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3 - 한밤중의 불청객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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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휴식도 오후 4시가 됨과 동시에 끝나버렸다. 이제는 임무를 시작해야만 했다.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의 초계 비행을 담당한 37 기사단 소속 전투기들 대신, 우리 44 기사단이 초계를 맡을 차례였다. 그래서 나는 유나 중위와 미야 중위, 그리고 펠츠 소위로 이루어진 소대 하나를 북쪽으로, 그리고 지경이와 경화 2기 편대를 서쪽으로 보냈다. 남쪽과 동쪽은 이미 우리 카탈리나 비행정들이 정찰을 시작했으니 굳이 중복할 필요는 없고, 중복 정찰할 만큼의 여유도 별로 없다. 보유한 9기의 전투기 중에서 5기가 초계 및 정찰 임무를 띄고 날아갔고, 남은4기는 긴급 발진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연락을 받으면 즉ㄱ각 튀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예리함과 긴장감을 몸에 계속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에 뭐 자세하고 세세한 정찰 구역을 정하고 그걸 중복 시키고 자시고 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다. 나와 사냐 공주, 에리카 소령과 나탈리 네사람이 한 것은 조종사 대기실에 앉아 긴장감을 띈 채로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아, 적기가 안나타난다면 말이지.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적기가 아예 안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럴 일이 있을까? 지금껏 매일 놀러오던 놈들이 설마 오늘이 되어서 갑자기 뿅, 하고 안나타날리는 없다.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을 깨지 않는 듯 초계 비행에 나선지 2시간만에 유나 중위로부터 접촉 보고가 들어왔다.
[현재 위치 마이크, 줄리엣, 쓰리, 포, 나이너. 적 함대와 접촉했습니다.]
“정확한 규모는? 상륙 함대인지 아니면 전투부대인지 확인해봐.”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확실한 함종 식별이 어렵습니다.]
“알았어. 정확한 함종만 파악하는 것에만 일단 주력해. 놈들의 함종을 파악하면 어디로 향하는지는 대충 추리해낼 수 있을테니까.”
[예, 부단장님.]
유나 중위와의 통신을 끝낸 내가 조종사 대기실의 중앙 탁자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먹고 온다던 에리카 소령과 사냐 공주, 그리고 나탈리가 막 들어오던 참이었다. 좋았어, 딱 좋은 타이밍이네.
“창민아~ 우리 왔어!”
“어? 어어. 잘됐다. 식사는 끝낸거지?”
“네. 저희는 다 먹었어요. 창민경은 안먹어요?”
나는…… 기다려야겠지? 아무래도 말이야.
“조금 있다가 할게. 유나 중위로부터 적 함대와의 접촉 보고가 들어와서 말이야.”
“예?”
뭘들 그리 놀라시나…… 한두번 해보는 것도 아닌데.
“함종은….. 어떻게 됩니까?”
“몰라. 유나 중위에게 확인해보라고 했어. 나탈리, 네가 무전기 콘솔 앞에서 기다리면서 유나 중위 보고 들어오는대로 확인해줘. 에리카 소령은 근처 해역에 아군 함정 있는지 확인해보고.”
“부단장님……”
“알아. 에르데 제국 함선들은 후소 제국의 야간 뇌격전 능력을 두려워해서 해역 근처에서 밤에는 싸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정찰 임무를 맡고 있던 수상기 모함이나 잠수함들이 혹시 전개되어 있을지. 아군 오사는 피해야 하니까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확인해줘.”
“……알겠습니다.”
“창민경, 저는요?”
나탈리와 에리카 소령에게만 명령을 내리고 자기에게는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삐쳤는지 찌푸린 얼굴로 사냐 공주가 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 얼굴은 풀렸다.
“따라와.”
“소령 이창민 입니다.”
“무슨 일인가?”
반데그라프 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지휘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명령이 없어도 바로 발진해서 요격해도 되지만, 그래도 여기 과나카날의 최상급자는 반데그라프 소장. 보고를 게을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거기에 나나 사냐 공주보다 계급이 높은 37 기사단의 켈더프 중령도 있으니까 내가 함부로 결정하고 실행할 일은 더더욱 아니겠지.
“중령님도 계셨군요. 잘 되었습니다.”
“잠깐, 창민경, 뭐가 잘……”
“쉿!”
또 뭔가 실례되는 말을 하려는 사냐 공주의 입을 틀어막은 뒤 나는 우리 초계 편대의 적 함대 접촉 사실을 보고했다. 중간에 사냐 공주가 아무런 매너도 없고 짜증나기만 하는 37 기사단의 수장에게 왜 ‘보고’를 해야만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이내 그건 내 반론에 막혀버렸고.
“계급 높잖아.”
“하…하지만……”
“계급 높으면 그걸로 끝이지, 뭐.”
“크흠.”
……보고나 마저 하자.
“죄송합니다. 아직 정확한 함종이나 적 함대의 목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거리가 우리 비행장에서 불과 3시간만 항해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임을 볼 때 야간 포격을 기도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은?”
“대함 폭장을 한 블랙캣 10기로 재빠르게 스크램블을 시도해서 적 함대의 함수를 돌리는 것입니다.”
격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회항하게 만들기만 하면 족하다. 애시당초 정식 공격기도 아닌 블랙캣 전투기로 함선을 격침시킨다는게 쉬운 일도 아니고 말이지.
“좋아. 준비가 끝나는대로 출발하게. 블랙캣 10기는 어떻게 차출할 셈인가?”
“켈더프 중령님께서 양해해주신다면, 37 기사단원 여섯을 저희 기사단원 넷과 함께 데려가고 싶습니다. 단시간에 화력을 쏟아부어야 회항시킬 가능성이 높아질테니까요.”
내 말에 켈더프 중령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게. 마울러 대위가 따라가도 괜찮겠지?”
아….그건….. 좀……. 에휴, 어쩔 수 없나? 주는 대로 받아야지.
“알겠습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사냐 공주처럼 나도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오후 6시 반을 약간 넘겼을 시간에 우리 44 기사단과 37 기사단으로 이루어진 합동 스트라이크 패키지는 대함 폭장을 마친 채 핸더슨 비행장의 거친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우리의 뒤에는 혹시 모를 적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블랙캣 6기가 남아 있었고. 에리카 소령의 경보로 근처 해역에 있던 아군 수상기 모함 갈릴리아가 휘하 호위함들과 함께 황급히 남쪽으로 대피하기 시작했고, 유나 중위의 소대는 좀더 가까이 접근해서 대략적인 적함의 종류를 보고하는데 까지 성공했다. 너무 가까이 들어가면 눈치채니까 어느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했지만.
[함종 불명의 구축함 6척. 적 함대는 일렬로 늘어진 채 슬롯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아군 잠수함이라도 있다면……]
음…… 별다른 대공 경계나 대잠 경계도 하지 않고 일렬 종대로 고속으로 항해해 내려오다니……. 야간 전투를 잘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후소 제국 해군이지만 조금 과도한 자신감이 아닌가 싶다. 저쪽이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아 말해두는건데, 여기는 적도 근처의 열대 지방이다?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진다고. 고작 저녁 7시 되었다고 해가 막 지거나 그런건 아니란말이지. 지금도 아까 낮보다는 많이 어두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안 관측이 힘든 수준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적들이 이렇게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도 불구하고 몰려온다는 말은……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지.
사실 무시 당할만도 하다. 전개된 기사단은 2개이지만 정작 가용 가능한 전투기는 37 기사단과 우리 44 기사단 합쳐서 20여기가 채 되지 않고, 그것도 대부분 방공용에나 쓸모 있는 블랙캣 전투기가 전부니까. 제대로 된 급강하 폭격기나 뇌격기들은 아직 배치되지 않았고, 안그래도 엔진 추력이 약한 블랙캣 전투기만이 배치된 만큼 우리가 다른 작전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했을 수도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우리의 대함 폭장은 전부 45kg 짜리 소형 폭탄 2발을 양 주익에 매달은 것이 전부이니까. 폭탄 수는 20개로 많아서 좋기는 한데 파괴력이 영…… 아마 상대가 구축함 정도라도 격침은 커녕 중파나 기대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한다거나 하는건 하니지만.
핸더슨 비행장을 떠난지 20여분이 지났을 때, 우리는 연료가 떨어저 기지로 복귀하는 유나 중위의 편대를 지나쳐 북쪽으로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슬슬 져가는 해가 우리가 다시 기지로 복귀하기 전까지 떠있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면서,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도 그 누구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빌면서. 그렇게 또 다시 10분이라는 시간이 날아갔고, 우리는 슬롯 사이로 항해하며 과나카날을 향해 내려오는 후소 제국의 구축함대와 만날 수 있었다.
[적 함대 확인. 12시 방향. 거리 5km로 추정됩니다.]
“확인 완료. 마울러 대위와 37 기사단은 오른쪽에서, 우리는 왼쪽에서 한꺼번에 들이친다. 우리의 목표는 격침이 아니라 회항이니까, 한척에 너무 집중시키지 말고.”
[수신.]
야, 임마. 너 대위고 나 소령이라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사냐 공주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울러 대위! 창민경은 황실의 기사이자 계급도 소령이에요. 똑바로 그 예를 갖추세요!]
묵묵부답……. 저녀석, 은근히 성질 돋우네. 나야 저런 소리 들어도 그냥 욱하고 참을 수는 있지만, 나를 빌미로 사냐 공주나 나탈리, 에리카 소령, 그리고 우리 기사단은 저녀석이 험담하는게 마음에 안든다. 특히 지금처럼 사냐 공주를 이렇게 무시할 때.
“마울러 대위, 공주 전하가 부르면 대답 좀 하지?”
[…….]
[안되겠어, 이녀석.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확 격추시켜버릴까요? 아군 오사라는 핑계로.]
나탈리와 에리카 소령이 열받았는지 임시로 사용하는 공용 편대망이 아닌 우리 44 기사단 전용 편대망으로 내게 말했다. 물론 둘다 기각. 적을 눈 앞에 두고 적전분열이라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짜증나는건 이해 하고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하지만 화를 낼 때가 있고 가릴 때가 있잖아!
“다들 진정하고, 일단은 전투부터 끝내자.”
길길이 날뛰는 세사람을 대충 진정시킨다음 나는 가볍게 날개를 흔들었고, 그것을 신호로 우리 기사단 소속 블랙캣 4기는 왼쪽, 37 기사단 소속의 블랙캣 6기는 오른쪽으로 갈라졌다.
“합류 위치는 잘 알고 있지, 대위? 정확한 타이밍을 놓치면 서로 힘들다.”
[걱정 말고 그쪽이나 잘 하십시오.]
[이봐요, 마울러 대위!]
정말 바득바득 사냐 공주의 속을 긁어버리는구나. 아무리 황제에게 권력이 없고, 실세는 제국 의회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제국군’인데 이렇게 해도 되는거야?
아, 정치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네. 귀찮은데 그냥 나중에 생각하자.
“적당히들 하고, 각자 편대망으로 무선 전환해.”
[……알았어요.]
[수신]
[저…저자식이 진짜!]
“나탈리, 진정해. 여기서 지금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잖아.”
[하…하지만 저녀석, 너한테 지금 ‘수신’이라고 반말했다고? 그것도 대위 주제에?]
넌 중위잖아.
[경우가 다르지, 경우가! 최소한 내가 너를 편대장으로 안따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너는 너무 나만 따르려고 해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맞아요. 나탈리는 창민경에게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고, 저놈은 아니잖아요.]
공주 입에서 저놈이라는 말이 나와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물어보면 지는거다.
“아, 그러니까 시끄럽고, 지금은 우리 할일에나 집중하자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으니까, 괜히 우리 기사단의 전공을 시기해서 그런거겠지.”
[……그래도 용서 못해요!]
“용서 하라는 말은 아니니까, 이제 적당히 그만들 하고. 슬슬 적 함대와 교전 들어갈거니까. 다시 한번 말하는거지만 다들 명심해. 우리의 임무는 격침이 아니라 적함의 회항이니까. 다 필요 없고 여섯척 모두 소파에서 중파 시키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그정도는 알고 있어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 괜히 사냐 공주가 또 37 기사단 이겨보겠다고 달려들면 안되니까. 사실 이기고 자시고, 우리 전공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각자 페어 짜고 전투 준비! 나와 나탈리는 가장 선두에 선 적 기함에,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은 그 후속함을 치는거야.”
나머지 네척은 37 기사단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구축함 1척당 2기씩 배분하면 1척은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게 되겠지만, 그정도는 기총으로 충분히 교란해줄 수 있고, 설사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나머지 5척에게 충분한 피해를 입힌다면 회항을 할 수 밖에 없을거다.
“거듭 강조하는데, 목적은 다른 무엇도 아닌 적 함의 소파 아니면 중파다. 무리하게 격침이 아니야!”
[알았어요, 창민경. 한두번만 얘기해도 우리 알아 듣는다구요.]
살짝 가시 돋친듯한 사냐 공주의 목소리. 아니, 뭐…… 에이, 몰라. 상관 없겠지. 가볍게 교신에 응해준 다음 나는 날개를 가볍게 흔들었고, 그것을 신호로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이 왼쪽으로 살짝 기수를 틀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대로 조종간을 내려 기수를 숙였고. 조준간 한가운데에 들어온 후소 제국의 구축함이 잡히는 순간, 나는 양손으로 움켜쥔 조종간의 트리거를 검지손가락으로 짓눌렀다. 주익에서 뿜어져나오는 6개의 예광탄 줄기가 어둑어둑해지는 보랏빛 장막을 찢고 후소 제국의 구축함을 향해 날아감과 동시에 작은 불꽃이 구축함 여기저기에서 피어올랐다. 잠깐 주익의 탄도가 너울거린 것 같지만……. 에이, 설마. 잘못 본거겠지. 우리의 첫 공격이 시작되고 나서야 우리의 접근을 인지한 것인지 적 구축함들은 대공포를 맹렬히 쏘아대며 반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투하, 투하!”
덜컹, 육중한 진동이 기체를 살짝 뒤흔들었고 순식간에 100kg 가까이 무게가 줄어든 내 블랙캣 전투기가 맹렬하게 엔진축을 회전시키며 기수를 쳐들고 하늘 높히 날아올랐다.
[어? 아자, 명중!]
쳇. 내건 빗나간 모양이군. 3개의 물기둥과 1개의 불길이 최선두에서 항행중이던 구축함에게서 피어올랐다. 가벼운 장갑을 뚫고 들어가 수선하에서 폭발한 모양인지 함수가 살짝 가라앉아있고, 그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물보라가 피어 오르고 있다. 음, 내가 빗나간건 조금 아쉽지만, 일단 첫번째 목표는 달성이다. 함수가 박살나서 속도가 떨어져버린 구축함 정도는 어뢰정 같은 배라도 충분히 공격해 격침시킬 수 있을테니까. 빈약한 장갑 대신 속도와 날렵한 기동성을 선택한 구축함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전투에 투입한다는건, 그냥 죽으라는 말이지. 후소 제국군도 아주 바보는 아닐테니 그정도 조치는 취할……. 아주 바보…… 맞지 않나? 크흠, 아니, 뭐 어쨌든간에 말이야.
“잘했어, 나탈리. 한번만 더 두들기고 사냐 공주네와 합류하자.”
[Ok BOY~]
나탈리가 어지간히 신났는지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내게 답신을 보내왔다. 웬지 기분이 좋다. 나탈리가 기분이 좋으니 나도 그냥 덩달아 좋은건가? 그런 것 같다. 축하한다는 의미로 가볍게 배럴롤을 해준 나는 구축함과의 거리가 수백미터 정도 멀어졌을 때 다시 기수를 돌려 필사적으로 함수를 북쪽으로 돌리고 있는 후소 제국의 구축함을 향했다. 다시 한번, 이번에도 목표는 아까처럼 함체 중앙. 두번째 구축함을 향해 막 돌입하려는 사냐 공주 편대로 집중되는 대공포의 이목을 좀 끌어주어야 되니까.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는지 우리의 재진입을 본 그 구축함의 대공포드는 모든 포문을 우리를 향해 열었고, 일시적이나마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 근처에서 피어났던 회색 강철 꽃밭은 순식간에 작아져버렸다. 대신 그만큼의 꽃들이 우리 주변에서 활짝 피어났지만.
투투퉁
방아쇠를 지그시 누름과 동시에 6개의 예광탄 줄기가 노란색 궤적을 그리며 구축함의 중앙 함체를 꿰뚫었……
퍼펑!
갑자기 환해진 시야에 고개를 돌리며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왼쪽으로 꺾었다. 나와 나탈리의 사방에서 피어나던 수십개의 강철 꽃들은 마치 파리지옥처럼 그 꽃잎을 움츠렸고, 뒤이어 폭발의 충격파가 강하게 기체를 흔들었다.
[자..잠깐만, 창민아? 지금 뭐한거야?]
나도 모르겠다. 아니, 지금 정신도 없고 눈도 안보여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몇분간의 수평비행을 통해 시야를 어느정도 다시 회복한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살폈다. 내가 조준했던 함체 중앙에 거대한 빈 공간이 생겨났고, 함체도 약간 뒤틀려져있었다. 시뻘건 화염이 그 혀를 낼름거리면서 구축함을 뒤덮었다.
“아니, 잠깐, 뭐가 어떻게 된거야?”
[뭐…뭐가 유폭한 것 같은데?]
“나탈리, 네가 한거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아직 공격 코스로 진입하기도 전이었다고. 너, 폭탄만 갖고 온게 아니라 로켓도 갖고온거야?]
……이게 PK 73인줄 알아? PK 73이라면 고작 45kg 짜리 폭탄이 아니라 제대로 된 폭탄에 연료 탱크에 로켓까지 6발 달고 오겠지만, 그건 PK 73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지금 블랙캣에는 해당 사항 없음이다.
그럼 답은 하나 밖에 없는거지.
[유…유폭?]
그런 것 같은데? 고작 기관총탄에 유폭될 정도로 장갑이 약하다……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뭐, 밖에 쌓아놓은 장약 같은데 맞아서 유폭이 일어났겠지. 설마 아무리 구축함의 장갑이 얇다고 해도 기관총탄 따위에 뚫릴 수는 없잖아? 속도를 낮춘 나는 함체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채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후소 제국의 선두 구축함 주위를 돌면서 답했다.
“나탈리, 일단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적 함대를 저지하는게 먼저일테니까.”
[응.]
가볍게 대답한 나탈리가 기수를 돌려 한참 교전중인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을 향해 다가갔다. 어둑어둑해진 보랏빛 하늘 한가운데에 떠있는 두기의 블랙캣 전투기들을 주변으로 회색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적으로 그 둘을 노리던 두터운 구름층은 어느새 나뉘어 나와 나탈리 주변에서도 피어났다. 대공포탄이 근거리에서 터질 때마다 충격파들이 기체를 뒤흔들었고, 자잘한 금속 조각들이 타닥,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캐노피에 부딛혔다. 함선 후미에 맞았는지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를 내며, 굴뚝으로는 검은색 연막을 치며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후소 제국의 구축함은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의 날카로운 추격에 쫒기고 있었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대공포대들의 노력이 무력해보일 정도로. 수백발의 탄환들이 구축함의 연약한 함체에 박히며 얇은 장갑을 갈갈이 찢어놓았고, 결국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에 이어 나와 나탈리가 전투에 참가하자, 후소 구축함은 ‘버틸 수가 없다!’를 외치며 북쪽으로 함수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신호로 뒤따라오던 다른 후소 구축함 4척들도 각자 연기와 연막을 사방에 뿌리면서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좋았어, 작전 성공이야!
[적들이 돌아갑니다.]
[와아~ 해냈어~]
“아, 아. 다들 진정 하고 돌아가야지.”
그러고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끄트머리만 간신히 수평선에 걸친 태양은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고, 덕분에 하늘은 아까의 짙은 보랏빛에서 짙은 남색과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잘못하면 야간비행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기사단이나 37 기사단이나 야간 훈련을 안받은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전기,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다.”
[라져!]
[오케이]
[알았습니다.]
[싫은데요.]
갑자기 찾아온 정적. 마울러 대위의 목소리가 무전망을 가른 직후 우리의 편대망은 마치 계획이라도 한듯 조용해졌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 맞지? 그렇지?
[지금 뭐라고요?]
[싫다고 했습니다. 전과는 추격 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법도 모릅니까? 지금 이럴때가 아니면 적 구축함들을 언제 사냥해보겠습니까?]
우리중에 간첩이 있는 것 같아. 추적기의 임무는 적기를 공격하는거지, 구축함이나 때려잡는게 아니다. 저녀석, 자기가 뇌격기나 급강하 폭격기를 조종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우리 제국의 원수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적의 앞에서 등을 보이다니, 이게 무슨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말입니까?]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뭘로? 그리고 적 앞에서 등을 보이는게 수치라니, 그럼 다 같이 후퇴 없이 싸우다가 죽자는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궤변이야? 나와 같은 생각인건지 나탈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고, 사냐 공주도 단호한 목소리로 거부했다.
[안돼요! 창민경이 그만 후퇴한다고 했잖아요?]
아, 잠깐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이런, 역효과다.
[공주 전하! 저희는 제국의 기사들입니다! 우리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에르데 제국의 기사들입니다! 그런 저희가 저런 필그림 나부랭이의 명령을 듣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피…필그림 나부랭이?”
[……창민아, 나 저녀석 죽여도 되지? 그렇지? 그냥 여기서 죽여놓고 전사 처리해도 되는거지?]
……진정해 나탈리.
[필그림 나부랭이라니요! 마울러 대위, 창민경이 이 사냐의 제 1 기사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인가요?]
설마. 대위 정도 되는 사람이 그걸 모를리가 있겠어? 그냥 사냐 공주의 복장 긁으려고 하는 말이지.
[전하께서는 진정한 기사가 아니라서 모르시겠지만, 동족들마저 배신하고, 오랜 동맹을 헌신짝처럼 갔다버린 저런 필그림 녀석들은 도저히 기사로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이…이….이…!]
“자, 자. 그만해, 둘 다.”
사냐 공주가 외쳐 EE하기 전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원래는 그냥 조용히 사냐 공주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지만, 이러다가는 체면은 커녕 37 기사단과 우리 기사단 사이의 갈등의 골만 깊어지겠다.
“사냐, 기사단원들 데리고 돌아가 있어.”
[예? 하지만 창민경…….]
“금방 갈테니까, 돌아가 있으라고.”
[……네.......]
마지못해 대답하는 사냐 공주. 에리카 소령에게 확실하게 당부해 놓고 나는 세사람을 먼저 돌려보냈다. 굳이 여기에 더 남아 있을 이유도 없거니와, 이렇게 비생산적인 논쟁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사냐 공주가 떠나기가 무섭게 바로 제어봉이 사라져버린 마울러 대위는 37 기사단원들을 이끌고 바로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구축함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투투퉁
[드디어 필그림의 종족 특성, 배신이 나타나는건가?]
시끄러워, 이자식아. 니놈 기체 앞에다가 간단하게 경고 사격만 한거잖아.
“기체, 돌리지?”
[못해! 내가 왜 필그림 따위의 말을 듣냐?]
“어이, 난 소령이고 너는 대위거든? 내가 상관이거든?”
[알게 뭐냐? 필그림 상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네놈들은 또 우리를 배신할거 아니냐?]
……지금 내가 이 상황에서 배신 하면 어디로 도망가라고…….
[안그래도 잘 됐다. 널 보느라 요즘 두 눈의 시력이 나빠진 것 같은데 그 울분을 좀 풀자. 공주도 없는데다가 너 하나 없어진다고 별로 신경 쓸 사람도 없으니까!]
그 말과 함께 나를 향해 기체를 돌리는 마울러 대위. 다른 37 기사단원들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 관망만 할 뿐이었다.
[야, 이자식들아! 빨리 합류 안해?]
[……대위님, 저희 탄약이 떨어졌어요.]
[거기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고요.]
[상대는 40기도 넘게 격추시킨 에이스 중의 에이스라고요? 우리가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에요!]
[……못난 놈들…… 됐어, 그럼.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빨리 좀 돌아가자니까 왜 쓸데없이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건지…… 마울러 대위의 블랙캣 전투기가 나를 향해 헤드 온 상태로 달려들었고, 우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갔다. 800m…… 700m…… 600m……500m…… 400m….. 300m….!
[받아랏!]
소리를 외치는 마울러 대위. 하지만 그 자신감에 찬 목소리도 잠시 우리는 아무런 이상 없이 그저 허공에서 상대를 교차해 지나갔다. 나야 뭐, 일단은 아군이니까 쏘지 않은거라고 치고……. 넌 왜 안쏘냐, 잔뜩 쏠 것 처럼 말하더니만.
[……타…탄약이….. 없다……]
이녀석, 바보인가? 계기판에 잔탄 게이지 있는데. 뭐, 잘된건가, 어차피 다들 탄약도 없으니까. 나만 한 100여발 가까이 남았군. 나를 지나친 마울러 대위의 꼬리를 다시 잡은 나는 짧게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조준은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나는 아직 탄약이 남았다는 뜻에 불과하니까.
“난 아직 탄약 남았다. 허튼짓 하면 콱, 격추해버릴거니까, 기수 기지 쪽으로 돌려. 나머지 37 기사단원들도 따라오고.”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대 에르데 제국의 기사인 내가…….]
아 나참….. 무슨 애도 아니고…….
“우리 기사단의 격침 전과는 그쪽에 넘겨줄테니까, 제발 그 입좀 다물고 조용히 돌아가자. 됐지, 그럼?”
그말과 함께 편대망에서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서, 44 기사단은 아무런 전과가 없지만 37 기사단은 구축함 1척 격침에 1척 중파라고?”
“예.”
철면피를 쓰고 거짓말을 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반데그라프 소장과 켈더프 중령.
“켈더프 중령, 자네가 내게 37 기사단은 별다른 공대지 공격 훈련을 받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예…… 저희 기사단은 적 폭격기 요격에 특화된 부대라서 받지 않았습니다.”
켈더프 중령도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소령, 확실한건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37 기사단이 그런 전과를 올렸다는게 믿기지 않는데.”
“폭탄 들고 갔잖아요?”
“폭탄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우리 기사단원들은 아무도 대함 공격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단 말일세!”
……그럼 마울러 대위 녀석은 그런 훈련도 안받아놓고 막 공격만 하려고 했단 말이야? 경계해야할 바보로군.
“믿으시든 믿지 않으시든, 사실입니다.”
아니요,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37 기사단 애들 정말 도움 안됬어요~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흠……. 그래, 수고 했네. 자네가 그렇다면 일단 그런걸로 알지. 중령은 귀관의 기사단원들에게서 보고서 받고 전과 확인용 필름을 수거하게.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뭐, 이걸로 된거겠지? 나는 가볍게 반데그라프 소장에게 목례를 하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밤공기는 낮의 후텁지근함과는 180도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몸을 감싸는 서늘한 기운에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에 어두운 밤하늘에 흩뿌려지 작은 별들이 즐거움을 더한다. 정말, 이걸 볼 수 있는게 전쟁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고, 이걸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전쟁이라는게 아쉬울 뿐이다.
“창민아?”
어둠 속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탈리? 아직도 안자고 뭐하는거야?”
“자다니? 내가 애도 아니고. 아직 10시 밖에 안됐다고?”
“뭔 소리야, 잘 수 있을 때 자야지. 나중에 고생하는거 알잖아? 그리고 너 애 맞아, 나탈리.”
“뭐야, 그게.”
내게 달라 붙으면서 팔을 살짝 꼬집는 나탈리. 아프기는 커녕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뭐..뭐야! 왜 웃는거야?”
“그냥.”
“에잇”
“아…아! 아파, 좀 살살해!”
“아, 꼬집으면 아프다는걸 까먹었어. 데헷”
……데헷, 하면서 고개 옆으로 뉘이고 왼손으로 머리 쥐어박지 마라.
젠장, 귀엽잖아, 이러면! 나탈리, 너 왜 이렇게 귀여워졌냐?
“음….. 여자는 사랑을 하면 변한다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더 예뻐진 걸지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 예쁘다고 하는게 이상하다는거, 안다. 하지만 요즘 나탈리의 모습은 그렇게 말을 해도 될 정도다. 어제 해수욕장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해 피로가 가득한 얼굴이지만, 그녀 특유의 귀여움이 어디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잠깐, 사랑?
“응. 요즘 마음에 두었던 사람이 너무 멋저져서 말이야!”
지금까지 나는 나탈리의 친구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틀린건가? 조금은 한심하다, 내 자신이. 나탈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니. 그건 그렇고, 도데체 어떤 놈팡이가 우리 나탈리를 건드린거야? 인정 못해, 인정 못해, 절대로 인정 못한다고! 내 허락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우리 나탈리 못건드린다고!
“차…창민아? 얼굴이 이상한데?”
“나탈리, 도데체 어떤 놈팡이야? 어떤 자식인거야!”
“차..창민아?”
……어느새 내 두 손은 나탈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지만…..알게 뭐냐! 그딴거. 지금은 더 중요한게 있잖아.
어떤 자식이 우리 나탈리에게 꼬리를 친거야!
“창민경…… 나탈리가 창민경의 소유물도 아닌데 너무 몰아세우는 것 아닌가요?”
어느새 다가온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 내가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다.
“사냐, 나 창민이거 맞아.”
그래, 너 내거야. 그러니까 도데체 어떤 놈팡이가 꼬리친거냐고!
“차…창민경…… 저기, 그게 아닌…….”
“부단장님, 그냥 그러면 나탈리 중위를 드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식인종이냐, 나탈리를 먹게.
“하지만 부단장님…… 하아……. 아닙니다. 여전히 둔감하십니다.”
“하아……. 둔감한건지, 둔감한척 하는건지…….”
“사냐, 난 지금 10년째거든?”
뭐가, 거기다 세 사람은 왜 한숨이나 쉬는건데? 내가 무슨 죽을 죄를…….
“…….”
“…….”
“……정말 모르시는겁니까, 부단장님?”
“죄송합니다.”
뭔진 모르지만 일단은 사과하자. 일단은.
“정말, 창민경이 그렇게 우유부단하니까 우리도 이렇게 헷갈리는거 아니에요.”
“내가 뭘?”
“창민아, 그냥 입 다물고 있는게 도와주는 것 같은데…….”
아니, 그러니까 내가 뭘…….
쉬이익, 침묵처럼 무거운 밤공기를 찢고 날아오는 고음의 휘파람 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우리 기사단원들을 옆으로 밀쳤다. 갑작스러운 나의 움직임에 놀란 세사람이었지만, 이내 내가 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떨어진 참호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참호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펑! 하는 폭발소리와 함께 섬의 한쪽이 밝게 불타올랐다.
“포격이야! 다들 고개 숙여!”
두번의 섬광이 흙구름을 일으키며 해안가를 밝혔을 때, 이쪽에서도 반격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리 해안 감시원들이 적의 함선들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한데다가, 탐조등도 없는 것을 보면 적의 잠수함일 것이라고 판단한 반데그라프 소장의 명령이었다. 비행장 근처에 전개되어 있던 5문의 5인치 대공포들이 포탄의 발사광을 포착한 곳을 향해 포구를 돌렸고, 그렇게 5분간의 포격전이 이어진 다음에야 그 잠수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