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3.5 -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 - 토피도 쥬스!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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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적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것을 열게 되었습니다~
참나, 홈아일랜드에 있을 때도 이런건 안했는데 말이지. 끽해봐야 교정에 작은 트리 하나 갖다놓고 꾸민 다음 크리스마스 이브날 맛있는 반찬 더 주는 정도…..?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은근히 기대도 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흥분되잖아?
다만, 하나 걱정거리가 있다면 주최자들이 두 공주들이란 말이지. 제 4 황녀 아일린과 제 6 황녀 사냐. 두사람의 권력은 황족이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게 막강했고, 덕분에 언제나 보급이 부족한 과나카날 섬에서도 음식을 쉽게쉽게 조달해냈다. 아니, 뭐, 음식이라고 해봤자 통조림들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야? 이런거 쉽게 못 구한다고!
……나중에 반데그라프 소장님께 한소리 들을 것 같다.
“헤헷, 파티 준비는 이정도면 되겠죠?”
통조림 안의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낸 아일린 공주가 말함과 동시에 하나와 테스텔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탈리가, 마지막으로 사냐 공주가 들어왔다. 원탁에 놓여진 통조림 음식들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음식다운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종류도 다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신선해보였다. 내가 정말 살다살다 별다른 호강을 해보는구나.
“응? 그건 뭐야?”
“네? 아, 이거요? 에리카가 줬어요.”
……사냐 공주의 손에 들려있는건 투명한 병에 달린 뭔가 이상한 느낌의 노란 액체…… 웬지 느낌이 불길하다. 특히 의외로 장난치기 좋아하는 에리카 중령이라면 말이야.
“그….그거 안먹 – “뽕” - 으면 안돼? 웬지 이상해 – “캬아~” - 보이는데……”
……사람이 말할 때는 좀 들어라, 이 인간들아! 늦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 벌써 병마개 열고 잔에 따라서 마시고 있어! 아일린 공주는 다 좋은데, 너무 성격이 급하단 말이야…….
“캬아~ 완전 마이는데, 이거? 자자, 도려, 도려~”
기분이 좋은듯 얼굴이 벌개진채로 실실 웃으며 모두에게 잔을 돌리는 아일린 공주. 자기 잔에 조금만 따랐다고 말하면서 잽싸게 병을 채간다음 아예 병나발을 불기 시작하는 사냐 공주(…). 그리고 두 공주들의 압력에 못이겨 한모금씩 들이키는 나탈리와 하나, 그리고 테스텔.
……그런데 어째 점점 다들 혀가 풀리고 얼굴이 발그레 해진…..다?
잠깐만, 이거 설마……?
“헤헤…..헤헤….헤헤헷”
“나…나탈리, 잔 좀 이리 줘봐.”
손에 힘을 주면서 저항하는 나탈리에게서 잔을 뺐은 나는 그대로 입가로 가져갔다. 물론 마시거나 간접 키스 따위를 하려는게 아니라, 그냥 냄새를 맡아보려는거지만.
……진한 알코올 냄새와 파인애플 향의 미묘한 조합이라…… 이거 술이잖아! 에리카 중령, 이럴줄 알았어, 내가! 진작에 말렸어야 했는데 말이야, 아예 그냥 병을 뺏고 바닥에 던졌어야 했다고! 이미 바닥을 보이는 병을 지금에야 던져 봤자 아무런 소용은 없을테지만, 아직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막아야지, 어쩌겠어? 나는 필사의 심정으로 오른손을 저 빌어먹을 술병을 향해 뻗었다. 저걸 내 손에 넣어야 더 이상의 불상사를 피할 수 있어…!
…… 늦었다.
“헤헷, 안돼요, 주인님~”
“테..테스텔! 이거 놔…… 손을 어디로 가져가는거야!”
“안돼요, 절대 주인님 보내드릴 수 없어요. 저는 주인님의 것이니까요~”
…… 혀 풀린채로 그런 말 해봤자 아무런 느낌 없거든. 그리고 왜 은근 슬쩍 내 손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가서 부비부비하는거냐…… 어차피 너는 흉부 지방이 적어서 아무런 느낌도 안난단말이다……
아니, 그것보다 일단 저 술병을 손에 넣어야…….
“스승~님☆”
……좌 하나, 우 테스텔. 무슨 이런 조합이 다있어…..! 두사람 다 내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챘는지, 내 팔을 꽉 붙잡고, 아니, 아예 안아버렸다. 테스텔을 자기의 가슴을, 하나 녀석은 자신의 볼을 거기다 부비부비하고 있고. 불나겠다, 이놈들아! 좀 나오라고! 어라, 꿈적도 안하네.
“아…아니, 사냐! 너 군인이잖아! 무슨 군인이 전시에 술을 마시고 있어?”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아직 입은 살아있다! 나는 병에 남은 술을 마저 마시기 위해 입을 대는 사냐를 향해 소리질렀다. 그만 좀 마시라고! 고작 한잔 마신 다음에 취해서 뻗는 놈들이 왜 술을 마시고 난리야? 그나마 다행인건 저건 사냐 공주라는 것. 그래, 사냐라면, 사냐 공주라면 분명 정신을 차릴 것이다. 누구인데?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전장 한복판에 뛰어든, 온갖 욕이란 욕과 멸시란 멸시는 전부 받으면서도 단순히 공주라는 허울 좋은 이름 하나 때문에 군인의 길을 걷기로 한게 사냐 공주다. 고작 이정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리가 없어! 최대한의 혼을 담아, 외쳤다.
“그만 마셔! 너는 자랑스러운 제국의 군인이라면서!”
“……공주는 상관 없습니다.”
……사냐 공주의 말에 내 기대가 와장창, 깨져버린다. 내 말은 듣지 못했다는 듯 그냥 병채로 원샷하는 사냐 공주.
“어차피 창민경은 상관 없는 일이잖아요!”
아, 신이시여, 어째서 저는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겁니까?
거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상관이 없다니? 네 직속 상관이 나거든! 이렇게 되면 내일 반데그라프 소장님께 뭐라고 보고해야 하는거냐고…….
“아~ 정말, 군이니 술 좀 마실 쑤도 이찌~ 무슨 남자가 그렇게 마리 마나……”
나탈리 녀석은 벌써 푹 취했다. 완전히 꽐라가 되어서 혀가 베베 꼬인 채로 내게 삿대질을 하고 앉아있는 것을 보면 100%다. 확실해!
“나탈리!”
“헤헷~ 이거 맛만 좋은데, 뭘.”
……저 술…… 저 술이 원수다, 정말. 에리카 중령, 정말 다시 봤어. 치사하게 나는 이런 곤란한 장소에 떨어뜨려 놓고 자신은 슬쩍 몸만 빼냈다, 이 말이지? 복수해줄거야!
“…………………………………….”
“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그러니까 일단 이 두사람 부터 떼어 놓고 말이지. 일단 하나 녀석과 테스텔로 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슬쩍 팔을 움직여보았다. 움직이기는 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치 팔이 바위 사이에 끼기라도 한 듯 전혀 움직임이 없다. 마치 단단한 자물쇠 마냥 내 팔을 걸어 잠근 두사람에게 머리를 부딪혀가면서까지 저항을 해보려고 하지만…….. 역효과다. 오히려 테스텔은 기분이 좋은지 더더욱 꽈악 끌어 안고 있다. 그…그렇게 끌어 안으면 네 몸매는 에르데 제국의 대평원과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느껴버릴 수 밖에 없다고! 거기다 하나 녀석은 안그래도 잘 느껴지는데 더 껴안으면 나더러 어쩌라는건데?
“주인님…..”
매혹적인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이는 테스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주인…..님……”
나, 네 주인 맞지? 그렇지? 그러면 좀 주인의 명령이란걸 좀 들어줄래?
“주…인…님……”
이미 늦은 것 같다.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 발그래해진 볼. 붉게 물든 피부. 술냄새가 폴폴 풍기는 숨결.
취했다.
“우읏! 스승님, 이쪽도 봐달라고! 내..내가 몸매는 훨씬 더 좋으니까☆”
뭔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슬쩍 내 팔을 자신의 가슴 사이로 집어넣는 하나 녀석. 양 팔에서 전해져오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느낌에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게 부러워 죽을 상황인거 같지? 직접 당해봐라. 맨날 보면서 부대끼고 살아가다보니까 여자라기 보다는 가족 같은 사람들한테 술김에 이런 진상 아닌 진상을 당하는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고. 그나저나, 이 두사람으로 부터 일단 탈출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다행이 나탈리가 도와줬다.
“으아니 차! 왜 두사람은 창민이에게 달라 붙어 있는거야?!”
소리를 지르면서 내게 점프해온 나탈리. 앞에서 엉겨 붙음과 동시에 내 두 팔을 강하게 잡고 있던 하나와 테스텔을 몰아내면서 내 정면을 점령해버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내 두팔이 나탈리의 몸을 밀어냈다.
……거기, 지금 내가 이런 상황을 마다하는게 못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거지? 그 얼마나 무시무시한 생각이냐?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분명 이렇고 그렇고 저런 꼴을 당할게 분명하다고!
“으에엥!”
“야! 대위! 치사하게 그러기야?”
……지금 하나 나탈리에게 반말 쓴 것 같은데…… 뭐 상관 없겠지. 지금은 내가 그런 쓸데 없는 일에 까지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니까.
“대위님은 우리가 스승님 만나기 전부터 계속 만났으니까 이제는 좀 양보 하라고!”
“양보 못해! 창민이는 내꺼야!”
“왜 우리 스승님이 대위꺼야? 내꺼지!”
……이창민 공공재설이 떠돌아다니는 이유를 알겠다. 이 두놈 때문이구먼.
“두사람 다 시끄러워요! 창민경은 당연히 그 주인이자 제국의 6황녀인 이 사냐의 것이지요!”
안그래도 소란스러운 난장판에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사냐 공주가 개입했다. 식탁 너머로 점프해 그대로 하나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전한 사냐 공주 덕분에 나는 잠깐이지만 신체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잠깐! 창민공의 몸은 나의 것, 그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 없어!”
“언니는 빠지라니까!”
“너나 빠지라니까!”
“언니는 상관 없잖아!”
“왜 너는 맨날 너만 좋은 것을 가져가려고 하는거냐!”
……나이스 타이밍. 나탈리를 즈려밟고 착지하신 아일린 공주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사냐 공주와 아일린 공주 두사람이 싸우는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대놓고 일어서서 달리지는 못하고 슬금슬금 기어서 말이다. 저 술에 취한 진상들이 말다툼 하는데 굳이 관심 끌어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그렇게 조심조심, 여편네들이 열심히 말싸움 하면서 으쌰으쌰 거리는 동안 기어기어 간신히 입구 근처까지 도달하는데 상공했다. 조…조금만 더…..?!
꽈악
“헤헤헷~ 잡았쪄요, 주인님~”
이제 몇걸음만 더 가면 자유의 몸으로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었건만…… 그 실날 같던 희망이 그냥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끼기긱, 녹슨 경첩을 돌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테….테스텔……”
한번만 봐주라…… 나 정말 힘들다고, 요즘…….
“왜 그냐 가세요? 그냥 가버리면 테스텔 슬퍼요……”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그런 말 하면서 옷 벗지 마라, 응? 캬악, 벗지 말라니까! 내 말은 들을 추호도 없는건지 이미 테스텔은 자신의 군복을 풀어 해치고 있었다. 슬쩍 드러난 어깨와 새하얀 살로 덮힌 쇄골. 그리고 그 아래에서 금방이라도 벗겨지기를 기다리는 가슴…..은 개뿔, 아무것도 없구만. 잠깐, 나는 왜 거기서 뭘 기대한걸까? (…)
“오늘 밤은…… 부족한 몸이지만 열심히 봉사하겠어요!”
“필요 없다.”
미안하지만, 정말로. 내게 필요한건 혼자만의 시간이지,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이런게 아니다.
애시당초 이런 일이 생길까봐 내가 기념일을 안챙기는 것이기도 하고.
“네?”
“……필요 없다고. 그것보다 우선 옷 좀 입어!”
테스텔의 옷매무새를 정돈하기 위해 손을 뻗기가 무섭게, 갑자기 테스텔의 눈이 풀리면서 고개가 툭, 아래로 떨구어졌다. 무…..무슨 일이지?
““창.민.경(공)””
……두명의 공주님들께서 완전히 화가 나신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나와 나탈리는 벌써 정리가 끝난건지, 방해가 되어서 해치운건지 저쪽에서 헝겊으로 입이 묶이고 결박당한채로 놓여 있었고, 내 위에서 기절해버린 테스텔도 이내 질질 다리를 잡혀 나탈리와 하나 옆에 던져져버렸다.
“뭘 하시는걸까요?”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감히 주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다니요?”
“잠깐만, 나는 아무것도 안했다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
변명 하기도 전에 내 말을 잘라버린 사냐 공주가 말을 이었다.
“언제나 창민경은 그렇죠.”
내가 뭘?
“매번 내가 한게 아니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다. 사고다. 이렇게 둘러대기만 하잖아요?”
“소녀의 몸을 만졌을 때도 그랬고,”
“제 입술에 키스했을 때도 그랬고,”
“소녀의 가슴을 봤을 때도 그랬고,”
“제 몸을 멋대로 더듬었을 때도 그랬죠.”
……내가 언제? 앞에 두개는 인정한다고 처도, 아일린 공주의 가슴을 봤거나 사냐 공주의 몸을 더듬은 기억, 없………지는 않구나, 젠장할. 누구냐, 저 빌어먹을 변태 같은 놈은? 뭔데 내 몸을 지배해서 저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는거냐?
아니, 근데 이거, 사과하라는건가? 그렇겠지? 사실 기분이 불쾌하기는 했겠지. 갑자기 몸이 만져지면 누구나들 그렇지 않겠어?
“……미…..”
“아아아아아, 그!러!니!까!”
내 말을 또 끝고 사냐 공주가 목소리를 높인다.
“왜~ 그러냐고요, 항상?”
“뭘?”
“만졌으면 만졌다, 만지고 싶어서 만졌다,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하면 될걸, 왜 맨~날 그렇게 부정하냐고요?!”
……아니,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요?
“공이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 몸은 공의 소유물에 불과한데 왜 그렇게 부정을 하냐는 말입니다, 창민공.”
“제 몸은!”
아일린 공주의 무슨 소리인지 도데체 못알아들을 괴상망측한, 성희롱급의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국거리며 사냐 공주가 이었다.
“어차~피 창민경의 것이니까, 평소에도 만지고 빨고 핥고 해도 아~무런 상관 없다고요. 왜요, 내 몸을 만져서 기분이 나빠요? 그래서 그렇게 빌면서 사과하는거에요?”
“무슨 소리야, 또, 그건?!?!”
“그런거에요, 창민공? 사냐의 저런 색기 제로인 몸이라면 이해 하겠지만, 제 몸도 기분이 나쁜건가요? 그런건가요?”
아니, 아일린 공주의 저 유아 체형을 보고 만졌다고 느껴버리는건 위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별로 성숙하지 않은 사냐 공주의 몸 보다도 발육이 느리잖아.
“이이익! 언니, 그건 또 뭔소리야? 내가 언니보다 더 쭉쭉빵빵~하거든?”
“흐흥! 어차피 네 피의 절반은 아세아계잖아? 너희들은 아무리 커봐야 끽해서 B가 전부라고!”
“가가가가가슴이 크다고 다가 아니거든! 전체적인 성숙미는 내가 더 많다고! 그리고 내가 언니보다 훠~얼 씬 귀엽다고!”
“아니야!”
“맞아!”
“아니야!”
“맞아!”
뭔가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이 틈을 봐서 슬쩍 빠져나가는게……
“창민경! 이참에 확실히 해주세요. 이 쪼그만해서 색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멍청한 언니에게 확실하게 들려주라고요! 제가 훨씬 예쁘다고!”
“무슨! 창민공의 눈을 뭘로 보는거야? 네 어린 아이 같은 체형에 만족 하시겠어?”
……둘다 도토리 키재기로 유아 체형이니까 그만들 하시죠
“시끄러워요, 창민경! 빨리 정하기나 하란 말이에요! 누가 더 좋은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말을 하란 말이에요, 창민공!”
“……”
둘다 좋아…..라고 하면 혼날 분위기다.
“그….그러니까……”
“그러니까 누구요?!”
“빨리…….”
어….어? 술기운이 조금 과했던 걸까, 내게 달려들어 술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재촉하던 사냐 공주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면서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그걸 간신히 받아냈다. 아무래도 술 때문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가 다 사라지니까 몸에서 긴장이 풀려버린 모양이다. 내 품에 안긴 사냐 공주를 본 아일린 공주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검지손가락을 폈다.
“푸하하하! 고작 그정도로 쓰러져놓고, 누가 누구더러 뭐라고? 꼴 좋다! 자, 창민공, 이제 방해꾼도 없으니까 우리 둘이 화끈한 밤을 즐겨봐요”
……사양하고 싶습니다.
“아앙~ 그러지 말고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라니까!
“창민고…옹……..”
응?
“쿨……”
……결국 이쪽도 골아 떨어져버렸습니다.
4
난장판이 된 파티장의 정리를 끝냈다. 뭐, 정리라고 해봤자 별로 먹지도 못한 음식들을 다시 통에 담고, 술병은 치우고, 흐트러진 물품들을 정리하고, 술에 취해 골아떨어져버린 애들을 곱게 뉘이는게 전부이지만. 아, 추울까봐 담요도 가져와서 덮어 줬으니까, 감기는 걸리지 않겠지.
“하아…….”
12월. 벌써 12월이다. 내가 과나카날에 온지 벌써 5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인류의 생존자인 필그림이 아닌, 에르데 제국의 항공 기사로서 살게 된지 거진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래, 1년.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던 1년 말이야.
생각에 따라서, 벌써 1년, 아니면 이제야 1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쏴아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딪히며 물거품을 남기고 부서진다. 그 파도를 따라온 차가운 바람이 내 피부를 휘감으며 뜨거웠던 가슴을 식혀준다. 아까, 모두가 내게 보여준 태도들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차가운 마음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그래.
나도 눈치 정도는 채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저들의 시선 정도는 볼 수 있다. 나를 동경하는 저들의 시선 정도는 나도 알 수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렇게 대놓고 다가오는데도 눈치채지 못할 수 있을까?
내가 평범했더라면, 연애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분명 달라붙는 사냐 공주와 아일린 공주, 하나, 그리고 테스텔 중 하나, 아니면 전부와 연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평범하다면.
나는 죄인이다. 그것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다. 그리고, 이들의 시선을 받아주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원망과 질투, 시기와 죄책감은 전부 그 죄의 산물이다.
나는 이런걸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저벅저벅
누가 뒤로 걸어온다. 순간 소리에 흠칫해서 허리의 권총집으로 손을 가져갔지만 이내 다시 긴장을 풀었다.
“뭐하자는거야, 중령?”
“예?”
“오늘 이 일. 오늘 사냐 공주 편으로 술 보낸거 말이야. 뭐하자는거냐고.”
그 술이 아니었다면, 분명 나는 사냐 공주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거고, 그렇다면 이런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이유도 없겠지. 그 술이 없었다면. 분노가 섞인 내 힐난에 에리카 중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
“내가 뭘 했으면 좋겠다는건데?”
“글쎄요.”
“장난하냐, 지금?”
“중령님…….”
……오늘은 참 내가 말할때 많이들 끊는다.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음의 준비. 저게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중령님께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끌수록 상처만 입힐 뿐이고, 그것이 의도치 않은 슬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만.”
“……알아.”
나도 안다고, 그정도는.
“뭘 망설이시는 겁니까?”
“……”
“그걸 아시는 분 치고는 매우 우유부단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정곡, 이라고 해야겠지. 우유부단하게 행동해 왔고, 그래서 지금 내게 직접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 넷이나 된다……. 인간적으로 나탈리는 빼자. 걔는 내게 귀여운 여동생일 뿐이니까.
어쨌건, 그 네사람이 내게 과도한 호의를 보이게 된 것은,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를 해둔 것은 나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결말을 지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소중한 사람들은 누구도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우리 기사단은 하나의 가족이다. 전쟁 초기부터 함께해온 나탈리나 사냐 공주, 유나 대위와 에리카 중령 뿐만 아니라, 정비반장 테스텔, 문제아 하나 같이 내가 직접 데려와서 키우고 교육시키고, 같이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싸운 모두가 가족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내 손으로 내치라고? 불가능한 과업이다. 적어도 내게는.
“소중한 사람들을 내 손으로…… 잘라낼 수는 없어.”
“반대로, 소중하니까 빨리 마음을 정하셔야 한다는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소중한 사람들을 옆에 끼고 있으셔봤자, 금방 죽을 목숨들 밖에 되지 않는다는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실이다. 나는 제국 최고의 에이스. 가장 치열한 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고, 가장 나중에 철수한다.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말 그대로 무한대. 지금까지 운에 기대어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계시다가, 결국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꼭 누군가 한사람이 죽어야 하는 겁니까? 중령님께 소중한 누군가가?”
그리고 그런 내 곁에 계속 두겠다는건, 저들을, 내 가족들을 내가 죽이고 싶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인거, 그래 알고 있다.
“말이 씨가 될 수도 있겠지만, 빨리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머리는 알고 있는데 말이야…….
“……알았어.”
…….가슴은 모르고 있다.
“아무쪼록, 상급중령님께서 잘 해결해주시길 바랍니다.”
내게 가볍게 목례를 올린 에리카 중령이 발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것을 본 나는 그대로 털썩,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누군가 한사람은 죽어야 하는 걸까? 그래야 내가 정말 실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아, 젠장, 모르겠다고.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맞이한 크리스마스의 새벽은……
누군가의 탄생을 기리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