격을 가해오고 있는 놈들이다. 숫자 상으로는 6 대 8이겠지만, 실제 기량을 따져보자면 고양이가 햇병아리들을 사냥하는 모습이겠지…… 아니, 고양이가 아닌가? 뭐 어쨌든간에 말이야, 절대로 만만하게 볼 만한 상대는 아니라는거지.
자, 이제 생각은 그만.
싸울 시간이다.
[적기와의 거리, 1.5km]
“전기, 무기 사용 자유. 목표는 적 폭격기의 조종석! 일격하자마자 이탈해서 다음 다시 고도 회복해서 한번 더 치고 돌아간다.”
[알았어요, 창민경. 일격 필살, 인거죠?]
[좋아, 좋아. 가자고!]
……다들 정말 쓸데없이 헛바람을 잔뜩 들이키는게…… 영 느낌이 좋지 않다. 씁,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들어갈거야. 쓸데 없는 공중전에 휘말리지 말고, 딱 한번 공격하고 고도 회복하는거, 잊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해. 우리가 이런거 한두번 해보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걱정된다고!”
[창민경, 너무 우리를 못 믿는거 아닌가요? 충분히 해낼 수 있다니까요!]
……이쪽 전력은 블랙캣 4기. 저쪽은 폭격기 6기에 호위로 붙은 제로기 6기. 흰색 점들과 초록색 위에 갈색이 덕지덕지 발라진 길다란 원통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나도 크게 한숨을 들이 쉬었다.
“휴……”
긴장되는건 아니다. 곧 다가울 전투에 무서워 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해서 죽을까봐 무서운 것도 아니다. 그냥, 무언가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조종사로서, 파일럿으로서, 항공 기사로서 자긍심과 자존심, 그리고 모험심과 욕심이 많은 우리가…… 과연 일격이탈이라는, 엄청난 자제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그리고 두렵다.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가.
생각해봐라. 이건 전술 자체의 문제다. 12O’Clock이라는 전술 자체는 간단하다. 적기 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에서 적 폭격기의 12시 방향, 즉 정전방에서 폭격기를 향해 강하, 공격, 그리고 이탈한다. 참 쉽죠? 쉽기는 개뿔. 오히려 실수하면 어어 하는 사이에 훅 가버리는게 이 전술의 약점이다. 12O’Clock이라는 전술 자체가, 적기보다 높은 고도에서 적진의 중앙에서 호위기들에게 호위를 받고 있는 폭격기들에게로 뛰어든다는 말이니까, 절대로 안전한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미친 짓을, 내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라고 말을 해야만 한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탈리와 사냐 공주 두사람은 쓸데없는 열정을 불태우며 강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적기와의 거리, 500m!]
[자자, 그럼 강하, 강하!]
아차차? 사냐 공주를 필두로 나탈리와 에리카 소령이 따라 붙은 채 각자가 점찍은 베티 폭격기를 향해 기수를 숙이고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에 뒤따라 나도 따라내려가기는 했지만, 늦었다. 주황색 동심원들 한가운데에 적 폭격기의 유리창과, 그 안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승무원들의 얼굴이 들어왔을 때 재빨리 방아쇠를 당긴 다음 그대로 기수를 들었다. 콕핏부터 수직 꼬리날개까지, 일직선으로 기체에 박힌 고폭탄들이 폭발하면서 알루미늄 조각과 깨진 유리 조각들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조종사를 잃어 중심을 잃은 기체는 무력하게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지금까지 고도를 낮춘 대신 얻은 속도의 탄성으로 기수를 치켜들고 급상승 하기 시작했다. 일단 일격 이탈은 성공이다. 자 그러면……. 그런데 다들 어디갔냐?
[꼬리에 붙었어?!]
[에리카, 나탈리 뒤에를 좀 봐줘. 내가 엄호할테니까]
[알겠습니다. 중위, 기다려라.]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수면 위로 짙은 푸른색 도장을 한 블랙캣 전투기 3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얀색 제로기 사이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이어진 5개의 검은 연기 기둥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일격 직후 이탈하라고 일렀거늘, 고작 한기 더 격추할 욕심에 적진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냐?
당장에라도 화를 내고 싶지만, 참자. 지금은 일단 구하는게 먼저다. 그대로 공중에서 반바퀴 루프를 끝낸 나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적기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나탈리의 조금 뒤쪽에서 그녀를 추격하는 제로기의 예상 진로에 기관총탄을 흩뿌린 다음, 에리카 소령의 우측에서 접근하는 제로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 놈의 공격을 견제한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적의 출현에 놀란 놈들이 흩어졌을 때, 나는 재빨리 플랩을 펴고 두 손으로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흩어지는 제로기 하나의 꽁무니가 조준기 한가운데로 들어온 순간, 격렬한 진동이 조종석을 뒤흔들었고, 그 제로기는 동체가 화염에 휩싸인 채 바다를 향해 속절없이 떨어졌다.
[차….창민경……]
[저…저기……. 미안!]
진형으로 복귀한 내가 사냐 공주와 나탈리를 쏘아보자 돌아온 대답. 하지만 내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도데체 무슨 정신머리로 내 말을 따르지 않은거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37 기사단은 숫적 우세를 가지도고 블랙캣 2기를 격추당했는데 우리는 그들보다 숫적으로도 열세라고! 왜 그런거야? 응?
…...이 긴 말을 무전으로 건네기는 좀 그렇겠지.
“두사람 다, 나중에 돌아가면 나 좀 보자?”
[차차차차차창민경….? 서…설마 혼낼건 아니죠?]
[잠깐, 잠깐만, 창민아! 미안해, 미안하니까, 다시는 안그럴테니까…..?]
“에리카 소령, 실망이야? 최소한 소령은 사냐 공주 말릴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이봐요, 우리 기사단에서 내가 비행 실력으로 믿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 그렇게 무성의하게 대답하면 안되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여기서 이렇게 설전으로 싸우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 아직 적의 제 3파가 남아 있으니까. 기수를 북쪽으로 돌린채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2기의 폭겨격기와 제로기 4기를 바라본 나는 고개를 돌려 사냐 공주와 나탈리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는 바로 제 3파의 적기가 다가오고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1파를 37 기사단이 막는데 20분이 넘게 걸렸고, 우리고 15분 정도 걸렸다. 그 시간이라면, 어쩌면 적기들은 이미 핸더슨 비행장에 도착했을지도 모른…… 설마?
[부단장님, 반데그라프 소장님의 전언 입니다. 적 폭격기 3파가 방공망을 돌파, 비행장을 폭격했다고 합니다. 활주로의 보수작업이 한창이니 제 2 활주로에 착륙하라는 전언입니다.]
……이럴줄 알았어, 내가. 이럴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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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생각이 있는건가, 없는건가? 뭐하자는거야, 지금?”
“……”
“……”
두사람의 기사단장들이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건 꽤나 보기 힘든 광경인데 말이야. 뭐, 두사람 다 잘못하기는 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작전대로 하지 않고 멋대로 적기랑 교전하래? 폭격기만 빨리 솎아낸 다음 제 3파를 막으러 가야한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두사람 다 지금 계급이 소령이랑 중령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정신 머리가 없나? 이 비행장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자네들의 기사단의 그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계산에 넣을 수도 없단 말일세!”
“……”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말고, 애시당초 죄송할 짓을 못합니까, 전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 제국의 황녀이신분으로서 조금 체통을 지켜주십시오! 다른 기사단과 근위대 기사단의 자존심 싸움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소장.”
“중령, 중령도 자네 기사단원들의 통제를 조금 더 확고히 하게. 37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 다른 부기사단원들을 선동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보고 받아 알고 있어. 지난번 이창민 소령에게의 모욕적인 언사도 그렇고, 조금 교육좀 잘 해두게나.”
“……시정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애시당초 시정할 일, 잘못한 일을 만들지 말로교요! 에휴. 모르겠다. 아니, 근데 사냐 공주야 정신 연령이 어리니까 그렇다고 해도, 켈더프 중령까지 그렇게 애처럼 쓸데없는 경쟁심을 일으키면 어떻해요? 아아….역시 여기는 글렀어, 글렀다고!
한바탕 반데그라프 소장의 화가 휩쓸고 지나간 뒤, 우리는 바로 전투 후 정비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정비대도 없는 우리 기사단인 만큼 정비부터 점검, 비행까지 우리가 전부 해내야만 한다. 내 개인적인 입장으로선 37 기사단의 정비대 대원들이 직접 정비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애석하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냐 공주가 극렬 반대했으니까. 절대로 원수에게 손을 빌리 수는 없다나, 뭐라나? 내가 원수가 아니라고 그렇게 설명했지만, 아무래도 사냐 공주는 37 기사단 쪽이 싫은가보다.
“내 제 1기사의 다리에 총탄을 박아넣었는데, 그게 원수가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건 이미 지난 일이니까…..”
“흥! 안돼요! 저사람들이 나에 댛새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신경 쓸일 없지만, 감히 창민경을 다치게 하는건 용서 못한다고요!”
네, 그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를 생각해주는건 좋은데 말이야, 너무 그러는건 조금 부담된다고. 거기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나탈리나 에리카 소령도 직접 정비를 하게 되었으니…..뭐랄까,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다. 하지만 그건….천천히 지나가면서 조금씩이나마 풀어나가는 수 밖에는 없겠네. 조금은 바쁘고 조금은 힘들겠지만….. 오늘 하루도 살아남았다. 다 같이. 중간에 위험했고, 내 동의도 없이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한 세사람에게 화도 조금 났지만, 어느새 그건 유야무야 증발해버렸다. 다른 사병들 보는 앞에서 사냐 공주도 반데그라프 소장에게 직접 혼났으니 이번에 대충 뭔가 느낀게 있겠지.
……그렇겠지?
그래, 그걸로 만족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