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6 - 솔로모니아 해전 Part 3
3
오후 1시 40분. 공격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간단하게 빠따따로 식사를 하면서 바로 재무장 및 재정비에 들어갔다. 베어링이나 너트, 볼트 같은 소모성 부품들을 교체해주고, 파손당한 부위를 가벼운 합금판이나 알루미늄으로 덮거나 때운다. 기총탄이 뚫어놓은 바람구멍이나 상처 입은 플랩 정도는 알루미늄 테이프로 막아버린다. 엔진 실린더 안에 끼여있는 찌꺼기들을 대충 닦아내고 엔진오일도 교체한다. 방탄 연료탱크의 고무도 한번 더 덧대고, 연결되어 있는 배선들도 한번 더 확인한다. 프로펠러에 균열은 없는지, 엔진 축에 금이 간건 없는지 돋보기를 들고 확실하고 꼼꼼하게 검사한다. 동체, 주익, 미익의 리벳들이 들뜨지 않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주익에 뿌리를 박은 기관총들을 분해해 먼지와 기름을 닦아내고, 새로 기름칠을 한다.
그러길 한시간째, 대충 필수 정비는 끝냈다.
“후아~”
덥다. 무진장 덥다. 아까까지만 해도 한창 돌아가던 엔진은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며 식힐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안그래도 더운 과나카날의 날씨가 더더욱 기승을 부린다. 후텁지근함 그 자체가 주변을 감싸 안은 듯한 기분이다.
“주인님?”
“……그 표현 좀 안쓰면 안되냐?”
내 한숨을 들었는지 기체 하부를 한참 점검하던 테스텔이 내게 말을 걸었다. 바퀴가 달린 돌리 위에 드러누운채, 덥다고 작업복도 아닌 수영복과 얇은 티셔츠만 걸치고 있는 모습에서 그녀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아니, 수영복이 아니라 스포츠 브라구나. 테스텔은 워낙 외모 자체가 귀여운 것도 있어서 이렇게 바라보는 것도 꽤나 귀엽다. 말려 올라갈듯 말듯 접혀있는 티셔츠나, 거의 핫팬츠 수준으로 짧은 바지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흡! 잠깐, 나는 왜 이걸 유심히 관찰하는거지?
내 투덜거림과 시선을 의식했는지 테스텔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한번 주인님은 영원한 주인님. 제게 책임져주시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그때 분명 저를 강렬하게 껴안고…… 다시는 놓치 않아라고 하시면서……”
“그런적 없어! 언제 어디서 누구랑 한거냐?”
“그럼 저는 그냥 하룻밤의 불장난이었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눈물 흘리는 척하면서 들이대지 마! 뭐가 하룻밤의 불장난이야? 그 말이 나탈리의 귀에 들어가면……”
“들어가면?”
“들어가면 나탈리 그녀석 또 히스테ㄹ……”
응? 방금 나탈리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나…나탈리?!?!”
“아, 언니! 오셨어요?”
“그래, 나는 히스테리한 여자일 뿐이지…… 알고는 있었지만 창민이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줄이야…… 실망이야, 이창민.”
뿌득, 나탈리가 이를 갈며 한걸음, 한걸음 내게 다가온다. 지난 코랄해 해전 이후로 나탈리는 굉장히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그 전에도 굉장히 적극적이기는 했는데 이제는 더욱 전투적…..이라고 해야하나?
“창민아, 변명할 기회를 줄게.”
“그….그러니까, 이건 테스텔이 나를 놀리기 위해서 한거라고……. 으아악! 다가오지 마!”
“왜? 뭐 켕기는거 있어?”
“아니야!”
“그러면 피하면 안되지.”
“그걸로 맞으면 죽는다고 나탈리! 너 그러면 정말 무섭다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검을 손에 든 나탈리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 외의 복병은 다른데 있었다.
“그.러.니.까. 제 주인님이 언니를 여자로 보지 않는거에요. 그렇게 폭력적이고 상냥하지 않은 여자를 누가 데려가려고 하겠어요?”
뚝,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나탈리의 이성이겠지.
“후후후후후후후”
눈이…… 눈이 죽어있는데요
“거기다 언니의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제로! 날씬하지도 않고, 허약하고, 거기에 내장형 근육 때문에 아름다운 몸매라인 같은건 안드로메다에 있겠죠. 거기다 최악인건 가슴도 납작! 우리 주인님은 그런 여자 싫어하신다구요. 저희 주인님의 여자는 어디까지나 제가 최적이라는 말씀!”
……왜 불난 집에 기름 붓냐, 테스텔. 나 네 주인 맞냐? 아…아니! 내가 주인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굳이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스콰이어와 기사의 관계니까 그런거라고!
“아….아니, 이건 내 생각 전~혀 아니니까! 나탈리 너 예쁘니까!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까 제발!!”
살려줘,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내 얼굴 앞에 다가온 나탈리의 미소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차단해버렸다.
“……변명 다 끝났어?”
……나, 살아서 다시 날 수 있을까?
결론 부터말하자면 제 때 나탈리를 껴안아주는걸로 살아남았습니다……. 품에 안아서 조금 쓰다듬어주니까 진정 되더라고. 조용히 내 귓가에 귓속말을 속삭일 때는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지만.
“……다음에 그 ‘하룻밤의 불장난’ 같은걸 하면……..”
꿀꺽. 하면?
“……나도 끼워줘.”
절대 그런일 없습니다. 그러니까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
“왜, 나는 용무 없이 여기 오면 안돼?”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나탈리.”
토라진듯이 말하는 나탈리에게 실수로 화를 내는 듯한 억양으로 말해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나탈리는 별달리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아니, 반데그라프 소장님이 적기 발견 때까지는 휴식이라고 하셔서 전해주려고.”
“……아직도 발견 못한거야?”
“응. 그 잘생긴 소령의 카탈리나 비행정 편대랑 색적용으로 돈틀리스를 10기 정도 풀고, 거기에 추가로 순양함과 전함의 정찰기 5기를 발진시킨 것 같은데, 정작 성과는 없는거 같더라고.”
라슨 소령의 카탈리나 편대가 8기. 거기에 돈틀리스 10기와 정찰기 5기를 추가하면 23기나 정찰과 색적에 투입했다는 말이 된다. 아니 그런데, 아직도 발견 못했다고?
아, 여기서 말하는 적은 아까 우리가 박살낸 그 후소 제국 분함대가 아니라 적의 본대를 말하는거다. 그래, 기갑함대 말이야.
“아까 창민이 네 말에 따르면 사실 전함인줄 알았던 것도 기갑함대 소속의 중순양함이었으니까, 분산되어서 항해하는게 아닐까? 다들 모여 있으면 발견되기 쉽잖아.”
……200척이나 되는 배를 분산운용한다고? 아니, 분산한다고 쳐도 과나카날까지 쳐들어올만한 항로가 한정되어 있는데?
“200척을 풀어놓으면 더 잘 보이지 않아?”
“아, 그런가? 헤헤.”
모든걸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나탈리. 그 모습이 조금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왜 웃어?”
“아니, 그냥. 근데 나탈리, 배고프지 않아?”
어차피 필요한 정비는 전부 끝냈다. 여기에 있어봤자 덥기만 할 뿐이지, 별로 생산적인 활동을 할것도 아니다.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짬밥이겠지만.
평화로운 휴식은 생각 외로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임시로 지어진 항공 지휘소와 항공모함의 전투 정보실에서 십수기의 정찰기로부터 들어오는 보고에 대해 시시각각 귀를 기울이는 항공 참모들과 제독들은 그 긴장감 때문에 죽을 지경인 모양이지만, 우리 항공기사들은 교대로 날아오르는 전투 초계기들을 제외하면 전부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우리라고 초조해하지 않는건 아니다. 200척이 넘는 대함대가 감시망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고, 규모를 알 수 없는 후소 함대가 우리 앞에 있었다. 현재까지는 경항공모함 1척과 중순양함 1척이 확인되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송함대를 호위하던 분함대일 뿐이다. 실제로 수송함대는 호위하던 경항공모함 류조가 우리가 도착하기 30분쯤 전 우연히 정찰 도중 이들을 발견한 2기의 돈틀리스에게 급강하 폭격을 받고 중파되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호위부대, 아니면 선발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적의 주력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정도의 규모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처해서 우리도 간단한 대안을 내놓았다. 그냥 고민하지 않기로. 어차피 우리가 여기서 초조해하면서 발만 동동 굴러봤자 놈들의 위치를 아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서 나는 우리 인피니티 기사대 전원에게 식사 및 휴식 명령을 내렸다. 물론 다들 긴급 출격시를 대비해 알아서들 활주로나 대기실 근처에서 놀고들 있었지만.
[치직….. 고도, 3000피트로 변경 허가한다.]
[이슬라, 엔터프라이즈. 침로를 4도 북쪽으로 변경하라.]
[사라토가, 착함 코스에 진입했다. 유도 부탁한다.]
사실 논다고 해봤자 무전기 주파수를 항공모함 기동부대 주파수로 맞춰놓고 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 밖에 없다. 이것도 듣고 있으면 은근히 재미있거든. 함대 원형진이라는 물건이 속도, 배수량, 무장이 다른 함정들이 수킬로미터의 간격을 두고 일심동체처럼 움직여야 하는지라 각 개별함선들의 조함을 지휘하는 통제관들의 명령은 거의 초단위로 이어졌다. 아니, 거의 랩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킥킥대면서 그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통제관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시간도 오후 4시가 약간 넘어갔다. 중천에 떠있던 해도 이제는 서쪽에 치우쳐있었고, 뜨거운 열기 대신 차가운 바닷바람이 해안가를 휘감았다.
“창민아.”
“왜?”
“지루해.”
“저두요, 창민경.”
“뭐 재미있게 좀 해봐.”
……내가 왜?
“너 남자잖아.”
“그런데?”
“숙녀의 부탁을 그렇게 거절하는면 안되죠.”
“나탈리가 어딜봐서 숙…..!”
커헉! 갑자기 배에서 엄척난 격통이 느껴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충격에 폐 안에 들어있던 공기들을 허공으로 토해냈다. 뭐...뭐야?!
“흥! 시끄러.”
누워있는 내 배를 발로 밟고 서있는 나탈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건 삐친 나탈리의 시선이다. 하지만 내가 딱히 거짓말 한건 아닌걸.
“왜왜왜왜 내가 숙녀가 아니라는건데?”
네 어딜봐서 지금 이게 숙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삼켰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사이렌이 울렸으니까.
“뭐….뭐지?”
“공습?”
“뭣들 하냐! 빨리 움직여!”
늘어질대로 늘어져있던 우리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고, 모두들 잽싸게 몸을 일으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전투기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누워있던 나도, 내 배를 밟고 있던 나탈리도, 그 옆에서 웃고 있던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도 모두 다. 전부 기계처럼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테스텔!”
“예! 주인님!”
내 부름과 동시에 짠 하고 나타난 테스텔의 손에는 내 비행 장구들이 들려있었다.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비행복을 입고 있었던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블랙캣의 비좁은 조종석 안에 몸을 재빨리 우겨넣은 나는 테스텔이 건네주는 비행모와 작전 지도, 낙하산 등을 받아들면서 계기판을 대충이나마 점검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비상대기반으로 기다리고 있던 37 기사단 소속의 블랙캣 4기가 먼저 활주로를 내달려 하늘로 떠오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륙을 준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브리핑을 듣는다.
[엔터프라이즈 상공에 적 공격대 제 1파 출현. 제로 18기, ㅊ. 아군 블랙캣 15기가 교전에 들어갔지만 돌파당했다. 현재 고도 12000피트, 시속 350 킬로미터! 도착 예정시간은 12분. 제 2파는 방위 3-4-4에서 고도 18000피트, 시속 300 킬로미터! 기종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진행 경로상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할 의도인 것 같다. 도착 예정 시간은 8분!]
테스텔이 비행모를 직접 씌워주고 후두마이크까지 달아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최종 이륙전 점검을 마치고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2개의 적 공격대에 대해 생각하면서.
“준비 되었어요, 주인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고마워.”
내게 경례를 올리고 재빨리 블랙캣에서 내려간 테스텔은 능숙하게 나를 활주로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를 제외하고는 준비가 끝난 항공기사는 없었고, 덕분에 나는 아무런 장애물 없이 곧바로 유도로를 지나 활주로의 끝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인피니티 리더에서 핸더슨에. 이륙 허가를 부탁한다.”
[인피니티 리더, 핸더슨. 현재 풍속 서쪽으로 2노트, 조각 구름 10000피트. 우천 가능성 적음. 이륙 허가한다. 무운을]
내게 정지신호를 보낸 테스텔이 가볍게 인사하고 옆으로 비켜났고, 뒤이어 나무로 만들어진 조잡한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 신호가 떨어졌다. 레이싱 깃발 처럼 검은색과 흰색이 조합된 조잡한 깃발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감과 동시에, 나는 밟고 있던 브레이크에서 힘을 빼고 엔진 스로틀을 최대로 올렸다.
눈 앞에는 검은 강철 활주로와 새파란 하늘.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처럼 울어대는 블랙캣의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며 거대한 프로펠러를 움직였고, 시원한 바람이 활짝 열린 캐노피 안으로 불어온다. 바람의 손길을 피부로 느끼며, 나와 블랙캣은 일심동체가 된채로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조종간을 앞으로 당기자 활주로가 사라진다. 오른쪽 눈가로 보이던 항공 지휘소나 병영도 시야 아래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제 세계는 온통 푸른색. 비취색의 바다와, 그에 비친 차가운 파란색 하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먼저 이륙해있던 37 기사단원들이 나를 발견하고 내 편대로 따라 붙었지만, 나는 날개를 흔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우리는 가는 방향이 다르니까.
“37 기사단은 이륙하는 즉시 적의 2파를 막아. 그쪽은 폭격기 전담이잖아. 우리는 1파를 틀어 막고 곧바로 지원할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37 기사단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안에 두려움은 없었다.
“인피니티 리더에서 인피니티에게! 37 기사단은 이륙 즉시 적 2파를 요격하라. 44 기사단은 엔터프라이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