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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6 - 솔로모니아 해전 Part 2


  2
  말은 그렇게 당당하게 했지만 이내 우리는 30분이 넘게 지루한 비행을 계속해야만 했다. 한 4킬로미터 정도 앞서가는 5기의 후소 항공기들을 구름의 그림자 속에 숨어 조용히 추적하는 우리는 편대를 유지한채, 무전기 조차 침묵시킨채로 조용히 날아가고 있었다. 머리 위의 수증기 덩어리, 그러니까 구름이 손을 뻗어 살짝살짝 캐노피를 칠 때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하지만 구름 안을 나는 것도 아니고, 구름 밖을 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유 없이 뭘 하는거, 봤어?
  ……죄송합니다. 주제 넘게 까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적기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뭐, 눈치를 챈다 하더라도 분명 후소 제국군의 항공기들은 자신들의 모함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당장 엔진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우회 항로로 돌린다고? 설마.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날으는 관 속에서 그런 짓을 할만한 용자는 없다.
  하지만, 만약 스크램블한 적기들이 몰려온다면?
  37 기사단의 블랙캣 9기 중 2기가 격추당하고 3기가 중파당해 핸더슨 비행장으로 퇴각했다. 덕분에 우리에게 남은건 도합 11기의 블랙캣. 그것도 안그래도 기동력 안좋은 상태에서 무게도 무겁고 항력도 많이 추가하는 외부 무장들까지 달아놓았더니 민첩함도 떨어진다. 자, 이게 무슨 말이냐? 제로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우리는 전멸이라는 말이다. 뭐, 대함 공격 무장을 버리면야 할만하겠지만, 그러면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없어져버린다.
  그래 맞아. 답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지금 이게 맞는 항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적이 우리를 눈치채고 죽을 각오를 하고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를 유도해주기로 했던 라슨 소령은 연료 부족으로 사보섬 인근으로 후퇴, 수상기모함에서 재급유를 한창 받고 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공격력도 부족하다. 아무리 나라도 명색이 항공모함인 전투함을 로켓 몇발과 고폭탄 몇발로 격침할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걸로 배가 격침되는거면 급강하폭격기나 뇌격기나 나오지도 않았다. 내가 노리는건 격침이 아닌 작전 불능 상태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 방향타나, 하다못해 엘레베이터나 갑판에 큰 구멍만 내줘도 된다. 그 옆의 전함은 우리가 두들겨봤자 흠집도 안날테니 나중에 엔터프라이즈와 사라토가에게 ‘공군!’을 부르면 되겠지. 이런 계산까지 마친 나는 조용히 편대를 유지하며 구름 밑에서 적기를 미행하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노력을 보답하려는 듯 저 멀리 수평선에서 함선들의 실루엣과 검은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피니티 리더에서 인피니티에게. 적 함의 실루엣들이 보인다. 각자 무장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공격 준비. 귀환하려는 적기들을 먼저 찌르면서 공격 시작할거야”
  [[예]]
  “특히 37 기사단에게 말해두겠는데, 우리의 목표는 적기 하나 더 격추시키는거 아니고, 적 구축함이나 전함 공격하는건 더더욱 아니다. 우리의 임무는 적 항공모함의 무력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목표에만 집중하도록.”
  [……]
  “마울러 대위. 대답.”
  ​[​…​…​알​겠​습​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이 퉁명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나는 간단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마울러 대위의 성의 없는 대답에 발끈한 사냐 공주의가 화를 내려는 것도 저지했다. 굳이 이런일로 서로 싸우면서 체력 소모할 필요 없다. 그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니까. 최소한 적이 눈 앞에 있으면 서로 협력을 해야지.
  [그런데 중령님]
  “왜, 소령?”
  [저기 검은 연기는 뭡니까?]
  검은 연기? 검은연기? 검은……
  응?
  검은 연기?!
  [뭐….뭐야 저건……]
  [폭발이라도 한걸까요?]
  [뭔가에 두들겨 맞은게 아닐까 싶은데……]
  [뭐야, 그러면 우리가 왜 온거지?]
  놀람부터 경악까지 다양한 감정이 편대망을 가로지른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아직은 조금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항공모함, 적기의 테일 마킹에 따르면 류조로 판명된 경항공모함이 틀림 없다. 대충 봐도 상태는 중파, 아니, 대파. 시커먼 연기가 함체 중앙에서 폴폴 솟아나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다. 저 상태면 함재기 이착륙은 물건너 갔다. 아니, 저정도면 자력 항해가 가능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건 그렇고, 누구야? 우리 목표를 박살낸게?
  [어…어떻게 하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사냐 공주가 말을 더듬으며 내게 물었다.
  “글쎄……일단 살아남은 적기들 부터 제거하는게 좋지 않을까? 소령은 어떻게 생각해?”
  [현재 함대 상공의 적기는 우리가 추격해온 5기를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동의한다는 말이겠지. 5기. 우리가 추적해온 5기가 하늘에 떠있는 것의 전부. 상처입은 적기를 공격하는건 일방적인 사냥에 불과한 일이다.
  “나탈리? 너는?”
  [나? 나는 네가 결정하는대로 할테니까. 헤헤.]
  좋아. 그럼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마울러 대위.”
  [……예]
  “적기들, 격추할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누구와는 다르게, 저희 37 기사단의 실력은 월등하니까요.]
  [이…이게……!]
  “사냐는 가만히 있고. 방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대위?”
  [무슨 말씀이신지?]
  “한기라도 도망친다면 그건 귀관의 책임으로 뭍겠어요.”
  반은 도발, 반은 진심이다. 마울러 대위에게는 평소의 좋지 않는 감정도 남아있고, 애초에 나를 싫어하는 마울러 대위이니 이렇게 적절한 도발을 섞어주면 공세적으로 나서겠지. 너무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움직이다가 격추나 당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십시오. 저희 기사단이 당신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네네. 그렇게 잘난척 해도 나는 신경 안쓰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우으윽! 저 대위 녀석, 정말 마음에 안드네요.]
  [창민아, 너 호구야? 왜 맨날 그렇게 실실대는건데?]
  “……나탈리, 그래도 호구가 뭐야, 호구가……”
  나는 단순히 저런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들이랑 싸우면서 인생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일 있으니까, 지금은 그거에 집중하자.”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고도를 낮추며 적기들의 후방으로 다가가는 37 기사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 저쪽은 알아서들 잘 하겠지. 그렇게 큰소리 쳐댔으니까, 지금은 믿고 맡겨보자.
  왜냐하면 우리는 더 큰 전과를 올릴거거든!
  ……내가 평소에 전과에 그닥 신경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계속되는 마울러 대위의 우리 기사단 무시 발언에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뭐, 인정할건 인정하고 살자고.
  짜증나잖아!
  “우선 적 항공모함부터 공격할거야. 어차피 다 죽어가니까 이건 2기로 충분해. 나와 나탈리가 책임지고 공격할거야.”
  [오케이~ 네 등은 맞겨 두라고!]
  “사냐와 에리카 소령, 두사람은 호위 중인 구축함들을 공격해줘. 적의 기관을 잘 노리면 최소한 항행 불능까지는 만들 수 있을거야.”
  [알았어요, 창민경. 그냥 박살내면 되는거죠?]
  “유나 중위는 나머지 두사람이랑 같이 적 전함을 상대해줘. 격침 같은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적의 주포탑만 제압하라고.”
  [수신. 확실하게 패놓겠습니다.]
  음, 좋아 좋아. 씩씩하게 대답하는 우리 기사단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흡족해진 나는 슬쩍 시선을 37 기사단에게로 옮겼다. 뒤에서 시작한 갑작스러운 기습에 2기의 폭격기가 격추된 모양이지만, 나머지 3기, 그러니까 제로센 2기와 발 폭격기 1기는 이리저리 날렵하게 피하면서 블랙캣들을 약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회전 하지 말라…… 뭐, 알아서 잘하겠지.
  가볍게 날개를 흔들어 공격 신호를 보낸 나는 나탈리와 함께 불타고 있는 항공모함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타는 점으로 보였던 류조의 자세한 형상이 이제 점점 눈에 들어온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했다. 함수는 반쯤 수면 아래 잠겨있고, 나무 갑판은 구멍이 숭숭 뚫린채 이리저리 뒤틀려있다. 안에서 폭탄이라도 유폭되었는지, 아니면 기름에 불이 붙었는지 시뻘건 화염이 혀를 낼림거리며 구멍 안에서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물건들이 타면서 생긴 검은 연기를 하늘 높이 치솟아 ‘나 박살났요’라고 사방으로 광고를 해댄다. 옆에 구축함 2척이 붙어서 승무원들을 구출하고 화재를 진압하며 예인하려고 하지만 무리. 저정도 상태면 공작함이 달라 붙어야 간신히 수리가 가능한 수준이다. 아니, 지금 가라앉지 않고 저렇게 표류하고 있는게 신기할 정도다. 마치 투창에 찔린 커다란 코끼리가 죽기 직전의 상황인 것 처럼 류조는 간신히 물에 떠서 펌프로 물을 퍼내며 유입되는 해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포세이돈이 힘들어 할까봐 우리가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나탈리. 네가 선두로.”
  [오케이! 폭격 먼저지?]
  내가 살짝 기체 속도를 줄임과 동시에 나탈리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10도의 완만한 각도로 류조를 향해 하강하는 우리.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바라보며, 6000피트의 고도에서 언제쯤 급강하를 시작할지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내가 뭐라고 언질을 주기도 전에 공격 타이밍을 잡은 나탈리는 바로 기체를 180 뒤집은 다음 급강하를 시작했다. 주익에 달린 2개의 45kg 고폭탄들이 특ㅇ의 올리브 색을 뽐내며 햇살에 반짝였다. 그리고 나탈리가 급강하를 시작한지 딱 5초 뒤,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블랙캣에서 분리된 폭탄들은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완만한 C자를 그린 나탈리가 급강하에서 빠져나와 고도를 회복함과 동시에, 불타고 있던 나무 갑판 위에서 고폭탄 하나가 작렬했다. 그 갑판을 받치던 나무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지 이리저리 깨어진 채 검은색으로 물들여졌다.  어느정도 잡아가던 불길을 되살려놓은건지, 함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화염이 시뻘건 혀를 낼름거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항공모함 류조 옆의 구축함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의 로켓탄과 기총소사가 이어졌다. 2발의 로켓이 얇은 구축함의 장갑을 관통함과 동시에 폭발, 항공모함의 좌현에서 구조적업에 한창이던 그 이름도 모르는 구축함은 함체가 두동강이 난 채로 두조각으로 쪼개져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도 8발의 타이니 팀 로켓을 갑판의 구멍으로 박아 넣는데 성공했다. 3인치이지만 그런 물건이 8개가 터졌다. 최소 1개 고폭탄에 맞먹는 폭발이 류조의 안을 뒤흔들었고, 강철 선체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그리고 그 상처의 틈으로 바닷물이 휠 틈조차 주지 않고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군데가 아닌 11군데에서. 펌프로 퍼내는 것도 아뭘 ㄴ효과가 없이, 류조는 로켓들의 폭발력이 집중된 우현을 향해 조금씩 기울어지며 침몰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침몰을 막으려던 구축함 하나는 격침되었고, 다른 구축함 하나는 화들짝 놀라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늦었다. 나와 나탈리의 기총소사를 시작으로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의 로켓 공격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격침시키지는 못했지만, 함교가 날아가고, 함수가 찌그러지고, 함미가 박살나버렸으니 충분한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멀쩡한 상태로 대공포화를 하늘로 쏟아내던 적 전함……아니, 중순양함도 유나 중위의 소대에게 로켓 공격을 받았다. 아, 어떻게 전함이 아니라 중순양함인줄 알았냐고?
  [어, 어뢰 발사관]
  후소 전함에 어뢰 발사관은 없거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전함 같이 포격전 하는 물건에는 원래 어뢰 같은건 달아놓는게 아니다. 차라리 그 배수량으로 크고 아름다운 주포를 더 얹는게 자기 본연의 임무를 생각해보면 낫지. 어쨌든 그게 중순양함이라는 사실은 꽤나 기쁜 소식이었다. 먼저, 만약에라도 이녀석 단독으로 핸더슨 비행장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8인치로는 그렇게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유나 중위의 소대의 공격이 먹힌다는 점이었다.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육중한 쇳덩이로부터 방어하도록 설계된 전함에 로켓이 먹힐까? 안먹힌다. 하지만 중순양함은 비록 장갑이 두텁기는 하다만 전함 만큼은 아니다. 전함들은 로켓으로 공격해봤자 비장갑구획만 조금 파손될 뿐이지만, 중순양함은 장갑구획에도 의미있는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기대 정도는 해볼 수 있게 된거다.
  슈슈슉
  후소 중순양함을 향해 달려들던 블랙캣들의 그림자 아래에서 흰 연기와 함께 로켓 수십발이 꼬리를 끌며 날아갔다. 날카로운 회피기동을 수행할 수 있는 구축함들과 달리, 무거운 중순양함들은 관성 때문에 선회능력도, 민첩성도 떨어졌다. 진행방향을 예측하고 사격한 로켓들은 대부분 그 중순양함의 함수에 맞으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자욱이 피어나 시야를 가리는 구름을 뚫고 유나 중위 소대의 블랙캣들이 빠져나오고, 상처를 입은 후소 중순양함은 비틀거리며 뒤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 살아남은 나머지 구축함 하나가 대공포화로 저항하며 따라 붙었다. 후퇴한다. 북쪽으로.
  [추격할까?]
  “됐어. 무장도 없잖아.”
  [창민이 너, 로켓 4발 정도 남아있지 않아?]
  “그걸로 저걸 격침하라고?”
  [아니.]
  뭐,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의 기동은 사절이다. 연료가 점점 바닥나니까. 슬슬 돌아갈 때가 되기는 했지. 슬쩍 시선으로 확인한 연료 게이지의 바늘은 메인 탱크가 대략 20대를 가리키고 있다. 비상용 연료 탱크는 꽉 차있지만, 그걸 사용하면서까지 모험해보고 싶지는 않다. 오늘 우리의 전과는 적 함대 남하 저지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런데……”
  사냐 공주는 지금 뭐하냐?
  사냐 공주와 마울러 대위의 블랙캣이 서로서로를 향해 얽히고 섥히며 공중전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서로 꼬리를 물어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는 점만 실전과 다를 뿐, 나머지는 전부 똑같다. 기동도, 긴장감도, 격렬함도. 자신의 뒤를 잡은 마울러 대위를 피하기 위해 크게 수직 루프를 그리는 사냐 공주. 공중제비의 정점 부근에서 러더가 오른쪽으로 젖혀지며, 기체가 옆으로 미끄렸다. 슬쩍 내려간 오른쪽 에일러론은 순식간에 기체를 거꾸로 뒤집고, 실속 직전의 기이한 부유상태에 빠지면서 허공으로 미끄러져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냐 공주의 급기동. 하지만 마울러 대위도 침착하게 엔진 출력을 줄이고 플랩을 최대로 펼친 다음 원을 그리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플랩까지 펼친걸 보면 저속 공중전으로 끌고 가려는 생각인가보지.
  물론, 저건 바보 같은 짓이다. 속도가 생명인 공중전에서 추격하는 것도 아니고, 추격 받고 있는데 엔진 출력을 줄여?
  역시나, 사냐 공주는 그정도로 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사람의 거리는 더더욱 가까워진 상태. 아무렴, 누가 가르쳤는데. 괜히 엣헴, 하고 어깨와 목청에 힘이 들어간다.
  [……저거 안 말려도 되는거야?]
  아차차!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나. 일단은 말려야겠지, 음. 그래. 말리자.
  “자, 둘다 그만하고. 쓸데없이 연료 태워먹으면서 장난친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장난끼 가득한 말로 나는 두사람에게 물었다. 왠지 기분이 좋다. 사냐 공주를 그렇게 무시하던 마울러 대위를 사냐 공주가 실력으로 찍어눌렀으니 말이야.
  “뭐하는 짓들이야, 지금?”
  [전쟁 중에 적군의 목숨이나 생각하는 한심한 공주의 기사 따위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째 나를 향한 적대감과 매도는 더 심해진 느낌이다.
  [전쟁에 미쳐서 살육만 좋아하게 된 당신 따위가 할 말은 아니거든요! 어디서 창민경에게 그렇게 무례한 짓을!]
  [공주전하는 어느나라의 공주입니까? 저자들은 살아서 돌아가면 다시 적기를 타고 나타날 놈들이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무장의 적군을 살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대위!]
  ……오케이,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 마울러 대위는 후소 제국에 대한 적개심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지금 물에 빠져있는 후소 수병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하려고 했고, 사냐 공주는 이걸 막았다는거구나. 옛날의 사냐 공주도 저랬었지. 음, 그때 그런 때가 있었어. 지금은 많이 완화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아, 맞아. 그때 나한테 그랬었지. 적을 더 많이 죽여야 우리 국민들이 행복해진다, 라고. 그때는 그렇게 격추수에 집착했던 사냐 공주가 이제는 저렇게 적국의 군인들의 살 권리를 주장하다니…… 뭔가 어렸던 딸이 장성한 느낌이라서 뿌듯한다. 도데체 내가 왜 이 느낌을 느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감상은 나중에 하자. 두사람의 상태가 더더욱 험악해지기 전에.
  [공주라고 봐줬더니 아까 그게 승부의 전부인줄 아시나 봅니다!]
  [내가 봐달라고 했어요? 혼자서 차별해놓고 왜 짜증이야?]
  “둘다 그만 하라고.”
  [……네]
  시무룩하게 들려오는 사냐 공주의 대답. 하지만 아직도 서로를 견제하는지 사냐 공주와 마울러 중위는 서로의 꽁무니를 잡기 위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사냐. 내가 그만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하​지​만​…​…​]​
  “그만해. 마울러 대위도.”
  [싫습니다. 내가 왜 당신 명령을 듣습니까?]
  너, 내가 아까부터 너 조준하고 있는거 몰랐지? 그것도 엄청 신중하게. 마울러 대위의 말에 발끈해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퉁
  경쾌한 음성과 함께 날아간 수십발의 기관총탄들이 마울러 대위의 블랙캣 전투기의 날개 끝부분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마치 자를 대고 자를 것과 같을 정도로 깨끗한 절단이었다. 오, 내가 했지만 놀라운데. 마울러 대위는 아마 간이 철렁했을거다.
  “한번 더 할까? 이번에는 캐노피를 조준해볼까 하는데?”
  ​[​시​정​하​겠​습​니​다​.​]​
  이자식은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는 타입이군. 앞으로는 알고 잘 써먹어주겠어.
  “둘다 잘 들어. 우선 마울러 대위. 포로를 학살하는 행위는 전쟁법에 어긋나는 행동인거, 알고 있지? 거기다 상대가 적이라도 일단은 구조하는게 불문율이야. 모르지는 않을텐데.”
  [……예]
  [거봐요!]
  “하지만 마울러 대위의 말도 일리가 있어. 적이 구조하게 냅두면 적들에게 가서 우리의 전력이나 정보를 그대로 발설해버리겠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있고.”
  [그러면……?]
  “카탈리나기들을 부를거야.”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두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그 어떠한 적대적인 기운도 끊어낼 수 있을 정도.
  “그들로 우리가 이들을 구조해서 과나카날이나 빅토리아 대륙으로 델간다. 그러면 마울러 대위의 고민도, 사냐의 걱정도 모두 해소되는거지?”
  [예! 저는 좋아요.]
  [반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내 제안에 두사람 다 흔쾌히 찬성. 나는 바로 라슨 소령에게 무전을 날려 이곳으로 날아오라고 했다. 기타 추가적인 정보를 건네주는 것도 물론이고.
  “그럼, 돌아가자.”
  헨더슨 비행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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