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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7 - Bar Part 1


  1
  이틀 전에 진행된, 이른바 ‘솔로모니아 해전’의 결과는 에르데 제국의 승리도, 후소 제국의 승리도 아니게 된채 애매모호하게 끝나버렸다. 우리는 적 경항모 류조와 구축함 한척을 격침시키고 수송함대를 반전시켰지만, 정작 가장 중요했던 항공모함 보호에는 실패해버렸다. 사라토가는 그나마 무사했지만 엔터프라이즈가 폭탄에 맞아버린거다. 손상 자체는 갑판 부분만 수리하면 되지만, 문제는 손실한 함재기 세력. 급하게 바닷속에 처넣은 항공기 숫자는 내가 대충 본것만 해도 열기는 족히 넘었다. 그걸 보충하려면…… 사파이어만까지 다시 돌아가야 하는거지. 덕분에 에르데 제국이 오스트해 남부에서 사용 할 수 있는 항공모함은 고작 2척으로 줄었다. 급유받으러 빅토리아 대륙의 포트 다윈까지 내려간 범블비와 17 기동부대,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비행대는 만신창이가 된 사라토가의 11 기동부대. 와스프는 지금 정비중이라 사파이어만에 처박혀 있고, 내 첫 모함인 호넷은 매치포인트 해전에서 가라앉아버렸다.
  결론?
  아, 망했어요.
  함재기 손실 뿐만 아니라 항공기사들의 손실도 꽤나 컸다. 특히 연료계 무시하고 정찰하다가 불시착해버려 영영 못찾은 항공기사들의 숫자도 이십명이 넘어가고, 그렇게 잃은 함재기는 무려 마흔기나 된다. 대부분이 루키, 막 배치된 신병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그렇게까지 하고서도 정작 사라진 기갑함대는 찾지 못했다는거. 결국 해병대와 우리는 과나카날에 다시 갇힌 채 언제 처들어올지 모르는 기갑함대를 생각하며 벌벌 떨고 있다.
  밤에만.
  물론, 나쁜 소식만 있었던건 아니다.
  먼저, 이번 기회에 지난 2주간 보급되지 못했던 물품들이 한번에 보급되었다. 그것도 한달분량이나. 우리 기사단의 경우 내가 신청했던 엔진뿐만 아니라 철갑탄, 기관총탄, 소이탄, 연료, 소모성 부품 등을 지급받기도 했고, 더불어서 퀸셋 막사도 도착했다. 덕분에 예전처럼 간이로 만든 방공호에 비행기들을 집어넣을 필요 없이, 제대로 된 철골 구조물에 천막이 씌워진 격납고 5동이 핸더슨 비행장에 세워졌다. 물론 위장은 해놓았지만. 크기로 봐서는 B-17 같은 대형 폭격기용 같은데, 넓어서 블랙캣 같이 작은 기체의 경우 7기나 우겨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노천 정비를 하던 우리 정비대의 고생도 한결 편해졌다.
  아, 참고로 보급된 물품 중에서는 어뢰도 있다. ‘신형’어뢰라고는 하는데 다들 안 믿는 눈치라서 치워버리기는 했지만. 에리카 소령이 눈독 들이는걸 보면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물자 보급 뿐만 아니라 인원도 보급되었다. 먼저 상륙했던 해병 1사단은 새로이 1개 연대를 받았고, 그와는 별개로 에르데 제국 육군 4사단이 해병대 교두보에서 동쪽으로 30km정도 떨어진 코쿰바 지역에 상륙했다. 지난 이틀동안 도로도 내고 다리도 부설하고 경계 초소도 짓는 등 핸더슨 비행장과 육로로 연결된 이 코쿰바 지역에는 육군 공병대대가 불도저 6대를 투입해 새로운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대형 폭격기용 활주로로 사용할거라고 하니, 얼마 안있으면 중폭격기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이렷다. 이래저래 좋은 소식이라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항공기의 증원도 이루어졌다. 멀리 날아갔던 함재기들을 두고 떠나버린 항공모함들은 자신의 비행대를 여기, 과나카날 섬에 ‘파견’했다. 내가 봤을때는 두고 떠난게 꼴사나우니까 그렇게 처리한 것 같지만. 어쨌건 그렇게 된 덕분에 16기 밖에 없어 쓸쓸했던 핸더슨 비행장의 주기장은 이제 무려 50여기의 각종 항공기로 득시글거렸다. 길을 잃은 돈틀리스, ‘파견’나온 블랙캣, 사소한 고장으로 비상착륙한 어벤저 등 해군 항공대의 전투기와 급강하 폭격기, 그리고 뇌격기가 38기나 도착한거다. 더불어 라슨 소령의 카탈리나 비행정 8기까지 합치면 이제 이 좁은 비행장에는 62기나 되는 항공기들이 득시글대고 있는거다. 물론 이들을 잘 분산배치 시키는건 내 일이였고, 그것도 나름 고역이었지만. 아, 인피니티 항공 기사대는 해체되었다. 전투가 끝났으니까 굳이 그렇게 유지할 필요도 없어졌고, 계속해서 올라온 마울러 대위의 반발 때문에도 그렇다고 한다. 마울러 대위 녀석, 아버지가 의회의 높은 의원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쫄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내 개인적인 스토리. 이번 전투에서 2기의 격추를 확인받은 나는 지금까지 누적 확인 격추만 50.5기가 되었고, 빅토리아 대륙에서 갈려나가고 있는 에르데 제국의 에이스들 덕분에 총 순위 7위로 순위가 올랐다. 사실 격추수 1위에서 10위 까지는 하나에서 두기 더 격추하면 쉽게 변동되니까 그다지 자랑할만한 사실은 아니지만.
  “히히힛!”
  반대로 사냐 공주는 좋아하는 것 같다.
  “음. 잘 어울릴거 같아, 창민아.”
  그리고 나탈리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을 것 같네요, 중령님.”
  유나 중위도.
  “예. 유나 말대로, 생각했던 것보다는야.”
  마지막으로 에리카 소령도.
  무슨 말인지 궁금하지?
  아…아니야? 뭐, 그래도 말할거다.
  전쟁은 힘들다. 사파이어만 폭격 때도 그랬고, 매치포인트 해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루에만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피를 하늘에 뿌리며 장렬하게 산화해나가는게 현재의 전쟁. 그런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떨어져버린 에르데 제국군은 개전 직후의 기습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딱히 그렇다기 보다는 무더운 날씨, 뜨거운 태양, 녹색 사막 정글 같은 열악한 전선 조건 때문에 생기는 전투 피로증 같지만. 그래서 에르데 제국 수뇌부에서는 전선의 항공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새로운 방침을 마련했다. 30기 이상 격추한 항공기사에게는 전부 수여받는, 원형 방패 위에 두개의 은색 화살이 교차하는, 마치 에르데 제국 항공대의 라운델을 연상시키는 메달. 에이스 기장이다. 은색 메달의 상단에는 검은색으로 ​‘​S​k​y​K​n​i​g​h​t​s​’​라​고​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내 이름, CDR Lee가 씌여져 있다. 그 아래에는 두개의 화살이 크로스되어 있고, 메달의 맨 아래쪽에는 ‘Ost Campaigne Air War’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동봉된 설명서(…)에는 정복에 반드시 착용하고, 에르데 제국의 깃발처럼 신성한 물건이니 절대 땅에 닿아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다. 헹, 웃기는 소리. 어디까지나 전시 선전용 및 사기 진작용 메달인 주제에 비싼 척 하기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게 좀 웃겨 보이지? 하지만 정원 9명인 우리 44 기사단에서 나 포함 4명이나 받았다는건? 나 뿐만 아니라 34기를 격추한 사냐 공주, 32기를 격추한 나탈리, 그리고 숨은 다크호스 42기 격추의 에리카 소령도 전부 이 에이스 기장을 수여받았다. 너무 많아! 거의 50% 아니냐? 물론 이들이 전부 실력있는건 사실이지만 말이야, 이건 너무 많다고. 인플레이션이야, 인플레이션. 너무 많아서 희소가치가 없다고!
  아, 물론 그렇게 잘난척하던 마울러 대위는 못받았지만.
  ……그러고보니 그래서 사냐 공주가 저렇게 기뻐하는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그렇고, 아침부터 나를 불러낸 이유가 겨우 그거야? 메달?”
  “겨우라뇨? 이건 원래 아바마마가 직접 ​수​여​하​시​는​거​라​고​요​?​ 그걸 제가 대리로 창민경에게 수여하는거에요. 예를 갖추셔야지요.”
  ……황제가 프로파간다에 이용됩니다. 아무리 황제의 실권이 없다지만 이 동네, 무섭네.
  “알았어. 어떻게 하면 되는건데?”
  “기사 충성 서약처럼만 하면 되요.”
  “기사 충성 서약이라면, 한쪽 무릎을 꿇고 상체를 약간 숙이라고?”
  “넵.”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그냥 닥치고 꿇어, 창민아. 언제부터 네가 그런걸 따졌다고.”
  “나탈리…… 알았어, 알았어. 꿇을게, 꿇으면 되잖아. 너 그 눈빛 하면 정말 무섭다고.”
  슬그머니 손을 권총으로 가져가는 나탈리가 무섭다.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나탈리? 아니, 그것보다 왜 네가 더 난리인건데?
  “그야……난 창민이의 무릎 꿇은 모습을 보면 ​흥​분​되​니​까​…​…​하​악​”​
  “……농담 하지말고.”
  아, 정곡이네. 너 방금 당황했다.
  “칫.”
  혀찬거냐!! 지금 혀를 찬거냐?
  “난 단지 창민이 네가 빨리 메달 수여 받는걸 보고 싶을 뿐이라고.”
  그래, 그렇게 솔직하게 나와주셔야지.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나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내 손에 머리를 비비는 나탈리를 사냐 공주가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왜?
  “……빨리 시작이나 하죠.”
  왜 또 화난거야, 얘는?
  “아, 몰라요! 빨리 무릎이나 꿇어요!”
  ……네. 내 앞에서 히스테릭하게 성질부리는 사냐 공주님의 말씀을 어길수야 없겠지.
  “이이이익!”
  이크. 장난도 적당히쳐야지, 안그랬다가는 내가 맞아 죽게 생겼다. 사냐 공주가 말한대로 왼쪽 무릎을 꿇은 나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그러자 사냐 공주는 아까까지의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를 어디로 갔는지, 이내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필그림의 자유 기사, 죽음의 붉은 날개, 44 기사단의 부기사단장, 그리고 나 제국의 6황녀 사냐의 제 1 기사, 이창민경이여, 그대의 무공과 실력은 입증되었나이다. 그런 그대의 영광 앞에, 소녀, 제국의 황녀 사냐가 이 메달을 바치나니, 그대는 제국의 항공 기사로서, 정의와 힘을 수호하고 악을 멸하는데 정진하기를 희망하나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가까이 다가와 내 목에 에이스 기장을 걸어주는 사냐 공주. 하지만 그걸 받기만 하는 나는 그닥 탐탁하지만은 않았다. 정의와 힘과 악이라……너무나도 주관적인, 그래서 악용되기 쉬운 것들이다. 정의라. 그딴게 있다면 말이지.
  “와아~”
  “축하해!”
  “경하드립니다.”
  “주인님~”
  ……다들 굉장히 성의없어보이는거 알죠? 거기다 그렇게 짜증 팍팍내면서 박수치면 모를 수가 없지.
  “좋겠네, 혼자만 그런거 해서?”
  뭘?
  ……나중에 물어보니까 다른 기사들은 그런거 없다 하더라…… 어쩐지 조금 즉흥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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